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 태호야, 너 마누라 있지? 아까 이모부가 말하기를 셋째 이모랑 너 마누라가 걱정한다며?"세 사람은 대나무 숲 밖으로 걸어 나왔다. 왕향금은 갑자기 뭐가 생각난 듯 의아한 표정으로 이태호한테 물었다.아직까지도 그녀는 이태호가 마누라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그녀는 며칠전에서야 전 이태호가 출소한 후에 전 여자친구 정주희와 하현우의 결혼식에 난리를 피운 소문을 들었다.자세한 내용은 그녀도 잘 몰랐고 다만 동네방네 돌아다니는 소문만 들었을 뿐이었다.이태호가 출소 한 걸 알고 또한 사채업자들이 너무 협박하는지라 어쩔 수없이 셋째 이모한테 전화를 했다. 하지만 전화를 안 받으니 돈을 갚지 않으려고 이태호가 나오자마자 가족들을 데리고 도망쳤는가 했다.필경 현실에는 이러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으니 말이다.이태호는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마누라 있어요, 뭐 인생길 걷다 보니 꽃길이 나타난 거죠. 말하자면 긴데 지금은 마누라도 있고 딸아이도 있어요. 좋죠!"이 말을 들은 왕향금의 속이 철렁했다. 사촌 동생이 왜 이토록 빨리 색시를 맞이했는가 했더니 애 딸린 돌싱을 찾은 거였다 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사촌 동생 집 형편이 좋은 편이 아니고 게다가 방금 출소한 거라 애 딸린 여자라도 시집오겠다면 이태호한테는 엎드려 절하기였다."응, 좋구나, 마누라도 생겼고 딸아이도 있으니. 너 한방 제대로 해냈구나. 네 아빠 엄마도 시름 다 놓았어."왕향금은 머리를 끄덕이고는 앞에서 걸어가는 이태호를 보고 나지막이 말했다. "맞다. 태호야, 나 술집에서 일하는 걸 네 아빠 엄마한테 말하면 안 돼. 그리고 내가 돈 갚지 못 한 일도 너 이모, 이모부한테 말하지 말아 줘. 엄마 아빠 아직 모르셔, 그냥 친구한테서 빌린 돈인데 이미 다 갚았다고 말했거든."이태호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심하세요, 누나, 절대로 말하지 않을게요.""네가 알고 있으면 돼, 내일에 나를 도와 1천2백만 원 갚으면 정말 좋겠어. 그러면 나도 좀 한숨 돌릴 수 있으니까
빚진 1천2백만 원을 끝내 갚게 된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상대방이 괴롭히는 일이 없을 거 같았다. 지금 왕향금의 기분은 정말 마음속에 짓눌린 돌덩이를 옮긴 것처럼 개운했다."누나, 좀 비좁을 거 같아요. 한 사람 더 있거든요."이태호는 운전대를 잡고는 차에 오르려는 왕향금을 보고 말했다."괜찮아. 내가 은재를 안으면 돼!"연초원은 이내 신은재를 자신의 품속에 끌어안았다. "향금아, 생각지도 못하게 정말 너 맞구나!'왕향금은 자리에 앉은 후 연초월을 보고 계면쩍게 웃으며 말했다. "셋째 이모, 아까 태호가 도와줬기 망정이지 아니면 전 벌써 그놈 변태들에게..."이태호는 웃기만 하다가 그제야 소개했다. "누나, 여기는 내 마누라 신수민이라고 해요. 여보, 이분은 나 큰 이모네 집 사촌누나 왕향금이라 해. 지난 몇 년 간 큰 이모네 집 덕을 많이 봤어.""사촌 언니 안녕하세요!"신수민은 고개를 돌려 왕향금을 향해 웃었다.왕향금은 면전에 있는 신수민을 보고 속으로는 다소 놀랬다. "신수민, 이 이름이 왜 이렇게 익숙하지? 가만 보자, 가만 보자..."한참 생각하더니 뭔 가 떠올린 듯 놀라며 말했다. "혹시 신씨 가문 큰 아씨인가요? 저기 그 3류 명문가네 큰 아씨 맞죠?""그 절세 미녀를 말고 또 누가 있겠어요?'이태호는 운전하면서 웃으며 말했다."정말이구나, 소문이 자자한 미녀 맞네. 정말 이쁘네."왕향금은 웃으면서 저도 모르게 이태호를 향해 말했다. "태호야, 너 정말 전생에 나라를 구했구나.""당연하죠, 하하!"이태호는 쾌활하게 웃기 시작했다.옆에 앉은 신수민은 이태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속에서는 행복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제 기억으로는 큰 아씨가 신씨네 집안하고는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은 거죠?'왕향금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더니 승용차를 둘러 보고 미간이 찌푸려 졌다. 그리고는 완곡하게 물었다.그녀는 신수민이 왕년에 신씨 집안에서 쫓겨났다는 걸 알고 있다. 또 소문에 의하면 쫓겨난 후에 매우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잘
