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검우문호가 직접 검상을 보니 상처에 칼을 그대로 넣었다 뺀 것으로, 반항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속도가 매우 빠른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상처는 절대로 주명양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명양이 어설픈 무공을 조금 한다고 하지만 우문군을 죽이는 건 쉽지 않은 게 내공이 심후하지 않은 사람이 검을 쓰면 호흡이 요동칠 수 있어 발각될 가능성이 크고 발각되지 않았다고 해도 검이 들어간 후 우문군이 놀라서 깨나면 검을 뽑지 못해 상처가 비스듬하게 생긴다.그러나 이 범인은 쾌검을 사용하는 사람임과 동시에 내공이 심후해 내공으로 검을 더욱 빠르게 움직여 알아채기 쉽지 않았다.즉 검이 들어가서 나오는 고통이 느껴지기도 전에 범인은 이미 도망쳤을 가능성이 클 정도로 검법이 놀랍도록 빠르다.우문호가 시동에게 물었다.“낮에 누가 왔었나?”“구씨 가문의 둘째 부인께서 오셨는데 역시 은자에 관한 일이었습니다. 첫째 황자 전하께서 부인께 은자를 돌려주실 거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둘째 부인께서는 바로 가셨고요.”우문군 부부가 싸운 원인은 돈놀이했던 은자인 것이 틀림없고, 둘째 부인이 오늘 와서 돈놀이한 게 들통나자, 우무군이 격노해서 주명양과 싸웠다. 하지만 주명양이 나갈 때 우문군은 아직 멀쩡했다. 즉 주명양이 간 뒤에 범인이 온 것이다.‘임소인가?’우문호는 즉시 부정했다. 임소는 계속 귀영위가 감시하고 있었는데 임소가 와서 살인을 저질렀다면 귀영위가 반드시 알렸을 것이다.제왕이 사람을 데리고 자세히 조사하고 돌아와서 물었다.“형, 포도대장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범인은 쾌검을 쓰는 사람이라는데 이 상처는 어쩌다 생긴 것일 수도 있잖아요, 반드시 쾌검이어야 하나요?”“이 상처가 만약 다른 사람 몸에 있었으면 쾌검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우문군의 몸에 났기 때문에 쾌검에 의한 게 틀림없어. 우문군은 무공이 뛰어나고 내공도 상당히 심후해서 취해서 자는 중이이어도 검기를 감지할 수 있어. 막는 건 늦어도 상처에 넣은 칼을 뺄 때 움직여 상처가
둘째 부인과 주명양비록 주명양과 구씨 가문 둘째 부인에게 살인 혐의는 없지만 낮에 둘째 부인인 돈 문제로 찾아왔고 저녁에 주명양이 돈 때문에 우문군과 싸우다 몸싸움이 있었으므로 경조부는 양쪽 모두를 사정 청취하기로 했다.둘째 부인은 오늘 우문군에게 물어본 뒤 십중팔구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속은 좀 끓였지만, 이자를 괜찮게 번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그런데 한밤중에 경조부 사람이 와서 자신을 깨우더니 첫째 황자가 자객에게 당했다니 정신이 아득했다.첫째 황자에게 사고가 났으니 경조부에서도 밤중에 달려왔고 구 후작 나리도 오고 구씨 가문에 살고 있는 어른들도 하나둘 일어나 사정을 물었다.둘째 부인의 돈은 원래 비자금으로 그동안 사실 가문의 돈을 슬쩍 할 일이 적지 않았는데 몇 년전 구 후작 부인이 와병 중이라 둘째 부인에게 집안일을 맡긴 뒤, 몇 년간 적지 않은 은자를 슬쩍해 왔다. 그렇지 않고서야 혼자 힘으로 어떻게 수십만 냥을 모아?그래서 가문의 가장인 구 후작이 있고 장방에서 회계를 보는 자도 자리에 있으니, 둘째 부인은 감히 돈놀이 얘기는 입도 뻥긋 못하고 은자 몇천 냥을 주명양에게 빌려줬는데 오래도록 갚지 않아 집에 가서 독촉한 것으로 주명양이 없어서 첫째 황자 전하께 말씀드렸다고 했다.