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 소하, 임학, 소한...그들은 합심하여 그녀를 깊은 심연으로 밀어 넣고 있다!그 순간 임원은 줄곧 두려워하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진산군 댁 사람들이 자신을 버리고 혐오할까 두려움에 떨었다!그리고 지금 그녀는 정말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은 것 같았다...임원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김단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자네가 말하지 않겠다면 내가 대신 말하겠소. 자네는 구서와 오래전 결탁하여 나를 해치려 했고, 마침 사건 3일 전 법화사에서 법회를 연다는 것을 알고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을 것이오. 이후 자객들을 매수해 소씨 가문의 여인들을 납치하였소!”“물론 자네들의 목표는 나뿐이었을 것이오. 모든 소씨 가문의 여인들을 납치한 것은 자네 스스로를 피해자로 보이게 하기 위한 연막이었을 뿐!”“구서는 원래 방탕한 자였기에 그의 부하들은 그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 정원 낭자를 내가 있던 곳으로 데려왔소. 하지만 구서는 감히 소씨 가문을 건드릴 수 없었기에 사람을 시켜 정원 낭자를 다시 내보냈지. 나는 구서가 방심한 틈을 타 그를 기절시켰고, 정원 낭자를 데리고 나간 자들이 돌아오기 전에 숲으로 도망쳤소.”“그리고 자네는 내가 도망쳤다는 것을 알고 가장 먼저 구서를 찾아갔을 것이오. 그때 그 자가 나에게 맞아 정신이 혼미해진 것을 보고 훗날 소씨 가문이 그에게 책임을 물을 때 그가 모든 것을 털어놓을까 두려워 그 자를 죽인 것이오!”“검은 옷을 입은 자객들은 구서가 죽었기에 자네에게 돈을 받으러 갈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자네 말만 듣고 협박당한 척 연기를 하게 된 것이오! 내 말이 맞지 않소?”김단은 사건의 진상을 밝혀 모든 사람이 임원의 실체를 알게 했다.소정원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러니까 큰 올케는 구서가 나와 어머니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일부러 도망친 것이라는 말이군!”소씨 부인도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말이 맞다. 구서가 아무리 못돼도 우리 소씨
그 누구도 임원의 갑작스러운 공격을 예상하지 못했다.하지만 임원은 무술을 배운 적이 없었기에 김단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김단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두 걸음 뒤로 물러섰고, 발차기를 할 준비를 했다.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강하게 뒤로 잡아당겼다.소하가 손으로 임원의 어깨를 밀었고, 임원은 순식간에 날아가 땅바닥에 떨어졌다.'쨍그랑'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칼 한자루가 땅에 떨어졌다.김단은 깜짝 놀랐다. 임원이 그녀에게 달려들며 손에 작은 칼을 숨기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이내 김단은 정신을 차리고 멍하니 소하를 바라보았다.대청에 있던 모든 사람들 역시 깜짝 놀랐다!첫째로 임원이 감히 모두가 보는 앞에서 김단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에 놀랐다.두번째로 놀란 것은… 소하가 일어났다는 것이다!김단은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녀는 소하가 차츰 일어서는 데에 꽤 오랜 시간 노력해야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순식간에 그가 그녀 앞에 서게 될 줄은 몰랐다.소한도 눈을 크게 뜨고 소하를 바라보며 감격에 젖었다.그가 존경하고 우러러보던 형이 5년 만에 다시 자신의 눈앞에 서 있었다!대청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고, 모든 사람의 시선은 소하에게 집중되었다.소씨 부인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소하를 불렀다. “소, 소하야...”그녀의 부름에 소하도 제정신이 들었다.자신의 시선이 사람들과 같은 높이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천천히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두 다리로 서 있었다.꼿꼿하게, 서 있었다...“서방님...”옆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김단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 고여 있었다. 소하의 눈에도 순간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그 역시 줄곧 김단이 자신을 낫게 할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지만, 정말로 갑자기 다시 일어섰게 되었을 때의 그 충격과 경
