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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금불
그 말을 들은 순간 사람들은 서태오가 완전히 나았다는 것을 비로소 믿었다. 게다가 서태오는 말발이 상당히 좋았다.

정준혁은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서태오의 손을 덥석 잡고서 오랫동안 놔주지 않았다.

장현주도 기뻐 보였으나 이내 다시 시무룩해졌다. 병이 나았다고 해도 한종수와는 비교도 안 되니 말이다.

서태오는 정준혁이 진심으로 자신을 아낀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한종수는 표정이 어두워졌고 유진설은 은근히 비꼬면서 말했다.

“어머, 말을 왜 그렇게 해? 우리 종수는 1억 6천짜리 차도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사는데 말이야. 태오 네 장기를 다 팔아버린다고 해도 얼마 안 돼. 그에 반해 우리 종수는 현장 하나 맡을 때마다 수십억씩 벌어들인다고.”

“어머님,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한테 화를 내실 필요는 없어요.”

“태오야, 사람이 그러면 안 돼.”

“가족이 아니면 너한테 그렇게 좋은 기회를 줄 사람은 없어.”

“게으른 데다가 겁도 많네. 병은 나았다지만 앞으로 큰 일을 할 수는 없겠어.”

친척들이 서태오를 나무랐다.

정하람의 표정이 굳었다. 그들의 말은 정하람의 신경을 긁었다.

하지만 외삼촌의 생신이었기에 애써 화를 억눌렀다.

장현주도 화가 나서 안색이 어두워졌다. 정준혁이 그녀를 말리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욕을 했을 것이다.

정준혁은 잠깐 화가 났으나 이내 감정을 추스르고 말했다.

“우리 정씨 가문은 사람 하나 정도는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으니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한종수가 웃으며 말했다.

“맞는 말씀이세요. 제가 괜한 얘기를 꺼냈던 것 같네요. 하지만 태오 씨, 난 태오 씨를 생각해서 기회를 준 건데 간이 작아서 그런지 그 기회를 그냥 차버리네요. 그래도 무례한 말을 한 것에 대해서는 사과를 해야 하지 않겠어요?”

서태오는 화가 났다. 그는 정준혁의 체면을 생각해 지금껏 참고 있었는데 한종수는 계속 그의 인내심을 시험했다.

바로 이때 누군가 문을 박찼고 이내 7, 8명의 장정들이 우르르 쳐들어왔다.

한종수는 화가 나서 다짜고짜 욕설을 내뱉었다.

“어떤 미친놈들이...”

그러나 그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뺨을 맞았다.

“사람들 앞에서 돈 많은 척 잘하네. 그런데 내 돈은 언제 갚을 생각이야?”

한종수는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하자 두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는 조금 전까지 거만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더듬대며 말했다.

“형, 형님...”

“이 새끼야. 남영시에 감히 내 돈을 빌리고 갚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은 없어.”

머리를 묶은 험악한 인상의 남자가 한종수의 따귀를 때렸다.

유진설은 겁을 먹고 곧바로 소리를 질렀다.

“허튼짓하지 말아요. 우리 종수는 당신들이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원식은 유진설의 앞으로 걸어가더니 느긋한 얼굴로 테이블 위 미니족발을 들어서 한입 베어 물고는 이내 그것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 탓에 식기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퉤... 맛이 왜 이 모양이야?”

하원식은 유진설의 얼굴을 향해 고기를 뱉은 뒤 비아냥댔다.

“우리 지환이 형님이 워낙 마음이 넓으셔서 은행의 이자율로 갚으면 된다고 6억을 통 크게 빌려줬더니 지금까지 돈을 안 갚잖아. 돈을 갚으라고 해도 모자란 상황에 나한테 저 새끼가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거야?”

하원식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유진설의 뺨을 때렸다.

“참나, 어처구니가 없네. 내가 이렇게 당신을 때려도 저 새끼는 찍소리도 못해. 알아?”

한종수는 꼼짝하지 않았고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진설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평범한 삶을 사는 이들이었기에 이런 상황은 모두 처음이었다.

서태오는 가만히 있었다. 은행 이자율로 돈을 빌려줬는데도 갚지 않았으니 맞을 만했다.

장현주는 겁을 먹어 안색이 창백해졌다.

참다못한 정준혁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빚을 받으러 온 거면 돈만 받고 가요. 사람을 왜 때립니까?”

하원식이 술병을 들어 정준혁을 때리려고 했다.

“이 노인네가 어디서 입을 놀려?”

술병이 날아오자 정하람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희고 큰 손이 술병을 막아냈다.

서태오는 술병을 손에 쥔 채로 싸늘한 눈빛을 해 보였다.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건 상관없으나 정준혁을 괴롭히는 건 두고 볼 수 없었다.

“이 술병으로 자기 머리를 내리친 뒤 여기서 꺼져요. 그러면 용서해 줄게요.”

