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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or: 복덩이
그 글을 본 뒤, 나는 강도준에게 완전히 실망했다.

서로 알고 지낸 지 15년, 연애한 지 10년이었다.

길에서 데려온 강아지라도 그 정도 시간이면 정이 들 텐데, 강도준은 나를 이렇게 대했다.

나는 마음을 바꿨다.

결혼식을 취소하지 않고 도망치기로.

강도준이 결혼식에서 달아날 계획을 세울 때 내 기분을 생각하지 않았듯, 나도 더는 강도준을 배려하지 않을 것이다.

신랑이 식장에서 우스운 꼴을 당하든 말든 상관없었다.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참고 119에 전화를 걸었다.

구급차에 오르자마자 고열로 경련이 일어나면서, 나는 의식을 잃었다.

깨어났을 때 간호사가 말했다.

“미리 신고하셔서 다행이에요. 집에 혼자 계셨으면 고열 경련으로 큰일 날 뻔했어요.”

간호사의 말이 끝나자 강도준에게서 전화가 왔다.

[회사에 일이 생겨서 못 돌아가. 너 혼자 약국 가서 약 좀 사 먹어.]

강도준은 그 말만 남기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안부 한마디도 없었다.

강도준이 감기만 걸려도 나는 옆을 떠나지 않았다.

강씨 집안에 사고가 난 뒤 악몽에 시달렸을 때, 나는 밤새워 강도준 곁을 지켰다.

내가 은혜를 갚으라고 요구하는 건 아니었다.

강도준에게 잘해 준 일로 보상을 바란 적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고열로 입원했는데, 강도준은 생리통을 앓는 윤영미 곁만 지켰다.

참 대단한 인간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쥐고 강도준의 라이벌 차민혁에게 연락했다.

“차 대표님, 예전부터 제가 가진 강율그룹 지분에 관심이 있으셨죠? 팔겠습니다.”

...

이틀을 입원한 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웨딩 스튜디오에서 전화가 왔다.

[고객님, 최근 닷새 중 어느 날 예비신랑분과 촬영 가능하실까요? 예식이 이제 20일 남짓 남았어요. 지금 안 찍으시면 결혼식 전에 사진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예비신랑에게 물어보고 다시 연락을 드릴게요.”

나는 강도준에게 전화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어 메시지도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결국 나는 회사로 찾아갔다.

비서실 직원이 말했다.

“오늘 윤영미 실장님이 입사해서요. 대표님이 축하한다고 전 직원 데리고 호텔로 가셨어요.”

나는 호텔 이름을 물어본 뒤 그곳으로 갔다.

내가 강도준의 수석비서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강율그룹은 안팎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입사 축하 같은 것은 꿈도 못 꿨다.

그때는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하루에 두 끼 먹으면 다행이었고, 5시간 자는 날도 드물었다.

윤영미의 입사 축하 자리는 내 약혼식보다 화려했다.

연회장 안에는 잔 부딪히는 소리와 웃음이 가득했다.

내가 들어서자마자 강도준이 달려와 내 팔을 잡고 밖으로 끌어냈다.

“오늘은 형수님 입사 축하 자리야. 여기 와서 소란 피우지 마. 형수님 기분 상하게 하지 말고.”

“영미 언니가 네 수석비서가 되면 나는?”

참으려 했지만, 말끝에는 울음이 묻어나왔다.

내가 아파 병원에 있을 때 강도준은 오지도 않았다. 그저 휴가를 줄 테니 쉬라고만 했다.

오늘 회사에 오지 않았다면, 내 자리를 윤영미에게 줬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강도준이 이미 충분히 잔인하다고 생각할 때마다, 강도준은 더 깊이 찔렀다.

강도준은 휴지를 건넸다.

“울지 마. 너도 나하고 여기까지 오느라 많이 힘들었잖아. 그래서 쉬게 해 주려는 거야.”

“너는 지방대 컴퓨터공학과 출신이잖아. 형수님은 명문대 경영학 전공이고 일도 맞아. 수석비서는 형수님 더 적합해. 넌 앞으로 내 아내로 편하게 살면 돼.”

