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속, 아들을 구하려다 온몸에 화상을 입은 고예진. 하지만 남편은 그녀를 외면한 채, 아들과 함께 자신의 첫사랑을 품에 안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기적처럼 살아난 고예진은 망설임 없이 이혼을 선언했다. “이혼하고 나면, 아들 얼굴 볼 생각도 하지 마.” 처음엔 그냥 그런 협박일 뿐이었다. “그만 좀 해. 이혼 타령, 이제 지겹거든?” 한 달 후엔, 비웃음까지 들려왔다. 하지만 6개월 뒤, 고예진 곁에 새로운 남자가 나타나자, 전남편과 아들은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여보, 우리가 잘못했어. 아이도 당신을 그리워해.” 그러나 돌아온 건 단 하나, 싸늘한 대답. [저기요, 아이 핑계 대며 불쌍한 척은 이제 그만하시죠. 제 아내는 더 이상 그런 말에 흔들릴 사람이 아닙니다.] 죽음에서 돌아온 고예진은 더는 예전의 그녀가 아니다. 이제 그녀의 인생에, 그 뻔뻔한 부자를 위한 자리는 없다.
view more도순희가 말을 마치지도 못했지만, 아린은 더 상대할 마음조차 없었다.그냥 팔을 붙잡아 소파에 눌러 앉혔다.“왜 이렇게 흥분하세요, 어머니. 건강이 먼저죠. 그리고 오빠가 돈 버는 것도 다 가족들이 쓰라고 버는 거잖아요.”그 말을 던지고는 아린의 시선이 곧장 마사지사에게 향했다.“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우리 어머니 편안하게 해드리는 게 제일 중요해요. 원하시는 부위 마음껏 마사지해 드리세요. 계산은 나중에 저한테 하시면 돼요.”마사지사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사모님, 효심이 대단하시네요. 걱정 마세요. 큰사모님 모시듯 제대로 해드리겠습니다.”아린은 더는 도순희가 소리칠 틈을 주지 않았다. 모든 걸 당부하곤 바로 일어나 방을 나섰다.남은 건 도순희와 마사지사뿐.도순희는 아린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왠지 모를 이질감에 휩싸였다.‘뭔가 이상해. 그런데 뭐가 이상한 건지 모르겠네.’예진이 며느리였을 때도 도순희는 늘 똑같이 굴었다. 머리 아프다며 안마를 시키고, 아들 돈벌이가 힘들 테니 결혼 예물이라도 보태 쓰라고 압박했다.그럴 때마다 예진은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묵묵히 따랐다.그런데 아린은 달랐다. 예진처럼 무조건 순종하지도, 푸념을 받아주지도 않았다.오히려 자기 방식대로 상황을 뒤집어버렸다.‘내 손에서 벗어나고 있는 건가... 내가 이 집을 쥐고 있어야 하는데...’도순희는 어금니를 악물며 말할 수 없는 불편함에 사로잡혔다....한편, 시간이 흐를수록 재판 날짜가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예진은 최근 내내 비슷한 사건들의 재판 기록을 찾아보며 꼼꼼히 검토했다. 그만큼 이번 소송에 마음을 쏟고 있었다.재판을 앞두고, 예진은 병원을 다시 찾았다. 봉춘영의 상태는 첫 만남 때보다 한결 나아 있었고, 회복도 생각보다 빨랐다.하지만 어린 딸은 여전히 첫날처럼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고, 말수도 적었다.그럼에도 아이는 사려 깊었다. 링거가 다 떨어진 걸 눈치채고는 재빠르게 간호사를 부르러 뛰어나갔다.아이가 없는 틈을 타서, 예
