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령전? 그런 게 있긴 하지. 하지만 그냥 사악한 영혼들일 뿐이야. 사신이라고 부르기도 어렵지.” “뭐? 이 망할 놈! 감히 우리 신주를 모욕하다니!” “모욕? 맞아! 내가 곤륜 구역을 누볐을 때 아사 신전을 쓸어버렸지. 영령전의 십만 개 사악한 영혼들을 내가 모조리 죽여버렸어. 그렇지 않다면 너희 뒤에 있는 그 아사 신전의 신사들이 왜 나를 이렇게 두려워하겠어?” 윤구주는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 북라국 총사령관은 잠시 멍해졌지만 잠시 망설인 후 다시 도끼를 들고 돌격했다. “너는 그래도 남자네. 그 가짜 신들보다 훨씬 나아. 하지만 화진을 건드리면 안 됐어.” 윤구주가 손가락을 튕기자 거대한 도끼와 함께 그의 두 팔이 부서졌다. 북라국 총사령관은 고통에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빠른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그의 시야가 빙글빙글 돌더니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신의 머리가 없는 몸통이었다. 윤구주는 북라국 총사령관의 머리를 한 방에 날려버렸다. 그리고 그 피 묻은 머리를 들고 북라국 대군을 향해 걸어갔다. 북라국 병사들은 이미 정신이 붕괴한 상태였다. 그들은 마지막 희망을 아사 신전의 신사들에게 걸었다. 그들이 의지하던 신사들은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무릎을 꿇고 항복했다. “구주왕, 항복할게요! 저희는 문씨 가문의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요. 곤륜 구역에서도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어요. 당신이 분명 흥미로워할 거예요!” “저희의 유일한 요청은 목숨만은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저희의 수련을 없애도 괜찮습니다!” 신사들은 말을 마치고 머리를 땅에 닿도록 숙이며 복종을 표했다. 윤구주는 대답하지 않고 남은 북라국 병사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는? 항복하면 전쟁 포로로 처리해 주겠다. 항복한다고 다 살 수는 없지만 모두 죽지는 않을 것이다. 계속 저항하면 너희에게 기다리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야.” 윤구주의 말은 단순한 경고였지만 이 말이 그들의 반항심을 자극해 자신에게 덤벼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울지 마, 내가 돌아왔잖아. 그리고 누군가는 분명 실망했을 거야.” 윤구주는 기를 모아 물을 만들어 이홍연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군중을 뚫고 문씨 가문의 일원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그 한 번의 눈빛에 그는 거의 죽을 지경이었다. “구주왕! 모든 것은 저와 무관합니다! 저는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우리 아가씨의 명령을 어길 수 없었습니다!” 그 사람은 무릎을 꿇고 울부짖었다. “그런 말은 나에게 하지 마. 네가 죽을 만한지 아닌지는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야. 국법이 판단할 일이지.” 윤구주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십만 대군은 전진하며 분리된 북라국 군대를 전멸시켰다. 만약 진동왕이 소리치지 않았다면 그들은 항복한 십수만 명도 함께 죽였을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쉬워도 마음을 죽이는 것은 어려워. 어떤 나라에도 선과 악이 공존하지. 죽임을 멈추지 않으면 원한도 끝나지 않아. 중요한 것은 권력자들을 굴복시키는 거야.” 진동왕은 진지하게 말했다. 과거를 겪은 그는 전쟁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소위 전쟁이란 권력자의 사욕에 불과하다. 권력자의 야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들은 원한을 이용해 세력을 만드는 데 능숙하다. 문명이라는 큰 국면에서 봐도 마찬가지다. 권력을 쥔 자들이 가장 잘하는 일은 시비를 뒤엎고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북라국이 이번에 명분 없이 화진을 침공했을 때도 그들은 병사들을 동원하며 일련의 정당한 이유를 붙였다. “아저씨 말이 맞아요. 근본은 아사 신전에 있고 북라국의 왕은 광신적인 종교 주의자예요.” 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진동왕은 살기가 가득한 십만 대군을 진정시키고 윤구주에게로 다가왔다. 윤구주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진동왕은 눈물을 흘리며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아저씨, 이렇게 나이가 들었는데 어째서 아이처럼 우는 거예요?” 윤구주는 농담을 던졌다. “그게 같아? 너 같은 인물이 화진에서 태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아? 우리나라는 너처럼 천
