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후가 손짓을 하자 뒤에 있던 차에서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 두 명이 달려 나와 임혜린을 잡았다.화가 난 임혜린은 욕설을 퍼부으며 발로 경호원을 찼고 손으로 마구 헤집었다. 그중 한 경호원은 가랑이를 맞았고 아파서 뒹굴뒹글 굴었다.유강후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손을 부러뜨리고 한이준에게 넘겨.”그러자 온다연은 깜짝 놀라면서 유강후의 손을 잡고 말했다.“아저씨, 제발 그러지 마세요. 혜린이는 제 친구예요. 살려주세요.”그러자 유강후는 차갑게 말했다.“넌 친구가 필요하지 않아. 이런 친구는 더더욱 필요 없지. 앞으로 쟤랑 연락하지 마.”이때 임혜린은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야! 이 개자식아. 너랑 한이준은 다 쓰레기야. 내가 평생 너희들을 저주할 거야. 아! 아파! 다연아, 내 손… 탈골된 것 같아. 살려줘! 다연아, 당장 112에 신고해. 이 자식들이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당장 신고해.”온다연은 임혜린이 다치자 진땀을 흘리면서 유강후의 손을 뿌리치고 경호원을 잡아당기러 갔다.하지만 이 두 경호원은 키가 모두 190cm 이상이고 체격도 우람져서 온다연이 몇 번 잡아당겨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온다연은 급한 나머지 한 경호원의 팔을 잡고 세게 물었다.그러자 경호원은 무의식적으로 온다연을 밀쳤고 그녀는 벽에 내동댕이쳐졌다.온다연의 배는 벽에 튀어나온 장식물에 마침 부딪혔다.그 모습을 본 유강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만!”그런데 이때 온다연은 옆 테이블에 놓인 두리안을 잡고 경호원을 향해 세 개 내리쳤다. 그러자 마침 경호원의 이마를 명중했다.그는 아마 평생 두리안에 머리를 맞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극심한 고통을 견디지 못한 경호원은 몸을 비틀거렸다.하지만 감히 손을 쓸 수 없어서 그녀를 매섭게 째려보았다. 그 눈빛을 본 온다연은 겁에 질려 잠깐 뒤로 물러섰지만 다시 앞으로 돌격하며 임혜린을 구하려고 애를 썼다.이때 차에서 더 건장한 남자 두 명이 내려와 임혜린을 제압했다. 온다연은 다급해서 거의 울 뻔했고
“얼른 데려가! 절대로 놓치지 마!”임혜린은 다급하고 화가 나서 머리로 차 문을 부딪치며 더 많은 시선을 끌려고 했다. 그러자 경호원이 서둘러 다가와 그녀의 뒤통수를 가격했고, 임혜린은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바로 기절했다.온다연은 이를 보고 급히 달려가 그 경호원을 향해 발길질하고 주먹을 휘둘렀다.그 경호원은 온다연에게 손을 대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며 유강후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다.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다가와 온다연의 옷깃을 잡고 끌어당겼다.온다연은 임혜린이 걱정됐지만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유강후의 팔을 붙잡고 다급하게 부탁했다.“아저씨, 혜린이를 놓아주세요... 제발!”유강후는 온다연의 작은 얼굴이 다급해져서 하얗게 질린 것을 보고 더 화가 났다. 그는 차갑게 온다연을 바라보며 냉정하게 말했다.“임혜린이 너에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야?”온다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가가 빨개지기 시작했다.“부탁할게요... 혜린이를 놓아주세요. 혜린이는 빨리 병원으로 이동해서 손목을 치료받아야 해요. 정말 아플 거예요. 빨리요! 제발 부탁해요!”온다연은 임혜린을 위해 처음으로 유강후에게 부탁을 했고, 그녀가 유강후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유강후의 마음속에서 분노가 다시 들끓어 올랐다.“대답해! 임혜린이 너에게 정말 중요한 사람이야?”온다연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혜린이는 저에게 정말 중요한 사람이에요. 아저씨, 혜린이는 제 친구입니다. 가장 소중한 친구라고요... 제발 혜린이를 놓아주세요!”유강후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는 갑자기 온다연의 턱을 움켜쥐며 차가운 목소리로 무자비하게 말했다.“그렇게 할 수 없다면 어떡할 건데? 난 임혜린을 사라지게 할 거야.”‘온다연, 네 주변에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어. 네가 애정을 주거나 마음을 줄 만한 모든 것들을 없애버릴 거야. 넌 오직 나만 보고 내 생각만 해야 해!’온다연은 유강후가 갑자기 임혜린을 공격할 줄은 몰랐다
