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황제는 오랜 기간 지병을 앓고 있고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유지영은 정왕 세자 배준형과 혼인하고 삼 년 동안 지아비를 살뜰히 섬기며 현모양처 역할을 했다. 본디 그녀는 밖에서 길러진 태후의 딸이었다. 태후는 딸을 어여삐 여겨 배준형을 태자의 자리로 올렸다. 책봉식 전, 유지영은 정왕부를 위해 불공을 드리러 산속 사찰로 갔다가 길을 잃고 산적들에게 붙잡혔다. 삼일 간 온갖 혹형과 능욕을 당한 후, 경성의 성문 앞에 짐짝처럼 버려졌다. 체면을 보전하기 위하여 배준형은 진실을 조사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를 회임한 그녀를 죽이고 자살로 위장했다. 숨이 끊어지기 전, 사촌동생 유선주는 산적은 자신이 매수하였으며 이제 곧 태자비가 될 거라고 말했다. 그렇게 유선주는 더러운 술수로 그녀의 목숨을 빼앗고 그녀의 자리와 모든 것을 차지했다. 그 배후에는 배준형의 침묵과 관용도 빠질 수 없었다. 원한을 품고 죽은 유지영은 성년례 전날로 회귀했다. 그녀는 수구를 던져 망나니로 알려진 경왕 세자 배현준과 혼인을 약속했다. 경성 사람들 모두 그녀를 비웃었으나, 결국 배현준은 태자가 되었고 그녀는 태자비가 되었다. 반면 배준형은 반역에 패배하며 정왕부 일가가 죄인으로 몰리게 되었다. 사슬을 차고 지나가던 배준형은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하고서 유지영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지영아, 너는 본디 내 부인이었어야 했어!”
View More담혜정이 인주로 갔을 당시 오랜 시간 병을 앓았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송씨가 말한 것처럼 혼수를 모두 탕진할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과거 담혜정이 시집을 올 때, 어마어마한 혼수와 점포, 장원을 가지고 왔다. 매년 담씨 가문에서 보낸 명절 선물만 십이 년 동안 모아도 적지 않았다.“게다가 아주버님께서 전방에 계시며 수시로 집안 돈을 끌어다 쓰셨습니다. 삼년 동안 가져간 돈만 이만 냥이 넘어요. 어머니, 형님의 혼수는 모두 거기 들어갔습니다.”송씨는 혼수 품목을 꺼내 탁자에 내려놓았다.“그 동안 저도 최선을 다해 아끼며 살림하였는데 고생했다는 말은 못 들어도 원망만 들으니 너무 서럽습니다.”말을 마친 송씨는 눈시울을 붉혔다.유씨 노부인은 혼수 품목을 유지영에게 건넸다.“지영이 너도 들었지? 네 숙모가 어린 너를 생각해서 혼수를 잠시 보관해 주었는데 그동안 너희가 쓴 돈이 적지 않아서 너에게 돌아갈 몫이 줄어든 게야.”장부와 품목 모두 유지영의 손에 건네졌다.송씨는 유지영이 장부를 봐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해서 대충 얼버무려 적고도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유지영은 장부를 펼치고는 첫 장부터 눈살을 찌푸렸다.“팔 년 전 십일 월에 약을 세 번을 지었군요. 한첩에 삼백 냥, 총 구백 냥이고요.”송씨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어머니 탕약에 들어가는 약재가 워낙 희귀 약재만 들어가서 지출이 어마어마했어. 탓을 하려면 사실 네 어머니의 병세를 탓해야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감당을 못해서 진작에 저세상으로….”유지영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숙모님, 어머니께서 돌아가신지 햇수로 구 년입니다. 