엄연은 윤구주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성 아래의 시체 더미를 가리키며 말했다. “보세요. 그들은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고 누군가의 아버지예요. 화진도 그렇고 북라국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들은 가장 안전한 곳에 숨어서 전사들이 줄줄이 쓰러지는 것을 마치 남의 일처럼 바라보고 있어요. 전쟁에서 승리하면 공로와 영예는 모두 그들의 것이 되죠. 전쟁에서 패배하면 그들은 복수를 꿈꿔요. 패배로 국가 경제가 무너지면 고통받는 것은 누구 일가요? 복수를 위해 싸울 때도 목숨을 잃는 건 언제나 같은 부류의 사람들의 자손들이에요.” 이 말을 하며 엄연은 윤구주를 깊이 바라보았다. 윤구주는 그 속뜻을 이해했다. “엄 장군, 안심하세요. 이번에 종맹과 전쟁을 벌이는 것은 모든 위험 요소를 일거에 해결하기 위함이에요. 우리 이 세대의 희생으로 화진의 천추만대의 평화를 얻으려 합니다.” 윤구주의 눈빛은 단호했다. 이 결심은 끝까지 흔들리지 않을 것이었다. “네, 구주왕이 있으니 안심이 되네요.” 엄연은 무거운 고개를 끄덕이며 윤구주 뒤에 서 있는 현모와 사기가 충만한 십만 명의 신세대 대군을 바라보았다. 장군과 병사들이 하나가 된 모습을 보며 그는 이제 안심하고 은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 장군들이 이제는 뒤로 물러나 쉴 때가 됐다고 생각하던 순간, 윤구주의 날카로운 황금빛이 번뜩이며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장군, 북경에서 이렇게 많은 일이 일어났으니 아직도 당신이 큰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은퇴는 서두르지 마세요.” 엄연은 잠시 멍해졌다가 몇몇 동료들과 눈을 마주치며 모든 것을 이해했다. 원래 엄연이 은퇴하면 북경왕이 북역을 지킬 예정이었다. 그러나 북경왕이 갑자기 실종된 이후로 돌아오지 않았고 왕부의 대장들은 죽거나 실종되었다. 북역 삼주의 군사력도 심각하게 손실을 보았다. 거의 모든 장군이 전사한 상태였다. 엄연은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는 몰랐지만 현재 상황을 보면 실종된 북경왕도 이미 목숨을 잃었을 가능성이 컸다. 역시나
“형님!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형님이 죽을까 봐 정말 무서웠어요.” 공수이는 윤구주를 붙잡고 울부짖었다. “울면 울지, 코물 같은 건 내 옷에 묻히지 마! 저리 비켜!” 다른 사람들이 윤구주의 생사를 걱정하는 것은 윤구주가 나라를 지키는 중심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국면이 흔들리지 않도록 걱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수이는 순수하게 윤구주를 잃을까 봐 두려웠다. 윤구주는 비록 그를 꾸짖었지만 공수이는 정신없는 구석이 있어도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돌격대에 나섰다. 공수이는 여섯째 공주 이홍연을 찾아갔을 때 그는 이미 살아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때 공수이는 공씨 가문을 원망했다. 적국이 국문을 넘어 화진의 무술을 짓밟으려 했는데 공씨 가문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던 건 아니야. 공씨 가문도 사람을 보내려고 했잖아?” 윤구주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사람을 보내려고 했지만 육도진이 금지 무기로 청관을 폭격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철수 명령을 내렸다. 윤구주는 강요하지 않았다. 이런 위기 속에서도 화진의 백개 가문 중 공씨 가문만이 나설 수 있었다. 화진의 안정을 유지하려면 단순히 살육만으로는 안 된다. 도울 것은 도우고 상을 줄 것은 상을 주어야 한다. 윤구주는 이미 진동왕에게 공씨 가문을 포상하는 문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구주왕, 기자회견 장소가 준비되었습니다. 모두 준비되었고 구주왕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모가 보고했다. “알았어.” 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수이를 밀어내고 현모를 따라 기자회견 장소로 향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정부 중심에서 열렸고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윤구주가 회장에 들어서자 현장의 장군들이 일제히 윤구주에게 경의를 표했다. 카메라 렌즈는 윤구주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윤구주가 전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화진의 거의 모든 가정에서는 TV나 휴대폰으로 이 생중계를 시청하고 있었다. 윤구주의 모습이 화면에 비치자
