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자신의 모든 처음을 가진 법적 남편과 10년의 짝사랑이자 첫사랑 전 약혼자 사이에서 역하렘의 주인공이 된 유진. 그녀는 진정한 사랑을 찾겠다는 허울 좋은 계약 연애로 동시에 두 남자와의 연애를 시작하고 그런 그녀를 두고 두 남자는 환상의 데이트로 그녀를 사정 없이 유혹하는데.
View More겨우 칵테일 세 잔이었다.
알코올 도수가 그리 높지도 않은,
그저 입안을 달콤하게 적시던 핑크빛 액체 몇 모금.
그까짓 것에 이토록 정신이 혼미해질 리가 없었다.
하지만 발을 내딛는 순간,
견고한 대리석 바닥이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출렁였다.
시야가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사정없이 흔들렸다.
“하아, 읏……”
걷기가 힘들 정도로 눈앞이 아찔하게 어지러웠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호텔 연회장의 크리스탈 샹들리에 불빛이,
이제는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망막을 잔인하게 찔러댔다.
귓가에는, 가식적인 웃음소리와 수군거림이 환청처럼 울렸다.
‘어머, 쟤 좀 봐. 결혼식 전날에 저런 꼴을 당하다니.’
‘문기씨가 뒤에서 딴살림 차려놓고 애까지 가질 동안, 혼자만 고결한 척 한 거야?’
축복만이 쏟아져야할 브라이덜 샤워(Bridal Shower).
그곳은 이미 난도질하는 처형장과 다름없었다.
10년 동안 신앙처럼 맹신했던 정혼자, 김문기.
그리고 그의 혼외임신 소식.
유진은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억지로 삼키며, 비틀거리는 걸음을 옮겼다.
화려한 골드 톤과 순백의 대리석으로 장식된 호텔 화장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것처럼 쿵쾅거렸다.
유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거울을 올려다보았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게 질린 안색.
그와 선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금방이라도 피눈물이 쏟아질 듯 붉게 충혈된 눈동자.
화끈―. 뺨 위로 열기가 확 달아올랐다.
몸 안쪽 깊은 곳에서부터,
찌르르하게 피어오르는 열감에 유진의 손끝이 잘게 떨렸다.
[정신 차려, 서유진……]
유진은 신경질적으로 수전을 가장 차가운 냉수 쪽으로 돌렸다.
쏴아아―!
세차게 쏟아지는 얼음 같은 물을, 손바닥 가득 모아 정신없이 얼굴에 끼얹었다.
정성스럽게 받은 메이크업이 번지고 엉망이 됐다.
하지만 그 딴 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때 거울 너머로 육중한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다급한 발소리가 좁은 화장실 내부를 울렸다.
“유진아! 너 괜찮아?!”
유진을 따라 허겁지겁 화장실로 들어온 것은 오랜 친구, 혜선이었다.
혜선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걱정과 분노가 가득 배어 있었다.
유진은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얼굴을 대충 손등으로 거칠게 훔쳐내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붉은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렸다.
“아무렇지도 않아. 이런 일 한두 번도 아니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인간 진짜 악마 아니야? 너한테 대놓고 모욕을 주려고…. 어떻게 브라이덜 샤워(Bridal Shower)에 나타나서 이런 짓을… 이건 널 짓밟은 거야! 그런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어!”
혜선이 제 일처럼 분통을 터뜨리며, 유진의 가녀린 어깨를 붙잡았다.
그 강한 손길에 유진의 몸이 힘없이 흔들렸다.
하지만 혜선의 손을 살며시, 그러나 단호하게 밀어내며 고개를 돌렸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의 동정이나 위로를 받아들이는 순간,
정말로 바닥까지 처참하게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나 정말 괜찮아, 혜선아. 머리가 좀 복잡해서 그래. 화장실 좀 쓰고, 마음 좀 추스르고 갈게. 너는 먼저 자리로 가 있어.”
“하지만 너 혼자 두기엔 지금 너 안색이 너무…….”
“너까지 여기 오래 나와 있으면, 안에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그러니까 먼저 들어가 있어, 응?”
유진의 단호한 어조에,
혜선은 잠시 망설이다, 이내,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딸각 또각 거리는 구두 굽 소리가 멀어지고,
이윽고 화장실 문이 완전히 닫혔다.
완벽한 고립.
그제서야 유진은 가늘게 쥐고 있던 이성의 끈을 툭, 놓아버렸다.
