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던 시후는 돌아서서 카운터에서 에르메스의 작은 악세서리 제품들을 구입했다. 구매를 완료한 뒤 그는 곧바로 카드로 계산해 에르메스 선물상자를 들고 VIP 라운지로 향했다. 시후가 VIP 라운지에 도착했을 때 여빈이 공항에 이미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조금 뒤, 시후가 에르메스 물건을 들고 들어오자 "어째서 에르메스 구경을 간 거예요! 유나 선물 사러 간 거예요??”"며칠 외부 일정이 있었으니 당연히 아내에게 기념품을 사줘야죠~”여빈은 입을 삐죽거렸다. "시후 씨, 보니깐.. 당신.. 이렇게 혜리만 한 스타를 알고도 모른 척 할 수 있어요? 그런 대스타는 아무 싸인 사진이나 받아 올려도 중고 사이트에서 수십 만원에 팔릴 텐데.. 어렸을 때부터 그녀를 알고 지냈다면서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냐고요!”"내가 다른 사람을 가지고 인맥 자랑을 할 수 있겠어요? 그건 나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호의에 대해 실망시키는 일이 아닐까요?”여빈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건 그래요. 그럼.. 둘이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일을 유나도 알아요?”시후는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모르죠. 사실 아무한테도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제 여빈 씨가 목격해서 그런 거예요.”"그렇다면 내가 비밀을 알게 된 거네요? 그럼 우리 관계가 한 단계 발전했다는 뜻 아니에요? 꺄악!!”“무슨 소리예요? 그냥 우연히 마주친 거라니까?”"그게 우연이든 아니든 간에, 나도 유나보다 당신의 비밀을 하나 더 알게 되었어! 후후훗!!" 여빈은 시후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에요. 시후 씨, 도대체 당신에게는 얼마나 많은 비밀이 있는 거예요? 당신이란 사람이 신비롭게 느껴져 사람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은데..”시후는 그녀가 이런 문제를 꼬치꼬치 캐묻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또 뭐가 완전히 꿰뚫어볼 게 있는 거예요? 그때 같이 온천에 갔을 때, 나는 보여줄 건 다 보여준 것 같은데..?”라고 물었다.여빈은 갑자기 부끄러워
시후는 이미 여빈의 애정표현을 막지 않았다. 이미 무감각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여빈이 자신에게 장난을 치는 줄만 알고 "참, 당신 사촌 공은찬은 어떻게 되었대요?”라고 물었다.여빈은 흥이 깨진 듯 입을 삐죽거렸다. 그녀는 시후가 사실 자신의 고백을 피해왔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그가 화제를 바꾸자 그녀 역시도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 나갔다. "오늘 거의 다 도착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아무튼 자전거를 너무 못 타서 중간중간에 비틀거리다가 연습하고 다시 올라타고 하는 바람에, 오늘 저녁에서야 도착할 것 같대요. 중간에 텐트에서 잠도 자고.”시후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마 서울에 올라가면 체력적으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하하하.”"뭐, 시후 씨의 이런 벌은 그에게도 좋은 일이죠. 우리 사촌오빠는 평소에 얼마나 날뛰던지.. 자주 집에서 사고를 쳤거든요. 다만 예전에는 이렇다 할 손해를 본 적이 없어서 매번 똑 같은 일이 반복되었어요. 하지만, 이번 기회로 자제하게 되겠죠?”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당신이 아니었다면, 분명히 장식품을 삼키고 다시 수술해서 꺼내게 했을 거예요. 이런 종류의 사람은 흉터가 낫고 나면 아픔을 잊으니까, 결국 그 아픔을 다시 겪게 만들어 줘야 하는 거죠.”여빈은 시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사촌 오빠가 서울에 도착한 뒤에 시후 씨랑 저녁 식사 한 번 해요..!”시후는 손을 저었다. "밥 먹고 술 마시는 건 그만하고, 서울에서 지내면서 조용히 있으라고 해요. 만약 실적이 좋으면 미리 돌려보낼 것이고, 안 좋으면 언제든지 기한을 연장시켜 버릴 테니까!”여빈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어휴.. 시후 씨도 너무 이렇게 엄하게 굴지 말아요~ 만약 우리가 앞으로 결혼하게 된다면 처남이 된다고요~~”"어휴.. 하루 종일 그 소리만 하고 있을 거죠?” 시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헤헤.. 누가 내가 당신을 좋아하게 만들라고 했어요? 어차피 난 항상 준비돼 있으니까, 언젠가 내
