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공의 유일한 구원자

도공의 유일한 구원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By:  실현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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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척스럽게 빚을 갚으며 살아가던 생계형 감정사, 서연. 어느 날 생뚱맞게 치료사로 고용되어 50억 전속 계약을 맺는다. 24시간, 1미터. 신의 실수를 뒤집어쓴 깨진 그릇 이단은 서연만이 유일한 구원이란다. “피해 금액은 을이 산정한다? 단 씨, 이런 조항 막 쓰면 사기당해요.” “그대가 원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멜로 눈빛에 손발은 오그라들어도 계산은 정확하게! 그런데, 힘을 쓸 때마다 생명력이 깎여 나간단다. 살아남으려면 신의 파편을 찾아 정화하고 흡수해야 하는데... 자본주의로 무장한 생계형 감정사 서연의 50억짜리 목숨 건 퇴마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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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1화. 시작 그리고 만남

프롤로그. 99년의 영광, 1년의 지옥

죄명은 사랑이었다.

하늘의 이치를 관장하던 고귀한 신선.

그가 감히 인간 여인을 연모하여, 정해진 수명을 늘리기 위해 사사로이 신력을 사용한 죄.

천계는 그 오만함을 용서하지 않았다.

콰아앙!

하늘이 찢어지는 굉음과 함께 신선은 지상으로 내쳐졌다.

추락하는 순간, 그의 영혼은 수천수만 조각으로 찢겨나갔고 신력의 대부분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남은 힘마저 폭주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지상에 떨어진다면 반경 수백 리가 잿더미로 변할 터였다.

‘내 힘을 나눠 담아야 한다.’

신선은 자신의 힘을 받아낼 그릇을 찾아 헤맸다.

그때 그의 눈에 산속의 불빛이 들어왔다.

미친 듯이 타오르는 가마터.

붉다 못해 푸르게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세상 그 어떤 그릇보다 단단하고 완벽한 도자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고려 초기, 천 년 전의 겨울.

도공 단은 핏발 선 눈으로 가마를 노려보고 있었다.

자신의 모든 예술혼과 생명력을 태워, 신조차 감탄할 완벽한 도자기를 빚어내고 있었다.

세상이 비취색 청자에 열광하던 시대.

그는 홀로 시대를 앞서 순백의 아름다움을 빚어내고 있었다.아름다운 도공의 얼굴에 만족의 미소가 떠오른 순간. 하늘에서 떨어진 빛 덩어리가 가마터를 덮쳤다.

신선은 푸른 불길을 견뎌낸 그릇이라면 자신의 폭주하는 신력도 받아낼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는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도자기 속으로 신력을 밀어 넣었다.

그러나 자신의 역작을 지키려던 도공 단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안 돼!”

파아앗!

비극은 찰나였다.

그릇으로 향하던 거대한 신력이 단의 몸에 닿는 순간, 신선의 힘과 생명력까지 모조리 그의 육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끄아아아악!”

인간의 몸에 감당할 수 없는 신력이 억지로 깃들었다.

그것은 축복이 아닌 저주였다.

살이 타들어 가고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 속에서 단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때 산 아래 마을에서 한 소녀가 달려왔다.

단을 걱정해 매일같이 음식을 챙겨 산을 오르던 아이였다.

오늘도 품에 주먹밥을 안고 가파른 산길을 달려온 소녀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단은 황금빛 불길에 휩싸인 채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그 곁에는 백발의 아름다운 사내가 쓰러져 있었다.

“단 아저씨!”

소녀는 뜨거운 기운에 차마 단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대신 쓰러진 신선에게 달려갔다.

품에서 물통을 꺼내 마른 입술에 물을 흘려주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저씨는 누구예요? 우리 단 아저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

“저자가...... 내 힘을 받아버렸다.”

믿기 힘든 말이었다.

그러나 단의 처절한 비명 앞에서 소녀는 눈물을 쏟으며 애원했다.

“우리 아저씨 좀 살려주세요. 제발요!”

