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공의 유일한 구원자

도공의 유일한 구원자

이것은 《해당없음》 팬픽션

last update최신 업데이트 : 202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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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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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천재 도공 단은 신선의 힘이 폭주하는 것을 막으려다 스스로 살아있는 그릇이 되어 천 년의 세월을 늙지도 죽지도 못한 채 견뎌왔다. 가장 참혹한 열번째 붕괴기가 다가온 순간, 그를 고통에서 건져낼 유일한 구원자 서연을 만나지만, 그녀의 정화 능력은 아직 완벽하지 않다. 함께 살아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오염된 유물 속에 깃든 원혼들을 정화하여 구원의 힘을 완성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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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1화. 시작 그리고 만남

[프롤로그 : 99년의 영광, 1년의 지옥]

​죄명은 사랑이었다.

하늘의 이치를 관장하던 고귀한 신선. 그가 감히 인간 여인을 연모하여, 정해진 수명을 늘리기 위해 사사로이 신력을 사용한 죄.

천계는 그 오만함을 용서하지 않았다.

​콰아앙!

​하늘이 찢어지는 굉음과 함께 신선은 지상으로 내쳐졌다. 추락은 혹독했다.

자연을 품은 영롱한 영혼이 수천수만 조각으로 찢겨나갔고, 신력의 대부분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남은 힘은 불완전했고, 통제 불능 상태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지상에 닿는 순간, 반경 수백 리가 잿더미로 변할 상황이었다.

​“나의 힘을 나눠 담아야만 한다.”

​그의 힘을 담아낼 무언가를 찾아 헤매던 신선의 눈에, 산속의 불빛이 들어왔다.

미친 듯이 타오르는 가마터. 그곳엔 인간의 불을 넘어선, 붉다 못해 푸르게 타오르는 불길이 춤추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단단한 그릇.

신선의 힘마저 감당해 낼 그릇이 그곳에 있었다.

​고려 초기, 천 년 전의 겨울.

도공 단은 핏발 선 눈으로 가마 아궁이를 노려보았다.

자신의 모든 예술혼과 생명력을 땔감처럼 태워, 신조차 감탄할 완벽함에 도달하고자 했다.

​"더! 더 뜨겁게."

​그의 집념이 빚어낸 백자 가마 안에서 영롱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세상 모두가 비취색 청자의 화려함에 열광할 때, 그는 홀로 시대를 앞서 순백을 빚어내고 있었다.

아무도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아름다운 하양. 그것은 시대를 초월한 명작이었다.

백자의 완벽함을 확신하던 그 순간.

하늘에서 떨어진 빛 덩어리가 가마터로 들이닥쳤다.

신선은 푸른 불을 이겨낸 완벽한 그릇이 폭주하는 자신의 힘을 받아낼 유일한 물건임을 확신했다.

그는 간신히 손을 뻗어 넘쳐흐르는 신력을 도자기 속으로 쏟아부으려 했다.

하지만 자신의 역작을 지키려던 도공 단이 그 빛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알지 못한 채...

​“안 돼!”

​파아앗!

비극은 찰나였다. 그릇으로 향하던 거대한 힘이 살아있는 생명에 닿는 순간, 신선의 힘뿐만 아니라 그의 생명력까지 단의 육체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끄아아아악!”

인간의 육체에 감당할 수 없는 신력이 억지로 구겨 넣어졌다.

그것은 축복이 아닌 저주였다.

살이 타들어 가고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 속에 단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소녀는 굉음과 비명을 듣고 그렇지 않아도 바삐 움직이던 발을 더 급하게 움직였다.

산 아래에 살고 있는 소녀는, 마을에서 미친 도공이라 손가락질받는 단을 연모하던 아이였다.

식음을 전폐하고 오직 도자기에만 매달리는 단이 걱정되어, 소녀는 매일같이 음식을 준비해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오늘도 단에게 줄 주먹밥을 품에 안고 달려온 소녀의 눈앞에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졌다.

단은 온몸이 황금빛 불길에 뒤덮인 채 비명을 지르고, 그 곁에는 백발의 아름다운 사내가 쓰러져 신음을 뱉어 내고 있었다.

“아저씨! 단 아저씨 정신 차려요!”

소녀는 단에게 달려가고 싶었으나, 뜨거운 기운에 감히 다가서지 못하고, 그의 곁에서 빛을 잃어가는 사내에게 걸음을 옮겼다.

