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결혼 3년 동안, 허아연이 제일 많이 한 일은 주현우의 바람기 수습이었다. 또다시 주현우의 스캔들을 수습하던 날, 주현우가 다른 사람과 함께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을 비웃는 걸 듣게 되었다. 그 순간, 허아연은 더 이상 이런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이혼 서류를 내밀자 주현우는 냉정하게 말했다. “허아연, 주씨 가문에는 사별이 아닌 이상 이혼은 없어.” 그러다 한 번의 사고로 허아연은 주현우 앞에서 한 줌의 재가 되어 주현우의 세상에서 사라졌다. * 2년 뒤, 일 때문에 서울로 돌아온 허아연은 주현우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강성 안씨 가문, 안시연이라고 해요.” 죽은 아내와 똑같이 생긴 여자를 본 순간,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던 주현우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광적인 구애가 시작되었다. “시연아, 오늘 저녁 시간 있어? 같이 밥 먹자.” “시연아, 액세서리 세트가 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 “시연아, 보고 싶어.” 허아연은 담담하게 웃었다. “주현우 씨, 다시는 결혼 안 한다고 들었어요.” 주현우는 한쪽 무릎을 꿇고 허아연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시연아, 내가 잘못했어. 한 번만 더 기회를 줄래?”
View More권유성의 시선이 계속 자신에게 머물자 허아연이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했다."권 어르신."반갑게 인사하는 허아연을 보며 권유성이 감탄하듯 말했다."아연 씨는 역시 실망시키는 법이 없군.""과찬이세요, 어르신."허아연이 겸손하게 답하자 권유성이 물었다."오늘 오후에 시간 있나? 이야기 좀 나누고 싶은데."허아연은 손에 든 일정표를 확인하고 말했다."점심시간은 괜찮으세요? 오후에는 실험실에 가봐야 해서요.""괜찮아. 좋아."약속을 정한 두 사람은 점심 연회에 가지 않고 찻집으로 향했다.지난번에 갔던 그 찻집이었다.이번에는 다도 직원에게 맡기지 않고 허아연이 직접 차를 우려 권유성에게 따랐다.허아연의 차를 다루는 솜씨는 전문 다도사 못지않았다."어르신, 한번 드셔 보세요."차를 다 우린 허아연이 공손하게 두 손으로 찻잔을 건넸다.허아연이 건넨 차를 받아 든 권유성은 참 대범하고 침착한 아가씨라는 생각이 들었다.지난번에 찾아가 그런 말까지 했는데도 서운한 기색 하나 없이 여전히 존중과 예의를 다해 대하고 있었다.허아연이 우린 차를 느긋하게 한 모금 맛본 권유성은 에두르지 않고 곧장 본론을 꺼냈다."지난번에 아연 씨를 만나고 돌아가서 승준이가 나한테 화를 꽤 냈어. 아연 씨를 찾아간 것도,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것도 다 내 잘못이라고 탓하더군."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도록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고 사정을 해명하는 건 처음이었다.그것도 한참 어린 아가씨에게 말이다.권유성이 본론을 꺼내자 허아연도 차분하게 답했다."사실 어르신 걱정이 틀린 건 아니었어요. 저와 권 비서실장님이 아직 어려서 충분히 멀리 내다보지 못한 부분도 있고요."어디까지나 예의상 하는 말이라는 걸 권유성도 모를 리 없었다."아연 씨, 오늘 만나자고 한 건 지난번 일을 사과하고 싶어서야. 아연 씨와 승준이 일은 두 사람이 알아서 정할 일이고 내가 끼어들 게 아니었어. 확실히 내가 지나치게 간섭했어.""그리고 두 사람을 믿었어야 했어. 무슨 일이든 잘 헤쳐 나갈
"물론 우리 오빠 편드는 건 아니고 사실이 그렇다는 거지. 오빠가 널 좋아한다고 해서 너도 좋아할 필요는 없잖아. 꼭 다시 만날 필요도 없고."주민경을 내려다보며 그 말을 듣고 있자니 허아연은 문득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주민경이 정말 다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뒤 허아연도 샤워를 마치고 두 사람은 침대에 누워 이야기를 나눴다.모든 게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적어도 허아연과 주민경 사이만큼은 그랬다.……주말이 지나고 화요일이 되자 경주 그룹과 스타라이트 테크, 동승 그룹의 협력은 마침내 세부 조율까지 끝나 계약서도 완성됐다.두 지역이 함께하는 대규모 기술 협력이다 보니 취재진이 구름처럼 몰렸고 국내외 언론은 물론 각계 주요 인사들까지 자리했다.단상에 오른 권승준은 교진시 정부를 대표해 동승 그룹의 교진시 진출을 환영하고 세 회사의 협력 성사를 축하했다.이어 각계 주요 인사와 협력사 관계자들의 발언이 끝나자 주현우와 안서준, 유건희가 사람들 앞에서 협약서에 사인했다.조명이 단상을 환하게 비추는 가운데 맨 앞줄에 앉은 허아연은 오늘의 협력을 축하하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오성 그룹 오지은도 입장권을 구해 참석했지만 자리가 한참 뒤였다.멀리서 허아연을 바라보던 오지은은 동승 그룹의 고급 기술자이자 안씨 가문의 둘째 딸이라는 신분까지 얻어 승승장구하는 모습에 속이 뒤틀렸다. 가진 것 하나 없고 부모조차 없던 허아연이 어떻게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걸까?스포트라이트 아래 눈부시게 빛나는 주현우를 다시 본 순간, 오지은은 문득 두 사람 사이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조금이라도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행사에는 여러 첨단 기술 기업뿐 아니라 교진시의 원로 전문가들도 참석했다.권유성도 자리하고 있었다. 10시가 넘어 세 회사의 서명이 끝나자 허아연과 지일우가 기술 대표로 무대에 올라 기술 부문 발표를 했다.관객석의 주현우는 무대 위에서 당당하고 여유롭게 프로젝트 기술을 설명
