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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의 재회에 흔들리지 않기를

너와의 재회에 흔들리지 않기를

By:  노른자 주먹밥Completed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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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야, 너희 언니 이미 형부랑 약혼했으니까 앞으로 훼방 놓지 마. 그리고 엄마, 아빠가 항공권 예매해 놨어. 해외에서 몇 년 살다가 너희 언니 결혼하고 나면 그때 다시 돌아와.” 다 너를 위해서라는 듯한 표정을 짓는 부모님의 모습에 안윤서는 그제야 자신이 회귀하였음을 실감했다. 그렇다. 안윤서는 부모님 때문에 억지로 해외로 떠나 송규민을 포기해야만 했던 그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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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안윤서는 지난 생에도 부모님의 설득에 못 이겨 해외로 떠났었다. 하지만 송규민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어 송규민이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몇 번이나 설명했었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제발 진실을 얘기해 달라고, 언니가 자신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두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었다. 그러나 송규민은 오히려 그것 때문에 안윤서를 더 혐오하게 되었다.

심지어 안윤서가 교통사고를 당해 죽어가고 있을 때 송규민은 자신에게 전화를 건 간호사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또 수작을 부릴 생각인가 본데 안윤서에게 전해주세요. 저랑 혜원이 결혼식을 망치지 말라고요.”

결국 안윤서는 수술대 위에서 숨을 거두었다. 안윤서는 죽기 전 TV 속 전 세계에 생중계되던 송규민과 안혜원의 성대한 결혼식을, 송규민이 다정하게 안혜원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고 두 사람이 모든 이들에게 축복받는 모습을 지켜봤다.

하늘은 안윤서에게 다시 한번 살아갈 기회를 주었다. 그래서 안윤서는 이번 생만큼은 절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알겠어요. 갈게요.”

안윤서는 한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윤서가 흔쾌히 수락하자 안명준과 박정순은 깜짝 놀랐다.

“윤서야, 정말 떠날 생각인 거지? 설마 너희 언니랑 형부 사이를 또 방해하려는 건 아니지?”

방해?

우스운 얘기였다. 송규민은 처음부터 안윤서의 것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부모님은 거짓말을 지어내 송규민을 안윤서의 언니인 안혜원과 맺어주려고 했다.

20여 년 전, 안혜원이 백혈병 판정을 받자 안명준과 박정순은 곧바로 둘째를 가지려고 했고 그렇게 안윤서가 태어났다.

안윤서의 제대혈은 안혜원의 목숨을 구했으나 정작 안윤서 본인은 평생 차별당했다.

안혜원이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부모님은 안혜원을 매우 편애했고,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안윤서는 늘 모든 걸 언니에게 양보해야 했다. 방도, 친구도, 결승 진출 자격까지 말이다.

안윤서가 유일하게 양보할 수 없었던 건 첫눈에 반한 송씨 가문의 후계자 송규민이었다.

송규민은 남 부러울 것 하나 없던 재벌가 자제였는데 생일 파티가 있던 날 교통사고를 당해 시력을 잃었고, 그 탓에 가족들에게 버림받아 도심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별장에서 지내야 했다.

당시 안윤서는 가족들 몰래 키를 훔쳤고, 매일 방과 후 담을 넘어 송규민을 만나러 갔다.

“앞으로 매일 올게.”

어둠 속에서 들려오던 소녀의 목소리가 송규민의 유일한 구원이었다.

안윤서는 단 한 번도 송규민에게 자신의 진짜 이름을 알려준 적이 없었다. 대신 송규민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며 말했다.

“지아라고 불러줘.”

송규민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서툴게 안윤서의 머리카락을 빗겨주고, 안윤서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하고, 비가 쏟아지는 날 안윤서의 차가운 손을 자신의 가슴 위에 놓았다.

수술받기 전날, 송규민은 안윤서의 손끝에 입을 맞추며 맹세했다.

“시력을 회복하게 된다면 너를 가장 먼저 보고 싶어. 그때가 되면 우리 사귀자. 어때?”