그런데 이 약은 대체 어디에 쓰였나요?”그제야 송씨는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장부를 가로채더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일년 동안 기록한 약값만 삼십만 냥이군요.”유지영은 장부를 꽉 쥐고 계속해서 말했다.“이 많은 은자의 출처가 불분명하다니. 점포를 열 개는 차리고도 남겠어요. 게다가 약을 지은 기록만 있고 어떤 약재가 얼마나 들어갔는지는 적지도 않으셨네요.”송씨는
두 사람의 시녀들이 각자 가서 갈아입을 옷을 챙겨왔다.깊은 밤, 유선주가 갑자기 물었다.“언니는 여전히 정왕 세자를 마음에 두고 있네요. 제가 양보할게요.”갑작스러운 전개에 유지영은 피식 웃고는 못 들은 척했다.유선주는 그런 유지영을 빤히 바라보다가 눈살을 찌푸렸다.하룻밤이 지난 후, 날이 밝았다.시녀들이 먹을 것을 가져왔다. 유선주의 시녀는 따뜻한 국과 밥, 그리고 고기반찬을 가져왔다.반면 홍주는 퍼석한 만두를 가져오며 눈시울을 붉혔다.“군주님, 소인이 무능하여 이런 것밖에 못 가져왔습니다.”“언니, 먹고 싶으면 제 걸 조금 덜어드릴게요.”유선주가 선심을 쓰듯 말했다.집안살림을 장관하는 송씨가 손을 써두었다는 것은 눈 감고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무덤덤하게 만두를 깨물며 말했다.“사당에서 고기를 먹는 건 부처님을 능멸하는 행위인데 꾸중이라도 들으면 어쩌려고.”유선주는 그러거나 말거나, 밥을 맛있게 먹었다.둘은 식사를 마친 후에 다시 무릎을 꿇었다.이때 바깥이 소란스럽더니 노부인의 측근 시녀인 해월이 다급히 안으로 들어왔다.“군주님, 담씨 가문에서 사람이 오셨다고 노부인께서 모셔오랍니다.”담씨 가문이 오늘 방문한 건 필히 혼수때문일 것이다.유지영은 일어서서 뻐근한 무릎을 대충 문지르고는 대청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외숙모 한씨가 분노한 얼굴로 노부인과 대치하고 있다가 유지영을 보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지영아, 네 외할머니께서 어제 성문 앞에서 벌어진 일을 듣고 어찌된 일인지 알아보라고 하더구나.”한씨가 말했다.상석에 앉은 유씨 노부인은 손에 염주를 들고서 담담히 말했다.“지영아, 떠도는 소문은 믿을 게 못된다. 그동안 국공부는 너를 홀대한 적도 없는데 소란스럽게 혼수 품목을 조사한다면 네 숙모들이 얼마나 상심이 크겠니.”한씨가 피식거리며 말했다.“노부인, 말씀이 심하시군요. 저희는 그저 손버릇이 더러운 종이 주인의 물건을 탐했나 하여 알아보러 온 것뿐인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하물며, 이 일을 경성
연회가 끝나고 일가족이 국공부에 돌아갔을 때는 이미 밤중이었다.유씨 노부인은 마차에서 내리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였다. 옆에 있던 시녀가 노부인을 부축했고 송씨가 비명을 질렀다.“어머니!”유씨 노부인은 불쾌한 얼굴로 손만 휘휘 저었다.저택에 들어선 후에야 노부인은 말했다.“다들 대청으로 모이거라.”송씨 일가와 셋째네 일가 모두 대청에 불려갔다. 유씨 노부인은 다짜고짜 유선주에게 말했다.“유수각은 원래 지영이가 살던 곳이니 오늘 바로 거처를 옮기거라.”유선주는 멈칫하더니 서러운 눈으로 유지영을 바라봤다.“할머니, 단하각도 저는 괜찮습니다.”유지영이 담담히 말했다.유씨 노부인은 단호히 단언했다.“이 집안은 유국공부이지 상서부가 아니다. 유국공부의 적장녀는 너이니, 모든 건 너를 중심으로 돌아가야지. 하물며 유수각은 원래 너의 처소 아니냐.”