이제는 내 학력까지 부족하다고 했다.

내가 강도준을 따라 거래처를 돌고, 접대 자리에서 술을 마시다 위출혈로 쓰러졌을 때는 왜 학력을 따지지 않았을까?

내가 말이 없자, 강도준은 또 내가 따질 거라 생각했는지 얼굴에 짜증을 드러냈다.

“너...”

“좀 있다 바로 사직 처리할게.”

나는 주먹을 쥐면서 가슴의 쓰라림과 분노를 눌렀다.

강도준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그래.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 널 해치려는 게 아니야. 할 말 없으면 가.”

윤영미가 안에서 강도준을 찾고 있어서 강도준은 돌아가려고 했다.

나는 강도준의 소매를 붙잡았다.

“웨딩 촬영 쪽에서 이번 주 안에 시간 되는지 물어봤어.”

“출장 가야 해서 시간 없어.”

“알았어.”

...

호텔을 나오자마자 나는 결혼식 대행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결혼식 당일 대형 화면에 띄울 사진이랑 영상을 바꾸고 싶어요.”

나는 강도준과 윤영미가 바람피우던 영상을 정리해 예식 업체에 보냈다.

강도준과 윤영미가 부끄러움을 모른다면, 나도 더는 지켜 줄 이유가 없었다.

강도준은 출장이라 시간이 없다더니, 그 뒤 일주일 동안 윤영미를 데리고 해외로 오로라를 보러 갔다.

두 사람은 오로라 아래서 키스를 했고,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겠다는 아름다운 약속까지 했다고 했다.

일주일 뒤.

나는 강도준에게 전화했다.

“이제 웨딩드레스랑 예복 피팅해야 해.”

“해외 거래처랑 협의해야 해서 못 돌아가. 형수님이 너보다 보는 눈도 좋고 체형도 비슷하니까, 형수님이 대신 몇 벌 입어 보고 골라서 가져가게 할게.”

언제나처럼 강도준은 내 의견을 묻지 않고 결정을 끝냈다.

이미 마음이 식어버린 나는 아무 감정도 일지 않았다.

그저 알겠다고 했다.

윤영미는 웨딩드레스를 여러 벌 입어 보았다. 강도준과 함께 웨딩 사진도 찍어 내게 보냈다.

[결혼식에 웨딩 사진이 없으면 이상하잖아. 너랑 도준이는 시간 없다길래 내가 도와줬어. 나중에 AI로 얼굴만 바꾸면 돼.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나는 사진을 보았다.

강도준은 나와 키스 컷을 찍을 때 결벽증을 핑계 삼았지만, 윤영미와는 달랐다.

두 사람의 입술이 실제 닿지는 않았어도, 거의 입을 맞춘 거나 다름없는 사진이었다.

나는 핸드폰 화면을 끄고 막 들어온 포장이사업체 직원에게 말했다.

“여자 옷이랑 개인 물건만 전부 챙겨 주세요. 나머지는 그대로 두셔도 됩니다.”

내 물건을 모두 정리한 뒤 신혼집을 나왔다.

그다음 강도준의 라이벌을 만나 내가 가진 강율그룹 지분을 전부 팔았다.

...

결혼식 전날에야 강도준은 돌아왔다. 곁에는 여전히 윤영미를 데리고.

두 사람은 내 웨딩드레스를 가져왔다.

윤영미는 자신이 들러리를 하겠다고 했고, 들러리 드레스까지 준비해 왔다.

그리고 빨리 입어 보자며 나를 재촉했다.

자신도 함께 갈아입겠다고 했다.

윤영미가 골라 준 드레스는 실크 천 한 장을 대충 두른 듯, 가릴 곳만 겨우 가린 디자인이었다.

누가 봐도 고급 드레스라기보다는 유흥업소 무대의상에 가까웠다.

반면 윤영미는 고급 맞춤 웨딩드레스를 입고 머리에 다이아 티아라까지 얹었다.

누가 봐도 윤영미가 신부 같았다.

“신부 예쁘네.”

