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당의 대문은 꼭 잠겨져 있었다.김단은 대문을 차고 매화당으로 들어갔다.매화당에 있는 하인들은 김단이 올 줄 알고 단단히 준비했지만, 김단이 검을 들고 올 줄 몰랐다.그들은 김단의 흉악한 모습은 봤던 적이 있지만, 그녀가 사람 죽이는 것을 본 적이 없어, 그저 김단이 그들에게 겁을 주려는 줄 생각했다.간이 큰 머슴애가 다가가서 설득했다.“큰 아씨, 노여움 푸시고 어리석은 짓 하지 마십시오. 대감마님께서 오시면..., 악!”머슴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단은 검을 휘둘러 그의 팔을 찔렀다. 머슴애 팔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김단은 두 눈이 시뻘게졌고, 크게 소리쳤다.“임원, 기가 나와!”그러고는 계속 그녀를 막고 있는 하인들을 보면서 차갑게 소리 질렀다.“누가 감히 날 막나 보자!”겁을 먹은 하인들은 황급히 달아났지만, 간이 큰 사람은 여전히 김단 앞에서 그녀를 막았다.“큰 아씨, 침착하게 생각해 보세요. 진짜로 둘째 아씨를 죽인다면 대감마님께서 큰 아씨를 가만히 놔두시겠어요?”김단은 그 머슴애를 뚫어지게 보더니 낮은 소리로 말했다.“죽으려고 작정했구나!”검을 앞으로 뻗더니 순식간에 머슴애의 견갑골을 찔렀다.머슴애의 비명을 듣고, 누구도 더는 감히 나서지 못했다.김단은 검을 회수하고 머슴애를 옆으로 걷어차고는 임원의 침실로 향했다.방 앞에도 두 명의 시녀가 지키고 있었다.김단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가지고 걸어오는 것을 보자, 두 명의 시녀는 다리에 힘이 풀어지더니 무릎을 꿇었다. 설득하고 싶고, 구해달라고 애원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한체 그저 울었다.“큰 아씨, 큰 아씨...”“꺼져!”김단은 차갑게 꾸짖었다.시녀들은 허겁지겁 달아났다.김단은 그제야 방문을 찼다. 임원이 놀라서 탁자 다리에 걸려 넘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김단은 임원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는 마음속의 노여움이 더 커졌다.그녀는 검을 들고 임원을 향해 걸어갔다. 임원은 오히려 김단을 향해 무릎을 꿇으면서 기어갔다.“언니, 제가 잘 못
이때, 그림자 하나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김단과 부딪히는 바람에 검이 임원의 가슴팍을 스쳤다.결국 그녀의 가슴에 상처가 나고 말았다.임학은 깜짝 놀라 서둘러 임원을 안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하지만 김단이 미친듯이 그들을 쫓기 시작했다.그리고 손에 든 검으로 임학의 등을 향해 휘둘렀다.마저 피하지 못한 바람에 길게 상처가 났다.그는 두 손에 힘이 풀려 임원과 함께 바닥으로 쓰러졌다.곧이어 뒤따라오던 진산군이 김단의 두 손을 낚아챘다.“미쳤어?!”만약 김단에게 검을 빼앗긴 호위병이 그에게 알리지 않았다면, 그의 자식들은 모두 김단에게 죽었을 것이다.진산군의 호통에도 불구하고 김단은 정신이 나간 것처럼 소리쳤다.“예, 미쳤습니다! 저 계집이 사람을 시켜 조모께 망언을 하지 아니하였더면, 조모께서도 아무런 일이 없으셨을 겁니다! 지금 당장 저 계집의 혀를 베어버려야 합니다! 그리하면 다시는 조모님을 괴롭히지 못할 겁니다!"진산군은 그제야 임원이 한 짓이라는 것을 알아챈 것 같은 표정이다.그리고 경악을 감추지 못한 채 임원을 바라보았다.임원은 바닥에 엎드렸다.피를 토하며 훌쩍 거리기 시작했다.“소, 소녀는 그저 누이와 아버지가 절연하는 것이 싫어서… 소, 소녀는 누이를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진산군은 그녀의 가여운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아팠다.하지만 김단은 임원의 가식에 머리 끝까지 화가 났다.힘을 주어 검을 다시 임원을 향해 휘둘렀다.하지만 진산군도 그녀를 막지 못했다.그 바람에 팔에 큰 상처가 생기고 말았다.진산군이 아파하기도 전에 김단이 다시 임원에게 다가갔다.그는 그 모습을 보고 김단의 등을 발로 세게 걷어찼다.김단은 결국 바닥으로 날아가더니 피를 토했다.그는 김단이 조용해진 줄 알고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의원이 네 조모를 치료하는 중이다,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일이다! 헌데 왜 이리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것이냐, 어린 누이한테 검을 들이밀다니!”하지만 김단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그저 임원을 죽일 듯
