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간 사랑받지 못한 아내

6년간 사랑받지 못한 아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8
By:  복순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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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아…… 가지 마. 제발……” 결혼 6년 차, 강신혁은 아내 이서하에게 단 한 번도 이토록 애절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녀에게 입을 맞추면서도, 한 번도 아내에게 보여 준 적 없는 간절한 목소리로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강신혁을 구하기 위해 이서하는 자랑스러웠던 모델의 꿈을 포기했고,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까지 떠안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그의 차가운 외면과 무관심뿐이었다. 이서하는 마침내 마음을 접었다. 이혼 서류만 남긴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강신혁의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런데 어느 깊은 밤, 강신혁이 갑자기 나타나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두 눈이 붉게 충혈된 채 그녀를 바라보며 애원했다. “여보…… 나 혼자 집에 두고 가지 마.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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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1. 결혼 6주년 기념일

한남동, 고급 저택의 최상층.

이서하는 벽시계를 확인한 뒤 주방으로 향했다.

“이모님, 오늘이 신혁 씨랑 결혼한 지 6주년 되는 날이라서요. 오늘은 둘이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먼저 퇴근하셔도 돼요.”

가사 도우미는 식탁 가득 차려진 음식들을 힐끗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사모님도 참, 이런다고 뭐가 달라진다고요.”

그녀는 앞치마를 벗어 놓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집을 나갔다.

이서하는 이미 이런 태도에 익숙했다. 그녀는 조리대에 손을 짚고 잠시 숨을 고른 뒤, 욱신거리는 오른쪽 다리를 주무르고 다시 식탁으로 향했다.

저녁을 준비하는 데만 몇 시간이 걸렸다. 음식은 벌써 세 번이나 데웠지만, 휴대폰에는 여전히 강신혁에게서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녀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가 결국 전화를 걸지 않았다.

신혁은 한성그룹의 총수였다. 요즘은 분명 많이 바쁠 것이다.

괜찮아. 조금만 더 기다리자.

오늘은 결혼 6주년이니까.

그때였다.

달칵.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서하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뻣뻣해진 다리를 애써 감추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신혁 씨, 오셨어요?”

짙은 술 냄새가 훅 끼쳐 왔다.

강신혁은 양복 재킷을 팔에 걸친 채 취기가 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팔을 뻗어 그녀를 품에 끌어당겼다.

그녀는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그의 가슴팍으로 휘청이며 안겼다.

결혼한 지 6년.

꼭 함께 참석해야 하는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고서야, 강신혁이 먼저 그녀를 안아 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신혁 씨……?”

그녀가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하지만 남자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이서하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입맞춤은 다소 다급했고, 술기운에 이성을 잃은 듯 거침없었다. 그는 그녀를 거실의 가죽 소파로 이끌더니 그대로 그녀의 몸 위로 몸을 숙였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의 입술이 입가를 스치고 목덜미로 내려오더니, 이내 귓가에 머물렀다. 부드러운 입술이 귓바퀴를 스치자 그녀의 손가락이 소파를 움켜쥐었다.

6년이었다.

그는 그녀의 몸 상태를 배려한다는 이유로 단 한 번도 잠자리를 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그가 흉터로 얼룩진 몸을 혐오하는 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토록 거침없이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그녀는 그만 착각하고 말았다.

어쩌면 6년 동안의 기다림이 드디어 결실을 맺는 건 아닐까.

그녀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그의 목을 감싸려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가 그녀의 귓가에 바짝 입술을 가져다 대고, 깊은 그리움이 묻어나는 쉰 목소리로 두 글자를 내뱉었다.

“……나영아.”

이서하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멍하니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던 그녀는 몇 초가

지나서야 그가 부른 이름이 누구의 것인지 깨달았다.

권나영.