순간 두 주먹이 뿌드득 소리를 내며 꽉 쥐어졌다. 하지만 지금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구태부도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오늘 이런 경사를 보게 될 줄은 몰랐소. 잘 됐구먼, 잘 됐어! 정말 잘 됐어!”소하는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구태부 역시 진심으로 소하가 잘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렇게 소하가 다시 일어선 것을 직접 보게 되니,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진산군과 임씨 부인조차 어안이 벙벙해져 멍하니 서 있었다.그들은 모든 의원으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이 어떻게 일어설 수 있는지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그 순간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하하하...”임원이었다.그녀는 방금 전 공격을 받고 아직까지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소하가 일어선 것을 본 그녀는 자신이 완전히 졌다는 것을 깨달았다.김단이 정말 소하를 치료한 것이다.그리고 그녀는 끝내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았다. 우습지 않은가?그녀가 오랫동안 노력했음에도 결국 김단을 이길 수 없었다.땅에 떨어진 칼은 그녀 옆에 있었다.임원은 손을 뻗어 칼을 잡았다.진산군과 임씨 부인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원아, 헛짓거리 하지 말거라!”“그래, 원아, 어서 칼을 내려놓으렴!”소하는 소씨 부인을 품에서 놓고 앞으로 나서서 소씨 부인과 김단을 보호했다.그는 임원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기쁨이 사라지고 다시 살기가 감돌았다.소정원도 달려와 소하 옆에 서서 임원에게 말했다. “임씨 낭자,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소? 자네에게 크게 실망했소!”그녀는 이전부터 임원을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여겼다. 물에 빠졌던 일 이후 그들의 관계가 서먹해지긴 했지만, 이번에 임원이 자신을 구하러 온 것을 보고 그녀는 크게 감동했고 고마워했다.그래서 그녀는 무조건 임원의 편에 섰고, 약간의 의심이 생겼을 때도 애써 무시했다.그런데 이 모든 일이 임원이 계획한 것일 줄은 생각지도 못 했다!그녀는 임원과 김단이 사이가
임학은 움직이지 않고 두 손을 늘어뜨린 채 임원을 안았다.옆에 있던 진산군과 임씨 부인은 눈물을 훔쳤다.김단은 소하 뒤에 서서 남매가 껴안는 모습을 냉정하게 바라보았다.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그녀는 임원이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가 원래는 자신의 오라버니여야 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임씨 집안 사람들이 임원을 향해 베풀었던 모든 사랑과 편애는 원래 그녀의 것이었어야 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그렇기에 지금 임원이 뻔뻔하게 그녀의 것이었던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걸 본 그녀의 마음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그녀의 표정은 더욱 싸늘하게 굳어졌다.하지만 다행히 그녀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쉽게 빼앗길 수 있는 것들은 애초에 귀중한 것이 아니었을 테니, 그녀 역시 탐내지 않았다.그때 임씨 부인이 몸을 돌려 사람들을 향해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그 모습을 본 모두가 깜짝 놀랐다.소씨 부인이 다급히 다가가 그녀를 일으키려 했지만 소정원이 그녀를 말렸다.임씨 부인이 말했다. “원이가 이렇게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모두 제 잘못입니다. 제가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부디 원이가 아직 철들지 않은 것을 가엽게 여기시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산군도 따라 무릎을 꿇었다. “자식을 낳고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아비의 잘못이니 이 모든 일은 아비인 내 책임이오. 부디 내 딸을 막다른 길로 몰아넣지 말아 주시오.”두 사람은 눈물을 흘렸고, 임원은 그 모습을 보고 더욱 눈물을 쏟았다.그녀는 진산군과 임씨 부인이 자신을 위해 남들 앞에서 무릎을 꿇을 줄 몰랐다. 복잡한 감정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비밀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이었고, 자신이 진산군 가문의 딸이라는 것에 안도했다.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든 뒤에서 가족들이 책임을 져줄 것이라는 것에 안심이었다!구태부와 소씨 대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실 오늘 두 사람이 일부러
진산군도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이 아비도 네가 우리를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네가 원이를 용서해 준다면 우리 가족이 앞으로 다시는 네 앞에 나타나지 않으마!”“단아, 원이는 고작 3년밖에 어미 곁에 있을 수 없었단다. 계속 어미 곁에 있으면서 어미의 사랑을 받아야 했는데... 네가 어미의 빚을 갚아준다고 생각하고 원이를 용서해 줄 수 있겠느냐? 제발 용서해 주려무나. 어미가 이렇게 부탁하마.”말을 마친 임씨 부인은 정말로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머리를 숙여 조아렸다.소씨 부인은 깜짝 놀라 황급히 앞으로 나와 임씨 부인을 붙잡았다.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저 낭자는 단이를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소하의 싸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늘고 긴 눈에는 냉기가 감돌았다. “두 분께서는 단이를 15년 간 키우셨습니다. 비록 의절했고 단이는 3년간 고통받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두 분께는 15년간 키워주신 은혜가 있지요. 