김단은 뛰면서 입가의 혈흔을 닦아냈다.자신이 피를 토했다는 사실을 알게 해서는 안 되었다.조모의 방 앞에 도착했을 때, 수 나인과 의원이 방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곧이어 김단을 보고 의원이 예의를 갖추었다.“큰 마님께서는 괜찮으신 겁니까?”의원이 입을 열었다.“큰 아씨, 큰 마님의 몸이 좋지 않습니다. 침을 통하여 큰 마님의 심맥을 안정시켰사옵니다만, 열흘도 못 버티실 겁니다.”김단이 자리에 얼어 붙었다.믿기지 않는 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아닙니다. 수 나인께서는 조모의 상태가 좋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침대에서 일어나실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어찌하여 열흘도 못 버티시는 걸까.수 나인은 눈물을 훔칠 뿐 이다.의원이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만약 충격을 받지 않았더라면, 두 달은 더 버티셨을 겁니다.”그의 말에 김단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순간 숨도 쉬기 어려워졌다.결국 자신의 일 때문에 조모를 이렇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김단은 임원을 죽이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수 나인은 서둘러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그리고 다정한 말투로 달랬다.“아씨, 큰 마님께서 아직 깨어 계십니다. 들어가셔서 큰 마님을 찾아뵈시지요, 이제 그만 우세요.김단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심호흡을 몇 번 하고는 슬픔을 억눌렀다.또한 얼굴에 혈흔이 있을까 봐 얼굴을 닦았다.눈물을 닦고 진정하고 나서야 방 문을 열었다.방 안은 썩은 듯한 기운이 감돌았다.마치 죽음을 암시하는 냄새 같았다.김단은 또 다시 눈물이 차올랐지만 있는 힘을 다해 억눌렀다.다시 심호흡을 하고 조모의 곁으로 다가갔다.조모는 잠에 든 것 같이 보였다.김단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침상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조모는 인기척을 느낀 듯이 천천히 눈을 떴다.“단이냐?”김단은 무엇인가 자신을 때린 것 같이 코 끝이 찡해졌다.곧이어 부드러운 말투로 답했다.“예, 단이 여기 있습니다!”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이때,
얼마나 아팠을까,단이는 얼마나 아팠을까.조모는 생각하면 할 수록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자신 같은 늙은이는 아무 도움이 될 수 없었다.매일 관저에 있지만 어찌 소식도 들을 수 없었을까.그녀는 자신을 탓하기 바빴다.만약 명정 대군이 어떤 사람인 지 알았다면, 단이를 궁으로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만약 임학 그 못난 놈이 나쁜 짓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았다면, 죽기 전까지 때렸을 것이다.만약...만약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단이가 그러한 수모를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결국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늙어서 김단도 지키지 못하고, 오히려 그녀에게 짐이 되고 말았다.감히 어찌 자신이 아끼던 친 손녀에게 지꺼기 물을 먹일 수 있을까, 조모는 다시 마음이 아파왔다.결국 울음소리를 내고 말았다.그 소리에는 처량함과 절망이 담겼다.심지어 김단이 세답방을 나온 것이 틀린 선택이라고 생각이 들었다.자신이 그녀를 악의 구렁텅이에서 빼낸 것인지, 호랑이의 입 앞에 가져다 둔 것 인지 알지 못했다.가여운 팔자가 아니지 아니한가!김단의 눈물은 더욱 거세졌다.그녀가 조모의 눈물을 닦아내도 계속 흘렀다.곧이어 그녀가 조모를 위로 했다.“조모, 다 지나간 일이옵니다. 소녀, 은애하는 사람이 생겼사옵니다. 그러니 울지 마십시오, 조모께서는 소녀가 혼례복을 입은 모습을 보셔야 하지 않겠사옵니까?”그녀의 말에 조모는 그제야 울음을 멈추었다.슬픔에 잠긴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혼례복 입은 단이의 모습은 실로 고울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자신은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김단은 조모의 생각을 알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예, 조모께서 쾌차하시면 보여 드리겠사옵니다.”하지만 조모는 그저 미소만 지어 보였다.곧이어 눈물이 다시 맺혔다.“단아, 은애하는 분과 멀리 가거라!나도 이제, 이곳에서는 머무르지 않을 생각이니라. 가거라...”김단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요,소녀와 약조하지 않으셨습니까. 소녀가 조모의 곁에 있겠사옵니다!”조모가
한편, 정암이 소 씨 가문 관저에 도착했다.소한은 서재에서 병사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다.정암이 양손에 들고 온 술을 보고 나서야 책을 내려놓았다.그윽한 시선에 정암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소신, 장군과 함께 술을 하려 찾아 왔사옵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한에게 술을 권했다.소한은 술을 건네 받고는 한 입 들이켰다.뜨거운 열기가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그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이것은 취향각의 구담술이 아닌가.”곧이어 미소를 지어 보였다.“집에 횡재가 난 것이냐?”정암이 비싼 술을 두 병이나 가져왔기 때문이다.곧이어 정암이 의자를 가져와 소한의 앞에 앉았다.