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연의 시선을 느끼고 유강후는 손을 멈추더니 말했다.“어젯밤에 제대로 못 봤어?”온다연은 멈칫하더니 순간 귀까지 빨개졌다.온다연은 얼굴을 붉히고 유강후의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그런 말을 그렇게 막 내뱉지 마요...”유강후는 어떻게 이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일까.유강후는 온다연이 얼굴을 붉히고 놀란 모습을 제일 좋아한다. 이럴 때만 온다연의 정서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온다연의 눈을 쳐다보며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말을 막하다니? 어젯밤 누가 보겠다고 한 거더라?”온다연은 얼굴이 뜨거워 터질 것 같았다.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난... 그런 말 한 적 없어요.”유강후의 눈빛은 평소보다 부드러워졌다. 허리를 굽혀 온다연을 안아 들고 귀 옆에 낮은 소리로 말했다.“말해도 괜찮아. 다연이가 원하는 건 다 해줄 수 있다고 했잖아.”뜨겁고 습한 기체가 귀에 닿자 온다연의 마음도 간지러운 것 같았다.머릿속에는 유강후의 어젯밤 모습이 가득했다.그땐 온다연도 제정신이 아니었다.비록 아프지만 또 다른 이상한 느낌, 그리고 부끄러움과 무력감도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온다연의 얼굴은 타오를 것 같았다. 빨리 머리를 숙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그만 말해요.”온다연의 귀가 빨개 피라도 떨어질것 같은 모습을 보고 유강후는 온다연을 안아서 차에 태웠다.이곳에서 영원시까지 세 시간 정도 시간이 걸린다.차가 얼마 동안 움직였으면 온다연도 얼마 동안 잤다.온다연은 너무 힘들었다.어젯밤 너무 늦게 잠에 들었고 오늘 아침 또 일찍이 일어나서 너무 피곤해 유강후의 다리에 누워 영원시까시 자면서 왔다.영원시에 도착했을 때 유강후가 안아서 내리려고 했을 때 온다연은 서서히 잠에서 깼다.유강후는 온다연의 정신이 말짱하지 않은 것을 보고 옆에 있는 상자에서 보온 그릇을 꺼내어 온다연에게 건네주었다.“아직 뜨거우니까 좀 마셔.”온다연은 별로 입맛이 없었다. 하지만 흐리멍덩한 상태로 몇 모금 마셨다.“도착했어요?”아까 마실 때 입에
오늘 경원시에 가서 일을 처리하라고 했는데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유강후는 온다연의 머리를 정리하고는 외투를 걸쳐주고 말했다.“좀 있다가 난 회의해야 하니까 먼저 내 사무실에 가서 놀고 있어. 안에 네가 좋아하는 간식도 가져다 놨고 졸리면 휴식실에서 자고 회의가 끝나면 밖에 나가자.”온다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아저씨 고마워요.”유강후는 또 한 번 창문 밖을 보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유민준하고 멀리 떨어져 있어.”온다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열려고 했다.유강후가 온다연의 손을 잡고 목돌이를 온다연에게 둘러주고 말했다.“내려가자.’차 문을 여니 찬 공기와 놀래 하는 시선이 느껴졌다.유민준은 온다연이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앞으로 나가서 안을 뻔했다.하지만 이효진이 옆에 있으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다연아, 여긴 왜 왔어?”온다연은 옆에 표정이 좋지 않은 이효진을 쳐다봤다.고개를 떨구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아저씨가 일하는 곳에 와보고 싶어서요.”이효진은 안 그래도 화가 났다.온다연의 연약한 모습을 보니 앞으로 가서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하지만 유강후와 유민준 두 사람이 다 있으니 억지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다연이가 오늘 손님으로 왔으니 작은아버지하고 민준 씨가 회의하는 동안 내가 데리고 둘러볼까요? 여긴 경원시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좋은 곳이 꽤 많아.”여주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유민준하고 결혼 한 지 몇 년이 되고 본가의 대권이 자신의 손에 잡고 있는 듯했다.온다연이 앞으로 가 유강후의 팔을 안으며 말했다.“괜찮아. 아저씨가 나보고 상관없는 사람하고는 또 모함을 당하면 골치 아프니까 말을 하지 말라고 했어.”이 말에 유민준과 이효진의 낯빛이 좋지 않았다.유민준의 낯빛이 더 좋지 않았는데 요즘 온다연하고 카카오톡을 하면서 점점 더 온다연이 철이 들고 귀여워 이씨 가문의 혼약을 받아들인 게 후회됐다.온다연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자신을 탓하는 줄 알고 말했다.“그날 일은 오해야.