수술은 무려 12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송규민이 깨어나서 제일 처음 본 사람은 안윤서가 아니라 안혜원이었다.

안윤서의 부모님이 안혜원도 송규민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안윤서가 마시는 물에 몰래 수면제를 타 안윤서가 하루 종일 잠을 자게 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안명준과 박정순은 그동안 송규민의 곁을 지켰던 사람이 안혜원이라고 거짓말을 해서 안혜원이 안윤서의 자리를 차지하게 했다.

송규민은 그들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고 결국 안혜원과 알콩달콩 연애하다가 약혼까지 했다.

3년 동안 안윤서는 수도 없이 설명했었다. 송규민의 옆에 있어 줬던 건 자신이고, 송규민이 사랑해야 할 사람도 자신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송규민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안윤서가 죽을 때까지 말이다.

안윤서는 자신의 친부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솔직히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그동안 계속 저를 해외로 보내려고 하셨잖아요. 제가 가겠다는데 왜 안 믿으시는 거예요? 너무 이상한 거 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니야. 네가 순순히 떠나준다면 당연히 좋지. 보름 뒤 출국하면 되니까 그동안 마무리할 것 있으면 다 처리하고 가.”

안명준과 박정순은 안윤서가 마음을 바꿀까 봐 걱정이 됐는지 서둘러 몇 마디 덧붙인 뒤 밝은 표정으로 떠났다.

안윤서는 몸을 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자 휴대폰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송규민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저녁 8시에 베일 호텔 1808호로 와.]

메시지를 본 안윤서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지난 생에 그 메시지를 받았을 때는 신났었다. 송규민이 드디어 자신의 말을 들어주려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에 도착해 보니 송규민은 안혜원과 관계를 가지는 모습을 보여줘서 안윤서가 마음을 접게 만들려는 생각이었다.

당시 충격을 받고 울음을 터뜨린 안윤서에게 송규민은 냉랭하게 말했다.

“봤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오직 혜원이뿐이야.”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웃긴 일이었다.

안윤서는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답장을 보냈다.

[알겠어.]

저녁 8시, 안윤서는 시간 맞춰 호텔에 도착했다.

1808호는 문이 열려 있었다. 방 안에서 송규민은 안혜원을 안고 있었고, 두 사람은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주위에 이미 쓴 콘돔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방 안에서는 야릇한 분위기가 흘렀다.

문 앞에 서 있는 안윤서를 발견한 안혜원은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송규민은 고개를 숙이고 안혜원의 쇄골에 입을 맞추며 부드럽고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서워하지 마. 일부러 부른 거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너라는 걸 보여주면 앞으로 나를 넘보지 않을 거야. 내가 형부라는 걸 확실히 각인시켜 줘야지.”

과거로 회귀해 또다시 그 광경을 보게 되니 마음이 난도질당한 것처럼 괴로웠다.

그러나 이제는 익숙해져야 했다.

송규민은 곧 안윤서의 형부가 될 테니 말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안윤서가 손톱자국이 가득 남을 정도로 꽉 움켜쥔 주먹을 천천히 풀었을 때 송규민이 옷을 챙겨입고 안윤서의 앞에 섰다.

“봤지? 내가 좋아하는 건 혜원이야. 똑똑히 기억해 둬. 너는 내 처제고 나는 네 형부야. 그러니까 앞으로 절대 그런 파렴치한 짓은 하지 마!”

안윤서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응. 다 봤어. 그리고 다 이해했어.”

송규민은 움찔했다. 안윤서가 이렇게 태연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송규민은 침대맡에 놓여있던 청첩장을 건네며 말했다.

“다음 달에 나랑 혜원이 결혼할 거야. 우리 결혼식에 참석해줬으면 좋겠어.”

안윤서는 청첩장을 받았다.

“그래. 시간 맞춰 갈게. 둘이 행복하게 살길 바랄게.”

송규민은 안윤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상하게도 오늘 안윤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고분고분했다.

그러나 송규민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안혜원의 손을 잡고 호텔을 나섰다. 안윤서도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그들을 뒤따랐다.

