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르는 이 점을 노리고 계속 반박했다.“하하, 길거리에서 주운 걸 우기면 당신 것이 되나?”“이럴 줄 알고 미리 특허를 냈습니다.”손중석은 노트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더니 모든 사람에게 보여준 후 염구준에게 건넸다.“지금 연구 성과를 손씨 그룹에 맡기겠습니다.”각 나라 대표들은 빨간색 도장을 보고서야 진짜라는 것을 알았다.니체르는 원망스럽기 그지없었다.꿈에서도 원했던 물건이 눈 앞에서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갔는데 그것을 빼앗을 능력이 없었다.“또 뭐가 남았어? 전부 보여줘. 나중에 기회를 주지 않았단 말을 하지 마.”염구준은 손에 특허 문서를 들고 흔들었다.이제 니체르도 손에 든 패를 전부 사용했고 사태를 되돌릴 수도 없었다.그는 마지막 질문을 했다.“손중석의 머리에 심은 폭탄을 어떻게 제거했어?”곧 죽을 사람이니 염구준은 그의 궁금증을 만족시켜주었다.“제거하지 않았어. 신호를 차단할 수 있는 만큼 기운을 주입했을 뿐이야. 그 과정은 시간이 필요하지.”손중석은 일반 사람이라 체질이 약해서 대량의 기운을 감당할 수 없었다.그래서 천천히 반복적인 작업을 진행했다.“이제 보니, 내가 자업자득이군.”니체르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알아채고 갑자기 기운을 폭증시켰다.“염구준! 난 죽기를 기다리지 않아. 통쾌하게 끝내자! 다들 공격해!”니체르는 죽기 전에 발악이라도 해보려고 부하들에게 고함을 질렀다.그런데 부하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닌가.지금 상황에서 니체르 공작이 죽으면 그들은 다시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배은망덕한 놈들! 내가 너희들을 키웠는데 중요한 순간에 후퇴해? 다 죽여버릴 거야!”니체르가 부하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염구준이 나타나자 부하들은 용기를 내어 반박했다.“공작 대인, 우리는 당신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일 년 월급을 주지 않았어요.”“맞아요. 공을 세워도 상을 주지 않고 걸핏하면 죽였잖아요!”“이래도 죽고
오랫동안 기싸움을 했으니 이제 결판을 내릴 때가 되었다.“목숨을 내놔!”살기가 제대로 오른 니체르는 정면 승부하기로 결정했다.하지만 그의 초식은 허점투성이었다.이미 심성을 잃고 마구잡이로 공격을 해대니 염구준의 상대가 아니었다.“컥!”맞붙자마자 니체르는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고 피를 줄줄 흘렸다.그 상태로 전력으로 싸울 가치가 없었다.“아아아악! 죽여버리겠다!”니체르는 미친듯이 포효하며 계속 공격했다.지금 그는 평소 실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공격할 때마다 되려 반격을 당했다.반면 염구준은 평범한 초식으로도 쉽게 상대할 수 있었다.그래도 습관적으로 검기를 축적했다.일 분 사이에 니체르는 상처투성이가 되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겨우 그 정도야? 이제 끝내자.”염구준은 그를 물리치고 검끝을 앞으로 찔렀다.5분을 채울 줄 알았는데 왠지 니체르를 과대평가한 것 같았다.“하하하, 날 너무 우습게 봤어.”미친듯이 웃던 니체르가 기운을 폭증시키자 근육이 부풀어오르면서 옷이 찢어졌다.생명의 잠재력까지 끌어내 목숨을 걸고 싸울 작정이었다.“구자검법, 검일참공!”염구준은 방금 축적한 검기를 앞으로 휘둘렀다.쿵!검을 내리친 순간, 이미 기운이 소진된 니체르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필사적으로 싸워도 이 정도 실력밖에 안 되었다.검을 든 염구준은 여전히 공포스러워서 일반 반보천인이 당해낼 상대가 아니었다.“말해봐. 네가 나를 현상금에 올렸어?”염구준은 검을 등에 메고 싸늘하게 물었다.“콜록콜록, 나를… 너무 과대평가했어. 40억 자금이 있다면 이런 짓을 왜 하겠어?”곧 죽게 되자 니체르는 피하지 않고 가까스로 대답했다.“그럼 누구야? 너도 만능 전당포와 관련이 있어? 알고 있는 걸 다 말해.”기회를 잡은 염구준은 상대방이 죽기 전에 모든 질문을 던졌다.“휴.”니체르가 탄식하더니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리아성전에서 현상금을 내걸었어. 만능 전당포와도 관련이 있지만 구체적인 건 나도 몰라.”“그리
“병신 같은 놈, 오스크국이 최고라고? 이 정도 실력은 도와줄 가치도 없어.”모든 걸 지켜보던 흑풍 존주는 화가 치밀어 올라 휴대폰을 내치고 말았다.그는 니체르의 손을 빌려 염구준에게 중상을 입히고 어부지리를 챙기려 했는데 결국은 실패했다.흑풍은 가까스로 진정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다른 패는 쓸모가 있어야 할 텐데.”회의장과 못지 않게 밖에서 난리도 아니었다.“안세환! 네 주인이 죽었어. 이제 어떻게 날뛰는지 두고 보자!”용하 대표팀의 소수 팀원은 결국 참지 못하고 단번에 안세환의 멱살을 잡고 으르렁거렸다.그래도 안세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이 손 놔. 승부는 아직 결정 나지 않았어. 니체르 공작이 나오면 당신들 후회해도 늦었어!”지금까지도 그는 환상을 품고 있었다.