여빈은 헤헤 웃으며 "알았어!"라고 답했다.유나는 "마침 오늘은 별일 없으니 이따가 공항으로 마중 나갈게~"라며 웃었다."오키! 좋아~ 그럼 우리 이쁜이 고생 좀 해라~ 후후훗!”“어휴~ 뭘 그렇게 좋아해?! 사실 너만 데리러 가는 것도 아니고 우리 시후 씨 데리러 가는 건데~”"그래 그래, 시후 씨를 데리러 오는 김에 날 데리러 온 거지?"유나는 웃음지었다. "하하하.. 맞아!""그래, 그래. 마중 나온 김에 나까지 보러 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며 허탈해했다."그럼 이따가 우리 공항에서 만나자~~”"그래 그래~~"......한 시간 정도의 비행 끝에 비행기는 인천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시후는 여빈과 함께 공항을 나서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나를 만났다. 며칠 동안 유나를 보지 못하자 시후는 아내가 매우 그리워했고 유나가 A자 형태의 롱 코트를 입고 있는 것을 보았다.요 며칠 유나 역시도 시후가 너무 그리웠다. 두 사람은 결혼 후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매일 같이 생활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막상 한 명이 곁에 없으면 비로소 마음속에서 자꾸만 그리워지는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시후가 나오자 유나는 빠르게 다가가 그를 가볍게 안았다. 몇 초 동안 시후를 포옹한 후에야 유나는 수줍게 다시 여빈과 포옹을 했다. 여빈은 유나가 시후를 적극적으로 포옹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절친의 시후를 대하는 태도가 미묘한 변화가 생긴 것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인지는 단번에 분석할 수 없었다.하지만 시후 역시도 유나가 여빈의 앞에서 자신을 포옹할 줄은 몰랐다.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자신에 대한 아내의 감정이 조금씩 더 깊어지는 것 같다. 이것은 오히려 좋은 징조가 아니겠는가..?유나는 여빈과 가볍게 포옹한 뒤 시후의 손에 에르메스 쇼핑백이 여러 개 들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워했다. "시후 씨, 에르메스를 왜 이렇게 많이 샀어요?""당신과
공항에서 나온 시후는 유나의 BMW를 몰아, 먼저 여빈을 호텔에 내려주었다.사실 여빈을 데려다 주러 가는 길에 유나는 여빈을 다시 자기 집으로 초대하려고 했지만, 여빈은 이 요청에 동의하지 않았다. 비록 청년재에서 함께 지내면 시후와 더 가까워질 수는 있겠지만, 윤우선과 김상곤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집에서 마치 전쟁을 하는 것 마냥 매일 같이 난리를 쳐대니, 제3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것은 정말 골치가 아팠다. 게다가 그 집안에는 시한폭탄이 하나 더 있지 않았던가? 그 시한폭탄은 바로 김상곤의 첫사랑 한미정이었다.여빈의 입장에서 보면 윤우선은 아직 한미정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으니, 만약 알기라도 하는 날에는 김상곤과 또 한바탕 전쟁을 벌일 것이 뻔하고, 이 사실은 위협적이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괜히 청년재에 가서 불편하게 지내지 말고 호텔에서 지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혼자 호텔에서 지내는 건 좀 쓸쓸하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자유가 있고, 아무리 방을 어지럽혀도 방에 돌아오면 깔끔하게 청소가 되며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슨 말을 들어도 다시는 청년재에 가고 싶지 않았다.여빈을 배웅한 후 시후와 유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유나는 그간의 일을 궁금해하며 시후에게 물었다. "시후 씨, 풍수 봐주는 건 잘 처리된 거예요?”"그럼요~ 아마 리뷰를 달 수 있었다면 별 5개를 줬을 걸요? 하하!”유나는 그제서야 안도하는 듯했다. "그래요? 만족하면 됐어요. 그럼 우리가 돈을 벌어도 안심할 수 있으니까.” 그러더니 시후에게 또 다시 물었다. "그런데 에르메스를 이렇게 많이 샀잖아요.. 돈은 많이 안 썼어요?”시후는 가격을 조금 줄이기는 했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음.. 9천..만 원 정도.. 썼던가..?”"뭐어라아고요..?!? 9천만 원..?!" 유나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니!! 어째서 이렇게 돈을 허투루 쓰는 거예요?!! 우리 생활비도 이
그러다가 시후는 뭔가 생각이 떠오른 듯 말했다. "아 참, 여보! 내가 이번에 돌아와서 하루나 이틀 쉬다가 다시 일본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지난 번에 이야기 했었는데.. 일본 쪽에도 고객이 한 명 있는데.. 계속 풍수를 좀 봐 달라고 재촉하고 있어서..”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번에 일본에 가면 언제 다시 올 거예요? 이제 설이 보름 정도? 남았는데.. 이제 회사에서 다들 설 연휴 준비로 한창 바쁘니까요. 아니면.. 조금 있다가 설 쇠고 가는 건 어때요?”"미리 한 약속이라..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얼마 걸리지는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그래요..? 그럼 일본에서 조심해요! 외국에 가서 우파 세력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도록 하고요. 