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왕의 아이를 숨긴 여인: Capítulo 1 - Capítulo 10

20 Capítulos

1화

희원궁에 저녁 안개가 내려앉을 무렵, 한서령은 작은 약장 앞에 앉아 말린 약재를 골라내고 있었다.열어 놓은 창으로 늦가을 바람이 스며들었다. 뜰에 심은 국화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희미한 꽃향기가 방 안까지 흘러들었지만, 서령의 손끝에서는 그보다 깊고 은은한 백단향이 묻어났다.그녀는 잘게 썬 향목을 손바닥에 덜어 향을 확인한 뒤 말린 귤껍질을 조금 섞었다. 향이 지나치게 무거워지지 않도록 비율을 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다.“마마, 또 향낭을 만드십니까?”따뜻한 찻물을 가져오던 난희가 물었다.서령은 푸른 비단 주머니에 향목을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지난번 것은 향이 거의 빠졌을 거야.”“전하께서 가져가신 지 열흘도 되지 않았는데요. 지난번에도 밤새 만드셨으면서 이번에는 좀 쉬시지요.”“전하께서는 향이 진한 것을 좋아하지 않으시잖니. 처음부터 연하게 만들었으니 벌써 향이 옅어졌을 거야.”난희는 주인의 손에 들린 향낭을 바라보았다. 왕이 평소 즐겨 입는 상복과 같은 빛깔의 비단이었다.희원궁에 들어온 지도 어느덧 삼 년이었다.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서령은 궁녀들에게 약초 이름을 묻고, 직접 약재를 말리다가 상궁에게 꾸중을 듣곤 했다. 의관이었던 아버지 곁에서 자란 탓에 몸에 밴 습관이었다. 집안이 몰락하고 궁에 들어온 뒤에도 약재를 만지는 일만큼은 쉽게 놓을 수 없었다.후궁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궁에서는 후궁이 직접 약재를 손질하는 일을 곱게 보지 않았다. 하인에게 시키면 될 일을 굳이 제 손으로 한다며 흉을 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서령은 개의치 않았다.사람마다 몸에 맞는 향이 다르고, 같은 약재라도 얼마나 말리고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따라 효능이 달라진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특히 도겸은 정무에 시달리는 날이면 머리가 무겁고 잠을 깊이 이루지 못했다. 서령이 처음 향낭을 만들어 준 것도 그 때문이었다.“난희야, 오늘 전하께서 어느 전각에 드신다고 하셨지?”“대전에서 대신들과 늦게까지 의논하신다고 들었습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1
Leer más

2화

대전에서 곧장 온 듯 그의 어깨에는 밤공기의 서늘함이 남아 있었다. 서령이 예를 올리려 몸을 낮추자 도겸은 가까이 다가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그만. 이곳에 와서까지 네 절을 받고 싶지는 않구나.”“전하, 미리 기별이라도 주셨으면……”“그러면 네가 또 수라상을 가득 차렸겠지. 오늘은 조용히 쉬고 싶어 왔다.”도겸은 말을 마치고도 그녀의 팔을 놓지 않았다.대전에서 나온 뒤 내관은 침전으로 가마를 돌리려 했다. 그러나 도겸은 희원궁으로 향하라고 명했다.종일 대신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누군가는 세금을 더 거두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누군가는 흉년이 든 고을에 구휼미를 내리는 일을 반대했다.그 모든 말을 듣고 나니 서령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그녀가 특별한 말을 해 주어서가 아니었다. 희원궁에서는 누구도 그에게 결정을 재촉하지 않았고, 서령은 왕의 눈치를 살피며 듣기 좋은 말만 골라 하지도 않았다.도겸은 그 점이 좋았다.“오늘도 약방을 차려 놓았구나.”그의 시선이 약장 앞에 놓인 작은 절구와 향목, 아직 치우지 못한 비단 조각들로 향했다.서령은 조금 민망한 듯 웃었다.“약방이라니요. 그저 향낭 하나를 만들고 있었습니다.”“내 것이냐?”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도겸은 탁자 위의 푸른 향낭을 집어 들었다.가볍게 코끝에 가져간 그의 눈매가 느슨해졌다.“지난번보다 향이 좋구나.”“지난번 것도 좋다고 하셨습니다.”“그랬던가?”“전하께서는 제가 드리는 것은 무엇이든 좋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정말 마음에 드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도겸이 웃음을 터뜨렸다.“그것이 불만이냐?”“불만이라기보다 궁금한 것이지요.”서령은 향낭을 받아 그의 허리띠에 달아 주었다. 매듭이 비뚤어지지 않도록 손끝으로 매만지는 동안 도겸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을 내가 몸에 지니고 다닐 사람으로 보이느냐?”“그렇지는 않으십니다.”“그런데도 묻는구나.”“전하께서는 가끔 저를 기쁘게 해 주시려고 마음에도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1
Leer más

