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꿉친구들은 남매가 되기도 한다.“효진이는 자기가 아들을 임신했다고 생각하는데 저도 제 배 속에 있는 이 꼬마가 남자아이라고 생각돼요. 아마도 우리 두 집 아이들은 태윤 씨와 정남 씨처럼 형제로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난 좋은데.”전태윤도 딸을 좋아했지만 혼인 신고 후 1년이 지나서야 하예정이 겨우 임신했기 때문에 부부만의 아이를 가질 수 있어서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그는 배 속의 아이가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저도 좋아요. 샤워하고 올게요.”“잠들지 마. 15분 동안 기다릴 거야. 네가 나오지 않으면 내가 들어가 볼 거야. 잠들면 안 되니까.”하예정은 아무리 피곤하고 졸리더라도 샤워 중에 잠들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전태윤의 세심한 배려와 관심은 그녀의 마음을 달콤하게 했다.오늘 전태윤은 관성을 뒤흔드는 결혼식을 올려주겠다는 약속을 지켜냈다.하예정 또한 전태윤의 가장 아름다운 신부로 될 것이라는 약속을 지켰다.앞으로 두 사람의 감정이 처음처럼 계속 좋아지길 바란다. 그리고 아들딸을 낳고 백년해로할 수 있기를 바란다.15분 후.하예정은 1분도 늦지 않고 딱 15분 만에 나왔다.욕실을 나서자마자 그녀는 남편에 의해 허리를 감싸 안겼다.하예정은 미소를 머금으며 남편의 목을 껴안고 그의 잘생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 얼굴은 보면 볼수록 더 좋아지고 있었다.전태윤은 그녀를 안고 침대로 가서 허리를 굽혀 혼수 침대에 살며시 눕혔고 아내의 이마에 뽀뽀해주고는 부드럽게 말했다.“얼른 자.”“태윤 씨도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일찍 들어와요.”시간을 본 전태윤이 입을 열었다.“어두워지면 얼른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마. 취하도록 마시지 않을 거야. 내일 일찍 일어나서 아침밥을 차려야 하니까.”“집안에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침 일찍 일어날 필요 없어요. 오늘 태윤 씨도 힘들었을 텐데. 어젯밤에 잘 주무시지 못했죠? 푹 쉬어요.”“내가 만든 아침밥이 맛있다면 내가 해줄게. 이번 달 우리 모두 결혼 휴가를 냈으
그러자 하예정이 대답했다.“알겠어요.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제가 임신한 줄도 모르는 상황에서 너무 많이 돌아다녔더니 아랫배가 살짝 아팠어요. 그 뒤로 임신한 걸 안 후로 저도 깜짝 놀랐다니깐요.”그때도 하예정은 전태윤이 걱정할까 봐 감히 그에게 알리지 못했다.전태윤은 아내가 임신하여 멀리 신혼여행을 떠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녀를 데리고 관성에서 자가용 여행을 가려고 했다. 하지만 자가용 여행도 피곤할 것을 생각한 하예정은 그제야 자기 생각을 표현했다.전태윤은 하예정이 옛날얘기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서야 비로소 시름을 놓았다.하예정은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고 난 후로 확실히 업무량을 줄였다.다시는 성소현과 여기저기 뛰어다니지 않았다.회사에서 일하면 피곤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체력은 아주 좋은 편이었다.어쨌든 무술을 배운 사람이기도 했고 응석받이도 없이 고생하며 자랐기 때문이다.전태윤은 사실 아내에게 결혼 휴가 후에도 집에서 배 속의 아기만 잘 돌보라고 권하고 싶었지만, 아내가 동의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게다가 결혼 휴가가 끝나면 임신한 지 거의 3개월이 지나기 때문에 태아가 안정되는 시기에 들어설 것이다.하예정이 예전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지 않는 한 큰 영향은 없을 것이다.전태윤은 결국 아내를 설득하지 못했다.그는 신혼 첫날에 사이가 나빠질까 봐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전태윤도 아내가 배 속의 아기를 두고 장난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만약 견딜 수 없다면 그녀도 절대 억지로 버티지 않을 것이다.하예정이 나가서 가벼운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었다.예를 들어 서점에 가서 심효진과 함께 가게를 지키거나 회사에서 서류를 보면서 부하 직원들에게 업무를 배정하여 그녀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도 있다.그러다 보면 기분도 좋아지고 태아의 건강한 발육과 성장에 도움도 될 것이다.“빨리 나가서 손님들을 대접해요. 저는 좀 잘게요. 나중에 방으로 돌아올 때 제가 잠이 들면 깨우지 마세요. 제가 먼저 깨면 태윤 씨에게 메시지
