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왕의 아이를 숨긴 여인: Chapter 11 - Chapter 20

20 Chapters

11화

왕비의 명을 받은 사람이 처방과 탕약을 관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화경은 자신이 무엇을 지시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고, 정 상궁 역시 그 뜻을 알아들었다.그날 이후 후궁에게 올리는 탕약이 바뀌었다.며칠 동안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후궁은 평소처럼 정원을 거닐었고, 궁녀들은 아이에게 입힐 배냇저고리를 준비했다.그러다 어느 날 밤, 후궁의 처소에서 다급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급히 달려온 의관들이 밤새 분주히 움직였지만 끝내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 침상과 이불은 피로 젖었고, 후궁은 의식을 잃었다 깨어나기를 반복했다.화경은 그 소식을 새벽에 들었다.정 상궁이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하는 동안 그녀는 침상 가장자리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마마, 아이를 잃었다 하옵니다.”화경은 손에 쥐고 있던 염주를 천천히 내려놓았다.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를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며칠 뒤 처방을 맡았던 의관은 지방으로 떠났고, 약을 달였던 궁녀는 다른 전각으로 옮겨졌다. 관련 장부에는 후궁의 몸이 본래 약하여 생긴 일이라는 기록만 남았다.궁에서는 안타까운 유산이라며 입을 모았고, 누구도 왕비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도겸은 한동안 그 후궁의 처소에 발길을 끊지 않았다.화경은 처음에 그것을 다행이라 여겼다.하지만 어느 날 중궁전에서 도겸을 마주했을 때, 그가 이전보다 훨씬 말수가 적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는 유산에 관해 그녀를 추궁하지 않았다.그저 아이를 잃은 후궁의 몸이 회복될 때까지 필요한 것을 아끼지 말라고 당부했을 뿐이었다.화경은 그 말을 듣는 동안 차마 그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지 못했다.도겸이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주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을 짓눌렀다.그 일에 관해 직접 아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정 상궁은 모든 과정을 지켜본 유일한 측근이었고, 화경 역시 그날 이후 그녀를 더욱 가까이 두었다.하지만 비밀이 지켜졌다고 해서 기억까지 사라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Read more

12화

그날 오후, 서령은 희원궁 뒤편의 작은 뜰에 나와 있었다.바람이 차가워졌지만 방 안에만 앉아 있자니 답답했다. 그녀는 난희에게 두툼한 겉옷을 가져오게 한 뒤 햇볕이 드는 돌계단에 앉아 말린 귤피를 살폈다.햇빛을 충분히 받은 껍질은 빛깔이 고르고 향도 맑았다. 서령은 상태가 좋은 것만 골라 작은 그릇에 담았다.“마마, 이제 그만 들어가시지요. 바람이 차갑습니다.”“조금만 더 있다가.”난희는 서령의 곁에 앉아 약재를 함께 골랐다.“마마, 제가 수라간에 다녀왔습니다.”서령이 손을 멈췄다.“무엇을 알아보았느냐?”“수라 기록은 매일 중궁전으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평소와 달리 음식을 많이 물리거나 새로 올리면 담당 상궁이 따로 표시한다고 하였습니다.”“그렇겠지.”“그리고 어젯밤에는 전하께서 직접 죽을 가져오라 명하셨으니 수라간에서도 이야기가 많았다고 합니다.”서령은 고개를 끄덕였다.그 정도라면 정 상궁이 찾아온 경위는 설명이 되었다.하지만 아직 한 가지가 남아 있었다.“의녀가 다녀간 일은?”“내의원에서 출입 장부를 관리한다고 합니다. 중궁전에서는 필요할 때 그 장부를 확인할 수 있고요.”“최 의녀가 오늘 내게 무슨 처방을 내렸는지는?”“그것까지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서령은 잠시 생각하다가 난희에게 약재를 건넸다.“그 정도면 됐다. 더 알아보려다 눈에 띄지 말거라.”난희는 약재를 받아 들면서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마마, 이렇게까지 조심해야 합니까?”서령은 뜰에 떨어진 국화 꽃잎을 바라보았다.지난봄 아이를 잃었던 숙원의 얼굴이 떠올랐다.그 여인은 회임 사실이 알려진 뒤 누구보다 행복해했다. 배 속의 아이에게 입힐 옷을 고르며 웃었고, 날마다 배를 어루만지며 태어날 날을 기다렸다.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이를 잃었다.궁에서는 몸이 약해 생긴 일이라고 했지만, 서령은 그 뒤에 일어난 몇 가지 일을 잊지 못했다.후궁의 탕약을 맡았던 의관이 서둘러 지방으로 떠났고, 약을 달이던 궁녀도 다른 전각으로 옮겨졌다.그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Read more

