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해요. 패배를 인정하는 거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게다가 우린 철천지원수도 아니고 조각만 주면 바로 떠날게요.”염구준은 싸우면서도 상대방의 정신을 분산시키려고 말을 계속 걸었다.하지만 저들이 얌전히 조각을 내준다면 약속대로 바로 떠날 수도 있었다.“퉷! 저놈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세요!”세라는 노련한 통찰력으로 몇몇 가주들의 속을 꿰뚫고 있었다.싸움이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 가장 먼저 물러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되니 진법이 깨지지 않게 주의를 줘야 했다.세라의 울부짖음에 다들 정신을 가다듬고 계속 기운을 전달하기 시작했다.만약 상대방의 유혹에 넘어갔다면 어떤 봉변을 당할지 생각만 해도 식은 땀이 흘렀다.“재주 좋네. 내가 과소평가했어요.”염구준은 더는 말하지 않고 싸우는 데 집중했다.이제 검기가 꽉 찼으니 곧 강력한 대살수를 사용할 수 있었다.“푸압!”바로 그때 상대 측에 변고가 생겼다.세라 측의 전신지상 한 명이 견디지 못하고 피를 뿜어낸 것이다.다른 전신지상 무술인도 얼굴이 창백한 것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어떤 수단을 사용하든 이번 싸움은 역시 반보천인들만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젠장,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어요?”세라는 더는 진정할 수 없었다.육망성광진법이 파괴되어 각자 싸운다면 전멸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30분이요.”“5분이요!”두 전신지상이 시간을 보고했다.상대방의 진법이 곧 무너질 상황에 처했지만 염구준은 계속 공격 자세를 유지했다.적을 통제할 수 없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었다.“그 초식을 사용합시다.”세라가 안색을 굳히며 중대한 발표를 했다.이 지경에 이른 이상 승리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알겠습니다. 세라 부인과 함께 미치도록 싸워보죠.”반보천인 세 가주의 눈빛이 바뀌더니 광기가 이글거렸다.쿵!가주들이 미친듯이 기운을 끌어올리자 세라는 다시 그 힘을 빌어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전투장에서 각자 기운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면서 대살수를 준
”하하하, 이겼어요. 아타 장로님, 보셨어요?”현장에서 감격에 벅차서 소리를 지른 사람은 바로 노신기였다.그는 드디어 50년 넘게 괴롭혔던 캐틀린 가문 앞에서 당당하게 콧대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그때 염구준이 한 걸음씩 걸어가며 싸늘하게 말했다.“조각을 내주면 세라 외에 나머지 사람들은 살려줄 수 있어.”이번 행차에서 조각 네 개를 얻고 싶을 뿐이었는데 치열한 싸움을 면하지 못하고 부상까지 입었다.이 싸움을 일으킨 장보인이 바로 세라였다.“정말 조각만 주면 살려줄 거야?”레온 가주가 의아해하며 물었다.해도의 조각은 100년을 넘게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기에 다들 보물처럼 소중히 보관했지만 솔직히 따져보면 그들에게 실질적인 이득을 주지 못했다.“물론이지.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염구준이 확신하며 말하면서도 여전히 살기를 거두지 못했다.만약 이 사람들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가차 없이 목숨을 거둘 것이다.“이건 우리 레온 가문에서 보관했던 조각이야. 가져가!”“대어당의 조각, 여기 있어.”“안설홍의 조각도 받아.”세 사람은 살기 위해서 저마다 몸을 더듬어 해도의 조각을 꺼내 주었다.지금 그들은 도마 위에 놓인 생선이나 다름없으니 조건을 따질 자격이 없었다.스스슥!염구준이 손을 내밀어 기운으로 흡수하여 세 장의 조각을 거두었다.“세 사람은 옆으로 물러나. 그리고 이따가 애지중지하는 아들을 데려가는 거 잊지 마.”“살려줘서 고마워.”세 사람은 무릎을 꿇고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재빨리 옆으로 물러섰다.그러자 세 가문에서 데리고 온 정예병도 캐틀린 가문과 거리를 두고 멀리 서 있었다.네 가문의 동맹은 이렇게 무너졌다.“이제 부인 차례입니다. 내가 고통스럽지 않게 보내줄게요.”염구준은 전혀 사정을 봐줄 생각이 없었다.두 사람의 원한은 이미 한 사람이 죽지 않으면 멈추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콜록, 능력 있으면 와서 가져가. 내가 우습게 보여?”세라의 기운이 강해졌다 약해졌다 하는 것이 체내의 기운이 곧 바닥날