강도준은 그렇게 말했지만, 시선은 내게 오래 머물지 않았다.

심지어 계속 윤영미를 보며 웃었다.

한 달 만에 나를 본 강도준은 20분도 함께 있지 못하고 윤영미를 데리고 나갔다.

떠나기 전 강도준은 당부했다.

“내일 호텔로 데리러 갈 거야. 네 친구들이랑 친척들한테 너무 심한 신랑 괴롭히기 게임은 하지 말라고 해. 난 그런 거 싫어.”

“알았어.”

강도준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이미 내 친지와 친구들에게 결혼식이 취소됐다고 알렸다.

내일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다.

강도준과 윤영미가 떠난 뒤, 내가 강율그룹에 연결해 줬던 주요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가 새 회사로 옮겼습니다. 더 좋은 조건을 드릴 수 있으니, 축하 겸 새 회사와의 협업도 검토해 주세요.”

그날 밤 나는 잠들지 못했다. 눈을 뜬 채 새벽을 맞았다.

‘결혼식이 시작된 뒤 강도준이 내가 도망쳤다는 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윤영미가 자신이 상간녀라는 영상을 보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

다음 날 아침, 나는 캐리어를 끌고 기차역으로 갔다.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올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막 열차에 올랐다.

그때 수많은 전화와 메시지가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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Último capítulo

  • 10년 사랑의 끝   제9화

    나는 아무 표정도 없이 강도준을 바라보았다.“길게 말할 필요 없어. 내가 너를 떠난 이유는 하나야. 더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나는 걸음을 옮기려 했다. 강도준이 내 팔을 붙잡았다.남자의 눈은 잔뜩 붉어진 채 슬픔과 분노가 뒤엉켜 있었다.“너만 피해자인 것처럼 굴지 마. 우리 10년이 이렇게 된 데 네 잘못은 하나도 없어?”나는 원래 설명을 좋아하지 않는다.하지만 분명히 말하지 않으면, 우리 사이에는 끝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나도 생각해 봤어.”“우리는 갈수록 멀어졌어. 나는 우리 관계를 붙잡으려고 정말 애썼어. 그래도 네 태도는 점점 차가워졌지.”“네가 윤영미와 바람피우고 결혼식에서 도망치려 한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무너져서 울었어.”“거래처 대표들이 술자리에서 하던 말처럼, 우리가 너무 오래 만나 신선함이 없어져서 네가 바람을 피운 걸까 생각했어.”“직원들이 뒤에서 하던 말처럼, 회사 안에서 내 영향력이 네가 가진 것보다 커져서 네가 나를 불편하게 여긴 걸까 생각도 했어.”“아니면 어릴 때 윤영미를 좋아했고, 그 마음이 미완의 후회로 남아 끝내 놓지 못한 걸까도 생각했어.”“그런데 오래 생각한 끝에... 더는 이유를 파고들고 싶지 않아졌어.”“강도준, 바람을 피운 사람은 너야. 나를 아프게 한 사람도 너고.” “잘못한 사람이 반성해야지, 왜 내가 네 잘못의 이유를 찾아야 해?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은 건 내 잘못이 아니야.”강도준은 나를 바라보며 잔뜩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난 후회하고 있어.”“네가 저지른 일의 대가를 내가 감당할 필요는 없어.”나는 강도준을 밀어내고 집으로 들어갔다.강도준은 그래도 떠나지 않았다. 어디서 내 새 연락처를 알아냈는지 문자를 보냈다.[네 부모가 아들만 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람 취급도 안 했다고 했잖아. 우리는 15년을 알았고, 10년을 사랑했어.] [나는 네 유일한 가족이었잖아. 유일한 가족도 버릴 거야?]나는 답장을 보냈다.[진짜 가족도 버렸는데, 넌 더 말할 것도

