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억척스럽게 빚을 갚으며 살아가던 생계형 감정사, 서연. 어느 날 생뚱맞게 치료사로 고용되어 50억 전속 계약을 맺는다. 24시간, 1미터. 신의 실수를 뒤집어쓴 깨진 그릇 이단은 서연만이 유일한 구원이란다. “피해 금액은 을이 산정한다? 단 씨, 이런 조항 막 쓰면 사기당해요.” “그대가 원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멜로 눈빛에 손발은 오그라들어도 계산은 정확하게! 그런데, 힘을 쓸 때마다 생명력이 깎여 나간단다. 살아남으려면 신의 파편을 찾아 정화하고 흡수해야 하는데... 자본주의로 무장한 생계형 감정사 서연의 50억짜리 목숨 건 퇴마 로맨스!
더 보기1화. 누구냐?
서울 성북동의 아침.
“하아, 하아…… 미치겠네, 진짜. 부자들은 왜 다들 산꼭대기에 사는 거야? 산소 부족으로 먼저 죽겠네. 하긴 저들은 뚜벅이의 고통을 알 리가 없지. 어휴.”
서연은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언덕길을 올라갔다.
서연.
불과 1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 학계가 주목하던 최연소 수석 감정평가사였다.
고려청자의 미세한 균열만 보고도 가마터의 위치를 맞히고, 위작을 만든 놈의 족보까지 털어버린다는 신의 눈을 가진 천재.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지금은 빚더미에 앉은 신용불량자 신세였다.
“허억, 허억. 한 오십억만 내 앞에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
서연은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오늘 그녀가 만날 의뢰인은 성북동 유령 저택의 주인이었다.
업계에서는 미치광이 수집광이라 불리는 인물.
그의 집에 들어갔던 감정사들은 하나같이 두 번 다시 그 집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다.
하지만 서연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지금 그녀의 뒤에는 저승사자보다 무서운 채권자들이 있었으니까.
“귀신? 웃기지 마. 나한테 제일 무서운 건 은행 독촉 전화야.”
마침내 거대한 대문 앞에 도착한 서연은 망설임 없이 초인종을 눌렀다.
끼이익.
대문이 스스로 열렸다.
‘뭐야? 대답도 없이 그냥 열어주는 거야?’
상쾌한 나무 향이 서연을 맞이했다.
대문 안은 다른 세상이었다.
울창한 대나무 숲과 바닥에 깔린 고급스러운 현무암.
그리고......
‘저거...... 고려 시대 석등 아니야? 저게 왜 마당 장식품으로 굴러다녀? 경매가 최소 5억인데.’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국보급 유물들이 무심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니,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유물을 이토록 일상적으로 다루는 방식은 서연에게 차라리 방치나 다름없어 보였다.
저 석등의 가치를 안다면, 저 청자가 품은 세월의 무게를 안다면 결코 마당 한구석에 물받이 따위로 두지는 못할 텐데.
“우와~ 미쳤네, 진짜. 이 집 주인은 유물을 꿰뚫어 보는 거야, 아니면 아예 눈이 먼 거야?”
서연은 헛웃음을 삼키며 일부러 또각또각 인기척을 내며 안채로 향했다.
똑, 똑.
“안에 누구 계신가요? 오늘 방문하기로 한 감정사 서연입니다.”
대답은 없었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선 서연의 걸음이 멈췄다.
넓은 거실 한가운데.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누군가 웅크리고 있었다.
“...... 끄으윽.”
남자는 머리를 감싸 쥔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번 붕괴기는 이전과 달랐다. 더 빨랐고, 더 강력했다.
단의 육체가 안에서부터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119 부를까요?”
서연이 휴대폰을 꺼내려던 순간이었다.
휙!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세상이 뒤집혔다.
“악!”
엄청난 악력이 그녀를 낚아채 소파 위로 내동댕이쳤다.
“누구냐?”
남자가 순식간에 그녀의 위를 덮쳤다.
어둠 속에서도 창백한 얼굴은 섬뜩할 만큼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눈에는 짙은 살기가 번뜩이고 있었다.
“어떤 놈이 보냈지? 최민준인가?”
“저는 그냥 감정사인데요!”
“시끄러워!”
붕괴가 시작될 때마다 찾아오는 감각 과민증.
지금 단에게는 세상의 모든 소리와 감각이 살을 찢고 뼈를 긁어내는 칼날이었다.
