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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Penulis: 잔영
'발신- 주작'

메시지를 전송하고 나서야 염구준이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엔 아직도 살기가 느껴졌다.

'용운 그룹이 뭐길래?

전 신전 전주의 수단이 무엇이지?’

3일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오늘은 손영 그룹과 용운 그룹이 계약을 체결하는 날이었다.

"용운 그룹이라니!"

용운 그룹의 거대한 사옥 앞에서 손혜린은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120여 층이나 되는 건물은 높이만 해도 400미터가 넘었는데 청해의 랜드마크나 다름없었다. 이 건물의 주인은 최근 몇 년 사이 급부상한 용씨 집안으로, 명성이 자자한 재벌가였다. 용운 그룹은 전국에 이미 수많은 지사를 두고 있었다.

손씨 집안은 그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였다. 두 가문 사이의 격차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안녕하세요."

손에 가죽 서류 가방을 든 손혜린이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차분하게 로비를 걸었다. 그녀의 가느다랗고 요염한 허리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안내 데스크 여직원을 향해 미소 지은 손혜린이 용건을 말했다.

"용 대표님께 전해줄래요? 손영 그룹 부사장 손혜린이에요. 협력 프로젝트 건으로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열두 명의 안내 데스크 여직원들은 모두 눈처럼 희고 아름다웠다. 손혜린을 쓱 훑어본 한 여직원이 그림 같은 미소를 지으며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초대장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초대장이라니, 손혜린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미 합의를 마친 프로젝트였다. 오늘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끝날 일이란 말이다.

용운 그룹 대표를 만나려면 초대장이 필요하다는 말을 전혀 들어본 적 없었다. 손태석, 이 노망난 늙은이가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것이다.

"방금 말했잖아요, 나 손영 그룹 부사장 손혜린이라고요."

손혜린이 정색하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의 성사된 거나 다름없는 프로젝트예요.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되는 건데, 초대장이라니요? 이게 어떤 계약인지 몰라서 그러나 본데, 1조가 넘는 큰 프로젝트라고요. 계약에 차질이 생기면 당신이 책임질 거예요? 당장 대표님께 연락해요."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여직원이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회사 규정상, 초대장 없이는 대표님을 뵐 수 없습니다. 손 부사장님께서는...."

불현듯 그녀가 말을 멈췄다.

안내 데스크 뒤쪽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남성이 우람한 경호원 8명을 거느리고 다가왔다.

손혜린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 여자는 누구죠?"

"이분은...."

여직원이 손혜린을 간단하게 소개한 뒤 고개를 살살 내저었다.

"제가 말씀을 드렸는데 고집을 부리시네요. 대표님께 말씀 전해달라면서요."

대표님을 찾는다고? 양복을 입은 남성이 차갑게 비웃었다.

"초대장도 없는 주제에 용 대표님을 뵙겠다고? 이게 무슨 수작이야. 반반한 얼굴로 대표님을 유혹하려나 본데, 정부 노릇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너 같은 여자들이야 뻔하지."

손혜린이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남자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당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정부라고? 다시 한번 지껄여 봐!"

그러자 양복 차림의 남성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실컷 비웃은 그가 차갑게 얼굴을 굳히며 그녀를 오만하게 내려다보았다.

"손혜린, 난 네가 어떤 인간인지 잘 알고 있어. 손태석 씨와 진숙영 씨가 따낸 1조짜리 계약을 네가 가로챘잖아? 두 분을 쫓아내고 말이야. 계약하고 싶어? 꿈 깨!"

남자는 방금 인쇄한 것 같은 종이 계약서를 품에서 꺼낸 뒤 손혜린의 얼굴을 향해 힘껏 던졌다.

"두 눈 뜨고 똑바로 봐!"

주변 시설까지 포함한 빌딩 3채를 건설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는데 투자 금액은 무려 2조였다. 손태석과 합의한 기존 금액보다 2배나 많은 액수였다.

"그동안 난 너 같은 인간들을 많이 봐왔어."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손혜린을 쳐다본 남자가 흥, 코웃음 쳤다.

"2조짜리 프로젝트라는 소식을 들으면 손중천 그 양반이 얼마나 좋아하겠어. 하지만 우리 대표님께서 조건을 거셨어. 계약은 손태석 씨와 진숙영 씨랑만 진행하겠다고."

말을 마친 그가 경호원들에게 손짓했다.

"당장 저 여자를 쫓아내 버려!"

