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오 과장이 한미정 교수의 청첩장을 언급하는 순간, 김상곤의 머릿속이 ‘웅—’ 하고 울리며 터져버린 것 같았다.원래도 마음이 찔리던 그는 다급하게 말했다.“아, 알았어 알았어! 나중에 확인할게. 끊는다!”그는 서둘러 통화를 끊어버렸다.옆에 있던 윤우선이 곧바로 물었다.“한 교수? 무슨 한 교수?”이럴 때 김상곤이 평정심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노인대학 동료다’ 한마디로 넘겼을 상황이었다.하지만 김상곤은 그런 타입이 아니었다. 멘탈이 약하고, 급하면 바로 티가 나는 스타일이었다.윤우선이 그저 가볍게 한 번 질문을 했을 뿐인데, 이미 김상곤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그는 슬쩍 눈치를 보며 더듬거리듯 말했다.“아… 아무것도 아니야…”윤우선의 눈이 가늘어졌다.“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한 교수가 누구냐고 물었는데 ‘아무도 아니다’라는 건 무슨 말이야? 누구야? 청첩장은 또 뭐고? 왜 당신에게 보내?”그녀는 김상곤의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땀을 보자마자 확신했다.“김상곤, 왜 이렇게 긴장해? 나한테 숨기는 거 있지?”김상곤은 속이 타들어갔지만, 억지로 버텼다.“진짜 없어… 내가 너한테 뭘 숨겨…”윤우선은 눈을 떼지 않고 김상곤을 노려봤다. 하지만 김상곤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앞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윤우선이 차갑게 말했다.“김상곤, 너 얼굴에 다 써 있어. 뭔가 꾸미고 있는 거 확실해.”윤우선은 곧장 수납함을 열려고 손을 뻗었다.김상곤은 깜짝 놀랐다. 청첩장을 직접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한미정’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을 게 뻔했다. 그걸 윤우선이 보는 순간, 모든 게 끝장이었다!김상곤은 필사적으로 팔꿈치로 수납함을 눌러 윤우선이 못 열도록 막았다.하지만 그럴수록 윤우선의 의심은 더 커졌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김상곤, 경고하는데 지금 당장 팔 치워! 내가 직접 확인해야겠어! 안 그러면 오늘 가만히 안 놔둔다!!”김상곤은 식은땀을 흘리며 버텼
전날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에 뒤로 갈수록 기억이 흐릿해졌다. 집에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가물가물할 정도였고, 오 과장이 한미정의 결혼식 청첩장을 전달해줬다는 사실도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래서 김상곤은 별다른 생각 없이 핸들에 있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전화기 너머로 오 과장의 아부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부회장님, 저 오 과장입니다! 오늘 왜 협회 안 나오셨어요?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드신 거 아니십니까?”김상곤은 툴툴거리며 힘없이 말했다.“어제 좀 많이 마셨지… 아직도 머리가 아프다. 왜, 협회에 무슨 일 있어?”“아닙니다!” 오 과장이 재빨리 말했다.“혹시 몸이 안 좋으실까 봐 연락드린 거예요. 오늘 운전하시기 불편하시면 언제든 말씀만 주세요. 제가 바로 모시겠습니다!”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다시 덧붙였다.“아, 그리고요 부회장님! 저희 집사람이 한약 쪽을 좀 아는데, 숙취 풀어주는 탕약이랑 간에 좋은 처방이 있거든요. 부회장님처럼 술 자주 드시는 분은 간 관리가 중요합니다. 괜찮으시면 집에서 달여서 가져다드릴게요!”오 과장은 어젯밤 술자리에 함께하지는 않았지만, 김상곤과 협회장이 취한 채 나눈 대화를 차로 모시며 전부 들은 상태였다.둘은 술에 취해 거리낌 없이 속내를 털어놓았고, 형님 아우 하며 온갖 이야기를 쏟아냈다.그 대화 속에서 오 과장은 중요한 정보를 알아냈다.협회장이 승진을 추진 중이고, 김상곤이 차기 회장으로 유력하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협회장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받고 있으니 가능성은 상당히 높았다.게다가 어젯밤 김상곤을 집까지 데려다주면서, 그가 최고급 아파트인 청년재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기에 재력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서화협회는 어디까지나 취미 단체에 가까워, 회장을 뽑을 때 경력이나 실력보다 인맥과 재력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협회 운영비도 늘 빠듯하기 때문에, 돈 있는 사람이 회장을 맡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유리했다.그러니 당연 이런 상황에서 김상곤의 회장 취
