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병사들이 마을 주민들의 흑염소들을 쫓아낼 때 40대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갑자기 그들의 앞에 서서 그들을 막았다.“내 양들을 빼앗지 마. 빼앗으면 안 돼!”그런데 여성이 그들의 앞으로 달려가자마자 설국 병사 한 명이 그녀를 차서 쓰러뜨렸다.“빌어먹을 여자, 감히 날 막으려고 해?”여성은 비록 바닥에 쓰러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설국 병사의 발목을 잡았다.“내 양들을 놔줘! 짐승만도 못한 놈들! 놔주라고!”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자는 설국 병사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양무리를 몰던 설국 병사는 여자가 발목을 잡아당기자 들고 있던 총으로 여자의 머리를 내리쳤다.퍽 소리가 나더니 여자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엄마!”여자의 자식은 여자가 피를 흘리자 겁을 먹고 울기 시작했다.“빌어먹을 화진 놈들. 우리가 너희 것을 가져가는 건 너희의 영광이야. 그런데 감히 별 같잖은 게 날 막으려고 해?”설국 병사들은 약자인 마을 주민들을 바라보면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안타깝게도 마을 주민들은 그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이 흑염소들은 전부 데려가.”무리를 이끌던 설국 병사가 갑자기 입을 열어 말했다.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근처에 있던 설국 병사들은 흑염소들을 몰아서 군용 지프에 태웠다.그런데 바로 이때 목소리 하나가 뒤에서 들려왔다.“빌어먹을 설국 놈들, 거기 멈춰!”그 목소리와 함께 까무잡잡한 피부의 노인이 다가왔다.노인의 이름은 다무였다.다무는 이 부족의 족장이자 마을의 유일한 수호자였다.“다무 아저씨가 돌아왔어요!”“다무 할아버지!”노인들과 아이들, 여성들은 다무를 보자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이 흥분했다.60대인 다무의 손에는 큰 검이 들려 있었고 검은 붉은색의 천으로 싸여 있었다.다무는 비록 나이가 지긋했지만 큰 검을 든 그는 기세가 넘쳤다.설국 병사들은 갑자기 큰 검을 든 노인이 나타나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이 노인네가 지금 우리랑 말한 건가?”한 설국 병사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면서 입을 열었다.“설국
설국 병사가 자신과 대결하겠다고 하자 큰 칼을 들고 있던 다무가 곧바로 대답했다.“좋아!”“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다리가 아직 다 낫지 않으셨잖아요!”이때 옆에 있던 소년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노인을 바라보았다.다무는 웃는 얼굴로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걱정하지 마. 비록 내 다리는 다 낫지 않았지만 설국 놈들을 상대하기에는 충분하니까!”말을 마친 뒤 다무는 앞으로 나섰다.설국 병사들은 60대로 보이는 다무가 정말로 그들의 요구에 응하자 다들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 화진의 노인네와 놀아보고 싶은 사람 있어?”설국 병사들을 이끌던 남자가 이때 입을 열었다.그가 말하자마자 아주 건장한 체구를 가진 설국 병사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제가 나서겠습니다.”건장한 남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들고 있던 소총을 동료에게 건넨 뒤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그의 허리춤에는 장검이 있었는데 그 검은 설국 병사들이 항상 지니고 다니는 검이었다.설국 병사는 앞으로 나서더니 차가운 장검을 쓱 빼 들고 냉소 어린 표정으로 다무를 향해 말했다.“화진의 노인네, 잠시 뒤 당신의 피로 내 검을 적셔주겠어!”“이 짐승만도 못한 놈,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오늘 누가 죽고 누가 살지 지켜보자고!”다무는 호된 목소리로 외쳤다.건장한 설국 병사는 쓸데없는 말은 생략하고 장검을 뽑아 든 뒤 다무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다무의 목숨을 빼앗을 생각인 듯했다.다무는 검으로 그의 공격을 막았다.쾅!두 개의 장검이 부딪히는 순간 불꽃이 튀었다.“응? 노인네가 내 검을 막아?”건장한 설국 남자는 조금 뜻밖이라고 생각했다.그는 60대로 보이는 다무를 단칼에 죽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그런데 놀랍게도 다무는 꽤 노련했고 그의 검을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몸이 흔들리지도 않았다.“노인네, 어디 한번 막아보시지!”설국 병사는 또 한 번 장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힘을 더 많이 썼다.장검은 살벌한 빛과 함께 피비린내를 풍기면서 다시 한번 다무를 향해 휘
