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남편의 첫사랑이 불치병에 걸렸다. 남편은 하지율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지율아, 채아한테 남은 날이 얼마 없어. 그러니까 네가 참아.” 그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첫사랑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심지어 하지율이 정성껏 준비한 결혼식까지 임채아에게 양보해야 했다. 다섯 살 된 아들이 남편 첫사랑의 다리를 꽉 붙잡았다. “엄마는 예쁜 누나보다 하나도 안 예뻐요. 왜 예쁜 누나가 우리 엄마가 아니예요?” 하지율은 두 사람을 위해 이혼 합의서를 던져두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나중에 남편과 아이가 그녀 앞에 무릎을 꿇는데... 전 남편은 후회로 가득 찬 얼굴이었고 아들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지율아, 정말 우릴 버릴 거야?” “엄마, 진짜 우릴 버릴 거예요?” 그때 한 잘생긴 남자가 하지율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여보, 여기서 뭐 해? 아들이 배고프대.”
Lihat lebih banyak하지율은 복잡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선배는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다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해?”심다희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선배도 저 때문에 휘말린 거예요. 그러니까 이 일에 대해 선배가 책임지실 필요는 없어요.”하지만 유소린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그래도 이미 일이 너무 커졌잖아. 기사도 다 퍼졌고 사람들도 다 알게 됐어. 두 사람이 연인이라고 인정하면 그나마 괜찮아질 수도 있지만, 그냥 여기서 끝내 버리면 너만 더 큰 피해를 볼 수도 있어.”지금 상황은 사실상 여론이 사건 현장을 덮친 것이나 다름없었다.유소린은 답답한 듯 혀를 찼다.“다희야, 네 그 가식적인 친구는 진짜 독하기도 하다. 너 하나 제대로 망신 주려고 작정한 거잖아.”세상은 아직도 남자보다 여자에게 훨씬 더 가혹했다.심다희가 연재영과 파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다른 남자와 호텔에 들어간 사실까지 알려진다면, 설령 억울한 사정이 있더라도 사람들은 쉽게 믿어 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연인 사이라면 그나마 이해하려고 하겠지만, 아무 사이도 아니라면 얼마나 험한 말들이 쏟아질까...’하지율은 강병주를 바라봤다.“선배는 어떻게 생각하세요?”강병주는 하지율과 눈을 마주한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긴 침묵 끝에 강병주가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나는... 책임지고 싶어.”강병주는 천천히 심다희를 바라봤다.“다희야, 나랑 결혼해 줄래?”다음 날, 강씨 가문은 심씨 가문과의 약혼을 공식 발표했다....깊은 밤, 어둠이 짙게 가라앉아 있었다.가느다란 여인의 그림자가 달빛 아래에 희미하게 어른거렸다.김경환의 안내를 받은 하은아는 조용히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객실 안에는 젊고 수려한 외모의 남자가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남자는 두통을 참는 듯 눈을 감은 채 미간을 가볍게 문지르고 있었다.느긋한 자세였지만 몸짓 하나하나에는 범접하기 어려운 기품이 배어 있었고, 존재감만으로도 사람
유소린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아니... 지율아, 일단 같이 가 볼래?”하지율은 강병주와 심다희를 이어 주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주용화의 병에 대해 알아보느라 두 사람과 만날 자리를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게다가 강병주와 심다희는 주용화가 말했던 것처럼 쉽게 마음을 여는 성격이 아니었다. 서두를수록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었다.그래서 하지율은 두 사람이 갑자기 하룻밤을 함께 보냈다는 말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그래서 소린이가 혼자 처리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던 거구나. 정말 쉽게 결론 내릴 일이 아니네...’하지율은 곧바로 말했다.“주소 보내 줘. 바로 갈게.”유소린에게 주소를 받은 하지율은 서둘러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그때 마침 주용화가 밖에서 돌아왔다.주용화는 걸음을 멈추고 하지율을 바라봤다.“지율 씨, 어디 나가세요?”하지율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했다.“네. 병주 선배랑 다희한테 일이 좀 생겼대요. 소린이가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해서 제가 가 보려고요.”주용화의 눈빛이 미세하게 가라앉았다.“무슨 일인데요?”하지율은 난처한 표정으로 에둘러 말했다.“선배랑 다희가...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요.”하지율은 지금도 강병주와 심다희가 어떻게 그런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는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주용화는 길게 내려온 속눈썹 아래로 눈빛을 감춘 채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하지율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부탁드릴게요.”30분쯤 뒤, 하지율과 주용화는 현장에 도착했다.미리 연락을 받고 현장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유소린은 하지율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하지만 유소린은 이미 객실 밖에서 발이 묶인 상태였다.복도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취재용 카메라를 든 기자들까지 몰려들어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하지율은 기자들을 확인하는 순간 표정이 굳었다. 곧바로 자신을 경호하던 경호원들에게 사람들을 밖으
