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슬기는 갑자기 김현정을 꽉 끌어안으며 울먹였다.“현정 씨,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임슬기의 갑작스러운 포옹에 당황한 김현정은 잠시 멈칫하다가, 곧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슬기 언니, 앞으로 나한테 절대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고 말하지 마세요.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한테 의지하세요. 앞으로 내가 언니랑 함께할게요. 안심하고 나만 믿어요.”임슬기는 눈물을 글썽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고마워요.”김현정은 임슬기의 어깨를 잡고 한 마디 한 마디 강조하며 말했다.“언니, 나 진심이에요.”임슬기
배정우가 임슬기를 못마땅하게 노려보며 연다인을 데리고 떠나려던 찰나 그녀가 말을 이었다.“슬기야, 아무리 내가 미워도 그렇지, 굳이 밀 거까진 없잖아. 그래놓고 모른 척까지 해?”연다인의 말에 배정우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임슬기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임슬기, 그 질투심 좀 거둬.”“난, 민 적 없어!”“없다고? 그럼 다인이가 널 억울하게 몰아붙인다는 소리야?”임슬기는 비웃으며 말했다.“걔가 나를 억울하게 몰아붙인 적이 한두 번이었어? 연다인 때문에 억울하게 당한 일은 셀 수조차 없이 많아.”“아직도 변
“저 아니에요. 전 억울해요!”정신을 차린 임슬기가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임슬기 씨, 지금은 단순히 조사와 진술을 받기 위해 데려가는 겁니다. 당일 현장에 있었던 만큼 협조해 주시길 바랍니다.”임슬기는 경찰을 멍하니 바라보며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조사만 받는 거예요?”“네, 조사만 받는 겁니다.”혼이 나간 듯 멍해져 있는 임슬기를 보자, 김현정은 서둘러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슬기 언니, 내가 부축할게요. 진 변호사님을 찾으면 돼요. 별일 없을 거예요.”“그래요.”임슬기는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마음속에는 분노와
“진 변호사님, 어떻게 됐어요?”“경찰 측에서 슬기 씨와 관련된 외도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어떻게든 슬기 씨와 연관이 있다고 확신하는 모양이에요.”“뭐라고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연다인이 그런 거 아니에요?”진승윤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누군가가 위증을 한 것 같아요. 만약 정말 누군가가 슬기 씨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고 나선다면, 일이 매우 복잡해질 수 있어요.”경찰은 증거와 증인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고 연다인은 누명을 씌우는 데 능숙한 사람이니 경찰의 사고를 흐트러뜨리는 건, 식은 죽 먹기
“배정우, 이미 맘속으로 결론은 다 내린 거 아니야? 나한테 왜 물어?”배정우는 그녀의 턱을 잡으며 깊은 눈빛으로 차갑게 응시했다.“임슬기, 너 지금 자수하는 거야?”“오정태가 날 얼마나 잘해줬는데, 내가 그를 죽일 이유가 뭐가 있겠어?”“있지. 바람피우는 걸 들켰잖아.”임슬기는 배정우를 텅 빈 눈으로 바라보다가 갑자기 폭소를 터뜨렸다.“바람을 피웠다고?”그녀는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 웃음이 나왔다.임슬기가 수없이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배정우는 여전히 그녀를 믿지 않았고 바람피웠다는 이유로 살인 누명까지 뒤집어씌우고
임슬기의 말에 한 남자가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진짜야?”“당연히 진짜지. 전염률이 백 퍼센트야.”하지만 다른 한 명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형, 거짓말인 것 같은데? 게다가...”순간 어둠이 내려앉은 도로에 마이바흐 한 대가 질주하며 세 사람을 향해 돌진해왔다.세 사람은 도망치려 했지만 달려오는 차를 피할 수는 없었고, 결국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으며 소리쳤다.“아! 살려주세요!”사람을 치기 직전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그들의 발 앞에 멈춰 섰다.누가 봐도 자신들을 노린 걸 알 수 있었던 세 사람은 바
임슬기는 마음이 살짝 흔들렸지만, 또다시 배정우와 마주칠까 봐 조심스러웠다.“전화로 말해.”“슬기야, 나한테 화났어?”전화기 너머에서 유리컵이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송재현이 말을 이어갔다.“네가 안 오면 내가 손목을 그어서라도 증명할게.”“제발 그러지 마!”“슬기야, 나 킹스에서 기다릴게.”송재현은 말을 끝내자마자 전화를 끊어버렸다. 임슬기가 재빨리 다시 걸었지만, 신호음만 울릴 뿐이었다.임슬기는 불안한 마음에 눈살을 찌푸렸다.비록 송재현을 완전히 믿지는 못했지만,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사이란 사
집착이 너무 강했기에 그를 놓을 수 없었고 원망하면서도 사랑하고 있었다.그렇다고 해도 임슬기는 다른 사람한테 기회를 주고 싶지는 않았고 여전히 그녀는 배정우가 자신을 오해하는 것이 싫었다.임슬기는 몸을 일으키며 차가운 눈빛으로 송재현을 응시하고 말했다.“송재현, 우리 어릴 때부터 쭉 같이 커왔잖아. 난 항상 너를 내 오빠처럼 생각했어. 그러니까 앞으로 그런 말은 삼가. 배정우가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오해?”송재현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래. 오해해서 내 팔까지 부러뜨리고 날 협박까지 했어. 하지만 널 위해 조금이라