“모두 국주님이 지하 궁전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지?”윤구주의 물음에 현장에 있던 장군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윤구주는 그들의 반응을 눈여겨보고 있었다.진동왕이 조카를 걱정하는 것 외에 나머지 장군들은 7일 후의 대전만 생각하며 임정설의 생사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지금은 새로운 국운이 윤구주로 인해 나타났고 그에게 국운이 집중되어 윤구주가 화진에서의 영향력이 이미 임정설을 훨씬 넘어섰다.하지만 이는 윤구주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자기가 임정설만 못하다고 생각한 윤구주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을 이었다.“국주님이 나에게 화진 군무를 책임지라는 조서를 남기셨다. 나는 진동왕을 북역 삼주의 시장으로, 현모를 구주군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며 엄후작을 북주의 시장으로 승격시켜 여전히 청관을 지키게 한다. 나머지 장군들도 모두 임무가 맡겨질 것이니 북라국의 난리를 평정한 후에 공을 논하여 상을 주겠다.”이 결정은 윤구주가 미리 그들과 상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모두 아무런 반응 없이 받아들였다. 다만 엄후작이라는 말이 엄연을 혼란스럽게 했다.“구주왕님, 저를 왜 엄후작이라고 부르시는 겁니까?”엄연이 의혹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윤구주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무슨 뜻 이긴 장군은 항상 후작에 봉해지지 못해 고민하지 않았었나?”말을 마친 윤구주는 화진 군기처에서 발급한 조서를 꺼내 장군 엄연을 엄후작에 봉하고 동시에 후작의 인장을 꺼내 엄연에게 건네주었다.그의 말에 엄연이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작에 봉해지는 것은 모든 장수의 꿈이었지만 후작에 봉해지기란 쉽지 않았다.공이 높아도 평생 후작에 봉해지지 못한 장수들이 많았으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엄연도 그들과 비슷한 처지였다. 모두 나라를 지키는 데 공이 컸고 만천하에 이름을 떨치고 있었지만 전쟁에서 세운 공이 없었다. 그 때문에 임정설이 그를 후작에 봉하지 않았던 것이다.소원이 이루어진 엄연은 그 기쁜 소식이 믿어지지 않았고 꿈만 같았다.“
윤구주는 임홍연이 무엇 때문에 풀이 죽어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말을 꺼내지 않았다.“우리 공주님 무슨 일이야? 누가 또 널 화나게 했어? 설마 공수이 그 자식이 또 헛소리를 한거야?”“아니야. 그냥 일주일 후의 전쟁이 걱정돼서 그래.”임홍연은 입을 삐죽이며 땅에 쪼그려 앉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전쟁이 걱정된다고? 내가 정의의 군대를 이끌고 화진을 침범한 적들을 처단할 건데 뭐가 걱정돼? 병사들의 마음도 하나로 뭉쳤잖아. 게다가 나는 이보다 더 어려운 전쟁도 다 겪어봤어. 북라국 따위야 별거 아니야.”윤구주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열 개 나라의 강적들도 다 물리쳤었는데 이미 쇠퇴의 길에 들어선 북라국은 말할 것도 없었다.“너무 방심하지 마. 북라국 뒤에는 아사 신전이 있잖아. 그리고 곤륜에 대해서도 들은 바가 있어. 세계는 구주와 오방으로 나뉘는데 구주는 우리 화진을 뜻하고 오방은 곤륜을 말해. 북라국은 곤륜 북방에 속하는데 그곳은 빙신전과 아사 신전의 세력권이야. 그 둘은 원래 사이가 안 좋지만 네가 군대를 이끌고 북라국을 공격한다면 그들은 손을 잡고 맞서 싸울 거야. 북라국은 작지만 두 뿌리가 깊은 신전이 있어서 조심해야 해. 게다가 문씨 가문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너를 방해할 것이 틀림없어. 네 말처럼 그렇게 쉽게 넘어갈 상대가 아니야.”임홍연이 미간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이 말을 들은 윤구주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감탄을 표시했다.“음, 그렇다면 공주님의 생각으로는 어떻게 해야 이 전쟁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을까?”윤구주가 다시 물었다.“반드시 이길 수 있는 전쟁이 어디 있어? 지리적 우세나 민심은 우리가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지만 하늘의 뜻은 예측할 수 없어. 하지만 지금 네가 새로운 국운을 얻었고 국운이 네 편에 있으니 네가 직접 군대를 이끌면 이 전쟁은 질 수가 없어. 하지만 병법에도 말했듯이 최고의 전략은 모략으로 이기는 거야. 북라국을 상대하는 건 단순히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거로 끝나는 게