  • 10년 사랑의 끝   제8화

    나는 가방으로 강도준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강도준을 밀어내고 백이준 앞을 막아섰다.“그만해, 강도준. 지금 뭐 하는 짓이야?”15년 동안 알고 지낸 강도준은 늘 절제되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이렇게 이성을 잃은 모습은 처음이었다.강도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악을 썼다.“저 자식이 왜 너한테 입을 맞추는 건데? 너랑 저 자식 무슨 사이야?”“내 일은 너와 상관없어.”“나는 네 남자친구야!”“결혼식 날부터 아니었어!”강도준은 화를 내려다가 억지로 참았다.“아직도 윤영미 때문에 화난 거야? 오늘 사람을 보내서 내 집에서 윤영미 짐을 전부 빼게 했어. 내가 준 카드도 회수했어. 앞으로 윤영미와 나는 아무 관계도 없어.”그러니까 오늘 아침 나를 찾아왔을 때까지도 윤영미는 강도준의 카드를 쓰고, 강도준의 집에 살고 있었다는 뜻이었다.강도준은 다른 여자와 얽혀 있으면서도 나를 사랑한다고 했고, 돌아가 결혼하자고 했다.강도준은 자신이 역겹다고 느끼지 않는 걸까?나는 눈살을 찌푸렸다.“우리는 이미 헤어졌어. 네가 다른 여자와 어떻게 지내든 내게 설명할 필요 없어.”“무슨 헤어져? 난 동의한 적 없어. 가인아, 내가 이렇게 사과까지 했잖아...”강도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 있던 백이준이 살짝 숨을 삼켰다.나는 더 이상 강도준을 상대할 마음이 사라져서 백이준을 부축해 집으로 들어갔다.강도준도 따라 들어오려 했지만, 문을 닫고 밖에 세워 두었다.집에 들어와 약상자를 꺼내서 백이준의 입가 상처를 닦았다.“누나, 너무 아파요.” 백이준은 눈물 고인 눈으로 어리광을 부렸다.나는 면봉을 잡고 백이준의 입가를 약간 세게 눌렀다.“엄살 부리지 마.”전국 격투기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이 강도준의 주먹 한 방에 바닥에 쓰러져 못 일어날 리 없었다.백이준이 조용히 중얼거렸다.“그 바람난 쓰레기가 누나 전 남자친구예요? 누나한테 하나도 안 어울려요. 차라리 체스터 같은 바람둥이가 더 나아요.”탁!나는 약상자 뚜껑을 닫았다.“

  • 10년 사랑의 끝   제7화

    나는 몸을 피했다.“우리는 끝났어.”“우리 10년이야. 네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포기해? 너 지금 화가 난 거잖아.” “내가 윤영미와 선을 긋겠다는 말을 못 믿어서 그런 거지? 내가 증명해 보일게.”강도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달려 나갔다. 내가 더는 강도준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피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정말 자신이 넘치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도준이 떠나자마자, 내 고객 체스터가 커다란 빨간 장미 다발을 안고 나를 데리러 왔다.“로즈! 서프라이즈! 오늘은 제가 회사를 대표해서 당신과 계약을 논의합니다. 기쁘죠? 꽃은 당신에게 드릴게요. 로즈가 매일 웃었으면 좋겠어요.”체스터는 혼혈의 잘생긴 남자였다. M국 현지에서도 유명한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다.한 달 전 우연히 알게 된 뒤, 체스터는 나를 운명의 여자라 부르며 공개적으로 구애하기 시작했다.나는 장미를 받았다.“고마워요. 그럼 오늘 협상에서는 더 좋은 가격을 줄 건가요?”“로즈가 제 여자친구가 된다면요.”“그렇게 되면 적당한 가격이 아니라 물건을 전부 공짜로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하하, 농담입니다. 로즈는 역시 유머가 있어요. 그런데 정말 원한다면 이번 물량 정도야 나한테 큰일도 아니죠.”나는 웃었다.“그럼 맞춰 보세요. 제 자산으로 그 물량을 몇 번이나 살 수 있을까요?”체스터가 눈썹을 세웠다.“제 눈에 로즈는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입니다.”“체스터 씨도 제 눈에는 아주 훌륭한 협력사 대표예요. 이번 물량 가격을 충분히 낮춰 준다면, 귀사의 공급 비중을 더 늘리는 방안도 검토하겠습니다.”체스터가 크게 웃었다.“로즈, 당신은 정말 뛰어나고 매력적인 여자예요. 연인이 될 수 없다 해도, 친구가 되는 것만으로도 행운입니다.”체스터는 나를 식사에 초대했다. 식사가 끝난 뒤 공급 계약서에 서명했다. 공급 가격은 최저 수준으로 맞춰 주었다.체스터가 이렇게 성의를 보였으니, 저녁에 새로 산 요트로 놀러 오라는 초대도 시원하게 받아들였다.

