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결혼 3년 동안, 허아연이 제일 많이 한 일은 주현우의 바람기 수습이었다. 또다시 주현우의 스캔들을 수습하던 날, 주현우가 다른 사람과 함께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을 비웃는 걸 듣게 되었다. 그 순간, 허아연은 더 이상 이런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이혼 서류를 내밀자 주현우는 냉정하게 말했다. “허아연, 주씨 가문에는 사별이 아닌 이상 이혼은 없어.” 그러다 한 번의 사고로 허아연은 주현우 앞에서 한 줌의 재가 되어 주현우의 세상에서 사라졌다. * 2년 뒤, 일 때문에 서울로 돌아온 허아연은 주현우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강성 안씨 가문, 안시연이라고 해요.” 죽은 아내와 똑같이 생긴 여자를 본 순간,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던 주현우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광적인 구애가 시작되었다. “시연아, 오늘 저녁 시간 있어? 같이 밥 먹자.” “시연아, 액세서리 세트가 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 “시연아, 보고 싶어.” 허아연은 담담하게 웃었다. “주현우 씨, 다시는 결혼 안 한다고 들었어요.” 주현우는 한쪽 무릎을 꿇고 허아연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시연아, 내가 잘못했어. 한 번만 더 기회를 줄래?”
View More별 생각 없이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받으러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비상계단 출입구에서 주현우가 전화를 받았다.곧바로 한민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주 대표님, 죄송한데요. 아연 씨가 실험실에서 물건 옮기는 걸 돕다가 발을 다쳤어요. 지금 병원에 거의 도착하는데 시간 되시면 잠깐 오실 수 있으세요?"허아연이 별일 아니니 전화하지 말라고 했지만 한민규는 이런 일은 가족에게는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주현우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일흔이 넘는 허민수한테 연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오른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있던 주현우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어느 병원이에요, 아연이 지금 상태는요?""강진 병원이에요. 구체적인 상황은 병원에 도착해야 알 것 같아요.""네, 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주현우는 바로 오원빈에게 전화를 걸어 일이 있어 먼저 가봐야 하니 와서 회의 물품을 챙기라고 했다.오원빈은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차를 몰고 달려왔다.이십여 분 후, 검은색 마이바흐가 병원 야외 주차장에 멈춰섰다. 주현우가 성큼성큼 정형외과로 향하는 사이, 허아연은 이미 진료실에서 진찰을 받고 있었다.의자에 앉은 허아연은 다른 의자 위에 오른발을 올려놓고 있었다.발등과 발목이 이미 완전히 시퍼렇게 부어올라 있었다. 어찌나 심하게 부었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아플 지경이었다. 허아연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이마와 목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얼굴에 달라붙었다. 평소보다 훨씬 창백한 얼굴이었다.의사가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말했다."발등에 골절이 두 군데 있어요. 다만 발에 어혈이 심해서 항생제 주사만으로는 멍을 빼는 데 시간이 걸릴 거예요. 먼저 한의원에서 어혈을 풀고 처치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타박상이라 안정을 취하는 것 말고는 따로 특효약이 없어요.""주 대표님.""주 대표님."두 손으로 무릎을 꼭 잡고 있던 허아연은 한민규 일행이 갑자기 누군가에게 인사
"할아버지, 민수 할아버지."허아연이 가져온 과일과 과자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웃으며 인사하고는 허민수 자리에 앉았다.바로 할아버지들이 두던 바둑을 두며 이미 궁지에 몰렸던 흑돌을 몇 수만에 살려냈다.그 뒤로도 몇 판을 연달아 뒀지만 허아연을 한 번도 이기지 못한 나민수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아연아, 내가 오늘은 머리를 너무 썼어. 오늘 밤 너 집에 가지 말고 여기 있어, 내일 다시 바둑 두러 올 테니까. 지금은 이만 밥 먹으러 가야겠다."허아연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배웅하며 웃었다."네, 할아버지. 그럼 내일 기다릴게요."옆집 나민수를 배웅하고 나니 정아 이모가 허민수와 허아연을 식사하라며 불렀다.식사를 하던 정아 이모가 허아연에게 고자질했다."할아버지도 참, 바둑 두다 지면 진 거지. 뭐가 그리 화가 나셨어요? 손까지 바들바들 떠시면서 말이에요."그 말에 허민수가 다급하게 해명했다."화난 게 아니라 오래 앉아 있어서 그런 거야."허아연이 허민수에게 반찬을 집어주며 말했다."앞으로 바둑도 너무 오래 두시면 안 돼요. 이 나이엔 건강이 제일이에요."허아연의 말에 허민수가 젓가락을 들며 말했다."나야 별일 없다만 아연이 네가 문제지. 말도 없이 집을 사고 아레아 베이에서 몰래 쏙 빠져나온 것도 어떻게 말 한마디를 안 해. 주 영감한테 듣고서야 알았잖아."허아연이 웃으며 설명했다."저도 제 공간이 하나 갖고 싶었어요.""그래서 너랑 현우는 어떻게 된 거야? 지금 별거 중이야? 이혼은 안 해?""주현우 씨가 재산 분할을 진행 중이니 일단 그냥 두려고요. 며칠 후면 신청서 제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머지는 이혼 서류 다 나오면 그때 얘기해요."재산 분할까지 하고 있다면 주현우도 이혼할 마음이 있다는 것이었다. 다만 허아연이 먼저 이혼 얘기를 꺼냈다는 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겠지.허아연이 며칠 눈에 띄지 않게 사라져주면 화도 가라앉을 것이다. 어차피 주현우는 오지은에게도 명분을 줘야 할 테니.본가에서 허민수에게
