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결혼 3년 차. 남편 준석의 오해로 외도 누명을 쓰고 이혼 위기에 몰린 여진. 결백을 증명하려 애쓰지만, 이 모든 것은 그녀를 되찾으려는 전 약혼자의 치밀한 덫이었다. 평온했던 부부 관계는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데....
더 보기1화.
차준석은 아내를 미치도록 사랑한 남편이었다. “준석 씨, 왔어요?” “….” 그랬던 남편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식사는요?” “….” 현관 앞에 서 있던 여진은 저를 보지도 않고 스치듯 지나가는 남편의 등에 대고 불안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준석 씨. 나랑… 잠깐 얘기 좀 해요.” “할 얘기 없어.” “오 분이면 돼요.” “피곤한 거 안 보이나?” 싸늘한 음성만 남긴 채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2층으로 올라갔다. 곧이어 서재 문이 닫히는 둔탁한 소리가 1층까지 내려앉았다. 여진은 서늘함을 느끼며 양팔을 교차한 채 그가 사라진 계단 쪽을 한참이나 올려다봤다. 그가 변한 것은 정확히 2주 전부터였다. 해외 출장을 갔다 온 날부터 각방을 쓰길래, 일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처음엔 그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살인적인 일정으로 피곤해서겠지 생각했다. 평소 준석은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서너 번은 여진과 잠자리를 가졌다. 한데 해외 출장 이후 무슨 일인지 그는 그녀를 본체만체했고, 어느새 두 사람은 부부 관계를 맺지 않은 지 한 달이 넘었다.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여진은 이 상황이 무척이나 낯설었고, 차곡차곡 쌓여가는 초조함과 조급함에 하루하루가 날이 선 듯 긴장 상태였다. 준석은 장기간 해외 출장을 떠나면 집에 돌아오기가 무섭게 저를 지칠 때까지 안아 대던 남자가 아니었나. 어쩔 땐 너무 버거워 눈물을 보이기 일쑤였다. ‘제, 제발… 그만요, 준석 씨….’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해야 그는 한발 물러나 하던 것을 멈췄다. 그랬던 남편이었는데…. 항상 저를 먼저 갈구하던 손길이 뚝 끊기니, 여진은 점점 불안해졌다. 그동안 그녀는 너무도 순진하게, 자신이 남편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아서 그러나 생각했다. 여진은 계단 난간을 쥐었다 놓기를 몇 번 반복하다 결국 침실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옷장 깊숙한 곳에서 평소 잘 입지 않던, 속이 은근하게 비치는 얇은 란제리를 꺼내 들었다. 거울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이 낯설어 여진은 한참을 망설였다. 그럼에도 가운 하나만 걸친 채 서재 앞으로 향했다. 똑똑. 들어오라는 말이 없었으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우리는 부부니까. 이 야심한 밤에 이 집에 있는 사람은 그와 나뿐이니까. 그 누가 부부 사이를 방해하겠는가. 고급스러운 진갈색의 원목으로 꾸며진 서재는 과묵한 그와 아주 잘 어울렸다. 서재로 들어선 저를 보며 남편은 뜻밖인 듯 잠시 한쪽 눈가를 올리는가 싶더니, 보고 있던 책을 내려놓았다. 여진은 그에게 다가가지 않고 곧장 서재 한편에 있는 침대로 향했다. 가운을 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그녀가 나름 요염한 자태로 살포시 침대 위에 앉았다. 정갈하게 정돈된 화이트 침구가 그녀의 움직임에 잘게 구겨져 갔다. “지금 뭐 하는 거지? 나가.” “…!”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여긴 당신이 들어올 곳이 아니야.” 