도순희는 고개를 저었다.[약은 약대로 먹어야지. 그래도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야 마음이 놓이지 않겠니? 요즘 몸이 영 이상해.]아린은 병원 얘기만 나오면 질색이었다.‘사람도 많고 세균도 득실거리는 데를 왜 가야 하는데...’‘줄 서는 것만 생각해도 피곤해 죽겠네.’짜증을 꾹 억누르면서 대답을 꺼냈다.“어머니, 저...”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순희가 말을 끊어버렸다.[너 뭐가 어째? 지금은 내 며느리야. 며느리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그리고 요즘 머리가 너무 지끈거려서 말인데, 오늘 저녁 퇴근하면 와서 머리 좀 주물러 줘.]그 말에 아린은 헛웃음이 터질 뻔했다.‘하, 참나... 그래, 예진 땐 늘 그렇게 부려먹었겠지.’‘이 늙은이 세대는 원래 그렇게 믿겠지. 며느리는 시어머니 시중드는 게 도리라고.’‘하지만 날 만만하게 보면 큰 오산이지.’‘고예진이 길러놓은 이 못된 버릇, 내가 반드시 고쳐주고 말 거야.’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아린은 말없이 수긍하는 듯 전화를 끊었다....다음 날, 아린은 한약방을 찾았다.약효가 더 강한 한약을 주문했고, 한약사가 거듭 경고했다.“이 약은 많이 드시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요. 꼭 용량을 지켜서 드세요.”그러나 아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그 늙은 년이 조용히 있기만 하면 돼. 하루라도 덜 귀찮게 하면 그걸로 충분해.’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출장 마사지사까지 불러 두었다.아린이 본가에 들어서자마자, 귀에 거슬리는 신음소리가 들려왔다.소파에 반쯤 누운 도순희가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린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스쳤다.‘수십 년을 이 난리를 치며 살아왔겠지.’‘고예진 같은 물렁한 며느리가 아니고서야, 누가 이렇게까지 참아줬겠어.’‘도순희, 당신 세상은 이제 끝이야.’그렇게 속으로는 씁쓸히 웃으면서도, 아린은 억지로 얼굴에 미소를 걸고 다가갔다.“어머니, 어디가 그렇게 불편하세요?”도순희는 코웃음을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네 눈에
아린은 잔잔하게 미소 지었다.“제가 지금 이안 엄마예요.”그 한마디는 묘한 울림을 남겼다. 남자아이의 엄마는 곧장 눈치를 챘다.엄마라면 다 안다. ‘내 아이와 남의 아이가 같을 수 있나?’하물며 남편 전처가 낳은 아이와는 더더욱.치킨 같은 이런 정크푸드... 친엄마라면 쉽게 허락하지 않았을 거라고 속으로 단정지었다. ‘역시 새엄마라 가능하지.’하지만 겉으론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저 억지로 웃으면서 몇 마디 인사만 나누고는 아이를 데리고 자리를 뜨려 했다.그러다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돌아서서 말했다.“이안 어머님, 이런 음식은 몸에 좋지 않으니 되도록 아이한테는 적게 먹이세요.”아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끄덕였다.“네, 자주 먹는 건 아니고요. 오늘은 그냥 가끔 먹는 날이에요.”여자는 더 말하지 않고 그대로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치킨을 마저 먹고 나자, 아린은 습관처럼 이안을 도순희 집에 데려다 줄까 생각했다.‘어제부터 이안이 우리 집에서 지내고 있는데 굳이 데려다 줄 필요는 없겠지.’집엔 가사도우미도 없었다. 예진이 떠난 뒤 얼마 안 돼서 유순자도 그만두었으니, 달리 방법이 없었다.결국 아린은 이안을 회사로 데려갔다.소파에 과자를 잔뜩 올려두고, 아이패드를 손에 쥐여주었다.“얌전히 놀고 있어.”이안은 고분고분했다. 과자를 집어먹으며 태블릿 화면에 집중했다.치통이 다시 올라올 때마다 아린은 약을 챙겨 먹였다.오후 동안 두 번이나 진통제를 먹였고, 그 덕에 이안은 무사히 넘어갔다.밤이 되어도 윤제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 한 통만 남겼다.[아린아, 난 며칠 동안 J시에 출장을 다녀와야 해.]그 순간, 아린은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부윤제도 확실히 이안을 많이 챙겨.’‘만약 충치 사실을 알게 되면 틀림없이 신경을 곤두세우겠지.’‘그러면 난 아이 달래기도 힘들고, 주기적으로 검진도 데려가야 하고...’하지만 윤제가 출장을 나간다면?며칠 뒤 돌아왔을 때, 자신과 이안이 굳이 말을 꺼내지 않는 한 윤제가 다
