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때, 한 대의 장갑차가 사납게 돌진해 왔다. 갑작스러운 돌격에 미처 피하지 못한 천병 몇 명이 공중으로 튕겨 나갔고 심지어 한 명은 바퀴에 끼어 그대로 깔려 버렸다. 장갑차를 몰던 병사는 외적들이 열무기를 갖추지 못했으니 중장갑차로 전부 깔아뭉개 버리면 되리라 생각한 듯했다.운전병이 천병 몇을 날려버리고 의기양양하게 돌파하던 순간, 차체에 깔려있던 천병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주먹 한 방으로 차량 하부에 커다란 구멍을 내더니 이어서 그 거대한 장갑차를 하늘로 날려버렸다. 차체에 깔려있던 그의 몸은 고작 몇 군데 긁힌 정도였고 입고 있던 갑옷에는 흠 하나 나지 않았다.금위군은 절망했다.일개 병졸조차 저토록 엄청난 신력을 지녔는데 하물며 혈육으로 이루어진 자신들이 신명의 상대가 될 리 없다고 생각했다.그때 몇몇 금위군이 장갑차가 전복된 자리로 달려가 간신히 살아남은 병사들을 구해냈다.“너희들 공항 특전대 아니야? 공항 안 지키고 여기서 뭐 하는 거야!”금위군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이곳에 온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괜히 목숨만 버릴 필요는 없었다.“전에 방송에서 공항이 외부 지원을 요청하는 걸 들었는데... 여기에 나타난 걸 보면 공항은 이미 함락된 것 같네.” 다른 금위군이 탄식했다.이번 전투는 정말 가망이 없어 보였다.희랍 신전의 목표는 바로 왕궁이었다. 지금의 금위군으로는 그들을 막을 수 없었고 왕궁이 함락되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그들은 그들의 왕이 아직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금위군의 사명은 오로지 왕궁과 왕실을 지키는 것이었다.현재 국주 임정설의 시신조차 식지 않은 상황에서 왕궁을 지키지 못한다면 국주의 영좌는 반드시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가 되면 비록 살아남는다고 할지라도 국주가 이런 큰 모욕을 당했으니 살아갈 면목이 없으리라 생각했다.곧이어 한 금위군 중령의 명령이 떨어졌고 이 구역 방어선에 남아 있던 모든
빙신전의 전주는 곤륜 구역에서 희랍 신전의 신주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존재였다.“그래, 나다. 어찌 나를 보고도 무릎을 꿇지 않는 것이냐!”모든 신력을 해방한 황보웅의 하늘을 뒤덮을 듯한 기세 아래 희랍 신전의 신령은 마치 한 마리의 개미처럼 왜소하게 느껴졌다.‘도망쳐야 해.’상대가 빙신전의 전주임을 깨달은 희랍 신전의 신령은 망설임 없이 뒤돌아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이제 와서 도망치려 하다니. 늦었다. 신주를 모독했으니 죽어라!”빙신전 전주가 손바닥으로 하늘에서 내리찍듯 누르자 희랍 신전의 하찮은 신은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땅바닥에 짓눌려졌다.소채은은 그 광경에 넋을 잃었다. 빙신전 전주가 이토록 압도적으로 강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소채은은 고학력 지식인으로서 희랍 신전의 역사에 대해서도 꽤 알고 있었다.방금 빙신전 전주에게 주살당한 신명 또한 전설과 신화 속에나 등장하던 존재였는데 황보웅의 손바닥 한 번에 허무하게 소멸해 버린 것이다.이어서 현빙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고 공항을 포위하고 있던 문 씨 세가의 정예 병사들도 순식간에 얼어붙었다.공항 곳곳에는 기묘한 얼음 조각상들이 들어섰다. 사람뿐만 아니라 활주로에 서 있던 비행기들마저 예외 없이 얼어붙었다.오직 황보웅의 힘으로 공항 전체의 기운을 완전히 뒤바꾼 것이다. 바야흐로 초여름을 향해 가는 시기였지만 서울 공항은 가장 추운 동짓날보다도 더 매서운 냉기가 감돌았다.관제탑 직원들과 공항 경비 병사들 또한 얼어붙은 현장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공항은 지켜냈군. 가자. 왕궁으로.”황보웅은 소채은을 흘긋 보고는 그대로 하늘로 솟구쳐 날아올랐다.소채은도 그를 따라가려 할 때였다. 공항을 경비하던 한 부대의 병사들이 황보웅의 전음을 받았는지 입을 열었다.“아가씨, 저희와 함께 가시죠.”소규모의 병사들과 소채은은 장갑차에 몸을 싣고 함께 왕궁으로 향했다.서울은 지금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대낮처럼 밝았다.하늘에서는 서요산의 검객과 희랍 신명의 치열한
