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각, 화성.소한은 침상에 기대앉아 부장군 여만서가 건넨 몇 권의 군무 문서를 보며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왜 이렇게 적은 것이냐?”여만서는 공손히 답했다. “장군님께서는 중상이 아직 낫지 않으셨으니, 쉬셔야 합니다. 다른 군무는 두 종사관들과 모두 처리했습니다.”그 말을 듣자 소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난 아직 죽지 않았다.”그의 말에는 불만이 가득했다.여만서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주상 전하께서 저와 두 대감에게 소 장군님을 따라 화성으로 출정하라 명하시기 전, 분명하게 일러 두셨습니다. 만약 장군님의 몸이 좋지 않으면, 장군님을 대신하여 일을 처리해도 된다고 말입니다.”소한은 그 말의 숨은 뜻을 알고 있었다.그의 표정이 전보다 더욱 싸늘해졌다. 그는 여만서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게 무슨 뜻이냐, 나의 권한을 빼앗고 싶다는 것이냐?”여만서는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눈빛으로 소한의 싸늘한 얼굴을 마주했다. “장군님께서는 십 일 전 전투에서 우리 군이 얼마나 많은 병력을 잃었는지 아십니까? 만약 장군님께서 고집대로 적군 패잔병을 쫓지 않으셨다면, 천 명이 넘는 병사들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죽지 않았을 것이다?”소한의 말에는 멸시가 담겨 있었다. 그는 비웃음을 터뜨렸다.여만서는 그의 비웃음에 곧장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마음속 분노를 억누르며 침착하게 말했다. “어찌 되었든, 장군님께서는 중상을 입으셨으니 푹 쉬셔야 합니다. 며칠 더 지나면 평양원군께서 오셔서 화성 관련 업무를 인계받으실 겁니다.”그 말을 들은 소한의 두 눈이 커졌다. “뭐라? 평양원군이 온다고?”“예. 대군 자가께서 이미 출발하셨습니다.”여만서는 다소 의기양양한 듯한 태도로 말했다.그는 최지습이 오면 분명 소한의 모든 병권을 빼앗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소한은 완전히 몰락할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는 소한의 관심 밖이었다. 그는 이어서 물었다. “그럼, 그 애는 어찌됐단 말이냐?”그 애?여만서는
그 말을 들은 목설원은 곧장 한 걸음 뒤로 물러섰고, 손에 부채를 접으며 방어 태세를 취했다.“아니, 이보시오, 선한 마음을 곡해하려하지 마시오! 우리 목씨 가문은 사업 영역이 워낙 넓어 정보망이 닿지 않는 곳이 없소. 소식 하나 전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그러시오? 당신들 소 장군이 변방에서 미쳐 날뛰고 있으니, 주상 전하께서 사람을 보내신 것 아니겠소? 이것저것 따져봐도, 평양원군 말고 나설 만한 자가 어디 있겠소?”소하?소하는 소한의 친형이니, 사이가 너무 친밀한 나머지 그를 제어하지 못할 것이다.그러니 최지습이 갈 수밖에 없었다.별생각 없는 간단한 추측일 뿐인데, 이들이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받아들이니 무서울 지경이었다.최지습은 개의치 않고 목설원 뒤에 놓인 마차를 보며 말했다. “안전한 것이오?”목설원은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물론이오! 우리 목씨 가문의 마차는 천하제일 장인을 불러 만든 것이니, 하루에 천 리를 가더라도 평지를 달리듯 안정적이오!”“고맙게 되었소.”최지습은 감사를 표하고는 목설원을 지나쳐 마차를 끌어왔다. 말 세 마리가 마차를 끌었다. 모두 최상급의 말이었다.호랑이군들은 한눈에 이를 알아봤다. 전투용 말로도 쓸 수 있는 것을 목씨 가문은 마차를 끄는 데 쓰고 있으니, 정말 사치스러웠다.최지습은 마차를 김단의 앞에 끌어다 놓고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타 보시오.”김단도 사양하지 않았다.이전까지 타던 마차가 너무 불편했기에, 계속 타다가는 걸음이 지체될까 봐 걱정되었다.이에 김단은 최지습의 부축을 받아 마차에 올랐다. 목씨 가문의 마차가 편안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 마차는 이전 것보다 훨씬 더 호화스러웠다.거대한 마차 안은 작은 방처럼 꾸며져 있었고, 필요한 것이 다 있었다.마차 밖에서 목설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에 있는 물건들은 모두 새로 들여놓은 것이니, 편히 사용해도 좋소.”정말 세심한 배려였다.김단은 마차 창을 열어 목설원을 보며 살짝 웃었다. “오라버니