“게리엘, 구주군이었던 저 노인네를 죽여서 우리 설국의 죽어간 병사들을 위해 복수해 줘!”병사들을 이끌던 설국 남자가 명령을 내렸다.게리엘이라고 불린 건장한 남자는 그 말을 듣자 흉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그의 검 또한 살벌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게리엘은 다무를 연달아 공격하기 시작했다.다무는 비록 60대였지만 검을 자유자재로 휘둘렀다. 게리엘의 사력을 다한 공격 앞에서도 그는 확실하게 모든 공격을 정확히 막을 수 있었다.다무를 연달아 십여 차례 공격해도 그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자 게리엘은 당황했고, 그 기회를 틈타 다무는 장검을 휘둘렀다. 그는 마치 빗줄기 같은 빽빽한 공격으로 반격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잠시 뒤, 게리엘의 허리 쪽에 허점이 드러났다.허점이 드러난 순간, 다무는 아주 재빠르게 움직여서 게리엘의 허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게리엘은 막고 싶었으나 그만 늦어버렸다.촤악!검이 게리엘의 허리를 베는 순간 게리엘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곧이어 다무는 검을 휘둘러 게리엘을 반으로 갈라버렸다.시체는 바닥에 쓰러졌고 새빨간 피가 땅을 빨갛게 물들였다.“대단하세요, 다무 아저씨!”주민들은 다무가 설국 병사 한 명을 죽이자 너무 흥분한 나머지 환호를 내질렀다.다무는 장검을 꽉 쥐고 서 있었고 그의 검 위로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그 순간, 60대인 다무는 당시 구주군 대도팀 팀원으로서의 영웅 기개를 다시 회복한 것만 같았다.“젠장, 감히 우리 설국 병사를 죽여?”부하가 다무에게 살해당하자 설국 병사들을 이끌던 장수는 허리춤에서 총을 빼 들어 다무를 겨눴다.다른 설국 병사들도 모두 총을 들어 주민들을 겨눴다.다무는 검을 꽉 쥔 채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멍청한 설국 놈들아, 날 죽이면 뭐가 달라져?”죽음 따위 두렵지 않다는 듯이 구는 다무의 모습에 잔인한 설국 장수는 매서운 말투로 말했다.“감히 우리 설국 병사를 죽였으니 오늘 당신들 모두 이곳에서 죽는 거야! 여봐라, 이 빌어먹을 화진 놈들을 전부 즉시
윤구주가 드디어 온 것이다.허공을 걸으며 다가오는 윤구주를 본 설국 병사들은 그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누구지?”병사들을 이끌던 설국 장수가 그 말을 하자마자 엄청난 기운이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그의 몸을 짓눌렀다.퍽!운이 좋지 않았던 설국 장수는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단번에 고깃덩어리가 돼버렸다.그 광경에 설국 병사들뿐만 아니라 다무와 마을 주민들까지 전부 겁을 먹고 얼이 빠졌다.윤구주가 움직이지도 않고 설국 장수를 죽일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세상에, 우리 장군님을 죽인 거야?”한 설국 병사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총을 쏴서 죽여버려!”다른 병사들은 그제야 뒤늦게 반응했다. 모든 총구가 윤구주를 겨눴고, 총알들은 마치 빗줄기처럼 윤구주를 향해 날아들었다.윤구주는 총알들을 피하지도 않고 허공에 우뚝 서서 무자비한 눈빛으로 설국 병사들을 힐긋 바라보았다.“설국의 벌레만도 못한 놈들이 감히 내 앞에서 스스로 무덤을 파는구나.”차가운 코웃음 소리와 함께 윤구주는 손을 움직였고, 그를 향해 날아들던 총알들은 파멸적인 힘의 충격을 받고 전부 설국 병사들에게로 되돌아갔다.“끄아아악!”비명이 끊이질 않았고, 되돌아간 총알들로 인해 십여 명의 설국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설국 병사들이 전부 목숨을 잃었다.윤구주가 나타나서부터 손을 쓰기까지 겨우 몇십 초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말이다.조금 전까지 두려움에 떨고 있던 마을 주민들은 바닥에 즐비한 설국 병사들의 시체들을 보고 전부 넋이 나갔다.다무 또한 마찬가지였다.그는 두려운 얼굴로 허공에 떠 있는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윤구주는 설국 병사들을 단번에 해치운 뒤 곧바로 빠르게 하늘에서 내려왔다.그가 착지했을 때 다무와 그의 뒤에 있던 마을 주민들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뒤로 물러났다.