서태오는 평온한 얼굴로 술병을 하원식의 앞으로 내밀었다.

사람들은 넋이 나갔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이런 상황에서 감히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면 정말로 배짱이 좋은 사람이거나 그냥 멍청한 사람일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서태오를 후자라고 생각했다.

하원식은 헛웃음을 쳤다.

“내가 누군지는 알아? 감히 내 앞에서 폼을 잡아?”

“당연히 모르죠.”

서태오는 고개를 저었다.

“난 황지환 형님 사람이야!”

아주 대단한 사람을 얘기한 것처럼 하원식의 표정에서 살기와 함께 오만함이 느껴졌다.

“황지환 씨가 누군데요?”

서태오는 정말로 그를 몰랐다.

하원식은 또 웃음을 터뜨렸다. 황지환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감히 그와 맞서다니.

한종수는 기겁하며 덜덜 떨었다.

“태오 씨, 쓸데없이 문제 일으키지 말아요. 우리 남영시에서 건설 쪽 일을 하다 보면 그중 90%는 다 황지환 씨 사람이에요.”

다른 건 몰라도 건설 쪽에서 권력을 쥐고 있다는 것은 상당한 세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건설 쪽은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쟁력이 강해야 했기에 건설 쪽에서 권력을 쥐고 있다는 것은 합법적인 일뿐만 아니라 불법적인 일도 한다는 것을 뜻했다.

정준혁도 그 의미를 알아채고 서태오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다들 두려워하자 하원식은 의기양양하게 미소를 지으며 정준혁과 정하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좀 무서운가 보네. 지금 당장 나한테 무릎 꿇고 사죄해. 그렇지 않으면 저 노인네를 불구로 만들고 저 여자를 욕보일 테니까. 알아들었어?”

서태오의 눈동자에서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서태오는 타지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었기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슬퍼하는 것밖에 없었다.

지난 3년 동안 그가 힘들게 수련한 이유는 자신이 아끼는 사람을 지키면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상대가 황지환이든 누구든 서태오가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서태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하원식을 향해 술병을 휘둘렀다.

이내 술병이 하원식의 머리를 강타했고, 곧 새빨간 피가 하원식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서태오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부서진 술병으로 하원식의 가슴을 공격하려고 했다.

서태오의 엄청난 기세에 하원식은 화들짝 놀랐다.

무자비한 하원식도 서태오가 무식하게 공격해 오자 겁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하원식은 서태오 같은 사람을 처음 봐서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옆에 있던 하원식의 부하들이 상황을 보고 빠르게 서태오를 둘러쌌다.

그러나 서태오는 마치 미쳐버린 사람처럼 부서진 술병을 좌우로 휘둘렀고 눈 깜짝할 사이 일곱, 여덟 명의 사람들이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렸다.

다들 헛숨을 들이켰다.

서태오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빠르게 하원식에게 다가가 그의 멱살을 잡은 뒤 피가 묻은 술병을 그의 얼굴에 가까이 가져다 댔다.

“아까 한 말 다시 한번 해봐요.”

하원식은 서태오의 섬뜩한 눈빛에 겁을 먹었다. 서태오는 정말로 그를 죽여버릴 생각인 것처럼 보였다.

“이 자식, 너 지환이 형님이...”

협박하려는 순간 하원식은 부서진 술병의 유리 조각이 살갗을 찢는 걸 느꼈다. 그 탓에 뺨이 화끈거렸다.

“그 지환이 형님이 대단한 분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죠? 오늘 여기 서 있는 사람이 당신이 아니라 그 사람이었어도 우리 아버님과 아내에게 사과해야 했을 거예요. 그러니 그 사람의 부하인 당신도 당연히 그래야죠.”

서태오는 살기등등했다.

하원식은 왠지 모르게 불안해졌다. 그는 문득 사람을 죽인 적이 있는 살벌한 자들이 떠올라 덜컥 겁이 났다.

“사과할게. 사과한다고! 한 번만 용서해 줘. 내가 입이 좀 거칠어서 그래. 그러니까 다 개소리였다고 생각하고 날 한 번만 용서해 줘.”

정준혁과 장현주는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서태오가 이렇게 배짱이 좋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그들을 지키려고 나선 것이니 감동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서태오에 반해 한종수는 조금 전 유진설이 맞았을 때 찍소리도 못했었다.

정준혁은 서둘러 서태오를 말렸다.

“태오야, 적당히 해. 우리도 똑같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어.”

서태오가 손에 힘을 풀자 하원식은 기다렸다는 듯이 헐레벌떡 밖으로 뛰쳐나갔다.

“여기 당신 부하들 데려가야죠.”

서태오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하원식의 부하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빠르게 밖으로 나갔고 그렇게 룸 안에는 정하람의 친지들만 남게 되었다.

다들 넋이 나간 얼굴로 서태오를 바라볼 뿐이었다. 한동안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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