하예정은 날이 밝을 때까지 한껏 잠을 잤다.그녀는 시간을 보기 전까지는 날이 아직 어두워지지 않은 거로 생각했다.하예정은 침대 머릿장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본 뒤에야 다음 날 아침까지 잤다는 것을 알았다.곁에 있던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아래층에서 사랑의 아침밥을 차리고 있을 것이다.그녀는 저녁부터 지금까지 잤더니 지금 배가 너무 고팠다.하지만 오래 잤더니 정신은 아주 맑고 좋았다.하예정은 침대에서 더는 눕지 않고 일어났고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하는데 갑자기 침대 끝에 자신의 조카 우빈이를 보게 되었다.하예정은 멍하니 생각했다.‘우빈이가 어떻게 내 방에 있지?’녀석이 이불도 덮지 않은 채 침대 끝에서 자고 있었고 어제 입었던 작은 양복도 갈아입은 것으로 보면 남편이 일어난 뒤에 들어온 것임을 짐작했다. 그리고 하예정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다가 녀석이 다시 잠이 든 것이 틀림없다.하예정은 침대 끝으로 가서 조카를 안아 다시 눕히려고 우빈이를 안았는데 우빈이가 바로 깨어났다.눈을 떠보니 이모였다. 우빈이는 이모를 부드럽게 불렀다.“이모.”그리고 두 손으로 하예정을 껴안았다.“아직도 자고 싶어?”하예정이 조카를 안으며 물었다.“아니요. 우빈이 깨어났어요. 우빈이 이모 보고 싶어서 찾아왔는데 이모부가 이모 주무신다고 하셔서 한참을 기다렸어요. 이모 깨어나기를 기다리다가 저도 모르게 잠들어 버렸어요.”우빈은 하예정의 품에서 미끄러져 나가면서 똘똘한 큰 눈으로 하예정을 보며 물었다.“이모, 졸음도 전염되는 거예요?”하예정이 웃으며 대답했다.“그런가 봐. 어젯밤에 늦게 잤어?”우빈이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저도 언제 잠들었는지 몰라요. 제가 셋째 삼촌의 허벅지에 올라갔던 기억밖에 없어요. 셋째 삼촌이 저를 안아주셨던 기억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안 나요.”아침에 깨어나 보니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우빈은 서원 리조트의 단골손님이었지만 깨어나서 엄마를 보지 못하자 본능적으로 이모를 찾아다녔다.하여 달
그러자 우빈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싫어요. 안 가요. 엄마가 저를 유치원에 데려다줄 거예요.”하예정은 웃으며 조카를 일깨워주었다.“오늘 토요일이라 우빈이가 집으로 간다 해도 유치원으로 안 가. 이모한테만 알려줘. 얼마나 가기 싫어? 이모 기억으로는 네가 금방 유치원으로 갔을 때 엄청나게 좋아했던 것 같은데. 겨우 한 달 남짓 다녔는데 유치원에 가기 싫어?”우빈이는 작은 입을 삐죽거리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싫어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냥 집에서 노는 게 더 재미있어요.”“엄마가 들으면 또 혼내겠네. 유치원에 다닐 때는 열심히 다니고 놀 때는 또 마음 놓고 놀아야지.”우빈이는 고개를 숙이고는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알았어요. 우리 엄마도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유치원에 갈 때 용정보다 더 열심히 공부할 거예요. 그리고 놀 때는 안심하고 놀 거에요. 나중에 방학하게 되면 저를 데리고 용정이한테 놀러 갈 수 있어요?”우빈이는은 여전히 그의 어린 친구가 보고 싶었다.“이번 연휴가 지났으니 긴 연휴를 기다리려면 겨울 방학밖에 없겠네. 열심히 학교 다니고 겨울 방학이 되면 그때 우빈이를 예진 리조트로 데려갈게. 용정이도 예진 리조트로 돌아가 설을 쇨 테니 그때 같이 놀 수 있을 거야.”“대신 우빈이가 열심히 유치원에 다녀야 해. 그렇지 않으면 설날에 용정과 놀 때 여러 방면에서 용정이보다 또 뒤떨어지게 될 거야. 그러면 나중에 집으로 돌아와서 또 괴로울걸.”우빈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겨울 방학 동안 어린 친구들과 놀기 위해서, 용정을 이기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무승부로 끝나려면 우빈이는 이제부터 열심히 학교에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여기서 이모 기다려. 이모가 옷 갈아입고 씻고 나서 우리 함께 내려가서 아침밥을 먹자. 이모부가 만드신 아침밥이 점점 더 맛있거든.”“알겠어요.”하예정은 옷을 가지고 욕실로 들어갔다.잠시 후, 그녀는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욕실에서 나왔다.우빈이는 침대에서 뛰어내려 이모 주위를 돌아