”중상을 입은 너를 죽이는 것은 떳떳하지 않지만 절대 살려둘 수 없다.”반보천인 고수로서 공평한 싸움을 원했지만, 눈앞의 강력한 적을 살해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염 선생님, 제가 도와드릴게요.”그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감지한 그레이가 전투장으로 달려왔다.쿵!하지만 그레이가 가까이 오기 전에 베르가 일장을 날려 뒤로 물리쳤다.절정에 도달한 반보천인에게 일개 초보 반보천인이 상대할 수 없었다.그러니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정말 그레이가 나선다고 해도 오히려 걸림돌이 될 것이다.“됐어. 1대1 싸움에서 누구 도움도 필요 없어.”염구준은 부상을 입었지만 물러설 마음이 없었다.그는 얼마 남지 않은 기운을 움직여 계속 싸우려고 준비했다.“하하하, 용기가 가상하구나. 오늘 네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겠어!”베르가 껄껄 호탕하게 웃더니 쇠막대기를 들어 염구준에게 돌진했다.중상을 입은 무술인을 제거하는 것은 한 초식으로 충분하다 여겼다.“구자검법, 검일참공!”적이 가까이 다가올 때 염구준은 남은 기운을 발동하여 강력한 초식을 강행했다.“뭐야?”수상함을 느낀 베르는 재빨리 기운을 끌어올려 강력한 초식으로 막아냈다.하지만 황급히 사용한 공격은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악!”날카로운 구자검이 가볍게 쇠막대기를 스쳐서 베리의 왼쪽 어깨를 찌르고 말았다.“칠상권종극오의, 칠권합일!”염구준은 상대방에게 쉴 틈을 주지 않고 왼손바닥을 내밀며 상대방의 가슴을 공격했다.쿵!일장을 맞은 베르는 몇 십 미터나 떨어져 나가더니 피를 토하고 말았다.방심한 탓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너, 너… 이제 극한의 길에 올라섰구나. 육신, 기운, 의경 모두 극한에 도달했어.”단 한 번의 대결로 충격을 받은 베르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극한 반보천인은 세 조건 중에서 하나라도 극한에 도달하는 것만해도 대단한 일인데, 염구준은 세 조건 모두 극한에 도달한 것이었다. “하, 이제 알아봐도 늦었어.”염구준은 싸늘하게 웃으면서 전의
”그런데…”노신기는 전방에 있는 캐틀린 가문의 성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거기에 수많은 전리품이 있는데 이대로 가기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지금은 세 가문에서 항복하고 세라는 도망쳤으니 캐틀린 가문을 멸망시킬 절호의 기회였다.성 밖에 수백 명의 정예병이 대기하고 있기에 지시만 내리면 가능했다.그런데 염구준은 말없이 그를 노려보았다.“염 선생 말 대로 하세요.”노신기의 속셈을 알아챈 그레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맞은편에 있는 일행은 염구준의 공포스러운 실력에 제압되고, 그레이의 근처에 있는 군사들은 이미 혼란스러운 그의 기운을 감지했다.“에휴, 철수하자.”노신기는 어쩔 수 없이 지시를 내렸다.일행은 염구준의 인솔 하에 캐틀린성 밖으로 이동했다.멀리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나머지 무술인들은 그제야 긴장했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휴, 드디어 갔네요. 실력이 너무 강해서 인간 같지 않아요.”“그러게요. 중상을 입었는데도 베르 부성주한테 큰 타격을 주다니, 대체 어떤 경지에 도달하면 가능할까요?”“본인도 중상을 입었으면서 억지로 버텼겠지.”방금 구경하던 무술인들은 염구준의 실력에 충격을 먹고 감히 나서서 시탐하지 못했다.그들은 목숨을 갖고 장난칠 용기가 없었다.결국 세 가문에서 캐틀린 가문을 삼키지 못하고 서둘러 각자 주둔지로 도망쳤다.세라의 생사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여전히 위협이 존재하고 있으니 누구도 함부로 나서지 못했다.캐틀린성 밖으로 나간 염구준 일행은 차를 타고 바로 떠났다.조수석에 앉은 노신기는 이해할 수 없었다.“염 선생, 방금 캐틀린 가문을 멸망시킬 절호의 기회였는데 왜 철수한 겁니까?”“우왁!”염구준은 목구멍으로 솟아오는 기혈을 억누르지 못하고 검은 피를 토하고 말았다.육망성광진법을 파괴할 때 중상을 입었는데 나중에 베르가 나타나는 바람에 억지로 대살수까지 사용하여 내상이 더 심각해졌다.그래도 적들에게 들키기 싫어서 지금까지 억지로 버티고 버틴 것이었다.“염 선생!”노신기가 백미러로 염구준의
하지만 걱정해도 소용없으니 염구준이 안배한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차 대열은 천기문으로 달렸다.조용해진 차 안에서 염구준은 완전히 치료 상태로 들어갔다.한편, 도망친 세라와 베르는 캐틀린성 밖으로 도망친 뒤, 단숨에 스텔라성 본거지로 돌아갔다.이번에야말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콜록콜록! 부성주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세라는 기침할 때마다 피를 토하면서도 예의를 갖추었다.퍽!그런데 돌아온 것은 베르의 발차기였다.“베르 부성주님, 제발 진정하세요.”세라는 겨우 몸을 일으켜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갑작스러운 발차기였지만 기운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그녀도 막지 않았었다.이것으로 베르가 화풀이할 수 있다면 기꺼이 참을 수 있었다.“진정? 나를 배신하고 무슨 짓을 했어요?”베르는 충혈된 두 눈을 무릎 뜨고 언성을 높였다.“저 배신하지 않았어요. 조각 여섯 장과 관련된 유동심연에 숨은 보물도 전부 말씀드렸잖아요.”