그들에게 윤구주는 신 같은 존재였다.“다들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요. 전 여러분들을 도와주러 온 겁니다.”윤구주는 착지한 뒤 그곳 주민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시선을 들어 싸늘한 얼굴로 설국 병사들의 시체를 쓱 훑어본 윤구주가 갑자기 질문을 했다.“어르신, 얘기해주세요. 이 설국의 벌레만도 못한 놈들이 어떻게 우리 화진 땅을 밟은 거죠?”윤구주가 물었다.사실 이곳은 설국과의 국경 지역이었고, 이 땅은 화진의 땅이었다.설국 병사들이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자 윤구주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질문을 받은 다무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잘 모르시겠지만 설국의 세나스 장군이 흑여산맥에 병력을 증강한 후부터 이 빌어먹을 설국 놈들은 몇 번이나 국경을 넘어 우리 화진 땅을 밟았습니다. 게다가 이놈들은 온갖 악행을 다 저질렀어요. 우리 같은 부족들의 재물을 종종 강탈하고 무고한 마을 주민들을 죽이기도 했습니다.”그 말에 윤구주의 눈빛이 점점 더 서늘해졌다.나라를 지키는 군신으로서 화진의 국민들이 설국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러면 우리 쪽의 수비군들은요? 그들은 왜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은 거죠?”윤구주가 사나운 목소리로 물었다.국경 지역이었기 때문에 흑여산맥에 화진 군대도 당연히 주둔하고 있었다.윤구주가 물은 국경수비대는 화진의 군대였다.“우리 쪽 수비대는 겨우 2,000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세나스의 10만 정예군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적죠. 그리고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수비대를 이끄는 분이 얼마 전 서울에서 온 외교 대사에 의해 감금되었다고 합니다.”다무의 말을 들은 윤구주는 표정이 점점 더 싸늘해졌다.비록 윤구주는 흑여산맥을 이끄는 사람이 누군지는 알지 못했지만 이쪽 수비대에 문게가 있다는 건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윤구주는 싸늘한 눈빛으로 설국 쪽을 바라보았고, 곧 그의 눈동자에서 파멸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당시 10국과의 전쟁에서 윤구주는 홀로 설국 수도로 쳐들어갔었다.그런데 그로부터 겨우 몇 해가 지났다고 설국의 벌레만도 못한 놈들이 또 한 번 화진을 노리는 걸까?게다가 무고한 사람들의 재물을 강탈하고 목숨을 빼앗다니.“빌어먹을
“은인님도 군인이신가요?”’다무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윤구주에게 물었다.조금 전 윤구주는 오로지 검을 보고 단번에 다무의 신분을 추측했다. 그래서 다무는 꽤 놀란 상태였고 저도 모르게 윤구주에게 물었다.윤구주는 싱긋 웃기만 할 뿐, 자신이 구주군의 창시자이며 한때 세상을 호령했던 최강자라는 것은 얘기하지 않았다.윤구주는 그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고 할 수 있죠.”윤구주도 한때 군인이었다는 말을 듣게 되자 다무는 매우 흥분했다.“실력이 그렇게 대단하신 이유가 있었네요. 정말로 우리 화진의 군인이셨군요!”다무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은인님은 아마 예전에 장군이셨겠죠? 당시 우리 구주군은 정말 유명했어요. 특히 우리 왕은 천하무적의 최강자였죠!”용맹스러웠던 과거를 떠올린 다무의 얼굴에 자랑스러움이 여실히 드러났다.“어르신, 혹시 왕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윤구주가 궁금한 듯 묻자 다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쉽게도 본 적은 없어요. 솔직히 얘기해서 전 74군단의 취사병이었을 뿐입니다. 대도팀 팀원은 아니었죠. 그래서 저 같은 사람들은 신화와도 같은 그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다무가 머쓱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네? 조금 전에는 대도팀 팀원이라고 하셨잖아요.”윤구주는 궁금한 듯 말했고 다무는 멋쩍게 웃었다.“하하, 아까는 설국의 그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얘기한 겁니다. 사실 저 같은 노인이 무슨 수로 제74군단의 팀원이 되겠습니까? 전 그저 주방에서 일하는 평범한 취사병이었을 뿐이에요.”다무는 드디어 솔직히 얘기했다.사실 다무는 조금 전 설국 사람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일부러 자신이 제74군단 대도팀 팀원이라고 했다.74군단은 설국을 이긴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다무를 물끄러미 보았다. 다무는 나이가 꽤 많은 편이라서 74군단 대도팀의 팀원일 수가 없었다.윤구주는 평범한 취사병이 설국의 건장한 병사를 죽일 수 있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어르신, 전 어르신이 존경스럽습니