하예정은 아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는데도 먼저 교육 문제를 남편에게 떠넘겼다.사람들이 말하길, 부모들은 아이들의 숙제에 관한 문제에 접하기만 하면 X처럼 날뛴다고 했다.하예정은 아이의 살림에나 신경 쓰는 부드러운 엄마로 살고 싶었고 숙제 문제에 관해서는 전태윤에게 떠넘기고 싶었다.전태윤은 엄숙한 표정을 잘하고 다녔기에 자식을 잘 관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전태윤이 웃으며 대답했다.“그래.”전태윤은 이미 많은 육아 책을 사서 펼쳐 보았다. 앞으로 아빠가 될 준비를 단단히 한 모양이다.“배고프지? 아침밥을 차려놨어.”“너무 배고파서 우빈이를 데리고 내려가려는데 태윤 씨가 들어온 거예요.”전태윤은 조카를 안아 들고는 다른 한 손을 비워 아내의 손을 잡았다.“가자, 아침 먹으러 내려가자.”방을 나온 하예정은 집 전체가 아직도 조용하다는 것을 발견했다.모두가 여전히 자는 모양이다.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조용하게 물었다.“어젯밤 언제 들어온 거예요? 다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거예요?”“나는 날이 어두워지자마자 방으로 돌아왔어. 아침 깨어나서 집사님한테서 들었는데 어젯밤 모두들 많이 취했다고 그러더라고. 술은 좋은 술이니 마시기 좋았지만, 뒷맛이 엄청나게 강하거든. 나도 마실 때는 몰랐는데 다 마시고 나니 금방 취했어.”전태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어젯밤,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거의 다 취했다.술에 강한 소지훈도 술에 취해 정윤하에게 끌려 집으로 갔다고 한다.정윤하는 소지훈이 어디에서 사는지 몰랐기에 그를 어디로 데려갔는지 알 수 없었다.어쨌든 소지훈은 정윤하의 부축을 받아 차에 올라탔다.정윤하는 술을 마시기 좋아하지만, 주량이 세지 않았다. 그녀는 이번에 많이 마시려고 했지만 많은 사람이 소지훈에게 술을 권했고 소지훈 또한 손님들의 술을 거절하지 않았기에 정윤하는 결국 술 한 방울도 다치지 않았다.술에 취한 소지훈을 집에 데려다주려고 온밤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예정도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우리 결혼식 날짜를 잘 잡았기
“할머니, 얼른 다녀오세요.”결혼 휴가를 맡으니 참 좋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는 일을 생각할 필요도 없고 회사의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잘 먹고 잘 쉬기만 하면 되었다.할머니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아침 먹고 나면 우리 함께 나가서 산책하자.”하예정은 흔쾌히 승낙했다.전씨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전태윤 부부가 배불리 먹고 나서야 전씨 할머니가 집안으로 들어오셨다.하예정은 할머니께서 아침 식사 하기를 기다렸고 기다리는 동안 우빈이는 하예정의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우빈이가 조금 전에 깨어났는데 또 잠이 들었네.”하예정은 조카의 얼굴을 애틋하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우빈이도 이틀 동안 많이 지쳤나 봐요.”“내가 우빈이를 안고 올라가서 쉴 테니 너는 이따가 할머니와 함께 산책하러 가. 난 우빈이랑 잠 좀 잘게.”전태윤은 어젯밤에 일찍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잔 것 같았지만 사실 흥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침대에 한참 누워있다가 잠이 들었다.오늘 아침에는 또 일찍 일어나서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아침 식사를 정성껏 준비했다.요즘 결혼식 때문에 정신없이 바빴다. 이제 결혼식이 끝났으니 푹 자고 싶었다.“좀 쉬세요. 저는 이미 충분히 잤어요.”전태윤은 일어나서 하예정의 품에서 잠든 우빈이를 조심스럽게 안고 위층으로 올라갔다.할머니께서는 식사를 빨리하셨고 곧 나오셨다.하예정은 어르신이 나오는 것을 보더니 일어나서 부축하려고 했다.“할머니가 너희들 부축을 받을 만큼 늙지는 않았어.”할머니는 자애롭게 웃으면서 하예정의 부축을 받지 않고 대신 그녀의 손을 맞잡고 소파 위에 앉았다.손자가 보이지 않자 할머니가 물었다.“태윤이와 우빈이는? 방금 너와 함께 있지 않았어? 놀러 나갔어?”그러나 할머니는 밖에서도 우빈의 웃음소리를 듣지 못했다.우빈이는 올 때마다 서원 리조트 어린이 놀이공원에 가서 노는 것을 좋아했고 그 놀이터에서 종일 놀았다.우빈이가 올 때마다 어린이 놀이터에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 나가서 산책 좀 하자. 오늘은 해가 없고 바람이 좀 불거든. 정원에서 걸으며 시원한 바람을 쐬며 경치를 감상하면 아주 편안하고 쾌적할 거야.”“할머니는 방금 아침을 드셨는데 괜찮으시겠어요?”“천천히 걷는 건 괜찮아. 리조트를 한 바퀴 도는 것도 아니고 근처만 돌아다니는 건데.”할머니가 계속 나가자고 제안하자 하예정은 하는 수 없이 할머니와 함께 정원에서 돌아다니며 산책했다.“오늘도 입덧한 거야?”할머니는 걱정하며 물었다.하예정은 여전히 입덧 한다고 대답하려고 했지만, 오늘 아침에 토하지 않은 기억을 되살피더니 이내 깜짝 놀라면서 대답했다.“오늘은 토하지 않았어요.”하예정은 옷을 갈아입고 씻은 뒤, 욕실에서 나왔고 조카를 데리고 아침 식사를 하러 내려가면서 깜빡하고 토하지 않았다. 아니면 그녀의 고통스러운 입덧 생활이 끝났건 아닐까?할머니가 말을 이었다.“천천히 좋아질 거야. 그러고 보니 청하 씨처럼 낳을 때까지 토하지 않을 것 같구나. 우리도 안심할 수 있겠어.”다들 하예정이 아기를 낳을 때까지 토하면서 괴로워할까 봐 걱정했다.“이 아기가 저를 많이 사랑하는 것 같아요. 