신선은 힘겹게 소녀를 바라보았다.

“아이야...... 내 실수로 저 남자는 멈추지 않는 고통 속에 갇히게 되었다.”

신선의 손끝에서 영롱한 황금빛 피 한 방울이 떠올랐다.

“먼 훗날, 네 핏줄에서 태어난 아이가 이 힘을 각성할 것이다.”

그는 피 한 방울을 소녀에게 내밀었다.

“그 아이가 저 남자의 고통을 잠재워 줄 것이다. 그때까지...... 저자를 외면하지 말아 다오.”

소녀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할게요.”

작은 손이 꼭 쥐어졌다.

“제가, 그리고 제 혈육이 단 아저씨를 꼭 구해줄게요.”

황금빛 핏방울이 소녀의 이마 속으로 스며들었다.

신선은 안도하듯 미소 지었다.

‘나의 사랑이 죄를 만들고, 인간의 사랑이 나의 죄를 구원하는구나.’

“은빛 늑대야. 붉은 여우야.”

신선의 부름에 숲의 주인인 두 영물이 신선의 곁으로 다가왔다.

“나의 시간은 끝났다.”

신선은 은빛 늑대를 바라보았다.

“너는 저 소녀의 가문을 지켜라. 언젠가 그 후손이 저 사내를 구원하는 날까지.”

그리고 붉은 여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는 저 사내를 지켜라. 그가 고통에 미쳐 세상을 어지럽히지 않도록 곁에서 감시하고 보살펴라.”

모든 말을 마친 신선은 빛이 되어 사라졌다.

숲 전체에 은은한 황금빛이 번졌다.

붉은 여우는 단을 노려보았다.

자신의 주인을 소멸시킨 원수.

당장이라도 목을 물어뜯고 싶었지만, 마지막 유언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그날 이후, 단에게는 잔혹한 형벌이 내려졌다.

신의 힘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한 인간의 육체는 백 년에 한 번씩 무너졌다.

99년의 영광.

늙지 않는 육체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재능으로 그는 세상을 발아래 두었다.

왕의 스승이 되기도 했고, 나라를 움직이는 거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 년이 채워지는 순간 모든 것이 뒤집혔다.

1년의 지옥.

육체가 무너지고 영혼이 찢기는 붕괴기가 시작되었다.

단은 지난 아홉 번의 붕괴기를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견뎌냈다.

그리고 지금.

가장 두렵고 혹독한 열 번째 붕괴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천 년 동안 기다려온 것은 단 하나.

자신의 고통을 끝내줄, 각성한 구원자였다.

1화. 만남

서울 성북동의 아침.

“하아, 하아…… 미치겠네, 진짜. 부자들은 왜 다들 산꼭대기에 사는 거야? 산소 부족으로 먼저 죽겠네. 하긴 저들은 뚜벅이의 고통을 알 리가 없지. 어휴.”

서연은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언덕길을 올라갔다.

서연.

불과 1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 학계가 주목하던 최연소 수석 감정평가사였다.

고려청자의 미세한 균열만 보고도 가마터의 위치를 맞히고, 위작을 만든 놈의 족보까지 털어버린다는 신의 눈을 가진 천재.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지금은 빚더미에 앉은 신용불량자 신세였다.

“허억, 허억. 한 오십억만 내 앞에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

서연은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오늘 그녀가 만날 의뢰인은 성북동 유령 저택의 주인이었다.

업계에서는 미치광이 수집광이라 불리는 인물.

그의 집에 들어갔던 감정사들은 하나같이 두 번 다시 그 집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다.

하지만 서연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지금 그녀의 뒤에는 저승사자보다 무서운 채권자들이 있었으니까.

“귀신? 웃기지 마. 나한테 제일 무서운 건 은행 독촉 전화야.”

마침내 거대한 대문 앞에 도착한 서연은 망설임 없이 초인종을 눌렀다.

끼이익.

대문이 스스로 열렸다.

‘뭐야? 대답도 없이 그냥 열어주는 거야?’