두려움보다 걱정이 앞선 소녀는 품고 온 물통을 열어 쓰러진 신선의 마른 입술에 먼저 흘려주었다.

"아저씨는 누구예요? 우리 단 아저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

"저자가 나의 힘을, 신선의 힘을 받아버렸다."

믿기지 않는 말이었으나, 단의 비명에 소녀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눈물 흘리며 온 마음을 다해 애원할 뿐...

"우리 아저씨 좀 살려주세요! 아저씨 죽이지 마세요. 네?"

단의 처절한 비명소리에 소녀가 눈물을 쏟아냈다.

"차라리 제가 대신 죽겠습니다. 제발, 제발 아저씨를 살려주세요!"

대가 없는 순수한 선의, 그리고 도공을 향한 절절한 사랑.

그것은 신선이 천계의 규율을 어기면서까지 사랑했던 인간의 마음 그 자체였다.

신선은 자신의 소멸을 막을 수 없음을 느끼고 안타까운 눈으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저지른 비극을 수습할 방법은 이제 이 아이뿐이었다.

'죄 없는 아이에게 가혹한 운명을 지우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아저씨 기운을 좀 내봐요. 제가 어찌하면 좋을지 말 좀 해줘요 네? 단 아저씨를 위해서 뭐든 할께요. 제발 제발요...”

소녀의 간절한 눈물에 신선이 결심을 굳혔다.

“아이야... 미안하지만 네게 아주 무겁고 긴 부탁을 해야겠다.”

신선이 떨리는 손끝으로 영롱한 피 한 방울을 허공에 띄웠다.

“나의 실수로 저 남자는 멈추지 않는 고통 속에 갇히게 되었다.

먼 훗날, 네 핏줄에서 태어난 아이가 이 힘을 각성할 때... 저 남자의 고통을 잠재워 줄 것이다.

그때까지 저자를... 외면하지 말아 다오.”

소녀는 눈앞의 신비로운 존재가 사라져가고 있음을, 그리고 단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자신에게 맡겨졌음을 느꼈다.

소녀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단을 한 번 바라본 뒤, 신선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할게요. 제가, 그리고 제 혈육이... 아저씨를 꼭 구해줄게요.”

소녀의 허락이 떨어지자, 황금빛 핏방울이 소녀의 이마 속으로 스며들었다.

​"고맙다... 아이야... 고맙다."

'나의 사랑이 죄를 만들고, 인간의 사랑이 나의 죄를 구원하는구나.'

​신선은 안도하며, 어둠 속을 향해 나직이 불렀다.

​“은빛 늑대야, 붉은 여우야.”

​숲의 주인인 두 영물이 울면서 신선의 곁으로 다가왔다.

​“나의 시간은 끝났다. 늑대야, 너는 저 소녀의 가문을 지켜라. 언젠가 그 후손이 저 사내를 구원하는 그날까지...”

​늑대가 구슬프게 울었다.

​“그리고 여우야. 너는 저 사내를 지켜라. 그가 고통에 미쳐서 세상을 어지럽히지 못하도록, 곁에서 감시하고 보살펴라...”

​모든 말을 마친 신선은 빛이 되어 사라졌다. 은은한 황금빛이 숲 전체에 퍼져 세상 밖으로 사라졌다.

여우가 날카로운 눈으로 도공을 노려보았다. 자기 주인을 소멸시킨 원수.

당장이라도 목을 물어뜯고 싶었지만, 주인의 마지막 유언이었기에 고개를 숙였다.

남겨진 것은 신의 힘을 삼킨 오만한 인간과 신선의 피를 받고 무거운 과제를 안은 소녀, 그리고 주인을 잃은 슬픈 짐승들뿐이었다.

​그날 이후, 단에게는 잔혹한 형벌이 내려졌다.

제어되지 못한 신의 힘은 그에게 99년의 영광과 1년의 지옥을 번갈아 선사했다.

99년 동안 그는 늙지 않는 육체와 비상한 재주로 세상을 발 아래 두었다.

왕의 스승이 되기도 했고, 나라를 움직이는 거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100년이 채워지는 해가 되면, 대가를 치러야 했다.

육체가 무너져 내리고 영혼이 찢기는 1년의 붕괴기.