다무는 그의 질문에 곧바로 대답했다.“알고 있죠. 은인님은 국경 쪽에 가보고 싶은 건가요?”“네!”“그러면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저도 국경에 안 가본 지 오래됐거든요!”노인은 갑자기 흥분하며 말했다.“그러면 부탁드리겠습니다!”윤구주가 말했다.“별말씀을요. 은인님은 저희 마을 사람들을 구해준 은인이신데 그곳까지 안내해 드리는 건 아무것도 아니죠. 괜찮으시다면 잠깐 상황 정리를 한 뒤 안내해 드려도 괜찮을까요?”다무가 말했다.“좋아요.”다무는 부족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다무가 노약자들을 돌보고 있을 때 7, 8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은 윤구주의 앞에 섰다.“형! 우리 할아버지랑 같이 국경 쪽에 가는 건 설국의 나쁜 놈들을 물리치기 위해서인가요?”소년은 윤구주가 하늘에서 내려와 마을 사람들을 구해준 순간부터 윤구주를 신이라고 여겼다.아이는 반짝이는 눈망울로 윤구주를 바라보며 궁금한 듯 물었다.윤구주는 웃으면서 쭈그려 앉아 대답했다.“그래.”“와! 형, 그러면 저도 데려가면 안 돼요? 저도 군인이 되고 싶어요!”소년이 갑자기 군인이 되고 싶다고 하자 윤구주는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왜 군인이 되고 싶은 거야?”“군인이 되면 형처럼, 할아버지처럼 나쁜 사람들을 무찌를 수 있잖아요! 형은 모르겠지만 할아버지는 퇴역한 뒤로 매일 밤 제게 구주군이 얼마나 용맹한지를 얘기해 주셨어요. 그리고 할아버지가 평생 가장 후회되는 것이 전설 속의 구주왕을 만난 적이 없는 거라고 하셨어요. 만약 제가 군인이 되어서 할아버지를 대신해 그 소망을 이루어준다면 할아버지는 분명 기뻐하실 거예요!”소년의 말을 들은 윤구주는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걱정하지 마. 너희 할아버지는 분명 소망을 이룰 수 있을 거야!”‘응?’“형, 그 말이 사실인가요?”아이의 질문에 윤구주는 대답하지 않았다.그가 바로 그 전설 같은 존재, 천하무적의 구주왕이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그들의 앞에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윤구주의 정체를 몰랐다.“아이야, 앞으로 인연이
윤구주는 그 말을 듣더니 곧바로 대답했다.“네.”다무는 낙타를 이끌고 소년의 앞에 섰다.“할아버지는 이틀간 집에 없을 거야. 그러니까 네가 집을 잘 지켜야 해. 돌아오게 되면 할아버지가 맛있는 간식을 사줄게!”7, 8살쯤 되는 소년은 웃으면서 가슴팍을 툭툭 쳤다.“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 집은 저한테 맡기세요!”다무는 손자의 말을 듣더니 미소 띤 얼굴로 아이의 얼굴에 뽀뽀했다.“그러면 할아버지는 가볼게.”말을 마친 뒤 다무는 손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작별 인사를 나눈 뒤 다무와 윤구주는 각자 낙타를 탄 뒤 인적이 드문 흑여산맥의 깊은 곳으로 향했다.다무의 말대로라면 이곳에서부터 국경 지역까지 가려면 적어도 이틀이 걸렸다.사실 윤구주는 날아서 가면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그러나 그는 자신이 진짜 능력을 선보이면 다무가 겁을 먹을까 봐 걱정되어 그와 함께 낙타를 타고 이동하기로 마음먹었다.흑여산맥은 아주 황폐할 뿐만 아니라 날씨도 아주 추워서 이곳에서 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가는 길에 하늘에서 매 몇 마리가 나는 것이 이따금 보이는 것을 제외하면 살아있는 생물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다무는 입담이 좋아서 가는 길 내내 윤구주에게 지난 2년간 국경 지역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었다.윤구주가 죽었다고 알려진 뒤 세상에 널리 이름을 떨쳤던 구주군은 문아름에 의해 해산되었다. 그리고 2,000명쯤 되는 군인들로 이루어진 국경수비대가 현재 국경 지역에 주둔하고 있었다.그러나 작년부터 설국은 끊임없이 흑여산맥에 병사들을 보냈고, 심지어 설국의 세나스 장군도 흑여산맥의 국경 쪽에 온 적이 있었다.현재 흑여산맥에 주둔하고 있는 설국 군인들은 대략 10만 명 정도 되었고, 반대로 화진은 겨우 2,000명뿐이었다.그것이 설국 병사들이 대놓고 화진의 영토에 침입한 이유 중 하나였다.“은인님은 모르시겠지만 설국 놈들은 비록 수가 많긴 하지만 솔직히 얘기해서 만약 천하무적인 구주왕이 계셨더라면, 우리 구주군의 한 군단이 이곳에
