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6. 불륜 커플이서하가 잠시 멍하니 있는 사이, 서도윤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선배님, 이번 주에 프라이빗 패션 아트 전시회가 열린대요.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디자인 작품들도 꽤 전시된다고 하던데, 같이 가실래요?]이서하는 거절하려다가 이어서 도착한 메시지를 보고 손가락을 멈췄다.[최 감독님도 오신다고 하셨어요.]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결국 함께 가겠다고 답했다.전시회 당일, 이서하는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미술관에 도착했다.이번 전시회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한국의 오트 쿠튀르 디자이너가 주최한 행사로, 초대받은 사람만 입장할 수 있는 프라이빗 전시회였다. 관람객들은 귀중한 아카이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패션 업계 관계자들과 교류할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서도윤은 이서하와 함께 몇몇 전시 구역을 둘러보았다. 두 사람이 디자이너의 초기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최 감독이 남편인 스미스 씨와 함께 다가왔다.“서하 씨, 오랜만이에요!”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네 사람은 자연스럽게 전시회에 관한 이야기로 화제를 옮겼다.이서하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그때, 입구 쪽에서 떠들썩한 인사 소리가 들려왔다.“강 대표님, 이쪽은 사모님이신가요?”그 소리에 고개를 돌린 이서하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사람들 한가운데 강신혁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팔짱을 끼고 있는 여자는 다름 아닌 권나영이었다.권나영은 세련된 재단이 돋보이는 드레스를 입고 강신혁의 팔에 다정하게 팔짱을 낀 채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강신혁 역시 여유로운 표정으로 간간이 고개를 숙여 그녀의 말에 응했다.두 사람의 모습은 누가 봐도 다정한 부부나 다름없었다.“두 분 정말 잘 어울리시네요. 나란히 서 계시니 화보 속 모델들 같아요.”누군가 감탄하듯 말했다.권나영은 살짝 미소 지을 뿐,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강신혁 역시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짧게 대답했다.“감사합니다.”담담한 두 마디는 상대의 말을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
Última actualización: 2026-10-30
Chapter: 25. 내가 좋아하는 여자강신혁이 다시 고개를 숙여 이서하에게 입을 맞추려 했다.이서하는 고개를 돌렸다. 속이 울렁거렸다.한때는 그의 다정한 손길을 그토록 간절히 바랐건만, 이제는 그의 손길이 닿는 것조차 역겨웠다.그녀는 자신이 그를 충분히 사랑하기만 하면 언젠가는 그가 마음을 돌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 어떤 사람의 다정함은 처음부터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는 더 이상 그에게서 얼마 되지도 않는 사랑을 구걸하고 싶지 않았다.“짝!”날카로운 뺨 때리는 소리가 울렸다.강신혁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고, 그의 움직임도 그대로 멈췄다.이서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여전히 벨이 울리는 휴대전화를 집어 전화를 받은 뒤, 망설임 없이 스피커폰을 켰다.“신혁아…… 어디야? 나 너무 힘들어…….”수화기 너머로 권나영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신혁은 그제야 조금 정신이 든 듯 얼굴빛이 달라졌다. 그는 곧바로 손을 뻗어 휴대전화를 가져갔다.“나영아? 왜 그래?”그는 물으며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휴대전화를 든 채 황급히 방을 나갔다.문이 닫히고 나서야 이서하는 꽉 쥐고 있던 손을 천천히 풀었다.그저 역겨울 뿐이었다.평생 그녀를 돌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남자였다. 하지만 정작 그녀가 원했는지조차 제대로 신경 쓴 적이 없었다.이서하는 안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혼자 손님방으로 향했다.그날 밤, 그녀는 좀처럼 편히 잠들지 못했다.다음 날 아침, 이서하는 일찍 일어나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집에서 스트레칭과 기초 운동을 시작했다.몸의 유연성과 건강을 되찾고 싶었다. 무엇보다 다시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운동을 마치고 가부좌를 튼 채 명상에 잠겨 있을 때쯤, 강신혁이 집으로 돌아왔다.그는 들어서자마자 한쪽에 놓인 꽃다발을 발견했다.“이 꽃, 어디서 났어?”이서하는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강신혁이 몇 걸음 다가왔다. 목소리가 눈에 띄게
Última actualización: 2026-10-29