어떻게 보면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다.니체르가 부른 반보천인 복면인은 주작과 호찬의 감시를 받으며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도망치지 않을게요. 방금은 오해였어요. 제가 염 선생님한테 직접 가서 설명할게요.”“얌전히 있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밝혀질 거야.”상대방의 말에도 주작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냉정하게 판단했다.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온 대표들은 손가을을 주시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만약 염구준이 중상을 입거나 죽는다면 그들은 가차없이 노트를 빼앗을 것이다.거대한 이익은 그들을 미치게 만들었다.“아주 시끌벅적하네요.”그때 염구준이 태연하게 걸어 나오며 한마디하자 현장이 조용해졌다.이것이 그만의 카리스마였다.“구준 씨, 다치지 않았어?”손가을은 염구준이 다치지 않았나 살피며 애타게 물었다.“상처 하나도 없어. 걱정하지 마.”염구준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녀를 위로했다.니체르는 잔꾀가 많을 뿐, 염구준에 비하면 실력이 한참이나 뒤떨어졌다.“아니… 니… 니체르 공작은 어디 있어요?”그가 나오자 안세환이 당황했다.어렵게 뒷배를 찾았는데 니체르가 죽으면 그도 끝장이었다.“그런 인간이 이 세상에 살아남
궁지에 몰려도 뻔뻔한 안세환의 태도에 다들 혀를 끌끌 차고는 더는 말을 걸지 않았다.염구준도 어처구니가 없어 코웃음을 쳤다.“하, 넌 어디도 못 가. 용하에 돌아가서 조사를 받아야지.”그 말에 안세환은 눈을 부릅뜨고 달려들었다.“무슨 자격으로? 지금 바로 용하 국적을 포기할 거야!”“포기해도 돼. 하지만 넌 나라를 배신한 혐의가 있어서 일단은 조사를 받아야 하거든. 그 뒤에 네 마음대로 해도 괜찮아.”염구준은 말을 마치고 일행에게 체포하라는 손짓을 했다.전에 염구준과 충돌한 것은 문제 삼지 않겠지만 용하를 배신한 행위는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나 억울해! 누가 살려주면 바로 따라갈게요!”안세환은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도움을 청했지만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다.“염 선생님, 이건 너무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하든 개인의 자유가 아닌가요?”그때 성조국의 대표가 나섰다.“자유?”염구준은 조용히 되물으며 그 의미를 곱씹었다.“당신 말이 맞아요. 저 사람을 체포하는 것도 내 자유니까 당신은 참견할 권리가 없어요.”성조국은 항상 ‘자유’를 내세워서 현실에 어긋나는 말을 하고 자유라는 명분으로 갑질했다.물론 염구준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 수법이지만 말이다.그는 역겨워서 성조국과 도리 같은 건 따지고 싶지 않았다.“당신… 그게 무슨 억지입니까?”성조국의 대표는 화가 치밀어올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억지든 명분이든, 이 사람을 데려가려면 먼저 내 손에 있는 검의 동의를 거쳐야 합니다.”윙!염구준이 팔을 흔들자 검명이 울리면서 공포스러운 기운을 발사했다.구경꾼들은 물론 성조국의 대표마저 입을 꾹 닫았다.한 사람을 위해서 죽는 것은 가치가 없었다.제대로 겁을 먹은 안세환은 용하에 돌아가면 어떤 처분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목이 터져라 용서를 빌었다.“내가 잘못했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그렇다고 용하에서 손해를 보지 않았잖아요!”“닥치고 있어.”염구준은 그의 목소리만 들어도 짜증이 밀려왔다.그때 인파 속을 뚫고 남자아이가 나타나더니
호위대를 지휘한 사람은 바로 네카일이었다.차림새를 보아 직위를 회복한 것 같았다.“염구준, 에휴.”그는 진심으로 염구준과 적이 되고 싶지 않았다.염구준도 말뜻을 알아차리고 나지막하게 물었다.“날 잡으러 왔어? 니체르 대신 복수할 거야?”그는 말을 끝내자마자 작은 소리로 지시했다.“주작은 제이든, 호찬은 손중석을 보호해. 기회를 찾아 인파를 뚫고 나가.”상대는 병기로 무장한 수만 명의 황실 호위대다.그들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기 전에 뒤에 있는 사람부터 보호해야 했다.“알겠습니다.”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 보호 대상을 찾아갔다.지금 상황에서 염구준은 누굴 돌볼 겨를이 없었다.그때 손가을이 그의 팔을 잡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구준 씨, 당신이 도망칠 확률이 더 커. 우리 딸과 부모님을 잘 챙겨줘.”그녀는 전력이 약하지만 위급한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고 싶었다.“바보야, 그런 말 하지 마. 내가 곁에 있으면 누구도 당신을 해치지 못해.”염구준은 기운을 끌어내 두 사람을 감쌌다.한편, 구경하던 각 나라 대표들은 눈치 빠르게 옆으로 달려가며 외쳤다.