딱딱한 나무토막 같은 음성이었다. 여진은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는 남편을 마주하자, 순간 억눌러왔던 서운함을 터트렸다. “여긴 우리 집이고, 당신은 내 남편이에요. 그런데 왜 내가 허락을 받아야 하죠?” “….” “2주예요. 딱 2주 전부터 당신은 나랑 눈도 안 마주쳐요. 내가 뭘 잘못했는지만 말해줘요.” 흰 눈처럼 새하얗고 순진한 여자의 얼굴이 곧 처연하게 변해갔다. 그 모습에 준석의 얼굴이 감정을 억누르려는 듯 잘게 일그러졌다. 하나 언제 그랬냐는 듯 곧 평정을 찾은 그는 다시 냉랭한 표정으로 여진을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훑었다. “당신이 뭘 잘못했는지,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 “그리고 그 옷. 대체 그런 옷은 어디서 났지?” ‘젠장, 어디서 저런 옷 같지도 않은 것을 입고 와선…!’ 결혼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야한 란제리였다. 평소 다소곳한 여진과는 지극히 상반된 란제리 차림에 준석은 욕정보다는 부아가 끓어올랐다. ‘딴 새X랑 놀아나더니, 속옷 취향도 바뀌었군.’ 속이 뒤틀리는 듯한 참을 수 없는 지저분한 감정에 준석은 앉은 자리에서 서랍을 거칠게 열었다. 이윽고 그 안에서 며칠 전부터 준비해 둔 서류를 끄집어냈다. 서류를 쥔 그의 손마디 마디가 분노를 머금고 튀어나올 듯 도드라졌다. 윤여진은 그 어떤 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차준석이 사랑해 마지않던 순진한 아내였다. 그렇기에 그녀의 외도는 그에게 더 큰 충격이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로 설명될 수 없는 엄청난 분노와 허탈감, 설마 아닐 거야 라는 지극히 일차원적인 현실 부정에 이르기까지 했다. 천하의 차준석이 말이다. 묻어갈까…. 생각을 안 해 본 것도 아니었다. 차준석은 윤여진을 미치도록 사랑했으니까. 자신이 지나친 망상에 사로잡힌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남녀가 호텔 객실에 들어간다고 해서 다들, 그 짓거리를 하는 건 아니니까. 순진하긴, 차준석. 사랑에 눈이 멀더니 아내의 외도마저 부정하는 스스로를 보며 준석은 자신이 천하의 머저리 중의 머저리처럼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제 사랑의 깊이만큼 거대한 분노가 그를 완전히 집어삼켰다.159화.미국에 있었던 그가 제 작품을 소장하기 위해 보육원 원장과 접촉했다는 말이었다.그렇다는 건 차준석이 저에게 관심을 가진 시기가 그보다 훨씬 전이라는 뜻.HK 그룹 후계자 차준석이 쓰러져 가는 기업인 금성 산업의 딸인 저에게 청혼했을 때, 의아하긴 했었다.하나 그때 여진은 막 대학을 졸업해 세상 물정을 알기엔 어린 나이였다.자신이 짝사랑했던 차준석과 결혼한다는 사실에 도취 돼 주변에서 갖는 모든 의문은 그녀의 관심 밖이었다.그리고 이어진 금성 산업의 회생과 만인이 질투할 만큼 행복했던 결혼 생활.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엄청난 행운을 운명이라 믿으며 의심하지 않았던 결혼의 과정.그 순진했던 결과물의 말로가 종국엔 이혼이었다.“그래서 결정은 내렸나?”“무슨 결정이요?”“우리 재결합 말이야.”“아, 미안해요. 좀 놀라서… 잠시 잊었어요.”“당신이 고등학교 시절, 우리 파티에서 만난 적이 있었지. 기억나?”“…네, 기억나요.”탄산수를 마시며 눈이 마주쳤던 그때가 현재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그때부터였어. 내가 당신을 마음에 담은 게. 당신이 그때 고등학생이라 다가가지 않았을 뿐이야.”“모, 몰랐어요.”“당연하지. 남자의 눈빛을 읽기엔 너무도 어린 햇병아리 여자 아이였으니까.”준석은 더는 말을 아끼며 제 찻잔에 연녹색의 차를 따랐다.그러곤 단숨에 꿀꺽 마셔 넘겼다.