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이 다가가도 그 여자아이는 하나도 무서워하지 않고 입에 사탕을 문 채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황준이 말했다. “꼬마야, 너 왜 혼자 여기에 있어? 아빠랑 엄마는?” 여자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웃기만 하였다. “도로 위에서 이렇게 노는 건 아주 위험해. 빨리 아빠, 엄마한테로 가.” 황준은 여자아이가 갈 줄 알았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꼬마야, 아저씨 말 들었어? 여긴 위험해, 그러니 빨리 여기서 떠나.” 이때, 여자아이가 손을 들어 허머 차를 짚었다. 그 차는 다름 아닌 채부처네가 타고 있는 차였다. “아저씨, 저 차에 타고 있는 놈이 우리집에 갚아야 할 돈이 있어요. 그러니 그 놈 보고 우리 집에서 빌린 돈을 갚으라고 하면 안 돼요?” 여자아이가 말했다. 빌린 돈이라니? 황준은 의아했다. 이 여자아이는 6, 7살 밖에 돼 보이지 않는데 수금하러 왔다니? “꼬마야, 사람 잘 못 본 거 아니야? 우리 차는 군대 차량인데 무슨 수금을 하려 하는 거야?” 황준의 말에 여자아이가 대답했다. “제가 찾는 차가 바로 아저씨의 군대 차량이에요.” “꼬마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린 창용 부대의 압송 차량이야. 여기서 장난치지 말고 빨리 여기서 떠나.” 황준의 말이 끝나게 무섭게 여자아이의 얼굴색이 변하더니 이렇게말했다. “귀찮게 하네.” 말을 마친 여자아이는 오른손을 들더니 “악”하는 비명이 들려오더니 황준은 한 쪽 눈을 막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의 왼쪽 눈은 여자아이가 손에 쥐고 있던 사탕에 찔려 피가 철철 흘렀다. 잔인한 장면에 뒤에 있던 경호 요원들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황준!” 몇몇 요원은 그에게 달려와 부축했다. “이 미친 꼬맹이가, 죽여버릴라.” 화가 난 한 명이 총을 들어 여자아이를 조준했다. “진정해, 진정해.” “꼬맹이잖아.” 그 요원을 말리고 있을 때, 주위의 공기는 삽시에 차가워지더니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 썩을 것들, 감히 두씨 가문의 사람을 건드려? 이
김 노파의 소리를 들은 두나희는 사악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뒤로 2M가까이 물러섰다. “나를 괴롭혔으니 할머니가 너희를 다 죽여버릴 거야.” 여자아이의 말을 들은 요원들의 얼굴은 순간 당황했다. “누구?” “당장 나와!” 하지만 주위에는 아무 사람도 없었다. 경호 요원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검은 두루마기를 걸치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 한 명이 두나희의 앞에 나타나자 모든 경호 요원은 총을 들어 그를 조준했다. “넌 누구냐? 감히 우리 창용 부대의 길을 막다니.” 김 노파는 총을 들고 서있는 경호 요원을 본체만체하고는 두나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얘야, 뒤로 물러나 있거라. 이 할미가 저것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겠어.” 두나희는 씨익 웃더니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김 노파는 무서운 표정을 짓고는 경호 요원들을 노려보더니 한 걸음 한 걸음 그들에게 다가갔다. “거기 서거라!” “한 발짝만 더 오면 쏠 것이다.” 다가오는 김 노파를 향해 경호요원들은 총을 겨눴다. 하지만 김 노파는 피하기는 커녕 오히려 점점 더 다가오면서 한 마디 건넸다. “그래, 어디 쏴 보거라.” 김 노파의 도발에 화가 난 경호 요원들은 총을 쐈고 빗발치는 탄알 속에서 김 노파는 갑자기 사라졌다. 당황한 경호 요원이 환한김 노파를 차조 있던 도중,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지나가더니 앞에 서 있던 두 경호 요원의 목덜미를 잡았다. “투둑.” 하는소리가 들리더니 두 경호 요원의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어 그 자리에서 살해되었다. 잔인하게 죽은 동료의 모습을 본 나머지 요원들도 공포가 엄습해 왔다. “저것을 죽여라!” “총을 쏘거라.” 탄알이 빗발쳤지만 김 노파와 두나희의 실체는 아무도 몰랐고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김 노파는 모든 경호 요원을 모두 잔인하게 살해했다. 경호 요원들은 총을 들고 있었지만 김 노파의 상대가 아니었다. 모든 경호요원을 살해한 김 노파는 압송 차량을 보더니 기괴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걸어갔다. 압송 차량에 앉
