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준 맞지 않는 결혼은 결국, 파국으로 흘러간다. 7년의 결혼 생활. 소유하에게 오승현은 단 한 번도 따뜻한 남편이 아니었다. 그는 늘 차가웠고, 변덕스러웠고, 가족이라는 틀 속에서도 유하만은 철저히 외면했다. 승현과 연애하던 시절, 유하는 하늘에 떠 있는 달을 품에 안은 줄 알았다. 그녀는 이 남자와 함께라면, 앞으로의 삶이 찬란할 줄로만 믿었다. 그러나, 눈보라가 몰아치던 어느 날, 혼자 기억하는 결혼기념일에 유하는 깨달았다. 이 집에서 자신만 ‘외부인’이라는 걸. 남편은 첫사랑을 앗아간 대가라며 유하를 미워했고, 아들은 ‘아빠의 첫사랑인 이모'가 더 좋다며 유하를 무시했다. 가족 모두가 등을 돌린 날... 유하는 웃었다. 텅 빈 마음, 타들어간 심장으로 결국 이혼을 선언했다. “양육권도 재산도 다 줄게요. 그러니 나 좀 놓아줘요.” 그 후, 세상은 유하를 다르게 기억하기 시작했다. 버려진 아내, 소유하? 아니다. 세계적 디자이너, 그리고 천재 화가. 유하의 작품은 전 세계 유명 인사들이 수백억을 내고도 손에 넣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다 마음이 식어 돌아서니, 이번엔 남편과 아들이 오히려 유하를 놓아주질 않는다. “엄마는 내 엄마예요! 다른 애 만나지 마요!” “당신이 먼저 날 선택했잖아. 책임져. 이혼? 절대 못 해.” 배신으로 무너졌던 여자, 이제는 모든 걸 거머쥔 여자가 되어 돌아온다.
더 보기운전대를 잡은 손에 살짝 힘을 주면서, 태건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병원.병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누나, 저 왔어요. 근데 형은 어디 갔어요? 안 보이는데요.”승환이었다.그는 머리에 여전히 붕대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고, 양손엔 편의점 봉투가 가득 들려 있었다.유하는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형은 바빠서. 금방 또 올 거야.”그 말과 동시에 작은 테이블 위로 과자며 수건, 컵라면이 잔뜩 쏟아졌다.“이걸 다 왜 샀어?”유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누나랑 병원 동거하려고요.”승환이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앉았다.‘병원 동거라니...’유하는 순간 당황했지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정말... 진심이었나 보네.’‘내 동생도 돼 주고, 아들도 돼 준다는... 그 말이 장난이 아니었어.’이불 속에 있던 여자의 손가락이 조용히 움찔거렸다.승환은 과자 봉투를 열며 투덜거렸다.“생각해보니까 저 괜히 퇴원했어요. 좀 더 있다 나왔으면 누나랑 병실 메이트가 됐을 텐데...”“그게 그렇게 아쉬운 일이야?”유하가 황당하다는 듯이 웃자, 승환이 해맑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요! 누나 옆에서 지켜보는 게 제일 중요하죠.”그는 곧바로 견과류 하나를 까서 유하 손에 쥐여주었다.“다친 사람이 뭐라도 먹어야죠. 누나는 영양이 부족해 보여요.”유하는 멋쩍은 웃음과 함께 조용히 받아들었다.“넌 수술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간병인 놀이야. 나는 머리만 살짝 다친 거야, 손발도 멀쩡하고 정신도 멀쩡해.”“손발이 멀쩡하면 뭐 해요? 머리는 더 조심해야죠. 중요한 데잖아요.”승환은 유하의 이마 주변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붕대 자국이 아른거리자, 눈빛이 순간 어두워졌다.“그날 형이 전화만 안 했어도... 누나가 굳이 거기 갈 필요도 없었어요.”‘그날 밤... 내가 붙잡았어야 했는데...’유하는 고개를 살짝 떨궜다.“이젠 다 지난 일이야.”승환은 유하를 위해 컵에 따뜻한 물을 따르다가 침대 옆에 놓인 보온병을 보고 멈칫했다.“이건