얘기하는 사이 용안 별장 지역에 도착한 차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태호야, 설마 너희가 이사했다는 집이 바로 여기야? 여기 그 유명한 부자 동네 아니야? 이 동네 별장은 아무리 부자라도 살 수 없다고 하던데."왕향금은 주위를 둘러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이태호는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앞으로 저희들이 생활할 곳이에요, 집도 넓고 방도 많으니까 잠시 후에 누나는 마음대로 골라서 묵으시면 되세요.""우와, 나도 이런 으리으리한 별장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는게 너무 믿기지가 않아, 태호야, 너 진짜 출세했구나."왕향금은 감격에 겨운 나머지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면서 말했다. "안 되겠어, 나 사진 좀 더 찍어서 보관할래, 여기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하하!"흥분해 있는 왕향금을 보고 이태호는 입을 열었다. "누나 마음에 들면 며칠 더 여기서 쉬다가 가는 게 어때요? 어차피 집들이도 할 겸 모레쯤에 친척분들 다 요청할 예정이거든요.""우리 동생이 나를 붙잡은 거니까 그럼 사양하지 않는 걸로."왕향금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옆에 앉아 있던 연초월이 답했다. "향금이도 오랜만에 우리 집에 와 보는데 며칠 묵으면서 쉬다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아, 그리고 전에 빌린 돈 돌려줘야 되기도 하고,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왕향금은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모님, 괜찮아요, 아까 태호가 내일 돌려 준다고 했어요.""그래, 이제야 마음이 놓이네."연초월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운전 중이던 차는 곧바로 아주 큰 별장 앞에 세워졌다.별장으로 들어선 왕향금은 정원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미녀 여섯 분을 목격했다.다소 야한 옷차림을 한 여성분들을 확인한 왕향금은 의심쩍은 눈초리로 이태호를 향해 물었다. "태호야, 저 분들은 누구셔?"이태호는 곧장 해명했다. "아, 저 분들은 부모님들이 외출할 때 혹시 위험할 까 내가 고용한 경호원분들이셔.""쯧쯧, 경호원들 고용할 줄도 알고 진짜 용됐네, 이젠 진짜 재벌 느
연초월과 왕향금 그리고 바라보던 다른 사람들 모두 숨을 들이켰다. 한 달에 이천 만 원을 받는데 별로 많지도 않다니 게다가 안 받아도 상관이 없다니, 이거 은근히 자랑질 하려고 저러는 건가?그 중 유독 이태호만이 무심코 덤덤히 웃고 있었다. 비록 작은 군사들일지라도 전쟁터에서 수많은 공을 세웠던 영웅이라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전쟁이 끝난 후 대하는 여기 작은 군사들에게 한 사람당 몇 십억 원에 달하는 상금을 지급하기도 했으니 말이다.그러니 그들이 돈에 연연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아이고, 나는 여러분들의 월급이 너무 부럽기만 하네요."왕향금은 쓴웃음을 지으며 이태호를 향해 말을 덧붙였다. "태호야, 친구가 그렇게 돈이 많은 거야? 설마 이 별장도 그 친구가 선물한거야?"이태호는 순간 손으로 콧등을 만지작거리더니 답했다. "누나 눈치가 빠르네요,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선물 받은 건 맞는 데 그 친구가 아니라 다른 분이세요.""에이, 농담하는 거지?"왕향금은 고래고래 목소리를 높이며 물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여기 별장이 한 채에 백 억 원을 훨씬 넘는다고 하던데 누가 그런 별장을 떡하니 그냥 내 줄 수가 있어? 여기 신씨 아가씨네 별장 아니야?"연초월은 바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향금아, 선물 받은 거 맞아, 이 별장의 원래 주인은 일류 대가의 용씨 집안의 사람이었대, 우리 태호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질환으로 인해 쓸어진 사람을 발견하고 그 분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었거든, 워낙 태호가 의술이 뛰어나긴 하잖아, 그래서 그 분이 구해 준 보상으로 여기 별장을 선물하게 된거야.""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부자들한테는 생명이 무엇보다도 소중하긴 하니까, 그래도 그들은 어떤 세계에 사는 지 나는 상상도 하기 힘들 것 같네."왕향금은 문뜩 이태호를 보며 말을 이었다. "야, 태호야, 너 이러다 인생 꽃 피는 거 아니야? 아내와 아이도 있으니 가족도 화목하고 이젠 사는 집도 이런 으리으리한
