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강선현은 숨도 안 쉬고 말을 쏟아냈다.마치 멈추면 다시는 이 기회를 잡을 수 없을 것처럼.“나 진짜...진짜 미안했어. 매일매일 네 생각했어. 밥 먹을 때도 생각나고 잠잘 때도 생각나고... 네가 없으니까 내가 제일 좋아하던 초콜릿도 하나도 안 맛있었어!”어린아이의 말투였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나 네가 보고 싶어서 울 뻔한 날도 있었어. 오늘 점심때 너 안 보여서... 나 진짜 너무 실망했거든. 조금만 더 지나갔으면 진짜 울었을 거야.”강선현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이번에 나랑 오빠랑 아빠 엄마까지 다 같이 온 거야. 너 보러 온 건데... 그런데 왜 안 나오려고 했어? 왜 안 만나주려고 했어?”신해원은 입술을 꼭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신정우는 분명 말했었다.강지혁 일행이 녹원시에 올 거라고.그리고 강선현도 올 거라고.보고 싶으면 만나도 된다고.너무... 보고 싶었다.하지만 두려웠다.다시 만나면 강선현이 또 자신을 ‘나쁜 아이’를 보는 눈으로 바라볼까 봐.다시 탁윤에게 사과하라고 말할까 봐.그래서 그는 말했다.안 가겠다고.학원에 가겠다고.그런데...강선현이 이렇게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다!그리고 이런 말을 해 줄 줄은 더더욱 몰랐다.“너... 알고 있었어?”신해원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내가... 윤이 형을 밀지 않았다는 거.”“응.”강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아저씨가 말 안 해줬어? 경찰 아저씨들이 다 조사했대. 그때 윤이 오빠 쪽으로 공기총 탄두가 날아왔대.”순간 신해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네가 윤이 오빠 밀어낸 거잖아. 그렇게 안 했으면 윤이 오빠 크게 다칠 수도 있었대.”신해원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하얘졌다.신정우는...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해원아.”강선현이 그의 손을 꼭 잡았다.“나 화 안 낼게.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무조건 네 말 믿을게.”아이는 울먹이며 웃었다.“오빠도 너한테 사과해야 해. 같이 가서 오빠 만나자.”강선현
강선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력으로 달렸다.달리면서 한 손으로는 가방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익숙하게 야간 투시경을 얼굴에 걸었다.예상대로였다.몇 초 지나지 않아 신씨 가문 저택 전체의 불빛이 다시 한번 꺼졌다.갑작스러운 암흑 속에서 강선현의 시야만은 또렷하게 보였고 곧 투시경 너머로 복도의 윤곽과 가구의 형태가 선명하게 떠올랐다.‘지금이야.’강선현은 망설이지 않았다.사람들의 발소리와 소란을 피해 미리 외워 둔 동선 그대로 움직여 잡동사니 창고 앞에 도착했다.도착한 창고 안 역시 캄캄했다.그런데...그 어둠 속에는 작은 형체 하나가 서 있었다.신해원이었다!그의 손에는 익숙한 인형이 들려 있었다.품에 꼭 끌어안은 채 마치 잃어버릴까 봐 불안한 사람처럼.뒤늦게 따라온 도우미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오늘은 대체 무슨 날이길래... 벌써 두 번째 정전이네요. 그래도 도련님 곧 전기 들어올 거예요. 무서워하실 필요 없어요.”강선현은 숨을 멈춘 채 야간 투시경 너머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해원이다... 진짜 해원이야.’그토록 보고 싶었던 얼굴.조금 더 자랐고 표정은 더 단단해졌지만 분명 자신이 아는 그 아이였다.몇 걸음만 더 가면 닿을 거리...그런데 그 순간.“누구야?”신해원의 목소리가 어둠을 가르며 울렸다.빛이 사라진 만큼 그의 청각은 더욱 예민해져 있었다.하인이 놀라며 주변을 살폈다.“어? 누가 있나요?”순간 강선현은 코끝이 찡해졌다.그리고 곧 가슴 깊은 곳에서 눌러 두었던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 올라왔다.아이는 한 발 또 한 발 조심스럽게 신해원을 향해 걸어갔다.신해원은 순식간에 표정이 굳더니 몸이 본능적으로 긴장하며 작은 몸이 잔뜩 움츠러들었다.마치 언제든 튀어 오를 준비를 한 것처럼.그런데도 두 팔은 끝까지 인형을 놓지 않았다.자기 자신보다도 그 인형을 먼저 보호하듯.그 모습을 보자 강선현의 마음이 더 아려왔다.‘역시... 정말 소중한 거였구나.’예전에 자신