점심때가 막 지났을 때, 서늘한 한기와 함께 롤스로이스 한 대가 조용히 오국수 자택 안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린 사람은 바로 승현이었다.검은색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고, 은빛 커프스를 고쳐 잠그는 손동작 하나까지도 세련되게 절제되어 있었다.승현은 가문의 사람 중 가장 ‘성공한’ 이름이자, 그 무게만큼 늘 눈총을 받는 존재였다.조용히 대문을 지나 서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서재 안.오국수는 먹을 간 뒤 먹물을 천천히 종이에 올리고 있었다.손끝에는 여전히 절도 있는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할아버님.”차분히 부르면서 곧장 다가간 승현은, 찻주전자를 들고 조심스레 차를 따랐다.그러나 오국수는 여전히 고개도 들지 않았다. 붓이 종이 위를 스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만이 공간을 메웠다.한 글자가 마침내 완성되자, 붓을 내려놓은 오국수가 비로소 눈을 들었다.“내가 부르지 않으면, 넌 여길 영영 안 찾을 생각이냐?”승현은 웃으며 대꾸했다.“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할아버지 생각뿐입니다.”‘적어도 이 공간에선 그렇게 말해야지.’오국수는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허튼소리 말고. 그 머릿속에 날 꽉 채운 건 아니고... 다른 여자겠지?”“최근에 네놈 주변이 좀 시끄럽던데, 그 말도 안 되는 소문들이 전부 사실이더구나?”승현은 일부러 굳은 표정을 하고서 장난스럽게 받아쳤다.“도대체 누가 그런 무성의한 찌라시를 퍼뜨립니까? 제가 할아버님 귀에까지 시끄럽게 했나 봅니다.”쿵!오국수가 손바닥으로 책상을 내리쳤다.“입만 산 건 여전하구나. 네 에미가 아니면 누가 그런 소리를 하겠어? 그것도 못 막아?”그 말엔 명백한 불만이 실려 있었다.“이놈아, 밖에서 여자를 어떻게 만나든 그건 내가 뭐라 안 해.” “하지만... 딴 데서 애라도 생기면 그건 그냥 끝이야. 오씨 가문의 피가 장난으로 섞일 수는 없어.”승현은 여유 있게 미소를 지었다.“걱정 마십시오, 그럴 일은 없습니다. 선은 지킵니다.”“그래? 그 ‘선’이라는 걸 지킨 놈이
찰싹! 찰싹! 찰싹!세 번.정확히 세 대가 준서의 작디작은 손바닥 위에 내리꽂혔다.손등이 금세 벌겋게 부풀어 오르고, 눈가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눈물이 맺혔다.하지만 준서는 울지 않았다. 아니 울 수가 없었다.‘울면... 더 세게 맞을 거야. 울면 안 돼. 절대 울면 안 돼...’오국수, 오씨 가문의 정신적 지주이자 군 장성까지 오른 인물.오국수의 기준은 엄격했고, 눈물은 약자의 증거였다.“뭘 잘못했는지, 다시 말해.”서재 안에서 울려 퍼지는 묵직하고 건조한 오국수의 음성.애써 울음을 삼킨 준서가, 입술을 떨면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엄마 쪽 친척들을... 집에 들인 게 잘못이었어요. 그 사람들이 오지만 않았어도, 엄마는 다치지 않았을 거예요... 두 번 다시... 그런 일 없을 거예요...”‘내가... 내가 그때 아니라고 했어야 했는데... 그냥 보내라고 했어야 했는데...’마재한은 말없이 손을 내밀라는 눈빛을 보냈다.준서는 이미 얼어붙은 손을 다시금 앞으로 내밀었다.이번엔... 일곱 대.찰싹! 찰싹! 찰싹! 찰싹! 찰싹! 찰싹! 찰싹!한 대, 또 한 대... 연이어 내려치는 자에 준서의 손등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벌겋게 달아올랐고, 손가락은 무처럼 부어올랐다.결국, 참고 있던 눈물이 떨어졌다.‘안 돼... 소리 내면 안 돼... 제발... 들키면 안 돼...’눈물은 흘렸지만 굳게 다문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입 밖으로 한 마디도 새어 나오지 않도록 했다.잠시 후.툭!바닥에 지팡이를 내리치는 소리가 울렸다.“상황 파악도 못 하고 남한테 휘둘려서 가족까지 위험에 빠뜨린 놈이 오씨 가문의 혈통이라니?”오국수의 목소리에는 실망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네 아비는 지나치게 매정하고, 넌... 그냥 멍청한 거야.”준서는 고개를 숙인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그냥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 다신 안 그럴 거야... 뭐든...’오국수는 나지막한 톤으로 말했다.“계속 무릎 꿇고 있어라. 어디서 어떻게 잘못된 건지..
