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98화

Author: 목련청
카메라 앞에서 남설아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대범한 태도를 보였다. 사적인 문제를 들킨 당혹스러움 따위는 전혀 없어 보였고 마치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인 듯했다.

원래 배서준은 이렇게 분별 있고 프로페셔널한 태도의 남설아를 원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생기 없는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부터 어딘가 불쾌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예전엔 그녀가 모든 관심을 자신에게 쏟는 게 가장 싫었는데 이제는 아예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는 상황이 되자 오히려 더 견디기 힘들어졌다.

“사모님, 서유라 씨와 대표님의 관계가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

“서유라 씨는 서유라 씨일 뿐이지만 저는 사모님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서준 씨는 제 곁에 있죠. 이보다 더 명확한 답이 있을까요?”

남설아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배서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기자들 앞에서 열 손가락을 깍지 끼고 커다란 제스처로 결혼반지를 과시했다.

사실 그녀의 반지는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렸기에 지금 손에 낀 건 그냥 온라인 쇼핑몰에서 산 저가형 짝퉁일 뿐이었고 그야말로 한 푼의 가치도 없는 물건이었다.

배서준은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는데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의 눈빛도 어느새 부드러워졌고 남설아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은근한 온기와 묘한 감탄이 서려 있었다.

애초에 사람들은 이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장면이 생방송으로 송출되자 배서준의 눈빛을 따로 편집한 짧은 영상들이 각종 SNS를 뒤덮었다. 수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이를 활용해 2차 콘텐츠를 만들어냈고 이윽고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 전 국민이 배서준의 가짜 정체성과 가식적인 다정함에 현혹되어 버렸다. 일부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어떤 이들은 심지어 부러워하며 감싸기까지 했다.

온라인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홍보팀에서 올린 피드백을 확인한 천기준은 이번 이미지 세탁이 꽤 성공적으로 끝났음을 직감했다. 배건 그룹이 직면한 명예 실추 위기도 일단락된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굿바이 쓰레기   제99화

    원래는 긴급한 일이었지만 배서준은 이상하게도 지금은 그다지 급해 보이지 않았다.그는 잠시 멈춰 서서 남설아를 힐끗 바라봤다. 그녀가 왜 갑자기 더 이상 자기에게 휘둘리지 않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 시선을 느낀 남설아도 똑같이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결국 손을 휘휘 내저었다.“살펴 가세요. 배웅은 못하겠네요.”“올 때까지 기다려.”배서준은 단호하게 말을 던지고는 그대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남설아는 코웃음을 치며 옆에 서 있던 천기준에게 시선을 돌렸다.“뭘 멍하니 서 있어요? 당장 차 준비해요. 우리 늦으면 안 돼요.”“하지만 사모님, 대표님이 기다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천기준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되물었다.‘언제부터 사모님이 이렇게 자기주장이 강했지?’남설아는 그런 천기준의 반응이 우습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그쪽 대표님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요? 돌아올 것 같아요?”이런 일이 처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동안 약속의 대상이 배나은이었을 뿐.하지만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었다. 처음엔 나은이가 순진하게 기다리곤 했지만 몇 번을 겪고 나니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그러나 어린이들은 감정을 잘 숨기지 못했기에 남설아는 나은이가 매번 기다림과 실망에 지쳐 나중에는 울지도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나연이 생각이 들자 남설아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그녀는 단숨에 치맛자락을 손으로 쥐고는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천기준은 방금 전까지 온화하던 사모님이 한순간에 날카로워진 이유를 몰랐지만 일단 급히 따라붙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모님이 택시를 타고 행사장에 가게 둘 순 없었다.그럼 사람들 웃음거리가 될 테니까.행사장 입구에 도착한 남설아는 핸드폰을 조용히 집어넣고 곧장 미소를 띠며 차에서 내렸다.차에서 내린 순간 천기준은 절망했다.‘대체 누가 기자들을 부른 거야?!’‘방금까지만 해도 대표님과 사모님이 금슬 좋은 부부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한 사람만 덩그러니 등장하다니. 이건 대놓고