세라는 억울한 듯 반박하면서도 네 가문에서 스텔라성을 배신하려고 작정한 것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시치미 떼지 마세요!”베르는 분개하며 체내의 기운을 주변으로 발사했다.방금 중상을 입은 것도 모자라 배신까지 당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세라는 아예 두 무릎까지 꿇었다.아직 확실하지 않는 상황에서 일단 상대방이 알고 있는 것부터 말했다.비록 모두 절정 반보천인 고수지만 베르의 권력은 세라보다 훨씬 높았다.“유동심연에 고대 옥패가 있다는 사실을 왜 보고하지 않았어요?”베르는 숨기지 않고 바로 까발렸다.“거기에 고대 옥패가 있습니까?”처음 듣는 소리에 세라는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그녀가 40대 초반에 이르렀을 때 가문을 위해 100년도 훨씬 넘게 대대로 전해진 해도 조각을 보관했지만 지금까지 옥패가 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고대 옥패에 반보천인 이상의 무학이 기록되어 있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이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 원망스러웠다.“정말 몰랐어요?”베르는
홀로그램에 비친 얼굴을 확인하던 베르가 한쪽 무릎을 꿇고 예의를 갖추었다.상대방은 대략 예순 살이 된 노인이고 어두운 동굴 속에 있으면서도 차림새가 깔끔했다.그는 바로 스텔라성의 진정한 주인 노세였다.“베르, 무슨 일이 있길래 밖이 어수선한 거야?”노세는 두 눈을 감고 입을 꼭 다문 채로 복음으로 말을 전했다.“성주님의 폐관 수련에 방해가 되어 죄송합니다. 사실은…”베르는 어두운 표정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전부 보고했다.결국은 자신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발생한 일이라 성주를 볼 면목이 없었다.오늘 스텔라성의 고수들을 데리고 갔다면 십중팔구 염구준을 죽일 수 있었다.“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지만 내가 폐관 수련 중이라 자리를 비울 수 없어. 네가 부하들을 이끌고 고대 옥패를 가져오거라.”노세의 지시가 끝나자 홀로그램이 조용히 사라졌다.“반드시 임무를 완성하겠습니다.”베르는 엄숙하게 말하며 약속했다.이번에 성주가 대놓고 나무라지 않았지만 임무에 실패하면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처벌을 줄 것이다.그는 더는 지체하지 않고 동굴에서 나갔다.한편, 천기문 가문.염구준은 주둔지에 돌아오자마자 밥도 먹지 않고 조용한 방을 찾아 치료했다.낯선 땅에서 가장 오래 알고 지낸 사람도 며칠밖에 되지 않았으니 별로 신뢰가 가지 않았다.역시 자신을 믿고 자신의 실력을 믿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염구준의 몸은 워낙 강해서 약효까지 발휘하니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다.그래도 이렇게 깊은 상처를 완전히 치료하기는 쉽지 않았다.이 속도라면 어쩌면 내일 출발하기 전까지 7할을 회복할 것 같았다.조용한 방안에서 그는 꼼짝하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앉아 있었다.그리고 밤새 자지 않고 치료에만 집중했더니 체내의 어혈이 모공을 통해 배출하면서 몸 겉면에 피로 물든 땀으로 흠뻑 젖어버렸다.이제 기운도 많이 생성되었고 혈색도 돌아왔다.끼익!염구준은 치료를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신선한 바깥 공기를 들이마시며 따뜻한 햇살을 느끼고 있을 때 인기척이 들렸
염구준은 방금 자신을 욕보이는 말들은 들었지만 모른 척 넘어갔다.“누가 나왔어!”대문을 잡고 버티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리더니 한 번 보고는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다.“염구준 만나게 해줘! 당장 나오라고 해!”“…”노신기는 정말 이 사람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그들은 염구준도 알아보지 못하면서 계속 생사람을 잡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내가 염구준인데요.”보다 못한 염구준이 대문으로 다가가며 일행을 쳐다보았다.그러다 무리에서 무술인의 기운을 느꼈는데 아마도 이 사람들을 이끌고 온 장본인일 것이다.잠시 분위기가 어색해지면서 침묵이 흘렀다.“염구준, 너…!!”누군가 욕을 하려다가 염구준이 손을 들어 막아버렸다.“그만 소리를 지르고, 내게 볼일이 있는 사람은 남고 돈을 받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은 이만 돌아가세요. 아니면 이 돌처럼 부서질 겁니다.”그는 말하는 동시에 축적한 기운으로 대문 밖에 있는 청석을 산산조각 냈다.이것으로 평범한 사람에게 겁을 주는 것은 충분했다.“이거 마술이야?”“누가 알아? 빨리 도망쳐!”그들은 한 사람당 10만 원을 받고 부탁대로 시비를 걸러 왔을 뿐, 목숨까지 내놓기 싫었다.“역시 염 선생은 수완이 대단해요.”옆에 있던 노신기가 다시 감탄을 금지 못했다.그에 비해 방금 자신의 태도는 너무 우유부단해서 왠지 자괴감이 들었다.스스슥!무리가 흩어지자 한 그림자가 갑자기 튀어나와 손가락을 세우고는 염구준에게 돌진했다.“염 선생, 조심하세요!”염구준이 놈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노신기는 바로 제지할 수 없었다.“푸악!”다행히 염구준의 반응이 빨라 손가락으로 검결을 펼쳐 상대방의 왼쪽 어깨를 찔렀다.‘엄청난 기운이야.’상대방의 기운은 생각보다 강했다.이 정도로 난폭한 기운을 끌어올리려면 대량의 약재를 복용하고 미친듯이 운기를 돌려야 가능했다.“죽어라!”습격자는 염구준을 껴안고 미친듯이 포효했다.그의 행동으로 보아 이대로 자폭하려는 속셈이었다.전신지상 무술인이 자폭한다면 반보천인이라도