13화

“어젯밤 그 아이가 생선국 냄새를 맡고 속이 좋지 않다 하였지?”“예, 전하.”“평소에도 그런 적이 있었느냐?”“소인은 잘 알지 못하옵니다.”도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서령은 자신의 몸이 좋지 않아도 쉽게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젯밤에도 얼굴이 창백해졌으면서 괜찮다고만 했고, 오늘 아침에도 기운을 차렸다는 말만 전해 왔다.그녀의 성정을 아는 도겸으로서는 그 말을 그대로 믿고 넘어가기가 어려웠다.“희원궁에 보낼 만한 음식이 무엇이 있겠느냐?”내관이 잠시 망설였다.“마마께서 평소 과일을 즐기신다고 들었사옵니다.”“그렇지. 지난번에는 배가 달다며 좋아하였지.”도겸은 곁에 놓인 상소문을 정리했다.“수라간에 일러 배와 대추를 보내라. 배를 부드럽게 익혀 올리는 것도 좋겠구나. 음식은 희원궁에서 원하는 대로 준비하게 하고.”“분부 받들겠사옵니다.”도겸은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해가 아직 기울지 않았으니 지금 일을 서둘러 마치면 희원궁에 들를 수 있을지도 몰랐다.그러나 그때 북쪽 고을에서 올라온 급보가 전해졌다.흉년으로 떠돌던 백성들이 관아 앞에 몰려들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곡식을 실은 수레를 막아 세우는 일까지 벌어졌다는 내용이었다.도겸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신들을 다시 부르라고 명했다.희원궁에 가려던 생각은 접어야 했다.그는 잠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가 내관에게 말했다.“서령에게 오늘은 가지 못할 듯하다고 전하여라. 그리고 내가 보낸 음식은 꼭 들게 하라고.”내관이 물러가려는데 도겸이 다시 불렀다.“잠깐.”“예, 전하.”“내일 아침 희원궁에 의녀를 보내라. 서령의 몸을 자세히 살피게 하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내게 직접 아뢰도록 하라.”“어느 의녀를 보내시겠사옵니까?”도겸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희원궁의 몸 상태를 이미 살펴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좋겠구나. 같은 사람이라야 변화를 알 수 있을 테니.”“알겠사옵니다.”도겸은 다시 장부로 시선을 돌렸다.그가 서령을 걱정하여 내린 명령은 곧 내의원으로 전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Read more

14화

최 의녀가 중궁전에서 풀려난 것은 해가 서산 너머로 기울 무렵이었다.내의원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저녁 수라를 준비하는 궁녀들이 분주하게 오갔다. 처마 아래에서는 말린 약재를 거두는 소리가 들렸고, 바람에 실려 온 은은한 약초 향이 회랑을 채웠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풍경이었지만 최 의녀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중궁전에서 정 상궁이 던졌던 질문이 여전히 귓가에 맴돌았다.“희원궁 마마의 맥에서 무엇을 짚었느냐?”최 의녀는 아직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어려우며 며칠 뒤 다시 진맥해야 한다는 말로 버텼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이 이미 짐작하고 있는 사실을 끝내 입 밖에 내지 않았을 뿐이었다.한서령이 회임했다.왕의 아이를 품은 여인이 희원궁에 있었다.그 사실이 중궁전에 알려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최 의녀도 모르지 않았다. 육 년 동안 후사를 보지 못한 중전 윤화경에게 후궁의 회임은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닐 터였다.최 의녀는 자신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진료 기록을 펼쳤다. 서령의 맥과 증상을 적어 내려가던 붓끝이 잠시 멈췄다. 그녀는 회임이라는 두 글자 대신 음식 냄새에 민감해졌다는 내용과 재진이 필요하다는 기록만 남겼다.그때 방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최 의녀, 안에 있느냐?”김 의녀가 작은 처방전 한 장을 들고 들어왔다. 평소보다 급하게 걸어왔는지 그녀의 뺨에는 붉은 기운이 남아 있었다.“희원궁에 올릴 약이 내려왔어. 내일 아침 진맥에 앞서 준비하라 하시더라.”최 의녀는 처방전을 받아 들었다.기력을 보한다는 약재들이 적혀 있었으나, 그중에는 태기가 있는 여인에게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약재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는 처방을 처음부터 다시 읽은 뒤 종이 끝에 적힌 담당자의 이름을 확인했다.순간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지난봄 회임했던 후궁이 아이를 잃었을 때 진료 기록을 정리했던 의관이었다.“이 처방은 누가 내렸느냐?”최 의녀가 종이를 내려놓자 김 의녀는 그녀의 심상치 않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Read more

