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물론 형수에게 마음이 있다지만 형 앞에서 형의 여자와 자고 싶다고 하면 형이 기분 상할 게 뻔하다.게다가 내가 이렇게 말하자 경계하던 형의 눈빛은 금세 풀리며 말했다.“네가 나 안 도와주면 계속 가다가 나랑 네 형수 이혼할지도 몰라. 네 형수가 아이를 너무 좋아해서 내가 만약 네 형수 임신하게 하지 못하면 네 형수는 절대 나와 함께 지내려 하지 않을 거야.”“차라리 병원에서 검사해 봐요. 아무래도 심리상의 문제인 것 같은데, 심리상담 한번 받아봐요.”“싫어. 아무 문제도 없는데 왜 심리 상담을 받아?”형이 바로 거절하자 나는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형이 이러는 것도 방법은 아니잖아. 설마 계속 형수와 이럴래?”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형, 난 형이 왕정민처럼 되길 바라지 않아. 돈과 권력도 중요하지만 행복한 가정도 중요하잖아. 형수 좋은 사람인데 절대 저버리지 마.”내 말에 형은 싱긋 웃으며 나를 보더니 갑자기 물었다.“수호야, 넌 형수가 예쁘다고 생각해?”그 물음에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 조심스럽게 대답했다.“형, 갑자기 그건 왜 물어?”그랬더니 형이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그냥 아무렇게나 대화해보자는 거니까. 너랑 내가 친형제도 아니니 네가 여기 있는 걸 네 형수가 싫어할까 봐.”“그 정도는 아니야. 형수가 나 여기서 지내는 거 별로 신경 안 써.”“그럼 형수가 평소에 잘해줘?”“그냥 그래. 너무 좋지도 않은데 그렇다고 나를 일부러 괴롭힌 적은 없으니까.”“네 형수 좋은 사람이야. 네가 내 동생이라고 하니까 본인도 동생처럼 대하겠다더라. 형수가 너 괴롭히지 않았으면 다행이고. 네 형수가 좋은 건 나도 알아. 걱정하지 마, 내가 절대 네 형수한테 미안한 짓 안 할 테니까.”그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방금 형이 왠지 나를 떠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아마도 내가 형수의 일에 너무 관심을 보여 의심이 생긴 모양이다.‘앞으로 더 조심해야겠네. 함부로 말하지 말자.’나는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내가 직접 인사해도 상대가 나를 바로 저와 바람 피던 상대라는 걸 보아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나는 대담하게 여자에게로 걸어갔다.“안녕하세요.”여의사는 고개를 들어 나를 흘긋 보더니 차갑게 대답했다.“누구세요? 저 아세요?”역시나 여자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이에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저는 한의과 인턴 정수호라고 해요. 그쪽은 이름이 뭐예요?”“그걸 알아서 뭐 하게요?”‘이 여자 낮에는 정말 쌀쌀맞네.’하지만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나도 무서울 거 없어 계속 수다를 떨었다.“친해지고 싶어서요.”“나한테 관심 있어요? 아니면 그냥 나랑 자고 싶나?”여자의 직설적인 말에 나는 진지하게 받아쳤다.“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난 정말 그쪽한테 관심 있는 것뿐인데.”그 말에 여의사는 싱긋 웃더니 갑자기 사람들을 향해 높게 소리쳤다.“다들 여기 봐요. 이 사람이 저 꼬시겠대요.”“전장!”‘이 여자도 남주 누나랑 같은 결이잖아?’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우리 쪽을 바라보는 바람에 나는 당장에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결국 다급히 얼굴을 가리고 도망치려 할 때 여자가 차갑게 웃으며 중얼거렸다.“고작 그까짓 배짱으로 나를 꼬시겠다고?”한의과로 돌아오는 내내 내 얼굴을 화끈거려 생각할수록 난감하고 민망했다.‘젠장, 그 여자 미친 거 아니야?’‘싫으면 싫은 거지,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나도 참 무덤을 스스로 파네. 왜 갑자기 저 여자는 건드려서. 이러고 어떻게 홍보 책자를 나누지?’“오늘은 왜 나가지 않아?”마동국이 사무실에 오자마자 묻는 바람에 나는 너무 머쓱했다.“오늘 나가기 싫어요.”“그래, 마음대로 해.”마동국은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결국 나는 의서 한 권을 들어 대충 보기 시작했다.생각할수록 억울하고 그 여자에게 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다시 그 여자의 카톡을 추가했다.[나 하고 싶어요.]그러고는 아주 직설적
물론 그저 다리 사진이었지만 검은 스타킹을 신은 다리만으로도 충분히 유혹적이었다.검은 스타킹은 가늘고 긴 다리를 소유한 사람한테 어울리는데 여자의 다리가 마침 그런 스타일이었다.과장하지 않고 두 다리만으로도 사람을 흥분하게 할 정도였다.게다가 다리를 겹친 곳이 흰 천으로 가려져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의사 가운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출근 중에 찍은 건가?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병원 규칙상 의사들은 출근 시간에 검은색 스타킹을 신지 못한다.그렇다는 건 이 여자가 출근 시간을 이용해 몰래 사진을 찍었다는 건데.그 생각을 하니 나는 너무 궁금해 직설적으로 문자를 보냈다.[의사 같네요. 이거 출근할 때 찍은 거예요?][대단하네요. 