  • 굿바이 쓰레기   제100화

    차에서 내리자마자 서유라는 반쯤 배서준에게 몸을 기대며 마치 자신들의 관계가 얼마나 가까운지 세상에 알리고 싶은 듯한 태도를 보였다. 배서준은 그녀의 허리를 감싼 채 안으로 걸어가다가 마침 문 앞에서 막 들어가려던 남설아와 눈이 마주쳤다.남설아의 묘한 미소를 띤 눈빛이 그대로 박혀드는 순간 배서준의 가슴 한쪽이 찔린 듯 아릿해졌다. 손에 쥔 서유라의 손마저 까칠하게 느껴질 정도였다.“설아 씨, 제발 화내지 마. 내가 이런 파티에 처음 와보는 거라, 서준이한테 간절히 부탁해서 같이 온 거야.”“병원에만 있으니까 너무 답답해서 그냥 기분 전환 좀 하고 싶었어.”“난... 설아 씨가 여기 있는 줄 몰랐어.”서유라는 말하는 도중 눈가에 금세 눈물이 맺혔다.예전 같았으면 남설아가 당장 이 판을 엎어버렸을 것이지만 지금은 그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말했다.“서유라 씨, 병원에서 요양하느라 힘들었겠어. 왔으니 안에서 실컷 즐기다 가.”“서준 씨, 서유라 씨 잘 챙겨줘요. 혹시 마음에 드는 거라도 있으면 꼭 사서 선물해 주고요.”그 말을 남긴 채 남설아는 치맛자락을 가볍게 잡고 몸을 돌렸는데 발걸음은 거침없고 우아했다.배서준은 거의 본능적으로 그녀를 따라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어둠 속에 숨어 있던 기자들이 뭔가 흥미진진한 냄새를 맡고 흥분해서는 카메라를 들고 우르르 몰려왔다.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지며 광란의 촬영이 시작됐다.이번엔 아무도 질문을 던지지 않았으나 기자들의 시선에는 뚜렷한 조롱과 탐욕적인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대체 이 기자들은 어디서 나타난 거지? 어떻게 알고 온 거야?’배서준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반사적으로 서유라의 손을 놓으려 했지만 이미 차에서 내릴 때부터 둘이 얼마나 다정하게 행동했는지 모두가 지켜본 상황이었기에 지금 와서 거리를 두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방금 서유라의 눈물의 연기를 안 들은 사람도 없었을 터였다.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요즘은 시대가 변해서 이제는 이런 여우짓

  • 굿바이 쓰레기   제101화

    그러나 남설아는 이전까지 이런 자리에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고 모두 이 이방인이 누구인지 궁금해했다.남설아는 그런 시선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적은 뒤, 익숙한 얼굴들을 향해 먼저 인사를 건넸다.“사모님들, 저 남설아예요.”남설아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진 대표 사모님에게 다가가 살갑게 말했다.“지난번 생신 때 디저트도 제가 직접 만들어 드렸었는데. 어머, 설마 기억 안 나시는 거예요?”그녀는 물론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이 화려한 여성이 정말 남설아라는 사실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었다.석 달 전, 진 대표 사모님의 생일 파티에서 남설아는 들뜬 마음으로 참석했지만 결국 종일 주방에 갇혀 디저트만 만들었고 심지어 식사 자리에도 앉지 못했다. 반면 서유라는 꽃을 찾아드는 나비처럼 배서준의 곁을 맴돌며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파티가 끝난 후에야 진 대표 사모님은 주방에 있던 사람이 사실 배서준의 아내였고 그의 곁에서 환하게 웃고 있던 사람은 내연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이 일로 인해 그녀는 줄곧 남설아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땅한 보상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이야말로 그 기회였다.그녀는 즉시 남설아의 손목을 붙잡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배 대표 사모님이시잖아요. 제가 어떻게 몰라보겠어요!”그녀는 주위 사람들을 향해 손짓하며 활기차게 말했다.“여러분, 소개할게요. 여기 계신 분은 배건 그룹의 사모님, 남설아 씨예요!”“앞으로 잘 부탁드려요.”사모님은 남설아의 손을 꼭 붙잡고 마치 피붙이처럼 다정하게 행동했다.남설아는 이미 이 파티의 주최자가 진 대표 사모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와 친분을 쌓으면 오늘 이 자리에서 곤란한 상황에 빠질 일은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그런데 배 대표님은 어디 계세요?”그녀는 이렇게 물으며 남설아의 뒤쪽을 살피다가 얼굴이 굳었다.배서준이 상황 파악도 없이 이런 자리에 대놓

  • 굿바이 쓰레기   제102화

    이 일은 여기서 마무리될 수 있었다. 남설아는 약간 억울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망신을 당한 건 아니었으니까 지나갈 수 있었다.그런데 문제는 서유라가 어디서든 드라마를 찍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는 거였다. 그녀는 남설아를 막아서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설아 씨, 미안해. 나 일부러 따라온 게 아니야. 내가 우울증이 재발해서 기분이 안 좋아서 그래. 서준이도 나를 불쌍하게 여겨서 데려온 거야. 그러니까 제발 서준이 탓하지 말아줘. 그리고 어차피 두 사람 지금 이혼하려고 하고 있잖아. 나.. 나랑 서준이, 우리는...”남설아는 마침 적당한 핑곗거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여자가 이렇게 멍청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서유라의 의미심장한 발언을 듣고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유라 씨, 혹시 뉴스 안 봐?”‘무슨 뉴스?’서유라는 그동안 거의 침대에 묶여 지내다시피 했기 때문에 외부 소식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남설아는 친절하게도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아침에 있었던 기자회견과 영상 크리에이터들의 편집 영상을 찾아 보여주었다.그녀는 서유라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는 모습을 여유롭게 감상했다.서유라는 휴대폰을 부여잡은 채 치를 떨며 눈을 부릅떴다. 그녀도 바보는 아니어서 오늘 이 상황이 철저히 계산된 덫이라는 걸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서준아, 미안해. 나... 정말 몰랐어. 나는...”“천 비서, 유라 씨를 집에 데려다줘.”배서준은 손을 빼내며 서유라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그는 항상 냉철한 사람이었고 지금, 이 순간 어떤 선택이 가장 현명한지 잘 알고 있었다.서유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배서준이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내치는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무작정 소란을 피운다면 더 큰 망신을 당할 거라는 것을 말이다.결국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키며 돌아섰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천 비서는 일이 커지기 전에 신속하게

