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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6화

Author: 십일
“올해는... 힘들지도...”

정은은 달력을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석사 2학년이 되면 지금보다 더 바빠질 게 뻔했다.

재석은 수업도 해야 하고, 랩실도 관리해야 하고, 논문까지...

‘둘 다 여유가 없다. 이번 연휴는 무리겠네.’

민지가 말했다.

[조 교수님 이제 강의 안 하신다면서요? 추석 같은 짧은 연휴엔 그냥 훌쩍 다녀오면 되잖아요. K시는 또 얼마나 가까워요.]

“잠깐만... 강의를 안 한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정은은 말문이 막혔고, 민지는 놀라며 되물었다.

“언니, 그거 몰랐어요?”

‘몰랐는데?’

정은은 눈을 깜빡이며 얼떨떨해졌다.

순간 조용해진 수화기 너머에서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나 먼저 끊을게요. 링크 두 개 톡으로 보낼게요.]

“응.”

곧 민지가 보낸 두 개의 링크가 도착했다.

하나는 서비대학교 공식 홈페이지 공지 사항.

다른 하나는 교내 커뮤니티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게시글.

정은은 하나씩 클릭했다. 화면을 스크롤 할수록 그녀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이게 다 무슨...’

...

저녁 무렵, 노을이 붉게 번졌고, 골목 끝으로 주황빛이 물들었다.

재석은 손에 선물 가방 두 개를 들고 여유롭게 걸어왔다.

얼굴에는 잔잔한 웃음이 깃들어 있었다.

“조 교수, 퇴근이야? 오늘은 꽤 일찍 끝났네?”

“천 교수님.”

재석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축하해, 지난번 과제 또 상 받았다며?”

“감사합니다. 다 랩실 팀원들 덕분이죠.”

“하하... 여전히 겸손하긴. 젊은 사람이 아주 잘하고 있어, 최고야.”

천 교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총장님한테 들었는데, 이번 학기 강의 스스로 내려놨다면서? 혹시 너무 힘들어서 그런 거야? 시간이 안 돼서?”

재석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얼버무렸다.

“네... 뭐 그런 이유도 있고요...”

천 교수는 웃음을 거두고, 목소리를 낮췄다.

“내가 말이지,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선배로서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그래.”

“연구가 네 적성에 더 맞는 거 알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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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38화