마시는 속도와 다르게 조용히 빈 찻잔을 내려놓은 그가 여진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차가 식기 전에 대답해 줬으면 해.”그의 시선이 연녹색 차가 채워진 여진의 찻잔에 닿았다.여진은 준석이 재결합에 대한 대답을 재촉하고 있음을 알았다.너무 뜨거운 물에 우려진 차는 떫기 마련이었다. 그에 반해 적당히 따뜻한 물에서 우려 난 차는 단맛이 났다.여진은 제가 만든 찻잔에 담긴 연녹색 차를 가만히 응시했다.떫은맛일까, 단맛일까….여진은 맑은 찻물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이혼 후, 절망감에 몸부림쳤던 지난 시간을 떠올렸다.홀로 별아를 출산하고 아등바등 키웠
158화.엄마가 제 손을 잡아주다니…!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엄마의 손이 닿았다. 꿈속에선 노가 들려있던 손이 아니었나.“여진아, 네가 저지른 실수 다 덮어주고 이혼한 와이프 집 챙기는 사람, 이 세상에 눈을 씻고 봐도 없어. 우리 차 서방이 유일하지. 그러니 차 서방한테 잘하렴. 엄마가 바라는 건 그것밖에 없어.”그래야 우리 집안이 살고, 우리 태성이가 살아.“아…, 네.”준석이 더는 이정희의 말을 듣고 있기가 거북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장모님, 피곤하실 텐데 저희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그래, 그래. 어서 가게 차 서방. 바쁜 사람 내가 너무 오래 붙잡았어. 나도 좀 있다가 재활 치료받아야 해.”이정희는 자신이 보일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여진은 오랜만엔 본 엄마와 이렇게 빨리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아쉬웠으나, 재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말에 다음을 기약했다.“엄마, 또 올게요.”“서울에서 여기가 가까운 것도 아닌데, 됐어.”이정희 말에 준석이 다시금 눈을 가늘게 떴다.“아, 그, 그래. 또 오렴. 난 너 힘들까 봐 그러지.”“오기 전에 연락드리고 올게요.”“그래, 차 서방 기다리는데, 어서 가렴.”“네.”여진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준석이 망설임 없이 먼저 몸을 돌렸다.그의 넓은 등에 시선을 두며 여진이 그 뒤를 따랐다.오늘따라 그의 등이 참 든든해 보였다.***이천을 빠져나온 두 사람은 점심을 먹기 위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들렀다.레스토랑 지배인이 준석이 예약해 놓은 프라이빗 룸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지배인이 나가자 준석이 말했다.“코스 요리로 주문해 놨는데 괜찮지?”“네, 상관없어요.”“아침도 안 먹어서 빈속일 텐데 점심은 좀 먹었으면 좋겠는데.”“그럴게요. 나도 배고팠던 참이에요.”여진은 오늘 엄마를 만날 생각에 잔뜩 긴장해 아침도 거른 상태였다.면회를 끝내고 이천을 벗어나니, 그제야 속이 허함을 느꼈다.준석은 여진의 대답에 만족해하며 물 잔을 들어 입을 축였
157화.철컥.VIP 병실 문이 열렸다.여진은 VIP 병실 내부를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눈가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최고급 아파트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병실은 창문 안으로 따사로운 햇살이 은은하게 병실을 비추고 있었다.기존에 엄마가 있던 요양병원과는 차원이 다른 안락함과 고급스러움이 물씬 묻어나는 병실이었다.이런 곳에서 엄마가 편히 지내고 있다는 사실에 여진은 안도감과 함께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거실을 지나자 오른편에 오픈된 환자용 침실이 보였다.여진은 아직 엄마 얼굴이 보이지 않는 위치에 서서 깊게 심호흡했다.