왕향금의 물음에 이태호는 순간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 분위기가 어색해졌다.지켜보던 신수민은 빙긋 웃고는 왕향금을 보며 답했다. "그런 건 아니에요, 위층에 방들이 다 비어 있으니까 너무 허전해 보일 까봐 어쩌다 한 번 사용하고 있는 것 뿐이에요." 이어 신수민은 이태호를 팔짱을 끼고 왕향금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평소에는 태호가 저랑 한 방 사용하고 있어요, 맞지?"이태호는 신수민이 자신의 어색함을 무마시켜주며 이렇게 눈치가 빠른 여인이라는 게 너무 뜻밖이었다. 그는 신수민의 허리를 감싸고 담담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럼, 제 와이픈데 당연히 매일 밤 같이 자야 되는 거 아닌가, 어쩌다 의술을 연구하다 보니까 아내에게 방해될 까 혼자 독방을 쓰는 거지 뭐."이태호의 품에 안긴 신수연은 가슴이 쿵쾅거리고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그, 그럼요."신수민도 그를 따라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왕향금은 입을 가린 채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내가 오해를 한 거였네, 부부 사이가 너무 달콤해서 닭살이 돋을 지경이네요, 방해 그만하고 저는 가서 쉬겠습니다, 두 분도 얼른 들어가서 쉬세요."말을 마친 왕향금은 반대편에 있는 방으로 걸어 갔다."자기야, 시간이 많이 늦었어, 얼른 들어가서 씻고 자야지."신수민을 품에 안은 채 방에 들어선 이태호는 이내 방문을 닫아 버렸다."보는 사람도 없는데 손 좀 놓지 그래?"방에 들어선 신수민은 이태호를 눈으로 흘기며 말했다.이태호는 그제서야 감싸고 있던 손을 아쉬워하며 풀어 주었다. "아까는 자기 덕분에 의심 받지 않고 잘 넘겼어, 우리 둘이 각방 쓰는 걸 친척들한테 알려지면 좀 창피하긴 했을 거야.""쳇, 그래도 허리를 그렇게 있는 힘껏 감싸 안으면 어떡해? 게다가 그냥 있으면 몰라, 손으로 내 허리를 만지작거리기까지 했잖아, 나쁜 놈."입이 뾰로통이 튀어나온 신수민은 다시 한번 이태호를 눈으로 흘겼다. 허나 이건 분명 연인간의 사람싸움이지 진심으로 그한테 따지는 태도가 아니었다."그게 문제
"알았어."신수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자리를 물러났다.이태호는 재빠르게 잠옷을 챙겨 왔고 신수민 역시 원피스 잠옷과 속옷을 다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내가 먼저 샤워하고 난 후에 너가 들어가서 샤워해."신수민은 챙겨 놓은 옷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방 안에 화장실이 있을 정도로 방은 아주 넓었다.이태호는 아름다운 몸매를 지닌 신수민을 보고는 침을 삼키며 물었다. "자기야, 우리 같이 샤워하지 않을 래? 외롭지도 않고 좋을 것 같은 데?""꿈 깨셔"신수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화장실로 들어선 후 이내 문을 잠궜다.마지 못해 침대에 누워 있던 이태호는 화장실에서 콸콸거리는 물소리를 듣고 있었다.들려 오는 그 소리와 함께 유리문 불빛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그녀의 몸매 실루엣으로 인해 이태호는 다시 한 번 숨을 삼켰다."그래, 너무 조급하게 밀어붙이진 말자, 한 방을 쓰는 것까지 허락을 했으니 이만하면 그래도 많이 가까워진 거니까, 우리 자기가 나에 대한 믿음이 생길 수 있도록 더욱 많이 노력해야지 뭐, 그때면 우리 자기랑 애기 한 명 더 낳아야지,"멍청하게 웃으며 신수민은 몰래 미래를 그려 보고 있었다.그 사이 샤워를 마친 신수민은 머리가 젖은 상태로 섹시한 슬립 원피스 잠옷을 입고는 화장실 문을 나왔다.그녀의 섹시하고 매혹적인 모습에 신수민은 다른 남자였으면 아마 지금쯤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바로 덤벼들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정신을 차린 이태호는 신수민에게 미소를 짓고는 샤워하러 들어갔다.이태호가 샤워를 끝내고 나왔을 땐 머리를 드라이로 잘 말리고 얇은 침대 시트를 덮고 있는 신수민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무심한 눈빛으로 이태호를 바라 보곤 신수민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침대 시트 하나 더 챙겨 놨으니까 그건 너가 덮고 자면 될 거야, 다른 이상한 생각은 금지야, 한 침대에서 같이 잘 수 있게 하는 것만도 감지덕지니까, 알았어?""넵, 자기가 말하면 무조건 들어야지요."실실 웃으며 이태호는 신수민의 옆자리에 누웠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이태호는 신수민이 침대 시트를 걷어차고 나서 자신의 몸에 걸쳐있는 섹시하고 뽀얀 다리를 발견했다.게다가 그녀는 한 손을 그의 목에 걸친 채 엎드려서 자고 있었다, 보아하니 밤에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잠버릇이 있는 모양이다.섹시한 그녀의 다리에 그나마 본인의 통제력이 강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이태호는 심장 박동수가 급격히 빨라지고 헛된 상상에 어쩔 바를 모르고 있었다.때 마침 천천히 눈을 뜨던 신수민은 순간 깨달았다."야, 지, 지금 뭐하는 거야?"깜짝 놀란 신수민은 진정하고 나서야 어젯밤 자신이 이태호를 방에 남겼다는 기억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지더니 황급히 그에게 걸쳐 있던 손과 다리를 치워 버렸다. 그 후 조금 올라가 있던 잠옷 치마를 아래로 내리며 이태호 이 놈이 뭘 본 건 아닐까 하고 의심을 하고 있었다.