“임성진 할아버지께서도 말씀하셨잖아. 너는 화진의 새로운 왕일 뿐만 아니라 500년 만에 한 번 나오는 황자라고. 네가 황위에 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야. 나도 네가 새로운 황제가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다른 사람이었다면 옛 왕실의 결말은 참혹했을 거야. 임씨 가문의 임무는 이미 끝났어. 이제는 네가 우리 임씨가 이루지 못한 것릏 이어가야 할 때야.”임홍연의 말은 일리가 있었고 이는 새로운 군주가 듣고 싶어 할 좋은 말이었다. 하지만 윤구주는 그녀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그 말들은 누가 가르쳐 준 거야? 설마 진동왕이야? 그래, 진동왕은 이미 군대에서 위엄을 세웠고 지금은 사람을 쓸 때라 그가 없어서는 안 되지. 진동왕은 임씨 황실의 왕이기도 하고 새로운 왕조의 왕이기도 해. 어느 쪽이 이기든 손해 보는 일은 없지.”윤구주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임홍연은 어안이 벙벙해져 윤구주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는 윤구주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건 그녀를 믿지 않는다는 뜻이었다.너무 화가 났지만 윤구주가 황위에 오를 것을 생각하면 그녀는 윤구주를 화나게 할 수 없었고 오히려 옛 왕실의 신하들을 위해 살길을 마련해야 했다.다시 말해, 진동왕이 새로운 왕조에서 왕이 되는 것은 옛 왕실 구성원들을 보호하는 길이기도 했다.“아니, 진동왕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 없어. 그분은 자신의 능력으로 군대에서 높은 자리에 올랐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내가 이런 말을 너한테 하는 건 우리 두 사람의 관계 때문이야...”임홍연은 더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가슴이 베이는 듯한 고통이 밀려오며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계속 말해 봐. 우리가 무슨 관계야?”윤구주는 한 발자국씩 다가가며 그녀에게 얼버무릴 기회를 주지 않았다.임홍연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화진의 천하와 백성을 위해서 하는 말이야.”“나는 지금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 묻는 거야.”윤구주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단호하게 말했다.“우리는 친구야! 누구든
윤구주는 임홍연의 허리를 끌어안아 올려 자리에 앉혔다.“윤구주... 잠깐 내 말을 들어봐.”윤구주는 두 손가락으로 임홍연의 붉은 입술을 가볍게 막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무력으로 천하를 평정할 수 있고 나라를 지킬 수 있지만 나라를 다스릴 재능은 없어. 공주님은 국주의 가르침을 깊이 받아들였고 조정의 신하들과도 많이 접촉잖아. 근데 그 서생들은 나를 엄청 무서워해. 나는 나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마음 놓고 쓸 수 없어. 다른 건 일단 제쳐두고 이번 북라국 침략을 막아낸 일만 봐도 장병들이 네게 복종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잖아. 나는 나라를 다스릴 재능이 없으니 이 국주의 자리는 역시...”이때 임홍연이 벌떡 일어서서 그의 말을 끊었다.“윤구주! 난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네가 올 줄은 몰랐다고. 내가 탱크들을 청관으로 소집했을 때는 살아서 돌아갈 생각이 없었어.”“공주님, 서두르지 말고 내 말을 끝까지 들어봐.”윤구주는 임홍연을 강제로 자리에 앉히고 나서야 다시 말을 이어갔다.“일주일 뒤에 전쟁이 시작될 거야. 이 일주일 동안 공주님은 나를 대신해 북역을 지켜줘. 나는 서울로 돌아갈 거야.”“서울로? 아버지를 구하러 가는 거야?”임홍연은 그가 무슨 일을 하려 하는지 깨달았다.“맞아. 나는 화진의 구주왕이야. 국주님이 위기에 처했는데 어떻게 구하지 않을 수 있겠어? 게다가 나 윤구주는 체면을 아끼는 사람이야. 만약 가지 않는다면 서생들이 날 욕할 거야.”윤구주가 웃으며 말했다.“누가 감히 널 욕해! 네가 아버지를 구하지 않는다고 해도 누구도 너를 비난할 수 없어!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나라와 백성이 군주보다 중요하다고 가르치셨어. 전쟁이 임박했는데 사령관이 없으면 안 된다고. 군주는 죽을 수 있어도 국사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임홍연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하자 윤구주가 입을 열었다.“공주님 말이 맞아. 하지만 내가 방금 말했듯이 나 윤구주는 나라와 백성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야. 국주님은 나의 첫 번째 스승이셨