제가 힘든 걸 알고 저를 괴롭히지 않는 걸 보면요.”“사촌 형수님이 고생이 많아요. 출산 예정일이 다가오고 있는데 이번에 아기를 낳으면 다시는 아기를 낳지 않겠다고 하셨어요. 사촌 오빠도 다시는 낳지 못하게 하실 거에요.”유청하는 아이를 매우 좋아하는 여자였다. 단지 임신 때 입덧이 너무 심했기에 무척 고생했다. 또한, 성기현이 곁에서 자꾸 아이 한 명만 낳으면 된다고, 아들이든 딸이든지를 막론하고 딱 한 명만 낳으면 된다고 세뇌하고 있었다.하여 유청하도 현실을 받아들였고 자식 한 명만 있으면 부모님의 모든 사랑을 한 몸에 받을 수 있기에 좋다고 생각했다.할머니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네가 그 당시 화를 내지 않았더라면 태윤이는 아마 네 사촌 오빠처럼 행동했을 거야. 너희 두 사람 드디어 결혼식을 치렀으니 이 할머니도 드디어 시름이 놓는구나. 지난 1년 동
“할머니, 저는 스트레스 안 받아요. 순리대로 살아갈래요.”할머니도 동의했다.“맞아. 순리대로 살면 돼. 아들이든 딸이든 다 인연이야. 다 우리 복이지.”“할머니께도 손자들이 아홉 명이나 있는데 아홉 명의 손자며느리들 중에서 할머니 뜻대로 증손녀를 낳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하예정은 할머니를 위로해주었다.할머니는 부드럽게 웃었다.“할머니가 손자들이 자식까지 낳는 걸 볼 만큼 장수하지는 못할 것 같아.”아홉째 손자는 아직 학생이었다.아홉째 손자가 장가를 갈 때까지 버티려면 적어도 십여 년을 기다려야 했기에 어르신은 십여 년을 더 살 자신이 없었다.기껏해야 십 년 혹은 팔 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뒤로 영감을 찾으러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손자들에게도 그들만의 타고난 복이 있을 것이다. 전씨 할머니가 자손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었다.미래의 일을 그들의 운명에 달렸다.“할머니.”“알았어. 알았어. 다시는 그런 말 안 할게.”할머니는 자애로운 눈빛으로 말했다.“우리 산기슭에 가서 좀 걸을까?”“할머니 피곤하시지 않으세요?”“괜찮아. 난 힘들지 않아. 가자.”하예정이 말을 이었다.“할머니도 힘든 것이 두렵지 않은데 저야 더 두렵지 않죠.”하예정은 응석받이로 자란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임신 후 남편의 보살핌으로 조금 응석받이로 생활하고 있었을 뿐 산책쯤이야 아무 일도 아니었다.전씨 할머니와 하예정은 함께 산책하며 수다를 떨고 있지만, 하예진은 조금 전에 일어났다.하예진은 일어나서 습관적으로 우빈이 방에 가서 방문을 열었으나 침대가 텅텅 비어있는 광경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한참을 넋 놓은 하예진은 그제야 아들이 여동생 집에 간 기억이 났다.그녀의 여동생은 정말로 시집갔다.그녀가 동생을 시집보냈다.하예진은 맏언니의 책임을 다했다.방문을 닫은 하예진은 여동생의 방으로 가서 한참을 앉아 있다가 내려갔다.숙희 아주머니는 이미 아침 식사를 준비해 놓았고 노동명도 아래층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노동명은 어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
그러나 전창빈은 사업을 확장하거나 삶을 즐길 생각은 하지 않고 먼 길을 떠나 여기까지 와서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로 지원했다.선우민아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전창빈은 솔직하게 대답했다.“도전하려고 왔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고 스승을 모셔 요리 실력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여러 구역의 다양한 요리를 연구하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창업으로 작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산 밖에 산이 있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는 법이라고 여기기에 계속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손님들의 입맛이 바로 저를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니까요.”전창빈은 자신의 요리가 손님들이 맛있다고 생각해야만 요리 실력이 검증된 것으로 생각했다.손님들이 그 요리에 대해 조언을 해주면 그것을 개선해 더 높은 수준의 요리 실력을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우민아처럼 까다로운 손님을 만났을 때 그녀의 평가는 전창빈을 더욱 발전하게 할 것이다.선우민아는 그가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 자리에 도전하고 싶어서 온 것임을 직감하고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자신이 갑이 되는 것과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에요. 전이혁 씨는 제대로 고려해보셨나요? 