3화

“호조에서는 올해 세금을 그대로 거두어야 한다고 하더구나. 한 번 감면하기 시작하면 다른 고을에서도 같은 요구가 이어질 것이라면서.”도겸이 찻잔을 내려놓았다.“하지만 세금을 거두지 않으면 국고가 부족해지고, 거두자니 백성들이 굶어 죽게 생겼으니 어느 쪽도 쉬운 일이 아니다.”서령은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전하, 백성들이 땅을 버리고 떠나는 것은 올해 세금을 내기 어려워서입니까, 아니면 내년에도 먹고살 길이 없기 때문입니까?”도겸의 눈길이 그녀에게 향했다.“무슨 뜻이냐?”“올해 세금만 줄여 주어도 내년에 농사를 지을 씨앗이 없다면 결국 떠나지 않겠습니까? 땅을 지킬 수 있도록 종자와 식량을 함께 마련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도겸은 대답하지 않았다.서령은 자신이 지나치게 나섰다고 생각했는지 찻주전자를 내려놓았다.“제가 정사를 알지 못하면서 공연한 말씀을 드렸습니다.”“아니다. 계속 말해 보아라.”도겸의 목소리는 진지했다.서령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아버지께서 의관으로 계실 때 흉년이 든 고을에 다녀오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약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먹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굶주린 사람에게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몸이 버티지 못한다고요.”그녀는 식어 가는 찻잔을 손끝으로 감쌌다.“백성들이 농토를 떠나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당장 굶주림을 면하고 다음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고향에 남을 테니까요.”도겸은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대전에서는 하루 종일 세금을 얼마나 거둘 수 있는지만 논쟁했다. 그러나 서령은 백성들이 왜 고향을 떠나는지부터 물었다.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복잡한 숫자와 이해관계 속에서 가장 먼저 살펴야 할 일을 잠시 뒤로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네 아버지께서는 참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구나.”서령의 표정이 조금 가라앉았다.“아버지께서는 늘 사람을 먼저 보라고 하셨습니다. 약을 지을 때에도 병명보다 아픈 사람의 얼굴을 먼저 살피라고 하셨지요.”도겸은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1
Leer más