다행히 두 사람의 말다툼은 서로 비꼬는 수준에서 그쳤고, 더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윤우선이 조금 더 우세했지만, 김상곤도 버틸 수 있는 정도였다.김상곤은 식사를 마치고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은 서방이 메시지 보냈어. 유나 비행기가 3시 도착이래. 2시에 나가자.”윤우선이 투덜거리듯 말했다.“뭘 그렇게 일찍 나가. 해외에서 오는 건데 입국 심사도 하고 시간 오래 걸려. 3시 반은 돼야 나올 거야. 나 좀 더 잘래. 2시 반에 나가.”윤우선은 말을 마치자마자 돌아서서 올라가 버렸다.“내 거 남은 것도 같이 치워.”김상곤은 속으로 불만이 가득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묵묵히 윤우선의 음식까지 정리해 쓰레기통에 넣었다.혼자 남은 김상곤은 소파에 앉았다. 술기운은 점점 가셨지만, 기분은 오히려 더 가라앉았다.어젯밤 술자리에서의 환대는 잠깐의 기쁨일 뿐이었다. 마음속에 두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다.김상곤은 한숨을 내쉬며 과거를 떠올렸다. 한미정이 막 한국에 돌아왔을 때, 윤우선이 사라졌던 그 시기. 공항에 나가 한미정을 마중 나가기도 했고, 같이 식사도 하고, 동창 모임도 가고, 학교도 함께 찾았다. 심지어 집까지 초대해 밥을 먹기도 했다.그때 두 사람의 분위기는 분명 남달랐다. 아이들만 없었더라면, 그날 주방은 전혀 다른 의미의 공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그 날의 기억이 떠오르자 김상곤은 무릎을 손등으로 두드리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속이 쓰린 듯한 표정이었다.2시 반이 되었을 때, 낮잠을 자고 내려온 윤우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깔끔하게 옷을 갈아입은 그녀는 김상곤을 보자마자 말했다.“당신, 아직도 준비 안 했어? 유나 데리러 가야지.”김상곤이 힘없이 말했다.“그냥 가면 되지 뭘 그렇게 꾸며.”윤우선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요즘 왜 이래? 완전 기운 빠진 사람처럼. 밖에서 이상한 짓이라도 하는 거 아냐?”김상곤이 바로 반박했다.“헛
가짜 비구니의 진짜 정체를 추적하는 일은 릴리가 마음 깊숙이 숨겨둔 생각이었다. 그래서 시후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나나코 씨가 그런 기회를 얻은 건, 그분에게도 복이지만 선비님께도 행운이겠죠. 선비님 곁에는 그동안 깨달음을 얻고 영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이번에 나나코 씨가 길을 열었으니, 시간이 지나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거예요.”시후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난 나나코가 뭘 해주길 기대하는 건 아니야. 그냥… 혼자 어두운 숲을 걷다가, 동반자가 한 명 생긴 느낌이랄까.”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낮게 중얼거렸다.“저도… 선비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어요.”말을 마친 릴리의 눈빛에 잠깐 쓸쓸함이 스쳤다.시후를 만나기 전까지, 릴리는 깨달음에 대해 어떤 기대도 품지 않았다. 예전에는 언젠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오시연을 죽이겠다는 야망을 더 이상 품지 않았다. 그저 주어진 긴 삶을 무사히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하지만 시후를 만난 이후, 마음 깊은 곳에서 은근한 기대가 피어나기 시작했다.