만약 우리 가문에서 요리사로 일한다면 우리 가문만의 가정 요리사가 되어 전국의 다양한 손님을 상대할 기회가 없어요. 아마 전이혁 씨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죠.”전창빈은 빙그레 웃으며 선우정아와 시선을 마주치며 대답했다.“아마 큰아가씨님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몇 명 없을 겁니다. 제가 여기서 일하면 전국의 손님을 상대할 수는 없겠지만 큰아가씨께서 싫증 내지 않을 정도로 1년 정도 일할 수 있다면 제 요리 실력도 크게 향상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력을 키워 앞으로 관성으로 돌아가면 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도 손님이 떼구름처럼 몰려들겠죠.”전창빈은 자신의 요리사들을 이끌어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전국의 손님들이 고향의 전통 요리와 관성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노
강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 경험상으로 보면 전창빈 씨는 합격일 겁니다. 어서 큰아가씨를 뵈러 가세요. 긴장할 필요 없어요. 큰아가씨는 표정이 좀 진지하지만 사실은 매우 좋은 분이십니다.”“감사합니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전창빈은 엄격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선우민아가 아무리 엄격해도 그의 큰형 전태윤보다는 못할 것이다.엄격한 전태윤의 얼굴에 익숙해진 전이혁은 이미 엄격한 사람들에게 면역력이 생겼다.전창빈은 강진을 따라 주방을 나섰다.강진은 전창빈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주방을 나선 후에도 전창빈은 여기저기 둘러보지 않았고 또 선우씨 가문 저택의 호화로움에 놀라지도 않았다.다른 지원자들은 늘 선우씨 저택의 사치스러움에 압도되어 주변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과는 달랐다.강진은 전창빈이 분명 세상 물정을 다 겪어본 사람이거나 굉장한 침착성을 가진 사람일 거로 생각했다.어쨌든 강진은 눈앞의 이 젊은 요리사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아마 내일이면 동료가 될 것 같았다.강진은 전창빈을 데리고 선우민아가 앉은 자리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추어 섰다. 그는 전창빈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낸 후 먼저 나아가 공손히 말했다.“큰아가씨, 전창빈 씨께서 오셨습니다.”선우씨 가족 중 전창빈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오직 선우정아뿐이었다.다른 사람들은 그때 집에 없어 전창빈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다들 그를 보더니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한경주가 남편 선우진혁에게 소곤거렸다.“정말 젊어 보이네요. 우리 민아랑 비슷한 나이 같아요.”선우진혁도 고개를 끄덕였다.“젊네. 보아하니 매우 침착해 보이고. 조금도 긴장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구먼.”“이 요리사분이 매우 잘생겼다는 생각 안 들어요?”선우씨 가문의 둘째 부인, 즉 선우정아의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시누이에게 말했다.한경주가 웃으며 대답했다.“정말 잘생겼네요.”선우정아도 말을 이었다.“제 말 이제 믿으시죠? 제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가 매우 젊고 잘
선우민기는 입을 삐죽 내밀며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민기야, 오늘 저녁 요리 맛있었어?”선우민아가 동생에게 물었다.“맛있어요. 엄청 맛있었어요.”사촌 동생도 따라 말했다.“정말 정말 맛있었어요. 누나, 저 앞으로 매일 누나 집에 와서 밥 먹어도 돼요?”선우민아가 웃으며 대답했다.“오고 싶으면 오렴. 하지만 너랑 민기는 밥 잘 먹어야 해. 놀기만 하면 안 된다?”두 꼬마가 함께 모이면 말 그대로 손오공이 천궁을 뒤집어 놓는 수준이었다.가문의 후손에 남자아이가 둘뿐이라 모두가 그들을 귀여워했다. 선우씨 가문의 누나들이 집에 없을 때면 두 꼬마는 진짜로 지붕조차 뒤집을 기세였다.어르신들이 말릴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만약 두 꼬마가 지붕을 뜯으려 하면 오히려 사다리를 대줄 정도니까.“알았어요. 저희 꼭 말을 잘 들을게요.”“그래, 너희 둘 밖에 나갈 땐 외투 꼭 입고 나가야 해. 밖이 너무 추워.”두 꼬마는 기쁜 마음으로 손을 잡고 집에서 뛰쳐나갔다.동생들이 모두 놀러 나가자 선우민아가 집사에게 지시했다.“아저씨, 전창빈 씨를 만나게 해줘요.”강진이 공손하게 대답했다.“네. 바로 전창빈 씨를 불러오겠습니다.”선우민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이동하자 가족들도 모두 따라 일어나 거실 소파에 앉았다.