억울했던 이태호는 쓴 웃음을 지었다. "하하, 단정하게 잠을 잘 자고 있던 사람이 깨어 보니까 누가 날 감싸고 있는데 지금 물어볼 사람은 나 아닌가? 그래도 그렇지 자기 잠버릇이 전혀 얌전하지 않은 것 같아?"뺨이 붉어져 있던 신수민은 오히려 이태호를 수줍게 흘기고는 말했다. "나? 내 잠버릇이 뭐 어때서? 너가 일부러 내 다리에 손 댄 거 아니야? 본인 방으로 빨리 돌아가기나 해, 나 옷 갈아 입어야 되니까.""알았어."신수민의 수줍은 모습을 보며 이태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방 문을 나섰다."휴."방 문이 닫히자 신수민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쉬고 뜨거워진 자신의 뺨을 만지고 있었다."태호야, 이제야 일어난거야?"이태호가 문을 나서자마자 맞은 편 복도에서 걸어오는 왕향금을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잠옷을 입고 있는 이태호의 모습에 왕향금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그러게요."웃음으로 넘긴 후 이태호는 본인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 입었다.그 후 아래층으로 내려와 소파에 앉아 있던 왕향금을 향해 이태호는 "누나, 같이 나갑시다, 그 사람들한테 돈도 갚아 줘야 하니까." 라고 말했다."그래."그 놈
적어도 전에는 그랬었다."호호, 들어가도 되긴 하는데 이 남잔 누구야? 이 남자는 못 들어가."다른 한 놈이 히죽거리며 옆에 서 있는 이태호를 보고 말했다.왕향금은 다급히 해명하기 시작했다. "제 사촌 동생이에요, 제 사촌 동생이 저 대신에 돈 갚아 줄려고 방금 출금하고 오는 길이에요.""사촌 동생."그 남자는 돈을 채운 것 같은 검은 봉투를 손에 쥐고 있는 이태호를 보며말을 덧붙였다. "유감스럽네, 향금 씨, 이 분은 외부인이라 출입 금지야, 밖에서 기다리라고 해."안색이 어두워진 왕향금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전에는 안 된다고 한 적 없잖아요.""하하, 오늘 새로 정한 룰이야, 뭐 불만 있어?"그 남자는 깔깔 웃고 있었다.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이태호는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답했다. "우리 돈 갚으러 온 거야, 누나가 혼자 들어가면 내가 걱정이 많이 돼서 그러니까 그냥 같이 들어가게 하지.""걱정? 하하, 걱정할 일이 없을 거니까 안심해."그 남자는 비웃으며 말했다. "임마, 우리 룰이라고, 넌 그냥 밖에서 기다리기나 해."뭔가 이상한 느낌새에 왕향금은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혹시 어젯밤 일로 그 놈들이 호형님한테 일러바친거 아니면 왜 오늘 혼자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거지?허나 다른 수가 없는 그녀는 천 이백만 원만 다 갚으면 하늘을 찌르는 이자를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생각을 마친 왕향금은 마음속으로 굳은 결심을 하고 몸을 돌려 검은 봉투를 본인 손에 짊어 지고 이태호에게 말했다. "태호야, 밖에서 기다려 줘, 그냥 돈만 갚으러 가는 거니까 뭐 어쩌지는 못할 거야, 십분 정도만 머물다 나올 거니까 걱정하지 마."얼굴을 찌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이태호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조심히 다녀 오세요."왕향금도 고개를 끄덕인 후 신속히 몸을 돌려 별장 안으로 걸어갔다.왕향금의 걸어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던 두 노랑 머리 경비원들은 재차 낄낄거리고 있었다.아무리
이태호에 대해 많이 알수록 연장생은 이태호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천부적 자질은 말할 것도 없고 선연까지 얻었으니 중도에 죽지 않는 한 앞으로 꼭 수백 년 전의 산수(散修)처럼 신선으로 될 것이다.이태호는 그 산수처럼 불과 백 년 만에 비승해서 신선으로 되어 창란 세계에 아름다운 전설을 남길 것이다.그리고 연장생을 더욱 기쁘게 한 것은 이태호가 연단사의 신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비록 아직 7급 연단사에 불과하지만 이태호가 단도에서 뛰어난 천부적 자질을 가지고 있음을 충분히 증명하였다. 최고의 연단사는 한 종문을 만년 이상 번영시킬 수 있다.예전에 태일종의 제8대 종주는 그냥 태일성지에서 학업을 마치고 돌아온 진전 제자였으나, 8급 연단사의 실력으로 태일종으로 하여금 천남에서 자리를 잡게 하였다.8급 연단사가 이런 힘이 있는데 9급 연단사로 성장해서 성황급 수사가 사용할 수 있는 단약을 정제할 수 있다면 어느 대세력에 있든 모두 귀빈으로 모실 것이다.게다가 이태호는 검도에도 조예가 깊었다.연장생은 제7봉의 봉주 맹동석을 통해 이태호가 각성한 검도의 의지는 경금 검기를 훨씬 능가해서 검도 대종사로 자라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남다른 천부적 재능을 하나라도 가질 수 있는 자는 백만 명 중에 한 명이 나올까 말까 하였다.태일성지에서 이런 자는 진전 제자로 될 수 있고 성왕 경지의 장로를 스승으로 택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가졌다. 단도, 검도에서 특별한 천부적 재능을 갖고 있다면 성지의 8대 장로도 서슴없이 서로 친전제자로 삼겠다고 다툴 것이다.이태호처럼 여러 가지 천부적 자질을 가진 천교는 성지 종문에 들어가면 폐관 수련 중인 태상 장로도 깜짝 놀랄 것이다.“대장로님, 저는 며칠 더 있다가 가고 싶습니다.”이태호는 가슴을 펴고 차분하게 말했다.“저는 5급 성자 경지로 돌파한 후에 중주로 갈 생각입니다.”진선 정혈을 얻은 후 이태호는 대도를 조금 깨달았고 5급 성자 경지의 장벽을 느낄 수 있었으며 수시로 돌파할 것 같았다.이