임정설이 일으킨 이씨 가문의 기세조차 마물들에게 잠식당해 사라지고 있었다.청해는 말 그대로 처참한 상태였다. 이젠 자기 몸 하나 제대로 지킬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나마 임정설이 죽을 각오로 지켜주지 않았다면 진작에 목숨이 끊겼을 터였다. 결국, 화진의 국주가 자신의 목숨을 지켜준 것이다. 이 순간만큼은 죽는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음 생이 있다면... 화진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줘. 그게 아니라면. 그냥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게 해줘... ”청해는 하늘을 향해 처절하게 외쳤다. 임정설은 고개를 번쩍 들고 한 번 더 울부짖었다. 그 울음은 황자의 기운을 불러왔고 서요산 일대의 천기와 섞여 거대한 진룡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황도기운과 진룡을 하나로 모든 요마를 베어낸다! ”그 역시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대로 더는 버틸 수 없다면 풍무기처럼 자신의 마지막 의지를 국운에 녹여야 할 것이다. 진요탑 안. 이 일대 세계 전체가 마기에 잠식되어 만물은 스스로 죽음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런 데 무명은 더 이상 흥분할 수 없었다. “하하! 인황이 뭐라고? 도를 얻은 건 나다. 나는 이미 진정한 길의 끝을 보았다. 내 의지는 구천 현천을 관통한다. 하늘도 날 감당할 수 없어. ”그 순간 하늘과 땅이 동시에 울컥하며 뒤틀렸다. 무언가 말도 안 되는 존재가 깨어나는 기운이었다. 이 작은 진요탑 속 공간조차 그걸 담아낼 수 없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무명이 눈을 치켜떴다. “또 뭘 하려는 거야? 설마... 윤구주 너 나를 봉인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네 실력으론 날 봉인 못 해. 아니, 가능하다 쳐도 목숨을 걸어야만 가능하지. 하지만 지금 넌 그 목숨을 걸어도 겨우 나를 세 손가락만큼 다치게 할 수 있을 뿐이야. 그 정도 피해라면 기꺼이 감수하지. 와봐, 날 얼마나 벨 수 있나 보자고. 병이 오면 장수로 막고, 물이 오면 흙으로 막는 법이지. 그러니 한번 보자고 구주왕이라는 놈의 마지막 발악이 어떤지. ”무
“인간마가 세상에 나왔는데, 대체 누가 막을 수 있겠냐. 왜 그 무게를 전부 화진이 짊어져야 하는데? 이건 너무 불공평해.”청해는 처음으로 곤륜영역에 혐오감을 느꼈다.그리고 그제야 윤구주가 말했던 위선의 신이라는 말이 단순한 수련의 이야기가 아님을 이해했다.그들은 입만 열면 도덕과 정의를 떠들지만, 정작 하는 짓은 불의 그 자체였다. 위선적이기 짝이 없었다.“아아아!청해무극! 지은살결!!”청해는 모든 정원을 끌어 올렸고, 심지어 음혼까지 태워버렸다.음혼이 하늘의 뇌격을 불러오자, 그의 기운 속에는 놀랍게도 정의로운 황기가 피어올랐다.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도에 들어선 것이다.그 수련은 폭발하듯 치솟아 극점 신경 후기에 이르렀고, 잠시나마 이성설과 맞먹는 기세를 뿜어냈다.“카! 이제야 좀 신 같은 포스가 나오네!”백호는 멀리서 엄지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하지만 청해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백호는 원래 미친놈이었으니까.누구든 이 상황이면 절망했을 전황.하지만 백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율로 들떠 있었다.그는 전투를 위해 태어났고, 결국 전장에서 죽을 운명이었다.그게 백호가 택한 길 죽음을 향한 도였다.세 사람 모두 이미 죽을 각오로 싸우고 있었다.살아남을 생각 따윈 없었다.마물들과 함께 미쳐 날뛰며 생사의 끝자락을 오갔다.진요탑.풍무기는 전사했다.이제 남은 건 윤구주 단 한 사람.그가 인간마와 맞서야 할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윤구주! 풍무기는 죽었다. 이젠 네 차례야! 혼을 꺼냈다고 해서 날 이길 수 있다는 뜻은 아니야. 내 육신이 남아있는 이상, 나는 이미 성인의 경지에 올랐다. 지금의 반성 상태만으로도 네 인황 따위가 감당할 수는 없어. 그래, 네 선술은 순수하겠지. 그래서 네 육신엔 손댈 수 없지만 혼을 지워버리면 넌 끝이야. 마도무영,도파무극! 혈음마도, 현세에 나타나라!”그의 손에 한 자루의 절세마도가 출현했다.그 칼끝에서 피의 바다가 솟구치고, 살기는 윤구주의 황기조차 압도했다.이런 마도를 길러내기 위
