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By:  주광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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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 속, 아들을 구하려다 온몸에 화상을 입은 고예진. 하지만 남편은 그녀를 외면한 채, 아들과 함께 자신의 첫사랑을 품에 안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기적처럼 살아난 고예진은 망설임 없이 이혼을 선언했다. “이혼하고 나면, 아들 얼굴 볼 생각도 하지 마.” 처음엔 그냥 그런 협박일 뿐이었다. “그만 좀 해. 이혼 타령, 이제 지겹거든?” 한 달 후엔, 비웃음까지 들려왔다. 하지만 6개월 뒤, 고예진 곁에 새로운 남자가 나타나자, 전남편과 아들은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여보, 우리가 잘못했어. 아이도 당신을 그리워해.” 그러나 돌아온 건 단 하나, 싸늘한 대답. [저기요, 아이 핑계 대며 불쌍한 척은 이제 그만하시죠. 제 아내는 더 이상 그런 말에 흔들릴 사람이 아닙니다.] 죽음에서 돌아온 고예진은 더는 예전의 그녀가 아니다. 이제 그녀의 인생에, 그 뻔뻔한 부자를 위한 자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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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이혼을 결심한 그날, 고예진은 유치원 화재 현장에서 죽을 뻔한 일을 겪었다.

아들 부이안을 구하기 위해, 예진은 마지막 힘까지 끌어모아 이안을 바깥쪽으로 밀쳐냈고, 자신은 무너진 책장 밑에 깔려 숨이 끊어질 듯한 고통에 짓눌렸다.

그리고 그런 예진이 목숨 걸고 구해낸 친아들 이안은 그녀의 안위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오히려 친아들은 불과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다른 여자의 안부를 확인하고 있었다.

“고모, 괜찮아? 이안이 놀랐어... 너무 무서워...”

류아린은 팔에 경미한 화상을 입었을 뿐이지만, 마치 생명이 위독한 사람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있었다.

“고모 괜찮으니까, 이안이 무서워하지 마.”

예진의 기억 속 이안은 아버지 부윤제를 꼭 빼닮았다.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조용하고 차분한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의 이안은 아린을 부둥켜안고 엉엉 울고 있었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 정도로 겁에 질려 있었다.

‘왜... 왜 하필 저 여자야... 내 아들이...’

예진의 가슴 깊은 곳이 날카로운 비수가 꽂힌 듯 아팠다.

바로 그 순간, 예진의 남편 부윤제가 불길 속을 뚫고 들어왔다.

윤제의 시선은 쓸진 책장 밑에 있던 예진을 그냥 지나쳐서 곧장 아린을 향했다.

그는 곧장 아린에게 달려가 이안을 안아 들었다.

“이안아! 아린아!”

“아빠, 고모 먼저 도와줘! 고모가 나 구하려다 다친 거야!”

윤제는 아린과 이안의 상처를 다급하게 살폈다.

예진은 그 장면을 똑똑히 지켜봤다.

셋이 서로를 감싸 안은 모습은... 누가 봐도 완벽한 가족이었다.

그 가운데 있던 자신은, 마치 불청객처럼 어울리지 않는 그림자일 뿐이었다.

‘아파. 숨이 막혀. 그래도... 살고 싶어.’

예진의 본능적인 생존 욕구가 겨우 목소리를 내게 했다.

“살려줘요... 제발 살려줘요.”

그제야 세 사람의 시선이 예진에게 향했다.

예진은 분명히 봤다. 아들과 남편의 걱정 어린 얼굴은, 자신을 보는 순간 싸늘하게 변했다.

“엄마... 고모 몸이 약하니까 먼저 도와줘야 해. 엄마는 조금만 참아, 곧 소방관 아저씨들이 올 거야.”

“아린이가 이안이를 구했어. 이대로 그냥 두고 볼 순 없어. 아린아, 우리 먼저 가자.”