손에 쥔 술병을 흔들었다."소신이 들고 있는 술은 구담술이 아니 옵니다."그가 들고 있는 술은 소주에 불과했다.소한은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표정이다.정암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장군께 감사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소한은 웃음이 튀어나왔다.“도와준 자는 내 아우다. 헌데, 왜 내게 감사를 표하느냐?”그리고 술을 한 입 들이켰다.정암도 술을 한 입 마시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소하 장군께서 방 안에 계시지 않았더라면, 어찌 아시고 늦지 않게 도와 주셨겠사옵니까.”소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의 눈동자만 점점 어두워질 뿐이다.정암이 다시 말을 이었다.“더하여 소신은 군을 이끌 힘이 없사 옵니다. 형제들이 소신과 함께 태부댁에 가겠다 한 것은, 모두 장군의 명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 하옵니다.”그는 들고 있던 술병을 소한 앞으로 내밀었다.“장군께 감사 인사 올립니다.”소한은 그제야 정암을 바라보았다.하지만 정암의 술병에는 맞대지 않았다.그저 술을 한 입 들이키고는 물었다.“이후에 어떻게 낭자를 지킬 생각이냐.”쌀쌀한 말투였다.그의 목소리가 큰 서재 안에 퍼졌다.정암은 움찔했다.하지만 소한의 눈동자는 계속 그를 바라볼 뿐이다.“오늘은 눈이지만 내일은? 네 몸의 모든 것을 다 쓰고 나면 무엇으로 지키겠냐 물었다.”소한은 알고 있다
혹여 김단과 연관이 있는 일 인가.혹여 김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기분이 좋지 않던 임학은 정암을 보자 더욱 화가 났다.하지만 의원의 경고를 떠올리고는 크게 움직이지 못했다.그저 차가운 말투로 답했다.“그게 자네와 무슨 상관인가?”그리고는 진산군의 관저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하지만 정암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쫓았다.“단이는 어디에 있사옵니까? 관저에 의원이 있사온데, 어찌 밖에서 의원을 찾아오셨습니까? 혹여 관저의 의원께서는 단이를 치료하고 계신 겁니까?”임학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정암이 그의 앞을 막았다.“도련님, 단이는 어찌 되었습니까?”임학은 양손에 약을 들고 있지 않았다면 금방이라도 주먹을 날렸을 것이다.그는 정암의 다급한 모습을 보고 잔뜩 화가 났다.“우리 가문의 일이다, 종사관 따위가 감히 상관 쓸 일이 아니다!”하지만 정암은 길을 비키지 않았다.“저는 가문이 아니라, 단이에 대해 물었사옵니다.”“감히!”정암은 여전히 길을 비키지 않았다.임학은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자신을 끝까지 붙잡을 것이라 생각했다.게다가 등의 상처가 심한 탓에 얼른 돌아가 누워 있고 싶었다.“네 단이는 멀쩡하다! 내 등의 상처가 바로 그 계집이 낸 것이다! 그 계집은 멀쩡한데, 임원이 많이 다쳤다. 의원께서는 지금 임원을 치료하고 계신다.그리하여 내가 다른 의원을 찾아 나온 것이다! 이제 되었느냐? 비키거라!”임학은 크게 외치고 나서 정암을 치고 앞으로 걸어갔다.정암은 김단이 무사하다는 말에 안도했다.하지만 무언가 생각 난 듯이 서둘러 다시 임학을 쫓았다.“낭자는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헤칠 여인이 아니옵니다. 혹여 낭자를 괴롭히셨습니까?”임학은 정암이 미쳤다고 생각했다.“다친 것은 나와 원이다. 우리가 어찌 그 계집을 괴롭힐 수 있겠는가?"그는 정암을 바라보았다.어리석기 그지없다.하지만 과거 일을 떠올리면 어떠한 반박도 할 수 없었다.정암의 말이 맞다.그 계집은 무고하게 누군가를 헤칠 인간이 아니다
임학은 한참 걸어도 화가 수그려지지 않았다.의원의 당부가 없었다면, 당장 돌아가 정암에게 주먹을 휘둘렀을 것이다.그는 관저로 돌아오자마자 매화당으로 향했다.임원의 상황도 살펴보고, 자신의 상처도 의원에게 보여 줄 생각이었다.지혈은 했지만 밖의 의원은 믿음이 가지 않는 모양이다.매화당의 문 앞에 도착하자 금방 치료를 끝낸 의원과 마주쳤다.의원은 그를 보고 예의를 갖추었다.“도련님을 뵙습니다.”임학은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원이의 상처는 어떠하오?”의원이 답했다.“우려 안 하셔도 돼옵니다, 큰 아씨의 검이 완벽하게 빗겨 나가 생명에는 위험이 없사옵니다. 가슴 팍의 상처도 깊지 않아 몸종에게 약을 바르라 시켰사옵니다.”임학은 그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김단의 검술은 자신이 가르쳤기 때문이다.하지만 잠시뿐 이었다.어렸을 때 괴롭히는 사내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 알려 준 기술이다.그 기술이 자신의 여동생에게 쓰일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임학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원이 옆에 잠시 있다가 의원을 찾아가겠소이다.”그는 매화당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이때, 의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작은 아씨는 지금 매화당에 계시지 않습니다.”임학은 깜짝 놀랐다.