잠금요탑 밖, 무너졌던 마기가 흩어지자 서요산 검종 제자들 사이에서 울음이 터졌다. 500년 만에 다시 햇살을 본 그 순간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서요산은 그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도움 없이 혼자서 마를 억눌러왔다. 그 현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다. “무명이 죽은 건가? ”장인대진인이 순간 멍해졌지만 곧 신념술로 본 광경에 얼굴이 굳어졌다. 귀물들이 미친 짐승처럼 날뛰며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산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이제부터가 진짜다.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윤구주가 무명의 목에 칼을 들이댄 건 확실해. 지금이 바로 마지막 승부의 시점이다.”말이 끝나자마자 흩어진 마기가 다시 거칠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마기가 응집되더니 거대한 마영체가 형성됐다. 그 거대한 그림자는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고 대지를 집어삼키려는 듯 광폭하게 움직였다. 그건 이제는 환상이 아니었다. 그 자체로 재앙이었다. 잠금요탑 위로 백장 크기의 마존이 강림했다. “윤구주! 네가 이 정도였다고? 실력만큼은 서요산 시조랑 비교해도 꿀리지 않겠군.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미 흐름은 정해졌다. 대세는 되돌릴 수 없어. 그 시조가 도력이 하늘을 찌르고 능력이 천하를 뒤흔든다 해도 결국 날 죽이지 못했지. 결국엔 구천을 떠돌며 외도계에서 날 베어낼 무언가나 찾고 있겠지. 외도계엔 나를 죽일 보물이 있을지도 몰라도 이곳 인간계 구주의 오방 안에서는 절대 없어. 너도 마찬가지야, 넌 여기서 끝이다. 죽어라!! 윤구주. 마의 경계는 끝이 없고 마의 바다는 만 리를 삼킨다! ”하늘이 찢기고 무한한 마해가 대지를 뒤덮었다. 잠금요탑은 순식간에 요산으로 변했고 주변은 온통 사기와 혼란으로 뒤덮였다. 무명은 드디어 자신의 사혼체를 드러내며 윤구주와 마지막 일전을 준비했다. 윤구주의 손에 들린 참마검이 떨리기 시작했다. 풍무기의 상태가 이미 한계라는 증거였다. “구주야, 내 양혼신체는 거의 다
‘선술? 크하하하!’무명이 미친 듯 웃었다.“네가 황자면 뭐 어쩌라고? 결국에는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인간 세상의 유성일 뿐이지.”“나는 무명이다.하늘은 이미 내 발 아래 있다.세상의 법? 그런 건 내가 정하는것이다.”“윤구주! 과연 네놈이 날 어떻게 상대할지 두고 보겠다!”‘원신출체도 못 한 놈이 선술을 깨달았다고? 어이없네.’무명의 눈에는 윤구주란 놈은 선술의 겉껍데기나 훔쳐본 수준에 불과했다.입만 산 허세쟁이 꼬맹이였지 그딴 놈은 애초에 눈에 들어올 가치조차 없었다.게다가 진짜 선술을 논하려면 그 참마검조차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하는 주제에.하지만 윤구주는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신의 경지에 머물던 시절,우연히 소요산에 들렀을 때 그때 이미 선술의 근본을 깨달았지.”윤구주의 눈이 빛났다.“지금, 네게 그걸 보여주마.”“구기신통 , 등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몸을 감싸고 있던 하얀 기운이 순식간에 실체의 불꽃으로 응결되었다.기운이 ‘기’에서 ‘힘’으로 승화된 것이다.무명의 눈동자가 순간 가늘어졌다.이게 뭔지 무명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제 윤구주는 몸 자체에서 영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솔직히 말해서 마음만 먹으면, 주변 땅의 기운조차 자기 위주로 바꿔버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윤구주는 이제 한 종파의 시조로 불릴 자격이 있는 존재였다.더 이상 강자를 넘어서 자신만의 도를 세우고, 전설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무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저건, 설마 성력?!”그 힘은 그렇게 압도적이진 않았지만 문제는 진짜였다. 가짜가 아닌, 순도 100%의 성력이었다.“말도 안 돼...저놈이 어떻게...”무명의 내면이 갈기갈기 찢어졌다.수행자에겐 한 단계 한 단계가 천벽과도 같다.특히 성의 경지에 이르기 까지는 그야말로 하늘과 하늘 사이를 걷는 자들만이 갈 수 있는 길이 였던것이다그리고 지금 윤구주는 그 문턱을 스스로 넘고 있었다.“무명! 넌 반성자일뿐! 육신만 있었으면 성인이 됐을지도 몰라.하지만 지금 넌 가짜