염구준의 실력을 잘 아는 루카와 슈카 형제는 지금 바로 천기문에 쳐들어가 그를 죽이고 싶었다.중상을 입었을 때 습격해야 승산이 있으니까.그런데 베르는 다른 계획이 있는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급하지 않아. 저 정도로 다쳤으면 빠른 시간 내에 회복할 수 없어. 이젠 폐인이나 다름없으니 유동심연에 들어가 고대 옥패를 찾게 한 뒤에 죽여도 늦지 않아.”듣고 보니 베르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물론 고대 옥패를 노린 것도 있지만 전에 한방 먹은 것으로 염구준에게 복수하려는 속셈도 있었다.“부성주님의 지시대로 하겠습니다.”두 형제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베르가 이 일의 담당자라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천기문 저택에서 염구준은 먹을 음식을 방으로 가져달라 부탁하고는 돌아갔다.그의 건강 상태에 대해 누구도 괜찮은지 의사는 필요하지 않는지 물어보지 않았다.염구준이 아침을 다 먹을 때까지도 바깥은 너무 조용했다.“뭐야? 내가 약한 척하니까 숨어 있는 놈들도 공격하지 않네.”솔직히 방금 피를 뿜은 것은 부상을 입은 척 연기했을 뿐이었다.다시 30분을 기다렸지만 여전히 배후가 나타나지 않자 노신기에게 연락했다.“점심 12시 정각에 부두로 출발하시죠.”만단의 준비를 마쳤으니 유동심연에 묻힌 보물을 찾아갈 때가 되었다.숨어 있는 놈들은 따라오게 내버려두다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한 번에 제거할 것이다.그럴 줄 알고, 적들이 경계하지 않고 과감하게 다가올 것을 대비해 방금 대문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천기문에서 노희연과 같은 실력이 약한 무술인들은 남아서 가문을 지키고 노신기의 부하들과 아타의 정예병이 입구에 모였다.이 사람들은 염구준을 돕는 것 같지만 그에게 빌붙어 이익을 챙기는 것이 목적이었다.“출발합시다.”염구준이 명령하자 차 대열이 천천히 부두로 향하기 시작했다.대어 부두.이곳은 근처에서 가장 큰 부두로서 대부분의 대형 선박들이 정착하는 곳이었다.염구준 일행은 유동심원에 가기 전에 대어 부두에서 대형 선박 3대를 대여했다.그런
스스로 조소하던 로사는 카트 아래에서 가운을 꺼내 몸을 감쌌다.상대방이 이런 취향이 아닌데 계속 이러고 있으면 오히려 반감만 생긴다.솔직히 처음으로 당당하게 남자를 유혹하려 하는데 단번에 거절당해서 매우 부끄러웠다.한참이 지나도 말을 하지 않자 염구준이 소녀의 생각을 추측했다.“내가 대신 복수해줘? 탈출시켜줘, 아니면 무공을 알려줘?”“전부 다요!”로사는 그가 전부 맞힐 줄은 상상도 못했다.염구준은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이 미리 쓴 원고를 던지며 말했다.“거기에 적힌 대로 하면 무공을 터득할 수 있어. 나머지는 너를 도와줄 의무가 없어.”그가 이렇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소녀가 정말 무공을 배우기에 적합한 인재이기 때문이었다.로사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래도 강요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그럼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어요?”“말해.”마침 염구준도 시간이 있기에 로사의 말을 들어주고 나중에 복수하는 것을 포기시킬 생각이었다.그러면서 음식을 먹는 것을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로사는 일단 생각을 정리하고 조리 있게 말하기 시작했다.“난 고아예요. 아주 어릴 때 고아원에 들어갔었죠. 그곳은 낙원일 줄 알았는데 원장이 나를 신비한 조직에 팔아버렸어요. 나랑 함께 그곳에 간 아이들은 혹독하고 잔인한 훈련을 받으면서 피비린내 진동하는 살인 도구로 살았어요.”“그러다 반 년 전에 내가 조직의 두목을 죽이고 도망쳤어요. 그곳을 이가 갈리도록 원망해요. 선배님은 실력이 강한 무술인이란 걸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어요. 나를 가엽게 여기고 옆에 하인으로 있게 해주면 안 돼요?”예상하지 못한 말에 염구준은 흠칫 놀라더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만약 네 말이 사실이라면 사정이 딱하긴 해. 그렇다고 난 도와주지 않아.”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로사는 용하인이 아니기에 더더욱 도와줄 이유가 없었다.그리고 곁에 하인을 두면 귀찮은 일만 생기기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무공 수련법 한 장을 준 것도 의리를 다한 셈이었다.“그래도 나를 구