상쾌한 나무 향이 서연을 맞이했다.

대문 안은 다른 세상이었다.

울창한 대나무 숲과 바닥에 깔린 고급스러운 현무암.

그리고......

‘저거...... 고려 시대 석등 아니야? 저게 왜 마당 장식품으로 굴러다녀? 경매가 최소 5억인데.’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국보급 유물들이 무심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니,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유물을 이토록 일상적으로 다루는 방식은 서연에게 차라리 방치나 다름없어 보였다.

저 석등의 가치를 안다면, 저 청자가 품은 세월의 무게를 안다면 결코 마당 한구석에 물받이 따위로 두지는 못할 텐데.

“우와~ 미쳤네, 진짜. 이 집 주인은 유물을 꿰뚫어 보는 거야, 아니면 아예 눈이 먼 거야?”

서연은 헛웃음을 삼키며 일부러 또각또각 인기척을 내며 안채로 향했다.

똑, 똑.

“안에 누구 계신가요? 오늘 방문하기로 한 감정사 서연입니다.”

대답은 없었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선 서연의 걸음이 멈췄다.

넓은 거실 한가운데.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누군가 웅크리고 있었다.

“...... 끄으윽.”

남자는 머리를 감싸 쥔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번 붕괴기는 이전과 달랐다. 더 빨랐고, 더 강력했다.

단의 육체가 안에서부터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119 부를까요?”

서연이 휴대폰을 꺼내려던 순간이었다.

휙!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세상이 뒤집혔다.

“악!”

엄청난 악력이 그녀를 낚아채 소파 위로 내동댕이쳤다.

“누구냐?”

남자가 순식간에 그녀의 위를 덮쳤다.

어둠 속에서도 창백한 얼굴은 섬뜩할 만큼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눈에는 짙은 살기가 번뜩이고 있었다.

“어떤 놈이 보냈지? 최민준인가?”

“저는 그냥 감정사인데요!”

“시끄러워!”

붕괴가 시작될 때마다 찾아오는 감각 과민증.

지금 단에게는 세상의 모든 소리와 감각이 살을 찢고 뼈를 긁어내는 칼날이었다.

“아니, 사람 말을 좀......!”

서연이 몸을 일으키려 허우적거리던 순간, 손바닥이 남자의 뺨을 스쳤다.

찰싹.

그 순간.

세상이 멎었다.

서연과 단의 눈이 동시에 크게 뜨였다.

서연은 난데없이 남자의 뺨을 때린 꼴이 되어 당황했고, 단은 전혀 다른 이유로 충격에 빠졌다.

머릿속을 울리던 굉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온몸을 난도질하던 고통마저 멎었다.

서연의 손바닥이 닿은 곳에서부터 따뜻한 무언가가 스며들었다.

뺨을 지나 목으로, 가슴을 지나 온몸으로.

천 년 동안 어긋난 채 덜그럭거리던 뼛조각들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 맞물리는 듯한 기묘한 감각.

“.......”

단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이럴 리가 없었다.

천 년이었다.

그 어떤 약도, 어떤 의원도, 어떤 신비한 힘도 잠재우지 못했던 고통이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자신을 만진 것만으로 사라졌다.

단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뺨에 닿은 서연의 손을 덮어 눌렀다.

놓칠 수 없었다. 이 손이 떨어지는 순간 다시 그 지옥으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저기요?”

단은 대답하지 않았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서연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손목을 끌어당겨 코끝에 가져갔다.

그리고 깊숙이 숨을 들이마셨다.

“하아.......”

“뭐, 뭐 하는 거예요?”

서연이 기겁하며 손을 빼려 했다.

그러나 단은 오히려 그녀를 더 강하게 끌어당겼다.

손끝이 떨어지자마자 되살아나려던 고통이 다시 희미해졌다.

단의 입에서 안도에 가까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지옥 불 속에서 처음으로 구원을 발견한 사람처럼.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까지 살기로 번뜩이던 눈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당신, 정체가 뭐지?”