김 노파가 나타나자 채부처 일당은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벌벌 떨기만 했다. 김 노파는 채부처를 보고 물었다. “안현수 그 썩을 놈은 어디에 있느냐?” 그녀의 말에 채부처와 그 일당들은 멍하니 서있을 뿐, 누구도 김 노파가 죽은 안현수에 관해 물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김 노파는 한 명의 흑룡 상회 회원을 잡았다. 이어 투둑하는 소리와 함께 그 회원의 머리가 떨어졌다. “다시 한번 묻는다. 안현수 그 자식은 지금 어디에 있지? 말을 하지 않는다면 너희 모두는 살아서 나갈 생각은 하지 말거라.” 김 노파의 말에 모두가 공포에 휩싸인 채,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마... 말할게요.” “안 회장님은... 이미 죽었습니다.” 한 회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현수가 죽었다고?” 김 노파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네, 못 믿으시겠으면 채부처님과 물어보십시오.” 그 회원은 채부처를 짚으며 말했다. 김 노파는 고개를 돌려 채부처를 보자 그는 온몸을 벌벌 떨며 말했다. “네, 맞습니다. 안 회장님께선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채부처의 말을 들은 김 노파는 콧방귀를 뀌더니 말했다. “그 썩을 놈이 빚도 갚지 않고 뒈졌다니.” “말해보거라, 누가 그것을 죽였느냐.” 채부처는 심호흡하더니 김 노파의 물음에 대답했다. “안 회장님을 죽인 것은 성이 윤 씨인 젊은이였습니다.” “윤 씨라고?” “맞습니다.” 이어 채부처는 김 노파에게 안현수가 윤구주를 건드린 사실과 그가 어떻게 살해당했는지, 창용 부대가 왜 강산도에 왔는지 모두 알려줬다. 채부처의 말을 듣고 김 노파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 썩을 놈이 이렇게 빨리 죽다니.” “아쉽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김 노파는 뒤돌아 갔다. 멀어져가는 김 노파를 향해 채부처가 소리쳤다. “저, 저기요!” 김 노파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네놈도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아닙니다, 오
이때, 산 아래에는 한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노란색 도포를 걸친 작은 눈을 가진 사내였다. 그는 다름 아닌 용호산 태진도에 있는 백경재였다. 백경재는 예전에 윤구주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후로는 타락의 길로 들어선 뒤로부터 백경재는 윤구주의 생사인에 공제 당하고 있다. 하여 그는 안개에 뒤덮인 용인 빌리지로 들어갈지 말지 망설이고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그는 결심이라도 한 듯 말했다. “죽으면 죽었지!” 말을 마치고 난 그는 용인 빌리지로 향했다. 백경재가 운산대진에 뒤덮힌 용산 빌리지에 들어서자 마자 윤구주는 낯선 기운을 감지했다. 한낱 통현경지술을 익힌 백경재는 윤구주가 해논 진에 갇히게 되여 정신이 혼미해졌을 무렵, 어디선가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까짓게 감히 내가 친 진에 들어오다니.” 그 목소리를 들은 백경재는 땅에 털썩 주저 앉아 말했다. “서, 선생님, 접니다.” 윤구주는 익숙한 백경재의 목소리를 듣고는 진을 거두니 땀에 흠뻑 젖은 백경재가 눈 앞에 나타났다. 윤구주가 차갑게 말했다. “네놈이였군. 죽으려고 온 것이냐?” 백경재는 벌벌 떨며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저느 그저 선생님을 뵈러 온 것입니다.” “나를?” 윤구주가 피식 웃었다. “네, 선생님.” 백경재는 윤구주에게 넙죽 절을 했다. “그래, 말해 보거라. 무슨 일로 왔느냐?”“그날 선생님의 신통을 보고 나서 이 백모의 술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여 전의 일은 다 잊어 주시고 부디 저를 선생님 곁에 있게 해주십시오.” “시키시는 일은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나의 곁에 있고 싶다고?”“네, 맞습니다. 이 백모의 신력이 미흡한건 알지만 그래도 선생님의 곁에서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백경재의 말을 듣고 있던 윤구주는 갑자기 예전에 자신이 이 도사에게 생사인을 걸었던 생각이 났다. “이제야 생각이 났어. 넌 생사인을 풀어달라고 나를 찾아 온거지?” “절대 그런것이 아닙니다. 전