4화

“전하, 그럴 정도는 아닙니다.”“얼굴빛이 좋지 않다.”“낮부터 속이 조금 불편했습니다. 기름진 음식을 먹어서 그런 듯하니 잠시 쉬면 나아질 것입니다.”도겸은 그녀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난희에게 국그릇을 치우게 했다.“따뜻한 죽을 가져오너라. 향이 강한 음식은 올리지 말고.”서령이 그를 바라보았다.“전하께서는 수라를 드시다 말고 어찌 제 걱정만 하십니까?”“내가 밥을 먹는 동안 네가 아프면 마음이 편하겠느냐?”그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서령은 더는 사양하지 못했다.잠시 뒤 부드럽게 끓인 죽이 올라왔다. 서령이 몇 숟가락을 넘기자 도겸은 그제야 자신의 식사를 이어 갔다.그녀가 숟가락을 내려놓을 때까지 그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밤이 깊어지고 수라상이 물러간 뒤에도 두 사람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창호지 너머로 달빛이 번지고, 멀리 순라군의 발소리가 지나갔다.도겸은 낮 동안 쌓인 피로를 잊으려는 듯 서령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서령은 그의 머리에서 옥관을 풀어 곁에 놓고 손가락으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했다.“전하, 이러고 계시면 목이 불편하지 않으십니까?”“조금도.”“내일 아침 일찍 조회가 있으시다 들었습니다.”“그 이야기는 내일 아침에 하자.”서령은 웃으며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도겸이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서령아.”“예, 전하.”“너는 내게 바라는 것이 없느냐?”뜻밖의 물음이었다.서령은 잠시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왕의 총애를 받는 후궁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것이 있었다. 더 높은 품계, 좋은 처소, 친정의 복권, 혹은 왕의 아이.그러나 서령은 그런 것들을 쉽게 입에 올리지 못했다.궁에서 무엇을 바란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누군가의 눈에 띈다는 뜻이기도 했다.도겸은 그녀의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한참 뒤 서령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전하께서 이곳에 오셨을 때만큼은 편히 쉬셨으면 좋겠습니다.”도겸의 눈빛이 달라졌다.“그것이 네 소원이냐?”“예. 전하께서는 하루 종일 나라의 일을 걱정하시지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1
Leer más

5화

이튿날 아침, 서령은 평소보다 늦게 눈을 떴다.도겸은 이미 조회를 위해 떠난 뒤였다.베개 옆에는 그가 밤새 허리에 달고 있던 향낭이 놓여 있었다.서령은 그것을 집어 들었다.매듭 사이에 작은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향이 다하면 다시 만들어 다오.서령은 한참 동안 그 글씨를 바라보다가 종이를 곱게 접었다.도겸은 늘 바쁜 사람이었다. 함께 밤을 보내고도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대전으로 향했고, 때로는 작별 인사조차 나누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작은 흔적을 남겨 놓을 때면 서령은 그가 자신을 얼마나 아끼는지 느낄 수 있었다.지난겨울, 도겸이 열흘 넘게 희원궁을 찾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서령이 감기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늦은 밤 직접 찾아와 약이 식을 때까지 곁을 지켰다. 다음 날 새벽에는 어의에게 몸을 살피게 하고, 그녀가 좋아하는 매화 가지까지 보내왔다.그날 도겸이 했던 말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네가 아프면 이곳에 오는 내 마음도 편치 않다. 그러니 부디 몸을 아껴라.”서령은 향낭을 가슴께에 잠시 가져갔다가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오늘 밤 그가 다시 찾아온다면 이번에는 자신이 먼저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마마, 일어나셨습니까?”난희가 세숫물을 들고 들어왔다.서령은 몸을 일으키려다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어지럼증에 침상 기둥을 붙잡았다.“마마!”난희가 서둘러 대야를 내려놓았다.“괜찮아. 잠깐 어지러웠을 뿐이야.”하지만 얼굴을 씻으려 고개를 숙이자 다시 속이 울렁거렸다. 난희가 가져온 따뜻한 차에서도 평소와 다른 냄새가 났다.서령은 찻잔을 멀리 밀어 놓았다.난희는 더는 참지 않았다.“오늘은 반드시 의녀를 부르겠습니다. 며칠째 이러시는데 어찌 그냥 넘기십니까?”서령은 말리려다 입을 다물었다.며칠째 계속되는 피로와 메스꺼움, 유난히 예민해진 후각이 머릿속에서 하나로 이어졌다.그녀는 무심코 자신의 아랫배에 손을 얹었다.그러고 보니 달거리가 늦어지고 있었다.처음에는 계절이 바뀌어 그런가 보다 했다. 궁에 들어온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1
Leer más

