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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발코니의 할머니

Author: 은지수
이 위어드의 외모를 통해 오염 정도를 알 수 있는데 커지는 순으로 나열하면 엄마, 아빠, 남동생, 할머니 순이었다.

엄마는 거의 정상적인 상태에 표정만 멍할 뿐이고, 아빠는 술을 마시면 격노하는 상태에 놓였고 용모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남동생은 울 때 용모가 중간 정도로 일그러졌다.

다만 할머니는 계속 일그러진 상태에 놓여 있어 오염이 심각했다.

지금은 반드시 남동생을 달래야 한다. 안 그러면 할머니가 날뛰고 남동생도 끔찍하게 변할 수 있다.

선하윤은 헬로 머니 50장을 꺼내 남동생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울지 마, 누나가 돈 줄 테니까 사탕 사 먹어.”

이에 남동생이 곧바로 울음을 그쳤다.

얼굴에는 아직 핏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헬로 머니를 보자마자 울음을 그쳤다.

“누나 최고예요!”

남동생은 싱글벙글 웃으며 헬로 머니를 챙겨 갔고 장난감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또한 남동생이 울음을 멈추자 할머니의 부풀어 올랐던 머리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고 귀, 콧구멍, 입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헬로 머니의 놀라운 효과에 선하윤은 또 1000장을 더 꺼내 할머니 앞에 내밀었다.

할머니는 격하게 두 손을 떨면서 휠체어에서 겨우 일어섰고 엉덩이 밑에서 붉은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크흐흐... 착한 아이... 이 할미도 네게 용돈 주마.”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지저분한 붉은 종이를 건네주었다.

선하윤은 붉은 종이에 적힌 내용을 확인하고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것은 놀랍게도 통과 규칙이었다.

[S등급: 던전의 모든 진실을 밝혀낸다.]

[A등급: 아빠와 엄마의 사랑을 받아 그들의 지지 아래 무사히 집을 나선다.]

[B등급: 시험에서 만점을 받아 아빠의 칭찬을 받는다.]

[C등급: 집에서 7일 동안 생존한다.]

돈이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점차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더욱 늙어 보였다.

마치 꺼져 가는 등불과도 같달까?

이어서 할머니가 헬로 머니를 얼굴 주름 사이사이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헬로 머니를 삼킬 때마다 할머니 얼굴의 구더기가 피부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녀의 상태는 점점 안정되었고 고통스러운 신음도 점차 잦아들었다.

“우리 강아지, 할미는 나이가 많아서 쉬어야 하니 별일 없으면 방해하지 마라.”

“비록 이 할미가 밤에 외롭지만 우리 착한 손녀는 절대 밤을 지새우면 안 돼.”

“블랙캣은 찾았니? 넌 그 고양이랑 함께 있는 걸 더 좋아할 텐데.”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눈을 감았다.

그녀는 마치 죽은 고목처럼 조용해졌다.

한편 할머니의 말에는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12조 룰의 앞부분은 거짓이었다.

[밤은 아름답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다면 발코니에 가서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세요.]

훌륭한 딸이라면 밤늦게까지 깨어 있으면 안 된다.

할머니는 휴식이 필요하지만 자신만의 방이 없다. 이는 ‘그것’이 의도적으로 할머니를 쉬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였다.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할머니는 오염이 심해질 것이다.

오늘 할머니의 행동을 볼 때 활동 범위가 발코니로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룰은 선하윤을 밤에 발코니로 유인해 할머니에게 살해당하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발코니의 커튼은 굳게 닫혀 있어 바깥을 내다볼 수 없었다.

회색 침실을 제외하고는 다른 방에 창문도 없다.

[창밖에서 누군가 당신을 쳐다보는 것 같다면 걱정하지 마세요. 창문을 열면 할머니가 엿보는 자를 쫓아낼 것입니다.]

12조 룰의 뒷부분과 결합해 보면 창문에는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하윤은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는데 아직 오후 2시 30분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시계를 소매 안쪽에 숨겼다.

던전에 들어온 첫날, 선하윤은 온전한 룰과 통과 방법까지 손에 넣었다.

S등급 통과 규칙은 던전의 모든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었다.

선하윤은 딸의 연애편지와 다니던 학교만 알아냈을 뿐 아직 스토리를 복원할 수는 없었다.

A등급 통과 규칙은 아빠와 엄마의 사랑을 받아 그들의 지지 아래 무사히 집을 나서는 것이었다.

엄마는 딸에게 애정을 쏟고 있지만 아빠는 딸에게 쌀쌀맞게 대한다.

