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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2화

Author: 손이영
유민재는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정기 적금으로 해. 매달 생활비로 지급하고... 유가족의 여동생은 대학에 다니니까 매달 사십만 원 더 보태 주도록 해.”

“네.”

진우남은 바로 대답했지만 요즘 들어 늘 말수가 줄어든 유민재를 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장관님, 혹시 송 선생님과... 아직 화해를 못 하신 겁니까?”

유민재는 침묵했다.

진우남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송 선생님께 조금 심했던 건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 안전을 위한 것이 거였잖습니까. 이번만은...”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만큼은 정말로 화가 나신 것 같아요. 풀리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겁니다.”

그 순간 유민재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하월이는... 부대를 떠났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진우남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뭐라고요? 어떻게... 인사 한마디 없이 그냥 가버리셨단 말입니까?”

그러나 유민재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말없이 서 있는 그의 모습은 어딘가 쓸쓸하고 고독해 보였다.

여기서 그는 모두의 신이자 정신적 기둥이었다. 그가 존재하는 한 이곳은 누구에게나 안전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진우남은 사람들이‘전장의 신’이라 부르는 이 남자 역시 상처 입을 수 있고 무너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유민재와 송하월의 관계를 이미 짐작하고 있던 그는 무어라 위로를 건네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설산 작전에서 유민재가 구해냈던 한 팀원이 급히 다가왔다.

그는 손을 크게 다쳤었지만 이제는 거의 회복된 상태였고 유민재 곁으로 다가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유 대령님, 송 선생님이 기지를 떠나셨다고 방금 들었습니다.”

말을 이어가던 그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대령님이 저를 구해주신 게... 송 선생님을 아프게 만든 거잖습니까. 다 제 잘못입니다. 그때 대장님이 송 선생님을 선택하셨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유민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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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1873화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유민재는 갑자기 전화를 걸었다.“시장님, 저 SS 급 임무를 맡고 싶습니다.”상대방의 목소리가 놀라움으로 떨렸다.“민재야, 이 임무는 매우 위험하다. 지금 나서기에는 준비가 충분치 않아.”유민재는 단호하게 말했다.“저는 성공 확률 80% 이상 자신 있습니다. 미리 수행하고 싶습니다.”상대방이 잠시 망설였다.“민재야, 지금 그 임무를 하기에는 너무 성급한 결정이야. 나가면 거의 죽음을 각오해야 해. 정말 결정한 거야?”“확실합니다.”유민재의 목소리는 흔들림 없었다.잠시 침묵이 흘렀다. 상대방이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민재야, 정말 할아버지를 만나지 않고 가겠다는 거야? 요즘 몇 년간 할아버지도 마음이 편치 않았어. 과거 일을 잘못했다고 후회하고 계시거든.”한숨이 이어졌다.“최근 2년 동안 할아버지는 내게 자주 후회한다고 말했어. 예전처럼 강압적으로 너희 어머니와 인연을 끊지 말아야 했다고. 하지만 젊을 때 누구나 혈기가 왕성하지. 네 어머니가 사고를 당하기 전까진 할아버지는 네 존재조차 몰랐어. 할아버지는 네 어머니가 몰래 계획에 참여한 것을 나무랐던 거지. 하지만 결국 네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외동딸이잖아... 민재야 내가 가장 잘 아는 사실인데 할아버지가 널 찾지 않은 게 아니야. 네가 어머니에 의해 보내진 것도 네가 늑대 굴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것도 몰랐어. 만약 알았다면...”“민재야, 지금 할아버지는 더 이상 젊지 않아. 네 어머니도 없고 외로워하셔. 백씨 가문에는 네가 필요해... 사실 매번 네가 임무를 나갈 때마다 할아버지는 누구보다 걱정했어. 지금 네가 백씨 가문의 유일한 혈육이야...”상대방이 계속 말을 이어갔지만 유민재는 침묵을 지켰다.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그는 결국 상대방의 말을 끊고 단호하게 말했다.“네.”잠시 멈췄던 상대방은 놀란 듯 환하게 말했다.“정말 할아버지를 만나기로 한 거야?”유민재가 담담히 답했다.“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제 신분은 절대 공개하지 않을 것이고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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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1871화