이렇게 빨리 내 직업도 맞추고. 맞아요. 나 의사 맞아요. 그럼 내가 무슨 과인지도 맞춰볼래요?]이건 나도 예전에 주의하지 못했다.하지만 전에 5층에서 이 여자를 만난 기억이 나기에 나는 마동국에게 물었다.“마 교수님, 혹시 5층은 무슨 과예요?”“아, 남성 비뇨기과지.”“네?”나는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설마 그 여자가 남성 비뇨기과? 에이 설마.’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얼른 문자를 작성했다.[병원이라면 보통 근무 중 의사가 검은 스타킹을 신는 걸 금할 텐데. 이런 사진을 출근 시간에 몰래 찍었다는 건 일부러 신었다는 걸 말하겠죠. 혹시 남성 비뇨기과라 검정 스타킹 신고 남자를 유혹하려고 한 거예요?][정말 신기 있는 거 아니에요? 이런 것도 다 알고. 설마 나 스토킹했어요?]‘헐, 진짜라고?’‘그렇다면 이 여자가 매일 남자의 그곳을 볼 수 있다는 거잖아?’사실 내가 학교 다닐 때 산부인과를 선택하는 남학생들이 있다는 건 들었지만 남성 비뇨기과를 선택하는 여자는 처음 들어본다.‘정말 세상에 이상한 사람이 많네.’[매일 남자 거기를 그렇게 많이 보는데도 관심이 생겨요?]이 질문은 순전히 여자의 심리가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다.[관심 없어요. 그래서 연애도 별로 안 해요.][
[내가 출근하는 거랑 사진 보내는 게 무슨 상관인데요? 이런다고 환자 진료하는데 방해되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그쪽이야말로 힘들지 않나? 그러니까 이 누나 앞에서 앞으로 얌전히 굴어. 나 희롱할 생각 하지 말고.]‘내가 본인을 희롱한다는 걸 알았구나.’나는 머쓱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원래는 복수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내가 당한 꼴이라니.[나 괴롭게 만들었으니 어떡할래요? 얼른 와서 도와줘요.][꿈도 야무져. 혼자 해결해요.]그 뒤로 내가 아무리 문자를 보내도 여의사는 좀처럼 내 문자에 답장을 하지 않았다.결국 나는 혼자서 괴로워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 혼자 해결하러 화장실로 향했다.지난번에 민규가 엿들었던 경험도 있기에 나는 특별히 인터넷에서 무선 이어폰을 구매했었다.때문에 이번에는 이어폰을 챙겨 낀 뒤에야 영상을 틀었다.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몇 분이 지나도 감각이 오지 않았다.이 영상은 분명 아주 자극적인 것인데도 말이다.아마 이미 여자를 맛본 터라 고작 이런 영상 따위로 만족이 안 되는지도 모른다.이렇게 해결하는 건 개운하지도 않으니 말이다.결국 나는 카톡으로 남주 누나한테 문자를 보냈다.[남주 누나, 나한테 보여주겠다던 건 언제 보여줄 건데요?]내가 애교 누나 대신 남주 누나한테 문자를 보낸 건 사실 두 사람이 같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애교 누나한테 문자를 보냈다가 남주 누나한테 발각되면 큰일이니까.하지만 남주 누나한테 보내고 애교 누나한테 보내면 남주 누나는 아마 애교 누나를 의심하지 못할 거다.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린 나는 남주 누나에게 문자를 보내기 바쁘게 바로 애교 누나에게 문자를 보냈다.[애교 누나, 보고 싶어요.]그 시각.애교는 남주와 함께 집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그때 남주의 핸드폰이 울리자 문자를 확인한 남주는 싱긋 웃으며 그 문자를 애교한테 보여줬다.“이 푸들이 내 거기를 보고 싶다네? 완전 변태 아니야?”그걸 본 애교는 순간 기분이 우울해졌다. 하지만 그때 핸드폰이 울려 확인
나는 애교 누나가 부끄러워하는 걸 알았지만 너무 보고 싶었기에 애원하듯 말했다.[애교 누나, 진짜로 하라는 것도 아니고 바나나로 한번 보여달라는데 한 번만 제 소원 들어줘요.][이건 너무 부끄러워 못 할 것 같아요. 아니면 남주 찾아가요. 수호 씨가 남주더러 그런 영상 찍으라고 하는 거 난 상관없으니까.][전 상관있어요. 전 누나 걸 보고 싶단 말이에요. 애교 누나, 제발요, 한 번만 소원 들어줘요.]애교 누나는 문자를 보자마자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버렸다.내 요구가 너무 수치스러웠을 테니까.애교 누나처럼 보수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그런 일을 하는 데다 영상으로 찍으라고 했으니 아마 죽는 것보다 무서웠을 거다.하지만 왠지 모르게 기대감이 조금씩 생겨났다.가뜩이나 그 영상을 나한테 보낸다는 생각에 마음이 흔들렸을 텐데, 나의 끈질긴 애원 끝에 결국 동의했다.[알았어요. 시도해 볼게요.]애교 누나의 답변에 나는 순간 흥분했다.그와 동시에 기대와 기쁨이 더해졌다. 내 말에 애교 누나가 동의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얼마 지나지 않아 애교 누나는 나에게 영상 하나를 보내왔다.헐레벌떡 그 영상을 클릭해 보니 애교 누나가 카메라를 보며 바나나를 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물론 아주 정상적이고 평범한 영상이었지만 야릇한 쪽으로 상상하기엔 충분했다.그 영상을 보니 나는 다시 흥분했다.한편 애교의 집.영상을 찍은 애교는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새빨갛게 무르익었다.심지어 이 상태로 나가면 남주에게 분명 들킬 거라고 생각해 나갈 수도 없었다.애교는 거울 속에 비친 빨갛게 달아오른 자신을 바라보며 후회했다.“내가 왜 그런 요구를 덥석 받아들였지? 이제 어떡할 거야? 이렇게 빨개져서 어떻게 나갈 건데?”애교는 생각할수록 후회되었다.지난 30 몇 년간, 항상 우아하고 고귀하게 살아왔는데 이런 짓을 했으니, 본인이 너무 밝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흥분되었다.쾅쾅쾅... 쾅쾅쾅...애교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밖에서 문