차 문이 ‘쿵’ 소리를 내며 닫혔고, 온다연이 달려가기 전에 이미 차는 출발했다. 하지만 온다연은 계속 달려가 차 문손잡이를 끝까지 붙잡고 끊임없이 두드렸다.“문 열어! 당장 차 세워!”“문 열라고! 당신들 미쳤어?”하지만 차는 이미 출발했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온다연은 손을 놓지 않고 차를 따라 계속 뛰었다.차가 점점 속도를 높이자, 온다연도 따라서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사람이 달리는 차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온다연에게 고비가 찾아왔고 그녀는 힘들어서 헐떡거렸다. 그럼에도 임혜린을 그냥 둘 수 없어서 마지막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곧 온다연은 숨이 가빠왔고, 가슴도 심하게 아팠다. 이어서 다리에 힘이 풀리더니 그대로 쓰러졌다.온다연이 땅에 풀썩 주저앉던 순간, 달리던 차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고 멈춰 서며 주변은 뽀얗게 먼지가 날렸다.온다연은 땅에 무릎을 꿇고 헐떡였지만, 여전히 차 문고리를 놓지 않았다.이때 유강후가 뒤에서 온다연의 옷깃을 붙잡았다.“다연아! 너 미쳤어?”놀라고 화난 목소리였다.‘늘 이렇게 무모한 행동을 한다니까! 이번에는 겁도 없이 차를 쫓아 뛰어가? 다음번에는 얼마나 기막힌 행동을 하려는 거야? 고작 임혜린 때문에 내 말을 거역하고 목숨까지 건 거야?’온다연은 게슴츠레 눈을 떴다. 목에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고, 몸은 힘이 빠져 축 처졌다.이때, 온다연이 갑자기 유강후를 끌어안았다.“아저씨, 제가 잘못했어요. 다 제 잘못이에요. 이제 안 뛸게요. 제발 제 친구를 놔주세요.”온다연은 말하면서 발끝을 들어 유강후의 입에 키스했다. 그리고 애절하게 말했다.“아저씨, 내가 잘못했어요...”유강후는 잠시 멍해졌다. 그는 온다연이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할 줄은 몰랐다. 이것은 온다연이 처음으로 유강후에게 자발적으로 키스를 한 순간이었다.예상치 못한 상황,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유강후는 무심코 온다연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입가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다. 진한 빨간색 피가 천천히 흘러
유강후는 온다연의 기운 없는 모습을 보며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더니, 그녀의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닦지도 않고 그대로 키스하며 빨아들였다.비릿하면서도 뒷맛이 달콤한 피 때문에, 유강후는 온다연을 삼켜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만약 가능하다면, 유강후는 그녀를 갈가리 찢어 삼켜버리고 싶었다. 그러면 더 이상 이런 번거로움도 없고, 온다연이 다른 마음을 품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유강후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생애 처음으로, 그는 누군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물러서야겠다는 느낌을 받았다.‘너는 왜 이렇게 내 마음을 모르는 거야? 난 단지 네가 내 말을 잘 듣기만을 바랄 뿐이야. 네가 내 곁에서 얌전히만 있으면, 뭐든지 다 줄 수 있어.’온다연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순순히 지시에 따르는 성격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복종하는 듯 보이지만, 은밀히 반항하는 것이 그녀의 일관된 태도였다.온다연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은 유강후의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감정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유강후는 어릴 때부터 유씨 가문과 안씨 가문의 후계자로 키워졌다. 그가 배운 것들은 모두 비즈니스 노하우나 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라는 등 현실적인 인간관계였다. 정보와 지식 면에서도 배우는 내용들이 보통 사람들보다 더 체계적이고 깊이 있었다.그러나 감정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에게 제대로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유강후가 원하는 것은 많지 않았고, 그저 온다연이 자기 말을 잘 듣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사실 유강후는 지금 꽤 후회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온다연이 유씨 가문에 들어왔을 때 직접 그녀의 일에 관여하지 않고 심미진의 곁에서 자라도록 방치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온다연이 고생했고, 지금과 같은 반항적인 성격으로 자라게 되었다고 생각했다.피 맛의 자극 속에서 유강후는 갑자기 온다연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모두 죽여야겠다는