유강후는 있는 힘껏 온다연에게 키스를 했다. 온다연은 심지어 유강후가 자신을 씹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온다연은 유강후가 이곳에서 뭐라도 하는 건 아닐까 하고 깜짝 놀랐다. 온다연은 그럴 담도 없고 이런 곳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하지만 유강후는 온다연을 벽에 기대게 하고 두 손으로 잡고 있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유강후가 다른 한 손으로 온다연의 몸을 만지려고 하니 온다연은 급해서 유강후의 입술을 물었다.유강후는 따끔함에 온다연을 안았던 팔을 풀었다.유강후가 온다연을 바라보며 손마디가 분명한 손가락으로 깨물어 껍질이 일어난 입가를 닦고 말했다.“유민준이랑 가까이 지내지 마.”방금 유민준이 온다연을 보는 눈빛을 보고 오늘 데리고 온 것을 후회했다.그 눈빛의 뜻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그건 남자가 여자에 대한 점유욕이다.유민준을 온다연의 곁에 둔 건 온다연 옆에 들러붙는 남자를 처리하기 위해서였는데 전에 유민준은 전형적인 막 나가는 부잣집 도련님이어서 온다연에 대한 마음이 진심인지도 알 수 없다.하지만 온다연이 차 사고를 당한 다음 유민준은 마치 사람이 변한 것처럼 온다연을 찾아오고 심지어 유하령과 유자성하고 대판 싸운 적도 있다.이게 바로 유자성이 온다연을 쫓아내려고 하는 원인이다.근데 유자성의 생각은 별로 관심이 없었고 그저 온다연에게 꿍꿍이를 가진 사람은 절대로 곁에 있어선 안 된다.그래서 유민준은 경원시에 남을 수 없다.온다연은 아직도 숨이 가빴다. 유강후가 왜 갑자기 이러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유강후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온다연이 말했다.“네, 그럴게요.”유강후의 옷깃을 정리해주고 말했다.“아저씨, 많은 분이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가보세요.”유강후는 온다연이 말을 듣는 모습을 보고 조금 안심했다.온다연의 턱을 올리며 말했다.“내 사무실에 가만히 있어. 어디도 가지 말고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온다연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네.”유강후는 그제야 떠났다.문을 나가니 유민준
유강후가 손에 쥐고 있는 산업을 마음대로 움직이면 이 절반의 H국 경제가 적잖은 충격을 받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래서 당연히 유강후 앞에서 유민준은 건방지지 못한다.그는 유강후의 눈을 똑바로 볼 엄두도 감히 내지 못했다. “작은아버지, 제가 가서 잘 처리하겠습니다. 앞으로 작은아버지께서 시킨 일은 제가 직접 가서 처리할게요.”유강후는 어두운 표정으로 회의실로 갔다.유민준은 그의 뒤를 따라가며 감히 말을 하지 못했다.사실 그는 이렇게 작은 일에 줄곧 냉담하던 작은 아버지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하지만 그는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다. 곧 아주 중요한 회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이 회의는 3~5년 동안 영원시 전체의 전반적인 경제 동향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회의에 참석한 많은 사람은 모두 경원시에서 온 명망 있는 인물들이다.그가 말하고 싶은 그 일은 좀 늦게 다시 얘기해도 된다고 생각했다.저쪽에서는 회의가 한창인데 온다연은 혼자 사무실에 있으니 썰렁해 보였다.그녀는 유강후가 일하는 곳에 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정말 멋지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사무실만 해도 수백 평이었는데 휴게실과 주방까지 딸려 있다.게다가 맞은편 창문으로부터 내다보면 건너편에 있는 아름다운 호수 풍경과 눈옷을 입은 수양버들이 한눈에 안겨 온다.매우 예뻤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그녀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녀는 밖에 주차된 차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대부분 경원시의 번호판 차량이었다. 그리고 입구에 경찰차와 경비원이 많이 있는 걸 보니, 분명 큰 인물이 여기 있을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그 차들을 보며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나지막한 목소리로 잠시 휴대폰 너머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는 전화를 끊고 몇 개의 메시지를 보냈다.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떴다. 그녀는 가방을 들고 방문을 열었다.근데 방문 밖에는 진짜 총을 든 경비원 두 명이 서 있었다. 온다연이 문을 나서려