“우린 염구준을 모르고 친하지도 않아요. 복수하려면 염구준을 찾아가세요!”현장에 긴장감이 상승하고 한 쪽이 움직여도 바로 맞붙을 기세였다.일단 상대방이 움직이면 염구준은 일행을 데리고 호위대를 뚫고 나갈 생각이었다.그런데 황실 호위대는 공격하지 않고 양쪽으로 갈라서며 길을 내는 것이었다.가운데로 체격이 건장한 중년 남자가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염구준, 내 아버지 에드로 친왕은 당신을 존경했는데 왜 잔인하게 살해했어?”이 남자의 이름은 알렉스 벨, 친왕의 첫 번째 계승자였다.‘이건 모함이야.”염구준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니체르는 그의 손으로 참살했지만 뒤에 흑풍 존주가 숨어 있었다.“난 죽이지 않았어.”염구준은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게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내 아버지는 오늘 새벽 3시에 죽었다. 네가 아니란 걸 증명할 수 있어?”
네카일은 벨 앞에 다가가 몇 마디 속삭인 뒤, 염구준을 향해 걸어갔다.“염 선생, 에드로 친왕께서는 확실히 돌아가셨어. 벨 왕자님도 상심이 크셔서...”염구준은 상대방이 벨을 변호하려고 한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시간이 부족하니 핵심만 말해.”“그러지.”네카일은 대답하고는 더 이상 질질 끌지 않고 사실을 털어놓았다. “오늘 아침 7시에 에드로 친왕께서 평소처럼 아침 운동을 하지 않는 걸 이상하게 여긴 하인이 방에 들어가 확인해봤더니 목이 잘린 채로 침대에 놓여있는 친왕의 시체를 발견했어.”“왕실 의사는 친왕의 사망 시간을 새벽 3시쯤으로 추정했고, 돌아가시기 전에 극심한 고문을 당했다는 판단을 내렸지.”“그리고 현장에 이런 게 있었어.”말을 마친 네카일은 휴대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염구준에게 보여주었다.사진 속의 하얀 벽에는 붉은 피로 쓴 큰 글씨가 있었는데, 그 내용은 염구준이 살인범이라는 거였다.이 글이 바로 그들이 염구준을 잡으려는 이유였고, 그들이 주장하는 증거였다.“허, 너라면 니가 남의 개를 훔치고 니가 도둑이라고 말할 거야?” 염구준은 고개를 저으며 반문했다.이 말에 모두가 누군가가 염구준에게 죄를 덮어씌우기 위해 이런 글을 남겼다는 걸 깨달았으나 이건 현장에 유일하게 남겨진 증거였기에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래, 그건 나도 알고 있어. 벨 왕자님도 의심하고 있고. 하지만 적지 않은 귀족들이 염 선생이 죽였다고 의심을 하는 바람에 처리하기가 힘들어.” 네카일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처리하기가 어렵다고 해도 그게 날 잡을 이유는 아닐 텐데?”“그리고 너희들의 친왕이 죽은 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염구준은 상대방의 말을 들을 수록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범인을 잡지 못해 모든 걸 자신에게 덮어씌우려는 것처럼 느껴져서였다.풀썩.이때, 네카일이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충혈된 두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이 일이 완전히 밝혀질 때까지 머물러 줄래? 안 그러면 수
회장 주위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나오며 고함을 질렀다.“염구준을 죽여서 친왕님의 복수를 하자!”이에 염구준은 즉시 진기를 끌어올려 보호막을 형성하며 날카롭게 외쳤다.“네카일, 이게 무슨 짓이야?”“나도 몰라!”네카일은 잠시 당황하다가 곧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하고는 최대로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모든 황실호위대는 전투를 금지한다! 명령을 어기는 자는 참수할 거야!”벨 역시 당황하며 무전기를 들고 소리쳤다.“모두 움직이지 마! 움직이는 놈은 그 집 식구들까지 전부 죽여버릴 거니까!”이 갑작스러운 난입자들이 어디서 온 것인지 그들조차도 알 수 없었다. 이미 협상이 끝난 상황에서 굳이 싸움을 벌일 필요는 없었다. “흥, 누구든 움직이는 놈이 있으면 바로 죽여버릴 거야.”염구준은 단호하게 말한 뒤 검을 뽑아들고 적진으로 뛰어들었는데, 흉신이 강림한 것마냥 기세가 엄청나서 누구도 막지 못했다.그가 한 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열 명 이상의 적이 쓰러졌다. 한 번도 막지 못하고 말이다.난입자들은 고작 이백여 명 남짓으로, 염구준에게는 하찮은 숫자에 불과했다. 그들은 실력이 약했는데, 모두 그저 혼란을 일으켜 양측이 싸우도록 유도하는 역할에 불과했다.이를 지켜보던 벨은 문득 네카일이 될 수록이면 싸우지 말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렇게 압도적인 실력이라니.’‘만약 정말로 싸웠다면 제일 먼저 죽는 건 나였을지도 모르겠어.’그는 속으로 생각하며 감탄했다.“X발, 숫자 채우기만 하면 된다더니! 튀어!”난입자들은 예상과 다른 상황에 공포를 느끼며 급히 후퇴하기 시작했다.그들은 겨우 20만원씩 받기로 하고 온 사람들이었다. 겨우 그 정도의 돈 때문에 목숨을 내놓을 필요는 없었다.염구준은 재빨리 한 명을 붙잡고 캐물었다.“누가 시켰지? 말해!”“모... 모르겠습니다! 만능 전당포에서 받은 의뢰일 뿐입니다…”이에 붙잡힌 사람은 혼이 반쯤 나간 채로 벌벌 떨며 목소리를 간신히 내뱉었다. ‘만능 전당포라고?’상대방의 대답을 듣자마자