그는 지난 9번의 지옥을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견뎌냈다. 

그리고 지금. 가장 두렵고 혹독한 열 번째 붕괴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기다리는 것은 단 하나. 이 끔찍한 형벌을 멈춰줄, 각성한 구원자뿐이었다.

1화. 만남

​2024년, 서울 성북구 성북동. 그로부터 천 년이 흐른 지금.

기다리던 구원자는 백마를 타고 오지 않았다.

대신, 헐떡거리며 가파른 언덕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하아, 하아... 미치겠네, 진짜. 부자들은 왜 다들 산꼭대기에 사는 거야?

산소 부족으로 먼저 죽겠네. 하긴 지들은 뚜벅이의 고통을 알리가 없지 어휴...”

​서연은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언덕길을 올라갔다.

서연. 불과 1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 학계가 주목하던 최연소 수석 감정평가사였다.

고려청자의 미세한 균열만 보고도 가마터의 위치를 맞히고, 위작을 만든 놈의 족보까지 털어버린다는 신의 눈을 가진 천재.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지금은 빚더미에 앉은 신용불량자 신세였다.

​“허억, 허억, 한 오십억이 내 앞에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

​연은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며 땀을 닦았다.

오늘 그녀가 만날 의뢰인은 성북동 유령 저택의 주인이었다.

업계에서는 그를 미치광이 수집광이라 불렀다.

그의 집에 들어간 감정사들은 하나같이 제정신으로 나오지 못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있었지만, 연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지금 그녀의 뒤에는 저승사자보다 무서운 채권자들이 있었으니까.

​“귀신? 웃기지 마. 나한테 제일 무서운 건 은행의 독촉 전화야.”

​마침내 거대한 대문 앞에 선 연은, 망설임 없이 초인종을 눌렀다.

​끼이익. ​대문이 스스로 열렸다.

'뭐야 대답도 없이 그냥 열어 주는 거야?'

상쾌한 나무향이 연을 맞이했다. 대문 안은 다른 세상이었다.

울창한 대나무 숲과 바닥에 깔린 고급스런 현무암. 그리고...

​‘저거... 고려 시대 석등 아니야? 저게 왜 마당 장식품으로 굴러다녀? 경매가 최소 5억인데.’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국보급 유물들이 무심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니,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유물을 이토록 일상적으로 다루는 방식은, 연에게는 차라리 방치나 다름없었다.

저 석등의 가치를 안다면, 저 청자가 가진 세월의 무게를 안다면 결코 저렇게 마당 한구석에 물받이로 두지는 못할 텐데.

“우와! 미쳤네, 진짜. 이 집 주인은 유물을 꿰뚫어 보는 거야, 아니면 아예 눈이 먼 거야?”

연은 헛웃음을 삼키며 또각또각 인기척을 내며 안채로 향했다.

똑,똑

"안에 누구 계신가요? 오늘 방문하기로 한 감정사입니다."

넓은 거실 한가운데,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누군가 웅크리고 있었다.

​“...끄으윽.”

​남자는 고통스러운 듯 머리를 감싸 쥐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통의 기운이 거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번의 붕괴기는 과거와는 달리 더욱 빠르고 강력하게 단의 육체를 갉아 먹고 있었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119 부를까요?”

​연이 휴대폰을 꺼내려던 순간,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세상이 뒤집혔다.

엄청난 악력이 그녀를 낚아채 소파 위로 내동댕이쳤다.

​“누구냐?”

​남자가 그녀의 위를 덮쳤다. 창백한 얼굴은 아름다웠지만, 살기에 가득 차 있었다.

​“어떤 놈이 보냈지? 최민준인가?”

​“저는 그냥 감정사인데요!”

“시끄러워.”

감각 과민증. 붕괴가 시작될 때마다 나타나는 전조 증상이었다. 세상의 모든 소리와 감각이 칼날이 되어 그를 찌르고 있었다.

그때, 바로 앉기 위해 허우적대던 연의 손이 남자의 뺨에 닿았다.

​턱.

​순간, 단의 머릿속을 울리던 세상의 굉음이 거짓말처럼 멎고, 온몸을 난도질 하던 고통이 사라졌다.

그녀의 손바닥이 닿은 곳부터, 따뜻한 물결이 스며드는 기묘한 감각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천년 동안 덜그럭거리던 뼛조각들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 매끄럽게 맞물리는 느낌.