한 무리 중년 남성들 사이 유강후는 유난히 눈에 띄었고 기세도 강했다.온다연은 처음으로 이런 유강후의 모습을 봤다.유강후가 위에 앉아 발언하고 있었다.온다연의 각도로 바라봤을 때 유강후의 얼굴은 조각상이 따로 없었다. 고귀한 분위기가 옆에 있는 사람하고 선명한 대비가 됐다.온다연은 그제야 왜 경원시에 그 많은 부잣집 아가씨들이 들러붙으려 하는지 알 거 같았다.이때 온다연은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정신을 놓고 있을 때 유강후가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온다연와 눈이 마주친 순간, 온다연은 처음 보는 냉철함과 거리를 느꼈다.온다연이 마치 회의실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이고 평범한 상하급 관계이거나 그저 모르는 사람인 것 같았다. 마음이 무거워 나며 온다연은 커튼을 내렸다.두 사람은 원래부터 다른 세계의 사람이고 유강후도 온다연에 대한 마음이 진심이 아니라 속상한 마음은 연애를 할 때나 갖는 바보 같은 일이다.조금 시간이 지나고 유민준이 보낸 수십 통 문자를 봤다.아무거나 하나 눌러서 봤다.잠시 후 유민준이 들어왔다.들어오자마자 온다연을 안으며 급히 말했다.“다연아, 3분밖에 못 나오니까 좀 안고 있자.”온다연은 유민준을 밀어내며 말했다.“밖에 사람 있어요.”유민준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듯 다시금 온다연의 손을 잡고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확인을 받고 싶은듯했다.“다연아, 네가 말한 말 진짜지?”온다연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유민준은 급해 났다. “나 속인 거야? 며칠 전 금방 나랑 사귀기로 하고 오늘 왜 나를 보는 체도 안 하는 거야?”온다연이 문 쪽을 쳐다보고 말했다.“오빠, 미안해요. 전 도저히 이효진을 감당하지 못하겠고 여자 두 명이나 있는 거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 연락하지 마요.”유민준의 낯빛이 급격히 변했다. 온다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이미 집에서 말을 하고 있고 요 며칠 사이에 작은아버지한테도 말할 건데 도대체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온다연은 유민준에게 잡힌 손가락 부분이 너무나도
유민준은 온다연을 안고 키스를 하려고 했다.온다연은 문을 쳐다보며 움직이지 않았다.유민준의 입술이 닿으려 할 때 온다연이 고개를 돌려 피하려고 했다. 이때 누군가 문을 세게 두드렸다.유민준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욕을 하고 소리쳤다.“누구야? 죽고 싶어 환장했어?”말이 끝나자마자 문을 더 세게 두드리면서 진우가 밖에서 말했다.“도련님, 문 좀 열어주세요.”유민준은 진우의 목소리를 듣고 욕을하며 문을 열러 갔다.문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유강후가 얼음장 같은 낯빛을 하고 문 앞에 서 있었다.유민준을 쳐다보지도 않고 온다연만 뚫어져라 쳐다봤다.온다연은 유강후를 보지 않고 바닥만 내려다봤다.유민준은 어딘가 이상한 것 같았지만 말을 할 수 없었다.“작은아버지, 다연이랑 할 말이 있는데...”“꺼져!”유강후의 말투는 아주 엄격했다.유민준은 놀랐다.“작은아버지, 저랑 다연이는...”“입 닥쳐!”유강후는 유민준을 스쳐 지나고 온다연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온다연, 오늘 나온 목적이 이거야?”온다연은 고개를 숙이고 뒤로 물러나려고 했으나 손목이 잡혀 움직일 수기 없었다.그 모습은 유강후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고 가여워 보였다.유민준은 그 모습을 보고 옛날에 괴롭힘을 당할 때도 이런 모습이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강한 후회와 가여움이 올라왔다. 유강후의 손을 빼고 온다연을 뒤에 보호했다. “다연아, 무서워하지 마. 내가 작은아버지이랑 잘 말해볼게.”온다연은 손이 떨렸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유강후를 쳐다봤다.유강후의 낯빛이 아주 좋지 않았다. 온다연은 보기만 해도 무서워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오빠, 가세요. 나중에 말해요.”유민준이 말했다.“나중에 괴롭힘 더 이상 당하게 하지 않을게.”유강후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유민준의 기억에는 유강후는 항상 고귀하고 절제력이 강하며 화를 낼 때가 거의 없었다.하지만 최근, 유강후는 두 번이나 화를 냈고 두 번 모두 온다연 때문이다.두 사람이 커플인 것처럼 눈앞에서 알