“네?”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무 짓도 안 했거든요? 이것부터 놓고 말해요! 성희롱으로 고소하기 전에!”

서연이 바락바락 대들었다.

단의 미간이 순간 움찔했다.

시끄러웠다.

분명 시끄러운데......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편안했다.

단의 입가에 처음으로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시끄러운데.......”

“뭐라고요?”

“거슬리지 않아.”

단이 서연의 손을 제 뺨에 가져다 댔다.

“네 목소리는 안 아파. 심지어 편안해.”

“으악! 이 사람 진짜 미쳤나봐!”

단은 아예 서연의 팔에 얼굴을 비비기 시작했다.

“아악! 사람 살려! 여기 누구 없어요? 도와주세요!”

그제야 거실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무슨 일입니까?”

점잖은 차림의 중년 남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뛰어 들어왔다.

단의 힘이 느슨해진 순간, 서연은 재빨리 몸을 빼내 중년 남자의 뒤로 숨었다.

“저는 오늘 방문하기로 한 감정평가사 서연입니다. 그런데 저 사람이 갑자기 저를 공격했어요!”

중년 남자의 표정이 난처해졌다.

“아...... 저분이 이곳의 주인이십니다.”

“네?”

서연의 얼굴이 굳었다.

“저 미친놈...... 아니, 저분이요?”

조금 전까지의 공포가 아주 조금 가라앉자 그제야 서연의 눈에 남자의 모습이 제대로 들어왔다.

손목에 찬 고가의 시계. 몸에 걸친 옷부터 신발까지 얼핏 보기에도 엄청난 가격의 명품이었다.

무엇보다 훨씬 오래되고 값비싼 무언가가 남자 자체에서 느껴졌다.

서연은 저도 모르게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

거실까지 들어오며 보았던 수많은 유물들.

왠지 눈앞의 남자는 그 모든 것보다 더 오래되고 고귀한 무언가를 품고 있는 듯했다.

‘살아있는 유물이야, 뭐야?’

그때 단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이름.”

“네?”

“네 이름.”

“서, 서연이요.”

단은 그 이름을 기억하듯 천천히 되뇌었다.

“서연.”

그리고 망설임 없이 물었다.

“얼마면 되지?”

“네? 잘...... 못 들었습니다만?”

“너를 사겠다.”

서연의 입이 벌어졌다.

단은 그녀의 표정 따위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얼굴로 다시 물었다.

“얼마면 되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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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