그가 오랜 세월 마음속에 품어 온 첫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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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ona7
momona7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많이 올려 주세요!
2026-10-28 18:3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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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남편의 첫사랑이 돌아왔다
강신혁의 커다란 손이 옷자락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다 무심코 그녀의 허리춤과 어깨 언저리에 넓게 퍼진, 울퉁불퉁하고 흉측한 화상 흉터에 닿고 말았다.낯선 감촉에 강신혁의 온몸이 흠칫 굳었다.눈에 어렸던 취기가 순식간에 가시고, 눈빛이 또렷해졌다. 몸 아래 깔린 그녀의 핏기 가신 얼굴을 보자 그의 동작이 멈췄다. 그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셔츠를 가다듬었다.엄청난 수치심과 절망이 그녀를 덮쳤다.이서하는 눈물을 삼키며 허둥지둥 일어나 옷깃을 여몄다. 그의 얼굴을 쳐다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저……화장실 좀 다녀올게요."간신히 한마디를 쥐어짜 내고는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오른쪽 다리에 갑자기 힘이 풀렸고, 두어 걸음도 떼기 전에 바닥에 쿵 하고 넘어지고 말았다."서하야!"강신혁이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손대지 마요!"그녀는 그의 손을 피했다. 이를 악물고 휘청거리며 일어난 그녀는 절뚝거리며 침실로 도망쳐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허공에 뻗은 그의 손이 멈칫하더니, 끝내 힘없이 내려갔다.침실은 어두웠다. 그녀는 문에 등을 기댄 채 스르르 주저앉았고, 눈물이 소리 없이 툭툭 떨어졌다.또 도망치고 말았다. 며칠 전 욕실 문 앞에서 들은 것이 환청이 아니었던 것이다.6년 전, 스물한 살의 이서하는 모두가 주목하는 신예 모델이었다.그해 그녀는 한 연회에서 고등학교 시절 짝사랑했던 강신혁과 재회했다.그 재회는 미처 다 접지 못했던 그녀의 마음에 다시 한 번 희망을 불러일으켰다.그러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호텔 화재가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그녀는 떨어지는 무거운 물체에 깔릴 뻔한 강신혁을 밀쳐 냈고, 대신 자신이 불길에 삼켜졌다.다리와 어깨에 넓은 범위의 화상을 입었다.한때 동경하던 미래와는 그렇게 작별했다.세간에서는 그녀가 한성그룹 후계자에게 분수도 모르고 매달렸다고만 여겼고, 강신혁이 하필 저런 쓸모없는 사람에게 발목을 잡혔다며 혀를 찼다.훗날 강신혁은 그녀에게 풍족한 생활을 마련해 주었고, 치료를 주선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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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남편은 내 편이 아니었다
영상 속 강신혁의 옆얼굴은 부드러웠다. 권나영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이서하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정함이 담겨 있었다.이서하는 휴대폰을 움켜쥐었다. 심장을 누군가 쥐어짜는 듯 아팠다.6년이었다. 그는 그녀 앞에서 늘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웃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가 무정한 사람이었던 게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다정함을 전부 다른 여자에게 주고 있었을 뿐이었다.그때, 며칠 전의 기억이 머릿속 깊은 곳에서 불쑥 떠올랐다.그날 밤늦게, 강신혁은 안방 욕실에서 샤워하고 있었다. 이서하는 그에게 수건을 가져다주려고 욕실 앞까지 갔다. 그런데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물소리 사이로 억누른 듯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두 사람은 결혼한 지 6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그녀를 안은 적이 없었다. 알고 보니 그는 차라리 혼자 해소할지언정 그녀에게는 손끝 하나 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욕실 안에서 들려오던 숨소리가 갑자기 거칠어졌다. 그가 마침내 참아 왔던 욕망을 터뜨리는 순간, 참고 참았던 그리움이 묻어나는 낮고 쉰 목소리가 문 너머로 희미하게 흘러나왔다.“……나영아.”그때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하며 애써 현실을 외면한 채 도망쳤다. 하지만 어젯밤 소파에서 벌어진 일, 귓가에 들려온 그 이름, 그리고 지금 눈앞의 영상까지. 모든 진실이 하나로 맞춰지자 그녀의 희망은 산산이 부서졌다.이서하는 거울 앞으로 걸어가 잠옷을 벗었다.