금원 아파트.임슬기는 침대 위에서 잠든 김현정을 한 번 바라본 뒤 조용히 문을 닫고 옆에 서 있던 강재호에게 말했다.“오늘 고마웠어요. 또 번거롭게 했네요.”강재호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아니에요, 임슬기 씨. 나한테 너무 그렇게까지 예의 차리지 않아도 돼요.”그는 잠시 임슬기의 다리를 보고는 다시 말했다.“오늘 그냥 내가 여기 있을까요? 임슬기 씨도 다리 불편하고, 현정 씨도 상태가 좀 안 좋아서 혼자 두긴 불안한데요.”임슬기는 순간 민망해졌다.“그건 너무 폐 끼치는 거 같아서요. 재호 씨도 아르바이트도 있고,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점심때가 지났는데도 김현정은 밥 한술 먹지 않았다. 두 손을 꽉 움켜쥐고 입술이 하얗게 질릴 때까지 깨물고 있었다.임슬기는 그런 김현정이 걱정되었지만, 이럴 땐 무슨 말을 하더라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그저 말없이 그녀의 곁에 있어 줄 수밖에 없었다. 김현정이 어떤 결과를 받아들이든 그녀와 함께할 작정이었다.임슬기는 가끔 생각했다.김현정은 그동안 얼마나 견디기 힘든 삶을 살았기에 겉으로는 밝고 강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이토록 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건지. 밝은 얼굴로 주
다음 날 오전.김현정이 임슬기의 퇴원 절차를 마치고 병실로 돌아와 짐 정리를 시작했다.“슬기 언니, 오늘 뭐 먹고 싶은 거 정했어요?”임슬기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등갈비찜이랑 생선찜, 그리고 현정이 네가 제일 잘하는 캐러멜 푸딩 어때?”말을 마치자마자 김현정의 얼굴이 갑자기 안 좋아졌다.“왜 그래? 어디 아파?”김현정은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막고 손을 저은 뒤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가 토하기 시작했다.임슬기는 김현정이 뭘 잘못 먹은 줄 알고 당황해했다.“현정아, 배가 아파? 얼른 의사 부를게.”그녀가 나가
“나 연다인이랑 아무 일도 없었어. 제발 믿어줘.”배정우의 목소리는 어쩐지 간절하기까지 했다. 마치 사랑에 지쳐 무너진 사람처럼.그가 오히려 더 처절해 보였다.임슬기는 배정우를 밀쳐내며 차갑게 말했다.“언제까지 연기할 건데? 술 마시고는 화해하자고 찾아오고, 정신 차리면 연다인 침대에 누워서 날 죽이고 싶다 그러고... 배정우, 난 네가 이해가 안 가. 그리고 더는 알고 싶지도 않아. 제발 날 놔줘.”“왜 날 안 믿는 건데?”배정우는 상반신을 겨우 일으킨 채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깊고 어두운 눈빛은 끝을 알
반달이 지난 뒤 임슬기는 여전히 제대로 걷지는 못했지만, 의사에게서 이틀 뒤면 퇴원이 가능하다는 허락을 받았다.“너무 잘 됐어요! 드디어 퇴원할 수 있다니! 뭐 드시고 싶어요? 내가 다 준비할게요! 이건 꼭 축하해야죠.”임슬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현정아, 너 먹방 유튜버나 해볼래? 그럼 돈 좀 벌 수도 있겠다.”“진짜요? 근데 난 언니한테 해주는 게 제일 좋아요.”김현정은 그렇게 말하며 임슬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더니 그녀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말았다.“언니, 우리 그냥 앞으로 같이 살래요? 내가 언니 먹여
“꺅!”연다인은 화끈거리는 뺨을 감싸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김현정을 노려봤다.당장이라도 달려들어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임종현이 있는 앞이라 억지로 연기해야 했다.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김현정 씨, 왜 이러는 거예요?”그녀는 곧바로 임종현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억울한 척 말을 이었다.“종현아, 누나는 그런 뜻 아니야. 나는 그냥... 다들 알고 있는 줄 알고...”울먹이는 얼굴에 눈가가 금세 빨갛게 물들었다.그 모습에 임종현은 약간 망설이다가 나지막이 말했다.“됐어요. 형이랑
임종현이 부탁하면 임슬기는 늘 거절을 잘 못했다.하지만 배정우와 다시 잘 지내라는 이 부탁만큼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녀가 원한다 한들 배정우가 원하지 않으니까.배정우는 그녀를 죽이려 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과 어떻게 다시 처음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저릿하게 아팠다.“종현아.”임슬기는 고개를 숙이며 쓴웃음을 지었다.“그 부탁은... 누나가 들어줄 수 없을 것 같아.”그녀는 억지로 울음을 삼킨 채 고개를 들었다.“이미 그 사람은 연다인이랑 함께잖아.”임종현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
이제 이 동생도 부끄럼을 탈 줄 안다니.임슬기는 피식 웃으며 종현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종현아, 누나 좀 도와줘. 침대 좀 올려줄래?”임종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침대 발치로 가 손잡이를 돌리기 시작했다.“이 정도 높이면 돼요? 더 올려요?”“응, 지금 딱 좋아. 고마워.”임슬기는 그의 손에 감겨 있는 붕대를 보고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종현아, 그 손... 필기하는 데는 지장 없겠어?”그 말을 들은 종현은 고개를 숙여 손을 내려다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괜찮아요. 그렇게 심하진 않아요. 그리고 이번에
“현정아.”임슬기는 김현정이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고 있어도 속으론 여전히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사랑 문제는 본래 타인이 쉽게 끼어들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이번 일은 그녀로 인해 시작된 일이기에 그냥 모른 척할 순 없었다.김현정은 조용히 다가와 침대 옆에 앉더니, 임슬기의 팔에 감긴 붕대를 보며 마음 아픈 눈빛을 보냈다.“언니, 내가 전화 안 했으면 나한텐 아무 말 없이 계속 숨길 생각이었죠?”“...나는 그냥 네가 걱정할까 봐.”“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