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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손혜린?”

손혜린 세 글자를 보자 손태석은 좋았던 기분이 다 사라지고 순식간에 표정이 굳었다.

5년 전, 그들이 손중천에 의해 가문에서 내쫓기는 상황을 만든 범인이 바로 손혜린이었다.

거만하고 이기적이며 악랄하기까지 한 조카.

목적을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칼춤을 추더니 끝끝내는 손영그룹 부사장 자리까지 꿰찼다. 평소에 그와 진숙영에게 모욕적인 말을 서슴지 않았고 툭하면 월급을 삭감하거나 주기로 한 보너스를 주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손 사장.”

하지만 전화를 안 받으면 또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을 알기에 그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로….”

탁!

수화기 너머로 무언가 던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혜린은 인사자료를 바닥에 내팽개치더니 냉랭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손태석 씨, 진숙영 씨, 오늘 부로 해고예요.”

“난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서 가문에서 쫓겨난 당신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었어요. 그래서 당신들이 여태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죠.”

“그런데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당신들 그 잘난 사위 염구준이 할아버지 생신 잔치에서 무슨 짓을 벌였는지 알아요? 그 인간이 할아버지한테 선물이랍시고 관짝을 보냈어요!”

쾅!

두드러지게 낡고 초라한 거실에서, 손태석이 벼락에 맞은 듯 순간적으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염, 염구준... '어르신님 칠순 잔치에 관을 선물로 보내다니?! 장수용 황금 불상을 준비했는데, 어떻게 된 거지?!

불상은 어디로 갔을까? 그게 어떻게 관으로 바뀌었지?!'

"황금, 황금 불상 여기에 있어요."

옆에서 진숙영의 목소리가 무의식적으로 떨렸고, 손을 뻗어 거실 구석진 곳을 가리켰다. 그녀는 마치 냉기 가득한 지하에 떨어진 것처럼 온몸이 떨렸다.

망했다!

그들이 힘들게 모은 돈과 딸이 목욕탕에서 일하면서 모은 돈을 모두 이 작은 황금 불상을 사는 데 사용했다. 그건 다 어르신의 칠순 잔치 자리에서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염구준이 생일잔치 자리에서 소란을 피우고 이런 어리석은 짓까지 해버리게 된 것이었다. 어르신은 분명히 염구준 때문에 미쳐버린 것 이 틀림없었다.

"부사장님, 오해예요. 이건 정말 오해예요."

손태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휴대폰을 꽉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염구준 그 자식이 제멋대로 저지른 일이에요. 저랑 와이프는 아무것도 몰라요!"

"제발, 제발 저희를 해고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용운 그룹! 저희가 반년 넘게 열심히 일해왔고, 마침내 용운 그룹과의 협력 프로트를 힘겹게 따냈는데... 저희..."

수화기 너머에서,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혜린이 넓고 고급스러운 부사장실에서 앉아서 그녀의 얼굴은 거만하고 오만한 자만심이 가득 차 있었다.

"당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제가 몰랐다고 생각해요? 용운 그룹의 공로가 왜 당신들 것이죠? 그건 제 것이에요. 염구준이 어르신께 관을 드리고 나더러 꼬맹이 생일 파티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라고요?"

"허!"

"당신들 하고 말 섞기도 싫으니까, 오늘부로 당신들은 더 이상 손영 그룹 직원이 아니에요. 모든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세요."

그러고는 전화가 뚝 끊겼다.

"망했다..."

손태석이 휘청휘청 거리다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고 눈가 주름을 따라 탁한 눈물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반년 동안의 노고를 염구준이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면 손 씨 집안에 돌아갈 희망도 없고 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

"여보, 이제 어떡해?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돼?"

그녀는 손태석의 어깨에 기대어 울부짖었다.

과거에는 단지 손 씨 집안에서 쫓겨났을 뿐이고, 적어도 직장은 지켜냈었다. 하지만 이제 유일한 직장마저 없어졌다. 일자리가 없으면 보험금도 없고 퇴직금과 노후 보장도 없었다.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하면 앞날이 막막했다.

부부는 슬픔에 휩싸여 눈물을 흘렸다.

쿵!

순간, 거실 도어록이 가벼운 소리로 열리고 문 잠금장치가 외부에서 부드럽게 열렸다.

친숙하면서도 약간 생소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목이 메어 말 끝이 흐린 채로 그들을 부르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엄마, 아빠..."