어떻게 그들의 사랑을 얻을 수 있을까?

단순히 말을 잘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그녀는 아빠와 엄마의 응원을 받고 집을 나서야 한다.

무엇을 응원으로 간주해야 하는지, 이 또한 골치 아픈 문제였다.

B등급 통과 요구는 시험에서 만점을 받아 아빠의 칭찬을 받는 것이다.

선하윤은 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생각이 잡혔다.

교과서에는 귀신 언어가 적혀 있지만 온라인수업에서는 정상적인 인간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이는 강의 내용과 교과서 내용을 대조해 가며 공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단시간에 귀신 언어를 배우고 시험을 쳐서 만점을 받는다면 해당 등급의 통과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다.

다행히도 선하윤은 소설 속으로 빙의하기 전에는 수재였으니 시험을 치르는 것은 그녀에게 딱히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위어드 던전은 정상적인 세상과 다르다.

출제는 어떻게 될까? 만점 기준은 무엇일까?

모든 것이 미지수였다.

하여 B등급 통과는 차선책일 뿐 유일한 선택지로 삼을 수는 없었다.

C등급 통과 방법은 집에서 7일 동안 생존하는 것인데 이는 명백한 함정이었다.

[호러 강림] 소설에서도 [스위트홈] 던전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주인공이 마주친 룰과 선하윤이 마주친 룰은 달랐고 통과 방법 또한 달랐다.

유일하게 참고할 만한 점은 이 던전이 7일 동안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오래될수록 오염은 심해질 것이다.

최대한 빨리 던전을 탈출하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었다.

오후 2시 30분, 선하윤은 정시에 서재에 들어가 온라인수업을 들었다.

이때 아빠와 엄마가 방에서 나왔고 거실에서 다시 TV 잡음 소리가 들려왔다.

온라인수업 화면 속 선생님의 칠판 왼쪽 하단에는 흰색 분필로 그린 작은 고양이가 있었다.

오후에는 아빠와 엄마가 더이상 선하윤의 뒤에 나타나지 않았다.

수업을 듣는 동안 침실 쪽에서 몇 번씩이나 찢어지는 듯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마치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를 방불케 했다.

선하윤은 심호흡을 하고 고양이 울음소리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애썼다.

마침내 온라인수업이 끝나고 그녀도 서재에서 나왔다.

야옹.

문득 등 뒤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서재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지금은 이미 오후 5시, 절대로 다시 서재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선하윤은 아무것도 못 들은 척하며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발톱이 서재 문 앞에 멈춰 섰다.

거실 TV에서는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계명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이 이성 문제로 가족과 다툼을 벌인 뒤 집을 나가 14일째 실종 상태입니다...]

뉴스에서 보도하는 학교는 딸이 다니는 고등학교였다.

선생님은 경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학생들은 울먹이는 남학생의 엄마를 위로하고 있었다.

선하윤은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고 왠지 이상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참 수상할 따름이었다.

이 학교 학생들은 모두 정상적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왜 선하윤만 집에서 온라인수업을 듣는 걸까?

한편 엄마가 걸레를 들고 청소하는 중에 바닥에 쪼그려 앉아 눈을 가늘게 뜨고 바닥 틈새에서 윤기가 흐르는 검은 털을 한 가닥 집어 들었다.

“빌어먹을! 분명 고양이 털이야! 누가 고양이 키워?”

엄마는 걸레를 높이 쳐들었다가 다시 바닥에 힘껏 내리쳤다.

낯가죽은 잔뜩 화난 표정을 따라가지 못했고 입술은 축 늘어져 있었으며 양쪽 귀의 높낮이가 달랐다. 모든 이목구비가 제자리를 벗어난 채 마치 낯가죽을 머리에 덮어씌운 것만 같았다.

“집은 항상 깨끗하게 유지해야지! 젠장, 나만 집안일을 하고 너희들은 내 노고가 전혀 안중에도 없잖아. 이런 집안, 나도 이제 질렸어!”

“빌어먹을 고양이가, 잡히기만 해 봐. 아작내서 국 끓여 먹을 거야!”

분노에 찬 엄마를 마주한 선하윤은 조심스럽게 시선을 올렸다.

“그냥 머리카락일 수도 있잖아요. 머리카락도 검은색이니까요.”

엄마는 조금 진정된 듯 더 이상 걸레를 내던지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 혼잣말로 구시렁댔다.

한편 아빠는 엄마의 불평을 못 들은 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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