단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뺨에 닿은 연의 손을 제 손으로 덮어 눌렀다.

놓치면 다시는 찾지 못할 보석을 찾은 듯.

그것은 천 년 전, 신선이 소녀에게 나누어주었던 속죄의 피가 마침내 주인을 찾아 공명한 것이었다.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이더니, 연의 손목에 코를 대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하아....”

단은 흠칫 놀라며 물러서는 연을 더 강하게끌어당겼다. 

​그의 입에서 안도와 쾌락이 섞인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지옥 불 속에서 구원을 발견한 자의 절박한 신음과 같았다.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이제 그의 눈빛은 살기가 아닌, 집착으로 바뀌어 있었다.

​“당신. 정체가 뭐지?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야. 흐으음...”

“아무 짓도 안 했거든요? 이거 놓고 말해요! 성희롱으로 고소하기 전에!”

​연이 바락바락 대들었지만, 남자는 오히려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시끄러운데... 거슬리지 않아. 네 목소리는 안 아파 심지어 편안해.”

​그는 이제 대놓고 연의 팔을 자신의 뺨에 비비며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연은 공포와 당황에 비명을 질렀다.

"아악! 사람 살려! 여기 누구 없어요? 도와주세요!"

"주인님 무슨 일입니까?"

점잖은 모습의 중년 남자가 걱정을 가득 안은 눈으로 거실로 뛰듯 들어섰다.

남자의 힘이 느슨해진 사이 서연이 몸을 일으켜 거실로 막 들어선 사람의 뒤로 숨었다.

"저는 오늘 방문하기로 한 감정평가사 서연입니다. 저 사람이 저를 공격했어요."

"아... 저분이 이곳의 주인이십니다."

"네? 뭐라구요? 저 미친놈... 아니 저분이요?"

안전을 확인한 서연의 눈이 다시 애절한 눈으로 자신을 보며 고통을 참아내는 남자를 훑었다.

손목에 찬 명품 시계, 명품을 휘감은 몸 그리고 남자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한한 기운.

​‘살아있는 유물이야 뭐야?’

​그때, 남자가 나직이 물었다.

​“이름.”

“서... 서연이요.”

“좋아, 서연. 얼마면 되지?”

“...네?”