유강후는 온다연의 손을 잡고 수조 옆으로 왔다.유강후가 입을 열기도 전에 온다연이 먼저 수도꼭지를 틀었다.날은 아주 추웠다. 온열기를 켜고 있어도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온 물은 아주 차가웠다.온다연은 뼈가 시릴 정도의 차가운 물에 손을 씻었다.너무도 차가워 피부가 아릴 정도였지만 그녀는 새끼손가락에서 전해지는 고통을 묵묵히 참고 있었다.그녀의 손은 어느새 추위에 빨갛게 되어버렸고 곧 피부가 까질 것 같았다. 그제야 손을 들어 유강후 앞에 내밀며 나직하게 말했다.“이러면 될까요?”유강후는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의 새끼손가락으로 보았다.전에 부러진 적이 있었던지라 다른 손가락보다 더 붉었고 살짝 구부러진 상태였다.매번 그녀의 새끼손가락을 볼 때 그는 가슴이 아팠다. 깊은숨을 들이쉬며 속에서 들끓는 분노를 잠재웠다.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아 올린 채 문 옆에 있던 서랍 위로 앉혔다.그는 두 팔을 벽에 지탱하며 그녀를 위아래 훑어보았다.원래부터 차가운 이미지였지만 속에서 분노가 들끓고 있었으니 온다연은 그의 위압감에 감히 고개를 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두 사람은 침묵했다. 협소했던 공간엔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얼마나 지났을까, 유강후가 먼저 입을 열었다.“그놈이 너한테 뽀뽀했어?”온다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을 앙다물며 고개를 저었다.하지만 유강후는 그녀가 직접 안 했다고 말해주길 바랐다. 고개를 젓는 그녀의 모습을 본 그는 오히려 더 화만 날 뿐이다.그는 이를 빠득 갈며 한 글자씩 내뱉었다.“말해, 너한테 뽀뽀라도 했냐고.”온다연은 고개를 저으며 작게 말했다.“아니요.”나른한 그녀의 목소리에 유강후는 순간 분노가 싹 사라지는 기분이었다.하지만 그녀는 그의 말도 듣지 않고 만나지 말라던 유민준을 몰래 만나지 않았는가.그러니 반드시 그에 따른 벌을 줘야 했다.그는 고개를 들어 그녀의 턱을 잡곤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내가 말했잖아. 그놈 만나지 말라고. 그런데 왜 몰래 만난 거지?”온다연은 시선을 내리깐 채 작게
유강후가 무엇을 할지는 온다연도 몰랐다. 다만 익숙하지 않은 이런 곳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던 그녀는 더 거세게 반항하게 되었다.“여, 여기서는 안 돼요...”유강후는 화가 났다. 조금 전 그녀와 유민준가 다정하게 손을 잡은 모습은 꼭 연인 같아 보였다. 그는 이렇게 해야만 그녀가 자신의 것이라고 확인할 수 있었다.온다연을 벽에 고정한 뒤 두 손을 제압해버리곤 남은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있었다. 힘을 조금만 주어도 그녀를 탐할 수 있었다.아무런 예고도 없이 훅 들어온 그의 키스에 온다연은 아팠을 뿐 아니라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어젯밤의 통증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도 않았는데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는 또 그녀를 탐하려고 한다.고통에 목을 뒤로 젖히며 애원했다.“안 돼요, 아파요. 여기서는 싫어요. 아저씨, 여기서는 싫다고요!”유강후는 그녀를 탐하면 탐할수록 달콤한 맛에 빠져 점점 이성을 잃어버렸고 그녀의 호리호리한 허리를 꽉 끌어안으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말해, 왜 둘이 만나고 있었던 거지?”온다연은 너무도 아파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힘들게 대답했다.“그런 적 없어요. 민준 오빠가 절 보러 온 거예요. 제발 그만해주세요. 아저씨, 제발!”나른하면서도 울먹이는 목소리는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키고 말았다.그는 거의 이성을 잃은 채 자신의 것을 탐하는 짐승처럼 거친 숨소리를 내며 말했다.“그놈이 왜 너를 만나러 온 거지?”온다연은 통증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술을 꽉 깨물며 목을 뒤로 젖힌 그녀의 모습은 꼭 한 마리의 죽어버린 백조 같았다.유강후는 그녀의 목에 손을 감으며 억지로 목을 들게 하면서 입술을 깨물었다.두 곳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온다연은 정신을 잃을 것 같았고 그의 몸에 기대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이때,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안에 계세요?”진우의 목소리였다.밖에 사람이 있었다.온다연은 화들짝 놀라며 버둥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힘으로 욕망에 휩싸인 남자를 밀어
지예솔이 다른 것을 물어보기도 전에 그는 계속 말했다.“걱정하지 마. 봉현수는 아직 내가 귀국 한 걸 몰라. 내가 새로운 이름과 신분을 바꿨고 또 경원시에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지예솔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여기는 어떻게 찾은 거예요?”정연석은 그녀의 부드러운 얼굴을 보고 마음속에 깊은 미련이 남아있었다.“솔아, 넌 나한테 그렇게 신뢰가 가지 않았어? 그렇게 큰일이 생겼는데 왜 나한테 연락하지 않았어?”지예솔이 말했다.“저는 원래 모든 일이 잠잠해지면 예전의 친구들에게 연락하려고 했어요. 연석 오빠가 찾아올 줄을 몰랐어요. 예전에 이미 많은 폐를 끼쳤기 때문에...”