그러고는 세면대 위에 놓았던 바나나 반 개를 크게 베어 물고 바로 문을 열었다.“변비 때문에 바나나 좀 먹은 거야. 넌 허구한 날 이상한 생각만 하더라? 머릿속에 대체 뭐가 들었어?”애교의 반격에 남주가 오히려 할 말을 잃었다.하지만 남주도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다. 남주는 애교를 꿰뚫어 볼 듯 한참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설마 내가 네 말을 믿게 하려고 일부러 바나나를 먹어버린 건 아니지? 그렇다면 정말 비위가 좋은데? 어떻게 자기 걸...”남주는 말하면서 애교의 치마를 바라봤다.그 뜻을 이해한 애교는 인정사정없이 남주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튕겼다.“너 무슨 생각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변태야?”남주 누나는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헤실 웃었다.“농담이야. 뭘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여? 네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모를까? 네가 나랑 같았으면 호르몬 이상이 생길 리도 없잖아. 게다가 네 얼굴과 몸매면 손가락 까딱하면 남자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 텐데, 그런데 너 정말 해결할 생각 없어?”“우선 남편이랑 얘기해 볼게. 어떻게 말하는지 보고.”“네 남편은 절대 솔직하게 말하지 않을걸? 아니면 내가 먼저 찔러봐?”남주의 제안에 애교도 왠지 괜찮겠다 싶어 얼른 남주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그럼 부탁할게. 네가 나 대신 우리 남편 좀 찔러 봐. 꼭 녹음 혹은 영상 증거 남겨야 해.”“너도 이미 다 알고 있나 보네. 입으로는 그렇게 부인하더니”남주는 한숨을 쉬며 애교의 손등을 토닥였다.애교는 사실 집안일을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왕정민의 약점을 잡으려면 남주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게다가 이미 마음을 편히 먹었기에 남이 알든 말든 상관없었다. 어찌 됐든 왕정민과 이혼하는 건 기정사실이니 다른 사람이 아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니까.“지금 마침 한가하니까 이따가 정민 씨 회사에 들를게.”남주의 말에 애교가 걱정되는 듯 말했다.“무조건 조심해. 절대 발각되지 말고. 안 그러면 너한테 무슨 짓 할지 모르니까.”“왕정민이
“아니야, 요즘 매일 회사에서 야근하느라 집에 갈 시간이 어디 있다고.”왕정민이 다급히 설명했다. 사실 왕정민도 본인 마음대로 되지 않아 너무 답답했다.‘설마 내가 요즘 너무 무리했나?’그때 전소혜가 싸늘하게 말했다.“사실이어야 할 거야. 만약 나를 속이는 게 발각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왕정민은 얼른 소혜를 품에 안았다.“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자기는 내 가장 소중한 사람인데, 내가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와도 절대 자기 배신하는 일은 하지 않아.”왕정민은 소혜를 품에 안고 있었지만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소혜도 사실 예쁘장하다. 가슴도 크고, 골반도 있고, 얼굴도 예뻤으니까.물론 애교와 비하면 한창 멀었지만.왕정민이 소혜를 만나는 건 순전히 소혜가 저한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소혜의 아버지는 큰 건설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왕정민은 늘 소혜의 아버지와 협력하고 싶어 했다.그런데 계속 기회를 찾지 못하다가 우연히 전승빈의 딸 전소혜를 알게 되었고 그 뒤로 미친 듯이 구애하기 시작했다.그러다 끝내 소혜의 마음을 얻고 말았다.애초에 소혜와 만날 때 왕정민은 자극적인 관계에 취해 매번 관계도 오래 가졌지만 지금은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아예 서지 않거나, 몇 번 하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일이 허다했으니.그 때문에 소혜가 자꾸만 왕정민이 아내를 만나러 집에 들르는 건 아닌지 의심하곤 한다.소혜도 애교가 본인보다 훨씬 예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그때 소혜가 화가 난 듯 투덜거렸다.“내가 대체 오빠 어디가 좋아서 만나는지 모르겠다니까. 유부남에, 잘생긴 것도 아니고, 이제 그것도 안 된다니. 나 아직 이렇게 젊은데 오빠랑 계속 이렇게 지내야 하는지 모르겠어.”그 말에 왕정민은 덜컥 겁을 먹고 다급히 말했다.“내가 잘 치료할게. 나도 계속 이런 건 아니잖아. 요즘 피곤해서 그래. 시간을 줘, 내가 꼭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게.”“그럼 치료 빨리 받아. 난 오빠 오래 기다릴 마음 없으니까.”소혜가 으름장을 놓자 왕정민은 헤실거리