안윤서가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갑자기 옆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그리고 곧 머리 위에서 커다란 간판이 떨어져 내렸다.

송규민은 본능적으로 안혜원을 감싸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나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홀로 남은 안윤서는 미처 피하지 못해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쓰러졌다.

극심한 통증이 밀려오며 안윤서의 신경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안윤서는 너무 아파 피 웅덩이 속에서 몸을 덜덜 떨었다.

차오른 눈물 때문에 흐려진 시야 속에서 안윤서는 송규민이 안혜원을 감싸는 걸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오로지 안윤서만 사랑했던 송규민은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안윤서는 송규민을 놓아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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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안윤서는 지난 생에도 부모님의 설득에 못 이겨 해외로 떠났었다. 하지만 송규민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어 송규민이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몇 번이나 설명했었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제발 진실을 얘기해 달라고, 언니가 자신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두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었다. 그러나 송규민은 오히려 그것 때문에 안윤서를 더 혐오하게 되었다.심지어 안윤서가 교통사고를 당해 죽어가고 있을 때 송규민은 자신에게 전화를 건 간호사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또 수작을 부릴 생각인가 본데 안윤서에게 전해주세요. 저랑 혜원이 결혼식을 망치지 말라고요.”결국 안윤서는 수술대 위에서 숨을 거두었다. 안윤서는 죽기 전 TV 속 전 세계에 생중계되던 송규민과 안혜원의 성대한 결혼식을, 송규민이 다정하게 안혜원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고 두 사람이 모든 이들에게 축복받는 모습을 지켜봤다.하늘은 안윤서에게 다시 한번 살아갈 기회를 주었다. 그래서 안윤서는 이번 생만큼은 절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알겠어요. 갈게요.”안윤서는 한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안윤서가 흔쾌히 수락하자 안명준과 박정순은 깜짝 놀랐다.“윤서야, 정말 떠날 생각인 거지? 설마 너희 언니랑 형부 사이를 또 방해하려는 건 아니지?”방해?우스운 얘기였다. 송규민은 처음부터 안윤서의 것이었는데 말이다.그러나 부모님은 거짓말을 지어내 송규민을 안윤서의 언니인 안혜원과 맺어주려고 했다.20여 년 전, 안혜원이 백혈병 판정을 받자 안명준과 박정순은 곧바로 둘째를 가지려고 했고 그렇게 안윤서가 태어났다.안윤서의 제대혈은 안혜원의 목숨을 구했으나 정작 안윤서 본인은 평생 차별당했다.안혜원이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부모님은 안혜원을 매우 편애했고,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안윤서는 늘 모든 걸 언니에게 양보해야 했다. 방도, 친구도, 결승 진출 자격까지 말이다.안윤서가 유일하게 양보할 수 없었던 건 첫눈에 반한 송씨 가문의 후계자 송규민이었다.송규민은 남 부러울 것 하나 없던 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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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다시 눈을 떴을 때 안윤서는 자신이 병원에 있다는 걸 발견했다.수액을 교체하던 간호사는 안윤서가 깨어난 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이틀 동안이나 의식이 없었는데 드디어 깨셨네요. 컨디션은 어떠세요? 언니분께서는 그날 환자분을 병원으로 데려다준 뒤 많이 놀랐는지 기절하셨어요. 환자분 부모님과 형부는 지금 옆 병실에서 언니분을 간호하고 계세요. 필요하시면 제가 불러드릴까요?”