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남편의 첫사랑이 불치병에 걸렸다. 남편은 하지율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지율아, 채아한테 남은 날이 얼마 없어. 그러니까 네가 참아.” 그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첫사랑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심지어 하지율이 정성껏 준비한 결혼식까지 임채아에게 양보해야 했다. 다섯 살 된 아들이 남편 첫사랑의 다리를 꽉 붙잡았다. “엄마는 예쁜 누나보다 하나도 안 예뻐요. 왜 예쁜 누나가 우리 엄마가 아니예요?” 하지율은 두 사람을 위해 이혼 합의서를 던져두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나중에 남편과 아이가 그녀 앞에 무릎을 꿇는데... 전 남편은 후회로 가득 찬 얼굴이었고 아들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지율아, 정말 우릴 버릴 거야?” “엄마, 진짜 우릴 버릴 거예요?” 그때 한 잘생긴 남자가 하지율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여보, 여기서 뭐 해? 아들이 배고프대.”
View More오후에 있는 마지막 행사까지 끝나면서 하루 일정도 모두 마무리됐다.아무것도 모르는 고윤택은 여전히 가장 신이 나 있었다.한 손으로 하지율, 다른 손으로 고지후를 잡은 채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엄마 아빠랑 같이 이런 행사에 온 거 정말 처음이네요! 앞으로도 계속 엄마 아빠랑 같이 오면 좋겠어요.”그 말에 하지율과 고지후는 동시에 멈칫했다가 서로를 바라봤다.그러고 보니 고윤택이 이렇게 클 때까지 두 사람이 함께 학교 행사에 참석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고지후는 환하게 웃는 고윤택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미안해. 예전에는 아빠가 너무 바빴어. 앞으로는 엄마랑 아빠가 최대한 많이 같이 있어 줄게.”ㄹ말을 마친 고지후는 무심코 하지율을 바라봤다.하지만 하지율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고윤택의 손을 잡고 있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윤택은 너무 신이 난 나머지 다시 친구들에게 달려가 자기 엄마 아빠를 한껏 자랑했다.그러자 아이들은 고윤택을 둘러싸고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수많은 학부모 사이에서도 하지율과 고지후는 외모나 분위기 모두 유난히 눈에 띄었다.덕분에 고윤택의 작은 허영심도 제대로 채워졌다.그때 하지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유소린에게 걸려 온 전화였다.하지율은 고지후에게 잠깐 다녀오겠다고 말한 뒤 사람이 없는 구석으로 가 전화를 받았다.“소린아, 무슨 일 있어?”“별일 없어. 그냥 네가 좀 걱정돼서 그래. Z국 간 지 며칠이나 됐는데 화야 씨가 나한테 연락을 한 번도 안 했거든... 혹시 너한테 무슨 일 있나 해서 전화해 봤어.”하지율이 말했다.“화야 씨는 이미 Z국에 와 있어.”유소린은 잠시 놀랐다가 말했다.“아... 난 아직 모르는 줄 알았는데 벌써 따라갔구나.”두 사람은 십여 분 정도 더 이야기를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하지율이 다시 돌아왔을 때는 고지후와 고윤택 모두 보이지 않았다.주변을 한 바퀴 둘러봤지만 두 사람의 모습은 없었다.고지후에게 전화를 걸려던 순간 멀리서 고지후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
하지율은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주용화가 자신을 안도록 내버려뒀다.굳이 거부하지도 않았지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그 순간, 하지율은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인형 같았다.잠시 후, 하지율이 입을 열었다.“저는 약속대로 나왔어요. 이제 돌아가도 되죠?”주용화의 팔에 순간 힘이 들어갔다.잠시 멈칫하던 주용화는 결국 천천히 하지율을 놓아주며 말했다.“알겠어요. 그러면 내일 다시 보러 올게요.”하지율은 속눈썹을 내리깔면서 눈빛 속의 감정을 감추며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하지율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도 묻어나지 않았다.“화야 씨,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저는 지후 씨와 다시 시작하기로 했어요. 그러니까 이제 저를 찾아오지 마세요.”그러자 주용화가 말했다.“지율 씨의 말은 믿을 수 없어요.”하지율은 고개를 들어 깊고 어두운 주용화의 눈을 바라봤다.