그렇게 말한 윤제는 아린을 조심스럽게 안고, 이안은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셋은 그대로 등을 돌려, 예진을 남겨두고 떠나려 했다.

“이러지 마. 너무 위험해. 예진 씨를... 제발 좀 도와줘...”

아린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윤제와 이안은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저 사람, 괜찮을 거야.”

“맞아, 엄마는 맨날 아픈 척하잖아. 이번에도 뻔해. 소방관 아저씨들이 금방 올 거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윤제는 아린과 이안을 데리고 유치원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불길은 점점 거세졌고, 곧 온 유치원을 집어삼켰다.

예진은 멍한 눈으로 세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녀의 마음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내가 열 달 동안 품었다가 낳은, 목숨 걸고 구한 아들이 맞나?’

‘내가 8년을 사랑한, 하루도 잊지 못했던 남편 맞냐고?’

세상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믿었던 남편과 아들이,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자신을 버려둔 채 다른 여자를 구하고 떠나버렸다.

예진은 불 속에 홀로 남겨졌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뜨거워서 그런 걸까... 아니면, 이미 절망감이 바닥을 쳐서일까...’

그 순간, 예진은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인생이 참 우스웠다.

‘정말, 우습지도 않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조소 같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다시 눈앞이 흐릿해졌다.

짙은 연기가 폐를 파고들며 숨을 멎게 했다.

의식이 점점 멀어져 가는 찰나, 예진의 머릿속엔 단 하나의 생각만이 남았다.

‘만약... 살아서 나갈 수만 있다면, 다시는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내버려두지 않겠어.’

얼마나 잤는지도 모를 오랜 시간이 흘렀다.

예진은 아주 기나긴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예진은 마치 낯선 관객처럼 한발짝 떨어져서 자신의 결혼 생활을 돌이켜보았다.

처음엔 설렘이었고, 그다음은 기다림이었고, 결국엔... 무너진 기대였다.

‘내가 왜 저렇게 바보처럼... 저 사람들만 바라보고 살았을까?’

...

열여덟 살, 고씨 가문과 부씨 가문은 사업적 이해관계를 이유로 혼약을 맺었다.

고예진의 성년식 날, 그녀는 처음으로 부윤제를 만났다.

그때 윤제는 스물두 살, 대학을 갓 졸업하고 부씨 가문의 가업을 물려받기 시작한 시기였다.

패기와 자신감으로 빛나던 남자.

예진은 윤제를 처음 본 순간 알았다.

‘이 사람이... 내 남편이 될 사람이구나.’

그날 이후, 소녀의 순도 100퍼센트 첫사랑은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오로지 윤제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윤제의 마음속엔 언제나 ‘자신의 첫사랑’이 있었다.

바로 부씨 가문이 입양한 양녀, 류아린.

아린의 어머니와 윤제의 어머니 도순희는 어릴 적부터 의자매라 불릴 만큼 각별한 사이였다.

몇 해 전, 아린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아린은 부씨 가문으로 들어와 윤제와 함께 자랐다.

‘그렇게 오랫동안 곁에 있었으면... 당연히 오누이처럼 각별한 관계겠지.’

예진은 늘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윤제의 나이는 스물여섯.

의사는 현장 점검 중 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친 윤제가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때 아린은 조용히 짐을 싸서, 유학을 떠났다.

윤제의 옆을 지킨 사람은 예진뿐이었다.

윤제가 절망에 빠져있던 순간, 예진은 끝없이 윤제에게 말을 걸고, 그의 운동을 도우며 재활 치료 과정에서 같이 울고 웃으며 지옥 같은 나날을 버텨냈다.

그리고 결국, 윤제는 다시 일어섰다.

그 후, 윤제는 예진에게 프러포즈했다.

예진은 자신이 꿈꾸던 사랑의 결말을 믿었다.

‘이제 윤제 씨는 진짜 나만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되었구나.’

그렇게 예진은 스물두 살에 윤제의 아내가 되었고, 같은 해에 아들 이안을 낳았다.

