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안 돼요!” 이토 나나코가 말했다. “시후 군이 꼭 아버지와 다나카 집사님을 함께 데려오라고 했어요!”“그래도 난 안 갈 거다.” 이토 유키히코는 언짢은 얼굴로 말했다. “난 집 밖을 나간 지도 이미 너무 오래됐고, 이제 외국까지 나가서 망신을 당하고 싶지 않다. 하물며 미국이라니...”이토 나나코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시후 군의 뜻이에요.”이토 유키히코는 약간 성질을 내며 말했다. “그를 좋아하는 건 너지, 내가 아니잖아! 그가 뭐라든, 너 혼자 가라. 난 여기 있을 거야. 어디에도 안 갈 거라고!”이토 나나코는 화가 난 듯했고, 심지어 단호함과 꾸짖는 기색까지 담긴 어조로 말했다. “아버지! 시후 군이 우리 이토 그룹에 어떤 은혜를 베풀었는지 벌써 잊으신 거예요?”“잊진 않았지!” 이토 유키히코는 심술궂게 말했다. “하지만 너도 잊지 마라. 그도 내 돈을 꽤 가져갔다는 걸! 그 많은 돈을 그냥 가져가고 나에게 돌려주지도 않았잖아! 하지만 내가 그 일을 다시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있었더냐? 없잖아!”그러자 이토 나나코는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지, 시후 군이 이렇게 급히 뉴욕으로 오라고 하는 건 분명 중대한 일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그러니 누가 봐도 우리는 미국으로 가지 않을 수 없어요.”이토 유키히코는 말했다. “그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너 혼자 가서 이토 그룹의 대표로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면 되지. 다리도 없는 내가 가서 뭘 하겠어? 도움이 되기는커녕 민폐만 될 거다.”“아버지!” 이토 나나코가 말했다. “만약 시후 군이 아빠를 부르는 이유가, 도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빠를 돕고 싶어서 그런 거라면요?”“날 도와?” 이토 유키히코는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지금 은 선생님에게 바라는 건 단 두 가지다. 첫째, 제발 빨리 너와 결혼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는 것. 나는 하루빨리 너의 아름다운 결혼식을 보고 싶거든. 둘째, 혹시라도 무슨 신통한 능력으로 내 두 다리를 다시 자라게 해줄 수 있다면, 나
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할 때까지도, 이토 유키히코의 기분은 여전히 좋지 않아 보였다.탑승 전에, 이토 나나코는 아버지 이토 유키히코가 몬츠키 하오리 하카마를 입고 의족에 의지해 서 있는 모습을 특별히 한 장 찍어두었고, 사진을 찍자마자 바로 사람들에게 그를 헬기에 태워 달라고 했다.비행기가 이륙한 지 30분쯤 지나 안정적인 비행에 들어서자, 이토 나나코는 고모와 함께 서둘러 싸 들고 온 음식들과 생일 케이크를 준비해, 공중에서 이토 유키히코의 50살 회갑 생일 파티를 열었다.이토 나나코가 촛불을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다 부른 뒤,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 어서 촛불 끄세요!” 그 때, 나나코는 알아채지 못했다. 자신이 아버지를 부르는 호칭이 어느새 ‘아빠’에서 ‘아버지’로 바뀌어 있었고, 심지어 몇 차례는 훈계하듯 살짝 꾸짖는 어투까지 섞여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오히려 이토 유키히코의 고집스러운 자존심을 누그러뜨렸다. 귀여운 딸에게 꾸중을 듣고 나니, 그의 거친 성질은 사라지고 대신 그의 얼굴에는 아이처럼 억울한 표정이 떠올랐다.이토 나나코가 촛불을 끄라고 하자, 이토 유키히코는 여전히 기분이 풀리지 않아,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며 코웃음을 쳤다. “안 끌 거다! 50살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생일을... 이런 식으로 비행기에 실려서 축하받는 건 너무 성의 없잖아!”이토 나나코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버지! 50번째 생신이 중요하니까 일부러 두 번이나 챙기는 거잖아요! 혹시 시후 군이 우리를 부른 것도, 오토상의 생신을 축하해주려고 그런 걸 지도 모르죠! 만약 지금 축하가 마음에 안 드시면, 비행기에서 내린 뒤 제가 다시 성대하게 파티를 한 번 더 열어 드릴게요!”이토 유키히코는 여전히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거짓말하지 마라! 지금 벌써 저녁 7시가 넘었어. 비행기에서 내릴 때쯤이면 오늘이 다 지나 버릴 텐데. 무슨 생신 파티를 두 번이나 해?”이토 나나코는 진지하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시후가 말했다. “그럼 이따 뵙죠.”“네, 은 선생님. 이따 뵙겠습니다.”15분 후, 배유현이 탄 헬리콥터가 버킹엄 호텔 옥상에 착륙했다. 시후는 소이연, 안세진, 이화룡과 함께 헬기에 올랐다.30분 후, 헬리콥터는 뉴욕 교외의 외진 지역에 위치한 한 건물 상공에 도착했다. 이곳은 바로 페이셔스 그룹의 의료과학 기술센터였다. 