왕정민은 얼른 손을 빼고 소혜를 밀어버렸다.“남주 씨가 여긴 어쩐 일로 왔어요?”남주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내가 오면 안 돼요? 갑자기 쳐들어와야 밖에서 뭘 하는지 알 수 있을 거 아니에요. 왕정민 씨, 이제 나한테 약점이 잡혔네요? 역시나 밖에 여자가 있으니 반년 동안 들어가지도 않은 거였네.”그 말에 소혜가 언짢은 듯 끼어들었다.“저 여자 누구야? 어디서 감히 우리를 말해?”남주는 입가에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소개하지. 최남주, 애교의 베프거든. 저 자식 아내의 베스트 프렌드. 당신들 바람피우는 현장 잡으러 왔어.”왕정민은 하하 큰 소리로 웃어댔다.“바람피우는 현장을 잡는다고? 우리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요?”“나 다 봤어요. 저 여자가 정민 씨 품에 안겨 있고, 정민 씨 손이 저 여자 옷 안에 들어가 있는걸. 그러면서 뭐? 아무 짓도 안 했다고? 왕정민 씨 사람 참 뻔뻔하네요.”왕정민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듯 허허 웃었다.“소혜가 가슴이 불편하다고 해서 그냥 눌러준 것뿐인데, 이건 그저 치료라고요.”“아하, 저 여자 치료를 도와줬다고? 그렇다면 그쪽 머리도 정상은 아닌 듯한데, 내가 치료해줄까요?”남주는 말하면서 왕정민에게 걸어가 테이블 위에 놓인 재떨이를 집어 들고 당장이라도 왕정민을 내리칠 것처럼 굴었다.그 동작에 돌란 왕정민은 연신 뒷걸음쳤다.“최남주 씨,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미쳤어요?”남주는 어두운 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치료해 주려는 건데, 왜 도망쳐요?”“그렇게 치료하는 게 어디 있어요?”“여자 옷 안에 손 넣고 가슴 주무르는 게 치료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건 왜 치료가 아니에요?”남주가 당연하다는 듯 말하자 왕정민은 버럭 소리쳤다.“미친년이! 경고하는데 당장 여기서 나가. 안 그러면 나도 안 봐줄 거니까.”남주는 왕정민의 말에 팔짱을 끼고 받아쳤다.“안 봐준다고? 누가 할 소리! 덤벼!”“사람이 왜 그래요?”그때 소혜가 언짢은 듯 달려 나와 남주한테 따져 물었다.그러자 남주는
“서 사장님, 괜찮습니까?”“서 사장님...”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서윤기를 부축했다.서윤기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지만 코에서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젠장. 누군데 서 사장님을 때려?”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서윤기가 손을 뻗자 사람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서윤기는 휴지로 피를 닦더니 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정수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렇게 큰 Y시에서 다 만나고.”나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사장님이 여기로 인도해 주셨어. 네놈이 여기 있는 줄 알고 너 처리하라고 여기로 이끌어 주셨어.”서윤기는 그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호섭 말이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호섭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신통하다면 왜 자기 죽음도 못 막았겠어?”정 사장님이 불상사를 당한 뒤 모든 사람이 비통했는데, 서윤기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울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그때 이동민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젠장. 감히 내 앞에서 서 사장님께 폭력을 써?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이동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듣기로 이동민은 예전에 백정이라서 아주 포악했었다는 말도 있다.나 역시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도살업자는 설령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피부와 핏속까지 스며든 피비린내를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동민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나와 이동민의 표정은 동시에 일그러졌다.이동민은 내 주먹이 그렇게 단단할 걸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 주먹을 받아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나 역시 꽤 센 이동민의 주먹에 흠칫 놀랐다.싸움을 배운 뒤로 나는 이 정도 상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주먹끼리 부딪힌 뒤 한동안 팔이 저리더니 잠