“너를 사겠다고 했다. 얼마면 되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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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돈 많고, 아프고, 미친놈
2화. 돈 많고, 아프고, 미친놈'미친놈인 게 분명하다. 완벽한 아름다움에 미친놈이라고 했는데... 내가 그 정도인가?'"제가 예쁘기는 하지만 완벽하게 아름답지는 않은데요?"연의 물음에 단과 김 실장이 동시에 진심이 느껴지도록 간단히 답했다."큽!", "하!"김 실장이 목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크큼.큼, 주인님께서 잠을 못 주무셔서, 심신미약 상태입니다. 이해를 부탁드립니다.""김 실장, 아니다. 저 여인이 필요해 나의 고통을 잠재웠다."단의 말에 김 실장이 눈을 빛내며 단과 연을 바라보았다."그게 정말입니까. 주인님?""그래, 잠깐의 접촉으로 진정이 되었어. 저 여인이 필요해. 지금 당장!"단이 다시 고통에 숨을 몰아쉬며 연을 간절하게 바라보았다."으으윽... 얼마면 되지?"같은 질문이었다. 연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으나, 저 남자의 고통을 그녀가 잊게 해준다는 것 같았다.'치료사? 뭐 그런 게 필요한 건가? 한번 질러봐?'"저 엄청 비싼데요?"“상관없어. 내 전 재산을 다 주더라도 널 가져야겠으니까.”​남자는 진심이었다. 천 년을 살아내면서 그가 견뎌낸 붕괴기에서 이런 안식은 단 한번도 없었다.이번 붕괴기에 저 여인이 없으면 그는 버티지 못하고 미쳐서 세상의 재앙이 될지도 모른다.빚 35억. 그 무게가 연의 이성을 마비 시켰다.생각이 다 정리되기도 전에 말이 먼저 나갔다.​“50억. 일시불로. 입금 확인되면, 오늘부터 내 영혼까지 당신 거예요.”​남자가 망설임 없이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하아... 그래... 거래 성립. 뭐든 주지.”​그가 신음을 뱉으며 안심한 듯 웃었다. 그 미소는 지나치게 관능적이었고, 등골이 서늘할 만큼 위험해 보였다.​“도망칠 생각은 마라, 서연. 계약 파기는 없다.”계약서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시점.거실의 공기는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저기요... 주인님?"서연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생전 처음 보는 남자와 연인이라도 된 듯 소파에 나란히 앉아 깍지를 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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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손이 많이 가는 여자군.
4화. 손이 많이 가는 여자군."전화 좀 할게요. 조용히 해주세요."연은 휴대폰을 들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길어질수록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어, 엄마. 나야."[어구, 우리 딸! 밥은 먹었어? 별일 없지?]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에는 반가움보다 걱정이 먼저 묻어있었다.그 물기 어린 목소리에 연은 울컥 목이 메었지만, 꾹 참았다. 지금 울면 엄마는 잠도 못 잘 게 뻔했다."응, 먹었지. 엄청 맛있는 거 먹었어. 엄마, 나... 이번에 큰 프로젝트 맡아서 당분간 집에 못 가. 제주도... 아니, 해외 출장 가야 할 것 같아."[해외? 갑자기? 혹시 채권자들이 찾아왔니?]"아니야! 그런 거 절대 아니야. 아주 중요한 감정 의뢰가 들어왔거든.보안이 워낙 철저해서 연락도 잘 안 될 수 있어. 대신 보수가 아주 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빠 약 잘 챙겨 드리고. 아빠는... 좀 어떠셔?"잠시 침묵이 흘렀다.[...아빠 많이 좋아지셨어. 오늘 재활 치료받으면서도 계속 네 사진만 보더라.얼른 나아서 우리 연이 짐 덜어줘야 한다고... 너는 제발 네 걱정만 해.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못난 부모 만나서 젊은 애가 짐을 다 떠안고... 연아, 미안하고 고마운 우리 딸...]엄마의 떨리는 목소리에 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옆에 있는 갓물주 때문에 소리 내어 울 수도 없었다."아, 진짜... 여사님, 왜 또 청승이야. 나 진짜 돈 많이 벌어 간다니까?"일부러 씩씩하게 대꾸하려던 찰나, 수화기 너머로 낚아채듯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누나야? 잠깐 나 좀 바꿔줘 봐!]"어? 엄마, 단이는 바꾸지 마. 안 바꿔도 돼. 그냥 안부만 전해줘. 응?"[누나, 나야! 서단!]남동생, 서단이었다. 연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천재적인 해커 기질이 있는 이 녀석은 눈치가 백단이었다. 어설픈 거짓말은 절대 통하지 않는다."어... 단아. 왜? 누나 바빠."[누나, 솔직히 말해. 채권자들 피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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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한 침대에서 자요?
