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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드디어 바깥세상을 보다

Author: 은지수
“안 돼. 저런 더러운 건 먹지 마. 배탈 나.”

선하윤은 그제야 신채린이 초밥을 먹을 때 왜 그렇게 격렬하게 반응했는지 이해됐다.

신채린은 시커먼 입을 벌리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배고파요.”

이에 선하윤이 태블릿 PC를 열어 파운드 쇼핑 앱에 들어가 위어드 음식 코너를 클릭했다. 그 안에는 잘린 팔다리로 만든 각종 끔찍한 음식들이 있었다.

“자, 뭐 먹고 싶어? 내가 사줄게.”

신채린은 태블릿 속 음식을 보며 침을 흘렸다. 그녀는 창백한 손을 드러내더니 날카로운 손톱으로 가리켰다.

한편 선하윤은 그녀가 뭘 가리키는지 자세히 보지도 않고 바로 주문했다.

음식이 하얀 연기와 함께 나타났고 짙은 피 냄새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선하윤은 신채린이 안에서 조용히 먹을 수 있도록 침실을 나왔다.

남동생은 어느덧 공놀이를 멈추고 작은 발판을 디딘 채 머리를 창밖으로 내밀었다.

쿵.

창밖에서 또다시 거대한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이어 엄마가 커다란 철솥을 들고 나왔다. 철솥은 전열기 위에 놓였고 안에는 붉고 흰 국물이 끓고 있었다.

“우리 아가, 모레면 시험이지. 엄마가 특별히 널 위해 보양식을 끓였어. 꼭 먹어야 해, 안 그러면 엄마 화낼 거야.”

선하윤은 솥 안에서 검은 머리카락이 달린 두피와 떠다니는 손바닥을 보며 속이 뒤집혔다.

던전을 통과하는 것은 연기력을 시험하는 일이다.

그녀는 솥 안의 내용물 때문에 속이 다 뒤집혔지만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겸손하게 말했다.

“동생이야말로 몸보신해야죠. 걔가 많이 먹어야 키도 쑥쑥 커요.”

엄마가 아무리 협박하고 회유해도 선하윤은 끝까지 그 국물을 건드리지 않았다.

“이러면 못 쓰지!”

별안간 엄마가 주먹으로 식탁을 내리쳤다.

선하윤은 일단 진정시키려 했지만 엄마가 그녀를 죽일 듯이 노려보더니 국물이 담긴 숟가락을 입에 마구 갖다 댔다.

문득 옆에 있던 아빠가 솥에서 국물을 한술 뜨더니 간만에 선하윤을 편들어주며 말했다.

“애가 안 먹겠다는데 왜 그렇게 억지 부려?”

이 말을 들은 엄마는 눈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

순간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핏물이 흘러내렸다.

“건강식품만 계속 먹다가 병 걸릴까 봐 그러죠.”

이에 선하윤이 손을 내저으며 약속했다.

“엄마, 저 그럴 일 없어요.”

“그럼 대답해봐. 국에 뭐가 있었지?”

선하윤은 재빨리 눈동자를 굴렸다.

“그거야 당연히 맛있는 국물과 신선한 고기죠.”

“정말?”

엄마가 피로 물든 눈물을 닦았다.

“오늘 할머니 병문안 갔다가 네가 편식하는 일로 의사 선생님께 물어봤더니 건강식품을 먹어서 그렇게 된 거래. 엄마가 해준 음식은 아예 못 먹는 취급하는 거니?”

[호러 강림]에서 던전과 던전 사이에 미미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언급된 바 있다.

특히 난도가 높은 던전은 난도가 낮은 던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선하윤은 얼굴을 감싸 안았다.

“저는 진짜 엄마를 제일 사랑해요.”

“엄마도 널 사랑해.”

선하윤은 고개를 숙여 젓가락으로 짜장밥을 찔러보다가 무심한 척하며 말을 꺼냈다.

“아빠, 엄마가 저 그렇게 예뻐해 주시는데 만약 제가 집을 나가면 걱정해주실 거예요?”

순간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엄마의 슬픈 표정과 국물을 맛보며 즐거워하던 아빠의 표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대신 두 사람 모두 마비된 듯 무표정한 얼굴로 변했다.

꼭 마치 대부분 시간 동안 신채린이 짓고 있는 표정처럼 말이다.

아빠가 입을 열었다.

“아빠는 널 사랑하니까 네 선택도 지지할 거야.”

다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널 너무 사랑해서 집을 떠나는 건 견딜 수 없어. 넌 아직 어려. 나중에 크면 멀리 나갈 수 있을 거야.”

극단적인 사랑은 통제 욕으로 변할 수 있다.

선하윤은 별안간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번쩍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이상한 느낌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강렬하게 솟아올랐다.