다만 자신에게 그런 재능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영춘단조차 아무 변화도 가져다주지 못했으니, 이 생에서 깨달음을 얻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그래서일까, 마음 한켠이 더 허전해졌다.릴리는 감정을 숨기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선비님, 노르웨이 쪽 AI 모델 진행 상황은 어떠세요?”시후가 말했다.“하워드 회장이 그래픽카드랑 데이터센터 문제는 다 해결했어. 지금 헬레나가 엔비디아 최신 칩 관련해서 협의 중인데, 잘 되면 이번 모델은 업계 최고 성능으로 갈 가능성이 커.”릴리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모델이 완성되면 저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실 수 있나요? 계산해보고 싶은 게 좀 있어서요.”시후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당연하지. 가장 먼저 쓸 수 있게 해줄게.”릴리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유나가 돌아온다는 말을 듣고, 릴리의 마음에는 아주 미묘한 아쉬움이 스쳤다.앞으로 시후가 이곳에 오는 횟수는 분명 줄어들 것이고, 그렇다면 자연스레 둘이 만날 기회도 크게 줄어들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릴리는 그런 내색은 전혀 하지 않은 채, 평소처럼 담담하게 물었다.“선비님, 샹젤리 온천 쪽은 요즘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수련생들의 수련 속도는 만족스러우신가요?”시후는 차분히 답했다.“대부분은 정상적인 속도로 수련하고 있어.”그러다 문득 이토 나나코가 떠올라 말을 이었다.“아, 한 가지 아직 말을 못 한 게 있는데. 릴리는 나나코를 알지?”릴리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알죠. 선비님과 함께 하는 일본 여성 분 말씀하시는 거죠? 무슨 일 있으신가요?”시후가 말했다.“나나코가 며칠 전에 깨달음을 얻었어.”“깨달음이요?” 릴리는 잠시 멈칫했다가 물었다.“선비님께서 말씀하시는 깨달음이… 무술의 경지인가요, 아니면 영기를 말씀하시는 건가요?”무술은 진기를 다루는 단계이고, 영기는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진정한 수련의 영역이었다.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입문 단계에서는 모두 ‘깨달음을 얻는다’고 표현하는 공통점이 있다.시후는 담담하게 말했다.“나나코가 이미 영기를 다루기 시작했어.”릴리는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영기라니… 정말요?”시후는 확신하며 말했다.“사실이야.”릴리는 감탄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그 나이에 그런 재능이라니… 게다가 일본인이라는 점도 의외군요.”그리고 다시 물었다.“그 깨달음은 선비님께서 도와주신 건가요?”시후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관음사에 있었던 한 고승께서 계기를 만들어주셨다고 하던데. 우연한 인연으로 그분을 만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어.”“관음사의 고승…”릴리는 그 말을 듣자, 이전에 두 번 마주쳤던 그 ‘가짜 비구니’을 떠올렸다.순간 시후에게 그 사실을 말해줄까 고민했지만, 자
김상곤과 윤우선 같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 사는 일은, 시후에게는 이미 익숙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익숙해졌다고 해도, 막상 한복판에 들어가면 정신적으로 꽤 피곤했고, 심지어 몸까지 지칠 정도였다.그래서 시후에게는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집을 나왔지만, 막상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샹젤리 온천으로 가기엔 거리가 꽤 멀어, 왕복 시간을 생각하면 애매했다.잠시 고민하던 중, 문득 릴리가 떠올랐다. 시후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전화를 받은 릴리가 웃으며 말했다.“선비님, 점심시간에 웬일이십니까? 혹시 저 불러내서 밥 사주시려는 건 아니죠?”시후도 웃으며 답했다.“나도 지금 밥 먹을 데가 없어. 이렇게 된 김에 같이 점심이나 할까?”