정연석은 마음이 아팠지만 얼굴에는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폐를 끼치고 말고가 어디 있어? 너도 전에 나를 도와줬던 것이 기억이 안 나?”지예솔이 말했다.“제가 도와준 것은 모두 작은 일이에요. 게다가 매번 제가 도와준 후 현수 씨가 찾아와서 괴롭혔잖아요.”정연석이 웃으면서 말했다.“맞다. 아직 너랑 말하지 못한 게 있어. 이번에 귀국하고 다시 외국에 가지 않으려고 해. 최근 나는 운산시에 머물면서 이쪽 시장 상황을 둘러보고 적절하다면 본사를 이쪽으로 옮길 생각이야.”지현우는 갑자기 몸을 돌리며 말했다.“연석이 형, 운산시에서 회사를 차릴 생각인가요?”정연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는 수출입 무역을 하는 사람이라 2년 사이에 과일도 수출해 볼 생각이야. 내가 전에 2년 동안 조사해 봤는데 이곳은 과일 시장이 좋고 발전 전망도 커. 그런데 시장 조사를 위해 이곳에 왔을 때 우연히 너희들의 사진을 보게 될 줄을 몰랐어.”그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찾아냈다.“이건 내 친구가 저번 주 이곳에 과일나무 보러 왔다가 우연히 찍은 거야.”사진 속에는 지예솔과 지현우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물건을 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늘이 어두웠지만 지예솔의 그 얼굴은 유난히 눈에 띄어 사람들의 주의를 끌 수밖에 없었다.지예솔은 안도의 숨
지예솔은 고개를 흔들었다.“아닐 거야, 단지 개발부만 왔을 거야·현수 씨는 이런 산업을 많이 하고 있으니 직접 오지는 않았을 거야.”지현우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러면 됐어.”저녁이 될 무렵 마당 입구에 갑자기 검은색 벤츠 두 대가 와서 멈추어 섰다.이 마을에는 이런 고급 차가 거의 오지 않았다. 차가 갑자기 문 앞에 멈추는 것을 본 지현우는 깜짝 놀라서 문을 닫으려고 하자 차에서 한 사람이 내렸다.검은색 외투를 입은 그 사람은 키가 크고 잘 생겼으며 은색 테두리 안경을 쓰고 있어 매우 점잖게 보였다.지현우는 잠시 어리둥절해 있다가 곧 놀라 소리를 질렀다.“연석이 형?”알고 보니 몇 년 동안 소식이 없었던 정연석이었다.정연석은 웃으면서 말했다.“현우 키 컸네.”지현우는 달려가 정연석을 끌어안고 기뻐서 울었다.“연석이 형, 몇 년 동안 어디에 계셨어요?”정연석은 대답 대신 그의 어깨를 툭 치면서 웃었다.“곧 스무 살이 다 되어가는 애가 왜 아직도 이리 어린아이 같은 거야? 너의 누나가 또 뭐라고 하겠어.”이때 인기척 소리를 듣고 나온 지 예술은 정연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달빛이 흐릿한 어둠 속에서 그녀는 그저 평범한 검은색 패딩을 입었지만 그 얼굴은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정연석은 그녀를 보고 눈빛이 어두워졌으나 곧 정신을 차리고 웃으면서 말했다.“여러 곳을 찾아다니다가 겨우 찾았어.”지예솔은 문 앞에 서서 조용히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현우는 기뻐하며 말했다.“밖이 추워요. 곧 비도 올 거 같으니 얼른 들어와요, 연석이 형.”정연석은 트렁크를 열고 말했다.“현우야, 와서 도와줘.”또 다른 차의 문도 열리자 두 명의 비서가 내려오더니 물건을 함께 집안으로 옮겼다.잠시 후 두 차의 물건을 모두 옮겨 거실에 가지런히 쌓았다.정연석은 다른 차를 돌려보내고 혼자 남았다.지현우는 흐뭇해서 그 물건들을 지켜보았고 그들이 필요한 좋은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가볍고 부드러운
“넌 이쁘고 이런 그림도 그릴 줄도 아는데, 이렇게 좋은 여자아이가 왜 아직도 남친이 없는 거야? 아니면 이모가 남자 친구 한 명 소개 해줄게...”정신을 차린 지예솔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이모,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전 아이를 낳을 수 없어서 결혼을 못 해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되죠.”그녀가 집에 돌아온 반년 동안 중매를 하러 온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외숙모들도 그녀를 설득하면서 자신의 조카를 한번 만나보라고 했다. 그녀는 그 사람들이 더 이상 찾아오지 않게 하려고 애를 낳을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장미연은 아쉽다는 듯 말했다.“아이고! 넌 이쁘게 생기고 성격도 좋은데, 만약 이런 문제가 없다면 며느리로 들이고 싶었는데...”장미연은 채소 바구니에 담긴 채소를 꺼냈다.“여기엔 방금 뜯은 채소야, 무와 배추 뭐 이런 것들이 있어. 그리고 달걀도 금방 주운 거야.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나으니 가져다 먹어. 너의 남매는 절약하느라 채소도 별로 사지 않는 것 같더구나.”“가련한 것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 집안의 모든 가구도 중고 시장에서 사 온 거고…”“밖에 고기를 파는 노점상이 너희가 매번 고기를 반 근만 산다고 했어. 게다가 매일 사서 먹는 것도 아니라며, 이렇게 큰 성인들이 그것으로 먹자면 부족하지 않아?”...한동안 수다를 떨던 장미연은 끝내 떠났다.지예솔은 한참 넋이 나가 있다가 지현우에게 말했다.“현우야, 그 차가 정말 봉씨 그룹의 것인지 가서 한번 보고와.”지예솔은 스쿠터를 타고 떠나려는 지현우를 붙잡고 말했다.“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가.”지현우가 말했다.“누나, 그렇게 조심할 필요 없어. 반년도 지났어, 아마 우리를 찾는 걸 포기했을 수도 있어. 며칠 전 연예 뉴스를 봤는데 그 주연아란 연예인이 또 새로운 영화를 찍었어.”“그런 연기력으로 이렇게 큰 투자가 들어간 영화의 주인공 역을 맡은 걸 보면 현수 형이 투자한 것일 거야. 주연아는 자신이 현수 형과 죽마고우이며 약혼할 것이라