    두 간호사는 그를 보자마자 얼굴을 붉혔다.“송 선생님은 떠나셨어요.”유민재의 가슴속에 불길한 예감이 번개처럼 스쳤다.“어디로 간 겁니까? 다른 병동으로 옮기신 건가요?”간호사는 머뭇거리다 결국 숨기지 못했다.“병동을 옮기신 게 아니라... 아예 저희 기지를 떠나셨어요.”“기지를 떠났다고요?”유민재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언제 일입니까?”간호사가 아는 건 많지 않았다.“오늘 새벽에 바로 떠나셨어요. 경원시에서 차가 와서 모셔갔습니다. 사직서를 내셨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실 거라고 들었어요. 손 상태 때문에... 아마 경원시로 가서 요양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신 것 같아요.”순간 차가운 기운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유민재 손에 들려 있던 물건이‘탁’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그는 곧장 몸을 돌려 실험 기지로 달려갔다. 마침 연구원들이 아침 식사를 마치고 흩어지던 참이었고 그는 숨 돌릴 틈도 없이 곽혜진을 찾았다.“곽 부장님, 하월이가... 정말 떠난 겁니까?”곽혜진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더는 숨기지 않았다.“그래요. 하월이 손은 사실상 회복할 수 없습니다. 이곳에 남아 있어도 더 이상 수술은커녕 정밀한 연구도 어렵죠. 본인도 잘 알고 있었고... 결국 스스로 사직을 결심했습니다. 위에서도 이미 승인했어요. 그래서 오늘 새벽 바로 떠난 겁니다.”유민재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전장에서는 누구보다 강인했던 사내의 눈동자에 헤아릴 수 없는 무력감과 고통이 서려 들었다.그는 낮게 중얼거렸다.“왜 아무도 나한테 알리지 않은 거지...?”곽혜진은 담담히 말했다.“하월이는 우리 연구 기지 소속이었어요. 하월이가 떠나는 건 우리의 일이었지 굳이 당신에게 알릴 필요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유 대령 본인도 예전부터 하월이를 돌려보내고 싶어 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원래는 제자의 편에서 더 따끔하게 일러주려 했지만 눈앞의 사내가 충격과 고통에 휩싸인 얼굴을 하고 있는 걸 보자 차마 독한 말은 삼켰다. 대신 차분히 덧붙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1870화

    “그리고 어린 시절 내 곁을 지켜줘서 정말 고마워요. 네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예요. 그건 평생 감사할 일이에요. 당신이 송씨 가문에서 보디가드로 지낸 그 세월 내가 집에 말해 전부 임금으로 정산해 줄게요. 최고의 보디가드 기준으로 계산해서 절대 손해 보지 않게 할 테니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그 말을 끝내자 송하월은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었다.그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두 번이나 그의 선택에서 외면당했던 기억이 밀려와 호흡조차 고통스러웠다.그녀가 몸을 돌려 자리를 피하려 하자 유민재는 재빨리 움직여 좁은 구석에 그녀를 막아섰다.압도적인 체격에 평소 작지 않은 그녀마저 작고 약해 보였다.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하월아,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해도 네가 이해하지 못할 거 알아. 어떤 말로도 네 상처를 덮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아. 나는 평생 내 신념과 꿈만 따라 흔들림 없이 걸어갈 줄 알았는데 지금은 후회만 남았어.”“그만해요.”송하월이 단호히 그의 말을 끊었다. 온몸이 떨렸고 눈물은 겨우 참고 있었다.“제발 그만해요. 당신은 예전에 날 구했고 이번엔 내가 당신을 구했어요. 이제 우리 사이엔 빚도 원한도 없어요. 당신은 본업을 다했을 뿐이에요. 잘못한 것도 없고 나한테 변명할 필요도 없어요.”그녀는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유민재, 앞으로 네 꿈 꼭 이루고... 행복하길 바랄게.”말을 마치자 송하월은 몸을 낮춰 그의 팔 아래로 빠져나갔다.마치 유민재가 무슨 악귀라도 되는 듯 단 한 순간도 더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듯 그녀는 그대로 달려 나가 버렸다.유민재는 뒤쫓지 않았다.그저 송하월의 뒷모습이 멀어져 가는 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눈빛은 짙은 비애로 가득 차 있었다.다음 날 해가 뜨기도 전 송씨 가문의 차량이 기지에 도착했다.송하월은 굳게 다문 입술로 모든 곡소리를 삼켜낸 듯한 표정으로 어머니 임정아와 함께 차에 올랐다.차가 기지를 벗어나던 순간 마침 유민재가 이끄는 부대가 아침 구보 훈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1869화