“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는데, 어디 갔단 말이오?”의원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입가에는 비웃음이 섞였다.“아씨께서는 아씨가 큰 마님을 다치게 하였으니, 안채로 가서 무릎 꿇고 용서를 비겠다 하였나이다.”그의 말에 임학은 심장이 떨려왔다.곧바로 몸을 돌려 안채로 향했다.의원은 멀어져가는 임학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저 고개를 저으며 한숨만 내쉴 뿐 이다.잠시 뒤, 임학이 안채에 도착했다.의원의 말대로 임원이 조모의 방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양옆으로 진산군과 임 씨 부인이 그녀를 설득하고 있었다.하지만 임원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상처에 피가 흘러도, 얼굴이 창백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임학은 눈살을 찌푸렸다.다가가서 그녀를
“원아, 네가 선의의 마음으로 그랬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 않느냐, 저번에도 단이에게 크게 혼났는데, 어찌 기억을 못 하는 것이야? 알다시피 단이가 제일 걱정하는 이는 조모다, 네가 조모를 건드리면 그 계집이 너를 죽이려고 달려들 것이란 말이다!”임원은 임학의 말에 고개를 푹 숙였다.눈물이 한 방울씩 바닥으로 떨어졌다.하지만 눈가에는 전혀 다른 의도가 감돌았다.그렇다, 모를 리 없다.조모는 김단의 '약점' 이다,만약 조모가 죽지 않으면 김단도 관저를 절대 나가지 않는다.절연?말이 되는 소리!김단이 진정 절연을 하고 싶었다면,명정 대군에게 얻어맞았을 때야말로 해야 했다.아니, 3년 전에야말로 절연해야 했다!하지만 결국 김단은 여전히 관저의 큰 아씨라는 신분을 지키고 있지 않은가.임원, 자신이야말로 관저의 아씨다.헌데 어찌 김단에게 억압 당하고, 위협을 당하는 것인가.저번에도 다섯 날 동안 아무것도 마시지도, 먹지도 못했다.다음에도 김단이 자신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더 이상 소한의 약혼자가 아님에도 자신의 혼례는 늦춰지고 있다.아버지, 어머니, 오라버니 모두가 김단을 아끼고 있다!그녀는 무서웠다.모든 것이 다시 김단에게 돌아갈까 봐 두려웠다.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임원은 어떻게든 김단을 내쫓야만 했다.그녀는 생각할수록 눈물이 더욱 거세졌다.상처는 생각하지 않고 방 문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조모, 모두 소녀의 잘못이옵니다.소녀가 어리석었사옵니다. 그저 누이와 헤어지는 것이 싫어 그리하였사옵니다. 모든 잘못은 소녀의 것이옵니다!”그리고는 머리를 계속 조아렸다.아물지 않은 상처에 피가 흘러 그녀의 옷에 묻었다.임 씨 부인은 마음이 아팠다.서둘러 임원 옆에 앉아 그녀를 부축했다.이때, 조모의 방문이 열렸다.김단이었다.빨갛고 부은 눈에 초췌하기 그지없었다.그녀는 그들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문을 닫았다.김단은 임원에게 다가갔다.미친 것처럼 날뛰다가 한바탕 울기까지 한 탓일까
김단은 맹영지를 소하가 있는 곳으로 보게 하였다.허나 맹영지는 반응이 느리고,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에 소하를 바라보지 않았다.“소하라고 하는 사내입니다. 기억하십니까?”김단은 여전히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허나 소하의 이름을 들어도, 맹영지는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이러한 그녀의 모습에 소하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이리 상황이 좋지 않을 줄은 몰랐소.”김단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소하 오라버니께서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하여 낭자를 보살 피겠나이다.”곧이어 소하의 시선이 김단을 향했다.찌푸린 미간은 펴질 줄 몰랐다.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인가.사실 그는 맹영지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눈앞의 감회는 그저 오늘날과 이전의 다름에서 온 것이라 말할까,마음에는 김단의 안위만 생각하고 있으니, 다른 생각 하지 말라고 말할까.헌데 만일 그녀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면, 할 말이 없지 않은가.소하는 여러 생각에 휘잡혔다.허나 생각했던 말은 내뱉지 않았다.“중전 마마께서 낭자와 맹 낭자를 처소로 들이시는 것은, 분명 다른 생각이 있으실 것이오. 그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소?”김단이 고개를 저었다.“사실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나이다.어쩌면 맹 씨 집안 때문이 아니겠습니까?”“어찌 되었든 간에, 낭자가 중전의 처소로 들어갔으니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것과 같소. 항상 조심해야 하오.”“소하 오라버니, 염려하지 마시옵소서.제게는 오라버니께서 가르쳐 주신 방도가 있지 않사옵니까.”그녀의 말에 소하가 고개를 숙이고 미소를 지었다.“돌을 은침으로 대신하여, 민대부를 반나절 동안 아우성치게 하지 않았소.”“반나절이라니요, 반 시진도 가지 못했나이다!”김단은 소문이란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소하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그래도 큰 인물이 되지 않았는 가.”“스승이 잘 가르쳐 준 덕분입니다.”김단은 서로 치켜세우는 상황에 웃음을 터트렸다.“중전 마마께서 기다리