버섯전골은 Y시 명물이라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다. 어느새 냄비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방안 전체에 퍼져 버섯 냄새가 가득했다.윤지은은 사모님한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유미야, 너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많이 먹어.”“그만 집어 줘. 내가 직접 먹을 수 있어. 두 사람도 먹어.”우리는 묵묵히 전골을 먹었다.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분위기는 다소 조용했다.나는 몇 번이나 분위기를 띄워주려고 했지만 사모님이 별 반응이 없고, 윤지은도 협조하지 않아 혼자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차 마시고 싶어...”사모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제가 물어볼게요.”무엇보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낸 사모님의 요구를 얼른 만족시켜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큰 방을 지나다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안을 들여다봤다.그랬더니 내 눈에 익숙한 실루엣, 서윤기가 들어왔다.‘서윤기가 Y시에 왔다고?’나는 얼른 몸을 숨긴 채 안대성에게 전화했다.“서윤기를 감사하라고 했잖아. Y시에 온 건 왜 말 안 했어?”[네? 서윤기가 Y시에 갔다고요? 몰랐는데요? 형님, 제가 부하들한테 서윤기 잘 감시하라고 시켰는데...]안대성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인지하고 얼른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놈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룸 안을 훔쳐봤다.룸 안에는 서윤기 외에 Y시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은 왠지 낯이 익었다.나는 몰래 중년 남자의 사진을 찍어 판자촌 노랑머리에게 보냈다.[이 사람 알아요?]노랑머리는 곧바로 답장했다.[그 사람은 이연화의 아버지 판자촌 터줏대감 이동민이에요.]‘젠장.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이연화와 닮았잖아.’‘이동민이 여기 나타난 데다 서윤기와 웃고 떠드는 걸 보니 설마 정 사장님 교통사고가 서윤기 짓인가?’나는 그럴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서윤기가 강북 시장
“한 번에 천만 원? 여기가 뭔 금은방인 줄 알아요?”나도 이제는 돈 좀 있지만 한 번에 음식점에 천만 원을 충전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에서 최고급 호텔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도 고작 몇백만 원인데, 길가에 널리고 널린 버섯전골 집이 멤버십 카드만 천만 원이라니?매니저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돈 없으면 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나가요.”“잠깐!”나는 언성을 높였다.그러자 매니저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왜요? 또 무슨 일이죠?”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난 이 가게가 악의적으로 손님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고 의심되거든. 그래서 지금 신고할 생각이야.”내가 신고하겠다는 말에 매니저는 얼굴색이 싹 바뀌더니 나를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당신 미쳤어? 본인이 밥 먹을 돈 없으면서 왜 남의 가게를 신고해?”“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더니, 왜? 내가 신고할까 봐 두려워? 불법 경영한 거 걸릴까 봐 걱정돼? 그렇다면 더 신고해야겠네. 이렇게 부도덕한 가게는 문 닫아야 하니까.”윤지은은 네 행동을 지지했다. 심지어 사모님 역시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나는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매니저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이분을 풀 생각이었다.내가 정말 전화하자 매니저는 이내 태도를 누그러뜨렸다.“알았어요. 오늘 일은 저희 측 책임이니 사과드리죠. 지금 당장 자리 내어드릴게요. 됐죠?”“어디? 홀? 아니면 구석?”내가 따져 물었다.그러자 매니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당연히 룸을 내드려야죠. 하지만 큰 룸은 이미 손님이 꽉 차 작은 룸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용은 사과하는 의미에서 받지 않겠습니다.”나는 손을 뻗어 매니저의 말을 잘랐다.“됐어. 값은 원래대로 받아요. 안 그러면 음식에 또 뭔 짓 할지도 모르니까.”매니저는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매니저가 비열한 소인배라고 공개 처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나는 윤지은과
