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범아, 나를 부축해줘. 네 엄마 보러 가야겠어.”
정군호는 이윤정을 아끼지만 일단 자신을 보호해야 했다.
정신을 차린 그는 이은화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해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일범은 정일군과 함께 아버지를 일으켜 세웠고 그렇게 부자 넷은 방을 나섰다.
“여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정군호는 서재에 앉아있는 이은화를 보자마자 두 아들의 부축에서 벗어나 빠른 걸음으로 이은화 앞으로 다가가더니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뺨을 세게 후려치기만 했다.
이은화는 차갑게 정군호를 쳐다보았다.
정일범 형제는 감히 정군호 대신 사정하지도 못한 채 곁에서 서 있기만 했고 정군호가 아무런 존엄도 없이 무릎을 꿇고 자신의 뺨을 때리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정군호는 힘껏 자신의 뺨을 쳤기 때문에 곧 그의 양쪽 얼굴이 전부 빨갛게 부어올랐다.
심지어 입가에 피까지 났다.
이은화는 여전히 정군호를 차갑게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정군호가 그녀를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오싹할 정도로 차가웠다.
정군호는 자신이 이번에 정말 비참할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시간은 그렇게 한참을 흘렀고 이은화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됐어.”
정군호는 아직도 자신의 뺨을 때렸다.
정일범은 앞으로 다가가 정군호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렸다.
“아버지, 엄마가 멈추라고 하셨어요.”
정군호는 그제야 동작을 멈추었다.
이은화는 네 명의 자식을 보면서 말했다.
“윤미야, 일범아. 너희들은 얼른 아래층으로 내려가 있어. 내 동의 없이 절대로 이 층으로 올라오면 안 돼. 그리고 아무도 위층에 올라오지 못하게 해.”
“엄마.”
이윤미는 이은화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이은화는 스무 살이나 늙은 것 같은 모습으로 이윤미에게 말을 건넸다.
“걱정하지 마. 내가 그렇게 많은 일을 겪었는데, 이 정도 일에 난 쓰러지지 않아.”
이은화가 마음만 먹으면 더 젊고 몸이 더 튼튼한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정군호가 젊고 예쁜 미녀랑 바람피우는데, 설마 이은화가 밖에서 젊고 힘센 남자를 만나지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