    다음 날 표창식에 송하월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행사가 끝난 뒤 함께 임무를 수행했던 전우들이 그녀를 찾아왔다.그들 사이에 유민재도 있었다. 그는 멀찍이 떨어져 앉아 동료들과 웃으며 대화하는 송하월을 가만히 바라보았다.겉으로 보기엔 여전히 예전처럼 밝아 보였지만 유민재는 알았다. 그녀는 이미 더 이상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마치 하룻밤 사이에 순진한 소녀가 억지로 성숙해져 버린 것처럼 그 눈빛에는 외로움과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강인함이 서려 있었다.‘고통’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지금 자신의 심정을 결코 설명할 수 없었다.그녀는 그가 두 손으로 소중히 떠받들고 품에서 길러낸 아이였다.어릴 적 그녀는 몸이 유난히 약해 늘 한약에 의지해야 했고 쓴맛 때문에 마시길 거부하면 그는 곁에서 함께 마셔주며 달래고 억지로라도 삼키게 했다.낯선 사람만 봐도 울음을 터뜨리던 겁 많은 아이였기에 그는 그녀를 꼭 안아 올려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더 많다고 따뜻하게 속삭여 주곤 했다.그녀는 분명 그가 직접 가꾸어낸 장미였다. 하지만 이제 두 사람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골이 깊어져 있었다.오랜만에 전우들을 만난 송하월은 무척 반가워했지만 속으로는 이번이 아마 마지막 만남이 될 것이라 결심하고 있었다.그녀는 미리 준비한 작은 선물들을 꺼내 나누어주었다.경원시에서 가져온 특산품과 이곳에서는 쉽게 구하기 어려운 실용적인 물건들이었다.유민재 역시 선물을 받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았다. 특별함은 전혀 없었다.내내 그녀는 단 한 번도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마치 단순한 상관과 부하 사이의 관계일 뿐 과거의 모든 기억은 이미 스쳐 지나간 바람에 불과한 것처럼.동료들이 떠난 뒤 송하월은 조용히 돼지우리로 향했다.네 마리 돼지들이 그녀를 보자마자 달려와 콧김을 뿜으며 부비적거렸다. 놀랍게도 그들은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송하월은 가져온 과자 두 상자를 열어 나눠주며 작별을 고했다.“앞으로는 다시 못 보겠지. 너희는 천천히 자라야 오래 살 수 있어.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1868화

    송하월의 마음속은 저릿하게 아팠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잔잔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굳이 안 봐도 돼요. 어차피 앞으로 다시 볼 일도 없을 텐데 그냥 이쯤에서 끝내요.”임정아는 딸을 걱정스레 바라보았다.“하지만 너는 어릴 때부터...”송하월은 곧장 말을 이었다.“엄마도 말씀하셨잖아요. 그건 어릴 때 일이에요. 이번 일을 겪고 나니까 저도 이제는 다 컸어요. 저는 송씨 가문의 딸이에요. 선택지는 얼마든지 있죠. 굳이 한 사람만 붙잡고 매달릴 필요는 없어요. 게다가 저는 아직 어리잖아요. 회복하면 학교로 돌아가서 공부도 다시 하고 일도 열심히 할 거예요. 안 되면 아빠 따라 정치 쪽으로 가서 그냥 성실한 공무원으로 살면 되죠.”그러고는 일부러 장난스럽게 덧붙였다.“다만 제 월급이 많지는 않을 테니까 나중에 예쁜 옷이나 가방 사고 싶으면 엄마랑 아빠가 좀 보태주셔야 해요.”임정아는 웃음을 터뜨리며 딸의 미간을 손가락으로 톡 건드렸다.“이 녀석 장난꾸러기 같으니. 네 아빠한테 전화 좀 하고 올게. 잠시 혼자 있어.”임정아가 나간 뒤 송하월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고 그녀의 마음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비록 모든 걸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자고 스스로 다짐했지만 유민재는 결국 그녀가 십수 년 동안 마음속에 품어온 집착이자 그리움이었다.그런 감정이 하루아침에 마치 끊어내듯 사라질 리 없었다.창밖의 나무를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는 문이 열리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그 순간 유민재가 들어왔다.그의 눈빛은 고통과 안쓰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송하월은 예전보다 훨씬 말라 있었다. 어린 티가 남아 있던 볼살도 다 사라지고 손바닥만 한 얼굴은 핼쑥하게 바래 있었다.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은 보는 이의 가슴을 저며왔다.곽 박사는 그녀의 손이 망가져 이제는 다시 의사로 돌아가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하지만 유민재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유민재는 그녀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해도 이 넓은 기지 안에서 그녀가 설 자리를 마련해줄 수 있었다.무엇보다도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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