거울 속 자신의 어깨와 다리에는 흉측한 화상 흉터가 가득했다. 한때 늘씬했던 모델의 몸매는 흔적도 없이 망가져 있었고, 창백하고 부석부석했다.이런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처량하기 짝이 없는데, 대체 무슨 자격으로 그가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 주길 바랐던 걸까?이서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흉터를 가릴 수 있는 헐렁한 옷으로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식탁 위에는 수분이 빠져 말라 가는 반찬 몇 접시가 놓여 있었다. 어젯밤 그녀가 세 번이나 다시 데워 놓았던 바로 그 음식들이었다.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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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하늘 같은 시혜
룸 안에서 권나영은 몸을 뒤로 젖히며 웃음을 터뜨렸다. 부드러운 몸을 거의 강신혁에게 기대다시피 하고 있었다.친구들이 거리낌 없이 농담을 던지고 음담패설을 늘어놓는데도 강신혁의 얼굴에는 노기라고는 조금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난처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젓더니 술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낮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그 여자한테 갚아야 할 빚이니까.”문밖에 서 있던 이서하는 숨이 멎은 듯 굳어 버렸다.그는 부정하지 않았다.그녀의 몸이 망가졌다느니, 흉측하고 역겹다느니, 도저히 입을 맞출 수 없을 것 같다느니 하는 온갖 모욕적인 말들을 하나도 부정하지 않았다.그저 “내가 그 여자한테 갚아야 할 빚이니까”라는 한마디로, 그녀를 향한 온갖 비방과 모욕을 담담하게 인정해 버렸다.그녀가 모르는 곳에서, 그는 친구들 앞에서조차 그녀를 그런 여자로 취급해 왔던 것이다.그녀가 바쳤던 진심과 헌신은 그의 눈에 그저 무겁지만 어쩔 수 없이 갚아야 하는 빚에 불과했다.“무슨 빚은 무슨 빚이야! 내가 보기엔 네가 그 여자한테 준 돈이면 평생 열 번은 갚고도 남겠구만!”김태호가 냉소하며 술잔을 든 채 문 쪽으로 두 걸음 더 다가갔다. 그러고는 목청을 높였다.“그런 볼품없는 여자가 네가 아니었으면 한남동은커녕 지금쯤 길바닥에서 쓰레기통이나 뒤지고 있었을걸!”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김태호가 무심코 내디딘 발에 반쯤 열려 있던 룸 문이 부딪혔다.문틀이 요란하게 울리며 문이 활짝 열렸다. 바깥의 빛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복도에 서 있는 이서하의 창백한 얼굴을 그대로 비췄다.룸 안의 소란이 뚝 멎었다.죽은 듯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들킨 데 대한 당혹감을 잠시 드러냈지만, 이내 다시 오만하고 경멸 어린 표정을 지었다.김태호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먼저 침묵을 깼다. 일부러 비꼬는 말투였다.“어라, 이게 누구야? 우리 귀하신 강 사모님 아니신가? 문 앞에서 언제부터 엿듣고 계셨어요?”강신혁은 술잔을 굴리던 손을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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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스물한 살의 이서하를 되찾다
룸 문이 등 뒤에서 닫히자, 시끌벅적한 소리와 악의에 찬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이서하는 복도 끝에 서서 차가운 벽을 짚었다. 온몸에 남은 오래된 흉터가 쑤시듯 아파 왔다.그녀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들어 쓴웃음을 지었다.이렇게 비참한 순간에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가엾을 정도로 기대하고 있었다. 강신혁이 뒤따라 나와 주기를. 자신의 손을 붙잡고, 낮은 목소리로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라고 한마디만 해 주기를.“딩.”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가 천천히 닫혔다. 그 안에서 내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복도에는 죽은 듯한 정적만이 감돌았다.이 결혼의 끝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걸어갈 길에는 더 이상 그녀와 함께해 줄 사람이 없었다. 이제는 오직 혼자 걸어가야 했다.룸 안의 분위기는 여전히 화기애애했다.권나영은 때맞춰 한숨을 내쉬며 강신혁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달랬다.“다들 이제 그만해. 서하 언니 얘기 때문에 신혁 오빠 기분까지 상하면 어떡해. 혹시 서하 언니가 집에 가서도 화나 있으면 오빠가 나한테 전화해. 내가 가서 사과할게.”“괜찮아. 신경 쓰지 마.”강신혁은 술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목소리는 차갑고 무심했다.“그렇게 화낼 사람도 아니야. 