“뭘 그렇게 무서워해? 넌 내 처남이잖아. 네 누나 얼굴 봐서라도... 내가 아주 정중하게 대해줄게.”승현은 입꼬리를 올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 특유의 여유로운 여우 눈이 길게 가늘어졌다.하지만 발끝은 단 1mm도 힘을 풀지 않았다.“끄윽... 아...! 아뇨! 아니에요!”유민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그 순간, 승현의 미소가 조금 더 깊어졌다.“내가 보기에 너, 겁낼 만큼은 아니던데?”“그게... 그게... 주연이가 시켜서... 아, 아니, 아니에요! 다... 다 제가 잘못했어요, 매형!” “제가 정신이 나갔던 모양이에요! 한 번만 봐주세요. 저희는... 지금 당장 S시로 돌아갈게요! 다신 안 올게요! 제발...”유민은 남은 손으로 자기 얼굴을 ‘짝짝’ 세게 내리쳤다. 뺨이 붉게 부어오르면서 끊임없이 눈물을 쏟았다.그리고 무릎 꿇고 엎드린 채로 승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부짖었다.퍽!승현이 냉정하게 한 발을 내지르자, 유민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그래도 인정하는 걸 보니 양심은 있는 모양이지.”승현은 비웃듯 코웃음을 치고 뒤를 돌아 말했다.“나 비서.”“네.”태건이 곧장 유민에게 다가가 방금 병원에서 감아놓은 붕대를 빠르게 풀어 헤쳤다.그리곤 작은 카메라를 꺼내 상처 부위를 여러 각도로 세세하게 촬영했다.‘뭐, 뭐 하려고 하는 거야...’온몸이 굳어진 유민은, 드러난 이마를 감싼 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승현은 촬영된 사진 몇 장을 슬쩍 넘겨보다가 발끝으로 유민의 턱을 툭 차며 말했다.“처남, 여기까지 어렵게 왔는데, 그냥 돌려보내면 내가 예의가 없잖아. 조금 더 있다 가. 알았지?”‘대체 뭘 하려는 거야... 그냥 보내주는 게 아니었어...?’유민은 온몸을 떨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철컥-병실 문이 다시 열렸다.휠체어에 실린 주연이 의료진에게 이끌려서 들어왔다.“타이밍 딱 좋네. 둘이 여기서 나란히 요양해. 병원비는 내가 낼 테니까.”승현은 그 말을 끝으로 의기양양하게 병실을 빠져나갔다
병실 안.그중 앞서 들어온 남자는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았다.‘잘생겼다... 정말...’강렬한 눈매와 여유로운 기세, 치명적인 분위기를 두르고 들어선 남자를 보자 주연의 시선이 절로 따라붙었다.‘사진보다 훨씬... 훨씬 멋있잖아. 이게 오승현 실물이라니? 이건 반칙이야...’눈을 떼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던 주연은 문이 쿵 닫히자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황급히 일어나서 얼른 고개를 조아렸다.살짝 머리를 넘기며 귀 옆 머리칼을 정리한 주연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오, 오 대표님... 안녕하세요.”주연은 이곳에 오기 전 오승현의 사진을 이미 수십 번 봐 두었다.하지만 현실의 오승현은 사진과 달리 너무도 압도적인 비주얼이었다.‘저런 남자가 소유하 남편이라니...’‘그 여자는 도대체 뭘 한 게 있다고 이런 남편을 얻은 거야?’질투가 치밀었지만, 고개를 다시 든 주연은 부드럽게 웃으며 목소리를 낮췄다.“유하 언니가 좀 너무하셨어요. 아직 제대로 말도 안 나눴는데 친동생한테 유리 주전자까지 던지고...” “그래도 전 괜찮아요. 유민 씨가 깨면 잘 타이를게요. 가족끼리는 원래 이런저런 일 다 있는 거잖아요.”그 말에 승현이 씩 웃었다.