그 말을 들은 안윤서는 속눈썹을 파르르 떨다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아마 다들 저를 보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요. 저도 그 사람들을 보고 싶지 않아요.”간호사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안윤서를 바라보다가 병실에서 나갔다.“둘이 친자매라고 들었는데 정말 이상해. 동생이 과다 출혈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는데 가족들은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아. 게다가 동생이 아니라 그냥 놀라서 기절한 언니만 보살피고 있고, 심지어 이틀 동안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았잖아.”“저 환자분 형부가 명오 그룹 대표래요. 언니가 그런 재벌가 자제랑 결혼하니까 동생은 뒷전인 거겠죠. 그런데 그 형부라는 사람 진짜 사랑꾼이더라고요. 계속 약혼녀 곁을 지켰잖아요. 심지어 약도, 죽도 본인이 직접 먹여주고, 이미 은퇴한 심리상담사까지 데려와서 상담시켜 주고, 선물도 계속 병실로 보내고...”두 사람은 작은 목소리로 감탄하며 말했고 안윤서는 그들의 대화를 전부 들었다.그러나 안윤서는 여전히 무심한 표정이었다.이런 상황이 익숙했기 때문이다.오후가 되자 의사가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고 안윤서는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 홀로 허약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서 내려왔다.옆 병실을 지나칠 때 안윤서는 부모님과 송규민이 안혜원을 둘러싸고 걱정하는 모습을 보았다.아빠 안명준은 안혜원을 위해 이불을 덮어주었고 엄마 박정순은 손수 껍질을 까서 포도를 먹였다.그리고 안혜원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애교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빠, 엄마. 그동안 계속 저만 챙겨주느라 윤서는 아직 보러 가지 못하셨잖아요. 저도 이제는 배부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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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안윤서는 자신을 도발하는 안혜원을 상대하고 싶지 않아 자리를 뜨려고 몸을 돌렸다.안윤서가 도망치려고 하자 안혜원은 인상을 찌푸리며 몇 마디 더 하려다가, 갑자기 복도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여 곧바로 안윤서의 팔을 잡아당기며 분수대 안으로 뛰어들었다.두 사람 모두 수영을 할 줄 몰라 분수대 안에서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고 소리쳤다.안윤서는 상처가 벌어져 피를 흘렸고, 그 피가 분수대 물을 붉게 물들였다.차가운 물이 코와 입안으로 들이닥쳐 안윤서는 계속 기침을 했다.그러다 너무 아파서 발버둥 칠 힘조차 없어 몸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이러다 죽는 건 아닐까 싶었던 순간, 안윤서는 송규민이 빠르게 달려와 물속으로 뛰어드는 걸 보았다.그러나 송규민은 안윤서를 그대로 지나쳤다. 안윤서에게 눈길도, 도움도 주지 않고서 안혜원을 끌어안고 물 밖으로 나갔다.안혜원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송규민의 품에 안겨 아직도 물속에 있는 안윤서를 바라보며 일부러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다급히 말했다.“윤서는 실수로 나를 밀어서 물에 빠뜨린 거야. 규민아, 나한테 동생은 윤서뿐이야. 제발 우리 윤서 좀 구해줘. 응?”안혜원의 말을 들은 송규민은 물속에 있는 안윤서를 바라보며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혜원아, 동생이라고 자꾸 감싸주지 마. 윤서는 너를 죽이고 싶어서 일부러 그런 게 틀림없어. 그리고 동정을 받고 싶어서 너랑 같이 물속에 뛰어든 거겠지. 내가 그렇게 타일렀는데 변한 게 하나도 없네. 쟤는 이번 기회에 정신을 좀 차려야 해.”송규민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안윤서의 귀에 날카롭게 꽂혔다. 누군가 송곳으로 가슴을 찔러 후벼 파는 것만 같았다.안윤서는 서서히 얼굴이 파래졌고 귀에서는 이명이 들렸으며 더 이상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의식이 점점 흐려지면서 시야 또한 흐릿해졌다.