그런데 지금 그 은혜를 빌미로 용서를 요구하며 심지어 무릎까지 꿇며 부탁하시는 것은 단이에게 불효라는 죄명을 씌워 억지로 용서를 구하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 분께서 잊고 계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희롱당하고 수모를 겪을 뻔한 사람은 단이였고, 목숨을 잃을 뻔한 사람도 단이입니다!”“단이가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운 좋게 구서를 기절시켜 숲으로 도망쳤기 때문이지, 임씨 낭자가 자비를 베풀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이가 지금 제 뒤에 서 있을 수 있는 것도 수많은 증거가 놓여 져 임씨 낭자가 스스로의 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기적이게 시어머니와 시누이를 버리고 갔다는 누명을 썼을 것이고, 지금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은 단이가 되었을 것입니다!”“심지어 방금 전에는 임씨 낭자가 단이를 죽이려 했고, 칼날이 단이의 몸에 꽂힐 뻔했습니다! 하지만 두 분께선 말로만 부모라고 하시며 단이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으시고, 지금 이렇게 무릎까지 꿇어가며 억지로 용서하
이 말에 모두가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였다.진산군과 임씨 부인조차 김단이 이렇게 쉽게 승낙할 줄은 몰랐다.소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낭자가 타협할 필요 없소.”당연히 그는 그녀를 위해 임원과 임씨 가문이 고개 숙이게 할 수 있었다.김단 역시 소하가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타협할 필요 없다'라는 그의 말이 김단의 마음을 울렸다.하지만 그녀는 정말 임씨 가문 사람들과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았다.좋은 일로든, 안 좋은 일로든, 아무렇게도 엮이고 싶지 않았다.그들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평생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했다.이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소하를 바라보고 나지막이 말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두 사람의 속삭임은 소한의 귀를 거슬리게 했다.그들은 서로를 향해 몸을 기울이고 있었고, 머리는 거의 맞닿을 듯하여 매우 친밀해 보였다.김단의 손목은 여전히 소하의 손에 잡혀 있었고, 그들은 그것을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다.마치 두 사람의 그러한 접촉이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였다.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그들은 분명 위장 결혼을 하였다!소하는 분명 김단이 3년 후에 떠날 것이라고 말했었다.이러한 생각에 소한의 눈빛은 자연스레 어두워졌다.3년, 그는 스스로 기다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3년은 너무 길었다...임원의 흐느낌은 많이 사그라들었다.그녀는 김단이 이렇게 쉽게 용서하는 것이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그녀는 김단에게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런 수모를 겪고도 이렇게 쉽게 용서해 주니, 모든 사람은 김단을 불쌍하게 여기며 너그럽다고 생각할 것이다!이는 그녀가 예전에 자주 썼던 수법이었다!그때 소씨 대감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살인은 중죄입니다.”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구씨 집안의 사람이었다!그저 앞으로 김단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는 것만으로는 죄에 대한 벌로
말을 마친 진산군은 소씨 대감에게 말했다. “소 대감, 채찍을 빌려주십시오.”소씨 가문은 대대로 무관 집안이었기에 집 안에 채찍이 없을 리 없었다.소씨 대감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고, 곧 누군가가 채찍을 가져왔다.진산군은 채찍을 손에 쥐고 외쳤다. “임원, 무릎 꿇거라!”임원도 오늘 매질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진산군 부부가 그녀를 지키기 위해 내린 결단이었고, 죽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이내 그녀는 흐느끼며 임학의 품에서 벗어났다.그녀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임학은 심호흡을 하고 옆으로 물러나 다친 손을 뒤로 숨겼다.진산군은 앞으로 나가 손에 든 채찍을 들어 임원의 등을 힘껏 내리쳤다.“찰싹!”소 가죽으로 만든 채찍은 매우 질겼고, 몸에 닿았을 때 내는 소리도 매우 컸다.단 한 번의 매질만으로 임원의 등이 피로 물들었다.“네 심성이 악독하여 남을 해쳤으니, 오늘 모두의 앞에서 아비가 책임을 다할 것이다!”그 외침과 함께 진산군은 다시 임원을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진산군도 무관이었기에 그의 채찍질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채찍질 소리가 소씨 가문 집 전체에 울려 퍼졌고, 임원의 등은 곧 피투성이가 되어 살갗이 찢겨 나갔다.김단은 이를 보지 않았다.사실 봐야하는 것이 당연했다. 임원이 채찍질당하는 것을 보며 그동안 쌓인 한을 풀어야 했다.하지만 그녀는 그 채찍질 소리가 너무나 익숙했다.그것은 그녀를 지난 3년 동안 두려움에 떨게 한 악몽이었다.계속 들려오는 채찍질 소리는 그녀로 하여금 지난 3년간 벌어졌던 일들을 상기시키는 것 같았다.채찍질 소리와 함께 그녀의 마음속에 증오심이 더해졌다.잠시 뒤 임원은 바닥에 엎드려 숨이 끊어질 듯 헐떡였다.임씨 부인은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눈물을 흘렸지만 감히 나서서 말리지 못했다.진산군도 안타까워하며 손에 든 채찍을 놓칠 뻔하였으나 채찍질을 멈출 수 없었다.그는 계속해야만 했다.구태부와 소씨 대감의 화를 풀어야 이 일