구 후작 부인이 이상하다고 느낀 게 둘째 부인을 잘 아는데, 성격이 소심하고 주명양 어머니에게 아부를 떨다가 죽고 나니 주명양이란 조카에게 진심으로 잘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주명양이 돈을 뜯으러 왔으면 진짜 체면상 열 냥쯤 줘서 쫓아 보냈지! 은자 수천 냥을 빌려준다는 건 불가능했다.단지 지금 경조부에서 와서 물으니 분명 더 이상 얘기하지 않을 것으로 이런 예의상의 사정 청취는 쫓아 보내면 그만이다.하지만 구사와 원경병은 생각이 있어서 경조부 사람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뒤, 구사가 구 후작을 찾아가 이 일을 얘기했다. 구 후작이 듣고 격노하더니 작은 나리를 불러 둘째 부인 일을 깨끗하게 처리해 후작부가 연루되지 않도록 하라고 했다.작은 나
다친 주명양과 우문군주명양이 주씨 가문으로 돌아오자, 빚 독촉을 하러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집사는 안으로 들여야 할지 어쩔지 주재상에게 보고하자 주재상이 말했다. “빚을 졌으면 갚는 게 천지의 도리지. 채주가 와서 빚을 달라고 하는데 어찌 문밖에 세워 둘 수 있나? 전부 안으로 들어와 첫째 황자비를 찾아가라고 해.”주 재상의 말에 빚쟁이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삽시간에 집안이 시장통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빚쟁이여도 이 집에서 감히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없었다.주명양은 자기 몸이 다친 것을 핑계로 손 주인장을 찾아가 빚을 독촉하는 걸 잠시 유예하고 사람들에게 돌아가서 기다리거나 직접 손 주인장을 찾아가도 된다고 했다.하지만 그 돈은 전부 주명양의 손을 거쳐 빌려준 것이니 본인들이 손 주인장을 찾아가도 소용없다. 따라서 원래는 주명양에게 삿대질할 빚쟁이들이 기세등등하여 주명양을 오히려 보살처럼 떠받들며 다음날 보약을 들고 하루빨리 상처가 나아서 손 주인장에게 돈을 받아 와 주기를 바랐다.주명양이 며칠 상처를 돌보는데 주재상이 사람을 보내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냐고 했다.주명양은 당연히 주 씨 저택을 떠나지 못했다. 그래서 주재상 앞에 무릎을 꿇고 통곡하며 비구니가 될지언정 돌아가서 첫째 황자를 다시 모시고 싶지 않다고 했다. 주명양 말로는 첫째 황자와 이미 부부간의 애정이 식어 인연을 끊었다는 것이다.주재상은 억지로 보내지 않고 집에 머물라고 허락했는데 주명양은 울고불고 죽겠다고 해야 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주명양은 사람들에게 상당한 빚을 졌기 때문에 이렇게 친정에 눌러앉아 있는 동안 밖에 함부로 나갈 수 없었다.우문군이 지금 생사도 분명치 않은 상태인데 계측 기계가 없으므로 상황이 얼마나 안 좋은지 원경릉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우문군 사건이 터진 다음날 우문호가 직접 입궐해서 명원제에게 보고하는데 이미 이 일을 알고 있었고 진비에게는 감추고 있었다.명원제가 보고를 듣고 별말 없이 심지어 슬픈 기색도 없는 게, 마치 자기