안윤서는 송규민이 안혜원을 안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정신을 잃었다.시간이 얼마나 흐른 걸까? 안윤서는 차가운 바람 때문에 눈을 떴다.몸을 떨면서 정신을 차리니 부모님이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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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퇴원한 뒤 안윤서는 집으로 돌아가 송규민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모조리 버렸다.어렸을 때 썼던 일기와 연애편지, 몰래 모아 두었던 사진, 전해주고 싶었던 선물, 열심히 준비했던 이벤트...사실 안윤서는 송규민과 사귀게 되면 그동안의 짝사랑 이야기를 하나씩 얘기해 주고 싶었다.그러나 이제는 송규민과 영원히 이어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것들도 더 이상 쓸모가 없었다.그래서 전부 다 버렸다. 그리고 몸을 돌렸을 때 마침 안혜원을 집까지 바래다주러 온 송규민과 마주치게 되었다.송규민은 쓰레기통을 힐끗 본 뒤 안윤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눈빛은 여전히 싸늘했다.안혜원도 그것들을 보더니 일부러 송규민의 팔에 팔짱을 끼면서 웃는 얼굴로 애교를 부렸다. “규민아, 윤서가 이번에는 정말로 마음을 고쳐먹었나 봐. 아마 앞으로는 너를 귀찮게 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윤서는 내 친동생이니까 너도 너무 미워하지는 마.”송규민은 차가운 표정으로 안윤서를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항상 차가워. 살가운 척 연기하는 건 나한테 너무 어려운 일이니까 네가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안윤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그 말을 들었다.그러고는 가볍게 숨을 들이마신 뒤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감정들을 삼키며 방으로 돌아갔다.이튿날은 안혜원의 생일이었다.파티장에는 손님들이 가득했는데 다들 한자리에 모여 수다를 떨었다.“규민이가 약혼녀 생일 파티에 정말 공을 많이 들였어. 아주 화려하고 성대하네. 이 꽃들은 오늘 아침 유럽에서 공수해 온 거라면서? 심지어 3일 동안 불꽃놀이도 한다던데... 그리고 혜원이가 하고 있는 액세서리도 수십억짜리인데 모두 규민이가 직접 경매에서 낙찰받은 거래.”“규민이가 혜원이를 기쁘게 해주려고 신경을 많이 썼네. 규민이랑 결혼하다니, 혜원이는 팔자도 좋지. 안씨 가문도 혜원이 덕분에 승승장구하겠어. 그런데 이 집안에 시한폭탄 같은 윤서가 있잖아. 계속 자기 형부를 넘본다던데,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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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안윤서는 송규민이 정작 자신은 알아보지 못하면서 팔찌를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안윤서가 복잡한 기분을 느끼며 입을 열려는데 안혜원이 끼어들었다.“윤서야, 왜 내 허락도 없이 멋대로 내 팔찌를 가져간 거야?”말을 마친 뒤 안혜원은 팔찌를 빼앗으려고 하면서 길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안윤서의 손등에 상처를 냈다.안윤서는 신음을 흘리며 힘껏 손을 빼내려고 했는데 안혜원이 타이밍을 맞춰 몸을 뒤로 젖혔다.그 광경을 본 송규민은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본능적으로 안혜원을 끌어안으며 어두운 눈빛으로 안윤서를 음산하게 바라봤다.“그런 거였어? 나는 또... 혜원이 팔찌를 훔쳐 놓고 그 사실을 들키게 되니까 창피해서 혜원이를 밀치려고 해? 안윤서, 너 정말 역겹다.”자신에게 설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안혜원의 말을 믿는 송규민의 모습에 안윤서는 피가 차게 식는 기분을 느꼈다.안윤서는 피가 흐르는 손을 들어 보이며 절망과 고통이 절실히 느껴지는 어투로 말했다.“이 팔찌를 기억하고 있었다면 시력을 되찾은 뒤 안혜원이 이 팔찌를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걸 알 텐데? 왜냐하면 안혜원은 이런 팔찌가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거든. 애초에 안혜원은 네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아니...”