두 달간의 개조를 거쳐, 이 병원은 오래된 장비를 모두 교체하고 최고로 정밀한 기기로 바꾸었다. 심지어 의사도 대거 교체하여, 지금 진료를 보는 의사들은 거의 경원시에서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아는 명의들이었다.아무도 유강후가 왜 이처럼 보잘것없는 개인 병원에 투자했는지 몰랐다. 나중에야 사람들은 이 병원이 유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늘 잔병치레를 달고 사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준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이번에는 피를 토했지만, 이전 두 번에 비해 상태가 그렇게 심각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온다연은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다. 이전의 병과 부상으로 모든 기력을 소진해 버려서인지, 그녀는 사소한 병에도 더 큰 고통을 받았고 회복 기간도 길어졌다.한의사는 여전히 말을 아꼈고, 약을 처방하고 직접 한약을 달여서 보내준다고 했다.온다연은 3일 내내 잠만 잤다. 중간에 몇 번 깨어났지만, 깨어날 때마다 기운이 없었고, 음식을 조금 먹고는 다시 잠들곤 했다.그러다가 3일 차 오후가 되어서야 그녀는 완전히 깨어났다.유강후는 하인을 시켜 쌀을 잘게 다진 죽을 끓이게 하고, 그녀가 평소 좋아하는 담백한 요리들을 준비하게 했다.전통 한옥과 가까워 음식은 배달된 후에도 여전히 따뜻했다.온다연은 유강후가 들고 있는 죽 그릇을 바라보며, 여전히 무기력한 표정으로 두어 숟가락만 먹고 고개를 돌렸다.유강후는 뽀얗게 우려진 곰탕을 들고 와서 인내심을 가지고 달랬다.“조금 마셔봐. 말을 잘 들어야 보상이 있어.”이 곰탕은 몸에 좋은 약재를 모두 넣고 몇 시간 동안 정성을 다해 끓인 것이었다. 한의사는 가능하면 자주 마셔야 빨리 회복될 것이라고 특별히 당부했다.요즘 곰탕을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온다연은 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렸다.“냄새가 역해요.”유강후는 숟가락을 그녀의 입가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이 국을 다 마시면, 저녁에 네가 좋아하는 걸 해줄게.”온다연은 한 모금 마시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계란을 넣고 끓인 라면 먹고 싶어요.”유강후는
온다연에게 유강후는 높은 산처럼 다가갈 수 없는 존재였다.‘저 높은 곳에 사는 유강후가 어떻게 나 같은 평범한 사람과 함께할 수 있겠어? 우린 어울리지 않아...’하지만 지금의 유강후는 높은 곳에서 내려와 온다연에게 연인 사이에나 할 수 있는 일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니 온다연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온다연은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 수많은 비난을 받을 것임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유씨 가문의 후계자, 미래 그룹의 대표가 나 같은 고아와 함께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들끓는 여론이 나를 집어삼킬지도 몰라.’이런 생각에 온다연은 공포와 두려움이 커졌고, 유강후의 가벼운 스킨쉽마저 거부하기 시작했다.사실 며칠 동안 계속 잠만 자고 깨지 않으려 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었다.유강후가 바로 앞에 앉아 음식을 먹여주고, 갑자기 입을 맞추는 등 연인끼리나 할 법한 말이나 행동하고 있으니, 온다연의 마음은 다시 괴로워졌다.하지만 온다연은 유강후가 없으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평생 이루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유강후가 없으면 벌하고 싶은 사람에게 평생 가까이 다가가지조차 못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유강후가 완전히 흥미를 잃기 전에 기회를 놓쳐서는 안 돼...’온다연은 눈을 감고 가볍게 숨을 들이쉬며 유강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아저씨, 무서워요...”온다연이 이렇게 먼저 다가오자, 유강후는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눈빛이 부드러워졌다.“뭐가 무서워?”온다연은 그의 목에 얼굴을 비비며 작게 말했다.“계속 꿈을 꾸게 돼요. 꿈이 무서워요.”유강후는 온다연이 자신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즐기고 있었다. 온다연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흐뭇했다.유강후는 온다연을 번쩍 안아 자기 무릎 위에 올렸다.“무슨 꿈을 꿨는데?”온다연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으며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는 아주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사람들이 자꾸 욕해요. 듣기 싫은 말로 욕해요... 그래서 무서워요.”유