“낡았든 뭐든 여자애 장난감이든 상관없어요. 그건 제 거예요. 누구도 함부로 가져가면 안 돼요!”신해원의 눈빛이 번뜩였고 그 모습은 마치 막 포효하려는 새끼 사자 같았다.“인형을 어디에 둔 거예요?!”그 인형은 그가 강씨 저택에서 유일하게 가져온 물건이었다.강선현이 직접 건네준 선물.신해원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다.도우미는 그 기세에 놀라 말이 더듬거렸다.“자... 잡동사니 창고예요. 보통 거긴 필요 없는 물건을...”신씨 가문에서는 보통 잡동사니 창고에는 쓰지 않는 물건들을 모아놓았다가 공간이 찰 즈음에 모두 버리곤 했다.그러니 도우미들은 자연스럽게 그 공간의 물건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그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신해원은 계단을 뛰어 내려갔고 곧장 잡동사니 창고 쪽으로 전력 질주했다.그리고 도우미도 얼굴이 새파래진 채 급히 뒤를 따랐다.한편 강선현은 어둠 속에서 숨죽인 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방금... 분명 해원이었어.’하지만 이상했다.예전에 알던 신해원과는 어딘가 달랐다.말로 설명하기 힘든... 어딘가 묘한 변화가 느껴졌다.게다가 도우미들이 그를 부르는 호칭...‘도련님.’여기서의 신해원은 분명 보호받으며 잘 살고 있는 듯했다.그리고 그 순간 ‘해원이랑 다시 같이 돌아가자’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게 갑자기 너무 어려워진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강선현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빨리 찾아가서 사과해야 해!’아이는 머릿속에 외워 둔 구조도를 떠올리며 잡동사니 창고 쪽으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그런데 그때.“너... 어디서 온 애야? 이 밤중에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니? 네 부모는 누구야?!”강선현이 흠칫 뒤돌아보자 한 집사 복장의 중년 여자가 다가오고 있었다.그녀는 분명 강선현을 이 집 도우미의 아이로 착각한 눈치였다.“저... 저...”강선현은 순간 망설이다가 갑자기 손을 작은 백팩 속으로 넣었다.그리고...촤르륵!!!!지폐 한
“외부 침입이라고?”신정우는 미간을 좁히며 머릿속에서는 빠르게 가능성을 걸러냈다.사업적으로 얽힌 경쟁자들부터 최근의 이해관계...하지만 어느 쪽도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다.“지금 상황은 어떻지? 언제쯤 복구되나?”“완전 복구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만 예비 전원은 이미 연결됐습니다. 곧 저택 내부 조명은 정상화될 겁니다.”부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잠시 후 저택 안이 다시 환하게 밝아졌다.신정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문득 무언가가 스친 듯 곧장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그리고 강지혁에게 전화를 걸자마자 돌직구를 던졌다.“강지혁 씨, 당신 아들... 컴퓨터 쪽으로 꽤 능하죠?”과거 강씨 가문을 조사할 당시 자료 속에 스쳐 지나가듯 적혀 있던 문장.[강씨 가문 장남, IT와 시스템 분야에 비정상적으로 뛰어난 재능.]그땐 ‘애가 좀 똑똑한가 보다’ 하고 넘겼지만 지금은 달랐다.그리고 신정우는 숨도 고르지 않고 이어 물었다.“당신 애들 호텔에서 어떻게 빠져나온 거죠? 요즘 호텔들 전부 CCTV 깔려 있잖아요.경비들이 아이 둘이 어른도 없이 나가는 걸 못 봤을 리가 없을 텐데요...”강지혁은 숨기지 않았다.“호텔 감시 시스템... 우리 아들이 건드린 거 맞습니다.”순간 신정우의 표정이 굳어졌다.“역시...”그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강지혁 씨 아들딸은 이미 우리 집 안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크겠네요. 방금 우리 신씨 가문 저택 보안 시스템도 외부 침입을 당했거든요.”살다 살다 이런 경우를 다 보게 될 줄이야....그 시각 신씨 가문의 저택 내부.강선율은 보안 시스템을 더 깊이 파고들어 건물 전체의 층별 구조도를 띄워냈다.“이거 봐.”그는 빠르게 화면을 넘기며 강선현에게 보여줬다.“방 배치도야. 외워.”강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으로 지도를 훑었다.기억력만큼은 어른 못지않은 아이였으니 그 잠깐 사이에 머릿속에는 저택 구조가 또렷이 자리 잡았다.“저쪽에서 반격 들어온다.”그때 강선율이 낮게 말했다.“내가 여