워낙 한국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마음을 쉽게 놓을 수가 없네요.”"그래요. 하하하! 하지만, 유나 씨는 아직 나의 능력을 모르는 것 같은데요? 쉽게 나를 괴롭힐 수 없을 거예요.”유나는 시후를 힐끗 쳐다보며 답했다. "당신이 싸움을 좀 한다는 건 알지만, 비즈니스를 하려면 평화롭게 대화하는 게 더 좋잖아요!”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요 여보. 조심할 테니까."......청년재로 돌아온 뒤.유나의 차가 별장 마당에 들어서자, 깁스를 한 윤우선이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버선발로 뛰쳐나왔다. 유나가 시후를 데리러 공항에 갔다는 소식을 듣고 시후가 돌아오길 목이 빠져라 기다렸던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시후가 출장을 가서 선물을 사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번 시후가 값비싼 스킨케어 세트를 선물한 뒤로, 그녀는 이미 돈 많은 사위를 너무나도 애지중지 여기고 있었다. 윤우선은 이번에도 시후가 분명 자신에게 비싼 선물을 사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후가 차에서 내리자, 윤우선은 오글거리는 표정을 지으며 아부를 떨어 댔다. “어휴~~~ 우리 은 서바아아아앙!! 이제 왔어~~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기나 해?!”시
다급한 표정으로 가득 찬 윤우선의 모습에, 시후는 빙그레 웃으며 뒷좌석 문을 열고 안에서 에르메스 쇼핑백을 꺼냈다.윤우선은 눈 앞에 이렇게 많은 에르메스 쇼핑백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심지어 두 눈에서 반짝반짝 빛이 뿜어져 나오기까지 했다..! "맙소사!! 이거 에르메스 아니니? 에르메스 가방은 너무너무 비싼데..? 은 서방이 뭘 샀는지 모르지만, 스카프 하나도 엄청 비싼 걸로 알고 있는데.."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감격에 겨워 시후에게 다가왔고,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 "어머머머!! 정말 에르메스야~! 우리 은 서방~~ 내 거는 뭐야아아아?!”시후는 쇼핑백 안에서 크기가 다른 여러 상자들을 몇 개 골라 꺼낸 뒤 윤우선에게 건넸다. "장모님, 큰 것은 가방이고요. 장모님께 제일 잘 어울리는 걸로 골라봤어요. 마음에 드시는지 한 번 보세요.”윤우선은 가방이라는 말에 자리에서 방방 뛰기 시작했다..! "어머??! 진짜???!! 가방을 사 왔다고?! 어머~ 세상에~~!!! 정말 내 백을 사온 거야?!! 어머머.. 은 서방~ 정말 나에게 너~무 잘 해준다~~" 윤우선은 늘 명품 백을 하나 갖기를 원했지만, 몇 년 동안 그녀가 가지고 다닌 가장 비싼 명품은 바로 루이비통 지갑뿐이었다. 그래서 윤우선은 늘 에르메스 백을 들고 다니는 여성들을 부러워했고 자신은 가질 수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윤우선은 에르메스를 꼭 메고 싶었지만, 사실 생각하지도 못했다. 만약 그녀가 예전처럼 수중에 돈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직접 에르메스를 사기 위해 선뜻 돈을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시후가 오늘 에르메스를 선물해주다니.. 이건 정말 그녀에게 큰 놀라움을 주었다..! 그녀는 서둘러 에르메스의 포장지를 뜯고, 안에서 핸드백을 꺼내들었다. 그녀는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지더니 시후를 보며 웃었다. "어머~~~ 은 서방!!!! 이 가방 정말 예뻐!!! 정말 어쩌면 좋아!! 아이고 은 서방~~ 너무 고마워~~~! 나에게 이렇게 비싼 가
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좀 썼습니다.. 하하!!”"아이고! 우리 사위가 이렇게 대단할 줄이야! 이렇게 비싼 명품 스카프를 사주다니..?! 이런 거면.. 밍크 코트 가격일 텐데..?” 그러자 윤우선은 또 다른 선물세트를 열기 시작했다. "아아!! 에르메스 클래식 벨트네?! 은 서방~~ 내가 몇 년 동안 이 벨트를 갖고 싶어도 돈이 아까워서 못 샀는데.. 자네가 내 꿈을 대신 이루어 줄 줄이야.."그러자 옆에 서 있던 김상곤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크흠.. 그.. 은 서방.. 내 선물은 안 가져왔나??!”시후는 웃으며 "하하.. 아버님 것도 있어요. 여러 가지 준비했죠.” 시후는 에르메스 선물상자 두 개를 건넸다.김상곤은 허벅지를 탁 치더니 "아이고, 내 것도 있지?! 역시~~ 우리 은 서방이 최고야!"라고 기뻐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급히 달려들어 시후에게서 선물 상자를 받았다. 첫 번째를 열자, 황금색 알파벳 H 로고가 박혀 있는 남성용 허리띠가 햇빛에 반짝였다. "아이고.. 이건 회장들이나 쓰는 에르메스 벨트 아니야?! 하하하!! 이거 꽤 인기 있던 걸로 아는데!!”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 벨트는 중년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그러자 김상곤은 입맛을 다시며 감탄했다. "아이고, 나도 이제 성공한 사람이야? 청년재에 살고, BMW 5시리즈 세단에.. 그리고 에르메스 허리띠까지?! 이제 곧 굵은 금시계를 하나만 차고 다니면 거의 뭐 부동산 재벌 아니야? 아핫핫핫!!”그러자 유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아빠, 요즘에 어떤 아저씨가 두꺼운 금시계를 차고 다녀요? 그거 다 옛날 사람들 패션 아니에요?”"그냥 내 꿈이었어~ 하하하하.." 김상곤은 헤헤 웃었다. 그러더니 시후를 향해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그럼 은 서방, 언제 금시계 하나 선물해 줄 수 있나? 최근에 롤렉스가 마음에 들던데.. 그 브랜드가 참 분위기 있어 보이던데 말이야..”시후는 문득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하.