진산군 댁의 마차가 벌써 소씨 가문 집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임원은 하인들에게 둘러싸여 마차에 올랐고, 다른 행인들의 눈에 띄지 않았다.진산군과 임씨 부인도 서둘러 마차에 올라탔다. 빨리 진산군 댁으로 돌아가 의원을 불러 임원을 치료하게 할 생각뿐이었다.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임학이 나오지 않았다.다급해진 진산군이 다시 들어가 사람을 부르려 했을 즈음, 때마침 임학이 밖으로 나와 마차에 올라탔다.“서두르거라, 어서 집으로 가자!”진산군이 다급하게 외쳤고, 마차는 진산군 댁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갔다.진산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피투성이가 된 임원을 보며 진산군은 얼굴을 찌푸렸고,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임학을 바라보았다. “너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큰일을 왜 미리 말하지 않은 것이냐? 나와 네 어미가 오늘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오지 않았느냐!”분명 임학은 며칠 전부터 검은 옷을 입은 자객들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다!임학은 손수건으로 오른손을 감싸고 있었다. 그의 표정 역시 진산군과 다를 것 없었다. “미리 말씀드려 원이에게 몰래 소식을 전해야 했다는 말씀입니까?”그 말을 들은 진산군과 임씨 부인은 당황했다.임씨 부인은 울면서 말했다. “학아, 어찌 그렇게 생각 하느냐? 원이는 네 누이이니 우리가 당연히 도와야하지 않겠느냐! 따지고 보면 다 이 어미가 원이에게 관심을 주지 못한 탓이다. 그러지만 않았어도 원이가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임학은 고개를 숙였다. 넓은 마차 안에 가득한 진한 피비린내가 그의 마음을 더욱 어지럽혔다. “원이가 이렇게 된 것은 스스로 악한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그는 한숨을 쉬었다. 떠날 때까지 눈길을 주지 않던 김단의 모습을 떠올리며 가슴이 먹먹해졌다.그는 고개를 돌려 임씨 부인을 바라보았다. “소한이 말하길, 깊은 숲 속에서 단이를 찾았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두려웠으면 가시덤불 속으로 도망쳤겠습니까? 그 아이가 운 좋게 탈출하지 못했다면 오늘 날 얼마나 끔찍한 수모를 겪었겠습니
이튿날 아침, 김단은 궁무를 맡지 않았기에 평양관저에 머물며 맹영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맹영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단의 곁에 있을 때만큼은 그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조용한 정원, 김단은 맹영지와 함께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계수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숙희가 건네준 과자가 들려 있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있었다. 맹영지는 고개를 들어 만개한 계화를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소하가 평양관저를 찾아왔으나 그는 맹영지와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려 애썼다. 아마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김단은 맹영지를 바라보며 과거 소하가 왜 그리도 그녀를 칭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때 소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답게 그녀는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이었는데 맹영지는 어쩌다 소하에게 독을 먹이려 했던 것일까?김단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맹영지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그때 자연스럽게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김단이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평양관저의 겸인이 급히 달려와 말했다.“아가씨, 맹가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이런 큰일이 발생했으니 맹씨 집안에서 그녀를 보러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겸인에게 말했다.“알겠소. 이리로 모셔오시오.”잠시 후, 맹씨 부인이 정원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김단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한 뒤 슬픈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김 의원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의원님이 아니었다면 제 딸이 그 짐승 같은 자에게 학대받으며 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맹씨 부인의 눈동자가 붉어졌다.김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과찬이십니다, 맹씨 부인. 민태훈, 그 자의 말에 따르면 맹영지 아가씨의 병은 이미 4~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완전히 회