5화. 한 침대에서 자요?김 실장은 단과 연의 모습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단이 저렇게 편안한 표정을 지은 것은, 그가 단을 모시는 동안 처음 보는 것이었다.저택은 밤이 되자 더욱 으스스했다. 하지만 이제 연은 어둠이 무서울 수 없었다.그녀의 옆에는 세상에서 제일 비싼보디가드가 딱 붙어 있으니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저기, 단 씨. 이제 잘 시간인데요.""그래. 자야지.""근데... 어디서 자요? 제방은 어디인가요? 당연히 방은 따로 쓰는 거죠?"연의 질문에 단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쳐다보았다."무슨 소리야. 1미터 유지라니까. 떨어지면 아파서 잠을 못 자. 지난 한 달간 한숨도 자지 못했다.""아니, 그래도 남녀가 유별한데 한 침대에서 자요? 성적인 행위 금지! 잊었어요?""내가 널? 아니면 네가 날? 꿈 깨. 넌 그냥 진통제야. 나한테 흑심 품은 거 아니면, 잔말 말고 따라와."단은 연을 이끌고 2층 침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 운동장만 한 침실이 나타났다.한가운데 놓인 침대는 킹사이즈를 넘어선, 거대한 크기였다. 하지만 방 안의 온도는 한기를 느낄 정도로 낮았다.불면증에 시달리는 단이 잠을 청하기 위해 온도를 극도로 낮춰 놓은 탓이었다."추워..."연이 몸을 떨자, 단이 온도를 올렸다."씻고 와. 기다릴 테니까."샤워를 마치고 쭈볏거리며 나오니, 단은 이미 잠옷 차림으로 침대에 기대어 있었다.살짝 젖은 머리카락, 살짝 드러난 탄탄한 가슴팍. 솔직히 말해서,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고, 미치도록 관능적이다.'정신 차려, 서연. 저건 남자가 아니야. 그냥 50억짜리 걸어 다니는 조각상...... 아니, 돌덩어리야.'그녀는 속으로 주문을 외우며 침대 끝자락에 조심스럽게 누웠다."더 가까이 와.""이, 이 정도면 1미터 안이거든요?""손잡아야지."단이 손을 내밀었다. 연은 쭈뼛거리며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손이 닿자마자 단이 연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당겨 거의 자신의 품에 안다시피 했다. 엉겁결에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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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오해
6화. 오해식탁 위에는 무거운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거대하고 우아한 식탁.끝과 끝에 앉아서 우아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맛있는 음식을 즐겁게 음미하면서...... 있을 리가 없었다.서연은 단의 바로 옆자리에, 딱 붙어 앉아 힘겹게 한손으로 밥을 먹어야했다.한손은 계약자의 손에 단단히 잡혀있었으니.그들의 눈앞에는 김 실장이 정성스럽게 차려낸 아침 식사가 놓여 있었다.입안에서 살살 녹을 듯한 한우 갈비찜, 향긋한 자연송이, 맑은 국,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팥밥."김 실장.""네, 주인님.""이 붉은 밥은 뭐지? 오늘이 동지인가? 아니면 집에 귀신이라도 들었나?""아닙니다. 다만..."정갈한 양복을 입고, 앞치마를 걸친 김 실장이 안경을 검지로 치켜올리며, 아주 은은하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예로부터 붉은 팥은 액운을 쫓고 경사를 축하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어제 두 분의... 역사적인 첫날밤을 기념하고, 앞으로 이 집안에 아이... 아니, 좋은 기운이 가득하길 바라는 충심에서 준비했습니다.""풉!"물을 마시던 연이 뿜었다. 다행히 고개를 돌려 단의 얼굴에 물을 뿜는 대참사는 막았지만, 그녀의 얼굴은 팥밥보다 더 붉게 달아올랐다."뭐하는거지? 밤에는 침을 낮에는 물을 뱉는 건가?""아, 아니라고요! 김 실장님! 진짜 오해에요 저희는 그냥 손만 잡고 잤어요! 진짜 건전하게! 초등학생 수련회 보다 더 건전하게요!"연이 억울함에 발을 동동 굴렀지만, 단은 태연하게 젓가락을 들어 팥밥을 입에 넣었다."맛있군. 찰기가 적당해.""이봐요, 단 씨! 해명 안 해요? 사람이 억울해서 밥이 넘어가냐고요! 김 실장님 눈빛 좀 봐요!""해명할 게 뭐 있어. 같이 잤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네 다리가 내 배 위에 얹혀 있었고, 침이 내 옷에 묻어 있었던 건 명백한 일인데. 아! 네가 내 잠옷도 찢었던가?"단은 우아하게 달걀찜을 먹으며 어깨를 으쓱했다.그의 폭탄 발언에 김 실장은 '역시...' 하며 황급히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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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공공의 적