이 건물은 반경 2km 내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건물로, 25층 규모에 보안도 매우 철저했다.헬기에서 내리자, 배유현이 앞장서며 길을 안내했고, 걸어가며 시후에게 설명했다. “은 선생님, 이곳은 예전에 할아버지께서 자금을 투자해 만든 의료과학 기술센터입니다. 주요 목적은 고급 치료기술과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와 실험이에요. 현재는 암 분야에서 가장 선진적인 양성자 치료 시스템, 세포 면역요법 등을 포함한 치료 기술들이 모두 갖춰져 있으며, 전 세계에서도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뭔가 떠오른 듯 말했다. “아, 참! 은 선생님, 혹시 메이오 클리닉에 대해 들어 보신 적 있나요? 세계 최고의 암 전문 병원으로 불리는 곳이죠.”시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들어봤죠. 메이오는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으니 모르는 사람이 드물 겁니다.”그러자 배유현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곳의 암 진료팀의 구성원 중 60% 이상이 메이오에서 온 인재들이에요. 메이오의 최고 전문가들이 이곳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고, 심지어 일부 최첨단 연구 분야에서는 우리가 메이오보다 앞서 있는 부분도 있어요. 왜냐하면 메이오는 수익성을 고려해야 하지만,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이어 배유현은 이렇게 덧붙였다. “게다가 이곳에는 미국 내 최고의 장기 이식 센터, 최고의 암 진단 및 치료팀, 최정상 급의 심뇌혈관 및 노화방지 분야의 연구팀도 있어요. 그리고 우리의 냉동센터는 지하 5층에 위치하고 있는데, 최대 300년 동안 운영 가능한 구조로 설계되었죠. 할아버지께서는 생전에, 세상을 떠나면 곧장 이곳에
제임스 스미스는 시후를 보자 몹시 놀랐지만, 동시에 절망 속에서 생명의 끈을 붙잡은 사람처럼 기뻐하며 감격했다.시후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스미스 씨, 당신이 여기에 왜 있는 겁니까?”스미스는 무의식적으로 공손히 대답했다. “은 선생님, 저는 FDA에서 진행 중인 몇 가지 임상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그 프로젝트가 현재 페이셔스 그룹의 의료과학기술센터와 협력하고 있어서 오늘 일부 정기 업무 차 이곳을 방문했습니다...” 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스미스는 무릎을 꿇으며 바닥에 엎드렸고, 눈물을 멈추지 못한 채 말했다.“은 선생님... 지금까지 정말 당신을 간절하게 다시 뵙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기회가 없었어요. 한국에도 여러 번 찾아갔지만, 구현제약 쪽 사람들도, 저 뒤에 계신 이화룡 씨도 저를 은시후 씨와 연결해주지 않았거든요... 심지어 이화룡 씨는 몇 번이나 소개비를 받고도, 계속 차일피일 만남을 미루기만 하고 전혀 도와주지 않았습니다...”시후 뒤편에 서 있던 이화룡은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으며 말했다. “이 양키야, 네놈이 은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 한 건, 속셈이 뻔했잖아. 내가 모를 줄 아나? 네 놈들의 목적은 구현재조환을 사들여서 미국에 가져간 뒤 역설계 하려는 것이었잖아! 내가 분명히 말해두지만, 네놈들이 준 소개비? 난 한 푼도 안 돌려줄 거다! 할 수 있으면 고소해봐!”스미스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 그제야 이화룡이 바로 시후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는 허둥지둥 시후에게 해명하기 시작했다. “은 선생님... 저는 절대 구현재조환을 역설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저는 FDA 책임자로서, 진심으로 구현재조환을 미국 시장에 도입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 아들의 병도 있지 않습니까. 예전에 겨우 상자를 얻었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백악관의 임원들에게 거의 다 빼앗기다시피 했습니다. 결국 정말 제 아들을 위해 쓸 수 있었던 구현재조환은 극히 소량이었어요. 그
예를 들어, J.K. 롤링이 쓴 해리포터라는 소설을 생각해보자. 이러한 소설이 아무리 돈을 잘 벌어들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강대국들에게는 전략적인 가치는 가져다 줄 수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백악관이나 중국 정부는 이러한 책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고, 저작권을 침해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국가나 기업들이 전략적 가치가 있는 특허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들은 가장 먼저 그 기술을 손에 넣을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한다.