다음 날 아침. 금싸라기 같은 황금빛 햇살이 구름을 뚫고 인간 세상에 쏟아졌다.오색찬란한 아침노을은 신선한 공기를 지니고 새로운 날이 다가왔음을 예고하였다.요광섬에서 이태호는 상쾌한 표정으로 기지개를 켜고 방에서 나왔다.어제 요광섬으로 돌아온 후 그는 한 달 넘게 안 본 아내들과 오랜만에 아름답고 황홀한 밤을 보냈다.그가 정원의 우물가로 가서 물을 받고 세수한 후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할 때 허리에 찬 전음 옥패가 진동하기 시작했다.신식으로 살펴보니 종주 선우정혁이 종문 대전에 오라는 소식을 보내온 것이었다.이를 본 이태호는 신식으로 아직 방 안에서 깊이 잠들고 있는 신수민 등 네 여인들을 훑어본 후 고개를 흔들면서 곧장 하늘로 솟아오르고 대전을 향해 날아갔다.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대전의 문 앞에 도착했다.대전 안으로 들어가니 선우정혁과 연장생은 상석의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두 사람은 다정하고 흐뭇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선우정혁은 아마 대장로 연장생 때문에 자신을 부른 것으로 추측했다.중주 태일성지의 대장로인 연장생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 직접 천남 지역까지 왔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예전에 태일종에서 중주로 간 천교들도 있었으나 이태호처럼 성지의 중시를 받은 자가 없었다.이태호가 예측하건대 선우정혁은 자신이 연장생을 따라 중주의 태일성지로 가길 원한 것 같았다.의자에 앉아서 연장생과 담소를 나누던 선우정혁도 대전으로 들어오는 이태호를 보고 먼저 말을 건넸다.“태호야, 왔구나. 어서 연 장로님께 인사드려.”이태호는 급히 앞으로 다가가서 연장생을 향해 깍듯이 인사를 하였다.“대장로님을 뵙습니다.”연장생은 손을 가볍게 흔들자 가벼운 바람을 일으키면서 절을 하려는 이태호를 일으켰다.그는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됐어. 남도 없는데 큰절할 필요가 없지. 너에게 할 말이 있어서 부른 거야. 성지에서 자네가 타고난 천부적 자질을 가졌고 또 선연을 얻은 것을 알고 널 안전하게 성지로 데
맹동석이 자신의 추측을 확인하기도 전에 기타 봉주들도 잇달아 대전 입구에 도착했다윤하영, 진남구 등 8명의 봉주들이 대전 안으로 들어갈 때 맹동석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그들은 가장 먼저 상석에 앉은 연장생을 주목했다.몇몇 봉주들의 다양한 표정을 보자 연장생의 옆에 앉은 선우정혁은 그들이 연장생의 정체에 대해 추측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그는 웃으면서 소개하였다.“성지에서 오신 대장로님께 인사를 드리라고 자네들을 부른 거네.”맹동석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성지에서 오셨다고요?”태일종의 성지라면 중주의 태일성지였다.봉주인 그들이 꿈에서도 들어가고 싶은 곳이었다.선우정혁은 맹동석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성지에서 오신 대장로님은 우리 태일종에서 며칠 머물다가 곧 이태호를 호송해서 중주 성지로 가실 거야. 수행과 관련된 궁금증이 있다면 대장로께 여쭤봐도 되네.”맹동석 등이 연장생의 신분을 듣고 받은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선우정혁이 이어서 한 말을 들었다.이번에 맹동석뿐만 아니라 기타 여덟 명의 봉주도 모두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이태호를 중주성지로 호송하기 위해 왔다고?이태호는 천부적 재능이 출중해서 종문 겨루기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중주성지의 대장로까지 직접 나서서 호도자로 되어 이태호를 호송할 필요가 있을까?예전에 태일종의 겨루기 대회에서 1위를 한 자는 모두 자신이 영패를 가지고 중주로 갔다.다들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맹동석은 바로 성공 전장을 떠올렸다.그는 뭔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설마 태호가...”상석에 앉아 있는 연장생은 반응이 빠른 맹동석을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9급 성자급 수사가 이렇게 빨리 사실의 본질을 알아봤다는 것에 다소 놀라워했다.하지만 그도 사실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이태호가 선연을 얻은 사실은 이미 온 창란 세계의 대세력에 알려졌고 머지않아 곧 천남으로 전해질 것이다.그리고 성공 전장에 같이 갔다 온 고준서 등 목격자도 있지 않은가.더구나 태일종은