선우민아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를 만나고 싶다고 하자 선우씨 가족들은 바로 그 지원자가 채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직감했다.확실히 오늘의 저녁 식사는 온 가족을 만족시켰다.선우민아의 입맛이 까다로워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다. 그들은 선우민아 덕분에 항상 최고의 요리사가 준비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비록 그녀만큼 입맛이 까다롭지는 않았지만 요리의 품질을 가리는 안목은 그래도 꽤 좋은 편이다.강진이 미소를 머금으며 주방으로 들어갔고 전창빈이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쪽으로 다가갔다.발소리를 들은 전창빈은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떼었고 고개를 들어
원림성 A시.전창빈은 모든 요리를 다 하고는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온종일을 바쁘게 보냈다.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이 전부 오늘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돌아왔다.잠시 기다린 후, 전이진이 오후 내내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하인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물론 그는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민아가 그의 요리를 맛본 후 만족스럽다면 전창빈을 불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보도 없이 주방에 머물다가 선우씨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야 한다.비록 전창빈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선우민아의 면담 요청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뉴스를 보며 담담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조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송일우처럼 세 번이나 도전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송일우는 몇 년이나 도전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뒤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편 선우씨 가족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선우민아도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선우민아의 어머니 한경주가 관심 있게 물었다.“민아야, 이번 지원자가 만든 음식은 어때?”선우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주는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채용하는 게 어때?”선우민아의 남동생 선우민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번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배불리 먹었어.”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선우민기의 배를 가볍게 톡 치며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너는 굶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먹었어? 이번만 먹고 다음 끼니는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좀 앉아 이따
도아영이 홀로 관성까지 찾아온 것도 전이혁을 위해서였다.관성에서 그녀의 안전은 그의 책임이다.앞으로 도아영과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아내 후보였다. 혹여 도아영이 관성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도씨 가문에서 문제를 일으킬 것은 물론 전씨 할머니께서도 그를 혼쭐 내실 것이 분명했다.전이혁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이 전화를 받자 전이혁이 조심스럽게 부탁했다.“형, 오늘은 형의 스위트 룸에서 하룻밤 자도 돼?”“안방만 빼고 다른 방은 마음대로 써.”전태윤은 거절하지 않았지만 안방 사용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평소 이곳에 머무를 때면 항상 안방을 사용했기 때문이다.“알았어. 고마워. 형.”“도아영 씨는 괜찮아?”“심하게 취해서 토하다가 물 달라고 하길래... 떠날 수 없어서 호텔에서 하룻밤 지내려고. 새벽에 아영 씨를 룸으로 데려다준 후 떠날 계획이야. 같이 묵었다는 사실을 알면 나에게 달라붙을까 봐 겁이 나.”