구현재조환의 놀라운 점은, 환자가 어떤 종류의 암을 앓고 있든, 어떤 병에 걸려 있는지도 상관없이 심지어 온몸에 질병이 전이가 되어 장기 기능이 망가지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암 말기 환자라 할지라도, 이 약을 먹기만 하면 즉각 눈에 띄는 호전을 보인다는 것이었다!그렇기 때문에 이 약을 단순히 돈벌이용으로 쓴다면, 전 세계에서 엄청난 돈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암에 걸리기만 하면 자신의 전 재산을 다 털어서라도 구현제약에 갖다 바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약을 전략 자산으로 본다면, 단지 돈을 벌 수 있는 차원을 넘어, 다른 나라를 상대로 협상 카드로 쓸 수도 있고, 더 많은 양보를 이끌어낼 수 있는 협박 수단이 될 수도 있다.그래서 백악관이 처음 한 생각은 바로 이렇게 좋은 것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었다.스미스는 시후의 불쾌한 표정을 보고는, 울먹이며 말했다. “은 선생님... 이 일은 이미 제 능력 밖입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FDA 책임자로서, 약물 승인과 감독만을 맡고 있지 군이나 CIA가 요원을 파견하는 것의 여부까지는 제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그러면서 스미스는 애절한 눈빛으로 시후를 바라보며 간청했다. “은 선생님, 저는 지금 단지 암에 걸린 제 아들의 아버지로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제발... 제 아들이 살 수 있도록 구현재조환을 조금만 더 팔아 주십시오...”시후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당신에게
게다가 구현재조환은 이미 구현제약에 큰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에서 구현재조환의 임무는 성공적으로 완수된 셈이었다.스미스는 시후의 말을 듣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울먹이며 말했다. “은 선생님... 제가 듣기로는 구현제약이 현재 한국 내에서 가정 형편이 어려운 말기 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무료 집중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제발 제 아들에게도 그 기회를 한 번만 주십시오... 제 아들 지미는 너무 불쌍한 아이입니다... 저는 그 아이가 더 이상 암의 고통을 견디는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그러자 시후는 엄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도 말했듯이, 구현제약의 무료 치료 프로그램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말기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가장 중요한 조건이 바로 '경제적 어려움'이죠. 그런데 당신과 당신 아들은 그 기준에 전혀 부합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활동은 엄밀히 말해 한국 내에 있는 국내 환자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요. 따라서 한국 내에도 이 혜택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기준에 전혀 맞지 않는 외국인에게 이런 소중한 기회를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미안하지만, 현재 저는 도와드릴 방법이 없습니다.”스미스는 울면서 말했다. “은 선생님... 하지만 도와주지 않으신다면, 제 아들은 곧 죽게 될 겁니다... 겨우 12살짜리 아이가 암에 목숨을 잃는 걸 그냥 지켜보실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말했다.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한 번 논하자면, 매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 중에는 당신 아들과 비슷한 나이거나, 혹은 더 어린 아이들도 많죠. 하지만 우리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치료해줄 수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니 스미스 씨, 이런 감성팔이식 압박은 저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호소를 하기 전에 한 번 생각해 보시죠, 왜 미국에 있는 화이자나 노바티스 같은 글로벌 제약사들에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