릴리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그럴 바엔 차라리 이쪽으로 오시죠. 날씨도 쌀쌀해져서, 마당에서 전골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선비님 오시면 식기 하나 더 놓고 재료 조금 더 준비하면 되니까요.”“좋아.” 시후가 바로 답했다.“마침 지난번에 빌린 차도 돌려줄 겸 가야겠어. 곧 도착해.”전화를 끊은 시후는, 별장에서 가져온 롤스로이스를 몰고 집을 나섰다.릴리의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재료를 내려놓고 나가려던 한숙현이 시후를 보고 인사를 건넸다.“은 선생님, 오셨습니까.”시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차 키를 건넸다.“집사님, 차는 입구 주차장에 세워뒀습니다. 키 받아주십시오.”한숙현이 말했다.“필요하시면 계속 사용하셔도 됩니다. 굳이 돌려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시후는 웃으며 답했다.“이렇게 비싼 차는 아직 익숙하지 않습니다. 너무 눈에 띄어서요.”한숙현은 더 말하지 않고 키를 받아들였다.“식사 준비는 다 마쳤습니다. 방해되지 않도록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시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감사합니다.”한숙현이 자리를 떠난 뒤, 시후는 마당을 둘러봤다. 작은 원목 식탁과 황화리 의자 두 개, 그리고 정갈하게 준비된 고
그렇게 말한 뒤 창재는 말을 마치자 이를 악물고 낮고 거친 목소리로 덧붙였다.“하지만 미국을 떠나기 전까지, 저는 놈들을 최대한 많이 데려가겠습니다. 한인타운에서 죽어간 친구들의 원한을 반드시 갚겠습니다!”이중열은 무언가 말하려다 끝내 입을 다물었다. 그런 뒤 그는 본능적으로 시후를 바라보았고, 시후가 결정을 내려주기를 기다렸다.시후는 창재를 똑바로 바라보며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창재 씨, 당신이 방아쇠를 당기면 선택지는 두 가지 뿐입니다. 첫 번째는, 내가 사람을 붙여 오늘 밤 바로 미국을 떠나게 해주는 것
김상곤은 시후가 위층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말로 다 할 수 없이 괴로웠다.그리고 다시 윤우선을 보니, 윤우선은 모든 걸 손에 넣은 사람처럼 활짝 웃고 있었고, 그 모습에 그는 더욱 살 맛이 나지 않았다.계단을 오르며 시후는 속으로 생각했다. 김상곤은 도대체 언제쯤이면 마음속의 망설임과 나약함을 깨뜨리고,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모든 준비를 마친 뒤, 밤이 되자 시후는 혼자 집을 나서 차를 몰고 공항으로 갈 생각이었다.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려오자, 김상곤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며 웃
시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조직이 거의 100명이나 되는데, 어떻게 저 다섯 놈이 한인타운에서 저렇게 활개를 치게 내버려둘 수 있죠?”그러자 데이빗은 얼굴을 들지 못한 채 부끄럽게 고개를 숙이며 설명했다. “은 선생님, 저 다섯 명의 뒤에는 버닝 엔젤이 있고, 그 버닝 엔젤의 뒤에는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이 있으며, 그들은 뉴욕에서 크고 작은 조직 수십 개를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인원만 해도 수천 명에 달해 정면으로 맞설 수가 없지요...”시후는 냉정하게 되물었다. “수천 명이면 뭐
“아직 말하지 않았습니다.”이중열이 말했다.“이번엔 일정이 너무 급해서 일부러 알리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시간을 못 내서 못 보게 되면, 괜히 말해 놓고 더 실망시킬까 봐서요.”시후는 웃으며 말했다.“그렇다면 굳이 전화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우리가 직접 가면 깜짝 놀라게 할 수도 있겠네요.”“네 그렇지요!”이중열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표정에는 기대감이 묻어나 있었고, 그는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도련님께 숨길 건 없습니다. 저는 창재를 늘 제 아들처럼 여겨 왔습니다. 안 본 지도 꽤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