그리고 주연을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본 뒤 아주 평온한 목소리로 물었다.“근데 왜 아직도 서 있어?”주연은 잠시 머리를 만지던 손을 멈췄다.‘네...?’무슨 뜻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승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들었는데... 임신하셨다면서?”그 말에 주연은 잠깐 멈칫했지만,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하,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임신했다고 뻥 치는 게 아닌데...’‘이 오승현의 실물이 이렇게 잘생긴 줄 알았으면 진작 방향을 바꿨을 텐데.’하지만 곧바로 마음을 고쳐먹었다.‘괜찮아, 나도 충분히 예쁘니까. 소유하 같은 여자가 옆에 있어 봤자... 남자는 결국 새로운 자극에 약한 법이야.’‘게다가... 소유민이 병원에 있는 김에 이 집에 머무를 기회만 생기면... 분명히 틈이 생길
“아빠! 아빠!! 제가 잘못했어요!!”현관 쪽.준서는 정장을 입은 체격 좋은 남자 두 명에게 양쪽 겨드랑이를 붙잡힌 채, 버둥거리며 울부짖었다.“진짜 잘못했어요, 다음부턴 꼭 할게요! 한 번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증조할아버지 댁엔 가지 않게 해 주세요!! 제발요, 아빠! 아빠!! 아아아!”작은 몸이 허공에 매달려 팔과 다리를 마구 휘젓지만 곧 완전히 제압당했다.계단 위.승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그 눈빛엔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이미 두 번째 기회였어. 지키지 못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이게 우리 집안의 규칙이야.”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엔 철저한 단호함과 냉혹함이 서려 있었다.준서는 눈이 뒤집혔다. 그제야 뭔가를 직감한 듯 머릿속을 번쩍 스치며 외쳤다.“엄마! 엄마 볼래요!! 나 엄마 안 보면 안 가요! 엄마아아!!”“데려가.”승현이 차갑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우리 할아버님께 안부 전해드려.”“네, 대표님.”경호원은 대답과 동시에 준서를 질질 끌 듯이 데리고 나갔다.준서의 비명과 울음은 현관문 너머로 길게 이어졌고, 이내 무겁게 닫히는 차 문 소리에 소리는 단절됐다.검은 차 한 대가 서서히 저택을 빠져나갔다.뒤편.태건이 조용히 서 있었다. 모든 상황을 지켜본 그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어르신께 이미 상황 보고는 들어갔습니다. 도련님께선 이번엔 큰 벌을 받으실 것 같은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승현은 가볍게 웃었다.“요즘 준서가 좀 날뛰잖아. 이참에 제대로 배워야지.”그 말에 태건은 더 묻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였다.응접실을 정리하고 돌아온 윤해월도 눈가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방심해서 사모님을 저런 사람들과 단둘이 있게 해버렸습니다...”승현은 손을 저어 그 말을 막았다.“됐어요. 당분간은 병원에 보양식이나 자주 보내세요. 기력 회복에 집중할 수 있게.”짧게 지시를 마친 승현은 겉옷을 챙겨 나섰다.차에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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