시후의 말을 들은 스미스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미국 FDA의 수장이며, 미국 사회에서도 명실상부한 상류층이자 최고 수준의 엘리트 집단에 속해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시후는 너무나도 가볍게 현재 직책을 버리고 어렵게 이룬 모든 것들을 내려놓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건 스미스에게 있어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그가 한동안 멍하니 넋을 놓고 있자, 시후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냥 내 개인적인 조언일 뿐입니다. 천천히 고민해 보세요. 저는 볼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 말을 마친 뒤 그는 곁에 있던 배유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배유현 씨, 갑시다.”배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손하게 손짓했다. “은 선생님, 그럼 이쪽으로 가시죠.”스미스는 눈앞에서 시후와 배유현이 엘리베이터에 타고, 문이 천천히 닫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곁에 있던 동료가 다가와 스미스를 부축하려 했지만, 그는 손을 저으며 거절했다. 그러고는 무언가 결심한 듯, 휴대폰을 꺼내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 즉 자신의 직속 상관에게 전화를 걸었다.미국 행정부 구조상, FDA는 보건복지부의 산하 기관이며 FDA의 인사권은 보건복지부가 갖고 있었다.전화를 받자 보건복지부 장관이 말했다. “어이, 스미스? 무슨 일인가?”그러자 스미스는 진지하게 말했다. “장관님, 제가 정중하게 사직 의사를 전하려 연락 드렸습니다. 앞으로 저는 FDA의 어떤 업무도 맡지 않겠습니다.”장관은 매우 놀라며 되물었다. “스미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내 기억이 맞다면, 대학 시절부터 자네는 FDA를 이끄는 게 꿈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이제 막 2년 정도 일했는데 벌써 그만두겠다고?”스미스는 단호히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미 결심했습니다. FDA 직책을 내려놓고, 지미를 데리고 한국으로 갈 겁니다.”“한국으로?” 장관이 급히 물었다. “혹시 지미를 데리고 구현제약을 찾아가려는 건가?”스미스는 잠시 망설이
시후는 배유현의 안내를 받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1층으로 내려온 뒤, 1층의 센터를 지나 특수 엘리베이터로 갈아타고 지하 5층의 냉동센터로 향했다.이 냉동센터는 본래 배원중이 자신의 시신을 보존하기 위해 마련한 장소로, 사용 연한은 무려 300년으로 설계되었으며, 그 보안 수준은 마치 대통령이 세계 종말 대비 계획에 포함된 방어 시설에 버금갈 정도였다. 비록 지하 5층이라 하지만, 실제 깊이는 거의 지하 100미터에 달했고, 전략적 물자도 완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설령 미국 본토가 핵공격을 받더라도 무사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이 냉동센터는 설계상 최대 100구의 시신을 보관할 수 있었지만, 현재 이곳에 진짜로 냉동된 인물은 실험용 시신들을 제외하면 단 한 명, 바로 제이크 한 뿐이었다.시후는 냉동센터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SF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광경에 압도되고 말았다. 이 공간 전체는 곳곳에 각종 장비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공기·산소·액체질소 등을 전달하는 굵은 배관들이 거미줄처럼 가득히 얽혀 있었다.그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시각적 충격은,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수십 개의 거대한 스테인리스 탱크들이라고 할 것이다. 이 탱크는 하나하나가 최소 4~5미터는 되어 보였고,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면 인간이 한없이 왜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 거대한 탱크들은 바로 인간을 냉동 보존하기 위한 냉동 캡슐이었다.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배유현은 이미 이곳의 모든 연구원과 직원들을 철수시킨 상태였기에, 지금 이 공간에는 시후와 시후의 동행자들 외엔 아무도 없었다. 지극히 한적한 분위기와 더불어, 이곳이 본래 초저온 시체 보관소이기에 더욱 섬뜩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이때, 배유현은 시후의 곁에서 설명했다. “은 선생님, 현재 인체 냉동 기술 기준으로는 사람이 사망한 뒤 약 50시간에 걸쳐 서서히 온도를 낮추며 냉각을 진행하고, 그 후에 냉동 캡슐에 넣어야 세포가 급속 냉각 중 얼음 결정이 생겨 손상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제이크 한을 오래도록 늘 괴롭히던 가족 문제는 이제 배유현의 도움 덕분에 완벽하게 해결되었다. 제이크 한이 가지고 있던 '가정에 대한 책임감'과 '헌신적인 정신'은 그의 아내와 딸이 더 이상 그의 갑작스러운 잠적에 분노하지 않게 만들었고, 동시에 그동안 아내와 딸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제이크 한에 대한 ‘무능한 가장’이라는 인식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이로 인해, 제이크 한의 이미지는 단숨에 가족에게 있어 전례 없는 수준까지 올라서게 된 것이다.