소한은 코웃음을 치며 말없이 등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하의 조용한 목소리가 방안의 침묵을 깨뜨렸다.“이번에는 정말 잘했어.”영의정 저택에서 벌어진 일은 소한이 형벌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소하의 귀에 들어갔다. 만약 소한이 과감하게 영의정 저택에 침입하지 않았다면 김단은 쉽게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비록 민씨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김단을 해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녀가 겪었을 모욕과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소하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소한은 많이 당황한 듯했다.“제가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때로는 그 충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소한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김단의 얼굴을 떠올렸다. 처음에 그녀도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듯했지만 곧 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였다. 김단은 마차에 오를 때까지 자신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과거의 그녀였다면 그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그의 품에 안기며 그를 향해 미소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차갑게 변해버렸다. 자신을 외면하는 그녀가 소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며 굳게 결심했다.그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이미 어떤 대가든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반 시진 후, 김단은 방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러자 숙희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아가씨?”김단은 정신을 차리고 숙희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냐?”“두 도련님께서는 모두 돌아가셨습니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전 발생한 일을 되새겨 보았다. 그녀는 소한이 오랫동안 계획해 온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는 소가를 위해, 전하를 위해 심지어 임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그녀만은 제외였다.그녀는 소한이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하는 척하며 평양관저로 따라온 것도 단지 자신의 동정심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상처
김단은 아무 말 없이 소한을 부축하며 걸었다. 궐에서 나오는 길은 유난히 길고 고요했다. 그들의 발걸음은 무겁고 느렸으며 말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궐문에 도착했을 때 소한의 마차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는 아마도 말을 타고 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상태로 다시 말을 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된 김단은 곁에 있던 경씨에게 부탁했다.“도령님, 장군님을 먼저 집으로 모셔다 주실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소한이 놀란 듯 김단을 바라보며 물었다.“내게 약을 발라주지 않겠다는 것이오?”김단도 당황해하며 되물어 보았다.“소가에는 의원이 없습니까?”소한은 김단의 물음에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의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어머니께서 내가 또 다쳤다는 걸 아시면 얼마나 걱정하겠소? 그러니 그냥 근처에서 치료받을 것이오. 낭자는 신경 쓰지 말고 먼저 돌아가시오.”김단은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먼저 평양관저로 함께 가서 약을 바르시죠.”소한은 그녀의 제안에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불편하지 않겠소?”김단은 그를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괜찮습니다.”그렇게 소한은 김단과 함께 평양관저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김단의 몸종 숙희였다.소한을 발견한 그녀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러자 김단이 숙희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차분히 말했다.“숙희야, 장군님을 객실로 안내해 주거라. 나는 약을 준비하러 가야겠구나.”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김단의 지시를 따랐다.객실에 혼자 남은 소한은 조심스럽게 상의를 벗고 등을 드러냈다. 그의 등에는 형벌로 인한 상처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그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등을 바라보며 오늘의 형벌이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음을 깨달았다.하지만 그는 김단이 이 상처를 보면 마음 아파할 것이라 생각하며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잠시 후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약을 들고