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준석은 안쓰러움과 함께 그동안 착하고 여린 딸을 이용하고 외면한 장모에 대해 괘씸한 마음이 올라왔다.모든 지원을 끊고 나 몰라라 하고 싶은 상대지만, 여진의 엄마가 아닌가.마음 약한 이 여자는 이혼 후 제 가족이 겪은 일들에 바보처럼 죄책감을 껴안고 살았다.내 여자가 그런 쓸데없는 감정에 놀아나길 준석은 바라지 않았다.처가의 꼴사나운 진상 짓은 앞으로 자신이 감당하면 될 일이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장모님이 기다리시겠군. 어서 가봐.”준석이 여진의 등에 손을 대며 말했다.여진은 침을 한번 꼴깍 삼키고는 엄마에게 발걸음을 옮겼다.이정희는 천장을 바라본 채 누워있었다.병실을 들어선 발걸음 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외로 틀었다.여진이 저를 향해 걸어오는 게 보였다.“여진아.”“…!”엄마의 불음에 여진은 순간 놀라 발걸음을 멈췄다.일 년이 넘도록 듣지 못한 엄마의 목소리였다.“어, 엄마….”여진은 간신히 참고 있던 눈물을 쏟아내며 엄마 앞에 다다랐다.끝없이 흐르는 눈물로 그녀의 시야가 희뿌옇게 흐려져 갔다.“울기는, 왜 우니. 어린애처럼. 누가 죽은 것도 아닌데.”이정희는 여진을 보자마자 질질 짜는 딸을 못마땅해하며 타박했다.“아, 죄송해요. 엄마.”여진은 얼른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냈다.그때 여진의 뒤에서 눈을 부라리고 서 있는 준석이 이정희의
156화.여진이 이천을 떠난 뒤, 희주를 통해 차준석이 윤여진의 전남편이라는 사실과 별아의 친아빠라는 사실을 확인받았었다.하나 두 사람의 이혼 사유에 대해서는 굳이 묻지 않았다. 희주 또한 그 부분은 말해주지도 않았다.자신이 알고 지냈던 여진이 재벌 집 사모님이었다는 사실에 놀라긴 했으나, 여진이 좀처럼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대표님, 제가 VIP 병실까지 함께 하겠습니다.”병원장이 준석과 발맞춰 걸으며 말했다.“장모님 컨디션은 어떠신가요?”준석이 잔뜩 긴장한 채 걷고 있는 여진을 신경 쓰며 병원장에게 물었다.“나날이 좋아지고 계십니다. 회진 때 뵙고 왔는데 모든 수치가 정상입니다.”“다행이네요.”여진은 두 사람의 대화를 숨죽인 채로 듣고 있었다.나날이 좋아지고 있다는 병원장의 말에 속으로 무척 기뻐하면서도 엄마가… 날, 반길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그때 준석이 여진의 어깨를 팔로 감싸며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걱정하지 마. 장모님이 당신 보고 반기실 테니까.”여진은 놀란 눈으로 준석을 올려다보았다.마치 제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조금 빨리 걸을까? 당신을 쳐다보는 눈이 상당히 거슬리는군.”여진은 준석의 말에 발걸음을 빨리했다.이준은 병원 관계자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여진을 구경하듯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차준석이라는 남자는 사방에 눈이 달렸는지 복잡한 로비에서도 저를 알아보고는 사납게 눈을 번득이며 지나갔다.“…!”그의 눈빛에 이준은 흠칫 놀라며 마른침을 꿀꺽 삼켜야 했다.***이정희의 입원실 앞에는 성훈과 몇 명의 가드가 준석과 여진을 기다리고 있었다.성훈은 준석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일부러 문 앞에 나와 대기했다.그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전화를 건 사람은 호영이였다.병원 생활을 하며 호영과 가까워진 성훈은 언젠가 핸드폰 번호를 주고받았었다.성훈은 지난번 설렁탕집에서 만남 이외에도 종종 호영을 챙겼다.어젯밤에도 호영을 만났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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