참았던 가쁜 숨이 한꺼번에 목구멍을 찢으며 터져 나왔다.
“하아…… 하아, 윽……”
유진은 화장실 맨 안쪽,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어두운 화장실 빈 칸으로 허겁지겁 몸을 숨겼다.
그리고 문을 걸어 잠그자마자,
더는 다리에 힘이 주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값비싼 실크 드레스 자락이 더러운 타일 바닥에 걸레처럼 널브러졌지만,
그딴 걸 신경 쓸 겨늘도 없었다.
[정신 차리자. 서유진, 제발 정신 차려. 창피하게…….]
유진은 허벅지의 살점을 뜯어낼 것처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 고통을 이정표 삼아 심호흡을 하려 애썼다.
들이쉬고, 내쉬고.
하지만 폐부 깊숙이 들어차야 할 공기는,
허망하게 허공에서 흩어질 뿐이었다.
목구멍에 단단한 돌덩이가 턱 막힌 것 같았다.
손끝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마비되더니,
이어서 기분 나쁜 저림이 팔을 타고 올라왔다.
[과호흡? 미친…… 왜 이래. 진짜!]
대체 무엇이 두려운 건가.
그 새끼가 날 배신해서?
아니면 그의 화려한 세상에서 쫓겨나 차가운 길바닥으로 내팽개쳐진 것?
[아니야. 두렵지 않아. 두려워해서는 안 돼…….]
자존심이 송두리째 짓밟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에게 철저히 통제당하고,
마치 자신의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처참하게 밀려나는 이 상황 속에서,
배신감 대신 두려움을 느끼는,
제 자신이 미치도록 혐오스러웠다.
이대로 있다간 비참함과 정체 모를 열증에,
완전히 잠식당해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안 돼. 여기 있으면……]
유진은 간신히 벽을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순간 머리가 핑 돌며, 온 세상이 캄캄하게 암전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시야가 흐릿하게 번졌지만,
유진은 벽을 붙잡고 억지로 걸음을 옮겼다.
쾅―!
호텔 화장실 입구의 묵직한 도어를 밀고 나가려는 순간.
누군가의 단단하고 거대한 신체와 그대로 정면으로 부딪쳤다.
“아앗!”
단단한 바위를 들이받은 듯한 반동,
유진의 가냘픈 몸이 뒤로 크게 휘청였다.
이미 과호흡으로 무너진 무게중심에,
그대로 딱딱한 대리석 바닥에 고꾸라지려던 그 짧은 찰나.
스윽―
공기를 가르는 거친 파동과 함께,
유진의 가느다란 허리로, 강하고 단단한 손길이 훅 치고 들어왔다.
그녀의 얇은 드레스 원단 너머,
커다란 사내의 손바닥이, 그녀의 살결을 고스란히 느끼며 감싸 안았다.
순간 힘줄이 불거진 커다란 손이,
유진의 허리를 통째로 집어삼키듯 움켜쥐더니,
자신의 품으로 강하게 끌어당겼다.
팍―!
남자의 두터운 가슴팍에 유진의 얼굴이 파묻혔다.
코끝을 자극하는 향취...
은은하게 풍겨오는 묵직한 우드 향,
그리고 그 뒤를 부드럽게 감싸는 쌉싸름하고 퇴폐적인 라벤더 향.
그 지독할 정도로 관능적인 수컷의 냄새가,
유진의 마비되어 가던 뇌신경을 강하게 자극했다.
힘없이 흔들리던 유진의 시선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위로 향했다.
마침내, 그와 눈이 마주쳤다.
“서…… 유진?”
낮고 굵직하게 가라앉은 동굴 같은 목소리.
세포 하나하나까지 진동시키는 저음이었다.
가까이서 마주한 남자의 체구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언뜻 보아도 190cm는 가볍게 넘을 것 같은 거구에,
수트 너머로 드러나는,
허벅지와 셔츠를 터뜨릴 듯한 가슴 근육이 유진을 완전히 에워싸고 있었다.
밤하늘의 어둠을 통째로 베어 물어 박아 넣은 듯한 진하고 깊은 눈매.
날카롭게 날을 세운 명검처럼 강인한 턱선과 높은 콧날.
태생적인 잔인함과 오만함이 깃든 얼굴.
부드러움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마치 서슬 퍼런 무사를 연상시키는,
섹시하고 거친 남성미가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분명, 처음 보는 사내였다.
유진의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낯선 이방인.