오늘 밤 집에 가면 혼자 알아서 기분 풀겠지.”김태호가 히죽 웃으며 강신혁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나영아, 넌 정말 너무 착하다니까! 그때 네가 외국으로 나가지만 않았어도 저 여자가 강 사모님 자리를 차지할 일은 없었잖아. 신혁아, 안 그래?”권나영은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일부러 몸을 피했다.“다들 그만 놀려. 신혁 오빠는 이미 결혼했잖아…… 난 이번에 돌아오면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어. 그저 다시 여러분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나영아, 무슨 소리야! 넌 영원히 우리 공주님이야. 그렇지, 신혁아?”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강신혁에게 쏠렸다.그는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술잔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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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혼
이른 아침, 이서하는 휴대폰에 부재중 전화가 스무 통 넘게 찍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전부 강신혁에게서 온 전화였다.그녀는 말없이 화면을 껐다.오늘은 선생님을 만나 유학에 필요한 서류를 의논하기로 했다. 더는 강신혁 때문에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카페 구석자리에서 선생님은 서류 목록을 그녀 앞으로 밀어 놓았다.“이건 쇼 연출 과정에 필요한 서류 목록이야. 다음 달 안으로 전부 제출하면 비자가 나오는 대로 언제든 출국할 수 있어.”“감사합니다, 선생님.”이서하는 서류 목록을 재빨리 가방에 넣었다. 손끝이 조금 떨렸다. 긴장 때문인지, 아니면 앞으로 시작될 새로운 삶에 대한 설렘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카페를 나선 순간, 커다란 그림자가 그녀 앞을 가로막았다.그녀는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순간 온몸이 굳어 버렸다.강신혁이 바로 눈앞에 서 있었다.검은색 맞춤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꼿꼿한 자세로 서서 차갑고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이서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본능적으로 가방을 품 안쪽으로 끌어당겼다.자신이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면 안 됐다. 그가 알게 된다면 돌아올 것은 뻔했다. 자신을 내려다보며 비웃는 태도뿐일 테니까.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침묵이 흘렀다.먼저 입을 연 것은 강신혁이었다. 그는 화를 억누른 채 일부러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여기서 뭐 해? 어젯밤엔 왜 집에 안 들어왔어? 전화도 안 받고. 아직도 화난 거야?”어젯밤 친구들이 그녀를 웃음거리로 만들도록 내버려 둔 사람이 자신이 아니기라도 한 듯 자연스러운 말투였다.그녀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는 반걸음 다가서며 내려다보았다.“서하야, 너무 철없이 굴지 마. 다들 장난이 좀 심했을 뿐이야. 그런데 네가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화를 내고 나가 버리면 나영이가 얼마나 난처하겠어? 예전엔 이렇게 철이 없지 않았잖아.”또 철이 없다고 한다.이서하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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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선물의 진짜 주인
“강신혁, 우리 이혼해요.”오랫동안 사랑해 온 남자 앞에서 이서하는 여전히 감정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말을 꺼내는 순간 목구멍이 꽉 막히는 듯했다. 마치 깨진 유리 조각을 삼킨 것처럼 목 안이 따끔거렸다.맞은편에서 강신혁이 소고기를 썰던 은색 포크가 도자기 접시를 긁으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는 천천히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검은 눈동자에는 격한 분노 대신 심드렁한 시선만 담겨 있었다. 마치 그녀가 터무니없는 농담이라도 꺼낸 것처럼.“또 왜 이래? 어젯밤엔 화가 나서 집에도 안 들어오더니, 밥 먹는 자리에서까지 나를 피곤하게 해야겠어?”그는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러고는 물잔을 들어 올렸다. 말투는 말을 안 듣는 반려동물을 달래기라도 하듯 부드러웠다.“서하야, 아직 화가 안 풀린 건 알아. 그래도 이성적으로 생각해야지. 나랑 이혼하면 너 혼자 어떻게 살려고? 지금도 일상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서, 대체 어디로 가겠다는 거야?”“진심이에요. 며칠 뒤에 이혼 서류를 당신 사무실로 보낼게요.”