박경순
박경순
도공 맘에듬니다. 은랑도 기대합니다~
2026-08-29 17:21:49
1
0
실현
실현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이 작품은 퇴마를 통한 구원 로맨스입니다. 악귀가 될 수밖에 없었던 가엾은 영혼들의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날마다 더 행복하세요~ 오늘의 당신을 응원합니다♡
2026-08-21 08:43:18
1
0
금빛ㅊㅊ
금빛ㅊㅊ
재밌어요~~~~~~
2026-08-20 14:43:42
1
0
Eui Beum Lee
Eui Beum Lee
천년의 기다림의 사랑으로 해피하길~~~~
2026-08-08 10:04:17
1
0
119 Chapters
2화. 돈 많고, 아프고, 좀 치명적인 미친놈
2화. 돈 많고, 아프고, 좀 치명적인 미친놈‘미친놈인 게 분명하다.’서연은 눈앞의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성북동의 미치광이 수집광.‘완벽하게 아름다운 것이라면 무엇이든 수집한다는 소문까지 있었는데...... 설마 나를 사겠다는 것도 그런 의미야?’서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제가 예쁘기는 하지만, 완벽하게 아름다운 정도는 아닌데요?”순간 단과 김 실장이 동시에 반응했다.“큽.”“하!”서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두 분 지금 웃으셨어요?”“크흠!”김 실장이 황급히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수습했다.“주인님께서 며칠째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셔서 심신이 많이 지쳐 계십니다. 조금 전의 무례는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김 실장.”단이 그의 말을 잘랐다.“그런 게 아니다.”“예?”“저 여자가 필요해.”단의 말에 김 실장의 표정이 굳었다.“무슨 말씀이십니까?”“내 고통을 잠재웠어.”김 실장의 눈이 크게 뜨였다.“그게, 정말입니까?”“그래.”단은 다시 찾아오는 고통에 미간을 찌푸렸다.“잠깐 닿았을 뿐인데 모든 게 멎었다.”그의 시선이 서연에게 박혔다.“그러니까 저 여자가 필요해. 지금 당장.”“으윽.”단이 머리를 짚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얼마면 되지?”같은 질문이었다. 그제야 서연도 대충 상황을 이해했다.자신이 저 남자의 고통을 잠재울 수 있다는 뜻인 모양이었다.‘뭐야? 치료사? 진통제? 그런 게 필요하다는 건가?’그렇다면...... 서연의 머릿속에서 주판알이 빠르게 튕겨졌다.‘한번 질러봐?’“저, 엄청 비싼데요?”“상관없어.”단의 대답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내 전 재산을 다 주더라도 널 곁에 둬야 하니까.”김 실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주인님. 전 재산은 곤란합니다.”“김 실장.”“예.”“조용히 해.”“......예.”서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자신에게 못 박힌 눈빛도, 절박하게 굳은 표정도,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앞으로 기울어진 몸도 모두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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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한 침대에서 자요?
5화. 한 침대에서 자요?김 실장은 단과 서연의 모습을 바라보다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단이 저렇게 편안한 표정을 짓는 것은 그가 곁에서 모시는 동안 처음 보는 일이었다.밤이 되자 저택은 낮보다 훨씬 으스스해졌지만 서연은 어둠 따위 무섭지 않았다.세상에서 제일 비싼 보디가드가 옆에 딱 붙어 있었으니까.하지만, 하지만!‘24시간 밀착이라고는 했지만…… 설마 잠까지 같이 자자는 건 아니겠지?’“저기, 단 씨.”“왜?”“이제 잘 시간인데요.”“그래. 자야지.”“그런데, 저는 어디서 자요? 제 방은 어디예요?”서연이 불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당연히 방은 따로 쓰는 거죠?”단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무슨 소리야. 1미터 유지라니까.”“에이~ 설마 아니죠?”“떨어지면 아파서 잠을 못 자. 지난 한 달 동안 한숨도 못 잤다.”단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낮게 덧붙였다.“아니...... 마음 편히 숨조차 쉬지 못했어.”