화진에서 수행하는 무인들은 무도에 몸담은 사람으로 간주되며 윤씨 일가 역시 무문 출신이니 당연히 무도에 몸담은 사람이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윤구주가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얘기인데 그 둘은 윤구주의 반응을 보며 비웃고 있었다. 윤구주가 무릎을 꿇지 않더라도 망신을 당할 거라 확신하며 즐기고 있었다.하지만 윤구주는 되려 웃으며 말했다.‘곤륜 지역 이야기를 나에게 한다고?’“너희 혹시 곤륜 지역에서 수련하다 머리를 다친 거냐?”“나를 사신이라 부르는 것도 너희 곤륜 지역 아니더냐. 그 칭호는 내가 수많은 신을 학살하며 얻은 것이다. 아사 신전조차도 내 손에 멸망했는데 너희 같은 광대 둘이 내 앞에서 죽고 싶어 안달인 거냐?”“풋.”그 말에 흑절은 참지 못했고 백살도 얼굴을 찌푸렸다.“좋아, 윤구주. 왕이라 해도 우리 앞에선 개미나 다름없다. 너희 화진의 인황 따위가 뭐 대수냐? 제신들의 아래는 모두 개미일 뿐이다. 너도 마찬가지다.”백살이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더 말이 필요해? 바로 제압하자. 놈의 무릎뼈를 뽑아내서라도 무릎을 꿇리든 엎드리든 하게 해주겠다.”흑절의 귀기가 뿜어져 나오고 음산한 검은 안개가 수백 미터를 덮었고 음산한 귀기가 퍼지는 가운데 수많은 쇠사슬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윤구주! 이건 내 절기인 삼라쇄명결이다. 그 화진 무술의 최강자였던 좌맹주도 이 기술에 죽었다.”흑절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시에 쇠사슬이 윤구주의 몸을 꽁꽁 묶었다. 쓱.흑절은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다가갔고 백살은 뒤에서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윤구주도 별거 아니군. 네가 아사 신전을 멸했다 해도 분명 화진의 금기 무기를 썼겠지. 너희 같은 하찮은 인간들이 그런 변태 같은 무기를 만들어낸 것부터 죽어 마땅한 일이다.”사실 그 무기는 화진만이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화진은 단지 그 무기를 소유한 대국 중 하나일 뿐이며 그 무기를 사용하면 먼 거리에서 정밀한 타격이 가능해 누구라도 피할 수 없었다. 아무리 절정의 선경 대원만의
윤구주는 조심스럽게 묘비를 어루만지며 말했다.“편히 잠드세요. 왕이 반드시 당신들의 원수를 갚아드릴 겁니다.”바로 그때, 숲속에서 갑자기 짙은 안개가 피어올랐고 안개 너머로 검은 그림자들이 윤구주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원수를 갚겠다? 윤구주, 네 목숨은 이미 끝났어!”“이곳에 함께 묻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편히 쉬게 될 것이다.”날카로운 웃음소리와 함께, 안개 속에서 검은색과 흰색의 두 그림자가 나타났다.그들은 큰 도포를 입었고 얼굴에 검은색과 흰색 가면을 쓰고 있었으며 한 명은 혼을 가두는 쇠사슬을 들었고 다른 한 명은 검은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그들은 음산하고 기이한 분위기를 풍겼다. 귀신 같은 분위기와 음산한 안개가 어우러져 마치 저승사자가 목숨을 거두러 온 것 같았다.그 모습을 본 윤구주는 비웃으며 말했다.“누군가 했더니, 흑절과 백살이군.”흑절과 백살은 한때 화진 무술계에서 최고라 불렸던 자들이다.화진 무술계에는 무도 연맹의 총회장이라는 직위가 있었고 그 총회장은 국방부 직속의 강자였다.윤구주가 유명해지기 전에 세 명의 연맹 총회장이 있었는데 모두가 구오 지존의 고수였고 특히 마지막 총회장은 국주 임정설과도 사적으로 친구 사이였다.하지만 그 셋 모두 흑절과 백살 손에 죽었고 둘은 마지막 총회장을 암살한 이후 자취를 감췄다.사람들은 그들이 화진의 국방부와 왕실의 추적을 피해 도망친 줄 알았지만, 사실은 곤륜 지역으로 들어가 수련 중이었다는 것을 윤구주는 알고 있었다.이미 몇 년이 흘렀고 그들은 곤륜 지역에 들어갈 때는 중경 구오 지존이었지만 이제는 출관하여 극 신급 절정에 이르렀다.여전히 재능은 있었다.“윤구주! 넌 당연히 우리를 알 것이다. 오히려 우리에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지. 우리가 그 국주 측근인 무도 총회장을 죽였기에, 국주가 너를 전력으로 키울 수밖에 없었을 테고 그렇지 않았다면 네가 구주왕이 될 수 있었겠어?”백살은 비웃으며 말했다.흑절은 더 나아가 윤구주에게 무릎 꿇고 두 선배에게 절하라고 명령했
청해는 임정설과 같은 곤륜 지역 출신이기에 그의 과거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윤구주라면 가능할지 몰라도 임정설은 절대 해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청해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복수하겠다면서 굳이 본인이 직접 나설 필요가 있냐는 의문이 들었다. 어차피 목표는 원수를 죽이는 것인데 윤구주에게 부탁해도 될 일이었을 텐데 말이다.그에게는 임정설의 이번 행동이 단순히 죽기 위한 길처럼 보였다.“넌 또 움직이지 않겠지. 사람 인생은 어떤 일을 잊을 수도 있고 저버릴 수도 있어.우리 화진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명예조차도 때로는 내려놓을 수 있어.하지만 단 하나, 선조들의 뜻만큼은 절대 저버려선 안 돼.”“국주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은 그 때문에 죽었지. 