“지후 씨는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알아요.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요. 저는 어릴 때부터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어요. 그게 어떤 건지 누구보다 잘 알아요. 그래서 윤택이한테는 온전한 가정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하지율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주용화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화야 씨, 이제 저는 사랑만 보고 살 나이가 아니에요. 지금은 윤택이를 잘 키우는 게 제일 중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연씨 가문을 되찾는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주용화는 고집스럽게 말했다.“믿지 않아요. 지율 씨는 지금 저를 속이고 있잖아요.”그러자 하지율이 말했다.“제가 지후 씨나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 화야 씨를 속일 수는 있어요. 하지만 윤택이까지 이용해서 거짓말할 사람으로 보여요?”주용화의 눈빛이 순간 어지럽게 흔들렸다.하지율은 더 이상 주용화를 바라보지 않고 돌아섰다.그 순간, 주용화가 다시 하지율을 끌어안았다.“지율 씨, 저를 떠나면 안 돼요. 윤택이가 걱정된다면 우리 집으로 데려와 같이 살면 돼요. 제가...”하지율이 주용화의 말을 끊었다.“화야 씨,
“지후 씨도 이제 자기 앞길을 찾아야 해.”고지후는 깊은 시선으로 하지율을 바라봤다.“지율아, 네가 그랬잖아.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뭘 해 줘도 아깝지 않다고. 너한테는 네 삶이 있으니 방해하지 않을게. 하지만 나한테도 내 추억이 있으니까 그걸 부담스러워할 필요는 없어. 그리고...”고지후의 눈동자에는 하지율의 모습만이 또렷하게 비치고 있었다.진지하고도 한결같은 시선이었다.“네가 5년 동안 보여 준 마음이 너 혼자만의 감정이었던 건 아니야. 내가 그 소중함을 몰랐을 뿐이지. 지율아, 나한테는 네가 바로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하지율은 더 말해 봐야 고지후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고 화제를 돌렸다.“이번 주말에 학교에서 대규모 부모 참여 행사를 열도록 해 줘.”주말까지는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고지후는 곧바로 하지율의 뜻을 알아들었다.“알겠어.”하지율이 다시 물었다.“경호원들은 다 배치했어?”그러자 고지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여기서는 누구든 Z국에서처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할 거야.”“좋아. 며칠 동안은 내가 윤택이랑 같이 잘게. 나머지는 부탁할게.”고지후와 몇 마디를 더 나눈 뒤, 하지율은 고윤택을 만나러 가려 했다.그때 갑자기 휴대전화가 울렸다.화면을 확인해 보니 주용화였다.하지율은 전화를 받지 않고 그대로 무음으로 돌렸다.주용화는 3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하지율이 받지 않자 더는 전화하지 않았다.대신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지율 씨,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메시지를 본 하지율은 창가로 다가갔다.그러자 정말로 차 한 대가 대문 앞에 서 있었다.주용화는 차 안에 앉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고 억지로 들어올 생각은 없는 듯했다.하지율은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다음 날 아침.잠에서 깬 하지율은 가장 먼저 창가로 향했다.주용화의 차는 여전히 대문 밖에 서 있었다.아마 밤새 단 한 번도 떠나지 않은 것 같았다.하지율은 가슴이 턱 막혔다.더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약해질 것
하지율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솔직히 말하면 제가 Z국에 가는 건 윤택이를 보러 가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화야 씨를 피하려는 거예요. 화야 씨는 정말 너무 끈질겨요. 방법이 없으니 제가 도망가는 수밖에 없잖아요.”그 순간, 전화 너머로 주용화의 거칠고 가빠진 숨소리가 들려왔다.하지율은 주용화가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는 건 아닐지 걱정되어 더 말하지 않고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그리고 바로 기장에게 떠나라고 말했다.