서연의 눈이 커졌다.“아니, 그래도 남녀가 유별한데 한 침대에서 자요?”그녀가 황급히 손가락까지 들어 올렸다.“성적인 행위 금지! 계약서에 넣은 거 잊었어요?”단의 눈썹이 올라갔다.“내가 널?”“.......”“아니면 네가 날?”“뭐라고요?”“꿈 깨. 넌 그냥 진통제야.”단이 서연의 손을 잡아끌었다.“나한테 흑심 품은 거 아니면 잔말 말고 따라와.”‘어머머머 별꼴이야! 누가 누구한테 흑심을 품는다는 거야!’단은 대꾸도 하지 않고 2층으로 올라갔다.침실 문이 열리자 서연의 입도 함께 벌어졌다.“와~.”운동장처럼 넓은 침실 한가운데 거대한 침대가 놓여 있었다.킹사이즈라는 말로도 부족해 보였다.그런데 방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서는 순간 서연이 몸을 움츠렸다.“으으으 추워.”단이 힐끗 돌아보고, 말없이 실내 온도를 올렸다.불면증에 시달리며 조금이라도 잠을 청하기 위해 늘 차갑게 유지하던 방이었다.“씻고 와.”“혼자요?”단이 묘한 눈으로 서연을 바라보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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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오해
6화. 오해식탁 위에는 무거운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거대하고 우아한 식탁.끝과 끝에 앉아 서로를 우아하게 바라보며, 정성스럽게 차려진 음식을 여유롭게 음미하는 두 남녀.......일 리가 없었다.서연은 단의 바로 옆자리에 딱 붙어 앉아 한 손으로 힘겹게 밥을 먹고 있었다.나머지 한 손은 계약자의 손에 단단히 붙잡혀 있었으니까.두 사람 앞에는 김 실장이 정성스럽게 차려낸 아침 식사가 놓여 있었다.입안에서 살살 녹을 듯한 한우 갈비찜, 향긋한 자연송이, 맑은 국.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팥밥.단의 젓가락이 멈췄다.“김 실장.”“네, 주인님.”“이 붉은 밥은 뭐지?”단이 미간을 좁혔다.“오늘이 동지인가? 아니면 집에 귀신이라도 들었나?”“아닙니다. 다만.”정갈한 양복 위에 앞치마를 두른 김 실장이 안경을 검지로 슬쩍 밀어 올렸다.입가에는 아주 은은하고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예로부터 붉은 팥은 액운을 쫓고 경사를 축하하는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그래서?”“두 분의 역사적인 첫날밤을 기념하고, 앞으로 이 집안에 아이......”김 실장이 헛기침했다.“큼, 큼 아니, 좋은 기운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충심에서 준비했습니다.”“푸흡!”물을 마시던 서연이 그대로 뿜었다.간신히 고개를 돌린 덕분에 단의 얼굴에 물을 뿜는 대참사는 피했다.“뭐 하는 거지?”단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서연을 바라보았다.“밤에는 침을 흘리더니 낮에는 물을 뱉는 건가?”“아니거든요!”서연의 얼굴이 팥밥보다 붉게 달아올랐다.“김 실장님! 진짜 오해예요. 저희는 그냥 손만 잡고 잤어요! 엄청 건전하게!”“…….”“진짜예요! 완전 초등학생 수련회보다 더 건전했다고요!”서연이 억울함에 발을 동동 굴렀지만 단은 태연하게 팥밥을 한 숟갈 먹었다.“맛있군.”“단 씨!”“찰기도 적당하고.”“지금 밥이 넘어가요?”단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서연을 바라보았다.“해명 좀 하라고요! 김 실장님 표정 안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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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공공의 적
7화. 공공의 적“어머, 저 남자 봐. 누구지? 배우인가?”“완전 내 스타일!”“옆에 여자는 뭐야? 코디인가? 매니저?”“아니, 손잡고 있는데?”여기저기서 수군거림이 들려왔다.서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후드 모자를 더 깊게 눌러썼다.쪽팔림은 오롯이 그녀의 몫이었다.“어깨 펴. 죄지었나?”단이 서연의 허리를 끌어당겨 바짝 붙였다.“사람들이 쳐다보잖아요. 이거 좀 놓으면 안 돼요? 쇼핑할 때만이라도?”“안 돼. 사람 많은 곳은 기운이 더 탁해. 두통이 심해진다고.”단은 서연의 손을 놓지 않았다.아니, 사람들이 자꾸 힐끔거리는 것이 거슬렸는지 아예 깍지를 낀 손을 자신의 재킷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어서 오십시오, 고객님.”C사 매장 직원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그녀의 시선이 단의 손목에 감긴 고가의 시계와 서연의 낡은 운동화 사이를 빠르게 오갔다.