한기단을 만드는 윤구주를 백경재는 부러운 눈길로 쳐다 보았다. 단약은 수행자가 수련을 한 결실이다. 하지만 단약을 만들수 있는 사람들은 아주 적었다. 왜냐하면 단약을 만드려면 만은 신력이 필요했고 단약을 만드려면 반드시 통현경지 이상에 도달하는 신력을 갖춘 자만이 만들 수 있다. 전에 윤구주의 신통을 직접 보았고 또 자신의 스승에 대해 잘 아는 그를 백경재는 숭배 할 수밖에 없었다. 윤구주는 백경재를 무시한 채 한기단을 만드는데에만 전념했다. 그는 자신의 진원내력으로 진귀한 약초들을 하나하나 녹인다음 단약으로 만들어냈다. 반시진이 지나니 윤구주는 많은 한기단을 만들어냈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알알이 포장해서 보관해 두었다. “정말로 나의 곁에 있고 싶어?” 윤구주가 묻자 백경재는 바닥에 넙죽 엎드려 대답했다. “네, 선생님.” “허락만 하신다면 소인 백경재 한평생 선생님의 종이 될것입니다.” "그래, 그럼 넌 당분간 내 옆애서 문지기나 하고라.” 윤구주가 허락하자 백경재는 기뻐서 어쩔줄을 몰랐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오늘부로 전 평생 선샹님의 사람입니다."머리를 조아리며 아부하는 백경재의 모습에 윤구주는 그를 째려보더니 한 마디했다. "가까이 오너라." 윤구주의 말에 백경재는 흠칫하더니 앞으로 조삼스레 다가갔다.그러자 윤구주는 자신의 내력을 백경재의 몸에 불어 넣었다. "서... 선배님." "무서워하지 말거라. 내가 너한테 건 생사인을 푸는것이니." "감사합니다, 선배님." 윤구주가 담담하게 말했다. "오늘부터 넌 여기서 문지기 일을 해. 이 곳이 하도 커서 마침 문지기가 필요했거든, 네 생각은 어때?" 백경재는 눈믈을 글썽이며 대답했다. "좋습니다. 선배님께서 화장실 청소를 시킨다해도 저는 기뻤을 것입니다." 백경재의 아부에 윤구주는 토가 나왔다. 그렇게 그는 윤구주의 똘마니가 되였다. 백경재는 용호산 태진도의 정통 제자로 음혼사술을 악혔지만 그래도 통현경지에 도달하는 몇 안되는 인재였다. 오랜시간 그
백경재가 을 꺼내는 것을 바라보며 윤구주는 싱긋 웃었다.“선배님, 보세요! 이것이 바로 저희 화진에서 근 100년 내 가장 강한 사람들이 나열된 천방 명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지방도 있지요.”윤구주는 그에게서 을 건네받자마자 펼쳐보았다.무술 천방의 첫 페이지에는 상위 10위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그리고 제일 첫 위에는 핏빛의 세 글자가 크게 쓰여있었는데 그 사람은 다름 아닌 구주왕이었다!이번에는 지방의 10위권 사람들.첫 줄에는 여전히 이렇게 쓰여 있었다. 구주왕.그것을 본 윤구주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당시 에서는 윤구주를 구주왕이라는 이름으로 1위에 올랐다고 공포하였는데, 무술이나 술법 방면에서 전무후무의 으뜸이라고 했다!지금 다시 이 에 게재된 순위를 보니 윤구주는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한쪽에 있는 백경재는 윤구주가 천하에 명성이 자자한 구주왕이라는 것을 아직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그는 화진의 다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구주왕”이 이미 수개월 전에 바다에 빠져 순국했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그때, 백경재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선배님, 여기 이분은 일찍이 우리 화진 전체를 통솔했던 구주왕이십니다! 술법이든 무술이든 모두 최고 경지에 이르신 분이라 우리 화진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말할 수 있죠. 심지어 저희 태진도의 옛 선조님들조차 실력으로 말하자면 천년을 통틀어 우리 구주왕을 따라올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유감이게도 저희 구주왕께서는 이미 수개월 전에 10개국 간의 전쟁에서 포위 공격을 당해 어린 나이에 죽음의 바다에 묻혔지요! 이것은 화진의 손실이자 더더욱 천하의 손실입니다!”구주왕을 언급하자 백경재도 덩달아 감개무량해지기 시작했다.그러나 옆에 있는 윤구주는 시종일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조용히 뒷짐을 진 채 듣고 있을 뿐이었다.“하지만 구주왕이 순국한 뒤로 그분의 약혼녀께서 새 왕이 되셨다고 합니다! 선배님, 혹시 저의 화진에 새로 등극한 이황왕이