이서하는 무릎 위에 놓인 긴 치마를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어떻게든 자신이 진심이라는 걸 그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강신혁은 냅킨을 집어 입가를 느긋하게 닦았다. 미간에 차가운 주름이 잡혔다.“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어? 어젯밤 그깟 일 때문이야? 태호 쪽 애들이 말이 좀 심하긴 했지만, 나영이도 좋은 마음으로 널 타이르려던 거잖아. 네 성격 좀 봐. 툭하면 표정 굳히고 이혼하자고 하고. 그러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널 내 모임에 데리고 다니겠어? 넌 그 사람들이랑 어떻게 어울릴 건데?”그는 상체를 살짝 앞으로 기울이고 손가락이 긴 커다란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위에서 내려다보듯 그녀를 응시했다.“나랑 이혼하면 어디로 갈 건데? 나 말고 누가 널 먹여 살려 주겠어?”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그녀를 위한 충고인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 말들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녀의 가장 여린 곳을 파고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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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당신의 아내는 누구인가
이서하는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서서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마치 모든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권나영은 자연스럽게 ‘강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받아들였고, 강신혁마저 입을 열어 부인하지 않았다.이서하의 입가에 자조적인 냉소가 번졌다.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반걸음 물러난 뒤, 역겨운 광경에서 멀어지려 몸을 돌렸다.“서하야? 서하 맞니?”그때, 등 뒤에서 놀라움과 반가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서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카리스마가 넘치는 중년 여성이 빠른 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얼굴에는 믿기지 않는다는 기쁨이 가득했다.최 감독이었다.과거 이서하의 잠재력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그녀를 정상급 패션쇼 무대에 세워 준 사람이 바로 최 감독이었다. 이서하가 가장 빛나던 시절에도 그녀의 재능을 아낌없이 칭찬하고 인정해 준 사람이었다.“세상에, 정말 너구나!”최 감독은 이서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얼마나 감격했는지 목소리마저 가늘게 떨렸다.“그동안 대체 어디 있었던 거야?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줄 알았잖아! 그 사고 이후로…… 너, 괜찮았어?”오랜만에 받는 따뜻한 걱정이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없이 밀려들었다.이서하는 코끝이 시큰해지고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졌다.사고 이후, 한때 자랑스러워했던 그녀의 커리어는 한순간에 멈춰 버렸다. 흉터와 다리를 저는 후유증은 그녀가 마주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가 되었고, 그녀는 좁은 세상 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 과거의 모든 사람과 조금씩 연락을 끊었다.익숙한 사람들을 더는 만나지 않으면 자신이 잃어버린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하지만 오늘에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자신을 가두고 있던 것은 결코 몸에 남은 상처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이서하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천천히 허리를 폈다.“감독님, 오랜만이에요.”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는 다시 여유로운 미소가 떠올랐다.“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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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숨길 수 없는 불안