모두의 시선이 소리 나는 쪽으로 향했다. 정말로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무리의 행렬이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그중 마차 한 대가 유난히 거대했다. 길상진에 있던 마차보다도 커 보였다.마차 위의 깃발이 바람에 흩날리며 황혼의 햇빛에 비춰 희미하게 '목'이라는 글자가 보였다.“목씨 가문의 마차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이오?”넷째 도령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나지막이 물었다.김단이 목씨 가문 사람이라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기에, 목씨 가문의 마차를 보자마자 무의식적으로 김단을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했다.둘째 도령은 상대적으로 침착하게 말했다. “목씨 가문의 사업이 번창하여 한양에도 몇몇 사업체를 차렸다고 하니,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지.”“하지만 마차가 이렇게 커다란 것을 보아, 그들 가주의 것인 듯하네.”셋째 도령은 그 말과 함께 무심코 김단을 바라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아니면, 저 마차를 빼앗아 단이 낭자를 태우는 건 어떻소? 저 마차라면 분명 편할 것이오.”“…”김단은 셋째 도령이 의외로 강도 같은 면모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최지습은 천천히 다가오는 행렬을 보며 다소 굳어진 표정을 하고 입을 열었다. “빼앗을 필요 없네. 저들은 마차를 가져다주러 온 것이니.”그 말을 들은 김단은 깜짝 놀라 행렬을 바라보았다.행렬은 점점 가까워졌고, 깃발 위의 '목' 자도 점점 크게 보였다. 이윽고 가슴속 불안감도 점점 커져갔다.정말로 그들은 그녀를 찾아온 것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목씨 가문의 행렬이 그들의 앞에 멈춰 섰다.호랑이군의 도령들은 당연히 목씨 가문 사람들을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다.하지만 마차에서 내린 목설원은 여느 때처럼 능글맞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아이코, 우리 단이 낭자, 정말 오랜만일세. 이 오라비가 무척이나 보고 싶었지 뭔가!”목설원은 그렇게 말하며 부채를 흔들며 마차에서 내렸다.김단은 그를 흘깃 쳐다보고는 저도 모르게 살짝 고개를 저었다. “오라버니, 춥지 않으십니까?”이 추운 날씨에 부채
당국은 돌궐과 달랐다. 목씨 가문의 지원으로 당국의 국력은 막강해졌으며, 병력 또한 조선보다 우위에 있었다.만약 소한이 정말 분별력을 잃는다면, 그 결과는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다.호랑이군은 화성으로 동행하는 것이 적절했다.최지습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자네 휘하에 쓸 만한 사람이 더 있는 것인가?”소하는 웃으며 답했다. “대군의 군사들만은 못하지만, 쓸 만한 인재가 몇 명 더 있습니다. 맹 씨 가문 일을 조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이 말을 들은 최지습은 그제야 안심했다.소하의 인품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허풍을 떠는 사람이 아니었다.심지어 그가 말한 '쓸 만한 인재가 몇 명 있다'는 말은 충분히 겸손한 표현이었다.소하 역시 과거 최지습과 함께 전장을 누볐던 사람인데, 능력이 어찌 그보다 못하겠는가?한양의 일을 그에게 맡겨야지만 최지습은 안심할 수 있었다.그리고 그에게 맡기지 않으면 누구에게 맡길 수 있겠는가?한양의 정세는 변화무쌍하고, 얼마나 많은 자들이 역모를 품고 있는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몸을 사리려고 들지, 그는 알 수 없었다.지난 몇 년간, 주상 역시 힘겹게 버텨왔다.이에 최지습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한동안 침묵하고 있던 고지운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표정들이 너무 심각합니다. 계속 무서운 어투로 말씀하고 계시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입니까?”그녀는 소하가 아주 큰일을 벌이려는 것 같았고, 소하의 아내로서 자신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예상치 못한 말이 나오자 소하와 최지습은 둘 다 순간 당황했고, 서로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옆에 있던 숙희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공주님께서 하셔야 할 일은, 저택에서 잘 지내시면서 우리 예종 원군께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그 말을 들은 고지운은 납득하지 못했다. “그게 다란 말이냐? 어쩐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구나.”하지만 소하는 웃으며 말했다. “누군가 집에서 나를 기다려