그 당시 국주는 국사 때문에 그녀를 저버렸어.”“그녀는 국주를 위해, 그리고 국주로 인해 죽었어. 그 일은 국주의 마음속 깊은 병이자 고통이 됐고, 그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닥쳐올 시련을 맞이하는데 걸림돌이 될 거야. 그런 상황에서 국주가 생사를 신경이나 쓰겠어?”“이번 고비를 넘긴다면 국주에게도 살길이 조금은 열릴 것이다.”“세상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지. 내가 황제 자리에 오르고 성인의 경지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임씨 일가의 쇠퇴와 임정설 황제의 몰락이었다. 그러나 나는 화진의 옛 왕이며 현재는 황제이다. 얼마나 많은 선조가 지켜보고 있는가? 나라를 위한 대의, 화진의 부흥 앞에서는 개인의 영광과 치욕, 가문의 흥망도 모두 민족 앞에서는 물러서야 한다.”“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자면 우리 화진은 의리와 정을 중히 여긴다. 큰 뜻도 중요하지만 작은 정과 의리 또한 반드시 지켜야 한다. 국주의 이번 선택은 자기 자신을 위한 길이었고 아주 조금은 사적인 욕망을 위한 것이었지. 나는 그의 제자로서 그 뜻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 나 역시 개인적인 감정과 욕망이 있기에 그를 말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윤구주는 한숨을 내쉬었다.이것이 바로 화진인이다.살아
무명 마인이 처단된 지 한 달 후가 될 무렵 서요산의 수령대진은 오랜 침묵 끝에 마침내 반응을 보였다.자줏빛이 도는 붉은 광채가 마치 우산처럼 윤구주의 육체 위로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이 모습을 본 서요산 장인 대장인은 망설이지 않고 전력을 다해 영기를 지키며 윤구주의 진령을 지켰다.그 자줏빛 광채는 조금씩 윤구주의 몸속으로 스며들었고 마지막 한 줄기 미세한 빛까지 모두 들어가자 윤구주의 육체는 마침내 생기를 되찾았다.“윙!”윤구주는 마치 다시 태어난 것처럼 부활했다.윤구주가 눈을 뜨는 순간, 눈에서 나온 황금빛 광채는 화진의 경계 넘어까지 한눈에 꿰뚫어 보는 듯했다.하늘과 땅의 정수를 느끼고 천지의 조화를 거머쥐며 구중현천을 향해 비상한다.이것이 바로 전설 속의 성경이었다.“돌파한 겁니까?”장인 대장인은 놀랍고도 기뻤다.만약 윤구주가 정말로 돌파에 성공했다면 이는 화진에 또 하나의 성인이 탄생했다는 의미였다.고작 20년 남짓 수련한 수련자가 성인에 도달하고 또 게다가 육신으로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이건 고금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그야말로 윤구주는 전무후무한 존재가 된 것이다.정신을 차린 윤구주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경지는 도달했지만, 아직 수련이 조금 부족해요. 아무래도 수련 기간이 너무 짧았으니까요. 충분히 축적할 필요가 있어요. 지금 저에게 필요한 건 제대로 된 수련이에요. 지금이라도 몇 년간은 수련을 할 수 있을 거예요.”윤구주는 분명히 돌파하긴 했지만, 성인의 문턱은 넘지 못했고 대원만 경지의 정점에 도달했으니 지금의 그는 최강의 황자라 불릴 만하다.윤구주의 원신이 육체로 돌아왔다는 소식은 곧바로 서울로 전해졌다.육도진은 윤구주가 1년 반 정도 지연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설령 원신이 몸으로 돌아왔다고 해도 출교를 이유로 다시 1년 반 정도 수련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하아... 윤구주가 출관했다면 이제는 국주를 막을 자는 없겠구나.”“국사는 국주가 감당해야 하는데.
선조가 구중현천으로 승천하고 종주였던 풍무극은 죽음을 맞이하며 도마저 끊겼다. 요마도 모두 제거되었으니 이제 서요산은 과연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서요산의 사람들이 방황하고 있을 때 윤구주가 진요탑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구주야!”장인 대장인과 서요산 제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심하게 다친 몸을 이끌고서도 윤구주를 맞이하려고 했다.하지만 눈앞의 윤구주는 눈빛이 텅 비어, 마치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처럼 생기가 없었다. 만약 진인들이 신념으로 윤구주의 기운을 감지하지 못했더라면 이미 마인에게 빙의된 것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아마 전설 속의 원신출교를 쓴 것 같아.”그때 도착한 임정설은 그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신출교는 성인의 경지에 이른 자만이 가능한 일이다.”장인 대장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수련이 부족한 사람이 억지로 원신출교를 하면 심각한 후유증이 따라오기 때문이다.바로 그때 윤구주의 양혼이 하늘 위로 떠 올랐고 수천 자에 달하는 양혼 성령의 기운이 화진의 절반을 덮었다.