곧 휴대폰 너머로 신정우의 느긋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무슨 일이죠? 이 시간에 전화까지 해서... 또 아이들 얘기입니까?”“이번엔 정말 아이들 얘기입니다.”강지혁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애들 혹시 그쪽에 간 적 있습니까?”“설마요...”신정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애들 잃어버리고 나한테서 찾겠다는 건 아니겠죠?”강지혁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애들 잃어버렸습니다.”“콜록, 콜록!”순간 휴대폰 너머에서 신정우의 거친 기침 소리가 연달아 터져 나왔고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숨을 고른 뒤 다시 입을 열었다.“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그쪽 아들딸이... 사라졌다고요?”“그래요. 혹시라도 신정우 씨 쪽에 가면 바로 연락 줘요.”강지혁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긴장감은 숨길 수 없었다.“알겠습니다.”그런데 잠시 생각에 잠기던 신정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여긴 S 시가 아니라 녹원시인데... 제쪽에 사람도 좀 있고...제쪽에서도 한 번 찾아볼까요?”신정우는 과거 강지혁이 진해원을 잠시 보호해 줬던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그럼 저희야 감사하죠.”강지혁의 짧은 대답으로 통화는 끝났고 통화를 끊자마자 두 사람은 각자의 인맥을 총동원해 녹원시 전역에 수배를 돌리기 시작했다.하지만...그 시각 문제의 두 아이는 이미 택시에서 내려 있었다....“얘들아, 다음부터는 둘이서 택시 타고 다니지 마라.”택시 기사가 창문을 내리며 말했다.“요즘 세상 흉흉해. 나쁜 사람 만나면 큰일이야.”“네! 알겠어요, 아저씨. 고맙습니다!”강선현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자 기사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차를 몰고 떠났다.한편 강선율은 말없이 옆에 서 있었지만 속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나쁜 사람? 나한테 걸리면 그 사람이 더 불쌍하지.’강선율의 작은 주머니 속에는 그가 ‘만일을 대비해’ 만든 여러 개의 소형 장치들이 들어 있었다....두 아이는 골목을 돌아 마침내 신씨 가문의 저택 외곽에 도착했다.
그날 밤 두 아이가 “같은 방에서 자고 싶다”라고 한목소리로 말했을 때 임유진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신해원이 강씨 저택을 떠난 이후로 두 남매는 종종 함께 자곤 했으니까.게다가 오늘은 강선율이 “동생을 잘 위로해 주겠다”고까지 말하지 않았던가.임유진은 아이들 침대 곁에 앉아 동화책을 몇 권 읽어 주고 이불을 단정히 덮어 준 뒤 두 아이의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오는 걸 확인하고서야 방을 나섰다.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문이 닫히자마자 두 아이의 눈이 동시에 번쩍 뜨였다는 사실을....강선현은 조용히 몸을 일으켜 자기 백팩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한편 강선율은 침대 옆에 놓인 작은 휴대폰을 꺼내 객실에 설치된 대형 TV와 연결했다.잠시 후 넓은 화면 위로 각종 프로그램 창과 코드들이 튀어 오르기 시작했고 강선율의 손가락은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였다.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호텔 지하의 보안 관제실.“어? 화면이 왜 이래?”“전부 먹통입니다!”“누가 시스템을 해킹한 거야?!”“돈 요구 협박 메시지 같은 건 없어?”“복구가... 복구가 안 됩니다!”“말도 안 돼! 이 보안 시스템은 손꼽히는 수준이라고 했잖아!”“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야?!”관제실과 전산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그리고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이 모든 일을 벌인 사람이 고작 여섯 살짜리 아이라는 사실을....임유진이 아이들이 방에 없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30분이나 지난 뒤였다.한편 강지혁은 아이들이 자던 방 벽에 걸린 대형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화면에는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코드들이 쉴 새 없이 흘러가고 있었고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졌다.“이건 율이가 한 짓이야.”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아들밖에 없었다.그리고 그제야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아이들이 하룻밤을 더 묵겠다고 고집한 이유도 ‘기다리겠다’라는 말도...처음부터 신해원이 스스로 나오길 기다린 게 아니었고 이들이 직접 찾아갈 생각이었던 것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