명원제와 원경릉의 독대요리가 차려졌는데 명원제는 묻지 않고 원경릉에게 밥을 먹으라고 했다.원경릉이 수저를 들고 먹기 시작하자 아바마마와 식사하는 것이 처음도 아닌데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그녀가 앞에 두고 있는 사람은 아들을 잃을 수도 있는 늙은 아버지이기 때문이다.우문군이 철이 없다며 화를 냈지만, 아비로서 우문군의 생사에 관해 못 들은 척 상관하지 않을 수도 없고 무관심할 수도 없었다.그래서 밥을 정리하는데 원경릉이 배가 상당히 고팠지만, 가슴이 아파 많이 먹을 수 없었다.그런데 명원제는 밥 한 공기에 국을 세그릇이나 비웠고, 결국 목여태감이 와서 삼가게 했다. 명원제가 겨우 물리는 모습에 원경릉의 마음에 두려움이 생겼다.궁궐의 음식은 전부 법도가 있어서 요리가 아무리 맛있어도 3번 이상 젓가락질할 수 없으며 국을 세 그릇이나 먹는 건 더욱 안된다.명원제의 이런 모습을 보니 원경릉도 조금 괴로웠다.우문군에게 사고가 난 뒤로 지금까지 원경릉은 의사의 책임감을 따라 치료했을 뿐으로 다른 감정이 조금도 생긴 적이 없었는데, 지금 명원제를 대하고서야 우문군이 무사해야 명원제가 기쁠 수 있다면 우문군이 괜찮기를 바랐다.명원제가 식사를 마치고 입을 닦더니 목여태감에게 남은 식사를 물릴 것을 분부한 뒤 두 손으로 탁자 끝을 잡고 눈을 들어 원경릉에게 말했다.“배가 부르니 얘기할 수 있겠군. 그 애 지금 상황이 어떤가?”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더욱 괴로운 게 명원제는 빈속으로 들어서는 안 된다. 듣고 나면 오늘 밤 식사를 더 못하실 테니까.명원제는 어깨에 나라를 짊어지고 있어서 반드시 밥을 먹어야 했다.원경릉이 사실대로 털어놓았다.“상황이 좋지 못합니다. 과다출혈인 상태로 발견했을 때 이미 좀 늦은 상태였으며 지금 숨을 겨우 유지할 수 있는 건 다섯째의 추론에 의하면 큰아주버님이 중상을 입은 후 바로 기를 운용해 혈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효과가 뛰어나진 못했지만, 계속된 출혈은 막을 수 있어서 겨우 목숨은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명원제는 손을
아들 잃은 슬픔명원제는 오른손을 이마에 대고 두 손가락으로 미간을 문지르자, 손그림자가 얼굴을 덮어 더욱 피곤해 보였다.미간을 주무르더니 원경릉에게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어젯밤 거의 잠을 못 자고 해가 뜨기 직전에 잠깐 눈을 붙였는데 바로 놀라며 꿈이 깼네.”원경릉의 마음이 오그라붙을 정도였다. “아바마마 마음 편히 하십시오, 옥체가 중하십니다.”명원제가 손짓으로 말리며 말했다. “꿈속에서 첫째가 짐 앞에서 울면서 꿇어앉아 있는 걸 봤어. 짐에서 불효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앞으로 다시는 짐 곁에 있을 수 없다고 했어.”원경릉의 가슴이 쿵쿵 뛰었다.“아바마마, 그건 꿈에 불과합니다.”“그래. 꿈이야!” 명원제 눈에서 슬픔이 한곳으로 모이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렇게 선명하다니, 심지어 짐은 첫째의 울먹이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어. 어찌나 처연하던지. 아직 요만할 때 걷지도 못하고 짐에게 안겨서 두 눈을 반짝이는 게 하늘의 별과 같은 게 불과 얼마 전인데. 당시 대신들이 전부 이 아이는 앞으로 큰 인물이 될 거라고, 걔……걔는 짐의 장자야, 짐의 첫아들이라고, 뒤에 짐에게 많은 아들이 생기지만 걔가 첫 번째였어. 다를 수밖에 없잖아.”원경릉이 듣는 데 마음이 너무 아프고 코끝이 시큰해서 눈물이 솟구쳤다.“아바마마, 그렇게 괴로워하지 마세요.”“제일 슬픈 게 바로 이점이야,” 명원제가 천천히 일어났는데 과연 부쩍 늙어버린 듯 목소리가 떨렸다, “걔를 위해 괴롭고 가슴 아파할 가치도 없다는 거, 첫째 황자인데 가장 못난 놈이야.”우문군의 지위를 떨어뜨릴 때 명원제도 마음이 아팠다. 원경릉은 그때도 알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차원이 다르다. 이번에 원경릉은 명원제의 마음속 절망을 들을 수 있었다.“걔는 쓸모없는 게 두려웠겠지. 적 귀비에게 가서 얘기해, 천이 혼례를 앞당기라고 최대한 빨리 먼저 치르도록.” 명원제가 나지막하게 말하더니 원경릉에게 나가보라고 손짓했다.원경릉이 명원제 등을 보면서 예를 취한 뒤 말했다. “예,