  • 굿바이 쓰레기   제103화

    비록 오늘 일어난 모든 일이 자신의 선택 때문이었지만 배서준은 자신이 이렇게까지 망신을 당한 것이 옆에 있는 이 여자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문제는 아무리 증거를 찾아도 잡히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남설아의 눈을 마주칠 때조차 그 속에서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배서준은 결국 어금니를 꽉 깨물며 이 수치스러움을 혼자 삼켜야 했다.그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진 대표의 사모님에게 말했다.“별거 아닌 해프닝이었습니다. 집안 동생이 철이 없어서 괜한 소란을 피웠데요. 죄송합니다.”“집안에서 철이 없는 건 그렇다 쳐도 밖에까지 데리고 나와서 그러면 안 되지 않나요? 여기 모인 사람이 다들 대단한 분들인데 말이에요.”그녀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뒤,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는 듯 자리를 떠났다.결국 남의 집안일이었기에 아무리 속으로 생각이 많아도 깊이 개입할 수는 없었다. 괜히 부부 관계에 영향을 주는 건 바람직하지 않았다.상류층 가정에서는 애초에 감정보다 이익이 우선이었다.그들은 남설아를 안타깝게 여기고 동정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포기할 만큼 깊이 개입하지는 않았다.한편, 강연찬은 이미 연훈 그룹의 대표 도연훈을 만나고 있었다. 두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었고 강연찬은 뛰어난 기술력과 화려한 경력을 내세워 미디어 개발 부문의 계약을 성공적으로 따냈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업계에서 손꼽는 인물이 되기에 충분했다.휴게실에서 나온 강연찬은 사람들이 모여 배서준을 험담하는 소리를 들었다. 듣기 거북한 말들이 그의 귓가에 스치자 그는 남설아 쪽에서 모든 것이 계획대로 잘 풀리고 있음을 확신했다.와인잔을 손에 든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마침내 구석진 곳에 앉아 있는 남설아를 발견했다.남설아는 외모가 워낙 출중했기에 그렇게 외진 곳에 앉아 있어도 존재감이 감춰지지 않았다.이미 여러 번 중년 남성들이 다가와 말을 걸고 있었다.조금 전 배서준의 태도를 모두가 지켜봤다. 그는 명백히 아내에게 무관심한 모습을

  • 굿바이 쓰레기   제104화

    “이건 제 명함이에요. 나중에 정말로 갈 곳이 없다면 제가 받아줄 수도 있겠네요.”남자는 뻔뻔스럽게도 자신의 명함을 남설아의 손에 쥐여주었다.그의 이런 행동은 무례함을 넘어선 명백한 모욕이었다.일반적으로 봤을 때 그 정도의 신분과 교양을 가진 사람이 이런 짓을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남설아는 이 자리에 개인의 이름으로 참석한 것이 아니라 배서준의 아내, 즉 배건 그룹 사모님의 신분으로 참석해 있다.즉, 이 남자의 행동은 단순히 남설아를 모욕하는 것이 아니라 배서준과 배건 그룹 전체의 얼굴에 먹칠하는 짓이었다.만약 남설아가 이 모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긴다면 배건 그룹의 체면이 땅에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였다.주위에는 눈치 빠른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 자리에는 남설아를 탐내는 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지금 이 남자는 그저 앞장서서 떠보는 역할을 하는 일종의 총알받이에 불과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과연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할지 남설아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었다.하지만 남설아는 별다른 감정 변화도 없이 얼굴에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명함을 받았다. 그리고는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홍성 원자재 무역회사? 좋아요. 앞으로 우리 배건 그룹은 홍성과 더 이상 협력할 일이 없겠네요. 이번 분기 계약이 끝나는 즉시, 다음 계약은 없습니다. 과연 제 말이 힘이 있는지 없는지 조 대표님 한번 지켜보시죠.”그렇게 말한 뒤, 남설아는 명함을 잘 챙겨 넣었다.조현무는 남설아가 자신의 체면을 봐주지 않을 줄은 어느 정도 예상하였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단칼에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게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협력 중단을 공개적으로 말하니 그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분노를 감추지 못하며 비웃었다.“그쪽이 뭐라고 감히 그런 말을 합니까? 배건 그룹이 진짜 당신 것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보네요?”“배건 그룹이 제 것이 아니라면, 혹시 조 대표님 것인가요? 제가 결정할 권한이 없다면 조 대표님한테 그런 권한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조 대표

