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10년을 사귀고 나서야 강도준은 나와 결혼하겠다고 했다. 웨딩 촬영을 하던 날, 사진작가가 키스 컷을 몇 장 찍어 보자고 했다. 강도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결벽증이 있다고 말했고, 나를 밀어낸 뒤 혼자 스튜디오를 나가 버렸다. 나는 민망한 얼굴로 스태프들에게 대신 사과했다. 눈이 쏟아지는 날이라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나는 눈에 젖은 길을 밟으며 한 걸음씩 힘겹게 신혼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신혼집 안에서 강도준이 첫사랑을 품에 안고 떨어질 줄 모르고 키스하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 “자기야, 네가 한마디만 하면 난 언제든 결혼식장에서 도망칠 수 있어.” 오랜 세월 붙잡고 있던 마음이 그 순간 우스갯거리가 됐다. 한참을 울고 난 뒤, 나는 강도준보다 먼저 결혼식에서 사라지기로 했다. 훗날 지인들 사이에 소문이 돌았다. 강씨 집안 막내가 전 약혼녀를 찾겠다며 온 세상을 뒤지고 다닌다고. 돌아와 달라고 빌기 위해서라고.
View More나는 아무 표정도 없이 강도준을 바라보았다.“길게 말할 필요 없어. 내가 너를 떠난 이유는 하나야. 더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나는 걸음을 옮기려 했다. 강도준이 내 팔을 붙잡았다.남자의 눈은 잔뜩 붉어진 채 슬픔과 분노가 뒤엉켜 있었다.“너만 피해자인 것처럼 굴지 마. 우리 10년이 이렇게 된 데 네 잘못은 하나도 없어?”나는 원래 설명을 좋아하지 않는다.하지만 분명히 말하지 않으면, 우리 사이에는 끝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나도 생각해 봤어.”“우리는 갈수록 멀어졌어. 나는 우리 관계를 붙잡으려고 정말 애썼어. 그래도 네 태도는 점점 차가워졌지.”“네가 윤영미와 바람피우고 결혼식에서 도망치려 한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무너져서 울었어.”“거래처 대표들이 술자리에서 하던 말처럼, 우리가 너무 오래 만나 신선함이 없어져서 네가 바람을 피운 걸까 생각했어.”“직원들이 뒤에서 하던 말처럼, 회사 안에서 내 영향력이 네가 가진 것보다 커져서 네가 나를 불편하게 여긴 걸까 생각도 했어.”“아니면 어릴 때 윤영미를 좋아했고, 그 마음이 미완의 후회로 남아 끝내 놓지 못한 걸까도 생각했어.”“그런데 오래 생각한 끝에... 더는 이유를 파고들고 싶지 않아졌어.”“강도준, 바람을 피운 사람은 너야. 나를 아프게 한 사람도 너고.” “잘못한 사람이 반성해야지, 왜 내가 네 잘못의 이유를 찾아야 해?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은 건 내 잘못이 아니야.”강도준은 나를 바라보며 잔뜩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난 후회하고 있어.”“네가 저지른 일의 대가를 내가 감당할 필요는 없어.”나는 강도준을 밀어내고 집으로 들어갔다.강도준은 그래도 떠나지 않았다. 어디서 내 새 연락처를 알아냈는지 문자를 보냈다.[네 부모가 아들만 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람 취급도 안 했다고 했잖아. 우리는 15년을 알았고, 10년을 사랑했어.] [나는 네 유일한 가족이었잖아. 유일한 가족도 버릴 거야?]나는 답장을 보냈다.[진짜 가족도 버렸는데, 넌 더 말할 것도
나는 가방으로 강도준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강도준을 밀어내고 백이준 앞을 막아섰다.“그만해, 강도준. 지금 뭐 하는 짓이야?”15년 동안 알고 지낸 강도준은 늘 절제되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이렇게 이성을 잃은 모습은 처음이었다.강도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악을 썼다.“저 자식이 왜 너한테 입을 맞추는 건데? 너랑 저 자식 무슨 사이야?”“내 일은 너와 상관없어.”“나는 네 남자친구야!”“결혼식 날부터 아니었어!”강도준은 화를 내려다가 억지로 참았다.“아직도 윤영미 때문에 화난 거야? 오늘 사람을 보내서 내 집에서 윤영미 짐을 전부 빼게 했어. 내가 준 카드도 회수했어. 앞으로 윤영미와 나는 아무 관계도 없어.”그러니까 오늘 아침 나를 찾아왔을 때까지도 윤영미는 강도준의 카드를 쓰고, 강도준의 집에 살고 있었다는 뜻이었다.강도준은 다른 여자와 얽혀 있으면서도 나를 사랑한다고 했고, 돌아가 결혼하자고 했다.강도준은 자신이 역겹다고 느끼지 않는 걸까?나는 눈살을 찌푸렸다.“우리는 이미 헤어졌어. 네가 다른 여자와 어떻게 지내든 내게 설명할 필요 없어.”“무슨 헤어져? 난 동의한 적 없어. 가인아, 내가 이렇게 사과까지 했잖아...”강도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 있던 백이준이 살짝 숨을 삼켰다.나는 더 이상 강도준을 상대할 마음이 사라져서 백이준을 부축해 집으로 들어갔다.강도준도 따라 들어오려 했지만, 문을 닫고 밖에 세워 두었다.집에 들어와 약상자를 꺼내서 백이준의 입가 상처를 닦았다.“누나, 너무 아파요.” 백이준은 눈물 고인 눈으로 어리광을 부렸다.나는 면봉을 잡고 백이준의 입가를 약간 세게 눌렀다.“엄살 부리지 마.”전국 격투기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이 강도준의 주먹 한 방에 바닥에 쓰러져 못 일어날 리 없었다.백이준이 조용히 중얼거렸다.“그 바람난 쓰레기가 누나 전 남자친구예요? 누나한테 하나도 안 어울려요. 차라리 체스터 같은 바람둥이가 더 나아요.”탁!나는 약상자 뚜껑을 닫았다.“