결국 어쩔 수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내려가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Y시에 버섯전골 맛집은 꽤 많았다. 하지만 사모님 기분이 안 좋은 지금 작은 가게를 가면 보는 눈이 많고 시끄러워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나는 한적한 가게를 찾으려고 한참을 더 걸었다. 다행히 그런 가게를 찾는데 겨우 성공했다.“안녕하세요. 프라이빗룸 하나 예약하게요.”이 가게는 환경도 좋고 손님도 많은 걸 보니 맛도 괜찮은 듯 시었다.“큰 룸 하나가 남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큰 룸은 얼마인데요?”“큰 룸은 기본 소비가 60만 원 이상입니다.”“좋아요. 그걸로 주세요.”60만 원이면 괜찮았다.룸을 예약한 뒤 나는 또 운전해서 윤지은과 사모님을 픽업하러 호텔로 돌아갔다.두 사람은 어느새 현지 특색이 담겨 있는 꽃무늬 옷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절세 미녀들이라 그런지 뭘 입어도 예뻤다.물론 나는 칭찬의 말을 아꼈다. 지금 장소와 분위기에 그런 칭찬은 맞지 않았으니까.잘못했다가 또 윤지은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나는 일부러 맞을 짓을 골라 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우리는 버섯전골 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하테 큰 룸 예약을 도와줬던 종업원이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손님, 죄송하지만 큰 룸은 이미 다른 분이 예약하셨습니다.”“방금 분명 내가 먼저 예약했잖아요. 왜 남의 방을 함부로 다른 손님한테 내줘요?”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종업원은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인터넷 오류가 났는지 그 방은 이미 예약한 분이 있어요.”이미 이곳에 왔는데 그대로 갈 수 없었기에 나는 차선책을 제시했다.“그럼 작은 방이라도 줘요.”“죄송하지만 오늘 가게에 있는 모든 룸은 이미 예약돼서 남은 룸이 없어요. 괜찮으시면 홀에 있는 자리를 내어줄게요. 동남쪽에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요.”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당신들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예약한 자리가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
우리는 희망을 이연화에게 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때문에 그 백수들이 소식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만 했다.하지만 윤지은은 호텔에 갇혀만 있으면 사모님이 답답해할까 봐 한가할 때면 사모님과 함께 산책하곤 했다.사모님이 자기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동력과 희망이 없는 탓에 사모님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Y시에 온 지 사흘 만에 강한나는 다시 강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 우리와 함께 시사 자리를 가졌다.“정말 여기 남아서 조사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한나가 말했다.“알았어. 나도 도와줄 건 없으니 성공하길 빌게.”나와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이 화장실 간 틈에 강한나는 얼른 우리에게 말했다.“호섭 씨 시신 어느 때 화장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몰라. 유미가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그 말에 강한나가 말했다.“시체를 화장하지 않아도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난 고인 편히 쉬게 해주는 게 좋다고 봐.”“하. 그런데 문제는 유미가...”사모님이 아쉬워하는 게 문제다.화장하지 않으면 그래도 보러 갈 수 있지만 화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사실 나도 강한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그 말 이해해요. 사모님은 저희가 설득해 볼게요.”식사를 마친 뒤 강한나는 그 길로 떠났다.나와 윤지은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두 사람 먼저 돌아가. 난 장례식장에 가볼 거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사모님이 또 사장님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도 규정이 있는데, 아무 때나 들여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그건 다른 것도 아닌 시신이니까.그때 윤지은이 입을 열었다.“유미야, 이번에 보고 난 뒤 호섭 씨 편히 자게 해주자.”“안 돼!”사모