오지은이 시간 얘기를 꺼내자 주현우는 그제야 고개를 들며 무심하게 말했다."오지은, 전에도 말했지. 허아연과 일로 대립하는 건 어떤 일이라도 관여하지 않는다고." 그 말에 오지은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또 허아연이네.왜 매번 허아연이야, 왜 매번 벗어날 수 없는 거야?허아연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스타라이트에 들어간 것도 주씨 집안 사모님이라는 타이틀 덕이고, 유건희가 허아연의 특허를 사들인 것도 주현우가 스타라이트에 수천억을 투자한 데다 허아연 프로젝트팀에 천억 추가로 투자했기 때문이잖아.주씨 집안이나 주현우가 없었다면 허아연이 다 뭔데? 한동안 미동도 없이 주현우를 바라보던 오지은이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그냥 기술 전시회일 뿐이야. 아연이 업무랑 대립할 것도 없을 거야."예전엔 허아연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냥 주민경 꽁무니나 따라다니며 어떻게든 주씨 집안 줄을 타려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주현우도 허아연을 그냥 웃음거리 정도로 여겼고 아무런 존중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점점 더 못마땅해지고 너무 계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밀당이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그런데 주현우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오지은이 말을 마쳤는데도 주현우는 고개도 들지 않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손에 든 서류를 무심히 넘겼다.맞은편에 앉아 한동안 아무 말이 없는 주현우를 바라보던 오지은 얼굴에서 웃음기가 서서히 사라졌다. 한참을 기다리던 오지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현우야, 내가 싫어졌어?"그 말에 주현우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오예은과 거의 똑 닮은 얼굴을 하고 걱정 가득하게 바라보는 오지은을 보며 주현우가 무덤덤하게 말했다."쓸데없는 생각이야."쌍둥이라 얼굴은 거의 똑같았지만 성격은 많이 달랐다.오예은은 겸손하고 튀는 걸 싫어했고 조용하고 다정했다.오예은과 처음 짝꿍이 되어 얘기를 나눴을 때 문득 허아연이 생각났다. 어딘가 엄마 없는 허아연과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다만 허아연이 조금
오늘 성대 테크가 기술 전시회를 열었는데 몇 번이나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것이다. 오지은도 오늘 꽤 주목을 받아 역시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을 올렸다. 네티즌들은 오지은을 진짜 여신이라느니, 완벽한 이상형이라느니 칭찬을 늘어놓으며 띄워댔다.집안도 좋고 예쁜 데다가 저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오지은을 보면 부끄러워진다며 저렇게 잘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오지은도 여론 분위기에 맞춰 기술 전시회에 참석해 기술을 설명하는 사진 여러 장을 올렸다.오늘은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원피스 차림이었다. 첨단 기술과 우아한 스타일의 조합이라며 오지은을 좋아하는 남자 팬들은 오지은 SNS에 "여보"라는 댓글을 달고 난리였다. 단체방 대화 내용을 간단히 훑고 성대 테크의 메인 제품들을 살펴본 허아연은 단톡방을 나와 핸드폰을 내려놓고 일을 시작했다.요즘 실험실에 드나드는 일이 많고 제품도 체험 단계에 접어든 터라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넘쳤다.그래서 요즘은 논문을 쓰고 있었다.얼마나 지났을까, 한창 집중해서 쓰고 있는데 마우스 옆에 놓인 핸드폰이 진동했다.주현우에게서 온 전화였다.화면에 뜬 이름을 봤지만 허아연은 전화를 받았다.허아연은 전화가 온 걸 보고도 안 받는 경우는 없었다.통화가 연결되자 주현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본가에 밥 먹으러 가자. 데리러 갈게."허아연이 컴퓨터 화면 속 논문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야근 중이에요, 혼자 가요.""앞으로 밥 먹으러 가자는 연락은 안 해도 돼요."어차피 이미 이혼 예정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는 상황에 같이 본가로 돌아가 밥이라도 먹으면 어르신들이 또 기대를 품을 게 뻔했다.주현우와 다시 잘 해볼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 합의서를 건넨 순간부터 두 사람은 되돌릴 수 없었다.그러니 어르신들을 괜히 건드리는 일은 하지 않는 게 나았다.이어 허아연이 부드럽게 말했다."지금 논문에 작업이 잘 되는 중이니 이만 먼저 끊을게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현우가 대답하기도 전에 허아연이 전화를 끊었다.거짓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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