규칙 1조.

[기억하세요, 당신은 엄마의 착한 딸입니다. 엄마는 당신을 너무 사랑합니다. 사랑에는 잘못이 없습니다. 비록 그 방식이 옳지 않더라도.]

규칙 9조.

[블랙캣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두 가지 규칙은 각각 [스위트홈] 상, 하의 첫 번째 규칙에 등장했다.

사랑, 이것이 바로 던전의 오염원이었다!

극단적인 사랑, 변질된 사랑, 그것은 일종의 보호이면서도 상처이기도 했다.

만약 엄마의 사랑이 딸을 통제하고 영원히 집에 가둬두려는 것이라면 블랙캣의 사랑은 또 무엇일까?

블랙캣은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선하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단호한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 저를 사랑하신다면 자유롭게 해주셔야 해요. 집은 따뜻한 쉼터이자 귀착점이어야지 속박이나 감옥이 되어서는 안 돼요.”

엄마의 두 눈에 집착이 가득했다. 마치 독실한 신도 같다고나 할까.

“그건 안 돼. 밖은 너무 위험하단다. 함부로 집을 떠나면 안 돼. 아가야, 조금만 더 기다려. 곧 있으면 너도 이 집과 하나가 될 거야. 의사 선생님 말로는 시간이 되면 엄마 뱃속으로 돌아갈 수 있대. 그럼 엄마가 다시 널 낳아줄 거야. 네 모든 슬픔과 고통은 새로 태어남과 동시에 싹 다 잊힐 거야.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가족이잖아.”

선하윤은 이토록 병적인 엄마에게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싸대기를 한 대 내리치고 싶었다.

이곳은 던전이다. 룰은 절대적이고 지고 지상의 존재였다.

그녀는 ‘딸’이라는 신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수 없다.

안 그러면 제아무리 많은 걸 보유해도 순식간에 ‘그것’에 의해 말살될 것이다.

룰을 우산으로 이해한다면 우산 밖은 끝없는 황야와 혹한의 땅이다.

우산을 들고 있으면 연명할 수 있고 우산을 버리면 그녀를 맞이하는 건 죽음뿐이다.

선하윤은 오늘 그다지 입맛이 없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그녀는 침실로 돌아갔지만 문 잠금장치가 너무 느슨해져 제대로 잠기지 않을 정도였다.

침실 벽에 가득 핀 곰팡이는 짙은 녹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했고 부풀어 오른 벽지에서는 가끔 거미와 바퀴벌레가 떨어지기도 했다.

침대 시트는 아무리 새것으로 갈아도 하루 만에 축축해졌다.

그녀는 의자로 문을 밀어 고정하고 침대 시트를 바꾼 뒤 마스크를 쓰고 잠을 잤다.

그날 밤.

선하윤은 고양이가 핥아서 잠에서 깼는데 방에서 누군가 속삭이고 있었다.

남동생은 침실 문 밖에 기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속삭였다.

“누나, 자요? 문이 막혔네요. 형이 문 좀 열어달래요. 누나가 문을 열어줘야 저 데리고 할머니 병문안 가준대요. 누나, 저 할머니 보고 싶어요. 할머니 언제 돌아와요? 갈 때 누나한테 도와달라고도 했잖아요. 제 말 듣고 있어요, 누나?”

한 마디 한 마디가 죽음을 부르는 음표 같았다.

선하윤은 눈을 꼭 감고 있었지만 무언가가 침대 밑에서 기어 나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침대 머리맡에 서 있었다.

신채린은 줄곧 선하윤 곁을 지키고 있었는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만약 정말 생명의 위험이 있다면 신채린이 그녀를 위해 나서줄 것이다.

선하윤은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계속 잠을 잤다.

룰을 위반하지 않는 한 그녀는 안전할 것이다.

다섯째 날 아침, 선하윤이 잠에서 깼다.

침대에서 내려오자 방이 온통 오염된 물로 가득 차 있었다.

신발 한 짝이 더러운 물에 휩쓸려 침실 문 앞까지 와 있었고, 다른 한 짝은 사라져버렸다.

선하윤은 결국 한 짝 신발만 신고 깡충깡충 뛰어나갔다.

다른 한 짝의 신발은 정확히 회색 침실 창턱 위에 놓여 있었다.

이것은 영락없는 함정이었다.

그녀는 거실 신발장으로 가서 새 신발로 갈아 신었다.

이때 남동생이 그녀가 일어난 걸 보자 종종걸음으로 창가에 달려가 거실의 커튼을 전부 열어놓았다.

선하윤이 창문을 통해 바깥세상을 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쿵.

창밖에서 다시 한번 그 익숙한 큰 소리가 들렸다.

선하윤은 발코니 쪽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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