“아니, 사람 말을 좀......!”
서연이 몸을 일으키려 허우적거리던 순간, 손바닥이 남자의 뺨을 스쳤다.
찰싹.
그 순간.
세상이 멎었다.
서연과 단의 눈이 동시에 크게 뜨였다.
서연은 난데없이 남자의 뺨을 때린 꼴이 되어 당황했고, 단은 전혀 다른 이유로 충격에 빠졌다.
머릿속을 울리던 굉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온몸을 난도질하던 고통마저 멎었다.
서연의 손바닥이 닿은 곳에서부터 따뜻한 무언가가 스며들었다.
뺨을 지나 목으로, 가슴을 지나 온몸으로.
천 년 동안 어긋난 채 덜그럭거리던 뼛조각들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 맞물리는 듯한 기묘한 감각.
“.......”
단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이럴 리가 없었다.
천 년이었다.
그 어떤 약도, 어떤 의원도, 어떤 신비한 힘도 잠재우지 못했던 고통이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자신을 만진 것만으로 사라졌다.
단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뺨에 닿은 서연의 손을 덮어 눌렀다.
놓칠 수 없었다. 이 손이 떨어지는 순간 다시 그 지옥으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저기요?”
단은 대답하지 않았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서연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손목을 끌어당겨 코끝에 가져갔다.
그리고 깊숙이 숨을 들이마셨다.
“하아.......”
“뭐, 뭐 하는 거예요?”
서연이 기겁하며 손을 빼려 했다.
그러나 단은 오히려 그녀를 더 강하게 끌어당겼다.
손끝이 떨어지자마자 되살아나려던 고통이 다시 희미해졌다.
단의 입에서 안도에 가까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지옥 불 속에서 처음으로 구원을 발견한 사람처럼.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까지 살기로 번뜩이던 눈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당신, 정체가 뭐지?”
“네?”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무 짓도 안 했거든요? 이것부터 놓고 말해요! 성희롱으로 고소하기 전에!”
서연이 바락바락 대들었다.
단의 미간이 순간 움찔했다.
시끄러웠다.
분명 시끄러운데......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편안했다.
단의 입가에 처음으로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시끄러운데.......”
“뭐라고요?”
“거슬리지 않아.”
단이 서연의 손을 제 뺨에 가져다 댔다.
“네 목소리는 안 아파. 심지어 편안해.”
“으악! 이 사람 진짜 미쳤나봐!”
단은 아예 서연의 팔에 얼굴을 비비기 시작했다.
“아악! 사람 살려! 여기 누구 없어요? 도와주세요!”
그제야 거실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무슨 일입니까?”
점잖은 차림의 중년 남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뛰어 들어왔다.
단의 힘이 느슨해진 순간, 서연은 재빨리 몸을 빼내 중년 남자의 뒤로 숨었다.
“저는 오늘 방문하기로 한 감정평가사 서연입니다. 그런데 저 사람이 갑자기 저를 공격했어요!”
중년 남자의 표정이 난처해졌다.
“아...... 저분이 이곳의 주인이십니다.”
“네?”
서연의 얼굴이 굳었다.
“저 미친놈...... 아니, 저분이요?”
조금 전까지의 공포가 아주 조금 가라앉자 그제야 서연의 눈에 남자의 모습이 제대로 들어왔다.
손목에 찬 고가의 시계. 몸에 걸친 옷부터 신발까지 얼핏 보기에도 엄청난 가격의 명품이었다.
무엇보다 훨씬 오래되고 값비싼 무언가가 남자 자체에서 느껴졌다.
서연은 저도 모르게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
거실까지 들어오며 보았던 수많은 유물들.
왠지 눈앞의 남자는 그 모든 것보다 더 오래되고 고귀한 무언가를 품고 있는 듯했다.
‘살아있는 유물이야, 뭐야?’
그때 단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이름.”
“네?”
“네 이름.”
“서, 서연이요.”
단은 그 이름을 기억하듯 천천히 되뇌었다.
“서연.”
그리고 망설임 없이 물었다.
“얼마면 되지?”
“네? 잘...... 못 들었습니다만?”
“너를 사겠다.”
서연의 입이 벌어졌다.
단은 그녀의 표정 따위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얼굴로 다시 물었다.
“얼마면 되겠냐고.”