6화

문득 지난봄의 일이 떠올랐다.왕의 총애를 받던 한 후궁이 회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였다.궁 안은 며칠 동안 축하 인사로 떠들썩했다. 왕실의 경사라며 비단과 귀한 약재가 쏟아졌고, 왕비 역시 사람을 보내 몸조심하라는 말을 전했다.하지만 두 달도 지나지 않아 그 후궁은 아이를 잃었다.궁에서는 몸이 약해 생긴 일이라고 했다.그런데 아이를 잃기 전날 밤, 후궁이 먹은 탕약을 두고 의녀들이 서로 다른 말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처방을 내린 의관은 지방으로 떠났고, 약을 달였던 궁녀는 다른 전각으로 옮겨졌다.그 뒤로 그 일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없었다.서령 역시 진실을 알지 못했다.다만 아이를 잃은 후궁이 한동안 침전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는 사실만은 기억하고 있었다.그때 서령은 처음으로 깨달았다.궁에서 왕의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한 여인에게 가장 큰 기쁨이면서, 동시에 가장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마마, 전하께 아뢰어야 할 경사이옵니다.”의녀의 말에 서령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열린 문 너머로 희원궁의 뜰이 보였다. 햇빛은 여느 날처럼 따뜻했고, 난간에 걸어 둔 국화 화분도 바람에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그러나 방 안의 공기는 조금 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아직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라.”의녀가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마마, 왕실의 혈손이옵니다. 이 일을 감추셨다가……”“그래서 더욱 신중해야 한다.”서령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아직 초기라고 하지 않았느냐. 며칠 뒤 다시 맥을 살펴 확실해지면 그때 전하께 아뢸 것이다.”“하지만 중궁전에도 보고해야 할 일이라……”“확실하지 않은 일을 먼저 알렸다가 태기가 아니라면 어찌하겠느냐? 그때는 너 역시 곤란해질 것이다.”의녀는 입술을 다물었다.서령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오늘 네가 이곳에 다녀간 이유는 내가 며칠째 속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의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머리를 숙였다.“분부대로 하겠사옵니다.”그녀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1
Leer más

7화

“들라 하여라.”서령의 허락이 떨어지자 희원궁의 방문이 열리고, 중궁전의 정 상궁이 궁녀 둘을 거느린 채 안으로 들어섰다.마흔을 훌쩍 넘긴 정 상궁은 왕비가 세자빈으로 들어오던 시절부터 곁을 지켜 온 사람이었다.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지 않게 틀어 올린 모습이나 옷자락을 정리하는 손길에는 오랫동안 궁중 예법을 익힌 사람 특유의 빈틈없는 태도가 배어 있었다.“중궁전의 정 상궁이 마마께 문안 올리옵니다.”서령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왕비의 최측근이 후궁의 처소를 직접 찾아오는 일은 흔치 않았다. 더구나 어제까지 아무런 기별도 없었던 사람이 이른 아침부터 찾아왔으니, 단순한 문안은 아닐 터였다.“중전마마께서 귀한 약재를 보내셨사옵니다. 날씨가 차가워졌으니 희원궁에서도 몸을 잘 보살피라는 말씀이 계셨습니다.”정 상궁이 눈짓하자 뒤따라온 궁녀들이 붉은 비단으로 감싼 함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함 안에는 인삼과 당귀, 계피를 비롯한 약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약재마다 이름을 적은 종이가 붙어 있었고, 그 옆에는 내의원에서 발급한 것으로 보이는 문서도 들어 있었다.서령은 함 안을 잠시 살펴보다가 미소를 지었다.“중전마마께서 이리 세심하게 살펴 주시니 송구하구나. 돌아가거든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 드리게.”“예, 마마.”그러나 정 상궁은 물러날 기색이 없었다.그녀는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약장 앞에 놓인 작은 절구와 말린 귤피, 탁자 한쪽에 놓인 향낭까지 살핀 뒤 다시 서령에게 시선을 돌렸다.“그런데 마마께서 요즘 수라를 잘 들지 못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차를 따르던 난희의 손길이 잠시 멈췄다.서령은 그 움직임을 알아차렸지만 정 상궁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환절기라 입맛이 조금 떨어졌을 뿐이네.”“어젯밤에는 생선국을 물리셨다지요?”정 상궁의 말에 서령은 찻잔을 들던 손을 멈췄다.“그것까지 알고 있었는가?”“중전마마께서는 내명부를 살피시는 분이시옵니다. 후궁마마들께서 수라를 제대로 드시는지, 병환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도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2
Leer más