희랍 신령이 비행기 앞에 다다랐을 때 문 씨 세가는 이미 공항을 빈틈없이 포위하고 있었지만 솟아오르는 거대한 현빙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문 씨 세가 병사들은 수련자의 무서움을 익히 알고 있었다. 손에 쥔 가벼운 무기로는 수련자의 술법을 결코 깰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기에 상대를 제압할 유일한 수단은 희랍 신전의 신명뿐이었다.기내 문이 열리자 황보웅은 망설임 없이 그대로 기체에서 뛰어내렸다.희랍 신명은 황보웅이 이역인이라는 것을 보고 잠시 멍해졌다.화진의 은둔 고수라도 올 줄 알았던 그는 이역인의 등장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이역인! 제정신이냐? 화진은 우리 세계의 공사판이나 다름없다. 우리 희랍 신전을 돕진 못할망정 감히 우리에게 대적하다니! 곤륜 구역을 우습게 보는 것이냐!” 희랍 신령은 분노하며 외쳤다.황보웅은 황금 전갑을 두르고 위풍이 하늘을 찌를 듯한 희랍 신명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희랍 신전 따위가 감히 뭐라고 곤륜 구역을 대표한단 말이냐. 곤륜 구역에서 진정 무서운 건 삼도 세력이다. 너희 희랍 신전은 그럴 자격조차 없다. 하물며 너는 일개 하찮은 신일 뿐인데 감히 내 앞에서 방자하게 굴다니.”황보웅의 거만한 태도에 희랍 신명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 서울은 말 그대로 희랍 신전 수련자들이 장악하고 있었고 게다가 신명인 자신의 체면을 이토록 짓밟은 자는 지금껏 단 한 명도 없었다.“건방진 놈. 이역인 주제에 죽고 싶어 환장했군.”희랍 신명은 천지 영기를 끌어당겨 강력한 신화를 소환했고 맹렬한 불꽃이 황보웅을 향해 쇄도했다. 이번에 사용한 것은 단순한 술법이 아닌 진짜 신술이었다.평범한 극 신급 절정이라 할지라도 이 신술에는 불타 죽을 터였다. 희랍 신명은 자신의 신술에 대해 절대적인 자신감을 보였다.“죽어라! 네놈이 불타 죽는 모습을 내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겠다.”희랍 신명은 섬뜩하게 웃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희랍 신명의 웃음소리가 갑자기 멎었다. 거대한 현빙이 다시 솟아오
“아가씨, 참여하시려면 빙신전의 명의로 참전하셔야 합니다. 제가 빙신전 수련자의 기운을 부여해 드리겠지만 본래 얼음 속성 수행자가 아니시니 술법 사용은 어려울 겁니다. 아가씨께서는 참전하되 기운을 드러내선 안 됩니다. 이 조건을 받아들이신다면 서울 착륙을 허락하겠습니다. 거절하신다면 저뿐만 아니라 이 전용기의 모든 승무원이 반대할 겁니다. 우리 임무는 아가씨를 서요산까지 무사히 호송하는 것이며 이를 실패한다면 서울이 무사하더라도 저희는 군율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됩니다. 군율이 얼마나 냉정한지 아가씨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황보웅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채은은 그제야 황보웅의 의도를 이해했다.여전히 참전하지 못하게 막으려는 속셈이었지만 서요산까지 직행해 서울이 외적에게 공격당하는 것을 눈뜨고 지켜보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좋아요. 약속드릴게요.”소채은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황보웅은 곧바로 전용기 조종사에게 서울 공항으로 향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그리고 소채은에게 법기 하나를 건네며 막대한 정원을 그녀의 몸속에 주입했다.이제 겉으로 보기엔 소채은도 빙신전 수련자나 다름없었다.스스로 영기를 끌어들이거나 술법을 사용하지만 않는다면 정체가 쉽게 들키지 않을 터였다.전용기는 서울 공항으로 향했다. 하지만 공항은 이미 전장이었다. 문 씨 세가의 병사들이 관제탑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며 수비 병력을 속수무책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지원군이 오지 않는다면 공항 함락은 시간문제였다. 공항은 여러 차례 지원을 요청했으나 현재 서울 각지의 상황이 매우 심각했다. 수많은 중요 거점을 방어해야 했기에 공항을 지원할 병력을 도저히 뺄 수 없는 상황이었다.웅웅!갑자기 수백 장 높이의 맹렬한 불꽃이 공항 관제탑을 향해 몰려들었다.희랍 신전의 신령이 직접 나선 것이었다.맹렬한 불꽃이 밀려오는 것을 본 병사들은 절망에 빠졌다.“경고! 경고! 공항이 곧 함락될 예정입니다. 8823 전용기는 즉시 회항하십시오.”그 와중에도 관제탑 직원들은 끝까지 소채은이