[날… 내 이름을 알아? 어떻게… 아는 사람이지?]
유진은 본능적인 위험을 감지하고,
남자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를 뿌리쳤다.
하지만 남자는 유진을 순순히 놓아줄 생각이 추호도 없어 보였다.
오히려 허리를 감은 커다란 손아귀에 힘을 꽉 주며,
도망치려는 그녀를 더욱 밀착시켜 붙잡았다.
“아……! 읏,”
서로의 몸이 틈도 없이 맞닿자,
유진의 입술 사이로 얇은 신음이 새어 나갔다.
남자의 뜨거운 체온이 유진의 아랫배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다시 마주친 시선이 허공에서 끈적하게 얽혀들었다.
시간조차 진동을 멈춘 듯, 두 사람의 숨결이 엉켰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진을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자신을 잡아먹을 듯 내려다보는 맹수 같은 눈동자가,
묘하게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고스란히 흘러넘치는 남자의 호감 그리고 애절함에 가까운 지독한 욕망.
유진의 차갑고 잔혹한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남자란 동물은 참 쉽구나. 이렇게 찰나의 순간에도, 쉽게 사로잡히는 게 남자의 욕정인데…….]
그깟 남자의 변덕스러운 마음에 목을 매며,
자신은 왜 그 구질구질한 관계를 붙잡고 이토록 비참해져야만 했을까.
애초에 자신이 원해서 시작한 약속도, 계약도 아니었는데.
하지만 다시금 거대한 공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홀로 남겨질 세상에 대한 공포.
하지만 조금 전 나만의 파티장에서,
자신을 비웃던 그 여자가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복수하고 싶다.
나를 짓밟은 그 인간들에게 똑같이 갚아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이 지옥에서 날 꺼내줄 닻이 필요했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을 완전히 뒤틀어버릴, 신의 한 수를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자신에게 취해 눈을 번뜩이는 이 위험한 맹수를 이용하기로.
유진은 가늘게 떨리는 손을 남자의 넓고 단단한 어깨 위에 부드럽게 올렸다.
스르륵,
그녀의 손가락이 그의 목덜미를 쓸어 올리자,
남자의 거친 호흡이 훅 멎는 게 느껴졌다.
유진이 요염하게 눈꼬리를 접으며,
남자의 입술에 닿을 듯 말 듯 다가갔다.
그리고 자신의 골반을 남자의 단단한 허벅지 사이에 슬쩍 밀어 넣었다.
노골적인 자극에,
남자의 턱관절이 거칠게 맞물리며,
그녀의 허리를 움켜쥔 손가락에 핏줄이 터질 듯 돋아났다.
유진이 남자의 셔츠 깃을 움켜쥐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사내의 바지춤 사이로,
이미 단단하게 부풀어 오른 존재감이 그녀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의 눈빛이 이성을 잃은 야수처럼 변했다.
그때 그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유진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
“……후회하지 마, 서유진.”