긴장감이 맴도는 분위기 속에서 전하는 이해 안 되는 듯한 어투로 물었다,“조선의 장군인 네가, 수많은 전공을 세운 네가, 원하는 여인 하나 얻는 것이 그리 어렵단 말이냐? 어찌 김단 하나 때문에 수년간 공들여 쌓아온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야? 그 낭자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전하의 말투는 엄중했지만 그 속에는 실망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그러자 소한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그렇습니다.”전하는 눈썹을 찌푸리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김 의원, 들었소?”그 순간 소한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조용히 서있는 김단이 있었다. 그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소한은 그녀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가 이 모든 대화를 들었다는 사실에 당황했지만 그녀의 표정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소한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김단, 왜 이곳에 있는 것이오?”그녀는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와 무릎을 꿇고 전하에게 예를 올렸다.“소녀 김단, 전하를 뵙습니다.”전하는 손짓으로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일어나거라. 오늘 발생한 일에 대해 자세히 말해 보거라.”김단은 소한을 보지 않기 위해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채 차분하게 사건의 전말을 설명했다. “제가 직접 목격한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민대부를 제외하고는 영의정 댁 장남의 부인에게 감히 손을 댈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전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맹 낭자의 상처를 확인하기 위해 두 명의 궁녀를 보내겠다. 평양관저에서 확인해 보도록 하거라.”학대의 이유가 무엇이든 맹영지는 필시 중전의 친척이었다. 만약 폭력을 가한 사람이 민대부라고 할지라도 이는 중전의 가문을 모욕하는 행위와 다름없었기에 결코 그를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전하는 소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어쩌면 네 죄가 묻힐 수도 있겠구나.”민씨 가문의 잘못이 드러나게 된다면
소한은 곧바로 병사들과 함께 어서재에서 물러났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향 한 자루가 탈 정도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소한이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본 전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냉랭하게 물었다.“영의정이 너를 더 때리라고 명하지 않았느냐?”소한은 조용히 전하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고 허리를 곧게 세운 채 대답했다.“전하의 깊은 뜻을 아는 자입니다. 그러니 더 심한 처벌을 요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전하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내 뜻이 무엇이더냐?”소한은 고개를 들어 전하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전하께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영의정을 불러 제가 벌을 받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게 하셨죠. 그리고 동시에 제가 전하의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전하께서는 영의정이 이 사실을 눈치채기 바라신 것 아니었습니까?”전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붓을 책상에 내던지며 소리쳤다.“이 불경한 자식아! 내 너를 아낀다고 해서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느냐? 영의정 저택 외에 또 어디에 첩자를 심어두었느냐?”소한은 눈을 내리깔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3품 이상의 모든 관료의 집에 첩자를 두었습니다.”그 말을 들은 전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소한을 가리켰지만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였다.그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더니 한참 동안 방안을 서성이었다.잠시 후 그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다시 한번 소리쳤다.“네가 감히! 그렇게 많은 곳에 첩자를 심어두고 무슨 일을 꾸미려는 것이냐? 이렇게 행동하면 내가 소씨 집안을 멸문시켜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소한은 여전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조용히 말했다.“저도 위험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다섯 해 전, 저희 소가는 거의 멸문 당할 뻔했습니다.”그 해 소하가 지닌 병권은 다른 집안의 탐욕스러운 먹잇감이 되었고 그로 인해 조정의 문