이미 답을 알고 자신의 신분을 이해해도, 온다연의 마음에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그래... 유강후가 아까 말했잖아? 유씨 가문의 사람은 고귀한 신분이 있어야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나 같은 고아는 유강후와 이런 비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한다고 해도 유씨 가문의 후손을 나을 자격이 없어. 내 아이 역시 유씨 가문 족보에 오를 자격이 없을 거야. 유강후는 치밀하게 계획하는 사람이니까 분명히 이미 준비해 뒀을 거야. 그는 나은별의 아이만을 원할 거야. 유강후와 나은별이 정식으로 결혼하면 나와의 이런 부끄러운 관계도 자연스럽게 끝나겠지... 어차피 끝나야 할 관계라면, 아이가 있는 건 오히려 짐이 될 뿐이지...’온다연은 다시 한번 유강후의 깊은 생각과 먼 미래를 내다보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이렇게 많은 것을 생각해 두는 사람이라면, 내 비밀을 알아차리면 어떻게 하지?’온다연은 입술을 꽉 깨물고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곧 그녀는 진정하며 서둘러 하고 싶은 일을 마치고 멀리 떠나야겠다고 다짐했다.‘그때가 되면, 유강후와 나은별은 결혼하고 아이도 생길 거야. 그렇게 되면 나를 생각할 틈 따위는 없을 거야.’이렇게 생각하며 온다연은 주먹을 쥔 손을 풀고 유강후의 품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아저씨, 좀 추워요.”요즘은 정말 이전보다 훨씬 쌀쌀해졌다. 유강후는 가디건을 가져와 그녀에게 덮어주었다.“발코니에 나가 있을래? 네 캔버스도 아직 거기 있어.”온다연은 그의 손에 얼굴을 비비며 나지막하게 말했다.“힘이 없어서 걸을 수가 없어요.”온다연은 유강후 앞에서 이렇게 순종적이고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이에 유강후는 약간 놀란 기색을 띠었지만, 이 감정을 설명하기 어려워 침묵했다. 그리고 유강후의 눈에는 알아채기 어려운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유강후는 몸을 숙여 온다연을 안아 올렸다.“안기고 싶었던 거야?”온다연은 그의 목을 감싸며 갑자기 얼굴이 빨개졌고 목소리는 어렴풋이 들릴 만큼 작아졌다.“인터넷에서 보니까 연애하
유강후는 대답하지 않고,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며 몸을 굽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가까이에서도 유강후의 얼굴은 완벽해서 흠잡을 데가 없었다.그는 얇은 입술을 꽉 다물고, 눈을 살짝 좁히며 온다연이 방금 거짓말을 했는지 판단하려는 듯했다.유강후의 잘생김은 단순히 평범한 잘생김이 아니었다. 그의 외모는 시각적으로 강렬한 충격을 주었으며, 아주 공격적이어서 한눈 보자마자 주눅이 들게 했다.온다연은 유강후의 앞에서 이유 없이 자신이 초라해졌고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잘생김도 그가 가진 다른 빛나는 것들에 의해 희석되었다. 세계적인 재벌 미래 그룹의 회장이자 경원시 최고 명문가의 도련님이라는 그의 배경 때문에 외모는 항상 과소평가 되었다.유강후의 얼굴은 정말 잘생긴 얼굴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잘생겼다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여자들이 목숨을 걸고 뛰어들게 만드는 그런 매력을 가지고 있다.지금, 유강후가 그런 얼굴로 온다연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주는 압박감을 전혀 모르는 듯했다. 그가 이렇게 위에서 내려다보니 온다연은 무심코 가슴이 두근거리고 떨렸다.온다연은 눈을 내리깔고 그를 직시하지 못했다. 길고 가는 속눈썹이 부서진 나비의 날개처럼 가늘게 떨렸다. 창백한 얼굴은 병약해 보였고, 입술에는 혈색이 없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도자기 인형 같았다.유강후의 긴 손가락이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천천히 훑으며 지나갔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갑고 어두웠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내 앞에서는 너의 생각을 숨기지 마.”유강후가 그렇게 바라보자, 온다연은 자신의 작은 비밀이 모두 드러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감히 그를 쳐다보지 못하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유강후의 목소리가 갑자기 차가워졌다.“온다연, 예전에 나 몰래 연애한 적 있어?”유강후의 손길이 멈추고, 공기가 갑자기 숨이 막히게 변했다.온다연은 유강후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당