나는 몸을 피했다.“우리는 끝났어.”“우리 10년이야. 네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포기해? 너 지금 화가 난 거잖아.” “내가 윤영미와 선을 긋겠다는 말을 못 믿어서 그런 거지? 내가 증명해 보일게.”강도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달려 나갔다. 내가 더는 강도준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피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정말 자신이 넘치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도준이 떠나자마자, 내 고객 체스터가 커다란 빨간 장미 다발을 안고 나를 데리러 왔다.“로즈! 서프라이즈! 오늘은 제가 회사를 대표해서 당신과 계약을 논의합니다. 기쁘죠? 꽃은 당신에게 드릴게요. 로즈가 매일 웃었으면 좋겠어요.”체스터는 혼혈의 잘생긴 남자였다. M국 현지에서도 유명한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다.한 달 전 우연히 알게 된 뒤, 체스터는 나를 운명의 여자라 부르며 공개적으로 구애하기 시작했다.나는 장미를 받았다.“고마워요. 그럼 오늘 협상에서는 더 좋은 가격을 줄 건가요?”“로즈가 제 여자친구가 된다면요.”“그렇게 되면 적당한 가격이 아니라 물건을 전부 공짜로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하하, 농담입니다. 로즈는 역시 유머가 있어요. 그런데 정말 원한다면 이번 물량 정도야 나한테 큰일도 아니죠.”나는 웃었다.“그럼 맞춰 보세요. 제 자산으로 그 물량을 몇 번이나 살 수 있을까요?”체스터가 눈썹을 세웠다.“제 눈에 로즈는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입니다.”“체스터 씨도 제 눈에는 아주 훌륭한 협력사 대표예요. 이번 물량 가격을 충분히 낮춰 준다면, 귀사의 공급 비중을 더 늘리는 방안도 검토하겠습니다.”체스터가 크게 웃었다.“로즈, 당신은 정말 뛰어나고 매력적인 여자예요. 연인이 될 수 없다 해도, 친구가 되는 것만으로도 행운입니다.”체스터는 나를 식사에 초대했다. 식사가 끝난 뒤 공급 계약서에 서명했다. 공급 가격은 최저 수준으로 맞춰 주었다.체스터가 이렇게 성의를 보였으니, 저녁에 새로 산 요트로 놀러 오라는 초대도 시원하게 받아들였다.
체육 전공답게 백이준의 몸은 확실히 잘 다듬어져 있었다.하지만 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이준아, 너...”나는 연하를 만날 생각이 없었다. 나보다 일곱 살 어린 남자에게도 관심이 없었다.“미안해요, 누나. 제가 타월을 안 챙겨서 귀찮게 했죠? 저 쫓아내지만 말아 주세요. 아버지가 알면 저 혼나요.”백이준은 고개를 숙인 채 풀이 죽은 얼굴을 했다.그런 모습을 보니 거절의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골치가 아파진 나는 미간을 문지르면서 거실로 돌아왔다.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강도준과 윤영미 얘기로 흘렀다.[너는 모를 거야. 윤영미가 강도준 수석비서로 들어간 뒤 얼마나 웃긴 일이 많았는지. 본인이 상간녀라 그런가, 회사 여자들을 전부 그런 식으로 봤대.][강도준 밑에서 일하던 여직원들 여럿 잘렸고, 강도준이 여자 고객이랑 협의하면 그 고객한테도 이상한 말을 해서 계약이 깨졌대.][강도준이 결국 윤영미를 해고했어. 둘이 크게 틀어졌대.][강도준은 아직도 널 찾고 있어. 처음엔 좀 찾다가 포기하겠거니 했는데 갈수록 더 심해져.] [다들 말하더라. 강도준은 윤영미랑 장난친 거고, 진짜 좋아한 건 너였던 거 아니냐고.][...]나는 친구의 긴 이야기를 들으며 그저 웃기만 했다. 그러다 다른 화제로 돌렸다.부모님은 예전에 나를 욕하며 말했다. 짖지 않는 개가 더 세게 무는 법이라고. 평소에는 가련한 척하더니 독하게 마음먹으니 누구보다 매정하다고.듣기 나쁜 말이었지만 사실이었다.지난 10년 동안 나는 비참할 만큼 매달렸다. 강도준의 미미한 애정을 얻기 위해 스스로를 낮췄다.강도준이 내 앞에서 윤영미와 애매한 태도를 보이면서 내 자존심을 짓밟아도, 나는 참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결혼식에서 도망친 날부터, 나는 강도준을 향한 모든 사랑을 내려놓았다.친구와 통화를 마친 뒤 전화를 끊었다. 친구의 말은 마음에 오래 남기지 않았다.그런데 반년 넘게 지난 뒤, M국에서 강도준을 마주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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