“아빠, 이제 안 아파.”이안의 목소리를 듣자, 윤제는 비로소 안도하듯 긴 숨을 내쉬었다.아린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이안이 담임 선생님한테 연락이 왔어. 시간대 보니까 오빠는 분명 일하는 중일 거고, 워낙 바쁘잖아. 그래서 굳이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어.”“마침 내가 시간이 돼서 바로 데리고 갔어. 걱정 마, 상태가 심각한 건 아니래. 내가 주기적으로 이안이 데리고 검진 다닐게.”그 말에 윤제의 가슴 언저리가 알 수 없는 온기로 가득했다.예전엔 예진이 늘 이안을 치과에 데리고 다니곤 했다. 그럴 때마다 윤제에게 전화해 같이 가달라고 졸라댔다.‘말도 안 되지. 내가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매일 열심히 일하는데...’‘이 사람이 일도 안 하면서 아이 하나도 제대로 못 챙겨?’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정말이지 예진이 마음을 쓰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아린처럼 세심했다면 이안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것이다.생각이 그 지점에 닿자, 윤제는 오히려 묘한 죄책감이 밀려왔다.아린은 결혼 후부터 도순희 약 챙기는 일까지 도맡아 했고, 이안을 살뜰히 돌보는 건 물론, 자기 일까지 병행하고 있었다.‘이젠 나도 뭔가 보여줘야겠지.’결심한 듯 윤제는 비서를 불렀다.“하이엔드 주얼리로 주문 넣어. 예산은 60억 한도, 디자이너 단독 디자인으로.”비서가 곧장 메모하며 물었다.“대표님, 류아린 씨... 아, 아니, 사모님 드리실 건가요?”윤제는 고개를 끄덕였다.“결혼하고 지금까지 고생 많았잖아. 사모님께 주는 선물이라고 해.”비서는 고개를 숙이며 서둘러 나갔다....병원을 나온 뒤 진통제를 먹자, 이안의 치통은 금세 가라앉았다.그러자 이번엔 배가 꼬르륵 소리를 냈다.“엄마, 배고파.”아린이 부드럽게 물었다.“그럼 이안은 뭐 먹고 싶어?”망설임도 없이 튀어나온 대답.“치킨!”아린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별다른 생각 없이, 이안을 데리고 근처 치킨집으로 향했다.아이 세트 메뉴를 주문하고, 작은 손으로 큼지막한 닭다리를 들고 열심히 씹어
‘평소 그 녀석 이는 멀쩡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갑자기 충치가 생긴 거지?’건우가 물어볼 새도 없이, 의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참 이상하긴 해요. 이 아이, 제가 기억이 나거든요. 원래는 엄마가 늘 데리고 와서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곤 했는데, 최근엔 꽤 오랫동안 안 왔어요.”“그러다가 새어머니랑 같이 왔는데, 입 안 가득 충치가 생겼더라고요. 아마 부모님이 이혼하시면서 아이를 돌볼 여유가 줄어든 것 같아요. 안타깝죠.”그 말을 듣자 건우는 대충 사정을 짐작했다.의사와 가볍게 몇 마디 인사를 나눈 뒤 건우는 진료실을 나섰다....마침 회의를 막 끝낸 윤제가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곤 건우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무슨 일인데?”목소리가 딱딱했다. ‘아, 기분이 별로구나.’ 