염구준은 육신이 극한에 도달한 이후로 공격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너… 악!”촤아악!바다의 유령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비수를 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순식간에 뒷목에 서늘한 것이 스치는 것을 느끼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버렸다.나머지 여섯 명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피바다에 고꾸라졌다.“내가 준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자신을 탓해.”염구준은 검을 한바퀴 돌려 피를 털어버리고 검갑에 집어넣었다.그 동작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깔끔했다.“다… 당신 사람을 죽였어.”먼 발치에서 사람이 죽는 장면을 본 선장은 너무 놀라 주저앉았다.로사는 그나마 무덤덤하고 나머지 선원들도 많이 놀랐는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솔직히 일곱 명의 무술인이 어떻게 죽었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은혜도 모르는 놈들 죽어 마땅하지 않아요?”염구준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이런 악당들이 죽으면 아무도 자신들을 해치지 않아서 기뻐해야 할 마당에 선장은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보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그… 그래도 사람이잖아요.”이제 보니 선장은 그동안 잔인하게 고래를 잡았으면서 사람에게 관대했다.만약 염구준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로사는 비참하게 당했을 거고, 선장 일행은 비참하게 죽었을 것이다.그때 독수리가 기회를 잡고 맞장구를 쳤다.“저 사람들은 당신을 노리고 왔어요. 그러니까 오히려 우리가 억울하게 당한 거라고요. 당장 우리 선박에서 내려요!”“…”독수리의 말에 선원들은 경악하며 쳐다보았다.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정말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촤아악!염구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날카로운 검기를 내리치자 다들 너무 무서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안 돼요. 아직 아이란 말이에요.”분위기가 살벌해지자 로사가 반쯤 드러난 가슴을 감싸고 독수리의 앞을 막았다.구자검의 검기는 소녀의 옆을 스쳐 바다 표면에 물보라를 일으켰다.염구준은 공격하지 않고 협박투로 말했다.“또 나한테
드디어 구명보트를 탄 일행이 선장의 도움으로 선박으로 올라왔다.모두 여덟 명으로 그동안 먹지를 못했는지 몸은 수척해지고 탈수 증상이 있었다.“주방에서 음식들 갖고 와. 그리고 링겔을 놔줘.”선장은 일행은 관찰한 후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했다.“그런데 음식은 그분한테 줘야 하는데요.”염구준을 무서워하는 선원 한 명이 작은 소리로 일깨워주었다.그러자 선장이 엄숙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일단 이 사람들 주고, 다시 만들어서 보내면 돼.”만약 염구준이 있었다면 일행을 전부 알아보았을 것이다.두 시간의 응급처치를 거쳐서 여덟 명은 드디어 혈색이 돌아왔다.아직 몸이 많이 허약하지만 그래도 목숨을 부지해서 참 다행이었다.“큰일은 없으니까 한동안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선장은 웃으면서 선원들에게 안으로 모셔서 쉬게 하라 일렀다.모두 마음이 어진 어부들이라 바다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보고도 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지금이야!”바로 그때, 돌변상황이 발생했다.구조된 일행 중에서 누군가 소리치자 여덟 명이 동시에 기운을 끌어올려 선원들을 공격했다.평범한 선원들은 저항하지도 못하고 단번에 제압당하고 말았다.“악!”로사는 모두가 방심한 틈을 타 종사지경에도 도달하지 못한 무술인의 목을 베었다.그런데 방금 공격으로 이미 기진맥진했다.“대장, 여자가 있어.”“가만히 있어. 내가 상대할게.”그들은 동료가 죽은 것도 개의치 않고 모두 로사의 몸매만 쳐다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쿵!대장이라는 무술인이 기운을 폭발시키더니 갑자기 덮쳐서 로사를 제압했다.“발버둥쳐. 반항해 봐. 그럴수록 더 흥분되니까. 하하하.”이렇게 혈기왕성한 모습이라니, 방금 전에 죽을 것처럼 시들시들하던 인간 같지 않았다.그 장면을 본 선장은 가슴이 칼로 에이는 것 같았다.지금까지 어부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이런 악당들을 만났다.“너희들 뭐하는 짓이야? 방금 우리가 너희를 살렸어.”선장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놈들의 행위가 이해되지 않았다.“우리를 구했다고?