전태윤이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진심으로 도아영 씨와의 관계를 정리할 생각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아. 그분 명성을 망가뜨리면 안 되지.”전이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형, 사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영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이고 할머니의 눈썰미는 틀린 적이 없으셨지. 도아영 씨와 함께 지내보니 나랑 잘 맞는 것 같긴 한데... 왠지 그 ‘여우’랑 함께 있을 때가 더 편안하단 말이야.”“‘여우’라고?”“내 꿈에 자꾸 등장하는 그 여자 말이야. 별명이 ‘여우 같은 여자’거든. 화장을 잘하는 건지... 본명도, 고향도, 행적도 전혀 알 수가 없어. 신비로운 느낌을 주어서 나도 자꾸 정복하고 싶어져.”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이름도 모르는 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다니. 그분이 혹시 만성의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과 연관 있는 거 아니야?”만성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은 모연정의 사촌 형수이자 A시 허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인데 그녀도 이중생활로 유명한 인물이다.허씨 가문
“네.”우빈이는 전태윤의 말을 믿으며 다시 물었다.“이모부, 그 모기는 어디 갔어요?”전태윤은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우빈에게 보여주었지만 우빈은 모기를 찾을 수 없었다.“날아갔어. 이모부가 조금 늦는 바람에 잡지 못했어.”“그래요?”우빈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대답했다.하예정은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우빈이가 아무리 영리해도 결국은 어린아이일 뿐, 어른을 이길 수는 없었다.“우빈아, 이모부는 일하러 가야 해. 우리도 집에 가자. 이모부한테 잘 가라고 인사해야지.”우빈은 바로 그의 작은 손을 흔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모부, 잘 가요!”“집에 가서 빨리 쉬고 이모의 말도 잘 듣고. 이모를 귀찮게 하면 안 돼. 말 잘 들으면 겨울방학에 예진 리조트로 가서 용정이랑 놀게 해줄게.”우빈은 급히 약속했다.“절대로 이모 귀찮게 안 하고 말 잘 들을게요.”“여보, 빨리 일하러 가요. 우리도 갈게요.”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일하러 가라고 재촉한 뒤 운전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말했다.전태윤은 그 자리에 서서 차가 사랑하는 아내를 태우고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차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자 비로소 자신의 차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전이혁과 도아영의 일에 대해서 전태윤은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도아영이 취하면 전이혁이 그녀를 방으로 데려다줄 것이니까.전이혁은 도아영을 그녀의 방까지 데려다주고 외투와 양말을 벗겨 준 뒤 편안한 자세로 눕혔다. 그리고 그가 떠나려던 참에 도아영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옆으로 토해버렸다.전이혁이 쓰레기통을 가져오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는 이미 바닥과 침대를 모두 더럽혔다. 그는 이 광경을 보자 정말로 토할 것 같았다.흠... 전이혁도 토했다. 그는 입을 막은 채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정신없이 토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코와 입을 가린 채로 나왔다.도아영은 시원하게 토한 뒤 다시 침대에 철썩 누워버렸다.전이혁은 침대 반대쪽으로 돌아가 구토물을 보지 않으려 애썼고 최대한 빨리 도아영을 일으켜 안고
도아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꿈나라에 들어가서 돌아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술 마시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을 안 듣더니 결국 취했네. 내일 아침이면 정말 고생할 텐데.”전이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도아영의 이마를 쿡쿡 찌르더니 체념했는지 그녀를 안아 들어 로얄 스위트룸 나섰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참! 난 도아영 씨가 어느 룸에 묵고 있는지 모르는데.'