8화

수라 기록과 내의원 출입 장부.중궁전은 궁 안의 정상적인 보고 체계만으로도 희원궁의 변화를 상당 부분 알아내고 있었다. 난희에게 입단속을 시킨 것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속이 불편하여 의녀를 불렀네. 별다른 병은 아니라 하더군.”“어떤 처방을 받으셨사옵니까?”“몸을 쉬게 하고 음식을 가려 먹으라는 말을 들었네.”“탕약은 받지 않으셨습니까?”“받지 않았네.”정 상궁은 잠시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서령은 일부러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상대가 자신의 안색과 손짓까지 살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서둘러 대화를 끝내려 하지 않았다.“중전마마께서 보내신 약재는 감사히 받겠네. 다만 탕약은 내 몸을 살펴 온 의녀와 상의한 뒤 지어 먹는 것이 좋겠어.”정 상궁의 눈빛이 가늘어졌다.“중전마마께서 직접 챙기신 약이옵니다.”“그래서 더욱 신중하려는 것이네.”서령은 함 안의 당귀를 집어 들었다.“같은 약재라도 사람의 몸에 따라 쓰임이 다르지 않은가. 어려서부터 약재를 접해 왔으니 그 정도는 알고 있네. 내 몸에 맞지 않는 약을 먹고 탈이 나면 중전마마께서도 마음이 편치 않으실 것이야.”정 상궁은 쉽게 반박하지 못했다.서령은 약재를 제자리에 놓고 함의 뚜껑을 닫았다.“약재는 잘 보관하겠네. 중전마마께는 내 몸이 많이 나아졌다고 전해 드리게.”정 상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마마, 한 가지 더 여쭈어도 되겠사옵니까?”“말해 보게.”“지난달에 비해 달거리가 늦어지거나 몸에 특별한 변화가 있으신 것은 아니옵니까?”난희가 숨을 삼켰다.서령은 정 상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궁 안에서 후궁의 달거리를 살피는 일은 낯선 일이 아니었다. 내명부에서는 후궁의 건강과 합방 일정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관련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그러나 정 상궁이 직접 그 일을 묻는 것은 다른 의미였다.중궁전이 단순한 병환보다 회임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이었다.서령은 잠시 침묵했다.그녀가 망설이는 사이 정 상궁의 시선이 아랫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2
Leer más

