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MELDEN자고 일어났더니 나를 구박하던 시댁 식구들과 무심했던 남편이 단체로 내 발밑에 무릎을 꿇었다. 나만 모르는 '나의 전생'을 둘러싼 대환장 착각계 로맨스 판타지.
Mehr anzeigen내 이름은 엘리아나. 마력 수치 '0'이라는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태어난 백작가의 골칫덩이이자, 피도 눈물도 없다는 북부 대공 카이엔과 정략결혼으로 팔려 온 허울뿐인 대공비다.
결혼 후 내 삶은 예상대로 비참했다. 남편은 나를 투명 인간 취급했고, 시어머니는 숨을 쉴 때마다 구박을 쏟아냈으며, 나를 차버리고 도망갔던 전 약혼자 이안은 가끔 찾아와 내 속을 뒤집어놓았다.
그래서 오늘 아침도 당연히 그런 지옥 같은 하루의 연장선일 줄 알았다.
눈을 뜨기 전까지는 말이다.
"……엘리아나."
짐승의 앓는 소리 같은 낮고 쉰 목소리.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다 말고 흠칫 놀라 굳어버렸다. 제국 최고의 무력이라 불리는 북부 대공 카이엔이, 내 침대맡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의 커다란 두 손이 내 작은 손을 부서질세라 조심스럽게 감싸 쥐고 있었다. 심지어 그 무자비한 남자의 뺨을 타고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 손등을 적셨다.
"살아… 있군. 정말 살아 있어……."
"……대공 전하?"
"전생에 널 죽인 나를 평생 원망해도 좋다. 아니, 원망해 다오. 평생 네 발닦개로 살며 속죄하겠다. 제발, 내 곁에서 숨만 쉬어 다오……!"
……뭐지? 이 남자가 드디어 미쳤구나.
발닦개? 전생? 속죄?
머리가 핑핑 돌았다. 북부의 혹한보다 차갑던 남자가 내 손에 얼굴을 묻고 오열하고 있다. 이건 백발백중 나를 방심하게 만든 뒤 쥐도 새도 모르게 독살하려는 고도의 심리전이 분명했다.
"저기, 대공 전하. 일단 진정 좀……."
쾅-!
내가 카이엔의 손을 뿌리치기도 전에 육중한 방문이 부서져라 열렸다. 평소라면 "이 게으른 것! 아직도 안 일어나고 뭣 하는 게냐!"라며 호통을 쳤을 시어머니였다.
"어머니……?"
그런데 시어머니의 상태도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문지방을 넘자마자 바닥에 납작 엎드리더니, 비싼 실크 드레스를 질질 끌며 내 침대를 향해 기어 오기 시작했다.
"며느님! 아니, 위대하신 대공비 마마!"
"……예?"
"부디 우리 가문을 멸문시키지만 말아주소서! 제가 미쳤었습니다! 대공가의 모든 권력과 금고 열쇠를 지금 당장 며느님께 바치겠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시어머니가 바닥에 머리를 쿵쿵 찧으며 울부짖었다.
나는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금고 열쇠? 권력?
아, 알겠다. 이번엔 공금 횡령죄를 나한테 뒤집어씌우려고 함정을 파놓은 거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저 오만한 시어머니가 내 발밑을 기어 다닐 리가 없지 않은가.
설상가상으로 열린 방문 너머 복도 끝에서 누군가 처절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엘리아나! 제발 한 번만 나를 용서해 줘!"
딴 여자랑 바람이 나서 파혼을 선언했던 전 약혼자, 이안이었다. 그는 경비병들에게 양팔을 붙들려 질질 끌려가면서도 나를 향해 간절하게 손을 뻗었다.
"네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걸 그때는 몰랐어! 내가 쓰레기였어! 제발 한 번만 기회를……!"
나는 멍하니 이 아수라장을 번갈아 보았다.
침대 밑에서 내 손에 입을 맞추며 오열하는 남편.
바닥을 기어 다니며 가문을 살려달라 애원하는 시어머니.
복도에서 질질 끌려가며 회개하는 전 약혼자.
나는 조용히, 남편에게 잡히지 않은 반대쪽 손으로 허벅지를 꼬집었다.
'아프다.'
꿈이 아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뿐이다.
이 쓰레기들이 단체로 나를 미치게 만들어서 가문에서 쫓아내려고 거대한 연극을 꾸미고 있는 것이다!
'웃기지 마. 내가 이딴 얄팍한 수작에 속아서 순순히 위자료도 없이 쫓겨날 줄 알고?'
나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무릎 꿇은 남편과 기어 다니는 시어머니를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비스듬히 말아 올렸다. 영지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한, 뼈 깎는 철벽 방어태세의 시작이었다.
"좋아요. 어디 한번, 끝까지 해보시죠."