남두식과 이태호가 담소를 나누던 중, 대장로가 다가와서 이태호를 유심히 살펴보았다.잠시 후, 대장로는 입을 크게 벌리고 놀라운 표정으로 물었다.“태호야, 이번에 성공 전장에서 내공이 또 오른 것 같구나.”그의 기억에 이태호가 떠날 때 지금처럼 이렇게 큰 압박감을 주지 않았던 것 같았다.그러나 한 달 만에 이태호는 환골탈태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이태호는 피식 웃으면서 답했다.“운이 좋아서 거기서 돌파했어요.”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한순간에 조용해졌다.‘운이 좋아서?’이태호가 떠날 때 방금 3급 성자 경지로 돌파했다. 그러나 방금 그의 말에 따르면 성공 전장에서 4급 성자 경지로 돌파했다는 뜻이었다.성자 경지에 이르면 내공을 높이기가 어렵다고 하지 않았는가?그러나 대장로 등은 이미 이태호의 괴물과 같은 천부적 자질에 익숙해졌다.이태호의 경지가 또 높아졌다는 사실을 들은 후 대장로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자네와 은재는 모두 괴물이야. 네가 천청종에 있을 때 하루가 멀다 하고 돌파했는데 지금 은재도 너와 똑같아.”대장로의 부러워하면서도 못마땅한 표정에 이태호는 어이가 없어서 말없이 웃기만 하였다.남두식은 대장로의 말을 끊고 웃으면서 말했다.“됐소. 오늘 태호가 무사히 돌아왔으니 축하 잔치라도 준비해야 하지 않소?”사실 이태호가 없는 동안 남두식은 걱정돼서 오랫동안 안절부절못했다.그는 성공 전장이 너무 위험해서 예로부터 성지의 성자들도 적지 않게 죽었다고 들었다.딸인 남유하와 신수민 등 여인들이 마음에 병이 생길 정도로 매일 이태호를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고 그의 마음도 아팠다.이제 이태호가 무사히 돌아왔고 딸도 매일 슬퍼하지 않아도 되니 그는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아니나 다를까, 다른 사람들은 이태호를 위해 축하 잔치를 준비하자는 말을 듣고 모두 흔쾌히 동의하였고 서둘러 식재료를 준비하러 갔다....이와 동시에. 제7봉의 대전 내에서 제7봉의 봉주 맹동석은 한창 종문의 사무를 처리하고 있었다.한 달 전에 종주 선
두 여인의 맑은 목소리가 이구동성으로 이태호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그는 하늘에 나타난 남유하와 백정연을 바라보았다.오늘 남유하는 흰 비단옷을 입었고 긴 머리카락을 드리웠다.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피부는 옥처럼 희고 마치 새벽의 이슬을 머금은 복숭아꽃처럼 맑고 투명하며 콧대는 높고 입술은 유달리 부드러워 보였다. 참으로 그림속에서 걸어 나온 선녀처럼 아름다웠다.옆에 있는 백정연은 주홍색 긴 치마를 입었고 온몸에서 활기와 생동감으로 넘쳤다.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매끄럽고 반짝였으며 검은 폭포처럼 허리까지 내려왔고 바람에 휘날리면서 부용꽃처럼 고귀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두 여인은 빠르게 이태호의 곁에 달려왔고 기쁨에 겨운 눈물을 가득 흘렸다.이태호는 손으로 두 여인의 붉은 눈시울을 닦아주면서 다정하게 웃어주었다.“왜 울어? 내가 돌아왔잖아.”그는 여인들을 데리고 정원에 온 후, 그녀들이 많이 변한 것을 발견했다.변화가 가장 큰 것은 신수민과 남유하였다.그가 떠날 때 신수민은 불과 5급 존황 경지였는데 지금은 7급 존황 경지로 돌파했고 백지연과 백정연 자매도 4급 존황 경지에서 6급 경지로 돌파했다.이런 실력은 중주 성지에서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태일종에서 상위권에 속하였다.그는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내가 없는 동안에 모두 열심히 수련했군.”눈물을 훔친 남유하는 입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죠.”“참, 은재는?”이태호는 이제야 딸 신은재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물었다.“은재는 며칠 전에 폐관 수련하기 시작했어.”딸 얘기를 하자 신수민의 얼굴에 어머니로서의 자애로운 표정을 지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은재의 천부적 자질은 당신보다 좋아요. 이번에 5급 존황 경지에 도전하려고요.”신은재가 한 달 만에 5급 존황 경지에 도전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이태호도 다소 놀랐다.그는 너무 빨리 돌파하면 기반이 불안정할 수 있다고 말해주려던 찰나, 멀리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하, 태호야, 돌아왔구나.”“돌