  • 10년 사랑의 끝   제6화

    체육 전공답게 백이준의 몸은 확실히 잘 다듬어져 있었다.하지만 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이준아, 너...”나는 연하를 만날 생각이 없었다. 나보다 일곱 살 어린 남자에게도 관심이 없었다.“미안해요, 누나. 제가 타월을 안 챙겨서 귀찮게 했죠? 저 쫓아내지만 말아 주세요. 아버지가 알면 저 혼나요.”백이준은 고개를 숙인 채 풀이 죽은 얼굴을 했다.그런 모습을 보니 거절의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골치가 아파진 나는 미간을 문지르면서 거실로 돌아왔다.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강도준과 윤영미 얘기로 흘렀다.[너는 모를 거야. 윤영미가 강도준 수석비서로 들어간 뒤 얼마나 웃긴 일이 많았는지. 본인이 상간녀라 그런가, 회사 여자들을 전부 그런 식으로 봤대.][강도준 밑에서 일하던 여직원들 여럿 잘렸고, 강도준이 여자 고객이랑 협의하면 그 고객한테도 이상한 말을 해서 계약이 깨졌대.][강도준이 결국 윤영미를 해고했어. 둘이 크게 틀어졌대.][강도준은 아직도 널 찾고 있어. 처음엔 좀 찾다가 포기하겠거니 했는데 갈수록 더 심해져.] [다들 말하더라. 강도준은 윤영미랑 장난친 거고, 진짜 좋아한 건 너였던 거 아니냐고.][...]나는 친구의 긴 이야기를 들으며 그저 웃기만 했다. 그러다 다른 화제로 돌렸다.부모님은 예전에 나를 욕하며 말했다. 짖지 않는 개가 더 세게 무는 법이라고. 평소에는 가련한 척하더니 독하게 마음먹으니 누구보다 매정하다고.듣기 나쁜 말이었지만 사실이었다.지난 10년 동안 나는 비참할 만큼 매달렸다. 강도준의 미미한 애정을 얻기 위해 스스로를 낮췄다.강도준이 내 앞에서 윤영미와 애매한 태도를 보이면서 내 자존심을 짓밟아도, 나는 참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결혼식에서 도망친 날부터, 나는 강도준을 향한 모든 사랑을 내려놓았다.친구와 통화를 마친 뒤 전화를 끊었다. 친구의 말은 마음에 오래 남기지 않았다.그런데 반년 넘게 지난 뒤, M국에서 강도준을 마주칠 줄은 몰랐다