유씨 노부인의 고집에 유선주도 별다른 수가 없어 애써 대범한 척 답했다.“제가 어리석었네요. 언니의 거처를 빼앗으려 하다니. 제가 옮기겠습니다.”그제야 노부인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송씨는 얼굴을 부여잡고 하소연했다.“오늘 지영이 넌 혼자 예쁨을 받고서 우릴 위해 한마디도 하지 않더구나. 우리가 가족이니?”유씨 노부인도 그 말은 인정하는 바이기에 반박하지 않았다.유지영은 곤혹스럽다는 듯이 물었다.“그럼 숙모님은 제가 비녀 얘기를 인정해야 했다는 말씀인가요? 아니면 제가 정왕 세자가 싫어서 경왕 세자와 정을 통하고 판을 짰다고 말해야 했다는 건가요?”“너!”송씨는 분노에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입만 살아서는 막무가내로 구는구나. 태후께서 좀 예뻐하신다고 웃어른에 대한 공경이 아예 없어.”그 외에는 더 시비를 걸 건수가 없었다.“지영아, 오늘 네가 좀 심하긴 했어.”유씨 노부인이 음침한 얼굴로 말했다.“네 숙모는 언제나 집안을 먼저 생각하는데 너도 적장녀로서 책임을 져야지.”유씨 노부인은 유지영이 국공부를 위해 말 한마디 하지 않아 모두의 웃음거리로 만든 것이 불만이었다.유지영은
사죄라는 말이 오늘따라 무겁게 느껴졌다.정왕비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며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서 태후를 바라보았다.“마… 마마….”정왕비는 전혀 내키지 않은 얼굴로 애원하듯 태후를 바라보았다.서 태후가 되물었다.“내 경성에서 정왕비의 위명은 익히 들었네. 정왕비가 입 한번 벙끗하면 모두가 따른다지. 그래서 그런가 태후인 내 말이 말 같지 않은가 보군.”그 말이 떨어지자 분위기는 더욱 얼어붙었다.태자가 정해지지 않았음에도 정왕부는 마치 태자가 된 양, 거만하게 굴었다. 하지만 태후의 불만을 산다면 언제든 후보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그들도 모르지 않았다.적어도 지금의 서 태후는 배현준을 좋게 보고 있었다.한참의 고민 끝에 정왕비는 이를 악물고 유지영을 향해 말했다.“장녕 군주, 아까의 일은 내가 경솔하였네. 뜬구름 잡는 소문만 믿고 그대를 오해하였어.”말을 마친 그녀는 유지영을 향해 가식적인 미소를 지었다.유지영도 담담한 미소로 응했다.“오해였다고 하니 저도 더 이상 캐묻지 않겠습니다.”정왕비는 서 태후의 눈치를 살피고는 억지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역시 듣던 대로 사려가 깊군.”“되었네. 오늘은 지영이를 환영하기 위한 자리이니 쓸데없는 얘기는 여기까지 하지.”서 태후가 손을 휘휘 저으며 사건을 마무리지었다.눈치 있는 사람이라면 서 태후가 갓 경성에 올라온 장녕 군주를 각별히 아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연회가 다시 시작되자 정왕비는 이를 갈며 배준형을 나무랐다.“만반의 준비를 했다지 않았느냐. 어찌하여 저쪽에 약점을 잡혀서 태후마마의 귀에까지 전해지게 만들어?”유지영의 혼사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경솔하게 유선주와 정혼한 것은 약조를 저버린 행위였다.배준형은 입술을 깨물며 작게 답했다.“제가 경솔했습니다.”“태후께서 많이 노하신 것 같아. 절대 배현준 그놈에게 기회를 주면 안 된다. 태후께서 장녕 군주를 각별히 아끼시는 것 같구나.”정왕비는 굳은 표정으로 유씨 노부인 일가를 쳐다보다가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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