얼마 전, 상곤은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한미정으로부터 롤렉스 시계를 선물 받았다. 그 날, 시후는 술에 취한 김상곤을 데리러 차를 몰고 한미정과 김상곤이 만나고 있는 장소로 갔고, 유나는 아버지가 무슨 일을 꾸미는지 확인하기 위해 함께 차 뒷자리에 함께 타고 있었다. 그래서 유나는 아빠가 지금 시후에게 롤렉스를 사 달라고 하는 것은 사실 형식적인 이야기에 불과하고, 기회를 봐서 그 시계를 당당하게 차고 싶다는 걸 깨달았다. 그 때, 유나는 살짝 기분이 불편했지만 이미 아빠와 엄마의 과거를 알고 있었고, 아빠가 오랫동안 많은 억울한 일들을 겪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건 눈감고 넘어가 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엄마까지 시후에게 롤렉스를 사 달라고 할 줄은..그래서 유나는 급히 윤우선을 말렸다. "엄마, 롤렉스는 남자들이 차는 거라서 잘 안 어울려요. 시계가 갖고 싶으신 거라면 나중에 제가 티쏘 시계를 하나 사드릴게요! 그럼 되잖아요?”그러자 윤우선이 소리쳤다. "어휴! 이렇게 넘어갈 생각 하지 마..?! 그 브랜드는 너무 싼티 나잖아!!! 얼마 안 줘도 살 수 있는 그런 싸구려 나는 필요 없다?! 그게 어떻게 롤렉스랑 비교가 되니?”그러자 시후가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장모님, 이번에 제가 출장 다녀 오면서 어머님 선물은 많이 사드렸지만, 아버님 선물은 좀 적어서요.. 우리가 사실 그냥 쓸 수 있는 돈이 많지 않으니.. 큰 돈을 쓰면 돈이 부족하지 않을까요? 제가 마침 중국 광동에서 명품 카피 제품을 수입하는 친구 한 명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요즘 카피 제품을 중국이 정말 잘 만들어서 이게 가짜처럼 보이지도 않고 싸구려 같지도 않다고 하던데.. 이거라도 하나 맞춰드리면 어떨까요?”이제 윤우선은 더 이상 시후 앞에서 맹목적으로 비판하고 반대만 일삼는 억척녀가 아니었다. 시후는 요즘 윤우선에게 잘해주고 있었기에 그녀도 꽤 철이 든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윤우선은 은 서방이 이미 자신에게 에르메스를 이렇게 많이 사줬으니 가짜 롤렉스 하나 사게
시후의 외할머니가 시후를 직접 만나고 싶다고 말하자, 배유현은 급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여러분들을 살려주신 은인께서는 행방이 일정하지 않으셔요. 이번에도 저에게 약을 전달해주신 후, 아직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많다며 바로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배유현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시후는 정말 자주 이동했기 때문에 행방이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캐나다, 미국, 홍콩, 멕시코를 오가는 터라 시후의 구체적인 계획은 배유현도 알지 못했다. 게다가, 시후는 이미 페이셔스 그룹의 냉동 센터를 떠난 상태였다. 그는 지금 버킹엄 호텔로 돌아가, 이토 그룹과 하영수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시후의 외할머니는 배유현의 말을 듣고 매우 아쉬운 듯 말했다. “그분께서는 우리 집안 구성원들을 모두 구해주셨고, 이번엔 제이크 한 경감까지 살려주셨어요. 이처럼 큰 은혜는 우리 자손 대대로 다 갚지 못할 만큼 대단한 것인데, 그분은 단 한 번도 우리에게 보답할 기회를 주지 않으셔서...”배유현은 위로하듯 말했다. “사모님, 그건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은인께 큰 은혜를 입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보답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저 그분을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며 곁에서 도울 수 밖에요.”이때 안충주가 말을 이었다. “배유현 회장, 예전에 한국의 경매장에서 당신의 할아버지인 전 회장님께서 갑작스레 몸져 누우셨고, 그 틈을 타서 당신의 큰아버지가 권력을 빼앗았죠. 그런데 전 회장님께서는 다시 건강을 회복하셨고, 당신과 함께 뉴욕으로 돌아오셔서 결국 페이셔스 그룹을 다시 맡으셨는데... 내가 짐작하는 게 맞다면, 그 당시 우리의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 당신 역시 도와주신 겁니까?”“네 맞습니다.” 배유현은 숨김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제 할아버지는 한국에서 목숨을 부지하셨다 해도, 저와 함께 큰아버지의 추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겁니다.”안충주는 눈빛이 번뜩이며 말