요광섬의 고풍스러운 정원에서 긴 두루마기를 걸쳐 입고 황금빛 구름이 수놓은 흰색 장화를 신은 신수민은 지루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서 정원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녀의 옆에는 하얀 수선화 무늬의 치마를 입은 백지연이 앉아 있는데 주전자를 들고 영기가 넘친 따뜻한 차 두 잔을 따랐다.그녀는 한 잔을 신수민의 앞에 두고 나서 손바닥으로 턱을 괴면서 말을 건넸다.“언니, 태호 오빠가 떠난 지 한 달 넘었는데 언니의 넋까지 나간 것 같아요.”백지연의 농담에 신수민은 눈을 흘기면서 퉁명스럽게 답했다.“태호가 걱정돼서 그래. 한 달이나 지났는데 태호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그녀는 성공 전장이 지극히 위험하고 창란 세계의 모든 천교가 모였으며 7급 성자 경지의 성자와 신자들도 수두룩하다는 소문을 들었다.이태호는 떠나기 전에 3급 성자 경지에 불과했기에 신수민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백지연도 신수민의 말을 듣고 눈에 그리움과 걱정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그녀는 고개를 흔들고 마음속에 올라오는 초조함을 억누른 후 가슴을 두드리면서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태호 오빠는 강하니까 분명히 무사히 돌아올 거예요.”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요광섬 전체를 뒤흔드는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내가 돌아왔다!”두 여인은 이 목소리를 들은 순간, 몸이 움찔했다.그녀들은 곧바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고 활짝 웃으면서 요광섬의 입구를 쳐보았다.신수민은 하늘로 솟아오르면서 중얼거렸다.“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지?”한편으로 백지연은 입을 가리고 믿기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태호 오빠, 진짜 맞죠?”이태호는 요광섬의 진법을 해제한 후 바로 신수민과 백지연의 앞에 도착했다. 두 여인이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자 미소를 지었다.“이제 한 달 지났는데 남편도 몰라보는 건가?”이태호의 목소리가 다시 두 여인의 귓가에 울리자 그녀들은 드디어 이태호가 정말 무사히 돌아온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그토록 그리워하던 사람이 눈앞에 나타나자
옆에 있던 연장생은 이를 보고 가볍게 손을 흔들자 공포스러운 성황의 힘으로 하늘을 뒤덮은 핏빛 먹구름을 순식간에 깨끗하게 몰아냈다.그러고 나서 그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이태호를 유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내공을 완성한 4급 성자 경지라... 내공이 좀 부족하군. 그런데 전성민이 네가 성공 전장에서 4급 경지의 내공으로 용족의 천교 오현을 죽였다고 하는데 사실이냐?”연장생의 질문에 이태호는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장로님.”“하하, 좋아!”연장생의 얼굴에 기쁜 기색을 드러냈고 대견스러운 눈빛으로 이태호를 바라보았다.그러고 나서 웃음을 머금고 옆에 있는 선우정혁에게 말했다.“먼저 자네 태일종으로 돌아가자.”선우정혁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연장생이 등장하고 육무겸과 풍석천 두 사람이 죽을 때까지 잠깐의 시간만 흘렀다.선우정혁의 분노가 가라앉기도 전에 두 성왕이 그의 눈앞에서 목숨을 잃었다.성황급 대능력자인 연장생의 요구에 그는 당연히 소홀히 대할 수 없었다.다른 건 몰라도 그가 태일성지에서 수련할 때 연장생은 이미 창란 세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성황급 수사였다.지금 그가 태일종의 종주로 된 지 수백 년이 지났으니 연장생의 실력은 더욱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바로 가시죠.”선우정혁은 말하고 나서 바로 허공을 찢고 연장생을 데리고 태일종을 향해 날아갔다.이들이 떠난 후 수십 리 밖의 공간에서 나온 맹호식과 송현아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연장생 등이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청허파의 문주 맹호식은 육무겸과 풍석천의 숨결이 빠르게 사라진 것을 느끼면서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천남의 판도가 크게 바뀔 것이오.”옆에 있는 묘음문 문주 송현아의 아름다운 얼굴에 아직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다.그녀는 깊은숨을 들이면서 말했다.“육무겸과 풍석천를 단번에 죽였다니. 이게 바로 성황급 강자의 무서운 실력인가요?”연장생의 닭을 잡듯이 두 성왕을 죽인 모습을 보자 송현아는 죽음의 문턱에 갔다 온 것처럼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아