봉현수가 말했다.“그러지 않을 거야, 이번엔 반드시 철저히 조사할 거야.”비슷한 시각 남쪽의 읍내 마을에서 지예솔과 지현우가 정원에서 바삐 일하고 있었다.작은 정원이 딸린 농가는 반년의 시간을 거쳐 제대로 리모델링되었다.원래 낡았던 벽돌담은 다시 흰 페인트를 칠했고 진흙투성이였던 앞마당은 절반을 낡은 벽돌로 메웠으며 나머지 절반에는 채소를 조금 심어서 깔끔하고 생기가 넘쳐흘러 보였다.벽 쪽에 있는 몇 그루의 과일나무에는 겨울 대추와 감귤 그리고 감이 가득 달려서 열매들이 나뭇가지를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질 필요가 없는 기분 좋은 느낌을 주었다.집안도 다시 페인트를 칠했고 집에 쓸 수 있는 나무 가구도 다시 다듬어서 칠했다. 중고 시장에서 구매해 온 오래된 가구는 지현우가 사포로 갈아서 페인트를 새로 칠했더니 꽤 괜찮아 보였다.당연히 지씨 가문의 환상적인 럭셔리와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남매 둘 다 마음이 편안하고 안심이 되었다.작은 마을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일하러 나갔고 외부인들도 적었다. 하지만 인터넷과 택배는 도시와 별 차이가 없어서 남매는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지현우는 마을의 중고 시장에서 몇백만 원을 주고 중고 승합차를 샀다. 가끔 지예솔과 함께 승합차를 타고 읍내에 생활용품을 사러 나갔다.천천히 남매는 느린 템포의 마을 생활에 적응했다.지현우는 원래 읍내에서 일자리를 찾고 싶었지만 대학 졸업장을 아직 받지 못했고 심장병도 있는 데다 봉현수에게 실마리라도 들 키울까 봐 연말까지 집에 머물면서 다시 생각해 보려고 했다.요즘 남매는 온라인 액세서리 가게에서 서서히 주문을 받고 있다. 비록 많이 벌지는 못하고 제일 큰돈도 몇만 원 밖에 안되지만 이는 남매에게 좋은 시그널이었다.지예솔은 오늘 또 다른 주문을 받았는데 재료비를 제외하고도 몇만 원 정도를 더 벌 수 있어서 매우 기뻤다. 이른 아침부터 마당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도면을 수정했다.점심쯤 정원의 문이 열리더니 이웃인 장미연이 채소 한
잠시 후 봉현수가 나왔다.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그는 비록 야위어 보였지만 적어도 사람같이 보였다.유강후는 테이블 위에 음식을 가리키며 말했다.“먼저 밥부터 먹어.”봉현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먹고 싶지 않아. 지금 바로 예솔이 엄마의 산소에 가봐야 해.”유강후가 말했다.“내가 이미 사람을 보냈어. 조금 있으면 소식이 올 거야, 먼저 밥 먹고 있어. 네 모습 좀 봐봐. 찾았다고 해도 정연석이 그 자리에 있으면 주먹 하나로 너를 이길 수 있어.”봉현수는 대충 몇 입만 먹고 가려고 했다. 그러나 너무 오래 제대로 식사하지 않은 탓에 몇 걸음을 가지 못하고 체력이 달려서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유강후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서 전면 검사를 받았다.검사를 받고 보니 장기 음주한 탓에 위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게다가 몸에 있는 상처들을 제때 치료하지 않아 일부는 염증이 생기고 헐어서 입원 치료가 필요했다.이런 말을 들을 기분이 아니었던 봉현수는 주삿바늘을 뽑자마자 가려고 했다.유강후는 그에게 경고했다.“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예솔 씨를 찾는다고 해도 소용없어.”그는 사람을 시켜 거울을 가져오라 하고 봉현수를 거울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지금, 이 거짓꼴을 봐봐, 어딜 봐서 사람 같아 보여?”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본 봉현수는 멍해졌다.거울 속의 남자는 말라서 모양이 빠졌고 이전에 건장했던 몸매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몇 달 전 산 셔츠는 마치 빌려서 입은 옷처럼 헐렁하게 몸에 걸쳐있었다.얼굴은 여전히 그대로였으나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눈언저리가 푹푹 꺼져 들어가 있었다.머리는 너무 오래 정리하지 않은 탓에 스타일이 하나도 없었다.“내가 왜 이렇게 된 거야?”봉현수의 비서인 안시현이 말했다.“대표님, 최소 30근은 빠지셨어요. 사람이 달라 보여요.”“제가 지금 바로 가서 몸에 꼭 맞는 옷을 사 올게요.”봉현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직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넋이 나가 있다가 한참 후에야