228화. 뉴스들경주의 평화로운 아침을 깨운것은 김실장의 문자였다.[대표님, 금동 용머리와 관련해 확인하셔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연락 부탁드립니다.]서연도 그의 시선을 따라 화면을 바라봤지만, 이내 손을 잡아당겼다.“급한 일이면 전화하셨겠죠. 일단 아침부터 먹어요.”단은 그녀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러자.”서연은 침대에서 일어나 커튼을 활짝 걷었다. 밤새 반짝이던 경주의 불빛 대신 환한 아침 풍경이 펼쳐졌고, 뒤따라온 단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단 씨, 우리 오늘 바로 올라가야겠죠?”“김 실장이 저렇게 연락한 걸 보면 확인할 일이 있는 모양이야. 아침 먹고 출발하자.”“네. 어차피 수아 씨도 무사히 안동에 도착했으니까, 저택에서 다 같이 상황을 정리하는 게 좋겠어요.”두 사람은 룸서비스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짐을 챙겼다.단이 김 실장에게 연락하자 예상대로 금동 용머리와 관련된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언론에서 훼손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관련 자료는 확보하고 있으니, 돌아오시면 자세히 보고드리겠습니다.”“알겠어. 저택에서 보지.”단은 전화를 끊고 서연을 바라봤다.“금동 용머리가 훼손됐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나 봐.”“훼손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제가 직접 확인했을 때도 멀쩡했는데요. 정화까지 끝났으니 오히려 상태가 더 좋아졌을 텐데.”서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최민준이겠죠. 금동 용머리로 계획했던 일을 하지 못했으니까요.”“가능성이 높아. 돌아가서 확인해 보자.”단은 서연의 여행 가방을 챙겨 들었다.“그런데 안동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모두 저택으로 불러야 하는 걸까요?”“아니. 수아는 아직 회복이 필요하고 남아 있는 주술도 살펴봐야 하니까, 당분간 안동에 머무르는 편이 좋겠어. 서단과 루나가 곁에 있으면 안전할 거야.”“그럼 은랑 씨는요?”“저택으로 돌아오라고 해야지. 가능한 수아가 우리의 수중에 있다는 의심을 사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227화. 의혹 제기경매 당일, 경주 시내의 한 차량 안에서 남자가 휴대전화를 들었다.“대표님, 두 사람은 호텔에 들어갔습니다.”- 호텔?“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곧바로 이동했습니다.”수화기 너머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다른 움직임은?“없습니다. 경매가 끝난 뒤부터 계속 함께 있었고, 식사하는 동안에도 특별한 접촉은 없었습니다. 그저…….”남자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덧붙였다.“평범한 연인들처럼 보였습니다.”최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책상 위에 놓인 태블릿 화면을 내려다봤다.수아가 사라졌다. 자신이 걸어 둔 감시 주술까지 끊고서.가장 의심스러운 이단과 서연은 경매장에서 태연하게 시간을 보내고, 저녁 식사를 즐긴 뒤 호텔에 들어갔다.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계속 감시해.“알겠습니다.”통화가 끝나고, 최민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스승님…….”최민준은 낮게 중얼거렸다.“정말 아무것도 모르시는 겁니까, 아니면 저를 가지고 노시는 겁니까.”그는 태블릿 화면에 떠 있는 금동 용머리의 사진을 바라봤다.최민준은 잠시 생각하다 다른 번호를 눌렀다.“박 교수님, 접니다.”- 아, 최 대표님.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오늘 경매에 나온 금동 용머리 말입니다. 낙찰 이후 상태를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상태라니요? 경매 전 감정은 이미 끝났고, 특별한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그때는 그랬겠죠.”최민준은 사진을 확대했다.“그런데 낙찰 이후 유물의 상태가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만약 감정 과정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겠습니까?”전화기 너머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혹시 유물에 손상이 생겼다는 말씀이십니까?“그건 확인해 봐야겠죠. 저는 전문가가 아니니까요.”최민준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다만 박 교수님처럼 경험이 풍부한 분이 관심을 가져 주시면 좋겠습니다. 문화재라는 게 한번 손상되면 되돌리기 어렵지 않습니까. 특히 경매에