  • 굿바이 쓰레기   제105화

    “이렇게 순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뭐가 건드리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거야? 오히려 너야말로 며칠 못 본 사이에 전투력이 더 높아졌네?”강연찬은 반짝반짝 빛나는 남설아를 보며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이게 바로 자신이 알던 남설아였다. 그녀는 본래 이렇게 빛나고 이렇게 눈부신 사람이었다.그 시선을 느낀 남설아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오빠 일은 순조롭게 잘 돼가?”“네가 도와줬으니 당연히 순조롭지.” 강연찬은 솔직하게 답했다.만약 남설아가 이런 방법을 생각해 내지 않고 시간을 벌어주지 않았다면 이번 협상은 결코 이렇게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했을 것이다.그러나 그 말을 들은 남설아는 곧바로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내가 뭘 도와줬다고 그래. 오빠가 능력 있어서 그런 거지, 나랑은 아무 상관 없어.”그러면서도 그녀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때, 연회장에 음악이 울려 퍼졌고 강연찬이 손을 내밀었다.“아름다운 아가씨, 저와 한 곡 추시겠습니까?”“물론이죠.”남설아는 전혀 망설임 없이 그의 손을 잡았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무도회장의 중심으로 나아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한편, 배서준은 도연훈과의 협력 논의를 위해 철저히 준비해왔는데 뜻밖에도 문전박대를 당했다.“배 대표님, 죄송합니다. 이번에 저희 연훈 그룹의 투자 유치는 이미 마무리되었습니다. 저희는 최고의 협력 파트너를 찾았으니 이만 돌아가 주시길 바랍니다.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연훈 그룹의 비서는 문 앞에서 공손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배건 그룹이 H 시에서는 제법 영향력이 있는 기업이긴 하지만 연훈 그룹은 천주에 기반을 둔 뿌리 깊은 대기업이었다. 중소기업이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고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그래서 비서조차도 거리낌 없이 배서준을 돌려보낼 수 있었다.“실례지만 최종적으로 선택한 기업이 어디인지 알 수 있을까요?”배서준은 이를 악물고 다시 물었다. 그러나 비서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죄송합니다만, 이는 연훈 그룹의 내부 기밀 사항이라 공개할 수

  • 굿바이 쓰레기   제106화

    “네. 제 아내는 남설아 씨입니다. 그러니까 예의를 갖추세요.”배서준은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강연찬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그럼 정말 우연이네요. 설아는 제 후배 거든요. 전 설아가 남편이 없는 줄 알고 친분을 표하려 춤을 청한 건데 배 대표님께서 오셨으니 저는 물러나야겠네요.”그는 이미 원하는 걸 손에 넣었기에 굳이 여기서 배서준과 더 충돌할 필요가 없었다.무엇보다 이런 자리에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날뛰는 사람이야말로 체면을 잃는 법이었다.주변 사람들은 하나둘씩 배서준을 향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비록 직접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들의 표정과 시선만으로도 배서준을 조롱하기에는 충분했다.그 시선들을 느낀 배서준은 분노를 고스란히 남설아에게 쏟아냈다.“너 그렇게도 남자가 없으면 못 참겠어?”“죄송해요, 여보.”남설아는 고개를 숙이며 나직이 사과했다. 그녀는 억울하고 위축된 모습을 하고는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았다. 배서준은 마치 있는 힘껏 내리친 주먹이 허공을 가른 듯한 기분이 들었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 여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토끼가 아니었다. 그녀는 온몸에 가시가 돋친 고슴도치였고 그 가시에 가장 깊이 찔리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주변의 시선이 점점 더 강렬해지자 배서준은 서서히 평정심을 찾았다. 오늘 망신을 당한 일이 한둘이 아니라 여기서 더 망신당할 수는 없다. 배서준은 이를 악물며 더 이상 체면을 구기지 않기 위해 억지로 감정을 누르고 남설아의 손을 세게 움켜쥐고 빠르게 연회장을 벗어나 자신의 전용 휴게실로 갔다.휴게실의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간 그는 곧장 남설아를 소파 위로 던지듯 밀치고 몸을 숙여 그녀 위로 덮쳐 그녀의 얇은 드레스를 찢으려 했다.‘이 사람이 미쳤나?'남설아의 머릿속에 떠오른 첫 번째 생각이었다.그녀는 배서준이 자극받으면 미친놈처럼 돌변해서 여기서 이런 일을 벌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이성을 되찾은 그녀는 바로