안윤서의 처절함이 담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명준이 안윤서의 뺨을 때렸다.안윤서는 순간 눈앞이 까매지면서 몸을 가누지 못해 샴페인 타워 쪽으로 쓰러졌다.수백 개의 잔이 안윤서의 몸 위로 떨어져 안윤서의 몸을 흠뻑 적셨다.안윤서는 바닥에 쓰러졌고 유리잔 때문에 몸 곳곳에 피멍과 상처가 생겼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졌다.박정순은 심각한 표정으로 안윤서의 앞으로 걸어가더니 안윤서의 머리 위로 와인을 부어버리고는 사납게 말했다.“혜원이가 그동안 팔찌를 안 한 이유는 팔찌가 망가져서 수리를 맡겼기 때문이야. 오늘 집사가 팔찌를 가져왔는데 우리가 집에 없는 틈을 타서 몰래 훔쳐 끼는 걸로도 부족해서 네 거라고 우기는 거야?”“평소에 집에서 난리 치는 건 그냥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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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다음 날 새벽이 되어서야 기력을 되찾은 안윤서는 혼자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았다.안윤서의 상태가 워낙 심각한 탓에 의사조차 놀랐고, 상처를 치료하는 데 무려 세 시간이 걸렸다.치료받는 와중에 아파서 식은땀이 계속 흘렀고 손톱도 몇 개나 부러졌다. 안윤서는 이를 악물고 그 시간을 버텨냈다.병원에 이틀 동안 입원해 있으면서 상처에 천천히 딱지가 앉았다.그리고 안혜원은 안윤서의 신경을 긁으려고 매일 같이 메시지를 보냈다.[아빠, 엄마가 네 방을 아기방으로 만들어도 된다고 허락했어. 앞으로 나랑 규민이가 아이를 데리고 오면 네 방을 쓸 거야. 그래서 말인데 네 방에 있는 쓰레기들은 언제 다 치울 거야?][규민이는 오늘 나랑 같이 웨딩드레스를 고르러 왔어. 마음에 드는 게 몇 벌이 있었는데 규민이가 다 사준 거 있지? 구두도 발이 아플 때까지 신어 봤는데 규민이가 안쓰럽다고 다리 마사지까지 해줬어.]사진 속 안혜원을 바라보는 송규민의 다정한 눈빛을 안윤서는 무감각하게 바라봤다.안윤서는 단 한 번도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상처가 나은 뒤 안윤서는 집으로 돌아가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꼭 필요한 여권 같은 것들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전부 버렸다.그 광경을 본 집사가 전전긍긍한 표정으로 안윤서에게 다가가서 말했다.“아가씨, 혜원 아가씨 말씀은 지하로 방을 옮기라는 뜻이었어요. 비록 햇볕은 잘 안 들어오지만 공간이 꽤 넓어요. 굳이 이것들을 다 버릴 필요는 없어요.”안윤서는 텅 빈 방 안을 바라보며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됐어요. 어차피 쓸 일이 없을 테니 그냥 다 버리려고요. 저는 곧 해외로 떠날 거예요. 다시 돌아올 일은 없어요.”집사는 흠칫하더니 의아한 눈빛으로 안윤서를 바라봤다.“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라고요?”집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송규민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누가 안 돌아온다는 거예요?”집사가 대답하려는데 안혜원이 마침 방에서 나오며 말했다.“왜 이렇게 일찍 왔어? 나 메이크업 아직 다 못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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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저녁 시간이 되자 가정부가 안명준, 박정순이 멜리 호텔에 룸을 예약해 두어서 그곳에서 식사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안윤서는 적당한 핑계를 대고 빠지려고 했으나 안혜원 때문에 억지로 호텔로 향하는 차에 타게 되었다.가는 동안 안혜원이 무슨 말을 하든 송규민은 다정하게 받아주었다.“규민아, 우리 결혼하면 신혼여행은 해외로 가는 거 어때? 나 오로라 보고 싶단 말이야. 그리고 패션쇼에도 참석하고 싶어. 신혼여행 가게 되면 나 사진 많이 찍어줘야 해. 네 휴대폰, 노트북, 태블릿 배경 화면은 전부 내 셀카로 해둘 거야. 전부 다른 사진으로!”“그래. 실력 좋은 사진작가들을 선생님으로 모셔 사진 잘 찍는 법을 배워서 네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남겨줄게. 그리고 사진을 인화해서 내 사무실과 서재에 가득 걸어둘 거야. 그렇게 하면 네가 보고 싶을 때마다 고개를 들면 너를 볼 수 있잖아.”“좋아. 나랑 약속한 거다? 앞으로 우리한테 아기가 생기면 같이 앨범을 보면서 추억을 돌아보자. 참, 아이는 몇 명 갖고 싶어? 