안산과 안충주는 재빨리 두 사람을 AB 빌딩 안으로 데리고 갔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층으로 올라갔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안산은 제이크 한을 이끌고 회의실로 향했다.현재 Samson 그룹의 구성원들은 안산의 뜻에 따라, 모두가 배유현에게 직접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응접실에 모여 있었다. 안산이 응접실의 문을 열자, 그 안에 앉아 있던 Samson 그룹 구성원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그들은 문 너머로 들어오는 사람이 배유현이 아니라, Samson 그룹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던 제이크 한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제이크 한을 본 순간, Samson 그룹 식구들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고, 어느 누구도 이 상황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제이크 한이 이미 세상을 떠났으며, 그것도 Samson 그룹과 관련된 일에 휘말려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제이크 한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을 때, 현장에 있던 모든 Samson 그룹 사람들은 마치 사고 기능이 정지된 것처럼 얼어붙고 말았다.시후의 외할머니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앞으로 다가가 안산에게 물었다. “여보... 이... 이 사람이 정말 제이크 한 그 친구가 맞아요? 아니면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요? 혹시 내 정신이 이상해진 건가요?”“맞아. 제이크 한 그 친구가 맞다고!” 안산은 흥분하여 말했다. “정말로 제이크 한이 맞아! 이 친구가 살아 있었어! 배유현 회장이 데려온 거요!”그제야 가족들은 뒤따라 들어온 배유현을 발견했다.시후의 외할머니는 놀람과 기쁨이 교차된 표정으로 배유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배유현 회장...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해줄 수 있을까요? 그날 사건이 벌어졌을 때, 우리를 살려준 분께서는 제이크 한은 이미 살릴 수 없는 상태라고 하지 않으셨나요?”배유현은 사실대로 말했다. “그때 그 분은 제이크 한 경감의 뇌가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셨어요. 하지만 신체의
배유현은 안산이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며, 곧바로 공손하게 말했다. "회장님, 요즘 건강은 괜찮으시지요?"안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배유현 회장 덕분에 요즘 꽤 잘 지내고 있습니다."배유현은 재빨리 말했다. "안 회장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나이도 많이 어리고, 그런 말씀을 들을 자격이 없습니다!"그러자 안산의 곁에 있던 안충주도 이때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배유현 회장님, 안녕하십니까."배유현 역시 공손히 인사했다. "안충주 선생님, 안녕하세요."안충주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배유현 회장님, 실례가 안 된다면... 제 친구 제이크 한은 지금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가능하시다면 주소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조만간 찾아가 조의를 표하고 싶어서요.”배유현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녀의 옆에서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쓰고 있던 한 남자가 갑자기 소리쳤다. "충주! 나 제이크 한은 아직 안 죽었어!"그 말이 떨어지자, 안충주와 그 곁에 있던 안산은 모두 깜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들은 그 목소리가 분명 제이크 한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했지만, 눈앞에 서 있는 이가 제이크 한이 맞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듯했다.왜냐하면 그날 체육관에서 Samson 그룹 최정예 경호원들이 암살자들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했을 때, 그들은 직접 시체를 보지는 못했지만 가장 먼저 총알에 맞은 제이크 한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을 구해준 시후도 분명히 제이크 한이 이미 죽었으며, 신 조차도 그를 살릴 수 없을 거라고 말했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어떻게 제이크 한이 죽은 뒤 살아 돌아왔다는 걸 믿을 수 있겠는가?제이크 한은 Samson 그룹의 두 사람이 눈을 크게 뜨고 아무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자, 참지 못하고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확 벗으며 외쳤다. "나야! 나! 아직 안 죽었다고!""이런 젠장!" 안충주는 너