Latest chapter

  • 굿바이 쓰레기   제302화

    그는 줄곧 자신과 남설아는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 생각해왔지만 지금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강연찬이 회복되자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특히 남설아는 그동안 불안했던 마음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한편, 멀리 리조트에 머무르고 있던 서유라는 무척 불안하고 초조했다.서도현은 자신이 보낸 사람들이 전부 체포되어 한 명도 빠짐없이 구속되었다는 정보를 이미 입수했다. 남설아가 다치지 않은 것도 모자라 다친 사람마저 회복되었으니 그동안 벌인 모든 일이 헛수고가 되고 만 것이다.“뭐라고? 강연찬이 회복했다고?”서유라의 목소리는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로웠다.“그 사람들이 엄청 대단하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여자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남설아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여자잖아. 그런데도 그 여자 하나 못 건드려서 이 지경이 된 거야? 돈을 그렇게 많이 받고는 뭐 하겠다는 거야? 적은 돈이 아니었잖아.”서도현은 배서준의 감시를 피해 몰래 리조트 안으로 숨어들어와 서유라와 만났다.그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누나, 나도 최선을 다했어. 그놈들이 이런 일 하나도 제대로 못 할 만큼 이렇게 쓸모없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 그래도 다행인 건 그놈들이 입이 무지하게 무겁다는 거야. 지금껏 한마디도 안 했어. 나도 계속 지켜볼 거니까 우리한테 불똥이 튀게 두진 않을 거야.”“쓸모없는 놈들! 전부 다 쓸모없어!”서유라는 온몸을 떨며 분노했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어 바닥에 힘껏 내던졌다.“이제 어떡해? 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혹시 이 일을 남설아한테 말하면 어쩌려고? 남설아가 알게 되면, 나는...”“누나, 진정해봐.”서도현은 급히 달래며 말했다.“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해도 우리가 한 짓이라는 증거는 없어. 게다가 그 킬러들은 내가 따로 구한 사람들이라서 우리랑 직접적인 연결 고리는 없어.”“그래도...”서유라는 여전히 불안했다.“남설아 그 여자는 워낙 교묘해서 무슨 단서라도 찾아내게 되면 우리는 순식간에

  • 굿바이 쓰레기   제301화

    “알겠어.” 송우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너희가 그렇게 말한다면 따를게.”“우민아, 고마워.” 남설아가 말했다.“네가 얼마나 복수를 원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우리는 냉정해야 해. 감정에 휘둘리면 안 돼.”“응, 알아.” 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너희 계획에 최선을 다해 도울게.”“좋아.”남설아가 미소 지었다.“우린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야.”세 사람은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더 논의한 후,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위해 흩어졌다.연회가 끝난 후, 남설아는 사무실로 돌아와 밀린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때 강연찬이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들어왔다.“설아야, 우유 좀 마시고 일찍 쉬어.”강연찬이 우유를 건네며 말했다.“요즘 너무 무리하고 있어. 몸을 챙겨야지.”“응, 고마워, 오빠.”남설아가 우유를 받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오빠도 일찍 쉬어.”“난 안 피곤해.” 강연찬이 말했다.“너 일 마칠 때까지 같이 있어 줄게.”“괜찮아, 오빠. 몸도 아직 완벽히 회복된 건 아니잖아. 푹 쉬는 게 좋아.”남설아가 말했다.“이 서류들은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어.”“그래도 옆에 있어 줄게.”강연찬이 말했다.“너도 너무 늦지 않게 마무리하고 쉬어.”“응, 알겠어.”강연찬이 나간 뒤에도 남설아는 계속해서 일을 처리했다.그녀는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더 강해져야만 배서준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나은이를 위해 복수할 수 있었다.깊은 밤이 되어서야 남설아는 마침내 모든 서류를 정리했다.그녀는 기지개를 켜면서 창가로 가서 불빛이 번쩍이는 도시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나은아, 보고 있어?”남설아는 혼잣말처럼 속삭였다.“엄마가 반드시 복수할 거야. 기다려줘.”다음 날, 남설아는 이른 아침부터 회사에 출근했다.그녀는 회사의 핵심 팀을 소집해 다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여러분, 우리 그동안 좋은 성과를 거뒀지만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남설아가 말했다.“배건 그룹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지만