그때의 예진은 자연분만을 위한 진통 끝에 결국 제왕절개로 아들을 출산했다.

그야말로 난산이었다.

그렇게 힘겨운 출산 과정에서도 그녀는 밤낮없이 곁을 지키던 윤제의 모습에, 모든 고통이 보상받은 듯 느껴졌다.

‘우리... 앞으로는 정말 행복할 수 있을 거야. 우리 세 식구가 늘 함께.’

하지만 그 믿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안이 백일을 맞던 날, 아린이 귀국했다.

그리고 윤제에게 진짜 사랑은 결국 예진이 아닌, 그의 첫사랑이었다.

윤제가 아린을 다시 만난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진을 대하는 윤제의 온도는 서서히 차가워졌고, 퇴근 시간이 지나서도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기 일쑤였다.

이와 동시에 고씨 가문의 사업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몇 년 사이에 거의 모든 계열사가 무너져 내렸다.

그 와중에 윤제의 아버지마저 병세가 악화하여 세상을 떠났다.

이제 집에는 윤제의 어머니, 도순희만 남았다.

고씨 가문이 더 이상 도움도, 가치도 없어진 시점에서 도순희는 이안을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새아가, 네가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 해서 몸이 약해진 것 같구나. 아이는 내가 데려다 잘 키워주마.”

처음엔 그런 말로 시작됐지만, 곧 아린과 도순희가 함께 이안을 키우기 시작했다.

예진은 스스로를 위로했다.

‘류아린은 이미 과거야. 어머님은 이안이 할머니잖아.’

‘설마...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진 않으시겠지?’

하지만, 그때의 예진은 너무 순진했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오늘, 예진은 정말 오랜만에 어렵게 기회를 얻어 유치원으로 이안을 데리러 갔다.

하지만 유치원에 불이 났다.

그리고 그 불길 속에서, 이안과 윤제가 아린을 데리고 뛰쳐나가는 장면을 본 순간, 예진은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착각을 하고 살았던 거지?’

결국 거센 불길은 결국 예진을 집어삼켰고, 그 속에서 예진은 절규했다.

“살려줘... 제발...”

“...”

예진이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눈앞에 펼쳐진 건 시뻘건 불길이 아닌, 하얀 병실의 천장이었다.

한참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현실을 인지했다.

‘아... 내가 아직 살아 있구나.’

병실엔 아무도 없었다.

예진의 온몸은 붕대로 감겨 있었고, 오른쪽 다리는 깁스를 한 상태였다.

방금 꾼 꿈 때문인지, 환자복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숨을 쉴 때마다 목구멍이 따갑게 타들어 갔다.

예진은 누군가를 부르려 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연기 때문에 성대를 다쳤나 봐...’

그녀는 힘겹게 침대 옆의 목발을 짚고 일어나 탁자 위의 물을 겨우 한 모금 삼켰다.

그제야 타는 듯한 목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아들 이안을 떠올랐다.

예진은 목발을 짚으며 병실 밖으로 나갔다. 아이의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병실을 막 벗어난 순간, 옆 병실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발이 멈췄다.

웃음소리는 따뜻하고, 평화롭고, 무엇보다... 익숙했다.

예진은 천천히 다가갔다.

문이 조금 열려 있었고, 그 틈으로 안이 훤히 보였다.

아린은 병상에 누워 있었고, 도순희는 그 병상 옆에서 사과를 깎고 있었다.

이안은 아린의 이불 위에 몸을 기대고, 아린을 꼭 껴안고 있었다.

“고모... 아직 아파요?”