다음 날 아침,백색 조명이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공간.의국 문을 열자마자 숨통이 턱 막혔다.유진의 책상 위, 오만하게 걸터앉아 그녀를 내려다보는 시커먼 그림자.김문기였다.단 하나의 구김도 허용하지 않은 다크 그레이 수트 차림.완벽하게 정돈된 외피와 달리,유진을 집어삼킬 듯 응시하는 그의 시퍼런 눈동자는 이미 이성을 잃은 야수의 잔혹함만남아 있었다.그리고 유진을 노려보며 낮게 읊조렸다.“어제 내 톡 보고도 답이 없어서 왔는데, 서유진. 내가 분명히 제자리로 돌아오라고 기회를 줬을 텐데.”스슥.문기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압도적인 거구가 불길한 실루엣을 그리며 유진을 향해 일직선으로 걸어왔다.공기가 얼어붙었다.쾅. 곧이어, 문기가 유진의 등 뒤로 의국 문을 거칠게 닫아걸었다.잠금장치가 돌아가는 날카로운 기계음.이제 도망칠 곳도, 숨을 곳도 없는 완벽하게 폐쇄된 밀실.문기의 서늘한 시선이 유진의 얇은 가운 자락을 지나, 그녀의 왼손 약지 손가락 위로 떨어졌다.백색 조명을 받아 잔인할 정도로 영롱하게 빛을 발하는 다이아몬드 반지.콰득. 문기의 어금니가 맞물리는 소리가 적막을 깼다.잘생긴 미간이 발작하듯 비틀렸다.“그 새끼가 끼워준 반지가 제법 마음에 드나 보지?”낮게 긁히는 목소리엔 살기가 가득했다.“내 통제를 벗어나 다른 남자 밑에서 구르는 게 그렇게 좋았냐고 물었잖아, 서유진.”텁―!문기의 거친 손길이 유진의 가녀린 손목을 낚아챘다.뼈가 바스러질 듯한 악력.유진의 몸이 사정없이 밀려나며 차가운 벽 구석으로 강압적으로 처박혔다.등 뒤로 닿는 하얀 시멘트 벽의 냉기.“이거 놓아, 오빠……!”유진이 온 힘을 쥐어짜 그를 밀쳐냈다.그리고 곧장 문으로 달려가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손잡이를 비틀었다.하지만 문기가 더 빨랐다.뒤에서 덮치듯, 문기가 유진의 머리 위로 손을 뻗어 열리던 문을 향해 자신의 체중을 실었다.쾅――!의국 문이 비명 같은 소음을 내며 다시 닫혔다.유진의 어깨를 옭아맨 문기의 무거운 숨결이
붉은 피가 번지듯.어스름한 저녁 노을이 순백의 병원 외벽을 기괴하게 물들이고 있었다.지옥 같았던 복귀 첫날의 막이 내렸다.병동 복도를 끈질기게 채우던 사람들의 잔인한 웅성거림과 뜨거운 시선들.가운 주머니 속에서 끊임없이 진동하던 김문기의 문자.그리고 기어이 심장 가장 깊은 곳을 비집고 들어온 10년의 미련까지.유진의 영혼은 갈가리 찢겨 나간 상태였다.터덜거리는 걸음.가방 끈을 쥔 손가락엔 힘이 없었다.완전히 소진된 육체를 이끌고, 병원 로비를 걸어 나오던 유진의 시야에 비현실적인 실루엣이 걸려들었다.우뚝. 발길이 멈췄다.병원 정문 앞,저녁노을의 붉은 잔영을 받으며 웅장하게 서 있는 최고급 이사장 전용 의전 차량이 보였다.그리고 그 차 문에 기대어, 완벽한 수트 차림으로 서 있는 남자, 류 요스케.피로와 혼란으로 얼룩진 유진의 가냘픈 실루엣을 발견한 그의 서늘하고 짙은 눈동자가 한순간에 다정하게 누그러졌다.요스케는 뚜벅뚜벅 다가와 사람들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자연스럽게 유진의 차가운 손을 꽉 감싸 쥐었다.미야코지마의 그 뜨거웠던 온기가 그의 커다란 손바닥을 통해 유진의 전신으로 단숨에 퍼져나갔다.“첫 출근이라 많이 힘들었지? 얼굴이 반쪽이 됐네, 내 아내.”낮고 묵직한 음성이 귓가를 간지럽혔다.요스케는 직접 차 문을 열어 유진을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뒷좌석의 넓고 아늑한 시트 위로 유진의 지친 몸을 자신의 넓은 흉벽에 기대게 안는 남자.병원 내부를 뒤흔든 지저분한 소문들을 이미 알고 있을 텐데도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그저 묵묵히 더없이 거대하고 따뜻한 체온으로 유진의 떨림을 가라앉힐 뿐이었다.그리고 그의 차량은 도심 한복판에 웅장하게 솟아오른 최고급 레지던스로 향했다.최상층, 테라스 펜트하우스.철제 문이 열리는 순간 유진의 숨이 멎었다.사방이 통유리로 재단되어 있어 검은 장막이 내린 화려한 서울의 야경과 남산의 푸르스름한 실루엣이 발밑으로 압도하듯 펼쳐지는 공간이었다.낯설고도 눈부신 인테리어에