김단은 그제야 잊고 있었던 민태훈을 떠올렸다.그녀는 맹영지를 몸종에게 맡기고 민태훈 곁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허벅지에 박힌 은침을 뽑아냈다.침이 빠져나가자마자 민태훈은 마치 고통에서 해방되기라도 한 듯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한 가닥의 은침이 이토록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큰 마님은 김단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그녀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말이다.그때 경씨가 마차를 몰고 도착했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걸어 나오자 경씨는 놀란 얼굴로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낭자, 괜찮소?”방금 전 김단이 영의정 저택에서 곤란한 상황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소한은 급히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덕분에 한발 늦게 도착한 경씨는 자신이 더 일찍 김단을 챙기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말했다.“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소.“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대답했다.“저는 괜찮습니다. 먼저 맹 아가씨를 평양관저로 모시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그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마차에 오르자 경씨는 바로 마차를 출발 시켰다.김단은 마차에 오르기 전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조용히 서 있는 소한에게로 향했다. 소한은 그녀를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김단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소한은 그런 김단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 후 소한은 곧장 궁으로 향했다.어서재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앉아 오늘 영의정 저택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에게 보고했다.그의 말을 들은 전하는 노여움을 감추지 못하며 소한을 꾸짖었다.“네가 감히 허락도 없이 영의정 저택을 침입했단 말이냐? 정말 대담하구나! 내가 너를 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느냐?”그러나 소한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벌을 달게 받겠습니다.“전하는 그의 담담한 태도에 더 분노하며 외쳤다.“민가
김단은 민씨 부인의 말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파악했다.보내서는 안 된다라...오늘 이 자리에서 맹영지뿐만 아니라 김단 자신도 민가를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김단은 민씨 부인이 자신의 아들을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릴 줄 몰랐다.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선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김단의 눈빛이 서서히 날카롭게 변해갔다. 그녀의 내면에서는 분노와 실망이 교차했다.큰 마님은 민씨 부인의 표정을 보고 심각한 상황임을 직감했다.맹영지의 몸에는 증거가 남아있었고 그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게 된다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이다.하지만 지금 김단을 보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분명 궐로 들어가 이 일을 고발할 게 뻔했다.지금 김단을 적으로 돌린다면 그에 따른 후과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큰 마님은 사랑하는 손자를 바라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김단을 보내면 민태훈의 입지가 위험해질 것이고 보내지 않는다면 민가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그때, 한 하인이 급히 달려와 외쳤다.“큰 마님! 소 장군님께서 오셨습니다!”소 장군? 소한을 말하는 것인가?그의 이름이 언급되자 큰 마님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소한이 이렇게 빨리 이곳에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김단도 그가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녀가 생각에 잠긴 사이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큰 마님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뵙게 되어 송구합니다.”모두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당당하게 정원으로 걸어 들어오는 소한의 모습이었다.“소한, 주인의 허락도 없이 들어오다니! 대체 영의정 저택을 무엇으로 보시는 것이오? 이곳은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이 아니오.”소한은 그 말을 한 사람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이런 무례를 범한 것은 제 잘못입니다. 곧 전하 앞에서 사죄드리지요.”그는 정원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더니 큰 마님에게 다가가 정중히 인사했다.