안충주는 서둘러 휴대폰으로 인터넷에서 배유현의 사진 몇 장을 검색해 안산에게 보여주었다.안산은 몇 번 사진을 훑어본 후 휴대폰을 돌려주었지만, 순간적으로 멍하니 한 사람의 모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듯하더니 갑자기 물었다. “충주야... 제이크 한, 그 친구를 배유현 회장이 데려간 거 아니었나?”안충주는 놀라며 되물었다. “아버지, 제이크 한을 기억하신 거예요?”안산은 멍하니 말했다. “조금 전 머릿속에 뭔가 스치듯 지나갔어. 그날 우리를 구해준 은인이 ‘제이크 한은 이미 죽었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그러면서 재빨리 물었다. “충주야, 그날 그 은인이 그러지 않았니? 제이크 한의 시신은 자신이 사람을 보내 정중히 장례 치르겠다고?”안충주는 아버지가 그날의 일부를 기억해낸 것에 놀라면서도,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네... 그 은인은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마 그 일을 배유현 회장에게 맡긴 것 같아요.”그러자 안산은 눈가가 붉어지며 자책했다. “나는 제이크 한 그 친구에게 정말 면목이 없다... 그 친구의 부친에게도, 그 친구의 아내와 딸에게도... 나는 그들에게 모두 죄인이나 마찬가지야...”안충주는 서둘러 위로했다. “아버지, 이건 아버지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에요. 우리 집안 전체가 큰 빚을 진 거니까요.”안산은 다시 물었다. “그럼 제이크 한의 아내와 딸은 어떻게 됐냐?”안충주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쪽은 제가 손을 쓸 수가 없었어요... 그날 은인이 분명히 당부했었으니까요. 제이크 한의 죽음을 누구에게도 알려선 안 된다고... 심지어 그의 아내에게도요. 그래서 제이크 한의 아내가 저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남편의 행방을 묻고 있는데, 저도 어쩔 수 없이 그 부분은 모른다고 둘러댈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아마도 이미 경찰에 실종 신고까지 한 걸로 알고 있는데, 뉴욕 경찰은 아직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하아...” 안산은 깊게 한숨을 쉬며 당부했다. “방법을 좀 찾아서, 그의
안산의 갑작스러운 분노 섞인 외침에 Samson 그룹 삼형제는 일제히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비록 모두가 이미 같은 결론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아버지인 안산이 직접 그렇게 말하자, 그들은 등골이 오싹해졌다.안태풍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저 자들이 우리와 도대체 무슨 원한이 있기에, 20년 동안이나 집요하게 우리를 노린 거죠?”안재남도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우리 집안이 자산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큰 잘못을 저지른 일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요...! 그동안 우리 집안의 자산 대부분은 당시 엔젤투자에서 비롯됐고, 게다가 누나는 실리콘밸리의 절반을 떠받치고 있던 인물이었어요. 그런데 누가 우리와 그렇게 원한 관계에 있다는 거죠?”안충주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에게서 뭔가를 얻어내고자 하는 걸 수도 있지.”안재남이 물었다. “형 말은... 돈을 노린 다는 거야?”“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안충주가 말했다. “하지만 저들이 이토록 정교하고 집요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 단순한 증오심이나 원한 때문은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그러자 안산 역시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만약 돈이 목적이라면, 굳이 우리 전부를 죽일 필요는 없지 않겠니? 요즘은 대부분 자산을 디지털 형식으로 가지고 있기에 은행 계좌나 증권 계좌, 신탁 계좌에 숫자로만 남아 있다. 그러니 우리를 죽인다고 해도 그 자산이 그들 손에 들어가는 건 아닐 것 아니냐!”안충주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게 바로 저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입니다...”네 사람은 곧 깊은 침묵에 빠졌다.그때, 막내딸 안유진이 문을 두드리며 밖에서 말했다. “아버지, 배유현 회장이 조금 뒤에 찾아 뵙고 싶다고 전화가 왔는데요.”“배유현...?” 안산은 인상을 찌푸리며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배유현 회장이 누구냐?”안충주가 얼른 말했다. “아버지, 또 잊으신 거 아니죠? 아침에 말씀드렸잖아요. 우리가 사건을