벨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손가을을 습격한 이의 목이 가차없이 날아갔다.그는 이 일이 자신과 무관하다는 것을 확실히 전달하기 위해 명령을 내릴 때 일부러 염구준이 들을 수 있도록 엄청 큰 소리로 외쳤다.“네 사람들 단속 잘해. 또 한 번 이런 일이 벌어지면, 그땐 나도 참지 않을 거니까.”염구준은 물론 이 모든 것이 배후 세력의 계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따끔한 충고는 필요했기 때문에 차갑게 경고했다.“알겠어, 알겠어.”네카일은 식은땀을 닦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염구준이 폭발하지만 않는다면 아직 협상의 여지는 있기 때문이었다.비교적 평화로운 분위기의 그들과는 반면,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흑풍 존주는 분노로 몸을 떨면서 욕을 하기 시작했다. “겁쟁이 새끼들! 불을 그렇게 붙여놨는데도 싸움이 안 나다니! 전생에 거북이었나.”방법을 있는대로 다 썼음에도 불구하고 계획이 이뤄지지 않자 그는 이를 악물고 자리를 떠났다.그러나 질 수록 더욱 달려드는 그의 성격상으로서 이대로 쉽게 포기할 리가 없었다.‘옥패를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해.’오해가 풀리자 네카일은 즉시 대형 버스를 준비했다. 손가을 일행을 공항으로 데려가 전용기로 귀국시키기 위해서였다.손가을 일행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염구준을 바라보면서 작별인사를 나누었다.“구준 씨, 딸이랑 같이 청해시에서 기다릴테니끼 빨리 돌아와야 해.”“삼촌, 고마워요. 저 때문에... 부디 몸 조심하세요.”“주... 아니, 오빠, 귀국하면 청룡과 연락해서 언제든지 지원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을게요.”걱정 가득한 사람들과는 달리 염구준은 담담한 얼굴로 대답했다.“괜찮으니까 걱정 말고 돌아가도 돼. 나도 바로 갈게.”사람들이 없으면 그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말이다. 버스가 천천히 멀어지자, 염구준도 한숨을 돌렸다. 두 명의 반보천인이 있는 한, 사고가 날 걱정도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장에는 여전히 각국 대표팀들이 서 있었다. 벨의 명령 없이는 함부로
스스로 조소하던 로사는 카트 아래에서 가운을 꺼내 몸을 감쌌다.상대방이 이런 취향이 아닌데 계속 이러고 있으면 오히려 반감만 생긴다.솔직히 처음으로 당당하게 남자를 유혹하려 하는데 단번에 거절당해서 매우 부끄러웠다.한참이 지나도 말을 하지 않자 염구준이 소녀의 생각을 추측했다.“내가 대신 복수해줘? 탈출시켜줘, 아니면 무공을 알려줘?”“전부 다요!”로사는 그가 전부 맞힐 줄은 상상도 못했다.염구준은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이 미리 쓴 원고를 던지며 말했다.“거기에 적힌 대로 하면 무공을 터득할 수 있어. 나머지는 너를 도와줄 의무가 없어.”그가 이렇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소녀가 정말 무공을 배우기에 적합한 인재이기 때문이었다.로사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래도 강요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그럼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어요?”“말해.”마침 염구준도 시간이 있기에 로사의 말을 들어주고 나중에 복수하는 것을 포기시킬 생각이었다.그러면서 음식을 먹는 것을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로사는 일단 생각을 정리하고 조리 있게 말하기 시작했다.“난 고아예요. 아주 어릴 때 고아원에 들어갔었죠. 그곳은 낙원일 줄 알았는데 원장이 나를 신비한 조직에 팔아버렸어요. 나랑 함께 그곳에 간 아이들은 혹독하고 잔인한 훈련을 받으면서 피비린내 진동하는 살인 도구로 살았어요.”“그러다 반 년 전에 내가 조직의 두목을 죽이고 도망쳤어요. 그곳을 이가 갈리도록 원망해요. 선배님은 실력이 강한 무술인이란 걸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어요. 나를 가엽게 여기고 옆에 하인으로 있게 해주면 안 돼요?”예상하지 못한 말에 염구준은 흠칫 놀라더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만약 네 말이 사실이라면 사정이 딱하긴 해. 그렇다고 난 도와주지 않아.”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로사는 용하인이 아니기에 더더욱 도와줄 이유가 없었다.그리고 곁에 하인을 두면 귀찮은 일만 생기기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무공 수련법 한 장을 준 것도 의리를 다한 셈이었다.“그래도 나를 구