7화. 공공의 적"어머, 저 남자 봐. 연예인 아니야? 배우인가?""완전 내스타일!""옆에 여자는 뭐야? 코디인가? 매니저?""아니, 손을 잡고 있는데?"여기저기서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후드 모자를 더 깊게 눌러썼다. 쪽팔림은 오롯이 그녀의 몫이었다."어깨 펴. 죄지었나?"단이 연의 허리를 끌어당겨 바짝 붙였다. "사람들이 쳐다보잖아요. 이거 좀 놓으면 안 돼요? 쇼핑할 때 만이라도?""안 돼. 사람 많은 곳은 기운이 더 탁해. 두통이 심해진다고.“단은 절대 연의 손을 놓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사람들이 힐끔거리는 게 싫은지 깍지를 낀 손을 자켓 호주머니에 넣었다."어서 오십시오, 고객님."C사 매장 직원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환한 미소로 달려왔다. 그녀의 시선은 단의 손목에 감긴 고가의 시계와, 연이 신고 있는 낡은 운동화 사이를 빠르게 오갔다."이 여자한테 맞는 거,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가져와요. ""네? 전부 다요?""계절별로, 용도별로. 잠옷 포함해서... 특히 잠옷은 실크로. 피부에 닿는 감촉이 중요하니까."단은 연을 소파에 앉히고 자신도 옆에 딱 붙어 앉았다."입어 봐.""저기요, 단 씨. 저 옷 입으려면 피팅룸 들어가야 하거든요? 거기도 따라오시게요? 변태 소리 듣고 싶으세요?"연의 지적에 단이 멈칫했다. 아, 피팅룸. 거기는 1미터 유지가 불가능한 성역이었다."......문 열어놓고 갈아입어.""미쳤어요? 경찰 부를 거예요! 50억이고 뭐고 쇠고랑 차고 싶어요?""그럼 어쩌라고. 손 놓으면 아픈데..."단은 덩치에 안 맞게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렸다.다큰 사내가 백화점 한복판에서 분리불안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결국 연이 타협안을 내놓았다."피팅룸 커튼 끈, 이걸로 연결해요. 그렇게 해도 조금은 효과가 있는 것 같다면서요? 제가 안에서 옷 갈아입는 동안 밖에서 잡고 있어요. 됐죠?"연은 피팅룸 커튼을 묶는 굵은 금색 끈의 한쪽 끝을 밖으로 쑥 내밀었다. 단은 그 끈을 생명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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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일하러 가자
8화. 일하러 가자연의 양손에는 쇼핑백이 주렁주렁 들려 있었다.직원이 차에 실어주겠다고 정중히 제안했지만, 연은 극구 사양했다.손끝에 전해지는 묵직한 무게감, 걸을 때마다 들리는 종이 가방의 경쾌한 바스락거림.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플렉스의 맛 아니겠는가. 그녀는 이 순간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싶었다.사실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기 전, 연의 집안도 나름 남부럽지 않게 살았었다. 하지만 워낙 천성이 검소했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이런 호사는 누려본 적이 없었다.돈이 있을 땐 하나도 아쉽지 않았는데, 막상 궁핍하게 살아보니 조금은 부러워지기도 했었다.더구나 남의 돈으로 쇼핑을 하려니, 억눌려왔던 소비 욕구가 비로소 봉인 해제된 기분이었다.그렇게 콧노래를 부르며 다른 매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때였다.지이잉. 지이잉.단의 휴대폰이 짧고 묵직하게 진동했다. 김 실장이었다."주인님, 두 분의 시간을 방해해서 송구합니다만 의뢰인이 찾아왔습니다."단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꿀 같은 휴식, 아니 연의 체온을 즐기며 통증 없이 보내는 이 평화로운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쫓아내. 오늘 휴무야. 난 지금 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쇼핑 중이라고 해.""그게... 물건 상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주인님께서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것 때문에 집안의 기운이 급격히 탁해지고 있습니다."김 실장의 긴장된 목소리에 단의 걸음이 딱 멈췄다. 물건 하나 때문에 성북동 저택의 기운이 탁해진다고?그건 단순히 가품이나 사연 있는 물건 정도가 아니라는 소리다. 아주 악질적인, 살을 품은 물건이다.도공이자 예술가인 단은, 현세에서 탁월한 안목을 지닌 재벌 고미술 감정가로 통했다.그는 불길한 고미술품을 매입하거나 정화하곤 했는데, 이는 그에게 일종의 '영적 디톡스'였기 때문이다.악귀나 탁기를 정화하고 나면, 꽉 막혀 있던 혈이 뚫리듯 몸이 가벼워지곤 했다. 알음알음 소문을 들은 정·재계 큰손들이 줄을 서서 그에게 의뢰를 맡기는 이유기도 했다."알았다. 지금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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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너는 누구지?"