봉현수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졌다.‘그 당시 나는 솔이를 다치지 않았지만, 온몸이 항상 상처투성이였어. 그 사람들이 한 짓인가? 그러나 솔이는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을까?’“하지만 나와 헤어졌다고 하여도 바로 정연석이랑 함께 있으면 안 되는 거야.”유강후는 실망스러운 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아직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니, 넌 정말 구제 불능이야. 예솔 씨는 너에게 괴롭힘을 당해 죽을 지경에 이르렀고 또 아픈 동생까지 데리고 있었어. 오직 정연석만이 그녀에게 잘해줬고 도움을 줄 수 있었어. 예솔 씨가 정연석의 호감을 받아들이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아니면 동생이 죽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해?” “나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일이 있어.”“그해는 너의 생일이었어. 우리가 호텔에서 너의 생일을 축하해줬는데 중간에 주연아가 왔어. 넌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예솔 씨를 난처하게 하면서 화나게 하려고 했어. 너는 그때 예솔 씨에게 기어 와서 술을 마시라면서 너무 지나치게 괴롭혔었지, 누가 너처럼 그렇게 사람을 괴롭혀?”봉현수는 중얼중얼 말했다.“솔이는 돈을 위해서 그랬어. 나에게 거액의 돈을 빌려달라고 했어...”유강후가 말했다.“그래서 빌려줬어?”봉현수는 머리를 잡고 고개를 저었다.유강후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그러면 네가 지금 이렇게 돼도 싼 거야. 그때 그렇게 싸운 상황에서 예솔 씨가 너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했던 건 너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돈이 간절히 필요했다는 거야. 네가 예솔 씨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면 분명 정연석이 돈을 빌려줬을 거야.”“네 손으로 직접 예솔 씨를 밀어낸 거지.”“현수야, 네가 지금 여기서 죽든지 말든지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아, 예솔 씨는 볼 수 없으니까.”“그 정력이면 예솔 씨를 찾으면서 그때 일을 다시 한번 조사해 봐. 오직 그때 일을 낱낱이 파헤쳐서 밝혀야 모든 오해가 풀릴 수 있고 화해할 기회도 있어. 그렇지 않으면 전혀 기회가 없어.”“아니면 찾아서 뭘 할 건데? 계속 죽을 때
봉현수는 무기력해서 말했다.“차라리 거지였으면 좋겠어. 제정신이 아니라면 마음이 지금처럼 힘들지는 않을 거니까. 나는 솔이가 지금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다른 남자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면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아.”“함께 지옥에나 가라!”자포자기하는 봉현수의 모습을 본 유강후는 퉁명스럽게 웃으면서 샤워기를 들고 그를 향해 마구 물을 뿌렸다.“얼른 죽어버려. 예솔 씨가 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곧 돌아올 거야. 네가 남겨준 재산으로 너의 별장에서 기생오라비들과 함께 매일 같이 술을 먹고 애도 낳아서 행복한 삶을 살 거야.”봉현수는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중얼중얼 말했다.“네 말이 맞아. 이미 반년이란 시간이 흘렀어. 아마 솔이 옆에는 다른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유강후는 투지가 전혀 없는 봉현수의 모습을 보고 화가 나서 그를 또다시 한번 발로 찼다.“일어나!”“예솔 씨가 진짜 결혼했다면 넌 포기 할 수 있어? 만약 포기할 수 있다면 이 죽을상은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그러는 거야?”“예솔 씨 옆에 다른 사람이 생겼다면 너도 가서 다른 사람을 만나. 서로 각자 자신의 갈 길을 가면서 서로에게 미련 버려.”“안, 안돼!”봉현수는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솔이가 결혼하고 애를 낳았다고 하여도, 나는 솔이를 내 곁으로 돌아오게 할 거야.”유강후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이미 반년도 지났어. 만약 예솔 씨가 결혼했다면 너는 가정 파괴범이라도 될 생각인 거야?”봉현수의 몸은 굳어져 버렸고 눈빛은 마치 넋 나간 듯 어두웠다.“아닐 거야. 솔이는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어.”유강후는 일부러 그를 자극했다.“너한테 그렇게 학대받았는데 아직도 너를 사랑한다고? 