8명의 우람한 경호원들이 우르르 손혜린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연민할 가치도 없다는 듯 짐짝처럼 손혜린을 질질 끌고 갔다. 그 험악한 손길에 고급스러운 투피스가 무참하게 구겨졌으며 하이힐 굽도 부러지고 말았다. 산발이 된 머리까지 더해지니 꼭 마치 미친 사람 같았다.

"이 빌어먹을 개자식들이!"

초라한 몰골로 쫓겨난 손혜린이 절뚝거리며 용운 그룹 사옥을 향해 미친 듯이 욕설을 퍼부었다.

참을 수 없는 수치심과 분노가 밀려왔다.

용씨 집안과 비교했을 때 손씨 집안은 너무나도 하찮았다. 손혜린이 아니라 손중천이 와도 굽신거려야 할 판이었다.

"손태석, 진숙영...."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한참 건물 앞에서 발악하던 손혜린은 결국 이를 사리물며 손영 그룹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일이 손중천의 귀에 들어가는 건 막아야 했다.

아니라면, 자신이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처벌이 내려질 터였다.

......

"갔습니다."

용운 그룹 건물의 맨 꼭대기 층에 자리한 회장실.

그곳 창가에 꼿꼿하게 서 있는 여인을 향해 용씨 집안 가주 용성우와 그의 아들이자 용운 그룹 대표인 용준영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불꽃처럼 매혹적인 여인은 바로 주작이었다.

"잘하셨습니다."

우아하게 돌아선 주작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희는 주군의 은혜에 감읍할 따름이지요."

용준영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용씨 부자는 원래부터 재계에서 손꼽히는 거물급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라이벌 기업에 의해 정경유착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감옥에서 그는 하마터면 경쟁사에서 보낸 킬러에게 살해당할 뻔했는데 그때 염구준이 그들을 구해주며 억울함도 풀어주었다.

그들을 감옥에서 빼내 준 염구준은 그들이 재기할 수 있게 도와주었을 뿐만 아니라 억울한 누명을 씌웠던 경쟁사 집안을 무너뜨렸다.

염구준은 용씨 집안 사람들에게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염구준의 말 한마디에 용씨 집안은 보란 듯이 재기하며 다시 한번 재계의 거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반대로 염구준은 아주 손쉽게 용씨 집안을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

"주군의 명령이라면, 목숨을 내놓으라고 해도 그리할 겁니다."

용성우가 결연하게 말했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주작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손혜린은 이 일을 덮으려고 할 겁니다. 가주님도 아시겠지만, 주군은 그걸 바라지 않으십니다. 이왕 시작했으니 마무리도 깔끔하게 하는 게 좋겠지요. 손태석 선생과 진숙영 여사가 당했던 수모를 전부 갚아주어야 할 겁니다. 제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용성우가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혜린, 이 악독하고도 멍청한 여자야, 건드릴 사람이 없어서 주군의 장인 장모를 건드리나?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군.'

제 아들에게 시선을 돌린 용성우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준영아, 지금 당장 기사를 내보내거라. 용운 그룹과 손영 그룹의 합작 프로젝트의 예산을 5조로 늘리기로 했다고 말이다. 그 집안이 가져갈 수익은 아마 2조는 될 게다. 흥, 손혜린이 과연 손중천의 눈을 속일 수 있을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꾸나."

손씨 집안 별장.

"어르신!"

손중천을 40년 넘게 모신 집사, 양진의 잔뜩 흥분한 목소리가 먼 거실 밖에서 들려왔다. 재빨리 거실에 들어선 그가 활짝 웃으며 손중천에게 휴대전화를 건넸다. 그의 목소리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어르신, 이것 좀 보십시오! 용운 그룹에서 우리 쪽 투자금을 5조로 늘린답니다. 저희가 얻을 수 있는 수익은 2조구요. 손씨 집안이 드디어 일류 가문으로 거듭나겠군요."

'뭐라고?'

몸을 움찔거린 손중천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양진의 휴대전화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화면을 가득 채운 뉴스 기사를 확인한 그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거칠게 호흡했다.

그야말로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3일 전, 칠순 잔치 때 염구준이 보내온 관 때문에 그는 하마터면 화병으로 죽을 뻔했었다.

용운 그룹에서 전해온 소식은 그를 진정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처방전이었다. 자극받은 심장이 세차게 날뛰었다.

자그마치 40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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