건우는 분위기를 살피며 장난을 걸었다.[별일 없으면 우리 부 대표님한테 전화도 못 해?]윤제는 곧바로 인내심을 잃은 듯했다.“지금 바빠. 농담할 시간 없어. 빈말하고 싶으면 선재나 찾아가.”끊으려는 기색이 느껴지자, 건우가 황급히 진지한 모드로 돌아왔다.[야야야, 잠깐만. 이번엔 진짜 할 말 있어서 그래. 이안이가 충치가 생겼다며? 왜 나한테 한마디도 안 했어? 그래도 우리 집 병원인데, 당연히 내가 제일 좋은 의사 붙여줄 수 있잖아.]그 순간 윤제의 미간이 팍 찌푸려졌다. 목소리엔 눌러 담은 기색이 묻어났다.“뭐라고 했어?”건우는 순간 멈칫했다.[몰랐어? 방금 아린이랑 같이 병원에 왔었어. 충치가 꽤 심한 것 같던데... 난 당연히 네가 알고 있는 줄 알았지.]윤제는 말없이 휴대폰을 확인했다. 아린에게서 온 메시지는 없었다.말끝이 어색하게 흐르자 건우는 애써 웃으며 덧붙였다.[뭐, 별건 아니고. 다음에 이안이 또 어디 아프면 그냥 바로 병원으로 데려와. 내가 챙길 테니까.]전화를 끊자마자 윤제는 서둘러 아린에게 전화를 걸었다....병원을 막 나온 아린은 차에 올라타자마자 진통제를 이안에게 먹였다.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으로는 효과가 약할까 봐, 근처 약
아린은 애초에 책임을 피하려는 태도였다.의사는 속으로 다 짐작했지만 굳이 드러내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아이가 지금 충치가 꽤 심각합니다. 치료가 꼭 필요해요. 나중에 영구치로 바뀌긴 하지만, 지금 관리가 제대로 안 되면 더 큰 문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검진도 받아야 하고요.”아린은 그 말을 듣자 미간이 찌푸려졌다.‘치과를 몇 번이나 들락거려야 한다는 거야?’‘이렇게 번거로운 일을 내가 계속 맡아야 한다니...’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그럼... 얼마나 자주 검진을 받아야 하죠? 치료 기간은 길까요? 많이 복잡한 건가요?”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설명을 이어갔다.“쉽지 않습니다. 지금은 잇몸이 부어서 발치도, 충전 치료도 할 수가 없어요. 당분간은 항생제와 진통제를 먹이면서 염증을 가라앉히고...”“그 뒤에 본격적으로 치료해야 합니다. 이 기간 동안은 병원에 자주 들러야 해요. 부모님께서 시간을 내셔야 합니다.”아린의 표정에 곤란한 기색이 스쳤다.그 모습을 본 의사는 잠시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혹시 아이 어머니께 연락은 안 되나요? 이혼하셨다고 해도, 아이 문제는 외면할 수 없는 거니까요.”아린은 입술을 깨물며 곧 억지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그 친엄마는 처음부터 양육권조차 가져가지 않았어요. 아이한테도 완전히 손 뗀 상태라...”“제가 처음으로 ‘엄마’ 역할을 맡다 보니, 이런 건 잘 모르겠네요. 우선은 약을 처방해 주시면 어떨까요? 당장 아픈 건 막아야 하니까요.”의사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좋습니다. 다만 꼭 명심하세요. 아이가 아직 어려서 진통제나 항생제를 오래 복용하면 몸에 무리가 갑니다. 통증이 줄면 바로 다시 데리고 오셔야 해요. 절대 미루면 안 됩니다.”아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맞장구를 쳤다.“네, 알겠습니다. 부탁드려요.”의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처방전을 작성했다.그러면서 마지막까지 잊지 않고 당부했다.“이 나이대 아이는 치아가 무척 약합니다. 특히 초콜릿이나 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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