나의 비장한 선전포고에 카이엔의 눈물이 더 굵어졌고 시어머니는 아예 거품을 물고 기절해 버렸지만, 나는 그들의 지독한 열연에 박수를 보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나만 빼고 모두가 미쳐버린, 나의 기묘하고 피곤한 아침이 이렇게 막을 올리고 있었다.
드래곤 실크 이불의 깃털 같은 감촉을 애써 무시하며 눈을 뜬 아침.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이 수상쩍은 옥탑방에서 무사히 살아남고, 월세 동전 1개를 당당히 내 손으로 지불하기 위해서는 당장 경제 활동을 시작해야 했다. 남편이나 황실이 짜놓은 판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내 밥벌이는 내가 해야 하는 법이다."좋아, 구직 활동이다."낡은 가방을 메고 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옆집 문이 용수철처럼 튀어 열렸다. 오늘도 여전히 때 묻은 앞치마를 두른 이웃집 총각(을 빙자한 북부 대공) 카이엔이 도끼를 들고 서 있었다."에, 엘리……! 아, 아니, 이웃집 고구마 총각이오. 아침부터 어디를 가시는 길이오? 날이 추우니 내가 업어…… 아니, 마차로 모셔다드리겠소."그의 등 뒤로 대공가 정예 기사들이 골목길 담벼락 뒤에 밀착해 스파이처럼 우리를 감시하는 게 보였다. 계단 아래에서는 경비원 복장을 한 대마법사 르웰린이 마법 빗자루로 계단을 광이 나도록 쓸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제 갈 길 가는 거니까 신경 끄세요. 그리고 카이엔 씨, 그 도끼 전설의 명검 같은데 그걸로 장작 패지 마세요. 무기 밀매 혐의로 잡혀가기 딱 좋으니까."나는 그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단칼에 잘라내고 수도의 가장 번화한 상업 지구로 향했다.내가 찾은 곳은 시장 구석에 위치한 자그마한 허브 약재상이었다. 가게 앞에는 대충 갈겨쓴 구인 광고판이 붙어 있었다.'완벽해. 이 정도로 작고 허름한 개인 상점이라면 대기업의 마수가 뻗치지 못했을 거야.'나는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다.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마른 체구의 약재상 주인이 나를 맞이했다. 평범한 중년 남성의 모습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저기, 구인 광고 보고 왔는데요…….""예? 아, 저희 가게는 시급이…… 헉?!"나를 양두(兩頭) 보듯 평범하게 바라보던 약재상 주인의 눈이 순간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의 시선이 내 얼굴을 넘어, 가게 유리창 너머를 향했다.
황제의 통곡을 뒤로하고 수도의 복잡한 뒷골목으로 스며든 나는, 가장 먼저 허름한 복덕방(부동산 중개소)을 찾아 들어갔다. 제국 전체가 나를 상대로 사기를 치려고 혈안이 되어 있으니, 대기업(황실, 대공가)의 손이 미치지 않는 가장 영세하고 어두운 음지의 매물을 찾아야 했다."저기, 보증금 없고 월세가 가장 저렴한 단칸방 하나 있습니까? 창문은 볕 안 들어도 상관없고, 가구나 마법 도구 같은 '옵션'은 일절 없어야 합니다."내 요구에 낡은 책상 앞에 앉아 있던 허름한 차림의 중개업자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 중개업자, 손에 쥔 깃펜이 무려 제국 최고급 마탑제 만년필이었고, 셔츠 소매 사이로 살짝 보이는 시계는 황실 납품용 한정판이었다. 창밖을 슬쩍 보니, 카이엔과 르웰린이 기사들을 대동하고 복덕방 건물을 포위한 채 중개업자의 등 뒤로 살벌한 눈빛을 쏘아보내고 있었다.중개업자는 식은땀을 폭포수처럼 흘리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를 꺼냈다."아, 예……! 마침 딱 마마…… 아니, 고객님께 어울리는 아주 누추하고 끔찍한 방이 하나 있습니다! 월세는 단돈 동전 1개! 보증금은 제 목숨…… 아니, 없습니다!"'월세 동전 1개?'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21세기 부동산 시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허위·미끼 매물' 사기 수법이었다. 일단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으로 손님을 방에 입주하게 만든 뒤, 다음 달부터 '건물 관리비', '계단 청소비', '보안 유지비' 같은 명목으로 매달 수백 골드씩 강제로 뜯어내 나를 빚쟁이로 만들려는 치밀한 계략이 분명했다."좋습니다. 일단 방이나 보죠. 관리비 조항에 특약 사항 넣을 거니까 그리 아세요."내가 서늘하게 말하자 중개업자는 거의 울기 직전인 얼굴로 나를 수도 변두리의 어느 낡은 아파트 옥탑방으로 안내했다.겉보기에는 비가 새고 쥐가 파먹은 듯한 허름한 목조 건물이었다. '여기라면 안전하겠지' 생각하며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나는 다시 한번 이 대륙급 사기단의 집요함에