  • 굿바이 쓰레기   제300화

    “선배...”남설아는 강연찬을 바라보며 가슴 깊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송우민은 두 사람 사이의 다정한 분위기에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기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편이 허전했다.연회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던 중, 남설아가 잔을 들어 모두와 함께 축하의 건배를 하려는 찰나 강연찬이 재빨리 손을 내밀어 그녀를 막았다.“설아야, 요즘 너무 무리했잖아. 술은 좀 줄여.”강연찬의 목소리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남설아는 그의 따뜻한 눈빛을 마주하며 마음이 포근해졌다.하여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대신 주스를 들었다.“알겠어. 선배 말 들을게.”남설아는 웃으며 말했다.그 광경을 본 송우민은 잔을 들고 조용히 다가왔다.“남설아, 내가 한 잔 올릴게.”송우민은 잔을 들며 말했다.“이번 성공, 정말 축하해.”남설아는 주스를 들고 잔을 맞댔다.“고마워, 우민아.”남설아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네 도움이 없었으면 이렇게 빠르게 결과를 얻진 못했을 거야.”“우린 친구잖아. 서로 도와야지.”송우민은 웃으며 말했다.“근데 정말 대단하다. 네가 이렇게 멋진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우민아, 너무 띄우지 마.”남설아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웃었다.“운이 좋았을 뿐이야.”“그건 아니지.”송우민은 단호히 말했다.“너의 실력, 결단력, 배짱, 모두 내가 본 사람들 중 최고야.”“그 얘기는 그만하고...”남설아는 말을 돌리며 미소 지었다.“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해보자.”“좋아.”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남설아, 내 생각엔 지금이 기회야. 우리가 배건 그룹을 한 방에 무너뜨리고 배서준한테 확실하게 복수해야 해!”그의 눈빛에는 분노와 집념이 가득했다.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배서준을 단죄하고 싶은 듯했다.그러나 강연찬은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난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왜?”송우민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지금 배건 그룹은 거의 끝장난 상태잖아. 이

  • 굿바이 쓰레기   제299화

    “서준아, 나 너무 힘들어...”서유라는 침대에 누운 채 핏기없는 얼굴로 힘없이 중얼거렸다.“유라야, 어디 아파?”깜짝 놀란 배서준은 침대로 다가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온몸이 다 불편하고 아파...”서유라는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얼른 의사 부를게!”배서준은 급히 몸을 일으키며 나가려 했다.“안 돼...”하지만 서유라가 급히 그의 손을 붙잡았다.“의사 부르지 마. 나 병원 가기 싫어...”“근데 지금 상태가... 그냥 둘 수 없잖아.”배서준은 여전히 불안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정말 괜찮아. 그냥... 네가 곁에 있어 주면 돼...”서유라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알겠어, 옆에 있을게.”그렇게 배서준은 서유라의 손을 살며시 잡고 말했다.“아무 데도 안 갈게. 여기서 널 지킬 거야.”“응...”서유라는 그의 품에 기대며 살짝 웃었고 그 입가엔 희미하지만 분명한 만족감이 스쳐 지나갔다.배서준은 서유라의 달콤한 말과 애정 어린 행동에 완전히 빠져 있었고 그녀의 진짜 속내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여전히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있었다.한편, 남설아의 세심한 간호 아래 강연찬의 몸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그는 점차 회사 일에도 다시 참여하기 시작했고 남설아와 함께 나란히 전선에 서며 경영에 힘을 보탰다.그 사이 남설아는 잇따라 중요한 프로젝트들을 따내며 사업적으로 완전한 전성기를 맞이했다.그녀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성과가 이어졌고 배건 그룹은 연일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이러한 성과를 기념하고 고생한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남설아는 대규모의 축하 연회를 열기로 했다.연회는 고급 호텔에서 성대하게 개최되었고 현장은 화려하게 꾸며졌으며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직원들은 모두 정장을 차려입고 참석했고 모두의 얼굴엔 성취와 기쁨이 가득했다.그들은 서로 잔을 부딪치며 축하했고 성공의 기쁨을 나누었다.남설아는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한가운데에 서서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 굿바이 쓰레기   제298화

    천기준은 조용히 배서준의 현재 상황과 결정을 남설아에게 전했다.“대표님, 이제 배 대표님은 완전히 사방에서 외면당하고 있습니다.”천기준의 말투에는 깊은 체념과 실망이 묻어났다.“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그 여자 곁에 붙어 있으려 하네요.”“후, 그야말로 자업자득이죠.”남설아는 비웃듯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자기가 아직도 예전처럼 뭐든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고 착각하나 본데 지금의 배서준은 그냥 여자한테 정신 팔린 멍청이일 뿐이에요.”“대표님,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천기준이 물었다.“지금처럼 그 사람이 회사에 없는 틈이야말로 우리가 움직일 절호의 기회입니다.”“당연히 병들었을 때는 끝장내는 게 기본이죠.”남설아의 눈빛엔 싸늘한 결의가 번뜩였다.“이젠 그 인간도 잃는 게 뭔지 뼈저리게 느껴봐야 해요.”“역시 대표님답습니다.”천기준이 말했다.“지시하신 대로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좋아요.”남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한 듯 말했다.“기억해요. 이번엔 반드시 속전속결로, 숨 돌릴 틈도 주지 마요.”“네, 대표님!”남설아와 송우민이 손을 잡고 본격적으로 움직이자 배건 그룹의 위기는 한층 더 깊어졌다.남설아의 회사는 굶주린 늑대처럼 배건 그룹의 시장을 빠르게 잠식했고 원래 배건 그룹 쪽에서 따냈던 주요 프로젝트들마저 차지해버렸다.그 결과, 배건 그룹의 주가는 폭락했고 시가총액은 대폭 줄어들었으며 고객사들은 잇따라 이탈했고 사내 분위기는 혼란과 불안으로 가득 찼다.주주들의 손실은 상상을 초월했고 배서준에 대한 불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배서준, 진짜 쓸모없네!”“회사를 이 지경으로 만들고도 어떻게 대표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지?”“당장 끌어내려야 해!”“그래! 더는 회사 말아먹게 놔두면 안 돼!”분노한 주주들의 외침은 마치 화산처럼 폭발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천기준은 그 상황을 남설아에게 보고했고 남설아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을 내렸다.“계속 감시해요. 그 둘이 무슨 짓을