15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떠올리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도겸은 서령이 약재를 고르다 손끝을 다쳤을 때에도 직접 연고를 발라 주던 사람이었다. 향을 만들다 밤이 깊어지면 그만 쉬라고 타이르면서도, 정작 그녀가 일을 마칠 때까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왕이라는 자리를 내려놓을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희원궁에서만큼은 다정한 남자로 있어 주었다.서령은 그런 도겸을 사랑했다.그러나 왕의 사랑과 왕의 선택이 언제나 같을 수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지난봄 아이를 잃은 후궁도 처음에는 도겸의 기쁨을 받았다. 회임 소식이 알려진 뒤 궁 안에서는 원자가 태어날지도 모른다는 말이 돌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여인은 아이를 잃었다.당시 서령은 그저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제는 달랐다.왕의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한 여인에게 기쁨이면서도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일이 될 수 있었다.“마마, 아직도 주무시지 않으셨습니까?”난희가 따뜻한 물을 가져왔다.서령은 먹물이 마른 서찰을 접어 봉투에 넣었다.“전하께 올릴 글을 쓰고 있었다.”난희의 얼굴에 조심스러운 미소가 번졌다.“드디어 회임 사실을 말씀드리시려는 것이옵니까?”서령은 봉투 위에 밀랍을 떨어뜨렸다. 작은 꽃무늬가 새겨진 인장을 눌렀다가 천천히 떼어 내자 반듯한 문양이 남았다.“내일 최 의녀에게 다시 확인받고 나면 전하께 올리려 한다. 그때까지 네가 보관해 다오.”난희는 두 손으로 서찰을 받아 품에 넣었다.서령은 그녀가 물러나기 전에 다시 불렀다.“그리고 내일부터 희원궁에 들어오는 약재와 음식은 모두 기록하자. 가져온 사람과 시각을 적고, 처방전이 있다면 반드시 남겨 두어라.”난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조금 사라졌다.서령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이 작게 울렸다.“지난봄 아이를 잃은 후궁을 기억하느냐?”난희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진료를 맡았던 의관과 시중들던 궁녀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아라. 다만 드러내 놓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Read more

16화

난희가 서찰의 봉인이 훼손된 사실을 발견한 것은 그날 오전이었다.그녀는 최 의녀가 오기 전에 서찰을 가져오려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옷함 맨 아래에 넣어 둔 겨울 저고리를 들추자 접힌 봉투가 모습을 드러냈다.난희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봉투를 집어 들었다.그러나 손끝에 닿은 밀랍의 감촉이 이상했다.작은 꽃무늬가 반쯤 뭉개져 있었고, 봉투 가장자리에는 날카로운 물건으로 들어 올린 듯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난희는 서찰을 품에 안고 서령에게 달려갔다.“마마…….”서령은 난희의 표정을 보자마자 손을 내밀었다.봉투를 받아 든 그녀는 먼저 봉인을 살폈다. 밀랍은 분명 누군가의 손을 탔고, 종이를 접은 방향도 어젯밤과 조금 달라져 있었다.서령은 서찰을 펼쳐 자신이 쓴 글이 그대로 있는지 확인했다.회임 사실이 적힌 문장 위로 시선이 머물렀다.누군가 이 글을 읽었다.그 생각이 들자 등줄기를 따라 서늘한 기운이 흘렀다.“어젯밤 네 방에 누가 들어왔느냐?”난희는 울음을 참으며 기억을 더듬었다.저녁 이후에는 아무도 들이지 않았지만, 새벽에 세숫물을 가져온 궁녀가 있었다고 했다. 사흘 전부터 일을 맡게 된 소옥이라는 아이였다.서령은 서찰을 다시 접었다.“그 아이가 누구의 명으로 일을 맡게 되었는지 알아보거라. 하지만 지금 당장 불러 추궁하지는 말고.”난희가 입술을 깨물었다.“소인이 잘못하였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서찰을…….”서령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네가 잘못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 작정하고 손을 댔다면 옷함을 아무리 깊이 감추어도 찾아냈을 것이다.”서령은 잠시 생각한 뒤 서찰을 비단 주머니에 넣었다.“앞으로는 이 서찰을 찾지 못한 것으로 하자. 누가 묻더라도 잃어버렸다고만 하거라.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는 절대 말하지 말고.”난희는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서찰을 읽은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얼마나 당황하는지 살피려 할 것이다. 그 사람이 다시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 보자.”서령은 비단 주머니의 끈을 단단히 묶었다.회임 사실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Read more