해가 서쪽 하늘에 기울 무렵, 김단이 맹영지를 데리고 궁으로 들어갔다. 경씨가 옆에 서있었다.그의 얼굴에는 염려가 가득했다. 허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전하가 김단에게 맹영지와 함께 궁으로 들라는 명을 내리지 않았는 가.만일 대군께서 한양에 계셨다면 막을 수 있었을 터, 한낱 마부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궁궐은 워낙 넓고, 궐 안의 금군 중에는 무예가 뛰어난 자들이 넘쳐 난다.더하여 내각에는 임금을 지키는 호위들이 따로 존재한다.자신이 몰래 궁에 들어가 낭자를 지키려 든다면, 날이 밝기도 전에 역적이라 오해를 받아 온몸이 찢길지도 모른다.김단은 경씨의 표정을 보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경씨 도령, 염려하지 마시 옵소서. 제 몸 하나는 제가 잘 챙길 수 있사옵니다.하물며 소하 오라버니는 금군의 총령이니, 만일 무슨 일이 생기게 되어도 도움을 청할 수 있나이다.”경씨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부디 조심하시오.”경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숙희가 붉은 눈가를 한 채로 입을 열었다.“아씨, 노비는 궁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옵니까?”숙희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그저 김단과 함께 궁으로 들어가고 싶었다.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도움을 줄 수 없다 하여도 자신이 뒤집어쓸 수 있지 않은가.허나 김단은 만일 하나 일이 생겨도, 숙희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나는 그저 작은 의녀에 불과해.중궁전에 거처하면서 내 몸종까지 데려간다 하면, 중전의 사람을 꺼려 한다면서 입을 놀릴 것이야.”숙희는 어렴풋이 그저 둘러대는 것일 뿐이라 느껴졌다.허나 반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궁 안의 규칙이 수도 없이 많은 탓에,진정 구설수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은 가.혹여 자신이 아씨를 해할 수도 있지 않은가.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숙희는 참을 수 밖에 없었다.뜬 눈으로 김단이 맹영지와 함께 궁궐 문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양쪽으로 큰 성벽이 둘러쌓여 있어,알 수 없는 압박감에 맹영지가 긴장을 했다.그녀의 두 손은 김단의 팔을 꼭
“황공하옵니다, 마마.”향 하나를 다 피우고 나서야, 김단은 중전의 처소를 떠났다.그리고 서아름을 살피기 위해, 복화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서아름은 처음 만났을 때 보다 많이 말라 있었다.안색도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허나 자신의 나인 앞에서는 이따금 지친 기색을 보였다.마치 나인에게 곧 죽을 사람처럼 행실 하곤 했다.다행히도 나인은 눈치가 없었다.하루 종일 놀기만 하고, 서아름을 살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그 덕에 서아름도 마음이 편했다.김단을 보자 서아름이 서둘러 그녀를 배웅했다.“의녀께서 오셨나이까! 어서, 안으로 들이시옵소서!”김단은 서아름에 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물을 따라 주었다.“다 의녀의 덕분이옵니다. 근래에 걸음걸이도 훨씬 가벼워졌나이다!”사람의 몸은 아프지 않아야, 건강하다는 것을 인지 할 수 있다.낮에는 정신이 또렷하고, 밤에는 편히 잘 수 있었다.허나, 김단의 안색이 그녀와 반대로 어두웠다.“오늘 날, 전하께서 중전 마마를 옆에 두시고 숙원 마마의 상태에 대해 여쭈셨나이다.소신은 전하께 마마의 몸이 연약하지만,아이는 무탈하다 아뢰었사옵니다.”서아름이 움찔했다.그녀는 덕빈을 오랜 시간 시중을 든 사람이다.어찌 김단의 뜻을 모를 수 있는 가.자신은 살지 못하지만, 아이는 살 수 있다는 뜻이다.서아름은 한참을 움직이지 않다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이만 무탈하면 돼옵니다. 소인은 그저 덕빈께 아이 하나만 남겨두는 것만으로 족합니다. 아이만 무탈하면, 제 미천한 목숨 하나가 중요하겠나이까.”김단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그녀는 서아름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아이와 그녀의 목숨은 똑같은 것이라고.사람의 목숨에는 신분이 없듯이, 미천한 목숨이라는 것은 없다.더하여 귀식환 제조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제조에 성공만 하면, 서아름을 궁에서 떠나 새로운 삶을 보낼 수 있었다.허나 김단은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귀식환 제조를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실패로 돌아간다