유진은 초점을 잃은 눈으로,무릎 위에서 잘게 떨리고 있는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았다.다시 그가 그녀의 발목을 붙잡아 바닥 없는 심연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숨을 쉴 수 없었다.그리고 결정적으로 유진을 흔든 건,그가 보낸 미치도록 잔인했던 마지막 문자 한통이 아니었다.*결혼식을 파토내고.요스케와 다시 한번 그의 아뜰리에에서 뜨겁게 몸을 섞은 그 시각.문기에게서 여러 통을 문자가 왔었다.‘화 난 거 이해해. 그러니까 돌아와. 내가 다 설명할 테니까. 돌아와서 내 얘기부터 들어. 서유진. 너 이렇게 가면 너 우리 어머니한테 꼬투리만 더 잡히게 돼. 그러니까… 내가 변명 구실 뭐든 만들어서 결혼을 미룰 테니까. 넌 일단 돌아오기만 해. 그럼 내가 다 수습 할 거야.’그리고 유진이 다른 남자에게 빠져 대답이 없자, 다시 들어온 문기의 문자.‘진짜 이대로 그만 두겠다는 거 아니지? 우리 10년을 기다렸어. 이제 우리 결혼만 하면 넌 이제 정말 내 사람이라고… 너와 나 진짜 가족이라고… 내가 어떻게 버텼는데… 널 내 곁에 제대로 두려고, 내가 얼마나 참은 지 알아? 사랑해. 진심이야. 오늘 밤… 널 안고 말하고 싶었어. 지난 10년간 죽어라 참아 온 이 말을… 사랑해. 제발 돌아와. 부탁이야. 기다릴게’그때는 그저 체면 때문에 늘어놓는 비열한 변명과 거짓말인 줄만 알았다.그래서 분노에 눈이 멀어, 요스케의 손을 잡고 미야코지마로 도망쳤다.그렇게 요스케의 품에서.처음으로 온전한 육체적 해방감과 뜨거운 채움의 사랑을 맛보았다.그리고 문기를 완전히 지워냈다고 생각했다.요스케의 다정한 손길 아래서.마침내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고 확신했었다.하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와, 문기의 강압적인 손길을 마주했다.잠시 흔들리기도 했지만, 이내 차갑게 돌아섰다.그런데 어이없게도, 그의 오만한 면죄부 톡을 확인한 순간.유진은 흔들렸다.평생 단 한 번도 누구에게 무릎 꿇은 적 없던 오만한 김문기가.더 이상 고결하지도 순결하지도 않은 자신을 잡기 위해, 억지
하아, 하아, 하아.문기의 축축한 숨결을 뿌리치고.도망쳐 나온 유진은 마른침을 삼키며 허덕였다.심장이 갈비뼈를 부수고 튀어나올 것처럼 가파르게 요동쳤다.유진은 떨리는 손으로 의국 문을 거칠게 밀쳤다.벌컥――!백색 조명이 쏟아지는 의국 내부. 사방에 깔린 차가운 소독약 냄새.“어라? 뭐냐? 일주일 동안 이사장님이랑 아주 제대로 뜨거운 신혼생활 즐기다 오셨나 봐요? 아주 뼈만 남게 야위셨는데, 우리 이사장 사모님?”엉망으로 흐트러진 머리칼,붉게 상기된 얼굴로 들이닥친 유진을 향해 목소리가 날아들었다.의국 소파에 길게 누워 차트를 뒤적거리던 남자가 낄낄거리며 몸을 일으켰다.특유의 장난기 섞인 농담을 던지는 사내.유진의 고등학교 동창이자.그녀를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오랜 소꿉친구, 선호였다.그때 실실 거리던 그의 웃음이 딱 사라졌다.초점을 완전히 잃어버린 황금빛 눈동자.평소의 유진이라면.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핀잔을 주거나, 그의 등짝을 후려쳤을 타이밍이었다.그런데 그녀는 책상 모서리를 부서질 듯 움켜쥔 채, 전신을 바들바들 떨고 있고 있었다.물기조차 마른 눈가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의국 내부에 서늘한 침묵이 무겁게 가라앉았다.선호의 안색에서 장난기가 순식간에 휘발되었다.그의 눈빛이 진지하게 가라앉았다.소파에서 벌떡 일어난 그가 성큼성큼 긴 다리로 유진의 앞으로 다가왔다.“……서유진? 너 왜 그래? 왜 이렇게 떨어?”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엔 숨길 수 없는 걱정이 묻어났다.“혹시 복도에서 누가 대놓고 너한테 더러운 말이라도 뱉었어? 아무리 네 파혼이랑 초고속 결혼 스캔들이 자극적이라고 해도, 이 병원 의료진 중에 네 앞에서 대놓고 험담할 간 큰 인간은 없을 텐데. 류 이사장이 어떤 괴물인지 뻔히 알면서, 목숨 내놓은 미친놈이 아니고서야…”카톡――.바로 그 순간, 적막을 찢고 유진의 가운 주머니 속에서 날카로운 진동음이 울렸다.혹여, 응급실에서 온 긴급 호출(Emergency Call)일까 싶었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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