17화

그녀는 곧장 중궁전에 올릴 글을 적었다. 출입을 제한하는 명을 따르겠으나, 병환이 있는 후궁의 진료와 약재 반입이 늦어지지 않도록 담당자를 정해 달라는 내용이었다.난희가 글을 읽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중궁전의 명에 이의를 제기하시려는 것이옵니까?”서령은 완성한 글을 접어 봉투에 넣었다.“명을 따르기 위해 필요한 절차를 묻는 것이다. 치료가 늦어진다면 그 이유도 남겨 두어야 하니까.”난희는 봉투를 받아 들었다.서령은 닫힌 창호를 바라보았다.희원궁의 문은 막혔다.그러나 누군가 문을 막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몸과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길 수는 없었다.최 의녀가 다시 찾아온 것은 오후가 한참 지난 뒤였다.중궁전에 먼저 들렀다가 온 그녀는 얼굴이 유난히 창백했다.서령은 난희에게 차를 내오게 한 뒤 최 의녀의 표정을 살폈다. 최 의녀는 찻잔에 손도 대지 못한 채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중궁전에서 회임 여부를 알아오라 하셨겠지.”서령의 말에 최 의녀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그러나 서령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소매를 걷어 손목을 내밀었다.최 의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손가락을 얹었다.방 안에는 숯이 타는 소리만 들렸다.한참 뒤 최 의녀가 손을 거두었다.“마마, 회임하신 것이 분명하옵니다.”난희는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서령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다시 확인받으니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감정이 밀려왔다.도겸의 아이였다.아직 아무런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는 작은 생명이 자신의 몸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서령은 아랫배에 손을 얹었다가 이내 최 의녀를 바라보았다.“오늘 진맥한 내용은 있는 그대로 기록해 두거라. 다만 기록을 누구에게 넘겼는지도 반드시 남겨 두었으면 한다.”최 의녀가 고개를 숙였다.“전하께는 내가 직접 말씀드릴 시간을 청하고 싶다. 그전까지 기록이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도록 해 다오.”최 의녀는 잠시 망설였지만 거짓으로 보고하라는 뜻이 아니라는 서령의 설명을 듣고 조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Read more

18화

“최 의녀를 불러오너라. 그리고 차를 가져온 궁녀는 잠시 안채에 머물게 하여라. 함부로 추궁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그 아이에게 말을 걸지 못하도록만 해.”난희는 곧장 문을 열고 나갔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마마, 문밖에서 사람을 내보내지 못하게 합니다. 중궁전의 허가가 없으면 희원궁 사람은 나갈 수 없다고 하옵니다.”서령은 잠시 눈을 감았다.다시 통증이 밀려왔다.그녀는 침상 끝을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난희가 황급히 다가와 부축했다.“마마,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이대로 기다릴 수는 없어. 문까지 가자꾸나.”서령은 한 손으로 아랫배를 감싼 채 난희의 부축을 받아 정문으로 향했다.문 앞의 내관들은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도 선뜻 길을 열지 못했다.“내 몸이 좋지 않아 의녀를 불러야 한다. 문을 열어라.”내관이 중궁전의 명을 입에 올리자 서령은 문설주를 짚고 잠시 숨을 골랐다.“네가 명을 받았다면 누가 언제 내렸는지 말하거라.”내관이 머뭇거리자 서령은 난희에게 손짓했다.“이 사람의 이름과 지금 시각을 적어 두어라. 내가 치료를 요청했으나 출입을 막았다는 사실도 함께 남기고.”내관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마마, 소인은 그저 명을 따를 뿐이옵니다.”“알고 있다. 그러니 네게 책임을 묻기 전에 명령을 내린 사람부터 확인하려는 것이다.”서령은 차가운 문설주에 손을 얹은 채 내관을 바라보았다.“지금 문을 열지 않으면 중궁전에 직접 사람을 보내 치료를 요청하겠다. 그 과정도 모두 기록할 것이다.”내관은 옆 사람과 시선을 주고받았다.잠시 뒤 굳게 닫혔던 문이 열렸다.난희가 급히 최 의녀를 부르러 달려가는 동안 서령은 문설주에 기대어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바깥 공기가 차가웠다.그녀는 아랫배를 감싼 손에 힘을 주었다.아직 태동조차 느낄 수 없는 작은 아이였다.그런데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벌써 이렇게 많은 문을 열어야 했다.최 의녀가 도착했을 때 서령은 침상에 기대어 있었다.이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Read more