그래서 안서준이 묻기 전에 허아연이 먼저 설명한 것이었다.설명을 들은 안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아연아, 주현우 일만큼은 이성적으로 판단했으면 좋겠어. 업무상 협력 외에는 주씨 가문이든 주현우든 조금도 엮이지 않았으면 해."허아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안서준이 못을 박았다."2년 전 같은 모습, 나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주민경 씨는 예외야. 민경 씨와 가깝게 지내는 건 상관없어."몇 번 만나보니 주민경은 꿍꿍이라곤 없는 사람이었다. 허아연을 해치기는커녕 온 힘을 다해 지켜줄 사람이어서 두 사람이 가까이 지내는 건 반대하지 않았다.안서준은 확실히 좀 독단적인 사람이었다. 예전부터 늘 그랬지만 유독 허아연은 더 많이 챙겼다. 그만큼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었다. 안서준의 당부에 허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같은 구덩이에 두 번 엎어지진 않을 거예요."허아연의 눈빛에 담긴 단호함을 본 안서준은 바지 주머니에서 오른손을 꺼내 허아연의 머리를 가볍게 톡 쳤다.요즘 안서준은 사소한 행동 하나까지 조심하며 허아연이 괜한 생각을 하거나 곤란해하지 않도록 애썼다. 안서준의 그윽한 눈빛에 허아연이 웃으며 말했다."걱정 마요. 나 자신을 안쓰럽게 만들지 않아요." 허아연의 다짐에 안서준은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그래."안서준이 이어서 말했다."그럼 민경 씨와 같이 일찍 쉬어. 난 호텔로 갈게.""네, 배웅해줄게요.""혼자 내려가면 돼. 괜히 너만 또 혼자 올라와야 하잖아."안서준은 허아연에게 현관까지만 배웅하게 하고는 문을 닫고 들어가라고 했다.안서준이 배웅을 마다하자 허아연도 굳이 고집부리지 않고 문을 닫고 들어갔다.엘리베이터 앞에서 현관문 닫히는 소리를 들은 안서준은 고개를 돌려 아파트 문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허아연을 강성시로 못 데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서준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허아연이 과거를 잊고 안서준을 받아들여 줄 수 있다면.얼마나 좋을까.어떤 상처도 받지 않게 지
안서준이 집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자 주민경이 설명을 보탰다."아연이는 집 좁은 거 신경 안 써요. 어릴 때부터 워낙 소박해서 허영심 부리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교진시를 떠나기 전에도 이 집에서 한동안 살았고요.""그때도 자주 놀러 왔었는데 아연이는 여기서 지내는 거 분명 좋아할 거예요."안서준이 입을 열기도 전에 주민경이 말을 이었다."지난 2년 동안 이 아파트와 허씨 본가 다 제가 계속 관리해 왔어요. 이 아파트 먼저 아연이 명의로 돌려놓을 거고 허씨 본가는 아연이가 서두를 거 없다고 했어요.""허씨 본가 명의를 넘기면 정체가 드러나서 동승 그룹이나 안씨 가문에 영향 줄까 봐 걱정하더라고요.""아연이가 워낙 은혜를 잊지 않는 성격이라 이제 무슨 일이든 안씨 가문부터 생각해요."안서준은 쉴 새 없이 설명을 늘어놓는 주민경을 담담하게 바라보기만 했다.사실 안서준은 집이 좁다는 말밖에 한 게 없었다. 다만 주민경이 허아연을 진심으로 아끼는 친구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좀 철없어 보여도 허아연을 가족처럼 여기고 있었다.안서준이 아무 말 없이 살피듯 쳐다보기만 하자 주민경은 괜히 긴장이 됐다.자라 온 환경이 환경인 만큼 어릴 때부터 별별 사람을 다 만나고 웬만한 일은 다 겪었지만 이렇게 긴장하게 만드는 사람은 안서준이 처음이었다.만만치 않은 남자였다. 둘째 오빠인 주현우보다도 더 만만치 않았다.안서준이 느긋하게 집 안을 둘러보는 내내 주민경의 시선은 그 뒤를 따라다녔다.안서준이 손을 들어 시계를 확인하자 주민경이 불쑥 물었다."안 대표님, 우리 둘째 오빠 많이 싫어하시죠?"주민경의 물음에 안서준이 피식 웃더니 주민경을 바라봤다."제가 주민경 씨 둘째 오빠를 좋아해야 하나요?""아니요. 그냥 두 분이 마주칠 때마다 은근히 재밌어서요.""주민경 씨 둘째 오빠와 한판 붙으면 구경할 생각이에요?"주민경은 말문이 막혔다.안서준은 말이 거침이 없었고 상대 체면도 전혀 봐주지 않았다.두 사람이 서로 바라보며 팽팽히 맞서고 있을 때 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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