다음 날 아침, 여관을 나선 마차는 드디어 제국의 심장, 수도 론디움의 성문에 도착했다.수도 성문 앞은 평소와 달리 기괴할 정도로 고요했다. 일반 백성들의 통행은 전면 통제되어 있었고, 성문에서부터 황궁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대로에는 붉은단풍나무 잎이 비단처럼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길 양옆으로 제국 최고의 엘리트라 불리는 황실 근위대 수천 명이 부동자세로 늘어서 있었다.'와…… 전 세계적인 랜드마크를 통째로 대관했네.'나는 마차 창문 너머로 펼쳐진 메가톤급 스케일에 혀를 내둘렀다. 나 하나를 속여서 완벽하게 파멸시키기 위해 수도 성문 전체를 세트장으로 활용하고, 수천 명의 황실 군대를 엑스트라로 고용하다니. 이 거대한 사기극의 배후에 있는 기획자의 자금력과 정치력은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끼이이익-마차가 성문 한가운데 멈춰 섰다. 마부석에서 내린 카이엔이 익숙하게 문을 열고 손을 내밀었다."엘리, 드디어 수도에 도착했소. 저 앞에…… 그대를 기다리는 자들이 있군."카이엔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본 나는 하마터면 실소를 터뜨릴 뻔했다.화려한 황금 마차 앞, 제국의 태양이라 불리는 황제 폐하가 황금 왕관을 내려놓은 채 맨땅에 꿇어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황제의 주변에는 제국의 고위 귀족 수백 명이 줄줄이 대가리를 박고 오열하고 있었다."성녀 마마-!!"황제가 내 얼굴을 보지 마자 붉은 실크 카펫 위로 기어 오며 부르짖었다."전생에 마마의 고결한 신성력을 거짓이라 매도하고, 제국의 안위를 위해 마마를 악녀로 몰아 단두대에 세웠던 이 어리석은 황제를 처단해 주시옵소서! 마마가 가문을 버리고 수도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3일 밤낮을 피눈물로 지새웠나이다!"황제가 내 구두 앞바닥에 머리를 쿵쿵 찧었다. 황금 왕관이 바닥을 굴렀다.나는 팔짱을 낀 채 그 눈물겨운 연기력을 냉정하게 감상했다.'그럼 그렇지. 제국 영토 반토막을 그냥 줄 리가 없지.'퍼즐이 완벽하게 맞춰졌다. 저들은 지금 제국의 막대한 국가 부채나
날이 저물 무렵, 마차가 멈춰 선 곳은 황량한 국도변에 위치한 허름한 여관 앞이었다. 간판은 반쯤 부서져 덜렁거렸고, 외벽의 칠은 다 벗겨진, 그야말로 지나가던 잡상인이나 묵을 법한 초라한 곳이었다.내가 일부러 이곳을 지목해 내리겠다고 한 이유가 있었다.'이 정도 급의 여관이라면 대공가나 황실의 정보망이 미처 손을 쓰지 못했을 게 분명해. 여기선 저들의 연극도 밑천을 드러내겠지.'"여기서 하룻밤 묵고 가겠습니다. 당신들이 아무리 방해해도 전 이 이코노미 여관에 들어갈 테니까 그리 아세요."내 선언에 마부석에 있던 카이엔과 르웰린의 안색이 동시에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그들의 눈동자에 서린 것은 지독한 가슴 앓이와 절망이었다."엘리…… 정녕 이런 쥐가 들끓는 곳에서 자겠다는 말이오? 전생에 네가 황실 감옥의 차가운 돌바닥에서 홀로 신음할 때도 내가 돌보지 못했는데, 이번 생에서조차 이런 누추한 곳에 널 밀어 넣어야 한다니……!"카이엔이 제 가슴을 쥐어뜯으며 피맺힌 목소리로 절규했다."마마! 제발 통촉해 주십시오! 당장 제 마법으로 이 자리에 7성급 임시 궁전을 연성해 올리겠습니다! 저런 천한 먼지가 마마의 폐로 들어가는 꼴은 죽어도 볼 수 없습니다!"르웰린 역시 지팡이를 치켜들며 당장이라도 대지 변형 마법을 쓸 기세였다."됐거든요. 전 아주 멀쩡하니까 오버하지 마세요."나는 콧방귀를 뀌며 낡은 여관 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다.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밖에서 보던 부서져 가던 외관과 달리, 여관 내부는 눈이 부실 정도로 번쩍이는 순금과 대리석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천장에는 수천 개의 최고급 마석으로 만들어진 샹들리에가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고, 바닥에는 왕실 연회장에나 깔릴 법한 폭신한 벨벳 카펫이 깔려 있었다.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이 여관의 주인으로 보이는 뚱뚱한 남자가 내 몸집만 한 황금 자루 수십 개를 품에 안고 사시나무 떨듯 떨며 서 있었다."어, 어서 오십시오, 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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