염구준은 육신이 극한에 도달한 이후로 공격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너… 악!”촤아악!바다의 유령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비수를 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순식간에 뒷목에 서늘한 것이 스치는 것을 느끼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버렸다.나머지 여섯 명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피바다에 고꾸라졌다.“내가 준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자신을 탓해.”염구준은 검을 한바퀴 돌려 피를 털어버리고 검갑에 집어넣었다.그 동작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깔끔했다.“다… 당신 사람을 죽였어.”먼 발치에서 사람이 죽는 장면을 본 선장은 너무 놀라 주저앉았다.로사는 그나마 무덤덤하고 나머지 선원들도 많이 놀랐는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솔직히 일곱 명의 무술인이 어떻게 죽었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은혜도 모르는 놈들 죽어 마땅하지 않아요?”염구준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이런 악당들이 죽으면 아무도 자신들을 해치지 않아서 기뻐해야 할 마당에 선장은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보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그… 그래도 사람이잖아요.”이제 보니 선장은 그동안 잔인하게 고래를 잡았으면서 사람에게 관대했다.만약 염구준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로사는 비참하게 당했을 거고, 선장 일행은 비참하게 죽었을 것이다.그때 독수리가 기회를 잡고 맞장구를 쳤다.“저 사람들은 당신을 노리고 왔어요. 그러니까 오히려 우리가 억울하게 당한 거라고요. 당장 우리 선박에서 내려요!”“…”독수리의 말에 선원들은 경악하며 쳐다보았다.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정말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촤아악!염구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날카로운 검기를 내리치자 다들 너무 무서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안 돼요. 아직 아이란 말이에요.”분위기가 살벌해지자 로사가 반쯤 드러난 가슴을 감싸고 독수리의 앞을 막았다.구자검의 검기는 소녀의 옆을 스쳐 바다 표면에 물보라를 일으켰다.염구준은 공격하지 않고 협박투로 말했다.“또 나한테
드디어 구명보트를 탄 일행이 선장의 도움으로 선박으로 올라왔다.모두 여덟 명으로 그동안 먹지를 못했는지 몸은 수척해지고 탈수 증상이 있었다.“주방에서 음식들 갖고 와. 그리고 링겔을 놔줘.”선장은 일행은 관찰한 후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했다.“그런데 음식은 그분한테 줘야 하는데요.”염구준을 무서워하는 선원 한 명이 작은 소리로 일깨워주었다.그러자 선장이 엄숙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일단 이 사람들 주고, 다시 만들어서 보내면 돼.”만약 염구준이 있었다면 일행을 전부 알아보았을 것이다.두 시간의 응급처치를 거쳐서 여덟 명은 드디어 혈색이 돌아왔다.아직 몸이 많이 허약하지만 그래도 목숨을 부지해서 참 다행이었다.“큰일은 없으니까 한동안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선장은 웃으면서 선원들에게 안으로 모셔서 쉬게 하라 일렀다.모두 마음이 어진 어부들이라 바다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보고도 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지금이야!”바로 그때, 돌변상황이 발생했다.구조된 일행 중에서 누군가 소리치자 여덟 명이 동시에 기운을 끌어올려 선원들을 공격했다.평범한 선원들은 저항하지도 못하고 단번에 제압당하고 말았다.“악!”로사는 모두가 방심한 틈을 타 종사지경에도 도달하지 못한 무술인의 목을 베었다.그런데 방금 공격으로 이미 기진맥진했다.“대장, 여자가 있어.”“가만히 있어. 내가 상대할게.”그들은 동료가 죽은 것도 개의치 않고 모두 로사의 몸매만 쳐다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쿵!대장이라는 무술인이 기운을 폭발시키더니 갑자기 덮쳐서 로사를 제압했다.“발버둥쳐. 반항해 봐. 그럴수록 더 흥분되니까. 하하하.”이렇게 혈기왕성한 모습이라니, 방금 전에 죽을 것처럼 시들시들하던 인간 같지 않았다.그 장면을 본 선장은 가슴이 칼로 에이는 것 같았다.지금까지 어부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이런 악당들을 만났다.“너희들 뭐하는 짓이야? 방금 우리가 너희를 살렸어.”선장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놈들의 행위가 이해되지 않았다.“우리를 구했다고?