잠시 후 봉현수가 나왔다.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그는 비록 야위어 보였지만 적어도 사람같이 보였다.유강후는 테이블 위에 음식을 가리키며 말했다.“먼저 밥부터 먹어.”봉현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먹고 싶지 않아. 지금 바로 예솔이 엄마의 산소에 가봐야 해.”유강후가 말했다.“내가 이미 사람을 보냈어. 조금 있으면 소식이 올 거야, 먼저 밥 먹고 있어. 네 모습 좀 봐봐. 찾았다고 해도 정연석이 그 자리에 있으면 주먹 하나로 너를 이길 수 있어.”봉현수는 대충 몇 입만 먹고 가려고 했다. 그러나 너무 오래 제대로 식사하지 않은 탓에 몇 걸음을 가지 못하고 체력이 달려서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유강후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서 전면 검사를 받았다.검사를 받고 보니 장기 음주한 탓에 위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게다가 몸에 있는 상처들을 제때 치료하지 않아 일부는 염증이 생기고 헐어서 입원 치료가 필요했다.이런 말을 들을 기분이 아니었던 봉현수는 주삿바늘을 뽑자마자 가려고 했다.유강후는 그에게 경고했다.“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예솔 씨를 찾는다고 해도 소용없어.”그는 사람을 시켜 거울을 가져오라 하고 봉현수를 거울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지금, 이 거짓꼴을 봐봐, 어딜 봐서 사람 같아 보여?”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본 봉현수는 멍해졌다.거울 속의 남자는 말라서 모양이 빠졌고 이전에 건장했던 몸매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몇 달 전 산 셔츠는 마치 빌려서 입은 옷처럼 헐렁하게 몸에 걸쳐있었다.얼굴은 여전히 그대로였으나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눈언저리가 푹푹 꺼져 들어가 있었다.머리는 너무 오래 정리하지 않은 탓에 스타일이 하나도 없었다.“내가 왜 이렇게 된 거야?”봉현수의 비서인 안시현이 말했다.“대표님, 최소 30근은 빠지셨어요. 사람이 달라 보여요.”“제가 지금 바로 가서 몸에 꼭 맞는 옷을 사 올게요.”봉현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직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넋이 나가 있다가 한참 후에야
봉현수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졌다.‘그 당시 나는 솔이를 다치지 않았지만, 온몸이 항상 상처투성이였어. 그 사람들이 한 짓인가? 그러나 솔이는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을까?’“하지만 나와 헤어졌다고 하여도 바로 정연석이랑 함께 있으면 안 되는 거야.”유강후는 실망스러운 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아직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니, 넌 정말 구제 불능이야. 예솔 씨는 너에게 괴롭힘을 당해 죽을 지경에 이르렀고 또 아픈 동생까지 데리고 있었어. 오직 정연석만이 그녀에게 잘해줬고 도움을 줄 수 있었어. 예솔 씨가 정연석의 호감을 받아들이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아니면 동생이 죽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해?” “나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일이 있어.”“그해는 너의 생일이었어. 우리가 호텔에서 너의 생일을 축하해줬는데 중간에 주연아가 왔어. 넌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예솔 씨를 난처하게 하면서 화나게 하려고 했어. 너는 그때 예솔 씨에게 기어 와서 술을 마시라면서 너무 지나치게 괴롭혔었지, 누가 너처럼 그렇게 사람을 괴롭혀?”봉현수는 중얼중얼 말했다.“솔이는 돈을 위해서 그랬어. 나에게 거액의 돈을 빌려달라고 했어...”유강후가 말했다.“그래서 빌려줬어?”봉현수는 머리를 잡고 고개를 저었다.유강후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그러면 네가 지금 이렇게 돼도 싼 거야. 그때 그렇게 싸운 상황에서 예솔 씨가 너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했던 건 너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돈이 간절히 필요했다는 거야. 네가 예솔 씨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면 분명 정연석이 돈을 빌려줬을 거야.”“네 손으로 직접 예솔 씨를 밀어낸 거지.”“현수야, 네가 지금 여기서 죽든지 말든지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아, 예솔 씨는 볼 수 없으니까.”“그 정력이면 예솔 씨를 찾으면서 그때 일을 다시 한번 조사해 봐. 오직 그때 일을 낱낱이 파헤쳐서 밝혀야 모든 오해가 풀릴 수 있고 화해할 기회도 있어. 그렇지 않으면 전혀 기회가 없어.”“아니면 찾아서 뭘 할 건데? 계속 죽을 때