“그리고 주씨 가문의 가주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치열한 경쟁과 압박을 견뎌야 합니다. 그 자리에 앉을 때쯤이면 이미 정신 상태가 망가질 대로 망가졌을 겁니다. 그런 상태에서 외부 자극까지 더해지면 무너지거나 폭주할 확률도 커질 수밖에 없겠죠.”정기석은 미간을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거기에 주씨 가문 사람들은 유전자 자체에 결함을 안고 있으니, 역대 가주마다 정신 질환에 걸리는 듯한 현상이 나타난 겁니다. 반대로 가주가 되지 못한 평범한 주씨 가문 사람들은 왜 대체로 무사한지도 설명할 수 있겠죠. 그들은 그런 경쟁에 끼어들 필요도, 피를 묻힐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하지율의 마음 한편에 희미한 희망이 피어올랐다.“기석 씨는 화야 씨의 병이 나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세요?”정기석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지율 씨, 그 질문에는 대답드리기가 어렵네요. 전부 제 추측에 불과하니까요. 게다가 누나의 일 때문에 제가 주씨 가문 사람들을 좋게 보지 않는 것도 사실이에요.”정기석이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물론 저도 주씨 가문 사람들의 병을 나름대로 조사하고 연구해 본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그걸 단순히 유전적인 병이라는 말로만 정리하는 건 지나친 축소 해석처럼 느껴졌어요. 저는 오히려... 타고난 본성에 가깝다고 봅니다.”하지율은 나직이 되뇌었다.“본성이요?”정기석이 말했다.“어쩌면 그 모습이 원래의 주용화 씨일지도 모릅니다.”하지율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정기석은 다시 물었다.“만약 그게 원래의 주용화 씨라면... 지율 씨는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지난번 만남 이후에도 정기석은 주용화가 자신에게 했던 경고를 하지율에게 말하지 않았다. 하지율에게 따로 주의를 주지도 않았다.주용화가 어떤 사람인지를 평가하기에는 개인적인 추측과 주씨 가문을 향한 편견이 섞여 있었다. 그렇기에 정기석은 하지율에게 확실한 조언을 건넬 수 없었다.하지율의 혼란을 눈치챈 듯, 정기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실은 주씨 가
하지율은 조심스럽게 물었다.“최면 말고는 정말 다른 방법이 없는 건가요?”진소현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의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도 처음에는 용화 씨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는 젊었고 자신감도 넘쳤어요. 무엇을 배우든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믿었고 용화 씨 역시 제가 반드시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주씨 가문에서 대대로 이어져 온 치료법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죠.”진소현은 시선을 떨군 채 잠시 말을 멈췄다.“하지만 오랜 시간 연구한 끝에 깨달은 건, 제 노력이 결국 아무 소용도 없었다는 사실뿐이었습니다. 결국 다시 주씨 가문에서 전해 내려오던 치료법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어요. 최면은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방법입니다. 게다가 용화 씨가 최면을 받겠다고 해도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두 번째 최면은 처음보다 훨씬 어려운 데다 용화 씨가 조금이라도 저항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까요.”진소현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그러니 지율 씨가 정말 최면 치료를 결심하신다면 저보다 훨씬 뛰어난 최면 전문가를 찾아야 합니다. 최면은 원래부터 주씨 가문에서 계속 이어져 온 치료법입니다. 반대로 지율 씨가 용화 씨와 함께해 온 비최면 치료는 제가 직접 연구해서 만든 치료 방식이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 방법도 무의미해졌습니다.”잠시 침묵이 흘렀다.“제 말을 믿기 어려우시다면 용화 씨 곁에 있는 최 교수님께 직접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최 교수님은 용화 씨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는 분이니 거짓말을 하지는 않으실 겁니다.”예전의 진소현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길게 설명하지 않았을 것이다.진소현은 믿는 사람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진소현은 자신의 자존심이나 감정 때문에 주용화의 병을 외면할 수 없었다.하지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켰다.진소현은 주용화의 오랜 인연과 한때 부부였던 과거 때문에 하지율이
경호원들이 하지율을 둘러싸고 밀려드는 인파를 막아섰지만, 누군가 물건을 던질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하지율은 무언가가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것을 느꼈다.달걀이 얼굴에 닿기 직전, 한 실루엣이 불쑥 앞을 가로막았다.곧이어 하지율의 시야에 들어온 건, 화야의 손에 잡힌 달걀 몇 개였다.하지율이 이게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화야가 다시 달걀을 던졌다.달걀은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사람들과 동떨어져 있던 한 젊은 여성의 얼굴에 떨어졌다.“꺄악!” 여성이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감쌌다.순간 현장은 얼어붙었다.하지율은
“아무리 권세가 대단하다고 해도 해외에서 나댈 수는 없으니까요.”그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임채아가 조심스레 말을 보탰다.“다른 건 참을 수 있지만... 선생님을 공경하지 않는 건... 전 정말 용납이 안 됩니다.”그러면서 지난번 대회장에서 하지율을 마주쳤을 때, 하지율이 현성 대가에게 눈곱만큼도 예의를 보이지 않았던 일을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곧이어 하지율에 대한 남은 호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레이나가 콧방귀를 뀌었다.“저런 인물이 무대에서 활개를 치다니, 음악가의 수치와 다름없
그날 밤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연정미는 소파에 앉아 있다가 몇 번이나 그대로 잠들 뻔했다.그러다 새벽이 밝아올 무렵, 문 쪽에서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꾸벅꾸벅 졸던 연정미는 순간 번쩍 정신이 들어서 곧바로 몸을 바로 세우고 문 쪽을 바라봤다.밖에서는 손형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보현 오빠, 어제 정미한테 계속 연락이 되지 않아서 무슨 일 생긴 게 아닌지 걱정되어서 보현 오빠한테까지 연락할 수밖에 없었어요.”단보현이 말했다.“내가 사람 시켜 조사해보니 연정미가 마지막으로 확인된 곳은 여기였어.”손형서
손형서는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메뉴판을 주용화 앞으로 내밀고 저도 모르게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얘기했다.“화야 씨, 뭐 마실래요?”주용화는 메뉴판을 받지 않고 말했다.“연정미 씨 말로는 여기 라테가 대표 메뉴라던데요. 라테로 할게요.”손형서의 미소가 미세하게 굳었다.“정미가... 왜 그걸 화야 씨한테 말했죠?”이 카페는 연정미가 예전부터 자주 오던 곳이었다.주용화가 태연하게 답했다.“지난번 같이 식사했을 때 들었어요.”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그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둘은 별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이것저것 나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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