김단은 중전의 뜻을 금방 알아챘다.중전이 서아름을 해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 뱃속의 아이 때문이었다.만일 김단이 아이가 무탈하다 말했다가, 훗날 서아름이 아이와 함께 목숨을 잃게 되면, 임금이 그녀를 의심할 것이 뻔하다.중전은 김단에게 눈치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김단은 시선을 거두었다.고개를 숙인채, 자신의 발만 쳐다보며 말했다.“중전 마마께서 내려주신 귀한 보약 덕에, 숙원 마마의 태아는 무탈 하옵니다. 숙원 마마께서 끝까지 버텨내신다면, 태중의 용태는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옵니다!”김단의 말에도 중전의 살기 서린 눈빛은 여전했다.허나 임금은 만족한 듯, 미소가 짙어졌다.그는 뒤를 돌아 중전을 바라보았다.그녀의 손을 잡고는 다정하게 말했다.“다 중전 덕분이오.”중전은 살기 서린 눈빛은 온데간데 없고, 온화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임금의 칭찬에 그저 미소를 지어 보였다.“주상께서 후궁의 일을 신첩에게 맡기셨으니, 어찌 주상의 근심을 덜어드리지 않겠사옵니까.”“잘하셨소!”곧이어 임금은 몸을 뒤로 옮기더니, 중전의 귓가에 속삭거렸다.중전이 부끄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기다리고 있겠나이다.”“하하하, 알겠소.”임금은 그제야 손을 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짐은 아직 정사가 남았소, 자네는 중전 곁에서 말동무를 해주시오.”뒷부분은 김단을 향한 말이었다.김단은 예, 라 대답하며 임금을 배웅했다.임금이 자리를 떠나자마자, 중전이 김단을 바라보았다.쌀쌀한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보아하니, 의녀는 주상의 총애를 받아 자신의 주관이 뚜렷 해지셨소.”중전의 말투에 김단의 심장이 철렁했다.김단은 서둘러 무릎을 꿇었다.“부디 중전 마마께서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소신은 마마를 위함이었나이다.”그녀의 말에 중전이 코웃음을 쳤다.그제야 천천히 물어보았다.“말해 보시오.”“부디 마마께서 깊이 헤아려 보시옵소서. 전하께서 후손을 이토록 중히 여기시거늘, 만일 소신이 숙원 마마의 태중이 위태롭다 아뢰
임금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수고가 많았다.”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중전이 입을 열었다.“전하, 신첩 또한 의녀가 수고가 많다 생각하옵니다. 영지를 돌보시는 것도 벅차신데, 궁중의 후궁들까지 살펴야 하시니 말이옵니다. 차라리 영지를 신첩의 처소로 옮겨 이곳에서 돌보게 하는것이 어떠하옵니까? 의녀는 본디 평양 대군의 관저에 임시로 거처 중이시고, 그런 곳에 사람을 데려가는 것이, 체면상 온당치 않은듯하여 감히 아뢰옵니다.”평양 대군 관저에 김단은 손님에 불과하다.어찌 손님이 손님을 데려갈 수 있단 말인 가.하물며 맹 씨 집안의 자녀가 평양 대군 관저에 머무는 것에 대해 소문이 퍼질지도 모른다.임금도 같은 생각이다.맹영지를 중전의 처소에 머물게 하는 것이, 평양 대군의 관저에 머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중전은 맹영지의 친 고모이며, 처소에서 병을 돌보는 것이 수월하지 않은가.허나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허나 맹 가의 계집은 이 자만 알아본다 하지 않았소? 만일 이곳으로 옮겨,소란을 피우게 된다면 중전의 병세를 더욱 악화 시킬지도 모르오.”임금은 중전을 걱정하고 있었다.다정한 말투에 중전의 뺨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염려하지 마시 옵소서. 의녀도 처소로 옮겨와 머물면 되지 않겠나이까.”맹영지가 알아보는 사람이 김단 뿐 이라면, 김단을 중전의 처소에 머무르게 하면 되지 않는가.그녀의 말에 김단의 얼굴이 굳어졌다.중전의 자신의 제안이 마음에 들은 모양이다.“그리하면 의녀도 수고를 덜 하겠지 않나이까.”임금도 중전의 제안이 마음에 들었다.곧이어 김단을 향해 물었다.“자네는 어찌 생각하는 가?”김단은 내키지 않았다.궁중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허나 김단은 공주의 사람이다.공주와 중전이 같은 편이니, 중전의 제안을 감히 거스를 수는 없었다.곧이어 절을 하고 말했다.“중전마마의 각별한 보살핌에 몸둘바를 모르겠나이다.”그녀의 대답은 다른 자가 듣기에는,중전의 제안에 만족한 것처럼 보였다.옆에