  • 굿바이 쓰레기   제297화

    천기준은 눈앞의 광경을 보며 깊은 무력감에 휩싸였다.소파에 앉은 배서준은 잔뜩 찡그린 얼굴로 고민에 잠겨 있었고 서유라는 그의 곁에 꼭 붙어 앉아 힘없이 기대어 있었다.“대표님, 이대로는 안 됩니다!”천기준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지금 회사 상황 대표님도 아시잖아요. 더 늦기 전에 돌아가셔서 직접 수습하셔야 합니다. 이러다 진짜 배건 그룹이 무너집니다!”“근데 유라가 지금 몸이 안 좋아. 어떻게 이럴 때 내가 유라를 혼자 두고 가겠어.”배서준의 말투에는 깊은 피로와 한숨이 묻어 있었다.“하지만 대표님...”천기준이 설득을 이어가려던 순간, 서유라가 조용히 말을 가로막았다.“서준아, 천 비서님 탓하지 마.”서유라의 목소리는 마치 곧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나약했다.“회사 일이 중요한 건 나도 알아. 그냥 돌아가. 난 괜찮아.”“유라야, 무슨 소리야.”배서준은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지금 제일 중요한 건 네 건강이야. 내가 어떻게 널 놔두고 가.”“그래도...”서유라의 눈가엔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한 눈물이 맺혀 있었다.“내가 네 일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서 미안해.”“바보야, 너 하나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어.”배서준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속삭였다.“회사 일은 내가 방법을 찾을게.”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천기준은 속으로 실소를 터뜨렸다.‘정말 기가 막히네. 내가 본 배 대표님 중에 제일 한심한 버전이야. 예전엔 그렇게 단호하고 냉정했던 사람이 이젠 여자가 곁에만 있으면 정신줄을 놓고 있잖아.’“대표님, 진짜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천기준은 다시 입을 열었다.“주주들은 이미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했어요. 계속 이렇게 계시면 정말로 해임당합니다!”“알아, 나도 알아.”배서준은 초조한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그렇지만 유라가...”“서준아, 돌아가.”서유라가 조용히 말했다.“나 혼자서도 괜찮아.”“유라야, 너 지금...”배서준은 놀란 눈으로 서유라를 바라봤다.“정말

  • 굿바이 쓰레기   제296화

    “네.”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명심해요. 이 일은 최대한 시끄럽게 만들어요. 배서준이 모두의 표적이 되도록 말이에요.”“알겠습니다, 대표님. 바로 처리하겠습니다.”천기준은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남설아는 사무실에 홀로 남아 싸늘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봤다.‘배서준, 당신이 의리를 저버렸으니 나도 더는 자비를 베풀지 않을 거야.’곧이어 배서준이 리조트에서 서유라와 밀회를 즐기고 있다는 소문이 각종 언론을 통해 퍼지기 시작했다.여론은 순식간에 들끓었고 배서준의 이미지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무능하다’, ‘책임감 없다’는 비난이 쏟아졌다.“배서준, 진짜 너무하네!”“회사는 지금 무너지고 있는데 밖에서 여자나 만나고 앉았어?”“이런 사람을 어떻게 대표 자리에 앉혔는지 이해가 안 가.”“저 사람한테 회사를 맡긴 게 큰 실수였지.”“이참에 그냥 물러나게 해야 돼!”결국 회사는 긴급 주주총회를 소집했다.얼마 전, 배서준이 자신의 자금을 담보로 위기를 넘기겠다고 한 뒤 감쪽같이 사라졌고,오히려 남설아가 한발 물러나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간신히 버텨온 상황이었다.하지만 정작 의사결정을 할 실권자는 자리에 없고 남은 이사들은 완전한 권한도 없는 상태라 회사 운영은 갈수록 마비되어가고 있었다.거기에 이번 스캔들까지 터지자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이게 지금 어느 땐데 여자를 챙겨?! 본인 위치도 잊었나?!”“천 비서님, 배 대표님 떠나기 전에 천 비서님한텐 아무 말도 안 하고 갔어요?”천기준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사실 함께 일한 지 오래됐지만 배서준이 모든 걸 공유하진 않았다.“지금 당장 리조트로 가서 배 대표님 데려와요!”한 이사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어떻게든 끌고 와야 해요. 회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요!”“네, 이사님. 바로 다녀오겠습니다.”천기준은 피곤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답했다.‘정신적으로 남 대표님한테 매일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 두 사람을 만나러 내가 가야 한다고? 이게 대체 무