9화. 너는 누구지?""보증서요? 뭐, 제작 시대로 보면 진품이기는 하죠. 하지만 격이 달라요. 여기 용 발가락 보세요. 왕실에서는 주로 오조룡을 새겨 넣어요.그런데 이건 오조룡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조룡이에요. 웬만한 감정사도 헷갈릴 만큼 정교하지만, 이건 왕실의 물건이 될 수 없습니다."연이 코를 막으며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그런데 이 거울, 나쁜 물질이 나오나 봐요. 라돈인가? 암모니아? 냄새가 너무 심해서 머리가 다 아프네요. 환기 좀 하셔야겠어요."연의 말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거울이 반응했다. 자신의 정체를 들켰다는 듯이.끼이이에에엑!거울 면에서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검은 연기가 확 피어올라 의뢰인을 향해 쇄도했다."으아아악!"의뢰인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연의 눈에는 그 검은 연기가 유독 가스 누출처럼 보였다.가스가 뱀처럼 똬리를 틀며 의뢰인의 발목을 감으려 했다. 단이 눈을 찡그렸다. 그의 눈에는 흉측한 악귀의 손이 보였기 때문이다.연의 눈에는 20억짜리 불량품이 고객을 향해 유독 가스를 뿜어내는 것으로 보였다."어? 가스 샌다! 위험해!"연이 움직였다. 연은 신을 벗어들고, 망설임 없이 검은 연기를 향해. 아니, 거울을 향해 힘껏 내리쳤다.가스가 나오는 구멍을 막아버리겠다는 단순하고도 무식한 대처였다.챙!물리적인 타격과 함께 연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미세한 황금색의 빛이 신발을 타고 거울로 전해졌다.연은 자각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정화의 힘이었다.키에에엑!찢어지는 듯한 기계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사라졌다. 거울을 감싸고 있던 검붉은 탁기가 순식간에 걷히고, 거울은 그저 평범한 골동품으로 변했다."허, 헉. 헉."연은 숨을 몰아쉬며 맨발로 바닥을 딛고 섰다. 가스의 영향인지 신발을 던진 단순한 행동을 한 것뿐인데 힘이 빠지고 다리가 후들거렸다.잠시 후 방 안의 악취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온기가 돌아왔다. "......."단은 그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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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저 오빠가 왜 여기서 나와?
10화. 저 오빠가 왜 여기서 나와?은랑의 시선이 연을 지나, 그녀의 손을 꼭 쥐고 있는 단의 손으로 옮겨갔다.혐오와 질투가 뒤섞인 소름 끼치는 살기가 고택의 공기를 압도했다.'주인님께서는 저 도둑놈이 구원받을 때까지, 주인의 피를 받은 가문을 지키라고 했지만...'은랑이 들리지 않게 으르렁거렸다."마음에 안 들어, 도둑놈. 우리 주인님의 힘을 빼앗은 도둑놈."은랑의 낮은 으르렁거림에 단은 연을 품에 단단히 안았고 서연은 단의 품 안에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야? 저 오빠가 왜 여기서 나와? 여기 대체 뭐 하는 집이지?'"냄새 나는 도둑놈."은랑이 선글라스를 벗어 재킷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드러난 얼굴은 그야말로 화려함 그 자체였다.조명을 받지 않았음에도 자체 발광하는 백금발, 이국적인 이목구비, 그리고 사람을 홀리는 묘한 눈빛까지.대한민국 여성의 70%가 그를 배경화면으로 해놓았다는 전설의 아이돌, 그룹 더 울프의 리더 은랑이었다.'와우! 화면으로도 화려함의 극치였는데, 실물은 더 예술이네. 은랑을 이 거리에서 직관하다니...'하지만, 그의 눈빛은 팬 사인회에서 보여주던 그 달콤한 눈빛이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목덜미를 물어뜯을 듯한 적의가 단을 향해 꽂혀 있었다.​"......."단은 연을 안고 있던 팔을 풀지 않은 채, 천천히 고개만 돌려 무심하게 은랑을 바라보았다.마치 길 가다가 짖어대는 똥개를 본 사람처럼, 귀찮음과 불쾌함만이 서려 있을 뿐이었다.​"집 지키라고 마당에 풀어놨더니, 주인이 있는 안방까지 기어들어 왔군."단이 낮게 으르렁거렸다."나가라. 털 날리니까.""하! 웃기고 있네."은랑이 헛웃음을 치며 오히려 성큼성큼 거실로 들어왔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야생 짐승 특유의 위압적인 기운이 바닥을 울렸다."여기가 네 집인 줄 알아? 천 년 동안 우리 신선님의 힘을 훔쳐서 쌓아 올린 가짜 성 주제에."'천 년? 훔친 힘? 가짜 성?'두 남자의 살벌한 기싸움 사이에서, 연은 눈을 깜빡였다.'재벌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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