김단의 미소를 보아도, 맹 씨 부인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맹 씨 집안의 안주인이 되어서, 어찌 김단의 속과 겉이 다르다는 것을 모를 수 있겠는 가.비록 미소를 짓는 모습이 온화하기 그지없지만, 자칫하면 그들을 물어 집안을 피바다로 만들 수 있었다.또한 김단의 뒤를 봐주는 자들은, 감히 그들이 거들떠도 보지 못하는 인물들이 아닌가.오늘 김단은 말리려고 하지도 않았다.오히려 맹 씨 집안의 체면을 고려하여, 그녀가 맹영지를 데려가지 않은 것이다.이러한 생각에 맹 씨 부인은 답답함을 느꼈다.허나 김단을 향해 미소를 짓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맹 씨 부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김단의 미소가 점차 사라졌다.곧이어 숙희가 김단의 곁으로 다가갔다.목소리를 낮추고는 물었다.“맹 아씨의 친 모친이옵니다. 어찌 친 딸을 해하겠나이까, 혹여 아씨께서 너무 깊게 염려를 하신 것이 아니옵니까.”“내가 그 생생한 본보기가 아니더냐.조금만 생각하면 알게 되는 법이지.”김단은 말하면서 맹영지에게 시선을 돌렸다.맹영지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금색의 계화 꽃잎이 떨어지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고개를 숙여 자신의 치마를 바라보았다.만일 맹 씨 부인이 ‘맹영지의 상황이 이리 심각할 줄 몰랐다’ 라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김단이 직접 맹영지를 맹 씨 집안의 마차로 올려 보냈을 지도 모른다.자신의 피가 흐르는 친 자식을, 어찌 사, 오 년 동안 상황을 몰랐던 것일까.마치 그녀가 세답방에 버려지고, 삼 년 동안 어떠한 안부도 묻지 않는 그 자들과 같은 모습과 같았다.허나, 정승댁은 세답방이 아니다.맹영지는 노비가 아닌 그저 댁의 맏며느리가 되기 위해 정승댁으로 향한 것이다.어찌 친부모가 되어 아무것도 모를 수 있겠는 가.더하여 중전이 독이 맹 씨 집안의 소행이라 의심을 품고 있는 중이다.오히려 정승댁이 맹 씨 집안보다 더 안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겉으로는 물러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한 수 앞을 보아 맹영지를 이곳에 머무르게 한
맹 부인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손을 거두고 두려운 표정으로 맹영지를 바라보았다.“어찌 이럴 수 있으십니까?”무언가 떠오른 것 마냥 김단을 향해 바라보았다.“의녀, 영지가..”김단은 그제야 미소를 지어 보였다.곧이어 맹영지의 곁으로 다가갔다.“다 나았나이다.”그녀의 한 마디에 맹영지는 천천히 진정을 되찾았다.두려운 눈빛이 점차 평온해졌다.맹 씨 부인은 이러한 모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곧이어 김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낭자께서는 소인만 알아볼 수 있으십니다. 다른 이들이 다가간다 하여도,밀쳐 내실 겁니다. 부인도 똑같이 밀쳐 내실 것이옵니다. 제 몸종도 낭자에게 긁혀 손에 상처를 입었나이다.”김단의 말이 끝나자마자, 숙희가 맹 씨 부인에게 손을 보여 주었다.어제 맹영지에게 긁혀 생긴 상처였다.다행히도 김단의 설득 아래,맹영지는 드디어 숙희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그제야 그녀의 시중을 들게 해 주었다.김단의 말에 맹 씨 부인의 얼굴이 굳어졌다.“오늘 데려 가지 못한다는 뜻이옵니까?”“아니옵니다.”김단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소인은 그저 맹 낭자께서 이곳에 계시는 게 나을 듯 하옵니다. 허나, 낭자께서는 맹 씨 집안의 자식이 아니 옵니까. 부인의 뜻을 따르겠나이다.”데려 가는 것이 결코 좋지 않다는 뜻이다.현재의 맹영지의 상황으로 보아, 억지로 데려 가는 수 밖에 없었다.부모가 되어 어찌 자식에게 좋지 않은 선택을 한단 말인 가.맹 씨 부인은 어찌 할 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대감이 맹영지를 데려오라고 신신당부했었다.허나 이 상황에 평양 대군 관저의 문을 나갈 수 있다 한들,맹영지가 소리치는 모습에 다른 이들이 소문을 퍼트릴 수 있다.잠시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의녀께서는 높은 의술을 가지고 계시라 믿나이다. 혹여 영지를 잠재울 수 있는 수가 있사옵니까?”‘잠’ 이라 했지만, 사실 기절을 시킬 수 있는지 물어본 것이다.그리해야 조용히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김단이 고개를 끄덕였다.“소인에게 약은
이튿날 아침, 김단은 궁무를 맡지 않았기에 평양관저에 머물며 맹영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맹영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단의 곁에 있을 때만큼은 그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조용한 정원, 김단은 맹영지와 함께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계수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숙희가 건네준 과자가 들려 있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있었다. 맹영지는 고개를 들어 만개한 계화를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소하가 평양관저를 찾아왔으나 그는 맹영지와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려 애썼다. 아마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김단은 맹영지를 바라보며 과거 소하가 왜 그리도 그녀를 칭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때 소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답게 그녀는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이었는데 맹영지는 어쩌다 소하에게 독을 먹이려 했던 것일까?