“이 여자한테 맞는 거,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가져와요.”“네? 전부 다요?”“계절별로, 용도별로.”단이 잠시 생각하더니 덧붙였다.“잠옷은. 실크로.”“잠옷까지요?”“피부에 닿는 감촉이 중요하니까.”서연의 눈이 가늘어졌다.‘왜 네가 내 잠옷 감촉까지 신경 쓰는데?’단은 그녀의 시선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소파를 가리켰다.“입어 봐.”“저기요, 단 씨.”“왜?”“저 옷 입으려면 피팅룸 들어가야 하거든요?”“그래서?”“거기도 따라오시게요? 변태 소리 듣고 싶으세요?”단이 멈칫했다.피팅룸.거기는 1미터 유지가 불가능한 성역이었다.“문...... 열어놓고 갈아입어.”“미쳤어요? 경찰 부를 거예요! 50억이고 뭐고 쇠고랑 차고 싶어요?”“손 놓으면 아프다고 했다.”단의 미간이 구겨졌다.거대한 사내가 백화점 한복판에서 서연과 떨어지기 싫어하는 꼴이 되어버렸다.결국 서연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이걸로 해요.”“뭘?”서연은 피팅룸 커튼을 묶는 굵은 금색 끈을 풀었다.“이거라도 잡으면 조금은 효과 있다면서요? 제가 안에서 갈아입는 동안 밖에서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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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일하러 가자
8화. 일하러 가자서연의 양손에는 쇼핑백이 주렁주렁 들려 있었다.직원이 차에 실어주겠다고 정중히 제안했지만, 서연은 극구 사양했다.손끝에 전해지는 묵직한 무게감.걸을 때마다 들리는 종이가방의 경쾌한 바스락거림.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플렉스의 맛 아니겠는가.서연은 이 순간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싶었다.사실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기 전, 서연의 집안도 나름 남부럽지 않게 살았었다. 하지만 워낙 검소했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이런 호사는 누려본 적이 없었다.돈이 있을 때는 하나도 아쉽지 않았는데, 막상 궁핍하게 살아보니 조금은 부러워지기도 했다.더구나 고용주의 돈으로 쇼핑하려니 억눌려왔던 소비 욕구가 비로소 봉인 해제된 기분이었다.그렇게 콧노래를 부르며 다음 매장으로 향하던 때였다.지이잉. 지이잉.단의 휴대폰이 짧고 묵직하게 진동했다.김 실장이었다.“주인님, 두 분의 시간을 방해해서 송구합니다만 의뢰인이 찾아왔습니다.”단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꿀 같은 휴식.아니, 서연의 체온을 느끼며 통증 없이 보내는 이 평화로운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쫓아내. 오늘 휴무야. 난 지금 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쇼핑 중이라고 해.”“물건 상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주인님께서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김 실장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저택의 기운까지 급격히 탁해지고 있습니다.”단의 걸음이 딱 멈췄다.물건 하나 때문에 성북동 저택의 기운이 변했다고?단순히 가품이나 사연 있는 물건 정도가 아니라는 뜻이었다.아주 악질적인 살을 품은 물건.도공이자 예술가인 단은 현세에서 탁월한 안목을 지닌 고미술 감정가로 통했다.그가 다루는 것은 단순히 값비싼 유물만이 아니었다.오랜 세월 인간의 욕망과 원한을 머금어 불길한 기운을 품게 된 물건들.단은 그런 물건을 찾아 정화해왔다.그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악귀와 탁기를 정화하고 나면 꽉 막혀 있던 혈이 뚫리듯 몸이 한결 가벼워졌으니까.알음알음 소문을 들은 정·재계 큰손들이 그에게 은밀한 의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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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너는 누구지?"