굉음과 함께 비행기가 무사히 활주로를 떠났고 바깥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마치 하지율의 답답한 마음과 꼭 닮아 있었다.비행기가 떠오르는 순간, 하지율은 공항에 나타난 익숙한 모습을 발견했다.검은 옷을 입은 주용화는 텅 빈 공항 한가운데서 유난히 눈에 띄었다.주용화는 마치 이 넓은 세상에 혼자 남겨진 사람처럼 보였다.비행기가 점점 높이 올라갈수록 주용화의 모습도 점점 작아졌고 이내 작은 검은 점이 되었다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다.그 순간 하지율의 마음도 텅 빈 것처럼 허전해졌다....비행기에서 내리자 하지율은 곧바로 고지후가 보낸 사람들의 안내를 받아 이동했다.하지율은 주용화도 오래지 않아 자신을 따라올 거라고 예상했다.역시나 고지후의 별장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용화의 비행기가 S시에 착륙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윤택은 하지율을 다시 보자 무척 기뻐했다.그때 하지율이 물었다.“전에 집에 도둑이 들어서 물건을 많이 훔쳐 갔다고 했지? 뭐가 없어졌어?”그러자 고윤택이 대답했다.“엄마, 제가 보여 줄게요.”고지후는 돌아오자마자 없어진 가구와 가전제품을 새것으로 들여놓게 했다.하지만 별장 안의 물건이 거의 전부 새것으로 바뀐 모습을 직접 보자 하지율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이곳에서 5년이나 살지 않았다면 자기 집이 맞는지도 몰라봤을 정도였다.하지율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어떻게 집이 이렇게 된 거야? 도둑이 들어왔는데 아무도 몰랐대?”고윤택이 대답했다.“아줌마가 그러시는데 밤에
“아무리 권세가 대단하다고 해도 해외에서 나댈 수는 없으니까요.”그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임채아가 조심스레 말을 보탰다.“다른 건 참을 수 있지만... 선생님을 공경하지 않는 건... 전 정말 용납이 안 됩니다.”그러면서 지난번 대회장에서 하지율을 마주쳤을 때, 하지율이 현성 대가에게 눈곱만큼도 예의를 보이지 않았던 일을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곧이어 하지율에 대한 남은 호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레이나가 콧방귀를 뀌었다.“저런 인물이 무대에서 활개를 치다니, 음악가의 수치와 다름없
그날 밤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연정미는 소파에 앉아 있다가 몇 번이나 그대로 잠들 뻔했다.그러다 새벽이 밝아올 무렵, 문 쪽에서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꾸벅꾸벅 졸던 연정미는 순간 번쩍 정신이 들어서 곧바로 몸을 바로 세우고 문 쪽을 바라봤다.밖에서는 손형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보현 오빠, 어제 정미한테 계속 연락이 되지 않아서 무슨 일 생긴 게 아닌지 걱정되어서 보현 오빠한테까지 연락할 수밖에 없었어요.”단보현이 말했다.“내가 사람 시켜 조사해보니 연정미가 마지막으로 확인된 곳은 여기였어.”손형서
손형서는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메뉴판을 주용화 앞으로 내밀고 저도 모르게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얘기했다.“화야 씨, 뭐 마실래요?”주용화는 메뉴판을 받지 않고 말했다.“연정미 씨 말로는 여기 라테가 대표 메뉴라던데요. 라테로 할게요.”손형서의 미소가 미세하게 굳었다.“정미가... 왜 그걸 화야 씨한테 말했죠?”이 카페는 연정미가 예전부터 자주 오던 곳이었다.주용화가 태연하게 답했다.“지난번 같이 식사했을 때 들었어요.”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그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둘은 별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이것저것 나눴
결국 하지율이 나서서 말했다.“아버지, 오빠, 지금 중요한 건 범인을 찾아내는 게 아니라 이걸 어떻게 수습하는 게 중요해요. 이런 소문이 계속 돌면 회사 이미지도 타격이 큽니다. 제가 알기로는 우리 회사 협력사 중에는 연정미 씨 때문에 붙은 곳도 많아요. 저런 얘기를 들으면 계약을 취소할 수도 있어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재영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자 비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회의실에 또렷하게 퍼졌다.“큰 도련님, 큰일 났습니다. 정미 아가씨 쪽에서 거의 성사됐던 협업이... 또 하나 취소됐습니다.”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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