남자아이면 너처럼 키 크고 잘생겼으면 좋겠고, 여자아이면 나를 더 많이 닮았으면 좋겠는데...”두 사람은 안윤서의 존재를 잊은 듯이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안윤서는 말없이 창밖의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송규민이 시력 회복 수술을 받던 날, 안윤서는 수면제 때문에 깊은 잠에 빠져서 꿈을 꾸었었다.꿈속에서 송규민이 수술을 받은 후 깨어났을 때 가장 처음 본 사람은 안윤서였고, 그 이후로 송규민은 안윤서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송규민은 늘 안윤서의 곁에 있어 주면서 자주 이벤트를 해주었고, 두 사람은 함께 데이트를 하면서 아름다운 세상을 실컷 즐겼다.송규민은 무릎을 꿇고 안윤서에게 정중하게 프러포즈를 했고, 안윤서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 안으로 들어갔으며, 안윤서와 아이를 안고 가족사진을 찍었다.꿈속에서 안윤서는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얻었고, 자신만의 가정을 꾸렸다.그러나 꿈에서 깨자 모든 것이 거품처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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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안윤서는 자신이 살아남을 줄 몰랐다.소독수 냄새를 맡으며 한참을 멍하니 있던 안윤서는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의사는 안윤서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안도하며 말했다.“저희 의료진이 열 시간 넘게 수술한 끝에 겨우 안윤서 씨를 살려냈어요. 깨어나서 정말 다행이에요.”의사의 말을 들은 안윤서는 시선을 살짝 돌리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의사는 고개를 끄덕인 뒤 할 말이 있는 표정으로 안윤서를 바라봤다.“그날 안윤서 씨를 병원으로 데려온 사람들 말이에요. 안윤서 씨 친부모가 맞나요?”안윤서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끝내 침묵을 선택했다.안윤서의 표정을 본 의사는 차마 더 묻지 못하고 한숨을 쉬며 떠났다.그 뒤로 이틀 동안 안윤서는 병원에 혼자 있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병문안을 오는 사람은 없었다.그러다 퇴원하는 날이 되어서야 안명준과 박정순이 찾아왔다. 몸은 괜찮은지 확인하려고 온 게 아니라 경고를 하러 온 것이었다.“내일 혜원이랑 규민이 결혼하는 날이야. 지난번에 우리랑 떠나겠다고 약속했었잖아. 그러니까 내일 결혼식 전에 떠나도록 해.”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안윤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안윤서가 순순히 따르자 안명준과 박정순의 표정이 그제야 조금 누그러졌다.“혜원이 행복을 위해서 네가 양보하도록 해. 둘의 결혼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아이도 생기면 그때 다시 돌아와. 돈은 네 계좌에 넣었으니까 해외에서 잘 지내도록 해.”두 사람은 당부를 마친 뒤 안혜원을 돌봐줘야 한다며 서둘러 떠났다.안윤서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주머니 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두 사람은 안윤서를 테라온으로 보낼 생각이었지만 안윤서는 테라온에 갈 생각이 없었다.그래서 휴대폰을 꺼내 아크문의 수도 빌리체로 향하는 항공권을 구매했다.안윤서는 그들이 바라는 대로 해줄 것이다.그들의 인생에서 완전히 사라져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갈 것이다.병원을 떠난 뒤 안윤서는 가족들과 연을 끊고 살기 위해 변호사를 찾아가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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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비행기가 천천히 이륙할 때 창가에 앉아 있던 안윤서는 잠시 넋을 놓았다.너무도 익숙했던 건물들이 점차 멀어지는 게 보였지만 미련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했다.집이라고 불리던 그곳을 드디어 떠나게 되었기 때문이다.안윤서는 사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집을 떠나고 싶었다. 