9화. 너는 누구지?“보증서요? 뭐, 제작 시대로 보면 진품이기는 하죠. 하지만 격이 달라요. 여기 용 발가락 보세요. 왕실에서는 주로 오조룡을 새겨 넣어요.”서연이 거울의 문양을 가리켰다.“그런데 이건 오조룡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조룡이에요. 웬만한 감정사도 헷갈릴 만큼 정교하지만, 이건 왕실의 물건이 될 수 없습니다.”서연이 코를 막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그런데 이 거울, 나쁜 물질이라도 나오나 봐요. 라돈인가? 암모니아? 냄새가 너무 심해서 머리가 다 아프네요. 환기 좀 하셔야겠어요.”서연의 말이 끝나는 순간이었다.끼이이에에엑!거울이 반응했다.마치 자신의 정체를 들킨 것처럼.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거울에서 검은 연기가 확 피어올랐다.그리고 그대로 의뢰인을 향해 쇄도하자 그가 비명을 질렀다.“으아아악!”서연의 눈에는 검은 연기가 유독가스처럼 보였다. 시커먼 가스가 뱀처럼 똬리를 틀며 의뢰인의 발목을 휘감으려 했다.단의 눈에 거울 속에서 튀어나온 흉측한 악귀의 손이 보였다.“어? 가스 샌다! 위험해!”서연이 먼저 움직였다.“서연, 잠깐!”단이 말릴 틈도 없었이 서연은 신고 있던 신발 한 짝을 벗어 들었다.왜 그랬는지는 자신도 몰랐다. 그저 본능적으로 저 거울을 내리쳐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이거나 먹어!”챙!신발이 거울을 힘껏 후려쳤다. 그 순간.파앗!서연의 손끝에서 미세한 황금빛이 팔을 타고 신발로, 다시 거울로 흘러들었다.서연은 알지 못했다.그것이 천 년 동안 그녀의 핏속에서 잠들어 있던 정화의 힘이라는 것을.키에에엑!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검은 연기가 사방으로 흩어졌다.거울을 뒤덮고 있던 검붉은 탁기가 순식간에 걷혀나가고, 거짓말처럼 모든 것이 멎었다.“허억......헉.”서연은 맨발로 바닥에 선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고작 신발 한 번 휘두른 것뿐인데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간 느낌이었다.다리가 후들거렸다.잠시 후 방 안을 가득 채웠던 악취마저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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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저 오빠가 왜 여기서 나와?
10화. 저 오빠가 왜 여기서 나와?은랑의 시선이 서연을 지나, 그녀의 손을 꼭 쥐고 있는 단의 손으로 옮겨갔다.순간 그의 눈빛이 사납게 일그러졌다.혐오와 분노가 뒤섞인 소름 끼치는 살기가 고택의 공기를 짓눌렀다.‘주인님께서는 저 도둑놈이 구원받을 때까지, 주인의 피를 이은 가문을 지키라고 하셨지만.......’은랑의 목에서 낮은 으르렁거림이 흘러나왔다.“마음에 안 들어.”그의 시선이 단에게 꽂혔다.“우리 주인님의 힘을 가로챈 도둑놈.”은랑의 으르렁거림에 단은 서연을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서연의 눈이 동그래졌다.‘뭐야?’은랑과 단을 번갈아 바라보던 그녀의 입이 슬쩍 벌어졌다.‘저 오빠가 왜 여기서 나와? 여기 대체 뭐 하는 집이지?’“냄새 나는 도둑놈.”은랑이 선글라스를 벗어 재킷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드러난 얼굴은 그야말로 화려함 그 자체였다.조명을 받지 않아도 자체 발광하는 백금발.이국적인 이목구비.사람을 홀리는 묘한 눈빛까지.대한민국 여성의 70퍼센트가 한 번쯤 그를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해봤다는 전설의 아이돌.그룹 ‘더 울프’의 리더이자 센터, 은랑이었다.‘와우!’서연의 눈이 커졌다.‘화면으로 봐도 화려함의 극치였는데 실물은 더 예술이네. 은랑을 이 거리에서 직관하다니...... 은혜롭구나.’하지만 팬 사인회에서 보여주던 달콤한 눈빛은 어디에도 없었다.금방이라도 목덜미를 물어뜯을 듯한 적의가 오직 단을 향해 꽂혀 있었다.“.......”단은 서연을 안고 있던 팔을 풀지 않은 채 고개만 돌려 은랑을 바라보았다.길을 가다 시끄럽게 짖어대는 개라도 마주친 듯 귀찮음과 불쾌함만이 서려 있었다.“집 지키라고 마당에 풀어놨더니 주인이 있는 안방까지 기어들어 왔군.”단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나가라. 털 날리니까.”“하! 웃기고 있네.”은랑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오히려 성큼성큼 거실 안으로 들어왔다.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야생 짐승 특유의 위압적인 기운이 공간을 짓눌렀다.“여기가 네 집인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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