봉현수는 무기력해서 말했다.“차라리 거지였으면 좋겠어. 제정신이 아니라면 마음이 지금처럼 힘들지는 않을 거니까. 나는 솔이가 지금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다른 남자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면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아.”“함께 지옥에나 가라!”자포자기하는 봉현수의 모습을 본 유강후는 퉁명스럽게 웃으면서 샤워기를 들고 그를 향해 마구 물을 뿌렸다.“얼른 죽어버려. 예솔 씨가 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곧 돌아올 거야. 네가 남겨준 재산으로 너의 별장에서 기생오라비들과 함께 매일 같이 술을 먹고 애도 낳아서 행복한 삶을 살 거야.”봉현수는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중얼중얼 말했다.“네 말이 맞아. 이미 반년이란 시간이 흘렀어. 아마 솔이 옆에는 다른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유강후는 투지가 전혀 없는 봉현수의 모습을 보고 화가 나서 그를 또다시 한번 발로 찼다.“일어나!”“예솔 씨가 진짜 결혼했다면 넌 포기 할 수 있어? 만약 포기할 수 있다면 이 죽을상은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그러는 거야?”“예솔 씨 옆에 다른 사람이 생겼다면 너도 가서 다른 사람을 만나. 서로 각자 자신의 갈 길을 가면서 서로에게 미련 버려.”“안, 안돼!”봉현수는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솔이가 결혼하고 애를 낳았다고 하여도, 나는 솔이를 내 곁으로 돌아오게 할 거야.”유강후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이미 반년도 지났어. 만약 예솔 씨가 결혼했다면 너는 가정 파괴범이라도 될 생각인 거야?”봉현수의 몸은 굳어져 버렸고 눈빛은 마치 넋 나간 듯 어두웠다.“아닐 거야. 솔이는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어.”유강후는 일부러 그를 자극했다.“너한테 그렇게 학대받았는데 아직도 너를 사랑한다고? 사랑한다면 애초에 도망을 왜 갔겠어?”유강후의 말에 어리둥절해진 봉현수는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아니야, 솔이는 나를 속이지 않을 거야. 절대 속이지 않겠다고 나랑 약속했어.”유강후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현관 앞에 서 있던 몇몇 사람들이 유강후를 보자마자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 반색하며 달려들었다.“유 대표님, 드디어 오셨네요. 봉 대표님이랑 봉씨 가문이 지금 엉망진창이에요. 대표님은 안에서 안 나오고 우리한텐 들어오지도 말라고 하니 정말 죽을 지경입니다.”유강후는 굳게 닫힌 대문을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문 열어.”그러자 집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열쇠가 저한테 없어요. 대표님이 직접 챙겨가셨어요. 누구든 들어오려고 하면 때려죽이겠다고 하셨어요.”유강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붙였다.“이딴 식으로 손 놓고 있다가 진짜로 저 안에서 죽기라도 하면 책임질 거야? 당장 열쇠 따는 사람 불러와.”“네. 지금 바로 부르겠습니다!”곧이어 자물쇠를 따는 기술자가 도착했고 특수 잠금장치가 되어 있던 그 문을 여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잠금장치가 풀리는 순간 유강후는 힘껏 문을 발로 차서 열어젖혔다.문을 여는 동시에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가 밀려왔다.술 냄새, 곰팡냄새, 그리고 피비린내까지... 도저히 숨쉬기 힘들 지경이었다.유강후는 얼굴이 굳은 채 거실을 훑어보았다.거실 안은 술병과 깨진 도자기 조각으로 아수라장이었고 소파 옆 바닥엔 사람이 하나 쓰러져 있었다.죽은 건지 산 건지도 알 수 없었다.유강후는 바닥의 술병을 발로 밀어내며 다가갔다. 그리고 그 사람을 발끝으로 툭 찼다.“죽었어?”바닥에 누운 사람이 조금 움찔하더니 갑작스러운 빛에 눈이 부신 듯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씨X... 누가 들어오래? 다 꺼져!”그가 얼마나 엉망이 되었는지 확인한 유강후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발로 툭 찼다.“죽긴 뭐가 죽어. 안 죽었으면 일어나. 이 자식아.”비로소 얼굴을 들어 유강후를 확인한 봉현수는 욕을 내뱉으며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일어날 기운도 없어요.”유강후는 싸늘하게 받아쳤다.“정말 죽고 싶으면 한강 다리 밑으로 데려다줄까? 여기서 죽으면 집만 더럽혀.”몇 달 만에
유강후는 온다연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안타깝게 말했다.“이런 여자랑 그렇게 길게 말할 필요 없어. 온준휘 엄마에 대한 걸 알고 싶으면 그냥 바로 로운한테 넘기면 돼.”온다연은 고개를 저었다.“솔직히 사람 마음이 이렇게까지 썩을 줄은 몰랐어요. 우리 엄마 돌아가시기 전까진 겉으로는 저한테 잘해주는 척했거든요. 근데... 설마 내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었고 내가 온준용이 동남아에서 데려온 아이란 것도 알고 있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녀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듯 고개를 떨궜고 유강후에게 안기며 얼굴을 그의 코트에 묻으면서 깊은 한숨이 내쉬었다.유강후는 그녀를 부드럽게 감싸안고 외투를 열어 온다연을 안쪽으로 감쌌다. 그러고는 옆에 서 있던 비서에게 말했다.“다희랑 단오 데리고 들어가서 아버지 뵙게 해. 나는 좀 이따 들어갈게.” “네, 대표님.”아이들이 병실로 들어간 뒤 유강후는 온다연을 품에 안은 채 차 안으로 데려갔다.