왕비의 명을 받은 사람이 처방과 탕약을 관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화경은 자신이 무엇을 지시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고, 정 상궁 역시 그 뜻을 알아들었다.그날 이후 후궁에게 올리는 탕약이 바뀌었다.며칠 동안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후궁은 평소처럼 정원을 거닐었고, 궁녀들은 아이에게 입힐 배냇저고리를 준비했다.그러다 어느 날 밤, 후궁의 처소에서 다급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급히 달려온 의관들이 밤새 분주히 움직였지만 끝내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 침상과 이불은 피로 젖었고, 후궁은 의식을 잃었다 깨어나기를 반복했다.화경은 그 소식을 새벽에 들었다.정 상궁이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하는 동안 그녀는 침상 가장자리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마마, 아이를 잃었다 하옵니다.”화경은 손에 쥐고 있던 염주를 천천히 내려놓았다.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를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며칠 뒤 처방을 맡았던 의관은 지방으로 떠났고, 약을 달였던 궁녀는 다른 전각으로 옮겨졌다. 관련 장부에는 후궁의 몸이 본래 약하여 생긴 일이라는 기록만 남았다.궁에서는 안타까운 유산이라며 입을 모았고, 누구도 왕비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도겸은 한동안 그 후궁의 처소에 발길을 끊지 않았다.화경은 처음에 그것을 다행이라 여겼다.하지만 어느 날 중궁전에서 도겸을 마주했을 때, 그가 이전보다 훨씬 말수가 적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는 유산에 관해 그녀를 추궁하지 않았다.그저 아이를 잃은 후궁의 몸이 회복될 때까지 필요한 것을 아끼지 말라고 당부했을 뿐이었다.화경은 그 말을 듣는 동안 차마 그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지 못했다.도겸이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주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을 짓눌렀다.그 일에 관해 직접 아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정 상궁은 모든 과정을 지켜본 유일한 측근이었고, 화경 역시 그날 이후 그녀를 더욱 가까이 두었다.하지만 비밀이 지켜졌다고 해서 기억까지 사라지
Last Updated : 2026-10-12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