“맞아.”염구준은 소녀의 몸에서 악한 기운을 느꼈지만 덤덤하게 말했다.기운만 보아도 사람 몇 명을 살해한 것 같았다.“날 잡으러 왔어요?”로사는 비수를 꽉 쥐고 또 물었다.“아니야. 길이나 안내해.”염구준이 그 사이 소녀를 관찰한 결과, 무술을 배우기에 좋은 재목이었지만 아쉽게도 인도할 스승이 없었다.두 사람은 오늘 처음 만났으니 더는 소녀의 일에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휴, 무례하게 대해서 죄송해요.”그제야 로사는 비수를 넣으며 사과했다.소녀는 앞장서 가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방금 싸우려는 자세만 봐도 건장한 남자를 상대하는 것은 문제없어 보였다.선장 침실에 도착하자 로사는 이불을 바꾸고는 한마디만 하고 떠났다.“쉬세요. 음식이 되면 여기로 가져다 줄게요.”“그래. 볼일 봐.”쿵!염구준은 문을 닫고 침대에 쓰러져서 잠들었다.이런 포근함을 오랜만에 느끼는 것 같았다.그리고 머릿속에 그동안 발생했던 일들을 정리했다.황계웅에게서 옥패의 단서를 발견하고, 유동심연에 도착했을 때 나머지 세력이 따라온 덕에 비슷한 정보를 얻었다는 것을 알아냈다.이 정보는 어쩌면 같은 사람이 흘렸을 수도 있다.그리고 심해에서 봤던 가짜 옥패는 흑풍의 표식을 남긴 것을 보아 틀림없이 그놈의 짓이다.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상황은 이랬을 것이다.몇 년 전에 흑풍이 심해에서 진짜 옥패를 찾았는데 위험한 곳이란 걸 알고 적을 죽이려고 함정을 판 것이다.마침 강적을 만난 그는 시기가 되자 일부러 고대 옥패의 단서를 남겨 죽이려고 했는데, 계획과 다르게 적의 육신이 극한 경지에 도달하게 만들었다.…이런 생각을 하다가 염구준은 잠에 빠졌다.밖에 날씨가 화창하고 바람도 적게 불어 항행하기 딱 좋았다.이번은 선장이 직접 나서서 전속으로 달리고 있었다.지금 그는 빨리 부두에 도착하여 염구준의 돈을 받는 즉시 선박에서 내보낼 생각이었다.어쩐지 그는 사람이 아니라 핵폭탄 같았다.조종석에서 할 일이 없는 몇몇 선원은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잡
그의 재력이라면 대형 수영장을 만들어 향유고래를 키울 수도 있지만 바다가 고래의 고향이라 그러지 않았다.“선장, 고래가 엄청난데 잡지 않아요?”갑판에서 몸이 건장한 흑인 선원이 불만을 토로했다.눈앞에서 헤엄치며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 돈이니 그럴만했다.“독수리, 주둥이 닥쳐!”선장은 아직도 누군가 향유고래에 미련을 두자 버럭 화를 냈다.염구준이 어디 출신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발산하는 기운은 보는 사람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독수리가 염구준을 힐끗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나머지 선원들도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선장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저기, 아직 볼일이 남았어요?”선장은 염구준이 조용히 앉아 있자 조심스럽게 물었다.“여기서 가까운 부두로 데려다줘요.”염구준은 끝없는 바다를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이곳은 바닷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일단 상륙한 후에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울 생각이었다.“그게…”선장은 난처한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어려우면 말씀하세요. 그렇다고 폭행을 휘두르면서 강요하지 않으니까.”염구준은 선장의 태도가 이상한 걸 눈치채고 분명하게 말했다.선박은 어부들 것이니 강제로 빼앗지 않을 것이다.그의 말에 선장은 솔직하게 말했다.“우리는 고래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해요. 이제 나와서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이대로 돌아가면 손해가 엄청납니다.”그들은 염구준이 무섭지만 돈을 벌지 못해 가족들이 굶는 것이 더 무서웠다.“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아요. 얼마를 원하세요? 육지에 도착하면 내가 줄게요.”염구준에게 있어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100만 달러.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선장은 믿지 않는지 거액의 가격을 부르면서 떠보았다.듣기에 높은 가격이지만 따져보면 수리비용, 연료, 인건비 등등 모두 제외하면 얼마 남지 않으니 합리적인 가격이었다.“이걸로 담보할게요. 어차피 당신네 선박에 있으니까 도망치지 않아요.”염구준은 상대방이 걱정하는 걸 알아차리고 딸에게 선물하려고 주은 주먹
