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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삼 개월 뒤면 이 세상에 없을 테니까 임태진에게 삼 개월이라 했다.

그때가 되면 그녀와 자고 싶어도 뼛가루만 남아있을 테니까.

하지만 시간이 사흘로 줄어드니 못 견디게 괴로웠다.

뭔가 더 말하려고 했으나 임태진이 갑자기 그녀를 확 놓아주었다.

드디어 숨을 고를 기회를 얻게 된 서유는 하려던 말을 삼켜버렸다.

일단 오늘 밤을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다.

“자기야.”

임태진은 허리를 숙여 그녀의 볼에 키스했다.

“그럼 오늘은 일단 돌아갈게. 사흘 후, 내가 다시 너 데리러 올 거야.”

서유는 그가 키스한 볼을 부여잡았다. 속이 울렁거렸지만 임태진 앞이므로 꾹 참고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순순히 그의 말을 따르는 모습을 보고 임태진은 마음이 약간 놓인 듯 피식 웃더니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기 전, 그가 걸음을 갑자기 우뚝 멈췄다.

“아.”

그가 고개를 돌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서유를 바라보며 물었다.

“자기야, 친구 이름이 정가혜지?"

애써 괜찮은 척하던 서유의 얼굴빛이 흐려졌다.

임태진이 정가혜를 알고 있는 걸 보니 이미 그녀의 뒷조사를 철저하게 해놓은 듯했다.

누군가에게 샅샅이 들여다 보인 것 같은 기분은 너무 불쾌했다.

“왜요?”

그녀가 차갑게 묻자 임태진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었다.

“아니, 그냥 알려주려고. 집에서 얌전히 날 기다리고 있으라고. 어디 쏘다니지 말고.”

아무렇지 않은 듯한 내용이지만 그것이 위협임을 서유는 너무 잘 알았다.

서유가 감히 도망간다면 그는 정가혜를 찾아 보복할 것이란 뜻이었다.

우리 안에 갇혀 버린 듯한 꽉 막힌 느낌이 다시 그녀를 엄습했다.

“가혜는 건드리지 마세요. 어디 가지 않고 기다릴 테니까.”

무표정한 얼굴로 서유가 말했다.

그제야 기분 좋은 듯 키스를 날리며 임태진이 말했다.

“착하지.”

’역겨워!‘

서유는 힘껏 문을 닫고 안에서 걸어 잠근 후, 욕실로 달려갔다.

물을 틀고 욕조에 들어가 임태진이 키스하고 만졌던 곳을 박박 문질러 닦았다.

피부가 빨갛게 달아오르고 벗겨질 때까지 닦아도 여전히 더러운 것 같았다.

그녀는 미친 듯이 몸을 씻었고 역겨움이 차츰 사라질 때야 다시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임태진이 정가혜로 그녀를 위협했으니 이제 도망갈 수 없었다. 빨리 방법을 대지 않으면 사흘 뒤 그의 손에서 놀아나다 죽어버릴 게 분명했다.

그 생각이 들자 그녀는 얼른 일어나 샤워 타월을 몸에 두르고 침실에 와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신고 전화를 하려 했지만 임태진의 물불 가리지 않는 수법과 그의 가문이 가진 힘을 떠올리고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임태진과 피 터지게 싸우는 건 괜찮았다. 어차피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이니.

하지만 가혜는 다르다. 그녀는 곧 결혼할 예정이고 한순간의 충동으로 가혜의 앞날을 힘들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서유는 가만히 서서 한참이나 생각했다. 결국 그녀는 연락처에서 차단해버렸던 그 번호를 다시 찾아냈다.

익숙한 그 이름이 나타나자 심장이 저도 모르게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임태진과 대항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미 그녀를 버린 그가 전화를 받긴 할까?

오랫동안 머뭇거리던 서유는 결국 전화를 걸 용기를 내지 못했다.

이승하의 성격을 그녀는 제일 잘 알았다. 이미 질린 물건엔 조금의 관심도 더 주지 않을 사람이다.

만약 전화를 걸어 사정한다면 그녀가 자신에게 매달리려고 한다는 오해를 할 수도 있다.

‘꼴사납지 않게 쿨하게 떠나는 선택을 했으면 이제 더는 그에게 연락하지 말자…’

이후 며칠 동안 서유는 열쇠를 맞추고 병원에 가서 치료 약을 받아왔다.

주치의는 적합한 심장이 나타나기 전까지 입원하기를 권유했지만 서유는 거절했다.

그녀의 심장병은 선천적으로 유전된 것이었고 장기간 약을 먹어 병을 제어해야 했다.

하지만 오 년 전, 심장 쪽을 발로 두 번 힘껏 걷어차인 뒤로 심부전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1년 동안 끊임없이 링거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았지만 여전히 병이 악화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제 인생의 막이 내리려는 구나.

서유는 느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적합한 심장이 나타나는 일 따위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약을 한 움큼 잡아 입에 털어 넣은 후, 준비해 둔 후추 스프레이와 전기 충격기를 가방 안에 넣었다.

별다른 뾰족한 수는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러니 임태진과 목숨을 걸고 싸울 생각이었다.

‘너 죽고 나 죽자. 다 같이 죽어버리자.’

Comments (1)
goodnovel comment avatar
소사랑
이것봐 결국 친구도 해치게 되었잖아..차라리 예전집에 머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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