226화. 온전히 너와 나그의 손이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들어왔다.서연은 단의 눈을 바라보다 그의 목에 두 팔을 둘렀다. 경매장에서부터 자신을 바라보던 시선도, 저녁 식사 내내 조급해하던 이유도 이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단 씨, 저도 같은 마음이에요.”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단이 그녀를 끌어안았다.입술이 맞닿자 서연은 그의 어깨에 기댔고, 단은 하루 종일 참아 왔던 마음을 전하듯 그녀에게 깊이 입을 맞췄다. 서연 역시 그의 목을 감싼 팔에 힘을 주며 기꺼이 응답했다.어느새 침실까지 들어온 두 사람은 침대 가장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단이 서연의 뺨을 감싸자 그녀가 먼저 입술을 맞췄고, 길어진 입맞춤 끝에 서연은 그의 품에 안겨 침대에 몸을 기댔다.잠시 후 목이 마르다며 일어난 서연을 따라 단도 거실로 나왔다.물을 마시고 돌아서는 순간 다시 허리를 감싸는 손길에 서연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단 씨?”“오늘은 좀 어렵군.”두 사람의 입술이 다시 겹쳐진 순간이었다.지이잉. 지이잉.테이블 위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서연은 단의 어깨에 이마를 기댄 채 웃음을 터뜨렸고, 단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다가 마지못해 몸을 일으켰다.“김 실장이군.”“받으셔야죠. 중요한 일이면 어떡해요.”단은 짧게 숨을 내쉬고 전화를 받았다.다행히 좋은 소식이었다. 수아가 안동의 안전가옥에 무사히 도착했고, 루나가 상태를 살피고 있다는 보고였다.감시 주술도 다시 연결되지 않았으며, 남아 있는 속박은 시간을 두고 풀기로 했다고 했다.단은 필요한 지시를 마친 뒤 급한 일이 아니면 나머지는 내일 보고하라고 당부했다.전화를 끊자 서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정말 다행이에요. 이제 마음 놓고 쉴 수 있겠어요.”“그러게. 김 실장이 조금만 늦게 전화했어도 좋았겠지만.”너무도 진지한 불평에 서연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단 씨가 김 실장님한테 그런 불만을 가지실 줄은 몰랐어요.”“나도 몰랐어.”두 사람은 한동안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다가 각자 샤
225화. 네가 더 예쁘니까.호텔은 경주 시내에서도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늦은 시간이었지만 로비에는 몇몇 투숙객이 오가고 있었고, 은은한 조명 아래로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조용하고 느긋한 음악과는 다르게 단은 조금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로비에서도, 엘리베이터 안에서도.단은 층수를 확인한 뒤 서연을 바라봤고, 그녀가 시선을 마주치자 별다른 말 없이 손을 고쳐 잡았다.서연은 이제 조금 걱정까지되었다.“단 씨. 혹시 호텔에 뭐 숨겨 놓으셨어요? 아니면, 최민준 관련된 일이 또 있어요?"“그런거 아니니까 걱정하지마."“단 씨 답지않게 좀, 긴장하고, 급해보여서요."“그랬나. 그래 보였군."스위트룸 앞에 도착했을 때, 서연은 카드키를 대는 그의 손이 평소보다 조금 빠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룸은 넓은 거실과 통유리 너머로 펼쳐진 경주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와…….”서연은 감탄을 터뜨렸다.“단 씨, 여기 정말 좋네요. 저쪽으로 가면 야경이 더 잘 보이겠어요.”그녀는 창가로 향하려다가 허리를 감싸는 손길에 걸음을 멈췄다.“연.”귓가에 닿은 목소리가 조금 전과 달랐다. 연이 뒤를 돌아 보았다.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서연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마치 하루 종일 참아 왔던 말을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고르는 사람 같았다.“단 씨?”“아까 네가 그랬지. 경매장에서 나에게 입 맞출지도 모른다고.”서연은 잠시 생각하다 웃음을 터뜨렸다.“아, 그거요? 단 씨를 놀리려고 한 말이었는데요.”단은 그녀의 허리를 감싼 손에 조금 힘을 주었다.“그때부터 계속 생각했어.”“……뭐를요? 뭐가요?”그의 긴장이 연에게 까지 이어졌다.저녁 식사 내내 자신을 바라보던 시선도, 자꾸 시간을 확인하던 이유도, 호텔을 미리 예약해 놓았던 까닭도.“단 씨. 설마 그 말 때문에 계속 조급하셨던 거예요?”“네가 그런 말을 해 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경매를 구경하니까.”단이 천천히 그녀의 뺨을 감쌌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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