아내와 딸은 붉어진 눈으로 제이크 한을 둘러싸고 눈물을 흘렸다. 제이크 한은 벅찬 감동과 동시에 깊은 미안함을 느끼며 배유현을 향해 감사의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안산은 배유현을 더욱 깊이 신임하게 되었다. 그는 다른 이들의 관심이 모두 제이크 한 가족에게 쏠린 틈을 타, 안충주와 안태풍을 한쪽으로 불러 조용히 말했다. “배유현 회장은 분명히 앞으로 큰일을 해낼 인물이다... 그러니 우리 Samson 그룹은 그녀와의 협력을 반드시 강화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초반에는 우리가 그녀에게 더 많은 지원과 도움을 주는 우산이 되어줘야 한다. 훗날 분명히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거다!”두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두 사람은 배유현이 비록 아직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지만, 문제를 처리하고 상황을 통제하는 능력은 이미 노련한 경지에 이르렀고, 이 나이에 벌써 페이셔스 그룹을 이끄는 회장이 된 것을 보면 장래가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이때 안산은 못내 아쉬운 듯 말했다. “이렇게 뛰어난 아가씨가 있나... 다만 안타까운 건 우리 Samson 그룹에 저 아가씨와 맞는 나이 또래의 사내 녀석들이 없다는 거야... 만약 두 집안이 사돈을 맺을 수 있다면, 한국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전설적인 인연이 될 텐데 말이지...”안충주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생각해보면, 우리 집은 여자아이들이 많고, 남자애들은 아직 나이가 너무 어리니 딱 맞는 짝이 없긴 하네요.”그러자 안태풍이 나지막이 말했
배유현은 덤덤하게 말했다. “사모님 눈엔 이 1천만 달러가 엄청나게 클 수도 있지만, 제 입장에서는 이 금액은 제가 페이셔스 그룹을 대표해 피해자들에게 배상한 금액에 비해 적은 금액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사실 굉장히 위험한 일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어서 배유현은 덧붙였다. “게다가 배호영의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죠... 저희 페이셔스 그룹은 피해자들에게 최대한 많은 보상하기 위해 큰 지출을 했습니다. 그러니 이 수표는 정말 새 발의 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유현은 이렇게 말하며 박은미와 그녀의 뒤에 있는 쥴리 한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사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여러분이 제이크 한 경감님께서 사전에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다고 해서 너무 원망하실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에게 맡긴 일은 정말 복잡하고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에요. 작은 실수 하나에도 목숨을 잃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제이크 한 경감님은 원래 은퇴를 하신 뒤 노후를 조용히 보내시려던 분입니다. 굳이 이런 위험한 일을 감수하실 이유가 없었죠. 그런데 이 1천만 달러의 보수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 위험한 의뢰를 맡기로 결심하신 거예요. 그리고 경감남이 이 일을 맡기로 결정하신 건 단지 사건을 해결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순전히 따님의 배에 있는 아기를 위해서였습니다.”쥴리 한과 박은미는 배유현의 말을 듣고 할말을 잃은 채 그저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배유현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이크 한 경감님은 이번에 정말 목숨을 걸고 많은 위험을 감수하셨어요. 고용주인 저조차도 그의 용기에 감탄했고, 가족을 향한 그 책임감에 깊이 감동하여 존경을 표할 정도니까요. 경감님은 이 보상금을 자신의 목숨과 맞바꿨습니다. 그 이유는 미래의 외손자나 외손녀가 태어나기 전 평생 부족함 없는 삶을 보장받을 수 있기를 바라셨기 때문이죠. 그 아이가 남들보다 훨씬 나은 출발선에서 인생을 시작할 수 있고, 태어나는