    재석과 정은은 번개처럼 몸을 떼었지만, 거칠게 오르내리는 숨결까지는 숨기지 못했다.‘이건... 안 걸리는 게 더 이상하잖아.’정은이 속으로 생각했다.“아, 아빠... 왜 갑자기 나오고 그래요...”그리고 목소리는 작고 약했다.‘하필 지금... 진짜, 완전 최악의 타이밍...’소진헌은 손가락을 떨며 정은을 가리켰다.“너, 너, 너... 내가 안 나왔으면 어쩔 뻔했어?! 그럼 너희는 여기서 뭐 할 생각이었는데?! 어?!”정은이 말문이 막혔다.‘대낮에 복도에서 뭘 해요, 진짜... 질문 수준 좀 봐...’재석은 급히 감정 정리 후,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아버님...”“아니, 제발 그 호칭 좀 쓰지 마!! 내가 널 뭐라고 생각했는데! 형제처럼 지내자고 했던 거 기억 안 나?! 그런데 넌 지금 날 ‘아버님’이라고 불러?! 그럼 결국 그게 목적이었냐?!”‘형이라고 부르되, 아버님은 안 된다? 대체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야...’재석은 최대한 진정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그게 아니라,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전...”“뭘 설명해? 난 널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넌 내 딸을 껴안고 키스를 해?! 설마 나한테 잘해준 것도 다 내 딸이랑 잘해보려고 계산한 거야?!” 재석은 그 말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그대로 삼켜졌다.‘무슨 말 해도 안 들리시겠지. 지금은 아무 말도 못 이겨.’잠시 후, 그는 조용히 말했다.“죄송합니다, 아버님. 전 처음부터 아버님을 어른으로 존중했고, 감히 형 동생으로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뭐?!”소진헌의 눈이 다시 커졌다.“그러니까 나 혼자 형 동생 할 생각으로 들떴다는 거냐?! 결국 너는 속으로 날 우습게 본 거네?!”“그런 건 아닌데요...”재석은 헷갈렸다.‘이게 어떻게 이렇게까지 꼬일 수 있지...?’그 순간, 소진헌이 성큼성큼 다가와 정은의 팔을 잡아챘다.“너, 뭐 하고 서 있어! 따라 들어와!”그 말과 동시에 정은은 아무 말 없이 끌려갔다.쾅!문은 큰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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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석은 진욱의 말에 잠깐 멈칫했다.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약간 그런 거 같긴 해.”진욱이 더욱 어이가 없었다.“뭐라고?”‘지금 그걸 인정해?!’더 황당한 건... 재석이 웃고 있었다.“나 진짜 바쁘다고! 네가 이렇게 일 던지고 나가면 나 진짜 곤란하다고!!”재석은 담담하게 말했다.“이번 달 성과급 두 배.”진욱이 바로 말을 바꿨다.“조 교수님, 잘 다녀오십시오. 모든 건 제게 맡기세요.”재석은 가볍게 진욱의 어깨를 두드리며 나섰다.그러다 문 앞에서 갑자기 돌아섰다.“생각해 보니까, 너희 외삼촌 국토교통부에서 일하시지?”“응, 왜?”“거기서 각 지역의 토지 이용 현황이나 개발계획 같은 거 조회할 수 있을까?”진욱은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이론상 가능은 해. 지방에서 올라오는 문서들이 다 본청으로 올라가니까.”“그럼 부탁 좀 할게...”30초 후, 진욱은 이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너 뭐 하려는 거야?”재석은 대답보다 먼저 웃음부터 터뜨렸다.“장인어른과 장모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하려고.”“뭐라고?”“조회되면 내 핸드폰으로 보내 줘. 밥은 내가 산다.”그렇게 말한 재석은 어리둥절한 진욱을 뒤로하고 유유히 떠났다.진욱은 멍하니 서 있다가 혼잣말로 말했다.“잠깐만, 장인어른과 장모님...? 정은의 부모님?”“잠깐, 뭐 이렇게 전개가 빠르냐고...”...점심.소진헌은 점심을 간단히 차려냈고, 정은은 젓가락을 들며 물었다.“아빠, 오늘 아침에 새우랑 소고기 산 거 어딨어요? 왜 점심에 안 썼어요?”그때 이미숙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너희 아빠가 그러더라. 저녁에 조 교수 오시면 같이 먹는다고.”정은이 순간에 당황했다.“네?”소진헌은 정색하며 말했다.“사람을 초대했으면 제대로 대접해야지!”“이런 걸 뭐라 하냐... 접.대.의.미!”이미숙과 정은은 동시에 할 말을 잃었다....오후, 이미숙은 서재에서 노트북을 펴고 글을 쓰고 있었다.정은은 낮잠을 푹 자고 일어났는데, 거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34화

    재석의 탄탄한 가슴팍은 그 자체로 열기가 느껴질 만큼 뜨거웠고, 정은의 얇은 옷 한 겹 사이로 고스란히 체온이 전해졌다.남자의 숨결은 뜨겁고, 피부에 닿는 공기는 축축했다.‘더워 죽겠는데 왜 안 놔...’정은은 약간 불편했다.재석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러고 나서 이렇게.”정은은 작게 혀를 찼다.“진짜, 눈치 없이 들이대네요?”“내 여자 친구 안아주는 건데, 눈치 볼 게 뭐 있어?”“그러면 내 부모님 앞에서도 해보시죠? 어때, 한번 해볼래요?”재석은 헛기침하며 시선을 피했다.“그건 아직 무리.”정은은 더운 날씨에 땀이 배기 시작했고, 재석의 품은 너무도 꽉 조여와 숨이 찰 지경이었다.그런데도 그는 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자기야... 조금만 풀어줄래요?”“응?”“뭔가... 자꾸 눌려서 불편하거든요.”재석은 전기라도 통한 듯 화들짝 손을 떼고, 급히 옆에 걸려 있던 가운을 집어 몸에 둘렀다.그리고 매듭을 매면서도 등 돌린 채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진정해, 조재석. 정신 차려.’몇 번 심호흡을 한 후, 그는 다시 정은 쪽을 바라보았다.“미안, 나 그게...”“우리 아빠가 만둣국 했어요. 갖다주라고 하셨거든요.”정은은 그의 말을 끊고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거실 쪽으로 걸어 나갔다.“만둣국?”재석도 뒤따라 나왔다.“자, 여기요.”정은은 식탁 옆에 멈춰 서서 턱으로 그릇을 가리켰다.“우리 아빠가 만든 만두는 좀 특별해요. 시판용이랑은 달라요. 속엔 고기랑 야채만 들어가 있는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직접 빚은 거예요. 한번 먹어볼래요?”“좋지.”재석은 주방에서 젓가락을 챙겨 와 자리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정은은 맞은편에 앉아 턱을 괴고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어때요? 맛은요?”“음, 맛있어. 생강이 들어가서 걱정했는데, 은은하게 잘 어울리네. 진짜 맛있다.”재석은 한 그릇을 싹 비웠고, 국물까지 거의 남기지 않았다.“그럼 나 먼저 갈게요.”정은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재석이 급히 불렀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33화