그는 걸음을 멈추고 도아영을 내려놓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부축하면서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예정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형수님, 도아영 씨가 묵고 계신 룸 번호를 아세요?”하예정이 대답했다.“저도 잘 몰라요. 그냥 관성 호텔에 묵는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요. 아영이가 취했어요? 잠깐만요. 제가 알아볼게요.”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말했다.“여보, 아영의 룸 번호를 알아봐 줘요. 취했대요. 이혁 도련님이 아영이를 모셔다드리려고 하는데 룸 번호를 몰라서.”전태윤은 표정이 굳었다. 그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하예정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우빈의 손을 잡고 걸어 나갔다가 이내 돌아왔다. 그는 이미 전이혁과의 통화를 끝낸 상태였다.“알아봤어요?”“내가 이혁한테 이미 알려줬어.”전태윤은 여전히 표정이 굳은 표정으로 하예정에게 말을 건넸다.“아까 내가 물어볼 때 프런트 직원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마치 내가 바람피우는 거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내 동생이 도아영 씨를 데려다주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내가 대신 물어보는 거라고 설명까지 했어.”하예정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남편의 팔을 다정하게 끌며 달콤하게 웃었다.“설명했으면 그만이죠.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든 우리 감정엔 아무런 영향이 없는걸요. 제가 의심하지 않으면 되잖아요.”“다음부턴 이런 일 나에게 시키지 마. 이혁의 일은 이혁이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 내가 왜 도와줘야 해? 나도 예전엔 아무 도움 없이 오직 내 진심과 깊은 정으로 너의 마음을 얻었는데.”“알았어요.
전이혁은 침묵했다.도아영은 눈썹을 치켜들며 물었다.“왜요? 전이혁 씨는 그분을 보호하려고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는 거예요? 안심하세요. 저는 공정하게 경쟁하고 싶을 뿐이에요. 수작 부릴 생각은 없어요. 저는 그런 건 못해요. 남자 하나 때문에 그럴 필요도 없고. 제가 이렇게 남자를 좋아한 건 처음이라서 한번 도전해 보는 거예요. 다른 남자였다면 그냥 양보했을 거예요.”도아영이 눈여겨본 건 전이혁이란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전이혁의 뒤에 있는 전씨 가문이 마음에 들었다. 전씨 가문의 훌륭한 가풍은 소문이 자자했으니까.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사상이 모두 개방적이어서 후손들이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지지해 주었다.심지어 반대한다고 해도 다른 집안 어르신들처럼 억지로 가로막지는 않았다.게다가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특히 아내를 아끼기로 유명했고 한번 정한 인연과 결혼은 끝까지 지키고 있었다.이런 남자들이 흔치 않았다. 여자라면 누구든 한결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을 것이다.하여 도아영은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정말 안 된다면 그건 그녀와 전씨 가문의 인연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애초에 노력도 안 해보고 포기한다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것 같았다.도아영은 평생 후회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여자였다.전이혁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는 ‘여우’의 이름을 몰랐으니까. 마음의 절반을 뺏긴 주제에 정작 상대방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니...도아영은 그가 연적을 보호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약간의 질투를 느꼈지만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전이혁 씨가 그녀를 보호할수록 저는 더 궁금해지네요. 도대체 누가 저 도아영을 이길 수 있는지. 근데 괜찮아요. 언젠가는 제 연적이 누군지 알게 될 거니까.”그녀는 전이혁에게 잔을 들며 말했다.“전이혁 씨, 자! 우리 한잔하죠.”전이혁은 잔을 들고일어나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잔과 부딪혔다. 그리고 도아영이 단숨에 그 술을 들이마시는 걸 지켜보았다.도아영은 더 이상 전이혁과 사랑에 관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