9화

“어젯밤 수라를 들였던 궁녀들과 오늘 의녀를 안내한 사람도 확인하겠습니다.”“그들에게 직접 캐묻지는 말고. 평소처럼 지내면서 누가 어느 곳을 드나드는지 살펴보아라.”서령은 약재 함을 열어 다시 한 번 안쪽을 살폈다.약재에는 눈에 띄는 이상이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자신의 몸에 적합한 처방이라는 뜻도 아니었다.“이 약재는 다른 것과 섞지 말고 따로 보관해 두어라. 내가 확인하기 전에는 누구도 달이지 못하게 하고.”“예, 마마.”난희가 함을 가져가려는데 서령이 다시 불렀다.“그리고 내일부터 수라를 물릴 때에는 이유를 정확하게 적어 두도록 하거라. 음식이 식었거나 입맛에 맞지 않았으면 그대로 기록하면 돼. 괜히 숨기려다 기록이 어긋나면 오히려 의심을 살 테니.”난희는 그제야 주인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이해했다.궁의 기록을 없앨 수 없다면 적어도 거짓말 때문에 더 큰 의심을 사는 일은 피해야 했다.서령은 탁자 위의 향낭을 집어 들었다.도겸이 남긴 쪽지는 이미 서랍에 넣어 두었다.어젯밤 그가 자신의 손을 잡으며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면서 자꾸 더 해 주고 싶게 만든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그에게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리면 얼마나 기뻐할까.잠시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지만, 곧 정 상궁이 달거리까지 묻던 순간이 생각났다.서령은 향낭을 내려놓았다.지금은 기쁨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중궁전으로 돌아온 정 상궁은 왕비 앞에 무릎을 꿇었다.넓은 전각에는 은은한 침향이 감돌고 있었다. 창가에는 자개를 박은 화병과 청자 향로가 놓여 있었으며, 비단 발 너머로 늦가을 햇살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왕비 윤화경은 자수틀 앞에 앉아 붉은 실로 모란의 꽃잎을 놓고 있었다.올해 스물여덟인 화경은 누구도 쉽게 흠잡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이었다. 희고 매끄러운 얼굴에 길게 뻗은 눈매, 반듯한 콧날과 선명한 입술이 조화를 이루었고, 검은 눈동자에는 어려서부터 익혀 온 절제와 위엄이 배어 있었다.화려한 미모로 사람을 압도하기보다, 단정한 자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2
Leer más

10화

그는 희원궁에서 돌아온 날이면 어쩐지 표정이 부드러워졌고, 정무에 지친 밤에도 그곳에 들를 시간을 만들었다.화경은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자신은 왕비였다. 도겸의 곁에 설 수 있는 유일한 정실이었고, 온 나라가 그 자리를 인정하고 있었다.그런데 정작 남편의 다정함은 다른 여인의 것이었다.“수라 기록을 다시 가져오너라.”정 상궁이 준비해 온 종이를 내밀었다.화경은 며칠 동안의 기록을 차례로 살폈다.사흘 전 점심 수라를 절반 이상 물렸고, 그 전날에는 아침을 거의 들지 않았다. 어젯밤에는 생선국을 물리고 흰죽을 다시 올렸다.그 아래에는 수라를 물린 시각과 담당 궁녀의 이름까지 적혀 있었다.“생선국 냄새를 맡고 속이 불편했다 하였느냐?”“예. 마마께서도 그리 말씀하셨습니다.”화경의 손끝이 기록 한 줄에 멈췄다.“의녀는 오늘 언제 다녀갔느냐?”“오전 진시 말경에 들어가 사시가 되기 전에 나왔다고 하옵니다.”“그리 오래 머물렀느냐?”“맥을 살피고 나왔다고 합니다.”화경은 종이를 접어 정 상궁에게 돌려주었다.“희원궁에서 무슨 말을 하더냐?”“보내신 약재는 감사히 받겠으나 탕약은 의녀와 상의한 뒤 먹겠다고 하였습니다.”“내가 보낸 약을 거절한 것이냐?”“그런 뜻은 아니라 하였사오나, 당장 드실 생각은 없어 보였습니다.”화경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한서령은 의관의 딸이라 하였지?”“예. 어려서부터 약재를 다루었다고 들었습니다.”“그러니 제 몸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도 남보다 빨리 알아차렸을 수 있겠구나.”정 상궁은 조심스럽게 왕비의 얼굴을 살폈다.“마마께서도 회임을 의심하시는 것이옵니까?”화경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녀의 친정인 파평 윤씨 가문은 대대로 조정의 요직을 차지해 온 명문가였다. 부친 윤정국은 현직 좌의정이었고, 큰오라비는 이조참판으로 조정의 인사를 다루고 있었다. 숙부와 사촌들 역시 여러 관직에 포진해 있었다.화경이 세자빈으로 간택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가 장차 왕비가 될 운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2
Leer más
ANTERIOR
12
ESCANEA EL CÓDIGO PARA LEER EN LA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