이튿날, 미지의 바다에서 향유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고, 등에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그 사람은 바로 염구준이었다.사방에 온통 푸른 바다라 지금 어느 곳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지금은 고래가 바닷가로 데려가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고래야, 잘 부탁한다.”“우웅!”둘은 서로의 말을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수시로 교류했다.염구준이 눈을 감고 운기조식하다가 배고프면 심해의 눈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신기한 것은 한 방울만 먹어도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뿌우우우웅!그때 멀리서 선박 소리가 들렸다. 염구준은 눈을 번쩍 뜨고 소리를 질렀다.“저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목소리에 기운을 담았더니 쩌렁쩌렁한 소리를 지를 때마다 수면이 음파에 진동하는 것 같았다.어디선가 나타난 선박에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슥!그런데 선박에 다가간 순간, 상대방이 고래를 잡는 쇠고랑을 발사하는 것이었다.염구준은 재빨리 검기로 밧줄을 잘라버렸다.선박은 그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향유고래를 잡으러 온 것이었다.생각하지 않아도 고래의 용연향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스스슥!선박에 있는 사람들은 고장난 줄 알고 이번에 작살을 던졌지만 역시 염구준에게 잘려서 바다 밑으로 들어갔다.상대방과 가까워지자, 염구준은 그들의 선박에 번쩍 뛰어올라 엄숙하게 경고했다.“멈춰. 아니면 무력으로 대응할 거야.”선원들은 대부분 기운이 없는 평범한 어부였다.그들은 염구준이 먼 곳에서부터 뛰어올라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여기서는 고래를 잡는 걸 허락해요.”한참 뒤, 선장은 국제 감독기관에서 온 줄 알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이 고래는 내 친구예요. 어떻게 할지 잘 알겠죠?”염구준은 선장을 노려보며 차갑게 되물었다.“알았어요. 이 사람 말을 못 들었어? 당장 작살을 내려놔!”선장은 상대방이 보통이 아니란 걸 눈치챘는지 바로 선원들에게 지시했다.그러자 당황한 선원들은 정신을 차리고 지시대로 작살을 내려놓았다.염구
감히 그의 전우나 다름없는 고래를 잡아먹으려고 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만약 향유고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심해 밑에서 죽었을 것이다.“염 선생님, 안 돼요!”당황한 노신기 일행이 다급히 나서서 말렸지만 염구준은 듣지 않았다.그는 요트를 타고 서해충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러 공격했다.“당장 토해!”염구준은 두 손으로 검을 들고 번쩍 뛰더니 위에서 서해충을 자르려고 했다.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고래를 살려낼 것이다.“하악!”뿔난 서해충이 나지막하게 울부짖더니 커다란 입을 벌이고 염구준을 통째로 삼키고는 물속으로 들어갔다.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모두 경악하고 말았다.심지어 천기문의 고위층들도 진정할 수 없었다.“염 선생님!”“안 되겠어. 모든 음성탐지기를 던져!”노신기는 당황한 마음에 맞서 싸우려고 명을 내렸다.유동심연의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이번에 오면서 대량의 음성탐지기를 챙겼었다.그러나 워낙 위력이 강한 무기라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염 선생님, 제발 잘 버텨줘요.’촤아악!이제 막 음성탐지기를 내려놓고 가동하려고 할 때 눈앞에서 거센 물보라가 솟구치는 것이었다.해저 지진으로 거센 파도가 밀려오면서 일으킨 쓰나미였다.“다들 선실로 들어가!”위급한 상황에서 노신기는 어쩔 수 없이 먼저 가문을 지켜야 했다.선박 세 척은 쓰나미에 밀려 먼 곳까지 흘러갔다.한편, 바다 밑은 난리도 아니었다.서해충 체내에 들어간 염구준은 선사 시대의 바다 생물과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그가 공격할 때마다 서해충은 심한 고통을 느꼈는지 커다란 몸집을 꿈틀거렸다.실은 서해충이 삼킨 것이 아니라 그것이 도망칠까 봐 염구준이 스스로 잡혀 먹힌 것이었다.한참 공격하면서 돌진했더니 드디어 향유고래가 있는 곳까지 다가갔다.“구자검법! 검일참공!”그는 기운을 폭증시켜 강력한 살술로 서해충의 몸에 길이가 10미터되는 상처를 냈다.잘린 부위에서 바닷물이 역류하여 들어올 때, 염구