“왕정민 이 파렴치한 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분명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애교 누나한테 집착하다니.“애교 누나는 그럼 어떻게 처리했어요? 신고는 했어요?”[애교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더라고요. 그걸 다시 왕정민한테 보냈어요. 심지어 안에 뭔갈 더 추가해서.]“네? 하하. 애교 누나가 정말 변했네요.”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것도 다 왕정민 때문에 할 수 없이 변한 거긴 하지만요. 애교가 만만한 줄 알고 애교만 괴롭히다니. 그렇게 대단하면 그 여자를 그렇게 괴롭히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걸요.][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여자들은 뭐 드세고 화를 자주 내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겠어요? 다 남자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 거죠.][특히 우리 여자들은 가끔 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독하지 않으면 남들이 괴롭혀도 되는 줄 알아요...]나는 형수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애교 누나가 이토록 강해졌다니 나는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형수도 마찬가지고.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다.형수와 한참 얘기한 뒤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에게 전화했다.“누나, 왕정민 일은 왜 말 안 했어요?”애교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리고 듣기 좋았다.[수호 씨가 Y시에 있는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수호 씨 가 나 때문에 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의 보호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그동안 아빠한테 반항하면서 독립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껏 한 번도 그렇게 산 적이 없어요.][예전에 결혼에 묶여 나를 잃었고,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여자는 자기 마음이 강해져야 진짜 강한 거예요.]애교 누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누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이 아직도 내가 알던 나약하기만 하고, 무
“내가 방 하나 더 잡을게요.”나는 말하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사모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먼저 내 침대에서 눈 붙여요.”고개를 돌아보니 사모님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누울 공간을 내주었다.나는 속으로 거절했다.비록 사모님이 다른 마음 없이 그저 나를 휴식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는 걸 알지만, 사장님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사모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말도 안 됐다.게다가 윤지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내가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결국 거절했다.“아니에요. 가서 다른 방 구하면 돼요.”나는 다급히 방을 나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처음 온 날 우리는 사실 싱글룸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모님 상태가 걱정되어 나와 윤지은이 사모님 방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나머지 싱글룸 두 개를 취소했다.확인 결과 더블룸 하나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얼른 그 방을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과 윤지은이 더블룸에서 함께 지내고 내가 싱글룸에서 지내면 되니까.나는 카드키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조용한 데다 환경도 좋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침대에 눕기 바쁘게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요즘 사장님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달려 다니느라 형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마침 조용한 틈을 타 나는 형수와 얘기하려고 여상 통화를 받았다.형수는 사모님 상태를 걱정하며 일의 진전을 물어봤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쉽지 않아요. 조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수호 씨 사장님 내외가 수호 씨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 기회에 유미 씨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형수가 말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저도 알아요. 형수는 요즘 어때요?”[좋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요.]“진짜예요? 사진 찍어 보내 봐요.”나는 너무 기뻐 흥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