명원제와 우문호의 밀담어서방에서 대략 반 시진 동안 명원제는 우문군과 주명양의 부부관계를 포함해 뭐든 우문호에게 물었는데, 우문군이 주명양을 팼다는 얘기를 듣고 처량한 눈빛으로 말했다.”잘하는 짓이다, 아주 황실 체면에 먹칠을 하는구나.”전에는 전장을 누비던 장수였는데 마지막엔 고작 집구석에서 아내를 패는 걸 낙으로 삼다니 명원제가 가슴을 치지 않고 배겨?“그러고 보니 아직 범인에 대한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고?”“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소신이 전에 보고드렸듯이 경성에는 암암리에 활동하는 사람이 있어 평남왕부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현재 임소가 우두머리로 보이며 몇몇 강남 거상과 비밀스러운 음모를 꾸미고 있는데 큰형이 그자들에게 당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그자들을 네가 그렇게 오래 조사했는데 아직 이렇다할 결과가 나오지 않았어?” 명원제가 눈에 띄게 조급해졌다.“이자들은 깊숙이 숨어 있고 원래 우리 시선은 줄곧 홍엽 공자에게 빼앗겨 제때 그들의 활동을 발견해 내지 못했습니다. 소신의 불찰입니다.”우문호가 최근 최선을 다해 정사에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원제도 알아서 차마 책망하지 못하고 물었다. “이게 사실은 홍엽 공자가 준비한 사람들일 리는 없느냐? 홍엽은 수하에 밀정이 그렇게 많은데 진작, 북당에 수많은 첩자를 뿌려 놨겠지.”“소신 조사해 보겠습니다.”사실 우문호는 이번에 홍엽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눈 앞의 모든 수법이 홍엽이 대주에서 꾸민 짓과 상당히 비슷한 것이, 첩자로 천지를 뒤덮고 머리 하나가 나와도 나머지 하나를 찾을 수 없는 방식 말이다.마치 꼭…… 누군가 홍엽을 모방한 듯 그의 수단을 베끼고 있었다.“지금 적어도 임소가 경성에 있는 이자들의 수뇌라는 것이 확실하면 어째서 잡아들이지 않지?” “안 됩니다. 만약 그를 잡아들이면 수하에 있던 일련의 세력은 더욱 깊이 숨을 게 분명합니다. 지금 그들이 행동을 개시해 소신이 벌써 여러 방면으로 감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움직이기만 하면
순왕의 혼례원경릉이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 여전히 태상황을 끌고 빌었다. “더 얘기하게 해 주세요. 저 이제 막 우리 떡들 낳는 거까지 얘기했는데 이 대목까지만 마치고 갈게요.”“얼른 끌고 가, 끝이 없어 아주.” 태상황이 파리 쫓듯이 손을 내젓는데 불쾌한 모양이다.우문호가 속으로 이상한 게 ‘원 선생이 무슨 자극을 받은 거지? 어쩌다가 건곤전에서 황조부에게 그때 얘기를 시시콜콜한 거야.’ 우문호는 원경릉이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을 되살릴까 두려워 얼른 데리고 나왔다. 궁을 나와 마차에 오르며 우문호가 원경릉 손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말하고 싶으면 나한테 해. 난 네 편이야. 네 감정이 무너져도 내가 지킬 수 있어. 그동안 널 힘들게 했던 거 알아.”