19화

잠시 뒤 편전에 들어온 제조는 희원궁에 약을 올렸으나 서령이 거절했다는 말부터 꺼냈다.“내가 약을 올리라고 명한 적이 있느냐?”도겸의 목소리가 낮아지자 제조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전하께서 희원궁 마마의 몸을 보하도록 하라 분부하셨기에…….”“나는 진맥을 다시 하라고 하였다. 누가 내 명을 처방으로 바꾸었느냐?”제조는 입술을 달싹였으나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도겸은 탁자 위에 놓인 장계를 밀어 놓았다.“희원궁에 올린 처방전과 진료 기록을 모두 가져오라. 내가 직접 살펴보겠다.”제조가 물러난 뒤에도 도겸은 쉽게 자리에 앉지 못했다.그때 편전 밖에서 내관 하나가 조심스럽게 들어왔다.“전하, 중궁전에서 급히 올린 보고가 있사옵니다.”도겸은 내관이 내민 봉투를 받아 펼쳤다.그 안에는 최 의녀가 희원궁에서 진맥한 결과를 간략히 정리한 보고가 들어 있었다. 아직 정식으로 내의원 기록방에 올려지지 않은 내용이었다.도겸은 첫 줄을 읽다가 움직임을 멈췄다.‘희원궁 한씨, 태기 확인.’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도겸은 보고서를 다시 읽었다.서령이 아이를 가졌다고 했다.자신의 아이였다.그는 무심코 손을 뻗어 보고서의 가장자리를 눌렀다. 가슴속에서 기쁨이 밀려왔지만 곧이어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그런데 왜 서령은 자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며칠 전부터 그녀가 무엇인가를 말하려다 그만두던 모습이 떠올랐다.도겸은 보고서를 접었다.“이 사실을 누가 알고 있느냐?”내관은 중궁전에서 먼저 확인한 것으로 안다고 대답했다.도겸의 표정이 굳었다.서령의 회임을 정작 자신보다 중궁전이 먼저 알고 있었다.더구나 서령은 그사이 수상한 약을 받았고 복통까지 겪었다.도겸은 보고서를 소매 안에 넣었다.“희원궁의 회임에 관한 일은 당분간 밖으로 알리지 말라. 내의원에서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못하게 하라.”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중궁전으로 가겠다.”서령을 찾아가기 전에 누가 진맥 기록을 중궁전에 넘겼고 자신의 이름으로 약을 올리게 했는지부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Read more

20화

그러나 곧이어 들려온 윤화경의 말이 그녀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전하, 이제는 처방의 잘잘못만 따질 때가 아니옵니다. 희원궁의 회임이 알려진다면 조정이 얼마나 크게 흔들리겠사옵니까.”서령은 숨을 멈췄다.도겸이 자신의 회임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기둥에 손을 얹었다.차가운 나무의 감촉이 손바닥으로 스며들었다.“그 아이에 관한 일은 더 이상 밖으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되오.”도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서령의 손끝이 굳었다.윤화경은 잠시 침묵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전하께서도 아시지 않사옵니까. 중궁에 아직 후사가 없는 상황에서 희원궁의 아이가 태어난다면 조정의 대신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옵니다.”도겸은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서령은 문 너머에서 그의 말을 기다렸다.자신의 아이를 지키겠다고, 누구도 해치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해 주기를 바랐다.그러나 도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달랐다.“알고 있소. 그러니 내가 직접 처리할 것이오.”서령은 눈을 크게 떴다.처리한다니.무엇을 처리한다는 것일까.윤화경이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희원궁의 일도 전하의 뜻대로 하겠사옵니다.”이번에도 도겸은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그 짧은 침묵이 서령에게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길게 느껴졌다.그녀는 기둥을 짚은 손에 힘을 주었다.회임 사실을 적었던 서찰.그의 이름으로 내려온 수상한 탕약.복통으로 쓰러졌을 때조차 의녀를 부르지 못하게 막았던 명령.그리고 지금, 아이를 직접 처리하겠다는 도겸의 말까지.서령은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의심을 애써 부정하려 했다.도겸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자신이 얼마나 그를 사랑하는지, 그가 자신을 얼마나 아껴 주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왕은 한 여인의 남편이기 전에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었다.조정이 흔들리고 왕권이 위태로워진다면 그가 끝까지 자신과 아이를 선택해 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서령은 아랫배를 감쌌다.아직 태동조차 느껴지지 않는 작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Read more
PREV
12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