단 한 걸음,그 한 걸음만 넘기면, 그는 곧 성급 바로 직전 경지에 이른다.그리고 그 마지막 문턱을 박살내는 순간 반쯤 성인이 된 경지, 반성급이다!지금 이 자리, 그 반성급 경지에 선 자는 바로 인마라고 불리는 무명이었다.“과연... 화진의 인황, 구주왕이라 불릴 자격은 있군. 하지만 너도 알겠지. 지금 네 수준으론 몸을 직접 이 판에 던지지 않는 이상 나랑 맞붙을 자격조차 없어. 네가 그 잘난 원신출체를 어떻게 하겠다는지 구경이나 해보자고. ”무명이 입꼬리를 비틀며 코웃음쳤다.팔기귀일에 도달한 윤구주의 전투력은 이미 황의 지경을 뛰어넘었다.하지만 무명과의 경지 차이는 여전히 너무 컸다.실력은 분명 엄청났지만 격이 다르였다.지금 상태로도 보통의 황자의 경지까지 초월한 상태지만 무명을 상대하긴 아직 한참 부족했다.심지어 무명이랑 싸울 실력은커녕 참마검조차 손에 제대로 못 잡는 게 현실이었다.“팔기로 부족하다면... 제구기는 어때? 구기:적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온몸을 하얀 선기가 감싸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웃고 있던 무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뭐라고? 이건 네 따위가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잖아! ”그 순간, 무명조차 숨을 삼켰다.이건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광경이었다.근대에 들어서면서 도에 대한 수련는 사실상 약해졌다.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세상에 흐르는 천지영기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봉신전쟁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영기가 소모됐고 그 전쟁이 끝난 후 곤륜구역은 세상의 영기 90%를 신계에 봉인해버렸다.거기서 마음껏 영기를 탕진한 것도 모자라 바깥의 산수들까지 무분별하게 빨아들인 탓에세상의 영기는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고 말았다.결국 세상은 고위 수련자가 태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그래서 화진에선 500년에 한 번 황자가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이고 황자의 경지에 도달하는 건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었다.임정설이 황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처음부터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윤구주를 돕기 위해 왕
마기가 검종 제자들의 혼백에 침투하자 그 순간 제자들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이를 목격한 장인 대진인은 망설임 없이 즉시 결단을 내렸다. 오염된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정화해 버린 것이다.“모든 제자들아, 입문 첫날 내가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서요산은 찬란한 성지 화진 정통의 계승지다. 정은 사악함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정은 사악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서요산 제자들이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도의였다.입문과 동시에 깨달음을 얻은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도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저 화진 정통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서였다.그 순간 진요탑 외곽에서는 7대 진인을 중심으로 전 종문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진요탑을 사수하고 있었다.하늘을 뒤덮을 듯한 마기의 기세는 점점 거세져 어느새 검종의 경내 전역을 삼켜버렸다.검종 제자들은 마기를 막아내면서도 동시에 진요탑의 결계를 유지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정도를 지키는 일은 그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투쟁이었다.산 아래 상황도 마찬가지로 치열했다.온갖 요괴와 귀신들이 들이닥치는 가운데 임정설은 황운을 등에 업고 이씨 가문의 국운을 모두 모아 홀로 수백만 마기를 막아서고 있었다.백호는 마인으로 완전히 변신해 광란의 충격 속으로 몸을 던졌고, 스스로 마를 품은 채 적진을 난도질했다.청해는 천뢰신술을 펼쳐 수만 개의 천뢰를 무기로 변환시켜 온갖 사도와 악귀를 쓸어내기 시작했다.그 무렵 진요탑 내부에서 풍무극의 기세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구주야, 내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 내 500년 수련의 혼을 너에게 바치겠다."”풍무극의 준비는 이미 완료되었다.그는 미리 준비해 둔 제천 법기를 꺼냈고 전법이 발동되는 순간 그의 육신은 산산조각 부서졌다.그의 정기와 천지 정기를 모두 품은 찬란한 진신 영혼은 한 자루의 참마검으로 변해 윤구주 앞에 떠올랐다.“풍 종주...” 윤구주는 입술을 깨물었다.슬프고 아쉬