사랑한다면 애초에 도망을 왜 갔겠어?”유강후의 말에 어리둥절해진 봉현수는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아니야, 솔이는 나를 속이지 않을 거야. 절대 속이지 않겠다고 나랑 약속했어.”유강후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현관 앞에 서 있던 몇몇 사람들이 유강후를 보자마자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 반색하며 달려들었다.“유 대표님, 드디어 오셨네요. 봉 대표님이랑 봉씨 가문이 지금 엉망진창이에요. 대표님은 안에서 안 나오고 우리한텐 들어오지도 말라고 하니 정말 죽을 지경입니다.”유강후는 굳게 닫힌 대문을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문 열어.”그러자 집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열쇠가 저한테 없어요. 대표님이 직접 챙겨가셨어요. 누구든 들어오려고 하면 때려죽이겠다고 하셨어요.”유강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붙였다.“이딴 식으로 손 놓고 있다가 진짜로 저 안에서 죽기라도 하면 책임질 거야? 당장 열쇠 따는 사람 불러와.”“네. 지금 바로 부르겠습니다!”곧이어 자물쇠를 따는 기술자가 도착했고 특수 잠금장치가 되어 있던 그 문을 여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잠금장치가 풀리는 순간 유강후는 힘껏 문을 발로 차서 열어젖혔다.문을 여는 동시에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가 밀려왔다.술 냄새, 곰팡냄새, 그리고 피비린내까지... 도저히 숨쉬기 힘들 지경이었다.유강후는 얼굴이 굳은 채 거실을 훑어보았다.거실 안은 술병과 깨진 도자기 조각으로 아수라장이었고 소파 옆 바닥엔 사람이 하나 쓰러져 있었다.죽은 건지 산 건지도 알 수 없었다.유강후는 바닥의 술병을 발로 밀어내며 다가갔다. 그리고 그 사람을 발끝으로 툭 찼다.“죽었어?”바닥에 누운 사람이 조금 움찔하더니 갑작스러운 빛에 눈이 부신 듯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씨X... 누가 들어오래? 다 꺼져!”그가 얼마나 엉망이 되었는지 확인한 유강후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발로 툭 찼다.“죽긴 뭐가 죽어. 안 죽었으면 일어나. 이 자식아.”비로소 얼굴을 들어 유강후를 확인한 봉현수는 욕을 내뱉으며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일어날 기운도 없어요.”유강후는 싸늘하게 받아쳤다.“정말 죽고 싶으면 한강 다리 밑으로 데려다줄까? 여기서 죽으면 집만 더럽혀.”몇 달 만에
유강후는 온다연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안타깝게 말했다.“이런 여자랑 그렇게 길게 말할 필요 없어. 온준휘 엄마에 대한 걸 알고 싶으면 그냥 바로 로운한테 넘기면 돼.”온다연은 고개를 저었다.“솔직히 사람 마음이 이렇게까지 썩을 줄은 몰랐어요. 우리 엄마 돌아가시기 전까진 겉으로는 저한테 잘해주는 척했거든요. 근데... 설마 내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었고 내가 온준용이 동남아에서 데려온 아이란 것도 알고 있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녀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듯 고개를 떨궜고 유강후에게 안기며 얼굴을 그의 코트에 묻으면서 깊은 한숨이 내쉬었다.유강후는 그녀를 부드럽게 감싸안고 외투를 열어 온다연을 안쪽으로 감쌌다. 그러고는 옆에 서 있던 비서에게 말했다.“다희랑 단오 데리고 들어가서 아버지 뵙게 해. 나는 좀 이따 들어갈게.” “네, 대표님.”아이들이 병실로 들어간 뒤 유강후는 온다연을 품에 안은 채 차 안으로 데려갔다.온다연이 겪었던 모든 고통은 이제 유강후의 가슴속 깊이 새겨진 상처이자 죄책감이 되었다.그는 수도 없이 바랐다.‘시간이 되돌려질 수 있다면 어린 시절의 다연 곁으로 돌아가 직접 품어주고 상처 입은 다연을 안아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지만 시간은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았고 그는 앞으로의 시간으로 그녀를 보살펴주고 보상해 줄 수밖에 없었다.병원을 나서자마자 유강후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봉현수의 비서였다. “유 대표님, 이쪽으로 와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 대표님 상태가 심각합니다. 저희로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돼서요.”그제야 유강후는 자신이 몇 달째 봉현수를 보지 못했다는 걸 떠올렸다.“무슨 일인데요?”상대방 목소리는 다급하기 짝이 없었다.“대표님께서 자택에 자신을 가둔 지 벌써 2주째예요. 몸에 상처도 심각한데 치료도 거부하고 약도 안 드세요. 지금은 아예 일주일째 방문도 안 열어줘요. 계속 두드려도 아무 반응이 없고요...”“주소 보내.” “그... 영운산에 있는 별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