    “잘 자요, 정은 씨.”“안녕히 가세요, 교수님.”소진헌이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본 광경은, 두 사람이 나누는 다정한 작별 인사였다.재석의 등 뒤로 집 문이 이미 열려 있었지만 불은 꺼져 있었다.이내 재석이 소진헌을 바라봤다.“아버님도 편히 주무세요.”“그래, 조 교수도 얼른 들어가 쉬어.”소진헌은 급히 대답하며 웃자, 재석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모든 게 더없이 평온하고 자연스러웠다.시선을 거둔 소진헌은 고개를 돌려 정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조 교수 참 괜찮은 사람이야. 예의도 바르고, 배려도 있고, 품위가 있어.”“그래요?”정은의 입꼬리는 분명히 올라갔지만, 말투는 너무도 단정하고 흔들림이 없었다.‘아, 들키면 안 돼. 지금은 아닌 척, 아무렇지 않은 척.’“그럼 아니야?!”소진헌은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내가 아무나 형제처럼 생각하는 줄 알아? 아무나 내 눈에 드는 줄 아냐고!” “근데 아빠, 조재석은 나보다 겨우 몇 살 많잖아요. 굳이 ‘어른’ 소릴 들어야 해요?”부녀는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소진헌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조재석이라고 부른 거야, 방금? 그런 말이 어딨어... 나이로 따지는 게 아니야, 서열은. 게다가 교수님은 네 스승이기도 해. 그 정도면 당연히 어른이지.”‘남자 친구면 안 돼?’정은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천천히 신발을 벗었다.이미숙이 주방에서 고개를 내밀었다.“왜 이렇게 늦었어요?”소진헌은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었다.“조 교수랑 이런저런 얘기 좀 나누다 보니까.”“둘이 진짜 잘 맞는군요?”소진헌은 자랑스럽게 말했다.“아까도 정은이한테 말했어. 조 교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뭐 하나 빠지는 데가 없어.”이미숙은 그 말을 들으며 조용히 소진헌을 바라봤다.그 눈빛은... 뭐랄까... 복잡하고, 깊으면서도, 어딘가 애틋한 동정심이 섞여 있었다.‘당신은 아직 모르지...’“아 맞다, 바둑판은 치우지 마. 그냥 거기 둬. 내일도 조 교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32화

    “네, 마트에서 세제 사면 끼워주는 거였어요. 사이즈까지는 안 보고 그냥 썼는데, 어찌저찌 쓸 만한 것 같아요.” 정은은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괜찮겠지... 설마 거기서 더 파고들겠어?’ “자, 조 교수.” 소진헌이 손을 부르르 떨며 웃었다. “한 판 두실까?” “좋습니다.” 재석은 자연스럽게 수긍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두 사람의 대국은 밤 8시 반부터 시작됐다. 9시, 10시, 그리고 11시. 정은은 옆자리에서 조용히 논문을 읽다가 벌써 몇 편째 넘겼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말없이 수싸움 중.이미숙은 처음에 십여분 정도 구경하다가 ‘길어지겠다’ 싶어 노트북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설 6000자쯤 쓰고 다시 나왔을 때, 거실 풍경은 딱 그 상태 그대로였다. ‘이 사람들... 화장실도 안 갔나?’ 하지만 이미숙이 더 놀란 건... 정은이었다. “정은아, 이 시간까지 왜 거기 앉아 있어? 예전 같으면 체스든 바둑이든 3분만 지나면 바로 방에 들어갔잖아?” ‘역시 엄마는 나를 너무 잘 안다...’ 사실 예전엔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이춘재 집에서 재석이랑 두던 날엔 아예 중간에 올라가 낮잠까지 자버렸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그땐 그냥 이웃, 지금은... 내 남자 친구.’ 정은은 시선을 바둑판에 둔 채 말했다. “요즘 들어 장기가 은근히 재밌어요.” “그래? 너희 아빠가 장기 몇십 년 두는 동안 단 한 번도 흥미를 보이지 않더니?” 이미숙은 미간을 살짝 찡그렸지만, 딱히 더 묻진 않았다. 곧이어 소진헌 쪽으로 가서 말했다. “이 판 끝나면 자자고요. 당신은 늦잠 자도 되지만, 조 교수는 내일 출근하셔야 하잖아요.” “응, 이 판만 끝내고.” 그리고 정확히 30분 뒤, 마침내 승부가 갈렸다. 소진헌은 바둑판을 한참 들여다보다 당황한 듯 말했다. “아니... 분명히 내가 병사 두 개 세워놨는데..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31화