이안의 목소리는 작고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그 속엔 따뜻한 걱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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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이혼을 결심한 그날, 고예진은 유치원 화재 현장에서 죽을 뻔한 일을 겪었다.아들 부이안을 구하기 위해, 예진은 마지막 힘까지 끌어모아 이안을 바깥쪽으로 밀쳐냈고, 자신은 무너진 책장 밑에 깔려 숨이 끊어질 듯한 고통에 짓눌렸다.그리고 그런 예진이 목숨 걸고 구해낸 친아들 이안은 그녀의 안위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오히려 친아들은 불과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다른 여자의 안부를 확인하고 있었다.“고모, 괜찮아? 이안이 놀랐어... 너무 무서워...”류아린은 팔에 경미한 화상을 입었을 뿐이지만, 마치 생명이 위독한 사람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있었다.“고모 괜찮으니까, 이안이 무서워하지 마.”예진의 기억 속 이안은 아버지 부윤제를 꼭 빼닮았다.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조용하고 차분한 아이였다.하지만 지금의 이안은 아린을 부둥켜안고 엉엉 울고 있었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 정도로 겁에 질려 있었다.‘왜... 왜 하필 저 여자야... 내 아들이...’예진의 가슴 깊은 곳이 날카로운 비수가 꽂힌 듯 아팠다. 바로 그 순간, 예진의 남편 부윤제가 불길 속을 뚫고 들어왔다.윤제의 시선은 쓸진 책장 밑에 있던 예진을 그냥 지나쳐서 곧장 아린을 향했다. 그는 곧장 아린에게 달려가 이안을 안아 들었다. “이안아! 아린아!”“아빠, 고모 먼저 도와줘! 고모가 나 구하려다 다친 거야!”윤제는 아린과 이안의 상처를 다급하게 살폈다.예진은 그 장면을 똑똑히 지켜봤다. 셋이 서로를 감싸 안은 모습은... 누가 봐도 완벽한 가족이었다. 그 가운데 있던 자신은, 마치 불청객처럼 어울리지 않는 그림자일 뿐이었다.‘아파. 숨이 막혀. 그래도... 살고 싶어.’예진의 본능적인 생존 욕구가 겨우 목소리를 내게 했다.“살려줘요... 제발 살려줘요.”그제야 세 사람의 시선이 예진에게 향했다.예진은 분명히 봤다. 아들과 남편의 걱정 어린 얼굴은, 자신을 보는 순간 싸늘하게 변했다.“엄마... 고모 몸이 약하니까 먼저 도와줘야 해. 엄마는 조금만 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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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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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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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야... 설마 결혼하고 몇 년 동안, 매일 이렇게 아침밥 차린 건 아니지?”은주의 말에 예진은 민망하게 웃었다.“부윤제 위가 안 좋잖아. 입맛도 까다롭고... 그래서 요리 수업도 몇 달 다니고, 매일 메뉴 바꿔가면서 해다 바쳤지, 뭐.”‘그땐... 잘해주면 언젠간 마음 돌리겠지 싶었어.’‘하지만, 사람 마음은... 그런 게 아니더라.’은주는 입을 삐죽 내밀며 고개를 저었다.“하... 진짜 부윤제 그 개XX는 전생에 나라를 몇 개는 구했나 보다. 우리 예진이가 매일 아침상까지 차려줬는데...”예진이 맞은편에 앉자 두 사람은 조용히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잠시 후, 은주가 핸드폰을 꺼내 예진에게 명함 하나를 툭 보내줬다.“참, 변호사 일은 내가 알아봤어.”예진이 받은 명함 위엔 ‘서민혁 변호사’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서민혁? 이 이름,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은주는 달걀부침 하나를 입에 넣으며 말했다.“우리 사촌 오빠야. 너보다 두 학번 위였을 거야. 진대영 교수님 제자였지, 아마? 너도 교수님 수업 들었잖아. 기억 안 나?”그 말을 듣자 예진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맞아... 대학교 때 법대에서 서민혁 선배 이름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뛰어난 성적으로 항상 상위권에 있었고, 얼굴까지 잘생겨서 학교 안팎에서 인기가 많았던 그 인물...’‘교수님이 특히 아끼던 제자이기도 했지.’‘졸업하자마자 바로 사법시험 붙었다는 소문도 있었고, 법원에서 일하라는 제안도 거절하고 자기 로펌 차렸다는 말도 들었는데.’