“아! 스미스 씨!”권나영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이서하의 말을 억지로 끊어 버렸다.그녀는 허둥지둥 와인잔을 집어 들었다. 손끝이 걷잡을 수 없이 떨리더니, 다음 순간 마치 손이 미끄러진 것처럼 와인 반 잔이 하늘색 고급 맞춤 드레스 위로 쏟아졌다.진한 와인이 순식간에 치맛자락을 적시며 눈에 띄게 붉은 얼룩으로 번져 나갔다.“죄, 죄송해요! 제가 너무 부주의했네요!”권나영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황급히 냅킨을 집어 들고 얼룩을 닦았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말까지 더듬거렸다.“갑자기 생각났는데…… 신혁 오빠, 우리 중요한 회의에 가야 하잖아요! 거기 일이 급해서 지금 바로 가야 해요. 정말 죄송하지만, 먼저 일어날게요!”입으로는 사과하면서도 손은 쉴 새 없이 치맛자락을 문질렀다. 어색하게 화제를 돌리려는 속셈이 뻔히 보였다.“괜찮아요. 어서 닦아요.”최 감독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친절하게 냅킨을 건넸다.권나영은 일단 이서하의 말을 막는 데는 성공했다.하지만 이서하가 정말 말을 이으려 했다면, 누가 그녀를 막을 수 있었을까?테이블 맞은편에서 강신혁은 와인잔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당장이라도 잔을 깨뜨릴 기세였다.그는 깊고 검은 눈동자로 이서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지금껏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당황과 경고, 그리고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애원이 뒤섞여 있었다.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 그는 그녀에게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저었다.흥.이서하는 찻잔을 들어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한 모금 마셨다.그저 평소 높은 곳에서 군림하던 두 사람이 얼마나 추한 꼴을 보일지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최 감독은 문득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흥미롭게 물었다.“참, 서하야. 너 결혼했니? 남자 친구는 있고?”“네, 결혼한 지 벌써 6년 됐어요.”이서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제 남편도 강 씨예요.”그 말이 떨어지자 맞은편 두 사람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했다. 숨소리마저 멎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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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의 품 안의 사모님
이서하는 휴대폰에 뜬 메시지를 못 본 척했다. 최 감독과 여유롭게 개인 연락처를 주고받고, 다음 주 리허설 현장에 가서 돕기로 약속까지 마친 뒤에야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 인사를 건넸다.1층 로비를 막 나서자 저녁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이서하가 길가로 나가 택시를 잡으려던 순간, 물빛 푸른 그림자가 한발 앞서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권나영이 하이힐을 신고 다가왔다. 얼굴에는 어느새 억울하고 가련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서하의 팔을 붙잡더니, 듣기만 해도 역겨울 만큼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서하 언니, 아까 안에서는 정말 죄송했어요. 제가 너무 당황해서 그랬어요. 화내지 마세요…… 신혁 오빠도 탓하지 마시고요. 오빠는 그저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권나영은 이서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말을 이었다.“그룹 사업에 지장이 갈까 봐 그랬던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부부인 걸 그냥 묵인한 거고요…… 언니는 이해해 주실 거죠, 서하 언니?”말하는 동안 권나영은 별생각 없다는 듯 치맛자락을 쓸어내렸다. 그러면서 손끝으로 “무심코” 이서하의 옷 사이로 희미하게 드러난 울퉁불퉁한 흉터를 스쳤다.순간, 구역질 나는 혐오감이 신경을 타고 터져 나왔다. 이서하는 속이 격하게 뒤집혔고, 눈빛에 남아 있던 마지막 인내심마저 바닥났다.“손대지 마!”이서하는 차갑게 팔을 뿌리쳤다. 본능적으로 권나영에게서 조금이라도 더 떨어지려 했다.힘도 거의 주지 않았다. 그런데 권나영은 “꺅” 하고 비명을 지르더니, 지나치게 과장된 몸짓으로 그대로 바닥에 세게 넘어졌다!“나영아!”벼락같은 고함이 터졌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강신혁이 성큼성큼 달려와, 낯빛이 시퍼렇게 질린 채 바닥에 쓰러진 권나영을 와락 품에 안았다.권나영은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듯 강신혁의 품에 웅크렸다. 눈물은 말 그대로 뚝뚝 떨어졌고, 그녀는 손목을 문지르며 흐느꼈다.“신혁 오빠…… 서하 언니 탓하지 마세요. 제가 혼자 못 버티고 넘어진 거예요…… 서하 언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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