    “하고 싶어.” 재석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다 곧바로 덧붙였다. “하지만 네 마음이 더 중요해. 네가 원하면 바로 공개하고, 싫다면 당분간은 우리만 알면 돼.” ‘이 사람, 늘 자기보다 내가 먼저다.’ 정은은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까 현관 들어올 때... 깜짝 놀랐죠?] “놀란 정도까진 아니고, 당황은 좀 했지.” [나도 몰랐어요. 엄마, 아빠가 갑자기 연락도 없이... 나는 그냥 조용히 저녁 먹을 생각이었는데, 마침 당신도 오고...]재석은 문득 물었다. “꽃... 마음에 들었어?” [네, 보라색 너무 예뻐요.] ‘다행이네.’ 재석은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정은도 웃으며 말했다. [원래는 내가 방에 들어가서 당신한테 전화하려고 했거든요. 엄마, 아빠가 집에 왔으니, 당황하지 말라고 미리 알려주려고요. 근데 그 몇 초를 못 기다리고... 딱 들어와 버리더라고요...] “나는 머릿속으로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버님이 알아서 다 설명해 주셨어.” ‘내가 말 꺼낼 기회도 없었어...’ 정은은 피식 웃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빠... 무슨 상상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당신을 ‘망년지우’처럼 생각하신 것 같아요. 우리가 사귄다는 거 알면, 턱 빠질지도 몰라요...]“계속 ‘아버님’이라 부르고 있는데, 왜 자꾸 날 형 동생 하려고 하시는 건지...” 재석이 어이없는 듯 답하자, 정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문득, 장난스럽게 물었다. [근데... 당신도 우리 아빠 처음 만났을 때, 바로 ‘아버님’이라고 불렀잖아요. 설마... 그때부터 나 좋아했던 거예요?] 그 말에 재석은 숨도 안 쉬고 곧장 답했다. “응.” ‘헉...’ 정은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아니, 이걸 이렇게 바로 인정해?’ 잠시 정적이 흘렀고, 정은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 공개해요, 괜찮죠?] 그 순간, 재석은 숨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30화

    정은이 잔을 들고 거실로 돌아왔을 때, 이미 소진헌은 재석에게 술을 따라주며 한참 좋은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밥상 분위기는 예상보다 훨씬 ‘훈훈’했는데, 적어도 소진헌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낄 터였다.술이 석 잔, 네 잔 오가자 소진헌의 말투도 점점 느긋해지고, 분위기엔 살짝 취기가 돌기 시작했다. “조 교수, 내가 좀 속내를 잘 안 드러내는 편인데 말이지.” 소진헌이 잔을 들며 진지하게 운을 뗐다. “사람이 좋아 보여도, 진짜 마음 열고 지내는 친구는 몇 안 돼.” “근데 이상하게 조 교수는... 처음 봤을 때부터 좀 다르더라고. 말로 설명은 안 되는데, 그냥... 뭔가 통하는 느낌? 이게 뭐랄까, 인연이지 인연.” “그게 말이야... 그냥 딱 느낌 오더라고. 나이 차이는 좀 있어도, 말도 잘 통하고 마음도 맞고! 그냥... 오래된 친구 같아. 우리, 진짜 그런 사이 되는 거지?”재석은 애써 웃음을 지었다.‘아, 저는 그렇게까지 마음이 통한다고 생각 안 했는데요.’‘이거... 분위기 어떻게 빠져나가지?’이미숙은 잔을 탁 내려놓으며 투덜거렸다.“여보, 또 시작이에요? 술만 마시면 꼭 말이 많아진다니까요. 이번엔 또 뭔데요? 의형제라도 맺자는 거예요?”소진헌은 곧장 손을 번쩍 들었다. “나야 좋지! 언제든 가능!” 재석은 더욱더 불안했다.‘이거 술자리지, 무협 소설 실사판 아니죠...?’ 이미숙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조 교수, 신경 쓰지 마. 저 사람, 술만 마시면 저래. 평소엔 멀쩡한 사람인데...” ...식사가 끝나고, 정은이 일어나 식탁을 정리하려 하자 재석도 자연스럽게 일어나 소매를 걷었다. 마치 수백 번 함께 해본 듯 척척 맞는 타이밍과 손놀림. ‘이 집 풍경이 왜 이렇게 익숙하지?’ 정은은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꾹 참았다. “조 교수, 앉아계셔. 손님이신데 내가 치울게.” 소진헌이 나섰다. “정은아, 그만하고 조 교수랑 거실 가서 텔레비전이나 봐. 이건 아빠가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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