고지운은 따뜻한 차를 받아들다 순간 멈칫하였다.시동생이라는 호칭은 아직 익숙지 않았지만, 친동생이라는 세 글자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그녀는 곧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며 입을 다물었다.그러나 그녀를 이러한 행동은 유난히 깜찍하고 귀여웠기에 김단의 마음을 또다시 기쁘게 했다.시선은 다시 자연스럽게 소하에게 향했다.소하는 차를 마시고 있었고, 표정은 평온했다.하지만 방금 그가 고지운에게 차를 건네고, 고지운이 자연스럽게 받아든 것만 보아도, 두 사람의 사이가 나쁘지 않은 듯했다.이에 김단도 안심할 수 있었다.그녀는 고지운이 좋은 여인이고, 소하 역시 보기 드물게 좋은 사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만약 그들 두 사람이 정말 최지습의 말처럼 마음이 통하여 함께하게 된다면, 그들 역시 아름다운 연인이 될 터였다.그녀가 생각에 잠겨 있는 와중, 최지습이 다시 입을 열어 본론을 얘기했다. “금군 관리에 관련해서는 맹씨 가문과 세자 저하 쪽을 주의해야 하오. 만약 인력이 부족하다면 호랑이군을 배치해 주겠소.”소하는 차를 마시다 멈칫하였다.그는 다소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최지습을 바라보았다. “대군께서 혹 맹씨 가문에 관한 무언가를 발견하신 겁니까?”맹씨 가문의 자객들만으로도 맹씨 가문이 반란을 의심하기에 충분했다.하지만 오늘 최지습의 말투와 태도는 지나칠 정도로 비장했다. 마치 그가 한양을 떠나면 맹씨 가문이 곧장 반란을 일으킬 것만 같았다.두 사람의 말을 듣자 김단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맹씨 가문이 지속적으로 중전 마마에게 독을 쓰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 제가 입궁했을 때, 중전 마마께서 덕빈 마마의 침전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때 연지 한 통을 제게 봐 달라고 하면서 맹씨 부인이 선물한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 연지에는 약왕곡에서 나오는 맹독이 있었습니다. 한양에서는 저와 스승님 외에는 아마 해독할 수 있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그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하자, 고지운도
마치 선녀가 내려온 듯했다.김단은 그녀를 보자마자 마음속 깊이 우러나오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고지운 또한 마찬가지였다.그녀는 거의 발이 땅에 닿자마자 다급하게 김단에게 달려와 와락 껴안으며 말했다. “단이 낭자, 너무 보고 싶었소!”“저도 보고 싶었습니다!”김단은 웃으며 대답했고, 고지운의 등을 가볍게 두드린 뒤 그녀를 놓아주었다.옆에 있던 숙희도 입을 삐죽이며 웃었다. “아씨와 공주님의 정이 이리도 깊으니, 저까지도 샘이 납니다!”그 말을 들은 김단은 숙희를 와락 끌어안았다.“왜 샘을 내는 것이냐? 내가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 바로 너인데!”김단의 말에 숙희는 그제야 활짝 웃었고, 세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얼싸 안은 채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최지습은 옆에 서서 소하와 서로 인사를 나눈 뒤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근래 조정에서 돌궐 왕에 대해 논란이 많지만, 큰일은 아니니 주상 전하께서 해결하실 수 있을 것이다.”최지습이 나지막이 말했다. 며칠간 소하는 궁에 들르지 않았기에 최신 소식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최지습의 말을 듣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공주와 혼인했으니, 그들이 아무리 반대해도 소용없을 겁니다.”“누군가 자네의 금군을 노리고 있네.”최지습이 낮게 경고했다.사실 지금의 금군 총령 자리도 다른 사람의 손에서 빼앗아 온 것이었다.소하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개의치 않는다는 듯 말했다. “괜찮습니다. 저는 이미 조정 일에 마음이 떴습니다.”예전에는 김단을 지키기 위해 권력을 얻으려 했지만, 이제는 자연히 필요 없어졌다.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최지습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니, 자네는 마음을 얻어야 해.”“맹씨 가문이 키우고 있는 그 자객들이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자객들 외에 다른 무언가가 있는지. 왜 맹 대감이 친딸을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았는지, 혹 맹영지가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본 것은 아닌지, 이 모든 것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네. 주상 전하께서도 뭔가 계획이 있을지도 몰라.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