부모님이 두 딸을 차별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었기 때문이다.안명준과 박정순은 모든 방면에서, 심지어 평소에도 늘 안윤서를 가족이 아닌 외부인처럼 대했다.그로 인해 안윤서는 한때 자신이 친딸이 아니어서 그들이 자신을 차별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해봤었다.그러나 현실은 안윤서의 짐작과 달랐다. 안윤서는 안명준과 박정순의 친딸이자 안혜원의 친동생이 맞았다.그 사실은 안윤서에게 더욱 큰 충격을 안겨줬다.혈육이 맞다면 모든 것이 그들이 안윤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차별한 것이다.심지어 안윤서의 탄생조차 안혜원을 살리기 위해서였다.안윤서는 이따금 안혜원을 살리는 데 제대혈이 필요하지 않았다면 자신은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리고 한때 안윤서는 송규민이 자신의 구원이 되어줄 줄 알았다.송규민은 그동안 안윤서에게 가장 잘해준 사람이자, 가장 다정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사실 안윤서는 송규민이 사고를 당하기 전부터 이미 오랫동안 송규민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안윤서가 송규민을 좋아했던 건 송규민의 신분이나 지위 때문이 아니라 송규민이 늘 진심으로 대해주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안윤서는 자연스럽게 송규민을 사랑하게 되었다.그러나 지금의 송규민은 자신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람이 안혜원이라고 믿고 있었다.안윤서가 아무리 설명하고, 자신이 그 소녀임을 몇 번이나 증명하려고 해도 송규민은 믿지 않았다.난기류 때문에 잠시 기체가 가볍게 흔들렸다.교통사고 때 생긴 상처가 완전히 나은 건 아니라서 안윤서는 자기도 모르게 작게 숨을 들이켰다.상처는 이미 많이 나았다.그런데 지난번에 안혜원 때문에 물에 빠진 이후로 안윤서는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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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근처의 낯선 건물들과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친절한 시선에 안윤서는 신기함을 느꼈다.그곳은 안윤서가 어릴 적부터 살아온 곳과는 완전히 달랐지만 두렵지는 않았다.오히려 앞으로의 삶이 기대되었다.안윤서는 캐리어를 한쪽에 세워두고 집주인이 보내 준 주소를 확인했다.아주 먼 곳은 아니었으나 캐리어가 있어서 택시를 타고 가는 것이 가장 편할 듯했다.그래서 안윤서는 휴대폰 앱을 사용해 택시를 호출했다.비록 가격이 조금 비싸긴 해도 매우 힘들고 지친 상태라서 최대한 빨리 쉬고 싶었다.택시는 금방 도착했고 5분도 되지 않아 길가에 서 있던 안윤서의 앞에 차를 세웠다.택시 기사는 험상궂은 인상에 오른팔에는 문신이 가득했다.기사는 차에서 내린 뒤 안윤서의 캐리어를 트렁크에 실을 때까지 말 한마디하지 않았다.그러다 안윤서가 불안해하는 걸 눈치챈 건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안윤서에게 세르국 사람이냐고 물었다.안윤서는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자신은 천성국 사람이라고 밝혔고 그 말에 기사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천성국 사람이에요? 저도 천성국 사람인데! 고향이 어디예요? 저는 섬도 출신이에요.”해외에서 오래 산 건지 억양이 살짝 이상했으나 안윤서는 마음이 편안했다. 타향에서 같은 나라 사람을 만나는 건 아주 반가운 일이었기 때문이다.“저는 경진 사람이에요.”안윤서는 웃으며 대답했다.말꼬가 트이자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안윤서는 대화를 통해 택시 기사가 여자 친구 때문에 아크문으로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기사는 예전에 국내에서 타투샵을 운영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크문은 세금도 많이 내야 하고 가게를 차리려면 큰돈이 들기 때문에 지금은 택시 기사로 일하면서 돈을 모으고 있으며, 앞으로 아크문에서 본인의 가게를 차리는 게 꿈이라고 했다.신호를 기다리던 중 기사는 지갑을 열어 안윤서에게 사진을 보여 주었다.사진 속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여자 친구 얘기가 나오자 기사는 곧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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