제이크 한은 평소 온화하던 아내가 이렇게까지 격하게 반응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예전에도 아내가 불만을 토로하며 자신과 다투는 일은 있었지만, 그건 기껏해야 투덜대거나 불평을 하는 정도였고 며칠 냉전을 하는 정도였지, 이렇게 울고불고 소리를 지르며 자신에게 손찌검까지 한 건 처음이었다.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아내가 이렇게까지 무너져 통제 불능 상태가 된 것은 전적으로 자신을 걱정해서 라는 것을. 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제이크 한은 마음속으로 미안함과 해명하고 싶은 간절함 뿐이었다. 그래서 서둘러 배유현이 알려준 변명거리를 꺼내 들 작정이었다. “여보, 나... 내가 다 사정이 있어서 그랬던 거야...”“사정? 무슨 사정?” 박은미는 분노 가득한 얼굴로 반문했다. “내가 당신을 모를 줄 알아? 당신 눈엔 언제나 일이 우리 모녀보다 우선이었잖아! 뉴욕에서 사람 하나만 죽기만 해도 정신이 벌써 저 멀리 가 있었지! 우리에게는 신경 쓸 여유 조차도 없었고!?”그 말에 제이크 한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는 본래 말수가 적고, 무엇보다 거짓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러자 아내의 거센 몰아붙임 앞에 당황했고, 대응할 기회를 잃어버렸다.때때로 일의 성패는 얼마나 침착하게 평정심과 리듬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기도 하다. 그것은 마치 연설과도 같은데, 같은 원고라도 자신만의 리듬으로 관중을 이끌 수 있다면 이것은 성공이고, 상대에게 휘말려 리듬이 깨져 버리면 실패는 물론 부끄러운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제이크 한이 자신의 리듬을 잃은 그 순간, 옆에 있던 배유현이 재빠르게 나섰다. “안녕하세요, 혹시 제이크 한 경감의 사모님이신가요?”박은미는 곧바로 그녀를 흘겨보며 대답했다. “곧 아니게 될 사람이긴 하네요!”배유현은 잔잔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자기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뉴욕의 페이셔스 그룹 회장, 배유현이라고 합니다...”그 말을 들은 박은미는 놀란 눈으로 배유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바로, 돈만 투자하고 경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어쨌든 돈은 지불했기에, 원하는 대로 어떻게 하든 알아서 하면 되는 것이다. 엔젤투자자와 같은 존재는 할 일이 너무 많기에 사소한 일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따라서 돈이 필요하면 이야기하고, 별일이 없으면 귀찮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바로 박은미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자, 가장 안타깝다고 여기는 지점이었다. 그런데 안충주가 이번 실종 사태가 긴급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자, 그녀는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서 그녀는 참다못해 안충주에게 말했다. “충주 씨, 나 진심으로 말할게요. 내가 제이크 한 이 인간에게 아직 미련이 좀 있어서 그렇지, 아니었으면 벌써 사실상 별거 중이라는 이유로 미국 법원에 이혼 소송을 냈을 거예요! 사실 미국에서는 이혼하는 것이 딱히 어렵지 않잖아요! 그리고 우린 이미 몇 년째 따로 살고 있기도 하고, 어느 주에서든 이혼 소송은 내기만 하면 바로 되는 거니까!”그녀는 손수건을 꺼내 코를 풀고는, 체념한 듯한 말투로 이어갔다. “됐어요. 더는 나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들지 않고 싶어요. 살아 있기만 하면 됐고, 이혼은 반드시 하겠어요! 휴스턴으로 돌아가자마자 법원에 이혼 소송을 제기할 것이고, 간소화된 절차라면 일주일 안에 소송은 끝날 거예요! 이혼을 안 하면 내가 인간이 아니지!”안충주는 그녀를 엘리베이터 안으로 데려가며, 애써 웃으며 달랬다. “제수씨, 심정은 백 번 이해합니다. 하지만 너무 충동적으로 결정하지 마세요. 제이크도 나름 고심 끝에 그런 선택을 했을지도 몰라요. 제수씨도 아시잖아요, 제이크는 평생 마음에 두고 사는 게 두 가지밖에 없다는 걸요. 하나는 일, 다른 하나는 가족이라는 걸 말입니다. 다만 오랜 세월 자신의 일을 너무 진지하게 해서 그렇지요. 제이크의 경력이 워낙 화려하기에, 때로는 그 역할에 깊이 빠져서 나올 수 없었을 수도 있어요. 그런 점은 조금만 제수씨가 이해해 주셔
Samson 그룹에서 점심 식사가 진행된 후, 이토 그룹 일가와 하영수가 아직도 태평양 상공을 비행 중일 때, 제이크 한의 아내와 딸, 그리고 사위는 드디어 뉴욕 JFK 공항에 도착했다. Samson 그룹의 헬기는 이미 공항에서 오랫동안 대기하고 있었고, 그룹의 조율 덕분에 원래 제트브릿지에 연결되어야 할 항공편은 임시로 외곽 주기장에 세워졌다. 세 사람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그들은 대기하고 있던 Samson 그룹 직원들에 의해 곧장 근처에 있는 헬기로 안내되었다.한편, 제이크 한은 AB 빌딩에서 초조한 듯 계속해서 실내를 서성이며 손을 비비고 있었다. 그는 곧 가족들을 마주할 순간에 말실수를 하기라도 할까 봐 배유현이 자신에게 가르쳐준 설득 시나리오를 머릿속에서 반복해서 연습하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배유현은 그를 안심시키듯 말했다. “제이크 한 경감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만약 너무 긴장해서 말이 잘 안 나오시면, 제가 대신해서 사모님께 설명드릴 수 있으니까요.”안충주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 쳤다. “그래 맞아, 긴장되면 괜히 어설프게 말을 하려고 하는 것보다 차라리 조용히 있는 게 나아. 