“헐!”황보웅은 깜짝 놀랐다.‘이 여자가 갑자기 무슨 정신나간 소리를 하는 거지?’“채은 아가씨...”“황전주님! 지금 국가는 위기에 처했어요. 서울은 우리의 힘이 절실히 필요합니다!”“당신은 빙신전의 전주님이에요. 실력은 저 아래 서요산 진인보다 훨씬 위죠! 제 느낌으로는 당신 실력은 서울에서 최소 2위 안에 들 거예요!”“제 실력도 약하지 않아요.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테니, 최대한 서울을 지원할 거예요. 동시에 제 자신도 잘 지킬 거고요!”소채은이 황보웅을 똑바로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솔직히 황보웅은 이 말을 듣고 속으로 흐뭇해했다. 자신이 어느 정도 실력인지는 잘 알고 있지만 서요산 진인보다 뛰어나다는 건 인정할 만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2위라는 평가는 과찬이었다.윤구주의 여자에게 이런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지만 황보웅은 임무를 잊지 않았다.“채은 아가씨, 지금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국가 위기에는 누구나 목숨을 걸어야 하지만 누구든 참전할 수 있어도 아가씨님만은 안 됩니다.”“이번 결전의 승패는 오직 구주왕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분만 무사하시면 서울이 함락되더라도 화진에겐 인명 피해뿐이에요. 화진에 가장 많은 건 사람이죠!”“게다가 아가씨님은 실력은 뛰어나지만 전투 경험이 전혀 없어요. 기를 숨기고 내려가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기를 드러내면 그 순간 희랍 신전의 모든 신들이 선생님을 노릴 겁니다.”“제가 그 많은 신들을 상대할 실력은 안 됩니다.”황보웅은 소채은의 요청을 거절했다.결국 황보웅은 외지인이라 서울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윤구주만이 그가 충성하는 대상이었고 소채은을 보호하는 게 그의 임무였다!하지만 소채은은 황보웅의 충격적인 발언에 경악했다.그는 서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 치르든 전혀 상관이 없었다!“당신은 외지인이라 제 심정을 이해할 수 없겠죠.”“제 남자는 화진을 지키는 위대한 영웅이에요! 그가 나라를 지키는 동안, 그의 여자로서 서울이 함락되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있나
“안 돼!”임홍연을 지키던 서요산 진인이 희랍 신전의 의도를 눈치채는 순간이었다.현장에 있던 은용위와 서요산 검객들로는 저 신급절경 대열을 감당해낼 수 없었다. 혼자서는 더더욱 무리였다.“진인님, 제 걱정 말고 싸우세요! 제가 죽으면 9주는 반드시 복수할 거예요!”임홍연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녀는 상복을 벗어던지고 속에 입은 경갑을 드러냈다. 그리고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검을 뽑았다!임홍연은 전쟁이 다가오면 죽음을 각오했지만 진인은 그럴 수 없었다. 그의 임무는 임홍연을 보호하는 것이었다.공적이든 사적이든 진인은 목숨을 걸고라도 임홍연을 지켜야 했다. 그녀는 화진의 중신이자 북방을 책임져야 할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윤구주의 사람이었다. 윤구주는 서요산의 벗이였고 서요산은 결코 그녀를 버릴 수 없었다.“전하, 여기에 머물며 안전을 지키십시오. 함부로 움직이지 마십시오. 전하는 단지 무인이지만, 오는 자들은 모두 신급입니다!”가짜 신이라도 신은 신! 평범한 인간에게는 무적의 존재였다.임홍연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당연히 무의미한 희생을 하진 않을 것이다.만천의 신령들을 바라보며, 서요산 진인은 이를 악물고 신혼을 불살라기로 결심했다! 이것만이 단시간 내에 수많은 신급절경을 막을 방법이었다!확확!진기가 나오면서 태극 팔괘전법을 형성했다. 이는 임정설의 영대와 임홍연를 동시에 보호했다.전투는 일촉즉발에 이르렀다!적어도 50명의 신급절경이 동시에 진법을 공격했다. 각종 신급이 비오듯 진법 위에 쏟아졌다!같은 시각, 소채은이 탄 전용배행기는 서울 상공에 거의 도달해 있었다.두 지점 사이 직선이 가장 짧다! 원래 비행 경로대로라면 반드시 서울 상공을 통과해야 했지만 서울이 문씨가문의 목표로 되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러나 승무원 팀들은 관련 정보를 받지 못했고 서울 상공에 거의 도달해서야 서울 관제탑의 경고를 받았다.“경고! 모든 항공기는 즉시 경로 변경! 서울에 착륙하지 마라! 서울 근접 금지!”이제 와서 경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