“맞아.”염구준은 소녀의 몸에서 악한 기운을 느꼈지만 덤덤하게 말했다.기운만 보아도 사람 몇 명을 살해한 것 같았다.“날 잡으러 왔어요?”로사는 비수를 꽉 쥐고 또 물었다.“아니야. 길이나 안내해.”염구준이 그 사이 소녀를 관찰한 결과, 무술을 배우기에 좋은 재목이었지만 아쉽게도 인도할 스승이 없었다.두 사람은 오늘 처음 만났으니 더는 소녀의 일에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휴, 무례하게 대해서 죄송해요.”그제야 로사는 비수를 넣으며 사과했다.소녀는 앞장서 가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방금 싸우려는 자세만 봐도 건장한 남자를 상대하는 것은 문제없어 보였다.선장 침실에 도착하자 로사는 이불을 바꾸고는 한마디만 하고 떠났다.“쉬세요. 음식이 되면 여기로 가져다 줄게요.”“그래. 볼일 봐.”쿵!염구준은 문을 닫고 침대에 쓰러져서 잠들었다.이런 포근함을 오랜만에 느끼는 것 같았다.그리고 머릿속에 그동안 발생했던 일들을 정리했다.황계웅에게서 옥패의 단서를 발견하고, 유동심연에 도착했을 때 나머지 세력이 따라온 덕에 비슷한 정보를 얻었다는 것을 알아냈다.이 정보는 어쩌면 같은 사람이 흘렸을 수도 있다.그리고 심해에서 봤던 가짜 옥패는 흑풍의 표식을 남긴 것을 보아 틀림없이 그놈의 짓이다.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상황은 이랬을 것이다.몇 년 전에 흑풍이 심해에서 진짜 옥패를 찾았는데 위험한 곳이란 걸 알고 적을 죽이려고 함정을 판 것이다.마침 강적을 만난 그는 시기가 되자 일부러 고대 옥패의 단서를 남겨 죽이려고 했는데, 계획과 다르게 적의 육신이 극한 경지에 도달하게 만들었다.…이런 생각을 하다가 염구준은 잠에 빠졌다.밖에 날씨가 화창하고 바람도 적게 불어 항행하기 딱 좋았다.이번은 선장이 직접 나서서 전속으로 달리고 있었다.지금 그는 빨리 부두에 도착하여 염구준의 돈을 받는 즉시 선박에서 내보낼 생각이었다.어쩐지 그는 사람이 아니라 핵폭탄 같았다.조종석에서 할 일이 없는 몇몇 선원은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잡
그의 재력이라면 대형 수영장을 만들어 향유고래를 키울 수도 있지만 바다가 고래의 고향이라 그러지 않았다.“선장, 고래가 엄청난데 잡지 않아요?”갑판에서 몸이 건장한 흑인 선원이 불만을 토로했다.눈앞에서 헤엄치며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 돈이니 그럴만했다.“독수리, 주둥이 닥쳐!”선장은 아직도 누군가 향유고래에 미련을 두자 버럭 화를 냈다.염구준이 어디 출신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발산하는 기운은 보는 사람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독수리가 염구준을 힐끗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나머지 선원들도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선장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저기, 아직 볼일이 남았어요?”선장은 염구준이 조용히 앉아 있자 조심스럽게 물었다.“여기서 가까운 부두로 데려다줘요.”염구준은 끝없는 바다를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이곳은 바닷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일단 상륙한 후에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울 생각이었다.“그게…”선장은 난처한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어려우면 말씀하세요. 그렇다고 폭행을 휘두르면서 강요하지 않으니까.”염구준은 선장의 태도가 이상한 걸 눈치채고 분명하게 말했다.선박은 어부들 것이니 강제로 빼앗지 않을 것이다.그의 말에 선장은 솔직하게 말했다.“우리는 고래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해요. 이제 나와서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이대로 돌아가면 손해가 엄청납니다.”그들은 염구준이 무섭지만 돈을 벌지 못해 가족들이 굶는 것이 더 무서웠다.“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아요. 얼마를 원하세요? 육지에 도착하면 내가 줄게요.”염구준에게 있어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100만 달러.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선장은 믿지 않는지 거액의 가격을 부르면서 떠보았다.듣기에 높은 가격이지만 따져보면 수리비용, 연료, 인건비 등등 모두 제외하면 얼마 남지 않으니 합리적인 가격이었다.“이걸로 담보할게요. 어차피 당신네 선박에 있으니까 도망치지 않아요.”염구준은 상대방이 걱정하는 걸 알아차리고 딸에게 선물하려고 주은 주먹