두 성왕은 지극히 빠른 속도로 공간을 찢고 도망쳤다.허공에 서 있는 연장생은 그들의 뒷모습을 담담히 쳐다보고는 시선을 거두었다.그는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육무겸을 노려보면서 냉랭하게 말했다.“네놈이 자결하면 온전한 시체는 남겨두마.”성지의 제자에 손을 대는 것은 죽을 죄였다. 특히 이태호는 선연을 얻은 후 태일성지 장로들의 눈에 들어왔고 그의 신분도 높아졌으며 차세대 성자로 키울 작정이었다.그러나 당당한 성지의 제자가 하마터면 육무겸의 손에 죽을 뻔했으니 연장생이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육무겸은 그의 말을 듣고 온몸의 털이 곤두섰고 주저하지 않고 바로 허공을 찢고 도망치려고 하였다.이에 연장생은 조롱 섞인 야유를 날렸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냐?”성왕급 수사는 그에게 있어서 장난감에 불과했다.연장생이 미간을 찌푸리자, 몸에서 내뿜은 성스러운 빛은 순식간에 주변 만 리에 이른 구역을 뒤덮었다.이 구역 내의 공간은 바로 봉쇄되었고 공간의 장벽도 더욱 견고해졌다.원래 허공을 찢고 도망치려던 육무겸은 공간이 봉쇄된 것을 보자 얼굴에 당황하기 그지없는 기색을 드러냈다.안하무인으로 살아온 육무겸은 비로소 얼음 구멍에 빠진 듯한 공포에 휩싸였다. 그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애걸했다.“연 장로님, 소인이 이성을 잃고 미련에 사로잡혀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연장생은 피식 웃으면서 조롱으로 가득 찬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방금 도도했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는 허공 통로의 입구에 있는 이태호의 앞에 다가가서 말했다.“젊은이, 이 자는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그는 한손으로 공간이 봉쇄되어 움직일 수 없는 육무겸을 붙잡고 손끝에서 성스러운 빛을 내뿜으면서 육무겸의 육신을 꿰뚫고 그의 내공을 모두 폐해버렸다.그러고 나서 보이지 않은 공간의 힘으로 초주검이 된 육무겸을 이태호의 앞에 내던졌다.내공이 모두 폐하고 중상을 입은 육무겸은 사색이 되어 죽어가는 개처럼 바닥에 엎드렸다.그는 발악하면
선우정혁은 나타난 사람을 보자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연 장로님, 드디어 오셨군요.”선우정혁은 예전에 태일성지의 제자로서 당연히 태일성지의 장로인 연장생을 알고 있었다.그는 이태호가 종문으로 돌아간 후 중주 성지에서 장로를 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방금 이태호를 맞이할 때 의식적으로 육무겸과 풍석천을 경계하지 않아 미처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비록 그는 천남의 최강자로서 7급 성왕 경지의 내공을 가졌으나 단시간 내에 두 성왕급 수사의 협공을 격파할 수 없었다.특히 두 사람의 목표는 그가 아니었고 육무겸이 자신을 견제하고 동안 풍석천이 이태호를 공격하는 성동격서의 전략을 사용하였다.선우정혁이 무척 당황했고 이태호가 죽임을 당할 찰나에 연장생이 도착했다.허공 틈새에서 나온 연장생을 보자 그는 비로소 한숨을 돌릴 수 있었고 마음이 놓였다.연장생은 선우정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후 바로 이태호를 바라보았다.이태호가 성왕급 수사와의 대결에서 몇 초식을 버티는 모습을 보자, 그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곧이어, 그는 시선을 이태호의 앞에 있는 풍석천에게 돌렸고 손을 들고 허공을 향해 오므리자 순식간에 보이지 않은 힘이 병아리를 잡듯이 풍석천을 자기 앞으로 끌어왔다.“성왕 주제에 겁도 없이 감히 우리 성지의 제자를 해치다니. 네놈들에게 한 수를 가르쳐 주겠다.”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 손가락을 뻗어 풍석천을 향해 까닥였다.다음 순간, 천남 지역의 수만 리나 되는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짙은 먹장구름이 밀려왔으며 천둥 번개가 질주했다.연장생의 손가락에서 눈부신 빛줄기를 뿜어냈고 벌레를 밟아 죽인 것처럼 풍석천의 육신을 바로 피안개로 만들어버렸다.강력한 성왕의 신혼은 눈 깜짝할 사이에 도자기처럼 부서졌고 자고자대했던 풍석천은 이렇게 생을 마감했다.허공 통로의 입구에 선 이태호는 풍석천이 갑자기 죽자 그를 엄습해 온 성왕의 위압도 순식간에 사라졌음을 느꼈다.그는 입을 크게 벌리고 연신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신 후 허공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