이 목소리...

"가을이니?"

방금까지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던 손태석과 진숙영, 그들의 눈물이 한순간 얼어붙었다. 5 년동안 벙어리였던 손가을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나아졌다!

"아빠, 엄마."

손가을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자마자 진숙영의 품에 안겨서 울고 웃으며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저 이제 괜찮아졌어요, 제 목소리 돌아왔어요. 이제 말할 수 있어요."

"구준 씨가 찾아줬어요."

"구준 씨가 꽃 한 송이를 가져다줬는데, 그 꽃이 제 목소리를 고쳐줬어요."

"5 년이나 걸렸네요..."

뒤에서, 염구준이 염희주를 안고 거실로 들어와서 손태석과 진숙영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장인어른, 장모님.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에요."

손태석과 진숙영이 분노와 기쁨, 형언할 수 없는 무력감이 밀려왔다.

얼굴이 복잡 미묘해지면서 주먹을 쥐고 풀고를 반복했다. 마침내 화를 참지 못하고 돌아서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탁자를 내리쳤다.

"아빠?" 손가을이 놀라서 무의식적으로 진숙영의 품에서 벗어나 손태석을 두려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염구준의 품에 있던 염희주도 깜짝 놀라며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흑 흑 흑! 깜짝 놀랐잖아요. 희주 무서워요."

"여보..."

진숙영이 입을 꾹 닫고 비처럼 떨어지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염구준과 손가을을 바라보며 주체할 수없이 흐느꼈다.

"염 서방! 자네 오늘 무슨 짓을 한 거야?"

"혜린이가 방금 전화가 왔었어..."

진숙영이 염구준에게 통화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말해주었다. 그 순간에도 손태석의 감정이 통제 불능 상태였다. 그는 손을 뻗어 염구준을 가리키며 눈물을 흘렸다.

"염 서방, 자네 우리 가을이 해친 것만으로 부족한가? 왜 우리 가족들 다 끌어들이지?"

"우리가 왜 그 사람들 눈치까지 보면서 이 일을 고집하는 지 몰라서 그래?"

"노후를 위해서, 연금을 위해서, 나중에 가을이에게 부담 주기 싫어서야. 이 가족을 지키고 싶어서라고."

"그런데 지금은?"

"용운 그룹과의 협력 프로젝트도 손혜린한테 다 뺏겼고 이제 더 이상 손 씨 집안에 들어갈 희망도 없어. 다 사라졌어. 끝이라고..."

손가을의 얼굴이 굳어지고 예쁜 얼굴에 만개했던 웃음꽃도 사라졌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염구준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듯 입술만 오물거렸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을 머금은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남편, 그녀의 남자, 염구준!

어르신의 칠순 잔치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대신 그녀의 목을 치료했다.

그가 잘못을 한 건지, 그도 말 못 할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녀는 그와 함께 책임을 지고 싶었다.

"이제 말해봐야 늦었어."

손태석이 기진맥진하여 식탁의 의자에 앉아 숨을 헐떡거리며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5 년 동안, 자네 장모와 나도 퇴직을 생각해 봤어. 하지만 혜린이가 가을이와 희주로 우리를 무자비하게 협박했어...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지금은... 허허"

"그냥 용운 그룹의 협력 프로젝트를... 아니야, 이제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그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앞에 있는 이 50대 중년 남성이 한꺼번에 10 년은 늙어 보이는 것 같았다. 몸을 지탱하기 위해 의자 팔걸이를 잡은 그의 손은 방금 식탁을 내리치면서 피부가 찢겨져 피가 '뚝뚝' 흘렀다. 그러나 그는 어떠한 아픔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천천히 침실로 들어갔다.

"여보..."

진숙영이 울부짖으며 그 뒤를 따라갔다.

부부는 침실로 들어갔고 방 안에서 억압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손혜린!"

염구준은 염희주를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손가을을 바라보면서 손태석과 진숙영의 침실문도 한번 쳐다보았다.

눈가엔 살기가 느껴졌고 마음엔 살인의 충동을 느꼈다.

'손혜린, 내가 7일이라는 시간을 줬는데도, 나한테 이렇게 은혜를 갚는다고? 좋아, 아주 좋아! 두고 보지!'

그는 염주희를 내려놓고 홀로 밖으로 나갔다. 계단을 이용해 단지 밖으로 나가서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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