이튿날, 미지의 바다에서 향유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고, 등에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그 사람은 바로 염구준이었다.사방에 온통 푸른 바다라 지금 어느 곳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지금은 고래가 바닷가로 데려가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고래야, 잘 부탁한다.”“우웅!”둘은 서로의 말을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수시로 교류했다.염구준이 눈을 감고 운기조식하다가 배고프면 심해의 눈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신기한 것은 한 방울만 먹어도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뿌우우우웅!그때 멀리서 선박 소리가 들렸다. 염구준은 눈을 번쩍 뜨고 소리를 질렀다.“저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목소리에 기운을 담았더니 쩌렁쩌렁한 소리를 지를 때마다 수면이 음파에 진동하는 것 같았다.어디선가 나타난 선박에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슥!그런데 선박에 다가간 순간, 상대방이 고래를 잡는 쇠고랑을 발사하는 것이었다.염구준은 재빨리 검기로 밧줄을 잘라버렸다.선박은 그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향유고래를 잡으러 온 것이었다.생각하지 않아도 고래의 용연향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스스슥!선박에 있는 사람들은 고장난 줄 알고 이번에 작살을 던졌지만 역시 염구준에게 잘려서 바다 밑으로 들어갔다.상대방과 가까워지자, 염구준은 그들의 선박에 번쩍 뛰어올라 엄숙하게 경고했다.“멈춰. 아니면 무력으로 대응할 거야.”선원들은 대부분 기운이 없는 평범한 어부였다.그들은 염구준이 먼 곳에서부터 뛰어올라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여기서는 고래를 잡는 걸 허락해요.”한참 뒤, 선장은 국제 감독기관에서 온 줄 알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이 고래는 내 친구예요. 어떻게 할지 잘 알겠죠?”염구준은 선장을 노려보며 차갑게 되물었다.“알았어요. 이 사람 말을 못 들었어? 당장 작살을 내려놔!”선장은 상대방이 보통이 아니란 걸 눈치챘는지 바로 선원들에게 지시했다.그러자 당황한 선원들은 정신을 차리고 지시대로 작살을 내려놓았다.염구
감히 그의 전우나 다름없는 고래를 잡아먹으려고 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만약 향유고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심해 밑에서 죽었을 것이다.“염 선생님, 안 돼요!”당황한 노신기 일행이 다급히 나서서 말렸지만 염구준은 듣지 않았다.그는 요트를 타고 서해충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러 공격했다.“당장 토해!”염구준은 두 손으로 검을 들고 번쩍 뛰더니 위에서 서해충을 자르려고 했다.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고래를 살려낼 것이다.“하악!”뿔난 서해충이 나지막하게 울부짖더니 커다란 입을 벌이고 염구준을 통째로 삼키고는 물속으로 들어갔다.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모두 경악하고 말았다.심지어 천기문의 고위층들도 진정할 수 없었다.“염 선생님!”“안 되겠어. 모든 음성탐지기를 던져!”노신기는 당황한 마음에 맞서 싸우려고 명을 내렸다.유동심연의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이번에 오면서 대량의 음성탐지기를 챙겼었다.그러나 워낙 위력이 강한 무기라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염 선생님, 제발 잘 버텨줘요.’촤아악!이제 막 음성탐지기를 내려놓고 가동하려고 할 때 눈앞에서 거센 물보라가 솟구치는 것이었다.해저 지진으로 거센 파도가 밀려오면서 일으킨 쓰나미였다.“다들 선실로 들어가!”위급한 상황에서 노신기는 어쩔 수 없이 먼저 가문을 지켜야 했다.선박 세 척은 쓰나미에 밀려 먼 곳까지 흘러갔다.한편, 바다 밑은 난리도 아니었다.서해충 체내에 들어간 염구준은 선사 시대의 바다 생물과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그가 공격할 때마다 서해충은 심한 고통을 느꼈는지 커다란 몸집을 꿈틀거렸다.실은 서해충이 삼킨 것이 아니라 그것이 도망칠까 봐 염구준이 스스로 잡혀 먹힌 것이었다.한참 공격하면서 돌진했더니 드디어 향유고래가 있는 곳까지 다가갔다.“구자검법! 검일참공!”그는 기운을 폭증시켜 강력한 살술로 서해충의 몸에 길이가 10미터되는 상처를 냈다.잘린 부위에서 바닷물이 역류하여 들어올 때, 염구