“원래는 너한테 다른 변호사 붙이려고 했거든? 근데 어제 오빠한테 네 사정 말했더니, 오빠가 직접 맡겠다고 하더라. 완전 바쁜 사람인데도 말이야.” 은주는 마지막으로 찐빵 하나를 입에 욱여넣더니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무튼, 너 일단 민혁 오빠랑 연락해서 만나서 얘기 잘 해봐. 나는 출근해야 해서 이만.”“응, 조심해서 다녀와.”은주가 나가고 난 뒤, 예진은 서민혁에게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냈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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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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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민혁은 갑자기 나타난 도순희를 힐끗 바라보다가, 흥미로운 듯 시선을 예진에게 옮겨 반응을 지켜봤다.예진은 순간 멍해졌다. 몇 년간 몸에 밴 반사적인 습관이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뭔가 말하려다 멈췄다.‘왜 내가 설명해야 하지?’곧 정신을 차린 예진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나랑 부윤제는 이미 끝났어.’‘부윤제 본인도 관심 없는 일을, 내가 왜 신경 써야 하지?’‘전 시어머니 눈치를 볼 이유가 없잖아.’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예진의 표정이 서서히 차가워졌다.“사모님, 말씀 좀 조심하시죠. 첫째, 저와 사모님의 아들, 부윤제 씨는 이혼 절차 진행 중이에요.”“제 사생활은 이제 부윤제 씨와 전혀 상관없고, 당연히 사모님과도 무관해요. 만약 계속 간섭하신다면, 그건 제 사생활을 침해하시는 겁니다.”“둘째, 지금 저와 이 분 사이에 뭔가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에 대한 증거라도 있으신가요?”“있다면 제시해 주시죠. 없다면 그건 명백한 명예훼손이고, 저희 둘 다 사모님을 법적으로 고소할 수 있어요.”예진의 단호한 말에 도순희는 순간 얼어붙었고, 곧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목소리를 한층 더 높였다.“너... 지금 나한테 뭐라고 했니?”그러고는 테이블을 ‘쾅’ 하고 내리쳤다.“세상이 진짜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날 고소하겠다고? 지금 제정신이야?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말하면서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도순희는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잔을 들더니 예진 쪽으로 들이부으려 했다.예진은 순간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맞겠네...’그런데 어쩐 일인지, 커피는 예진의 얼굴에 닿지 않았다.도순희의 손목은 허공에 멈춰 있었고,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민혁이 날쌔게 그녀의 손을 움켜쥐고 있었다.“뭐 하는 거야?! 이 손 놔! 내 며느리 내가 혼내겠다는데, 왜 당신 같은 외부인이 끼어들어?”도순희는 손을 빼려 했지만, 민혁의 손에 잡힌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사모님, 사모님 댁 집안일에 제가 끼어들 입장은 아니지만, 이건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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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도순희의 얼굴은 이미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주변에서는 수군거림이 점점 더 커졌다.“그 아이, 분명 할머니 밑에서 그렇게 된 거야. 친엄마 두고 딴 여자만 챙긴다니.”“그러게. 내 자식이 저랬으면 나도 저 집안 다 내쳤을 거야.”“...”도순희는 입술을 꾹 깨물며 아무 말도 못 했다.‘이게 다 고예진 때문이야. 감히 날 이 자리에서 이렇게 망신을 줘?’분노로 인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데도, 발이 딱 얼어붙어서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그때, 등을 돌린 예진이 민혁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이제 가시죠.”민혁은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식당을 나섰다.식당 안에 남은 도순희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뭘 그렇게들 봐? 