  • 굿바이 쓰레기   제295화

    “서준아, 제발 이번만은 내 말 들어줘, 응? 그냥 나를 위해서 우리 미래를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잠깐이라도 푹 쉬면 안 돼?”서유라는 눈물을 글썽이며 배서준을 올려다봤다.그 애처로운 눈빛에 배서준의 마음도 조금씩 흔들렸다.“알겠어, 네 말대로 할게.”결국 배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서유라는 곧장 환하게 웃으며 배서준을 꼭 껴안았다.“역시 나를 제일 아껴주는 사람은 서준이 너야.”배서준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안아주었지만 눈빛은 복잡하기만 했다.회사의 상황은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남설아와 송우민의 공격은 날이 갈수록 거세졌고 배건 그룹의 주가는 연일 하락 중이었다.시장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고 내부는 불안과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이대로라면 배건 그룹은 정말 그의 손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서유라의 모습을 보면 차마 그녀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배서준의 가슴속은 끝없는 갈등과 번민으로 뒤엉켰고 도대체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알 수 없었다.그때, 그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이번엔 천기준이었다.배서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전화를 받았다.“배 대표님, 도대체 언제 돌아오실 겁니까?”천기준의 목소리엔 조급함과 절박함이 가득 묻어났다.“지금 회사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에요. 주주들도 다 대표님만 기다리고 있습니다!”“나, 나도 지금...”배서준이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옆에 있던 서유라가 손을 뻗어 전화기를 낚아챘다.한편, 천기준은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통화 종료’ 소리에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그는 핸드폰을 책상 위에 내리찍을 듯 내려놓으며 이를 악물었다.“이 서유라란 여자는 정말 재앙이라니까!”천기준은 이를 갈듯 말했다.“배 대표님도 왜 저 여자 말만 듣는 건지...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도 모르나?”곁에 있던 다른 비서도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천 비서님, 우리 이대로 괜찮을까요? 주주들한테 뭐라고 설명해야 하죠?”“설명할 방법이 어딨어요...”천기준은 허탈하게 웃으며 고

  • 굿바이 쓰레기   제294화

    “네, 송 대표님!”모두가 힘찬 목소리로 외쳤고 회의실 안은 결의에 찬 열기로 가득 찼다.송우민의 지휘 아래 남설아의 회사는 굶주린 늑대처럼 배건 그룹의 시장을 거침없이 잠식해 들어갔다.배건 그룹의 주가는 연일 하락했고 시가총액은 크게 줄어들며 내부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흩어진 조직력에 동요하는 임직원들 사이로 불만이 번졌고 결국 주주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배서준에게 줄줄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배 대표님, 도대체 언제 돌아오실 겁니까?”한 주주는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지금 회사 상황이 완전히 개판이에요! 더 늦으면 정말 끝장납니다!”“맞아요, 대표님! 이대로 가다간 정말 회복 불가능합니다!”또 다른 주주도 강하게 덧붙였다.“지금 당장 돌아와서 진두지휘하셔야 합니다!”끊임없이 쏟아지는 전화에 배서준은 머리를 싸매고 이마를 짚었다.그 역시 당장 회사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문제는 서유라였다.그녀는 절대 그를 보내려 하지 않았다.“서준아, 가지 마...”서유라는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운 채 배서준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나 너무 힘들어. 옆에 있어 줘야 버틸 수 있어.”“유라야, 네가 힘든 거 알아. 하지만 회사도 지금...”배서준은 난처한 얼굴로 말을 흐렸다.“몰라! 나한테 중요한 건 네가 곁에 있어 주는 거야! 너 없이 나는 단 하루도 못 버텨!”서유라는 울먹이며 소리를 질렀다.“그런 말 하지 마.”배서준은 가슴 아프다는 듯 그녀를 껴안았다.“널 내버려 두고 갈 수 없지. 하지만 회사 쪽 상황도 정말 더는 미룰 수가 없어.”“결국 날 버릴 거지? 날 두고 가겠다는 거잖아!”서유라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며 말했다.“내 몸은 누가 챙겨? 나 혼자선 아무것도 못 해... 넌 가면 안 돼!”“유라야, 그러지 마.”결국 배서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좋아, 당분간은 여기 있을게. 회사 일은 전화랑 화상회의로 처리할 테니까 괜찮지?”“진짜지?”서유라는 눈물로 젖은 눈을 들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