그 순간, 안태풍, 안충주, 그리고 안산 모두의 얼굴이 일제히 굳어졌다.안태풍은 반사적으로 외쳤다. “큰 누나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후, 너는 권아현을 만났고... 권아현은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네 곁에서 무려 19년 동안 숨어 지냈어... 우리를 죽이려 한 자들과 누나가 그 해에 죽었던 일은 분명 관련이 있는 거야!”안산은 경악하며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 놈들은 예선이와 은 서방을 죽이고도 모자라, 재남이 곁에 무려 19년이나 묵혀 놓은 시한폭탄을 이번에 터뜨린 셈이군... 대체 이 놈들은 뭘 노리고 있는 거지?! 만약 우리 집안을 없애는 게 목적이라면, 왜 지금까지 이렇게 오랫동안 기다린 거냐고?”“그러게 말입니다...” 장남 안충주 역시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라면, 뭔가 깊은 원한을 품고 있을 때 진작에 손을 썼겠죠. 굳이 지금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을 텐데...”안산이 말했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이 자들이 우리에게 대체 얼마나 큰 복수심을 품고 있길래, 이렇게까지 큰 판을 벌이는 건지 말이야...”안재남은 참다 못해 말했다. “아버지, 형님들... 꼭 제 아내를 19년 전에 그 조직에서 일부러 저에게 심어놓은 인물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잖아요? 중간에 회유되었거나, 협박을 받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그럴 리 없어.” 안충주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만약 네 아내가 중간에 회유된 것이라면, 그 집안 가족들 역시 그때 함께 배신했겠지. 그런데 그 집안의 일련의 행동들은 그런 식으로는 설명이 안 되잖아. 그러니 나는 오히려 권아현과 그 일가 전체가 애초부터 철저하게 설계된 함정이라고 판단한다.”안태풍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고, 이어서 안재남을 바라보며 물었다. “재남아, 너와 권아현이 처음 만났을 때 구체적인 상황을 떠올릴 수 있겠어?”안재남은 말했다. “그 당시 내가 석사 2학년이 막 시작되었을 때였는데, 아내는 막 석사에 입학했었지. 신입
유럽과 미국에서는 가족 신탁 상품이 매우 신뢰할 수 있는 자산 보호 방식으로 여겨진다.한국에는 ‘부자는 삼대를 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부모 세대가 어렵게 일군 부를 자손 세대가 사치스러워 함부로 낭비하고, 눈은 높지만 능력은 부족하여 유산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상황은 쉽게 가족의 파산으로 이어지고, 하룻밤에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만든다. 이것은 자손 세대의 능력과 인품이 통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일단 능력이나 인격 중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가문의 몰락은 피할 수 없는데, 하물며 인재 외에도 천재지변 같은 변수도 존재한다.그러나 가족 신탁은 이러한 인재와 천재지변의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차단한다. 먼저 자신의 자산을 신탁에 넣는 순간, 겉으로 보기에는 본인조차 해당 자산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권을 포기하게 된다. 이후 자산은 특정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에만 자녀나 지정된 상속인이 받을 수 있다. 따라서 훗날 중대한 문제가 생겨 가문이 빚더미에 앉게 되거나 파산을 하게 되더라도, 이 가족 신탁은 정부나 채권자에 의해 임의로 처분될 수 없다. 이것은 바로 유럽과 미국에 있는 유서 깊은 가문들이 여러 세대, 심지어는 수십 세대에 걸쳐 부를 유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할 것이다.비록 권아현 집안 식구들은 현재 모두 자취를 감췄지만, 그들의 자산은 이미 모두 가족 신탁으로 옮겨졌다. 이는 더없이 안전한 보관 방식으로, 권아현의 집안 식구들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기업 운영에는 전혀 문제가 생기지 않으며,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거나 예기치 않은 상황이 생길 걱정도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돈은 신탁에 들어가 있는 이상 줄어들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불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방 정부조차 이 자산에는 손을 대지 못할 것이다.이런 행동은 곧 권아현 집안 식구들, 혹은 그들 뒤에 있는 그 미스터리한 조직의 입장을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그들의 입장은 바로 잠적하는 것은 단지 일시적인 전략적 후