구경났어?”그제야 주변의 사람들은 조용히 흩어지기 시작했다.도순희는 이를 악물고 자리에 털썩 앉았다.‘고예진... 두고 봐. 너 같은 게 어떻게 버티나 보자.’‘우리 윤제한테 다 말할 거야. 네 진짜 얼굴을 윤제가 다 알게 되면, 넌 끝이야.’식당 밖.예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무작정 앞을 향해 걷고 있었다.‘다 끝났는데 왜 이렇게 허전하지. 이겼는데, 하나도 시원하지 않아.’그 표정을 본 민혁이 조용히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차 저쪽에 있어요. 태워다 줄게요.”그제야 예진은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둘은 조용히 차에 올라탔다.“지금은 은주 집에 있죠?”예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혼자 지낼 생각은 없어요?”다시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번엔 살짝 고개를 저었다.“마음에 드는 집이 생기면... 나올 거예요.”조용히 웃는 민혁의 얼굴에 가벼운 흥미가 섞여 있었다.침묵이 잠시 이어졌고,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솔직히 말해서... 고예진 씨 같은 ‘연애 바보’가 진대영 교수님 밑에서 나랑 나란히 이름을 올린다는 게 믿기지 않았어요. 법대 수석에 교수님의 자랑거리라는 게, 오늘 고예진 씨를 만나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었죠.” 예진은 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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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지금 당장, 본가로 와. 물어볼 게 있어.]윤제의 명령 섞인 목소리에 예진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아직도 본인이 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부윤제 씨, 마지막으로 말할게요. 우리 지금 이혼 준비 중이에요. 더 이상 당신의 명령을 받을 이유 없어요.”단호하고 냉정한 예진의 목소리에 윤제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다.[아직도 정신 못 차렸구나? 그래, 아주 잘하고 있어.]예진은 더 듣고 싶지도 않은 듯, 전화를 단번에 끊어버렸다.‘딱 그 수준이야, 부윤제.’...윤제는 순간 멍하니 핸드폰을 쳐다보다가, 곧 들고 있던 핸드폰을 격하게 벽에 내던지려 했다.하지만 그 순간, 옆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아린의 시선을 느끼고는 겨우 참아내며 핸드폰을 억지로 아린에게 내밀었다.“고마워.”윤제의 기색만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짐작이 간 도순희가 들이받듯 말했다.“거 봐! 내가 뭐랬니! 고예진, 완전히 미쳐 돌아가는 거야. 이제 우리 집 망가뜨리려고 작정했지, 작정했어!”윤제는 이를 악물며 낮게 말했다.“이혼하고 싶다고? 좋아, 원한다면... 내가 해주지.”그 말을 들은 아린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눈동자는 흔들렸고, 어딘가 모르게 서운하고 불안한 표정이었다.“예진 씨... 혹시 어제 일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 내가... 괜히 불편하게 만든 건 아닐까... 혹시 내 존재 때문에 오빠 결혼이 망가지는 거라면, 나... 나 그냥 나갈게.”아린은 말끝을 흐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고모, 가지 마! 아빠가 엄마랑 이혼하면, 고모가 우리 엄마 해주는 거잖아! 나 진짜로 고모가 엄마 됐으면 좋겠어!”이안은 두 팔로 아린을 꼭 끌어안으며 애처롭게 매달렸다.“이안아, 그런 말 하면 안 돼... 오빠, 예진 씨 좋은 사람이야. 잘 지켜야지...”아린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이안을 소파에 앉히고 돌아서려 했다.그 모습을 본 윤제가 조용히 다가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그만둬. 이건 네 잘못 아니야. 고예진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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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은주가 벌떡 일어나 소매를 걷으려 하자, 예진이 다급히 그녀를 뒤로 끌어당겼다.“봤지? 저 여자, 진짜 구제 불능이야. 법 아는 애가 일부러 폭력을 행사한 거잖아. 한 번만 더 이러면, 진짜 고소할 거야!”예영호는 급히 손을 들어 상황을 중재하려 했다.“자, 자... 