김단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맹영지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그때 자연스럽게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김단이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평양관저의 겸인이 급히 달려와 말했다.“아가씨, 맹가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이런 큰일이 발생했으니 맹씨 집안에서 그녀를 보러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겸인에게 말했다.“알겠소. 이리로 모셔오시오.”잠시 후, 맹씨 부인이 정원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김단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한 뒤 슬픈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김 의원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의원님이 아니었다면 제 딸이 그 짐승 같은 자에게 학대받으며 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맹씨 부인의 눈동자가 붉어졌다.김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과찬이십니다, 맹씨 부인. 민태훈, 그 자의 말에 따르면 맹영지 아가씨의 병은 이미 4~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완전히 회
소한은 코웃음을 치며 말없이 등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하의 조용한 목소리가 방안의 침묵을 깨뜨렸다.“이번에는 정말 잘했어.”영의정 저택에서 벌어진 일은 소한이 형벌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소하의 귀에 들어갔다. 만약 소한이 과감하게 영의정 저택에 침입하지 않았다면 김단은 쉽게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비록 민씨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김단을 해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녀가 겪었을 모욕과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소하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소한은 많이 당황한 듯했다.“제가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때로는 그 충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소한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김단의 얼굴을 떠올렸다. 처음에 그녀도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듯했지만 곧 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였다. 김단은 마차에 오를 때까지 자신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과거의 그녀였다면 그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그의 품에 안기며 그를 향해 미소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차갑게 변해버렸다. 자신을 외면하는 그녀가 소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며 굳게 결심했다.그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이미 어떤 대가든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반 시진 후, 김단은 방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러자 숙희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아가씨?”김단은 정신을 차리고 숙희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냐?”“두 도련님께서는 모두 돌아가셨습니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전 발생한 일을 되새겨 보았다. 그녀는 소한이 오랫동안 계획해 온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는 소가를 위해, 전하를 위해 심지어 임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그녀만은 제외였다.그녀는 소한이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하는 척하며 평양관저로 따라온 것도 단지 자신의 동정심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상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