온다연이 겪었던 모든 고통은 이제 유강후의 가슴속 깊이 새겨진 상처이자 죄책감이 되었다.그는 수도 없이 바랐다.‘시간이 되돌려질 수 있다면 어린 시절의 다연 곁으로 돌아가 직접 품어주고 상처 입은 다연을 안아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지만 시간은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았고 그는 앞으로의 시간으로 그녀를 보살펴주고 보상해 줄 수밖에 없었다.병원을 나서자마자 유강후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봉현수의 비서였다. “유 대표님, 이쪽으로 와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 대표님 상태가 심각합니다. 저희로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돼서요.”그제야 유강후는 자신이 몇 달째 봉현수를 보지 못했다는 걸 떠올렸다.“무슨 일인데요?”상대방 목소리는 다급하기 짝이 없었다.“대표님께서 자택에 자신을 가둔 지 벌써 2주째예요. 몸에 상처도 심각한데 치료도 거부하고 약도 안 드세요. 지금은 아예 일주일째 방문도 안 열어줘요. 계속 두드려도 아무 반응이 없고요...”“주소 보내.” “그... 영운산에 있는 별장입니다
그러자 심미진의 눈빛이 흔들렸다.“아... 아냐. 난 그런 거 몰라. 그냥 네가 언니 친딸이 아니라는 것만 알고 있어. 집에 데려왔을 때 벌써 한두 살쯤 됐었지. 근데... 그때 네가 입고 있던 옷이 최고급 명품 아동복이었어. 몸에 착용한 액세서리들도 다 외국 브랜드였고. 온준용이 그거 팔아서 꽤 많은 돈을 챙겼어. 그걸로 그 시절 경원시에 작은 집 한 채는 살 수 있었을 거야. 난 그 정도만 알아. 진짜로. 나랑은 아무 상관 없어. 전부 다 온준용이 한 짓이야.”온다연은 냉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심미진, 넌 정말 끝까지 구제 불능이야. 내 진짜 신분... 넌 분명히 알고 있었지? 그런데 왜 신고하지 않았어? 왜 온준용과 함께 짜고 다 숨겼냐고? 설마 너랑 온준용이 같이 잤다는 걸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했어?”심미진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다연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온준용은 내 형부야. 내가 어떻게 형부랑 그런 일을 해!”온다연은 차가운 목소리로 응수했다.“너희 둘 사이가 어떤 사인지는 관심 없어. 하지만 유씨 집안 사람들이 바보라고 생각하지 마. 널 왜 갑자기 내쫓았을 것 같아?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너 자신이 제일 잘 알잖아.”심미진은 얼굴이 새하얘져 거의 몸을 못 가눴다.“아니야... 난 그런 일 없었어. 온준용은 그냥 양아치잖아.”온다연은 서늘한 눈으로 말을 이었다.“온준용은 예전에 동남아에서 마약 유통으로 큰돈 벌었어. 넌 우리 엄마가 그런 사람 따라다니며 돈 쓰는 거 보면서 질투가 났고 결국 네 형부를 꼬셨어. 언니를 두 번 죽이는 짓을 해놓고 온준용이랑 같이 엄마를 협박했지. 경찰에 신고하거나 내 출생 관련한 말을 꺼내기만 하면 둘 다 죽이겠다고 말이야.”“우리 엄마는 약한 사람이었어. 내가 친딸이 아닌 걸 알면서도 날 진심으로 아끼고 지켜줬어. 하지만 너... 심미진, 넌 인간도 아니야. 네 형부를 꼬시고 또 네 선생님 남편까지 건드려? 겉으론 착한 척하면서 날 친딸처럼 키워주겠다고? 네가
유재성의 상태는 며칠간 고비를 반복하다가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유민준은 유자성의 장례를 정리한 뒤 줄곧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두 사람 사이엔 아무런 대화도 없었다.유자성의 죽음은 둘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특히 유재성에게는 타격이 더 컸다. 비록 유자성은 친아들이 아니었고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도 많았지만 그래도 40년 가까이 곁에서 함께해온 사람이었다.그를 일으켜 세운 것도 하나하나 가르치고 이끌어온 것도 유재성이었다.심지어 유강후에게 쏟은 시간보다 더 많은 정성과 노력을 들인 존재였다.그나마 위안이 됐던 건 유강후와의 관계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점이었다.요 며칠은 쌍둥이들도 종종 병문안을 왔다.막 말을 배우고 걷기 시작한 시기인지라 유재성을 보면 할아버지하고 앵앵거리며 다가와 안기곤 했다.그 모습에 유재성의 마음도 한결 부드러워졌다.두 아이는 너무나 사랑스럽게 생겼기에 마치 광고 속 아기 모델처럼 예뻤고 병원 안에서도 늘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아이들이 병실에 나타날 때마다 간호사들이 몰려들어 구경하는 게 일이었다.그럴 때마다 유강후는 은근히 신경 쓰였다.속으로는 우리 애 좀 그만 봐요라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아이들을 꼭 끌어안고 놓지 않으려 했다.일주일이 지나 유재성의 건강이 더 안정되자 유강후는 병문안을 조금씩 줄였다. 그리고 유민준에게 지분 문서를 돌려주며 단 한마디만 남겼다.“경원시에서 떠나.”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더는 유민준을 만나지 않았다.유민준은 그 말을 곱씹으며 유재성이 퇴원하자 네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경원시를 떠났다.그리고 유재성 퇴원 당일에 온다연은 두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그런데 병원 복도 끝에서 낯익은 얼굴을 마주쳤다.바로 심미진이었다.몇 년 전만 해도 화려한 명품으로 치장하며 번쩍거리던 여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낡은 옷차림에 머리는 하얗게 변했고 얼굴은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초췌해졌다.병원 입구에서 경비원들에게 붙잡혀 있는 그녀는 꼴이 말이 아니었다.온다