진정하세요. 이야기는 차분히 하시죠. 폭력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예진이가 나서면 방법이 있겠지.’‘근데... 나 진짜 저 인간한테 한 대 더 날리고 싶어.’은주는 이를 악물고 있었지만, 예진이 조용히 은주의 팔을 꽉 잡은 덕에 간신히 마음을 잡고 자리에 앉았다.예진은 다시 김기남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김기남 씨, 아직 끝이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전후 사정은 어느 정도 파악했고, 물론 제 친구의 행동에도 문제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발단이 김기남 씨에게 있었던 것도 사실이죠.”예진의 말이 흐름을 바꾸자, 김기남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자르려 했다.“그건 또 무슨...”하지만 예진은 김기남의 말을 자르며 단호하게 말했다.“김기남 씨께서 요청한 50만 원, 그건 저희가 지불할 수 있습니다. 폭력에 대한 책임이니까요. 하지만 그와 별개로, 저희 측은 김기남 씨를 ‘강제추행죄’로 고소할 예정입니다.”은주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제야 그녀는 예진이 무엇을 하려는지 이해했고, 억눌렀던 감정을 겨우 내려놓았다.‘역시... 내 친구는 달라.’은주는 조용히 고개를 들고, 자리를 지키며 미묘하게 미소 지었다.예진은 이어서 말을 이었다.“저희 직원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한 건 명백하고, 당시 CCTV 영상과 목격자 진술도 확보돼 있습니다. 폭력은 폭력대로, 성추행은 성추행대로 각자 책임지는 게 맞겠죠?”김기남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며, 시선을 피했다.“그... 그딴 증거가 어디 있다고...”“저희 바엔 CCTV가 5대 이상 있고, 그날 일한 직원들도 모두 진술할 수 있습니다. 김기남 씨, 이건 싸움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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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예진의 말이 끝난 순간, 태성은 민망한 듯 입을 다물었다.방 안의 공기가 급속도로 식었다.윤제의 얼굴은 다시금 짙은 먹구름으로 덮였고, 핸드폰을 쥐고 있던 손가락 마디는 하얗게 변할 만큼 힘이 들어가 있었다.“정말... 그게 당신이 내린 결론이야?”윤제의 목소리는 악물린 치아 사이로 쥐어짜듯 나왔다.하지만 예진의 대답은 너무도 담담했다.[이미 서명도 했고, 정리할 마음도 굳혔어요. 오늘 점심, 회사 근처 카페에서 보죠.]뚝-예진은 미련 하나 없이 전화를 끊었다.윤제는 멍하니 끊긴 화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핸드폰을 내려놓았다.그러나 눈빛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태성은 분위기를 살피다 조심스럽게 일어났다.“형... 나... 계약 건들 좀 봐야 해서요... 이만.”윤제는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앉은 상태에서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정면을 응시할 뿐.태성이 사무실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윤제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유리컵을 집어 들고 바닥에 내던졌다.쨍!깨지는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진심으로 이혼하겠다고?’윤제는 지금껏 한 번도 예진이 자신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예진... 지금은 당신이 이기는 것 같지?’‘끝까지 가보자. 어떻게든 빈손으로 내쫓아 줄게.’점심.예진은 약속 시간보다 10분 일찍 카페에 도착했다.윤제는 아직 오지 않았다.예진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카푸치노를 한 잔 시켰다.고소한 향이 코끝을 간질이고, 부드러운 거품이 입안에 감돌았다.‘이 맛... 정말 오랜만이네.’결혼 전엔 예진은 카푸치노를 즐겨 마셨다.하지만 결혼 후엔 윤제가 블랙커피만 마시기에, 자연스럽게 그녀도 블랙커피만 마시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그땐 다 맞춰주는 게 사랑인 줄 알았어.’‘하지만 지금은 알아... 사랑보다 나 자신이 먼저라는 걸.’결혼 이후, 예진은 언제나 부씨 가문의 작은 사모님, 이안의 엄마, 그리고 부윤제의 아내였다.‘근데 나는 어디 있었지...?’그제야 정말로 깨달았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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