동물의 감각은 때론 인간보다 훨씬 뛰어났다.특히 바다에서 자란 생물이라면, 웬만한 레이더보다도 훨씬 빨리 감지할 수 있었다.쿠쿵!혹시라도 싸울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몸에서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아래쪽에서 뭔가 빠르게 올라오고 있어.”염구준은 날카로운 눈으로 바다밑을 바라보며 말했다. 작은 검은 점 하나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었다.아직 수면까지 오지도 않았는데, 그 그림자는 이미 성체 향유고래와 맞먹는 크기였다.‘설마, 진짜 서해충이 있는 건가?’“목표가 공격 범위에 진입했습니다. 모든 작살 준비 완료했습니다.”대원들은 지시가 떨어지고 나서 3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내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쏴!”노신기는 참을성 없이 바로 명령을 내렸다.‘망했다!’염구준은 말리려고 했지만 결국 말리지 못했다.물속의 거대한 생물체는 어선보다도 커서 자칫하다간 오히려 배가 끌려갈 수도 있었다.슥! 슥! 슥!고래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세 척의 어선에서 수십 발의 대형 작살이 물밑의 검은 그림자를 향해 발사되었다.타겟의 몸집이 컸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살이 정확하게 꽂힐 수 있었다.“끌어 올려!”노신기는 고래 잡이를 할 때 쓰던 방식을 운용하며 숙련하게 명령을 내렸으나 기계를 최대치로 올려도 타겟을 끌어오리지 못했다.이에 조타실에서 다급하게 소식을 전했다.“큰일입니다. 어선이 저것에 의해 유동심연 쪽 소용돌이로 끌려가고 있어요!”배는 엄청난 속도로 끌려갔다. 배 자체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속도였다.“밧줄을 끊어!”염구준은 노신기의 무전기를 낚아채고 지휘권을 넘겨받았다.“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꽉 감겨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조타실에서 절박한 답변이 돌아왔다.현대식 어선은 전부 인공지능 시스템이라 이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우웅!염구준은 결국 검기를 날렸고, 날카로운 검광이 연달아 번쩍이며, 단숨에 밧줄들을 잘라냈다.이에 배가 거대한 관성에 휘청이며 흔들렸고, 균
오늘 만약 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빨리 항행하라고 하세요. 뭔가 이상합니다.”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네, 말하고 오겠습니다!”그러나 눈치가 생긴 사람들은 염구준의 뜻을 알지 못해도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어 곧바로 달려갔다.그들은 염구준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염구준은 흡족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면을 바라보며 물었다.“스텔라성의 성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십니까?”이번에 스텔라성의 성주는 두 개의 판을 짰는데, 하나는 겉면으로 보이는 부성주 베르였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숨어있던 노대영이었다. 다른 걸 다 따지고 나서 판을 짠 것만 본다면 정말 훌륭한 계획이었다.그랬기에 염구준은 그를 중시했다.노신기와 아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로를 바라본 뒤, 늙은 아타가 입을 열었다. “성주의 이름은 노세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의 소유자로, 진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지난 20년간, 외부에서는 그의 모습을 본 이가 없습니다. 폐관 중이라는 소문도 있고,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요.”“그의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 저희도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이야기를 들은 염구준은, 오히려 흥분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흐음, 전부 사실이라면 꽤 괜찮은 상대가 되겠군요.”방금, 막 육체의 극한을 돌파한 염구준은 적당한 시험 상대가 필요했다.‘대단해.’주변 고위 간부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염구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약간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스텔라성 성주 같은 괴물은, 대부분 기겁하며 피하려 하는데, 정면 승부를 기대한다니까 말이다.“그나저나 염 선생님, 전에 올라오실 때, 인원이 적던데, 혹시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노신기는 다른 걸 얘기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아, 이거 아십니까?”그의 손에는 투명한 비닐에 담긴 작은 물방울이 들려 있었는데, 외부에는 진기가 감돌았다.‘어라?’조금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