동물의 감각은 때론 인간보다 훨씬 뛰어났다.특히 바다에서 자란 생물이라면, 웬만한 레이더보다도 훨씬 빨리 감지할 수 있었다.쿠쿵!혹시라도 싸울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몸에서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아래쪽에서 뭔가 빠르게 올라오고 있어.”염구준은 날카로운 눈으로 바다밑을 바라보며 말했다. 작은 검은 점 하나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었다.아직 수면까지 오지도 않았는데, 그 그림자는 이미 성체 향유고래와 맞먹는 크기였다.‘설마, 진짜 서해충이 있는 건가?’“목표가 공격 범위에 진입했습니다. 모든 작살 준비 완료했습니다.”대원들은 지시가 떨어지고 나서 3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내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쏴!”노신기는 참을성 없이 바로 명령을 내렸다.‘망했다!’염구준은 말리려고 했지만 결국 말리지 못했다.물속의 거대한 생물체는 어선보다도 커서 자칫하다간 오히려 배가 끌려갈 수도 있었다.슥! 슥! 슥!고래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세 척의 어선에서 수십 발의 대형 작살이 물밑의 검은 그림자를 향해 발사되었다.타겟의 몸집이 컸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살이 정확하게 꽂힐 수 있었다.“끌어 올려!”노신기는 고래 잡이를 할 때 쓰던 방식을 운용하며 숙련하게 명령을 내렸으나 기계를 최대치로 올려도 타겟을 끌어오리지 못했다.이에 조타실에서 다급하게 소식을 전했다.“큰일입니다. 어선이 저것에 의해 유동심연 쪽 소용돌이로 끌려가고 있어요!”배는 엄청난 속도로 끌려갔다. 배 자체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속도였다.“밧줄을 끊어!”염구준은 노신기의 무전기를 낚아채고 지휘권을 넘겨받았다.“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꽉 감겨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조타실에서 절박한 답변이 돌아왔다.현대식 어선은 전부 인공지능 시스템이라 이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우웅!염구준은 결국 검기를 날렸고, 날카로운 검광이 연달아 번쩍이며, 단숨에 밧줄들을 잘라냈다.이에 배가 거대한 관성에 휘청이며 흔들렸고, 균
오늘 만약 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빨리 항행하라고 하세요. 뭔가 이상합니다.”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네, 말하고 오겠습니다!”그러나 눈치가 생긴 사람들은 염구준의 뜻을 알지 못해도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어 곧바로 달려갔다.그들은 염구준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염구준은 흡족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면을 바라보며 물었다.“스텔라성의 성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십니까?”이번에 스텔라성의 성주는 두 개의 판을 짰는데, 하나는 겉면으로 보이는 부성주 베르였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숨어있던 노대영이었다. 다른 걸 다 따지고 나서 판을 짠 것만 본다면 정말 훌륭한 계획이었다.그랬기에 염구준은 그를 중시했다.노신기와 아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로를 바라본 뒤, 늙은 아타가 입을 열었다. “성주의 이름은 노세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의 소유자로, 진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지난 20년간, 외부에서는 그의 모습을 본 이가 없습니다. 폐관 중이라는 소문도 있고,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요.”“그의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 저희도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이야기를 들은 염구준은, 오히려 흥분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흐음, 전부 사실이라면 꽤 괜찮은 상대가 되겠군요.”방금, 막 육체의 극한을 돌파한 염구준은 적당한 시험 상대가 필요했다.‘대단해.’주변 고위 간부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염구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약간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스텔라성 성주 같은 괴물은, 대부분 기겁하며 피하려 하는데, 정면 승부를 기대한다니까 말이다.“그나저나 염 선생님, 전에 올라오실 때, 인원이 적던데, 혹시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노신기는 다른 걸 얘기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아, 이거 아십니까?”그의 손에는 투명한 비닐에 담긴 작은 물방울이 들려 있었는데, 외부에는 진기가 감돌았다.‘어라?’조금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