원경릉이 뺨을 비비고 한숨을 쉬더니 맑은 눈동자에 눈물이 살짝 어렸다.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태상황 폐하께서 감정을 이입해서 털어놓으시기를 바랐던 거야. 우문군의 사고로 태상황 폐하께서 분명 괴로우실 테니까. 하지만 우무군이 저지른 일 때문에 괴로운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실 테니 그런 감정이 마음속에서 계속 반복되면 어떤 형태로 변질되어 버릴지 몰라. 요 몇 년간을 돌아보니 내 감정이 태상황 폐하의 감정을 증폭시켜 주는 작용을 하더라. 화내야 할 때는 화를 내고, 가슴 아파야 할 때는 가슴 아프고 어쨌든 출구가 있어야 해, 이것도 심리 치료의 일환이야.”우문호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이것도 치료라고?”“당연하지. 황 조부께서 같이 얘기하고 나서 좀 인간미가 보이지 않았어?” 원경릉이 우문호의 어깨에 기대 있으며 말하지 않은 게 있었다. 이 방법은 많이 쓰지 않는 편이 좋았다. 왜냐면 그동안의 일을 얘기하면 원경릉 본인이 진짜 속이 쓰리기 때문이었다.우문호는 두 손으로 원경릉을 품에 안고 턱으로 살짝 차가워진 그녀의 이마를 지그시 눌렀다.순왕의 혼례를 당기자 더 바빠졌다. 적귀비는 정말 전력을 다해 순왕을 위해 준비하고 다행히 태후의 장례 뒤로 삼년상이 아직 끝나지 않아 혼례를
우문군 장례에 가는 요부인혼례를 마치고 다음 날 우문호는 비로소 상을 보고하러 입궐했다.명원제가 다 들은 뒤 몸을 천천히 용상에 기대며 허물어졌고, 더할 나위 없이 피곤했다.우문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바마마, 슬픔을 거두소서!”명원제는 오랫동안 말없이 조각된 화려한 대들보를 바라보는데, 무언가 밀물처럼 밀려와 그를 휩쓸고 지나갔다.한참 뒤 우문호에게 말했다. “장례는 너희 형제들이 마음을 다해 예부와 같이 치르도록 하라.”우문호가 무릎을 꿇고, “.”답하더니 잠시 주춤거리며 말을 덧붙였다.“아바마마 사후 추존을 내리실 의향은 없으십니까?”명원제가 고개를 흔들고 입술을 일자로 다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우문호는 어명을 받들고 갔다.추존의 자비를 베풀어 주지 않으시니 첫째 황자의 법도에 따라 장례를 치를 수밖에.진비 쪽에도 감출 수 없으니, 명원제가 목여태감을 직접 보내 알리게 했다.진비가 듣고 울다가 거의 기절했는데 황귀비가 직접 후궁 비빈을 데리고 가서 위로했다.주명양과 우문군은 아직 이혼하지 않아서 지금 우문군이 떠났으니 주재상은 주명양을 집으로 돌려보내 장례를 치르는 것을 도운 뒤 만약 친정으로 돌아오고 싶으면 다시 돌아오라고 했다.요부인은 이때 아직 초왕부에 있었다. 우문군이 사고가 났을 때 원경릉이 이를 알리지 않았고 요부인은 최근 훼천을 피하느라 바깥 세계와 접촉을 하지 않아 뜻밖에도 그동안 이 일을 몰랐다.그래서 원경릉이 요부인에게 우문군의 죽음을 알리자, 요부인은 의외라 놀랐으나 단지 의외일 뿐 다른 감정은 없었다.요부인이 유일하게 걱정하는 건 딸들이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 여부였다.희열이는 의대에 있어서 원경릉이 사람을 보내 데리고 온 뒤 요부인이 자매에게 설명했다.희열이는 비교적 쉽게 받아들였지만 희성이는 듣고 잠시 울었다. 자매는 아버지에게 사실 공포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우문군은 어릴 때부터 딸들을 친근하게 대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딸로 여긴다는 게 고작 딸을 탈출구로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