유강후는 이마를 문지르며 고개를 숙여 온다연에게 입을 맞췄다.“이제 큰 문제는 없어. 네가 준 약 덕분에 상태가 꽤 안정됐어. 지금 병실 안에 있는 전문가들이 모여서 그 약을 분석하느라 정신없어. 하나만 실험용으로 가져가겠다고 하던데 내가 거절했어.”온다연은 웃으며 말했다.“그건 곽 박사님이 주신 약이니까 당연히 귀하겠죠. 그러니 그 사람들은 아마 분석해도 별 소득 없을걸요.”“맞아.”유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꼭 필요하다니까 며칠 정도는 맡겨둘까 해.”온다연은 그의 옷깃을 가지런히 정돈해 주고 발끝을 살짝 들어 그의 턱에 입을 맞췄다. “점심 준비가 다 됐어요. 일단 밥부터 먹어요. 그리고... 수염 좀 정리해요. 이따가 다희랑 놀다가 얼굴 찔리면 어쩌려고 그래요.”마침 그때 복도 끝에서 다희가 기어 나오더니 유강후를 보자마자 벌떡 앉아 흔들흔들 달려오기 시작했다.하지만 몇 걸음 채 가지 못하고 쿵 하고 넘어졌다.“다희야!”유강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바로 달려가 딸을 안아 올렸다.“아빠 보고 싶었어?”다희는 입을 삐죽이며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랐고 조그만 손바닥을 펴 보였다. 손바닥엔 희미한 붉은 자국이 두 줄 남아 있었다.유강후는 금세 눈치를 챘다.“엄마가 자로 손바닥 때렸어?”다희는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푹 숙이고 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더니 입만 우는 소리를 내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리만 컸고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딸이 아빠에게 고자질하듯 안겨 있는 모습에 온다연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장난이 너무 심했어요. 큰 우유 잔을 통째로 내 노트북에 다 쏟아버렸어요. 지난 이틀 동안 만든 데이터가 다 날아갔으니 다시 해야 해요.”유강후는 아이 손을 잡고 후후 불며 말했다.“때리지는 말지. 아직 어려서 잘 모르잖아. 천천히 말해주고 가르쳐야지.”그의 딸바보스러운 모습에 온다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이러다가 얘 완전 버릇 나빠지겠어요. 지금도 거의 날뛰는 수준이죠. 서재 한 번 가보지 그래요?
겉보기로만 보면 유민준은 유강후의 저렴한 복사본 같았다.하지만 지금 그의 눈에는 감추지 못한 간절함이 담겨 있었고 온다연을 바라보는 시선은 깊고 무거웠다.그는 더 이상 다가서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미안해. 내가 예전에 정말 많은 잘못을 했어. 하령이랑 같이 널 괴롭히기도 했고... 근데 난 그냥 장난인 줄로만 알았지. 그렇게 더럽고 비열한 짓까지 할 줄은 몰랐어.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좀 더 일찍 알아차렸더라면... 너 그런 고통 안 겪었을 텐데...”온다연은 한치의 감정도 없이 단칼에 잘랐다.“이제 와서 그런 말 해서 뭐해요? 원래는 오빠를 죽일 생각이었어요. 근데 오빠가 날 한 번 살려줬으니 그걸로 끝내고 싶어요. 이제부터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니 다시는 제 눈앞에 나타나지 마세요.”그 차디찬 말 한마디가 유민준 마음속 마지막 환상마저 산산이 부숴버렸다. 그는 손에 쥔 서류를 꼭 움켜쥐며 고개를 떨군 채 중얼거렸다.“처음... 네가 본가에 들어온 그날... 내가 널 지켜줬다면... 지금 이 결말은 달라졌을까? 네 곁에 있는 사람이 나였을 수도 있었을까?”온다연은 냉정하게 쏘아붙였다.“오빠는 유강후의 발톱 하나만큼도 못 해요. 그러니 오빠 손에 쥔 그 주식 들고 지금 당장 꺼지세요. 그게 오빠가 살길이에요.”유민준은 말없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자신이 완전히 끝났다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손에 든 서류를 이권에게 건넸다.“이권 씨, 이 서류를... 작은아버지께 전해주세요. 본가의 재산은 이젠 아무것도 갖고 싶지 않아요. 다만... 아버지 유골만이라도 묘지에 모시게 해주세요. 명절마다 인사드릴 수 있게만 해주시면 돼요.”그러자 이권은 냉정하게 답했다.“서류는 전달하겠습니다. 다만 대표님께서 받아들이실지는 모르겠고 부탁을 들어주실지도 장담 못 드립니다.”유민준은 고개를 숙였다.“알아요. 부탁드릴게요.”그와 말하는 동안 온다연은 이미 차에 올라탔다.“이권 씨, 출발해요.”차는 곧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