“장인 대장인, 지금은 고민할 때가 아닙니다. 당장은 서요산의 미래를 정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일단 지금은 진을 세워 저를 호위해주시고 제 원신을 육체로 돌아가게 한 뒤 얘기합시다. 운이 나쁘면 나중에 혼수에 들어가야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 무명 마인처럼 사도로 들어서야 할지도 모르니까요.”장인 대장인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요산의 존재 여부는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모든 제자는 들어라! 수령진을 세워 구주왕을 호위하라!”멀리서 이 말을 들은 백호는 윤구주가 죽은 줄 알고 울부짖으며 달려와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무덤이라도 파려는 기세였다.“이 자식! 그렇게 내가 죽길 바랐냐?”윤구주의 음성이 들려오자 백호는 또 깜짝 놀라서 얼어붙었다...그 후 며칠 동안 서요산은 윤구주를 보호하며 호법을 세웠다. 그 목적은 단 하나, 서요산의 영기 흐름을 안정시켜 윤구주의 원신이 무사히 육체로 되돌아가게 하기 위함이
인간 세상에서의 수련은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구주왕의 명성을 얻는 것이었고 이 모든 것은 인황번을 제작하기 위함이었다.그때부터 이미 윤구주의 스승들은 그에게 목표를 정해주었다.언젠가 윤구주가 혼자 힘으로 무명의 마인을 죽일 수 있게 되면 그때야말로 진정으로 출사의 날이 온 것이다.인황번은 백성들의 마음을 모아 인간계의 황제 기운을 더하고 ‘반드시 죽이고 반드시 이긴다.’는 굳건한 신념이 실체화된 에너지로 변하여 무명 마인을 향해 쏟아진다.일격으로 마를 처단하는 기술, 이 기술은 인간계에서 가장 강력한 절기라고 할 수 있다.무명의 마기가 무너지며 인황번은 바로 음신사체를 강타했다.만장의 무지갯빛이 무명 마인의 신혼을 단숨에 관통했다.이 모든 과정에서 막강한 반선인 무명은 아무런 반항도 할 수 없었다.“윤구주, 나는 인정 못 해. 왜 화진에서 너 같은 괴물이 나온 거냐. 하늘이 불공평하다.”무명 마인은 수백 년 동안 쌓은 도행을 믿고 있었기에 신혼이 관통당했음에도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그러나 그 마지막 포효가 끝난 후 신혼은 한순간에 무너졌다.윤구주의 말이 또 맞았다.무명은 끝내 도에 들지 못했고 따라서 ‘의지’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몸과 신혼이 무너지면서 의식도 함께 흩어졌다.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신혼을 쓸어가듯 흩어지게 만들며 결국 티끌조차 남기지 않았다.“무명은 평생을 수련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구나.”서요산의 선조가 탄식하며 말했다.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대재앙이 오늘에서야 비로소 해결되었고 그로 인해 산조의 오래된 근심도 마침내 완전히 사라졌다.“선조 님, 정말로 ‘구중현천’이라는 게 존재하나요? 그 위에는 대체 뭐가 있죠?”윤구주가 호기심에 물었다.그 질문에 선조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윤구주, 보아하니 이번 여정에 꽤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군. 무명 같은 마인을 처단하는 그 큰 업적을 세우고도 오히려 구중현천이 더 흥미롭다니.”“무명을 죽이는 건 예정된 일이었어요.
그는 다시 한 번 서요산 검종의 선조에게 봉인당할 가능성이 있지만 윤구주의 손에 패배할 가능성은 절대 없었다.딱히 다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수백 년 동안 수련해 왔는데 고작 윤구주 하나 제대로 제압하지 못한다면 애초에 수련 따위는 하지 않는 편이 낫다.“그래? 근본도 없고 이름도 없는 네가 날 죽이겠다고? 넌 자격 없어.”윤구주는 손가락을 펴 검을 형성했고 만법귀일하더니 선기가 검으로 응집되었다.그가 만들어낸 한 자루의 주선검은 허공을 가르며 떠올랐고 그 검의 날카로움은 서요산 선조조차 압도했다.무명의 마기는 검의 기세에 의해 모두 흩어져 사라졌다.마기가 사라지자 무명의 진면목이 드러났다.소위 반선이라는 자도 결국엔 그저 음신사체일 뿐이었다.예전에 윤구주와 싸웠던 그 사악한 사술들과도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었다.“너 같은 자가... 감히 신선이 되겠다고? 이 길은 너는 오를 자격이 없어.”윤구주가 검을 휘두르니 막강한 선력이 무명을 완전히 억눌렀다.이로써 승부는 분명해졌다. 무명은 잠시 놀라더니 갑자기 미친 듯이 웃어댔다.“네가 날 이긴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데? 넌 날 죽일 수 없어!”“수련이 부족하다면 네가 아무리 선도를 미리 깨달았다 해도 경지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넌 날 죽일 힘이 없어.”“서요산 늙은이, 너도 날 다시 봉인하려는 생각은 접어. 내가 이 세상을 뒤엎지 못한다면 차라리 이 세상과 함께 죽어버리겠다.” 마기가 다시 한 번 폭발하듯 분출되고 위험을 감지한 서요산 선조는 즉시 나서려 했다.“윤구주, 저 녀석 지금 자폭하려 하고 있다. 만약 이 자가 자폭에 성공한다면 세상이 멸망하지 않더라도 우리 화진 9주 중 최소 세 개 주의 생명이 몰살될 것이다.”“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화진의 국운 역시 큰 타격을 입게 된다.”이에 소요산 선조도 더는 손을 놓고 있을 수 없게 되었다.“하지만 인간 세계의 시비는 나 윤구주가 직접 심판하겠다. 무명은 인간 세계의 마이니 반드시 내가 처단할 것이다.”윤구주의