배유현 회장님이 준비한 설명은 아주 완벽하니까 말이야. 그러니 실수만 안 하면, 오늘은 무조건 잘 넘어갈 수 있어.”제이크 한은 고개를 연달아 끄덕이며 감격에 찬 눈빛으로 배유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조금 있다가 가족들이 도착하면... 배유현 회장님, 많이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10분 후, 헬기 한 대가 빌딩 옥상에 착륙했고 안충주는 직접 나가 사람들을 마중하러 나갔다.그 모습을 보자마자 박은미는 초조한 얼굴로 그에게 다가와 다급히 물었다. “충주 씨, 도대체 남편이 어디 있다는 거예요? 지금 어디에 있어요? 그에게 무슨 일 생긴 건 아니죠?”안충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제수씨, 제이크는 무사해요. 정말 아무 일도 없습니다! 자세한 건 안으로 들어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박은미는 안심하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게다가 딸은 지금 임신 중이었는데도, 자신의 행방을 찾기 위해 함께 다니고 있는 듯했다.안산은 제이크 한이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것을 보자 재빨리 말했다. “제이크 한 이 친구야, 큰 고비를 넘기고 살아난 사람에겐 반드시 좋은 일이 따라오는 법이야. 지금은 기뻐해야 할 때지, 울 때가 아니라네!” 그렇게 말한 후 그는 곧장 배유현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배유현 회장, 조금 전 그 해결책은 정말 완벽 했어요. 수표는 배 회장이 작성했지만, 돈은 어디까지나 우리 Samson 그룹이 낼 겁니다. 이렇게 큰 도움을 주셨는데, 더는 부담을 드릴 순 없지요.”배유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럼 회장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안산은 다시 제이크 한을 향해 말했다. “제이크, 그럼 충주에게 부탁해서 자네 아내와 딸을 이쪽으로 데려오도록 해. 마침 배유현 회장과 함께 점심 한 끼 하면서 기다리면, 식사 끝날 즈음엔 도착해 있을 거야. 그러면 세 식구가 다시 만날 수 있겠지!”제이크 한은 눈물을 닦으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안산은 다시 배유현에게 말했다. “배유현 회장, 식사 후에 조금만 더 시간 괜찮겠어요? 조금 전 말한 계획은 빈틈이 전혀 없어서. 만약 제이크의 아내와 딸에게 직접 설명을 해준다면 설득력도 배가 될 것 같은데... 어떠십니까?”그러자 배유현은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네 괜찮습니다, 회장님. 저도 오후에 특별한 일정이 없습니다.”“좋습니다!” 안산은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정말 기쁜 날이군! 제이크 한 이 친구가 죽음을 넘기고 살아난 것도 그렇고, 우리가 직접 그의 가족들이 만나는 것을 지켜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야! 아주 경사가 겹겹이 겹쳤구먼! 충주야, 이건 영상으로 꼭 남겨둬야 한다. 혹시라도 내일 내가 까먹을 수도 있으니까, 다시 보여줘야 하니!”안충주는 고민할 틈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아버지. 저희 다 같이 휴대폰을 켜놓고 동영상 촬영을 해
“그래 알겠어.” 안충주는 흔쾌히 대답하며 제이크 한에게 물었다. “그럼 제수씨가 아직 뉴욕에 계신다고 할 때, 만약 나에게 자네 소식을 아는지 물어보면 어떻게 말해줄까? 있는 그대로 말할까, 아니면 자네가 깜짝 등장할 수 있도록 선의의 거짓말을 해줄까?”제이크 한은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혹시 나에 대해 물어보면, 자네가 단서를 찾았다고만 말해줘. 상세한 이야기는 직접 만나서 말하고 싶다고만 전해주고, 그럼 그 자리에서 내가 직접 깜짝 선물처럼 나타나는 것이 좋겠어.”“알겠어.” 안충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휴대폰을 꺼내, 제이크 한의 아내 박은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었고, 스피커 너머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충주 씨, 제 남편 소식을 들은 게 있으세요?!”안충주는 잠시 멈칫했지만, 일부러 차분하게 말했다. “제수씨, 단서를 조금 찾았어요. 혹시 아직 뉴욕에 계신 겁니까? 만나서 직접 말씀드리고 싶어서요.”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박은미는 놀라움에 목소리가 떨려왔다. “정말이에요?! 어떤 단서요? 지금은 워싱턴에 있어요. 제 대학 동창 중 한 명이 여기에 인맥이 좀 있어서 도움을 청하러 왔거든요. 곧 뉴욕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어요. 비행기 출발까지는 30분 남았고, 1시간 40분 후엔 뉴욕에 도착할 거예요!”“그렇다면, 항공편 번호만 보내주세요. 제가 공항에 사람을 보내서 픽업하겠습니다. 만나서 얘기하시죠.”그러자 박은미는 살짝 불안한 듯 물었다. “충주 씨, 솔직히 말해주세요... 우리 남편...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죠?” 안충주는 황급히 답했다. “아닙니다 제수씨! 그건 절대 아니고요, 저를 믿으세요. 제이크 한 그 친구와 관련된 좋은 소식이에요. 항공편 번호만 알려주시면, 나머지는 걱정 말고 오시면 됩니다.”박은미는 감격하여 목이 메인 듯 말했다. “아 정말 다행이네요...” 그리고 그녀는 곁에 있는 듯한 사람에게 말했다. “쥴리, 충주 삼촌이 전화를 주셨네. 네 아빠에 대한 좋은 소식이