Chapter: 24. 신혁의 공주님눈앞의 남자가 누구인지 알아본 순간, 이서하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강신혁이었다.“……너 지금 뭐 하는 거야?”지독한 술 냄새에 코를 찌르는 담배 냄새까지 뒤섞여 밀려왔다. 이서하는 역겨움에 미간을 찌푸렸다. 속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가슴을 힘껏 밀쳤다.“미쳤어? 당장 비켜!”그러나 강신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두 손목을 붙잡아 머리 위로 비틀어 올리며 꼼짝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놔!”“서하야.”“내 이름 부르지 마. 놓으라고!”이서하는 온몸을 비틀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지독한 술 냄새도, 뜨겁게 달아오른 그의 거친 숨결도, 모든 것을 제 뜻대로 할 수 있다는 듯 내려다보는 눈빛도 전부 끔찍했다. 그 어느 때보다 역겹고 혐오스러웠다.그녀는 당장이라도 이 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같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조차 견딜 수 없었다.그런데도 강신혁은 끝내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오늘 네가 올린 글, 봤어.”“그래서?”“기대한다고 했잖아.”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심지어 그 안에는 상대를 내려다보며 너그럽게 봐주겠다는 듯한 오만함마저 묻어났다.“네가 진작 이렇게 숙이고 들어왔으면 내가 왜 화를 냈겠어? 내 말만 잘 들으면 지난 일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을게.”이서하는 어이가 없어 웃음까지 터뜨렸다. 눈빛에는 황당함과 조롱이 가득했다.“네가 뭔데 그렇게 생각하는데?”“네가 정말 나를 완전히 잊었다면 굳이 그런 글을 올려서 내 관심을 끌 이유가 없잖아?”강신혁은 술기운에 사로잡힌 듯 집요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서하야, 네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 나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나도 평생 너를 저버리지 않을 테니까.”“그럼 권나영은?”이서하가 차갑게 그의 말을 잘랐다.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로운 가시처럼 꽂혔다.“권나영은 어떻게 할 건데?”그 이름이 나오자 강신혁의 눈빛이 미묘하게
Última actualización: 2026-10-29
Chapter: 23. 기대오랜만에 패션쇼장을 찾은 이서하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걸음을 멈췄다.익숙한 조명과 음악, 분주하게 오가는 스태프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까지, 모든 것이 오래전 기억을 하나둘 떠올리게 했다.심장이 조금씩 빠르게 뛰었다.매일같이 드나들던 곳인데도 오랜만에 다시 찾으니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었다.이서하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띤 채 자리에 앉았다.음악이 시작되고 모델들이 차례로 런웨이에 올랐다. 그녀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갔다.힘 있는 걸음걸이와 표정, 의상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작은 동작들까지.한때는 눈을 감고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익숙했던 모습들이었다.이서하는 어느새 허리를 곧게 펴고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오랫동안 잠잠했던 마음 한구석에서 무언가가 조금씩 되살아나는 듯했다.쇼가 끝나자 모델들이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이내 객석에서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그때, 이번 쇼에서 가장 중요한 무대를 맡았던 남자 모델이 꽃다발을 들고 이서하에게 다가왔다.그는 자신이 받은 꽃다발 중 가장 예쁜 것을 골라 그녀에게 내밀었다.“서하 선배님, 이거 받으세요.”예상치 못한 방문에 이서하는 눈을 깜빡였다.“저를 아세요?”남자는 조금 긴장한 듯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저 서도윤이라고 합니다. 선배님이 활동하실 때 저랑 같이 쇼에 선 적이 있어요.”이서하가 여전히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 그를 바라보자, 옆에 있던 최 감독이 웃으며 거들었다.“기억 안 나? 예전에 남녀 모델이 짝을 이뤄서 런웨이에 섰던 행사 있잖아. 그때 도윤이가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엄청 긴장했었어. 자기가 실수할까 봐 걱정이 많았거든. 네가 옆에서 워킹하는 법도 하나하나 알려 주고, 괜찮다고 격려해 줬잖아.”그제야 이서하는 어렴풋이 기억을 떠올렸다.당시 그녀와 함께 무대에 섰던 남자 모델은 잔뜩 긴장한 채 어쩔 줄 몰라 했다.이서하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파트너와 보폭을 어떻게 맞춰야 하
Última actualización: 2026-10-29