머뭇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김단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마님,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저를 막으신다면 저는 곧장 궐로 가 이 모든 일을 고할 것입니다.”그녀의 말은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그 안에는 확고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김단의 말이 끝나자 민가의 사람들은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큰 마님은 눈썹을 찌푸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그녀는 김단이 단순한 의원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김단은 진산군 댁의 적녀이자 평양원군의 의남매이다. 그리고 그녀는 소가의 두 형제와도 깊은 인연이 있었다. 지금 그녀를 적대시하는 것은 곧 여러 권세 있는 가문을 적으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다.큰 마님은 민태훈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통에 찬 얼굴로 땀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그녀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그러나 동시에 마음속에는 김단에 대한 의심도 피어올랐다. 만약 그녀의 말이 과장된 것이라면 민씨 가문은 부당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한참을 고민하던 큰 마님은 굳게 결심한 듯 민씨 부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네가 직접 확인해 보거라. 만약 낭자의 말이 거짓이라면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민씨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단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김단은 조심스럽게 맹영지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녀의 팔 안쪽에는 선명한 멍 자국이 여러 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민씨 부인은 숨을 들이켰다.“이런 상처가… 정말로…”그녀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자 김단은 차분하게 말했다.“다리 쪽은 더 심각합니다. 보시겠습니까?”민씨 부인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이 상처, 정말로 태훈이의 짓입니까?”김단은 잠시 침묵하더니 그녀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그 말에 민씨 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태훈이는 절대 그럴 애가 아닙니다. 어릴 적부터 착하고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던 사람이었단 말입니다.”김단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공주의 이름이 거론되자 민씨 일가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스쳤다. 그러나 큰 마님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낭자가 공주의 명을 받고 우리 영의정 저택에 들어와 병자를 돌보는 것은 알겠소. 허나 공주의 허락 없이 사람을 해치는 것은 무엄한 일이오. 공주라 할지라도 국법을 지켜야 하지 않겠소? 그러니 함부로 공주의 이름을 빌어 협박하지 마시오.”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단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참으로 옳은 말씀이십니다.”민가의 큰 마님은 김단이 드디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자신을 치켜세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단의 입가에는 더욱 짙은 미소가 떠올랐고 눈빛에는 경멸이 스쳤다.“공주님께서도 국법을 지키셔야 하는데 민가의 사람들은 더욱 그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민가의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를 높이며 반박했다.“그게 무슨 뜻이오? 우리 민씨 일가는 예로부터 법을 준수하며 국법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소!”“김 의원께서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우리 민가에 누명을 씌우려는 것 아니오?” 김단은 그저 조용히 서서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김단의 이런 차분한 태도가 큰 마님의 신경을 건드렸다.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김단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큰 며늘 아씨는 중전마마의 친조카이시며 공주자가의 사촌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의 치료를 맡게 되었지요. 원래는 상태가 호전되고 있었으나 오늘 갑자기 증상이 악화되었습니다. 이는 분명 누군가가 큰 며늘 아씨의 회복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의원으로서 제 환자가 이곳에서 고통받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으니 제가 데려가야겠습니다. 만약 제 앞을 가로막으신다면 다음번에는 민대부님의 다리에 은침을 꽂아 버릴 것입니다.”이에 큰 마님은 지팡이를 바닥에 세게 내리치며 외쳤다.“허튼소리 마시오! 낭자의 의술이 부족해서 생긴 일을 왜 우리한테 덮어씌우려는 것이오?”“맞소! 무슨 명의의 제자라더니... 다 헛소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