임정설과 청해는 하늘의 호천경 하나가 백만 마리의 요괴들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이것이 바로 전설 속...”임정설의 지금까지 믿어왔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신의 경지를 넘는 존재가 진짜로 존재한다고? 인간이 정말 신선이 될 수 있단 말인가?’서요산 검종의 장인 대장인과 제자들이 하늘을 향해 절을 올렸다.“서요산 선조님께 인사 올립니다.”백호는 제자리에서 얼어붙었다.늘 미치광이 같던 그에게 있어서는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 요괴들은 다 어디로 간 거지? 설마 저 거울이 재앙의 근원이었던 건가?”백호는 눈을 부릅뜨며 당장이라도 하늘로 솟아올라 거울을 부수려 했으나 청해가 간신히 그를 막았다.한편 진요탑에서는 서요산 선조의 법신이 강림하며 온몸에 감도는 선기로 무명을 억누르고 있었다.“서요산의 늙은이, 네놈 아직도 죽지 않았어? 구현천도 널 죽이지 못했단 말이냐!”무명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또다시 이 성가신 서요산의 늙은이가 나타날 줄이야.“나는 하늘과 함께 움직이며 하늘의 도를 대신해 정의를 집행한다.네가 죽지 않으면 하늘의 재앙이 끝나지 않는다. 너를 죽이지 않고서야 어찌 구현천도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겠느냐!”선인의 목소리가 온 세상을 뒤흔들었다.그 선기는 무명을 억제하는 동시에, 이번에는 윤구주를 돕기 위한 것이 확실했다.“구주야, 마음껏 싸워라! 만약 네가 이 마귀를 죽이지 못하면 그때는 내가 나서겠다.”이보다 더 확실한 지원군이 있을까. 누구라도 이런 말 한마디면 충분할 것이다.그러나 윤구주는 하늘이 내린 영광을 지닌 자이자 천하의 구주, 오방의 통치자로서 절대적 존재이다.“선조님의 말씀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오늘 선조님께서 오지 않으셨어도 저는 아마 그를 반드시 죽였을 것입니다.”“저 윤구주가 어떻게 이 자를 베어버리는지 지켜보십시오.”윤구주의 기세 넘치는 말에 서요산 선조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임정설이 일으킨 이씨 가문의 기세조차 마물들에게 잠식당해 사라지고 있었다.청해는 말 그대로 처참한 상태였다. 이젠 자기 몸 하나 제대로 지킬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나마 임정설이 죽을 각오로 지켜주지 않았다면 진작에 목숨이 끊겼을 터였다. 결국, 화진의 국주가 자신의 목숨을 지켜준 것이다. 이 순간만큼은 죽는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음 생이 있다면... 화진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줘. 그게 아니라면. 그냥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게 해줘... ”청해는 하늘을 향해 처절하게 외쳤다. 임정설은 고개를 번쩍 들고 한 번 더 울부짖었다. 그 울음은 황자의 기운을 불러왔고 서요산 일대의 천기와 섞여 거대한 진룡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황도기운과 진룡을 하나로 모든 요마를 베어낸다! ”그 역시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대로 더는 버틸 수 없다면 풍무기처럼 자신의 마지막 의지를 국운에 녹여야 할 것이다. 진요탑 안. 이 일대 세계 전체가 마기에 잠식되어 만물은 스스로 죽음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런 데 무명은 더 이상 흥분할 수 없었다. “하하! 인황이 뭐라고? 도를 얻은 건 나다. 나는 이미 진정한 길의 끝을 보았다. 내 의지는 구천 현천을 관통한다. 하늘도 날 감당할 수 없어. ”그 순간 하늘과 땅이 동시에 울컥하며 뒤틀렸다. 무언가 말도 안 되는 존재가 깨어나는 기운이었다. 이 작은 진요탑 속 공간조차 그걸 담아낼 수 없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무명이 눈을 치켜떴다. “또 뭘 하려는 거야? 설마... 윤구주 너 나를 봉인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네 실력으론 날 봉인 못 해. 아니, 가능하다 쳐도 목숨을 걸어야만 가능하지. 하지만 지금 넌 그 목숨을 걸어도 겨우 나를 세 손가락만큼 다치게 할 수 있을 뿐이야. 그 정도 피해라면 기꺼이 감수하지. 와봐, 날 얼마나 벨 수 있나 보자고. 병이 오면 장수로 막고, 물이 오면 흙으로 막는 법이지. 그러니 한번 보자고 구주왕이라는 놈의 마지막 발악이 어떤지.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