Chapter: 22. 난 가정부가 아니야다음 날 아침, 이서하는 일찍 잠에서 깼다.창밖은 막 밝아지기 시작했다.그녀는 욕실로 들어가 꼼꼼하게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한 뒤, 거울 앞에 서서 한참 동안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거울 속 여자는 여전히 단정하고 수려한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었다. 다만 예전보다 눈빛은 한결 흐릿해졌고, 감추기 힘든 피로가 얼굴에 묻어났다.그녀는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가만히 만져 보았다.자신을 이렇게 찬찬히 들여다본 게 언제였더라?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이서하는 오랫동안 입지 않았던 원피스를 꺼냈다.짙은 와인색 원피스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디자인에 허리선이 날렵하게 잡혀 있었다. 부드럽게 떨어지는 원단은 몸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내렸고, 별다른 장식이 없어도 그녀의 몸매를 한층 늘씬하게 돋보이게 했다.그녀는 촉감이 부드러운 숄도 하나 꺼냈다.원피스보다 옅은 색상의 숄을 어깨에 걸치자 전체적인 스타일에 자연스러운 입체감이 더해졌다. 동시에 어깨와 목 주변에 남은 흔적도 적당히 가릴 수 있었다.거울 앞에 선 그녀는 긴 머리를 정성스럽게 정리한 뒤, 선이 간결한 귀걸이를 골라 착용했다.화장도 일부러 진하게 하지 않았다.그저 눈썹과 눈매를 꼼꼼하게 다듬어, 피곤해 보이던 얼굴에 생기를 되찾아 주었다.마지막으로 립스틱을 들어 입술에 가볍게 발랐다.거울 속 여자는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지만, 이내 조금씩 익숙해졌다.그녀는 남편의 마음에 들기 위해 꾸민 아내가 아니었다.그렇다고 집 안에 숨어 다른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여자도 아니었다.한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살아갔고, 자신만의 인생을 가졌던 여자였다.이서하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다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이서하가 아래층으로 내려왔을 때, 김 이모는 거실에서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발소리가 들리자 무심코 고개를 들었던 그녀는 이서하를 보자마자 잠시 말을 잊었다.오늘 이서하의 모습은 예상 밖이었다.몸에 잘 맞는 원피스는 그녀의 늘씬한 몸매를 돋보이게 했고, 어깨에 걸
Última actualización: 2026-10-29
Chapter: 21. 첫걸음을 내딛다이서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에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다음 순간, 그녀의 손가락이 멈췄다.최 감독이 보낸 메시지는 아주 짧았다.— 서하아, 내일 패션쇼가 하나 있는데 보러 올 생각 있어?— 원한다면 입장할 수 있도록 제가 준비해 줄게.이서하는 메시지를 두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자신이 잘못 본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이런 말이 자신의 일상에 등장한 지도 정말 오래되었다.부상을 당한 뒤, 그녀는 조금씩 예전의 세계에서 멀어졌다.처음에는 몸 상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나중에는 예전에 익숙했던 사람들의 시선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졌다.자신의 상처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조심스러운 위로를 듣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답장을 보내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물론 가고 싶었다.가고 싶지 않을 리가 없었다.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다.다시 패션쇼장에 들어서서 익숙한 조명과 카메라, 모델들을 마주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누군가 자신을 알아보고 지난 몇 년간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본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예전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 사이에 설 수 있을까?그녀는 이미 과거와 완전히 작별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에야 깨달았다. 자신은 한 번도 진정으로 과거를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그저 예전의 자신을 깊숙이 숨겨 두었을 뿐이었다.이 집 안에, 날마다 반복되는 기다림 속에, 강신혁이 가끔 베풀어 주는 관심 속에.그러다 보니 자신이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조차 거의 잊어버릴 뻔했다.그런데 최 감독의 메시지 한 통이 마음속 깊이 묻어 두었던 기억들을 갑자기 다시 끄집어냈다.처음으로 런웨이에 올랐을 때의 긴장감이 떠올랐다.무대 조명이 자신을 비추던 순간도.음악이 시작되고 박자에 맞춰 앞으로 걸어 나가던 순간도,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을 때 느꼈던 기쁨도.그때의 그녀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누구에게도 의지할 필요가 없었다.그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
Última actualización: 2026-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