윤구주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국운의 기운이 그의 발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그가 진요탑의 문에 도달했을 무렵 모든 국운이 윤구주에게 집중되었다.윤구주의 주변으로는 천인신광이 펼쳐져 있었다.이 순간만큼은 그가 천지의 주재자 화진의 영겁을 관통한 유일한 존재였다.윤구주는 홀로 진요탑 안으로 들어섰다.겉보기에 거대한 산 같았던 진요탑의 내부는 참혹한 말세의 풍경이었다. 땅은 끝없이 펼쳐진 용암으로 뒤덮여 있었고 하늘에서는 강줄기가 거꾸로 흘러내리고 있었다.불과 물이 충돌할 때마다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거꾸로 흐르는 강물 위에 한 노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백발이 성성한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서요산 검종의 종주였다.밖에서 보이던 강건한 중년의 모습은 단지 화신에 불과했으며, 본체는 수백 년 전부터 이 진요탑에서 마인을 봉인해 왔다.서요산 검종 종주는 극도로 지쳐 있었고 이제는 마지막 호흡으로 버티고 있었다.“드디어 왔구나.” 서요산 검종 종주는 허약한 전음으로 말을 건넸다.“오백 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종주님.” 윤구주는 고개를 숙였다.풍무극은 현 서요산의 종주이자 당대 최고의 영웅, 화진 제일 검으로 불리던 남자였다.원래는 풍속을 다루는 수련자로 젊은 시절엔 검 하나로 화진을 호령한 사내로 알려졌다.그의 검은 아무도 궤적을 볼 수 없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500년 전 마인이 봉인되고 서요산의 조사가 승천한 후, 풍무극은 서요산의 거자로서 종주의 자리를 이어받았다.그날 이후 진요탑에 몸을 묻고 마인과의 싸움을 500년간 지속해 왔다.풍을 다루던 그였지만 지속적인 봉인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수속까지 수련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그가 마도에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이었다.“그래도 괜찮다. 다행히 이 시대에 또다시 인황이 나왔으니. 화진은 연달아 두 명의 인황을 배출했다. 임정설이 인황에 등극한 지금 쇠락하던 이씨 가문의 국운이 다시 살아났다. 그가 천지의
마인이 출현하면 곤륜 구역조차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서요산 검종의 진요탑은 이미 오백 년 동안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이는 곧 그 마인이 오백 년 동안 진요탑 안에 봉인되어 있었음을 의미했다.“우리가 가진 유일한 이점은 저 마인이 지난 오백 년간 수련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오백 년 동안 분명 무언가를 '깨달았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정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도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만약 그가 이곳을 벗어나 다시 한번 돌파에 성공하여 진정한 성인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 우리 종문의 선대 종주께서 이 마인을 직접 봉인하셨습니다. 하지만 선대 종주께서는 진요탑만으로는 그를 완전히 봉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아셨지요. 그래서 마침내 구천으로 비상하셔서 바깥 세계에 존재한다는 신기를 찾기 위해 떠나신 것입니다.”장인 대진인이 비밀을 털어놓자 임정설은 왜 그 옛날 서요산 검종을 창립한 선조가 갑자기 사라졌는지 이해했다.“구천을 비상했다고? 전설 속 그 이야기 설마 전부 사실이었단 말인가? 이 세상 위에 더 위대한 세계가 있다는 건가?” 임정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들은 바로는 성인이란 육지에서 신선이 된 자를 이르는 말이고 준성은 그보다 한 단계 아래 반쯤 신선이 된 존재라 하더군요. 우리보다 더 풍부한 영기의 세계가 과연 존재하는지는 이 몸 역시 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장인 대진인은 고개를 저었다.그때였다.진요탑이 거칠게 흔들렸고 모든 호법 제자의 얼굴이 딱딱해졌다.수련이 부족한 제자 몇몇은 그 자리에서 마기의 침식으로 피를 토했다.“모든 제자에게 고한다. 나와 함께 현문을 수호하라.” 장인 대진인이 친히 자리에 앉아 온 종문의 기운을 모아 마인을 억제하기 시작했다.마인은 일시적으로 제압되었지만 산 밖의 요괴들과 악귀들은 마기의 부름을 받아 사방팔방에서 서요산으로 몰려들고 있었다.임정설은 이제 자신이 이곳에 온 진짜 이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