제이크 한은 참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회장님, 저는 단 한 번도, 그때 제가 죽을 뻔했던 일이 Samson 그룹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그는 다시 이어 말했다. “당시 저는 그냥 우연히 회장님과 함께 나들이 삼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했을 뿐이고, 모든 건 제가 선택한 일이었으니까요. 갑작스러운 공격을 당한 것도 제 불운 탓이지, 어떻게 봐도 Samson 그룹에 제가 뭔가 공헌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날 저는 죽을 뻔하긴 했지만, Samson 그룹을 위해 실질적으로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무장 괴한들 앞에서 저는 아무런 대응도 못 하고 그대로 총알을 맞고 쓰러졌을 뿐이니, 기껏해야 총알받이 정도였을까요...”사실, 제이크 한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은 진심이 남아 있었다. 그는 자신이 Samson 그룹을 위해 뭔가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을 살려준 것은 Samson 그룹의 외손자, 시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시후 덕분에 자신은 다시 살아날 수 있었고,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시후에게 목숨을 빚지게 된 상황에서 Samson 그룹의 돈을 받는다는 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그 때 안산이 얼굴을 단호하게 말했다. “왜? 총알받이가 된 건 도움이 아닌가? 자네가 총알받이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건 우리 Samson 그룹이 맞을 총알들을 대신 맞고 쓰러진 거 아니겠나! 내가 좀 직설적으로 말해볼까? 자네 말대로라면, 예전에 우리 나라를 지키려다 적군들의 총에 맞아 돌아가신 분들은 다 헛되이 죽은 셈인가? 그게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야?!”“저... 그건......” 제이크 한은 할 말을 잃었다. 분명, 안산의 논리는 제이크 한 자신보다 훨씬 논리적이었기 때문이다.그때 안충주가 옆에서 덧붙였다. “이건 자네 혼자만의 일이 아니야. 집안의 혈통이 이어질 수 있는 문제고, 나아가 사회 계층을 바꾸는 문제이기도 해. 그리고 자네도
배유현이 자신에게 1천만 달러짜리 수표를 주겠다는 말에, 제이크 한은 본능적으로 손사래를 치며 당황한 채로 급히 말했다. “배유현 회장님, 저를 이렇게까지 도와주신 것도 모자라 돈까지 주신다니, 그건 절대 안 됩니다...”그러자 옆에 있던 안산 회장은 무릎을 치며 격양된 목소리로 외쳤다. “배유현 회장의 이 방법은 정말 기가 막히는군요! 빈틈이 없어! 완벽해!” 그러고는 제이크 한을 향해 손가락을 들어 말했다. “자네, 돈 걱정은 할 필요 없어. 배유현 회장이 자네에게 이 돈을 주는 이유는, 자네가 가족들 앞에서 이번 일을 잘 설명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가 아니겠나. 그 덕분에 자네의 아내와 딸도 자네를 원망하기보다는, 자네가 얼마나 그들을 소중히 여기는지 느낄 수 있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모든 갈등도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고!” 그는 말을 이으며 덧붙였다. “하지만 자네의 말도 일리가 있기는 하네. 배유현 회장이 자네 뿐만 아니라 우리 Samson 그룹까지 도와줬으니, 지금 이런 상황에서 배유현 회장에게 돈을 지불하라고 할 수는 없지. 그러니 이 돈은 내가 내도록 하겠네!”제이크 한은 급히 말했다. “회장님... 그건 더더욱 안 됩니다! 저는 회장님의 돈도 받을 수 없어요! 게다가, 제가 수입이 많지는 않지만, 가족 생계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제 아내와 딸도 돈을 크게 밝히지 않는 성격이라...”안산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누가 자네 아내랑 딸이 돈을 밝힌다고 했나? 이 돈은 그저 자네가 가족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상징일 뿐이야. 그러니 수표를 들고 돌아가서, 아까 배유현 회장이 말한 것처럼 하나하나 다 설명하는 걸로 하게. 그러면 자네가 걱정하던 일은 단번에 해결될 거야. 그리고 이 1천만 달러는 아이의 미래에도 든든한 자산이 될 거다! 자네는 우리를 위해 너무 많은 고통을 겪었어. 그러니 고마움을 표현할 기회를 우리한테도 줘야지.”이때 옆에 있던 시후의 외할머니가 얼른 말했다. “여보, 당신이 전에 말했었죠? 제이크 한 저 친구의 사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