“구주랑 주 회장님은 대체 어떻게 해낸 거지? 하루 안 돼서 흑룡상회 일을 처리하다니...”소채은은 머리를 긁적이며 한참을 생각했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그래도 뭐! 어쨌든 구주가 괜찮으니까 됐어!”윤구주를 생각하니 소채은은 더욱 그가 그리워졌다.“아 참! 구주는 대체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 거야? 잘 지내고는 있나?”곧이어 소채은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어 직접 윤구주에게 전화를 걸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 너머로 윤구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러자 소채은이 얼른 입을 열었다.“구주야, 너 지금 바빠?”“아니! 안 바빠!”“그럼 나랑 같이 있어 주면 안돼?”“너랑? 지금?”“응! 왜? 싫어?”“아니! 좋아!”“헤헤, 그럼 그러는 거로! 주소 보내줘, 내가 좀 이따 데리러 갈게.”그러자 윤구주는 “알겠어.”라고 대답했다.그렇게 통화는 끊겼다.얼마 지나지 않아, 소채은은 윤구주가 보낸 주소를 받았다.“용인 빌리지”라는 다섯 글자를 보고 그녀는 얼떨떨해졌다.“구주가 왜 여기에 있지?”비록 의구심은 들었지만 소채은은 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그러고는 얼른 치장을 하고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잠시 후, 그녀는 예쁘게 옷을 차려입고는 가방을 들고 방 문을 나섰다.밖의 정원에서, 소청하는 꽃에 물을 주고 있었다.그는 소채은이 예쁜 차림으로 가방까지 들고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재빨리 물었다.“채은아, 어디 가는 거야?”“쇼핑하러 갈게요!”소채은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갔다가 일찍 들어와! 이상한 놈들이랑 있지 말고!”그녀가 외출하는 것을 보고 소청하는 또 신신당부했다.하지만 소채은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원을 나선 후, 차를 몰아 윤구주가 있는 용인 빌리지로 향했다.40분 뒤, 용인 빌리지에 도착한 그녀는 멀리 길목에 서 있는 윤구주를 보았다.그녀는 서둘러 차를 몰고 가서 차창을 내리며 아름다운 얼굴을 드러냈다.“구주야, 왜 주소를 여기로 보내줬어? 설마 이 근처에 사는 거야?”윤구주는
“됐어, 그건 그렇고. 오늘은 쉬는 날이니까, 너는 나랑 같이 쇼핑만 잘 해주면 돼.”소채은은 잠시 화제를 돌려 말했다.그러자 윤구주가 “응”하고 외쳤다.그렇게 차를 몰고 소채은은 윤구주를 데리고 시내로 갔다.두 사람은 여느 커플과 다름없이 데이트를 하고 밥을 먹었다. 밥을 먹은 뒤, 소채은은 또 윤구주에게 자신과 함께 쇼핑센터로 가 돌아보자고 했고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는 유니버설 쇼핑센터로 향해 걸어갔다.유니버설 쇼핑센터는 강성에서 가장 번화한 상가인데 안에서 파는 것은 전부 진귀한 사치품이며 GUCCI, 샤넬 등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길에서.윤구주는 소채은의 손을 잡고 그곳을 돌아다녔다.그러다 무심코 PRADA 여성복 가게를 지나던 소채은은 구경하러 들어가기로 결심했고, 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입구로 들어가니 문을 지키는 사람은 20대 초반의 남자 종업원으로 보였다.막 졸업한 듯한 것으로 보이는 종업원은 약간 수줍어했지만 매우 예의가 발랐다. 그는 윤구주와 소채은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반갑게 인사하기 시작했다.“안녕하세요. 이건 우리 가게에 방금 나온 신상품입니다. 손님분들께서는 편히 둘러보시면 됩니다. 마음에 드시는 게 있으면 탈의실에 가서 입어 봐도 되시고요.”종업원의 열정적인 태도를 보며, 소채은은 “감사합니다”라고 짧게 인사했다.그리고 거기서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한 바퀴 둘러본 후, 소채은은 쇼윈도우 안에 놓인 붉은 이브닝드레스에 살짝 끌렸다.‘이건?’존귀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 이브닝드레스를 본 소채은은 바로 마음이 흔들렸다.“구주야, 이 옷이 잘 어울려?”소채은이 이브닝드레스를 가리키며 윤구주에게 물었다.“예뻐!”“그렇지? 그럼 이거 입어볼게.”소채은은 짧게 말을 끝내고 종업원에게 말했다.“안녕하세요, 혹시 이 옷 입어 봐도 될까요?”그러자 종업원이 즉시 달려와서 말했다.“네, 잠시만 기다리세요!”말을 마치자, 그는 진열장으로 달려가서 그 붉은 드레스를 꺼내기 시작했다.그때, 갑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