  • 10년 사랑의 끝   제5화

    그래도 백이준은 사람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누나, 부담 갖지 마세요. 우리 아버지가 원래 장난기가 많은 분이에요. 앞으로 한 달 동안 저를 가이드이자 같이 놀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백이준은 체육을 전공했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와 탄탄한 근육이 잘 어울리는 밝은 인상의 남자였다.평소에도 ‘누나, 누나’ 하고 불러서 동네 남동생처럼 편했다.백이준은 원래 나를 데리고 한 달 동안 해외여행을 하려고 했지만, 나는 국내를 더 보고 싶었다.어릴 때는 우리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어른이 된 뒤에는 강도준과 일에만 매달렸다. 어떤 도시에 가더라도 업무 때문이었고, 관광지에 들를 시간은 없었다.나는 고운시에 가서 오래된 고분 전시를 보고, 뜨끈한 갈비탕을 먹고 싶었다.주림시에서 매운 전골도 먹고, 밤의 미르담 야경거리를 걸어 보고 싶었다.라온령 산마을도 둘러보고 싶었다. 그곳의 풍경을 보고, 아름다운 정통 의상을 빌려 사진도 찍고 싶었다.강도준은 예전에 수없이 약속했다. 나와 전국을 여행하겠다고.하지만 강도준은 윤영미를 데리고 먼 나라의 오로라까지 보러 갔으면서, 나를 위해 궁담궁 한 번 갈 시간은 내지 않았다.이제는 더 이상 조심스럽게 강도준의 시간을 묻지 않아도 됐다. 백이준은 그날 바로 표를 예매하고 나와 함께 고운시로 향했다.도착하자마자 백이준은 친구 열댓 명을 불렀다.남자 여자가 섞여 있었다. 성격은 제각각이었지만 모두 보기 좋게 빛나는 청춘이었다.젊고 활기찬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누나’, ‘언니’라고 부르자, 기분이 나쁠 수가 없었다.내가 한가롭고 편해진 것과 달리, 강도준 쪽 사정은 엉망이라고 했다.친한 친구가 들뜬 목소리로 영상 통화를 걸어서 이야기를 쏟아냈다.[나 그날 몰래 네 결혼식장에 가서 구경했거든.][강도준이랑 윤영미가 바람피우는 영상하고 사진이 뜨자마자 둘 다 얼굴이 새파래졌어.][둘이 참 웃겨. 좋아하면 그냥 사귀면 되잖아. 누가 뭐라 해?][그런데 강도준은 강율그룹이 제일 힘

  • 10년 사랑의 끝   제4화

    전화와 메시지가 너무 많아서 핸드폰이 잠시 과부하가 걸릴 정도였다.나는 전화는 전부 끊었다. 하지만 문자와 카톡 알림은 계속 울렸다.뜬 메시지의 대부분은 강도준이 보낸 것이었다.[서가인, 너 어디야?][네가 사람 시켜서 화면에 나랑 형수님이 신혼집에 있던 영상, 오로라 아래서 입 맞춘 사진을 띄운 게 무슨 뜻이야? 영상은 언제 찍은 건데?][그날 너 아래에 있었어? 왜 내게 말하지 않았어?][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돌아와. 설명할 수 있어.][또 네가 가진 지분을 왜 차민혁한테 팔았어? 그 지분 때문에 차민혁 지분율이 나보다 1% 높아졌어. 앞으로 회사에서 차민혁 말이 나보다 세질 거라고.] [나랑 차민혁 사이가 안 좋은 거 너도 누구보다 잘 알잖아!][널 탓하려는 게 아니야. 화내는 것도 아니고. 그날 형수님에게 입 맞춘 건 충동이었어.] [우리 10년이잖아. 난 진심으로 너와 결혼하고 싶었어. 너 이 결혼식 준비하느라 오래 애썼잖아. 돌아와서 마무리해 줄 거지?][...]강도준과 나는 15년을 알고 지냈고, 10년을 연애했다.강도준이 이렇게 많은 메시지를 보낸 것은 처음이었다.하지만 나는 몇 개만 대충 읽고 카톡 친구 목록에서 강도준을 삭제했다.강도준은 대체 무슨 자격으로 생각한 걸까? 결혼 전 바람피우고 결혼식에서 도망칠 생각까지 한 남자에게, 내가 아직도 시집가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하다니.내 사랑은 강도준이 반복해서 남긴 상처 속에서 이미 산산이 부서졌다.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헤어지자고 하면 됐다. 결혼하겠다고 해 놓고 도망쳐 나를 식장에서 모욕하려 하지 말았어야 했다. 강도준이 조금이라도 내 처지를 생각했다면, 나도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것이다.핸드폰 소리가 지겨웠다.나는 강도준의 번호를 차단했다. 그러자 윤영미가 전화하기 시작했다. 날파리처럼 정말 귀찮았다.이미 새 유심을 발급해 뒀기에, 나는 낡은 유심을 꺼내 반으로 꺾었다. 카톡 계정도 새로 만들었다.6시간이 조금 지난 뒤 나는 상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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