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날 밤 외가 식구들은 나를 만났고, 내가 부른 사람들이 당신을 데려갔다는 건 알고 있을 겁니다. 다만 당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죠. 그러니 당신과 외가 식구들이 다시 만났을 때, 어떤 정체불명의 인물이 알약 하나를 먹인 뒤 당신을 구했다고만 알려주고, 이후 배유현 양에게 당신을 그들에게 데려다 주라고 했다고 말하세요. 그리고 정체불명의 인물이 누구인지는 모른다고 하시고요. 그러면 그들은 당신을 살린 사람과 자신들을 살린 사람을 연결 지으려 할 거고, 그 뒤는 외가 식구들이 스스로 추측하게 내버려 두면 됩니다.”“알겠습니다, 도련님!” 제이크 한은 진지하게 말했다. “기억해 두겠습니다.”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고 배유현을 불러들였다. “배유현 씨, 헬기를 좀 준비해주시고, 제이크 한 경감을 맨해튼의 AB 빌딩까지 모셔다 드리세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먼저 내 외삼촌께 연락을 드려 방문 의사를 전해주시고요. 그 날 그들을 구한 후 현장을 수습한 사람은 배유현 씨이기 때문에, 그들은 당신에 대해서는 크게 경계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배유현은 공손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은 선생님. 바로 Samson 그룹 측에 연락하겠습니다.”......같은 시각, 맨해튼 AB 빌딩.Samson 그룹은 함께 모여 회의를 열고는 최근 각종 정세를 종합하여 토론하고 있었다. 안산은 최근 알츠하이머 증상이 계속 악화되고 있었기에, 아침에 눈을 뜨면 아내와 자식들은 그에게 현재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오랫동안 설명해주곤 했다. 다행히도 안산은 수많은 풍파를 겪어온 인물이라, 그날 어떤 사건들이 일어났는지 직접적으로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식들의 설명을 들으면 곧바로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그 날 암살 사건이 발생한 이후, Samson 그룹 사람들은 줄곧 뉴욕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가족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다시 손을 대기 시작했지만,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안산은 당분간 가족
이야기를 들은 제이크 한은 매우 놀라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는 이전의 경력 때문에 블랙 드래곤에 대해서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블랙 드래곤이 시리아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영구 거점을 건설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용병 조직에게 있어 영구 거점을 보유한다는 것은, 단번에 다른 용병 조직들에 비해 훨씬 앞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용병이라는 존재는, 이화룡이 거느리는 조폭들에 비해 각국 사법기관이 훨씬 더 경계하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용병 조직은 세계 각국에서 길거리의 쥐와 같은 존재로 비밀리에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오직 정부와 깊이 협력하는 조직이 아니라면 절대로 대놓고 간판을 걸고 활동하지 못한다.물론 미국에도 용병 조직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백악관과 협력하며 그들의 총알받이 노릇을 하는 일부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대부분 은밀히 활동할 수밖에 없다. 용병 조직의 대다수는 미국 퇴역 군인 출신으로, 본국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개개인으로 위장 생활을 하다가 해외에서 임무를 수행하곤 한다. 예를 들어, 한 용병 조직은 100명 남짓한 구성원들에 불과한데 그들은 평소 각자 합법적인 직업과 신분으로 위장하여 일반 시민처럼 지내다가 임무가 떨어지면 관광객을 가장해 출국을 한다. 비록 이들이 본국에서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무장 전투 요원이기 때문에 정부의 감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조용히 움직여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대부분의 용병 조직의 성장이 제한되는 것이다.하지만 용병 조직이 대놓고 합법적인 영구 거점을 보유하게 된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블랙 드래곤이 시리아와 협력했을 당시 미국 CIA는 그 이유를 조사했는데, 조직이 시리아에서 너무 빨리 성장하는 걸 우려해 개입까지 시도했었다. 하지만 시리아는 블랙 드래곤과의 협력을 고수했고, 그 뒤에는 시리아 내 영향력 있는 반정부 인사 하미드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