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다행이네. 네가 몰라서 그런데, 오늘 밤 술자리는 내가 어렵게 네 형수를 설득해서 함께 가기로 한 거야. 내가 계산해 봤는데 요즘 네 형수 배란기야. 네가 기회만 잘 잡으면 네 형수 임신하게 할 수 있어. 네 형수가 임신하면 너한테 수고비 톡톡히 챙겨줄게.”나는 고개를 마구 저었다.“수고비는 됐어. 난 그저 형 도와주는 거니까.”‘내가 본인 마누라랑 자는데 돈까지 주겠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지?’“하하하, 오늘 밤 힘내!”우리가 말하고 있을 때 형수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더니 우리 앞에 앉았다.“둘이 뭐라고 쏙닥거리는 거야?”형수는 형을 보며 물었다.그랬더니 형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오늘 술자리에 수호도 부르려고. 세상 물정 알게 해야지.”“응, 그거 잘됐네. 수호 씨도 이제는 세상 물정 좀 알아야지. 오늘 술자리에 거물들이 많이 참석할 거예요. 그중에 한둘만 알아도 수호 씨 미래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나는 사실 오늘 밤 모임에 참석하는 거물들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큰일을 할 생각도 없었고. 그저 착실하게 좋은 의사가 되고 싶을 뿐이었다.만약 큰 병원에서 근무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혼자 한약방이나 차리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전에 알아본 바로는 이곳에서 약방 하나 운영하려면 초기 투자 금액이 적어도 몇억은 있어야 한다.그건 나한테 천문 숫자나 다름없기에 계획을 바꾸어 거물들과 안면을 틀 수밖에 없다.만약 거물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많은 게 순조로워질 테니까.“네.”나는 형수의 말에 대답했다.대충 음식을 몇 점 먹던 형은 갑자기 전화를 받더니 다급히 떠나갔다.“오늘 저녁에 데리러 올게.”그러면서 잊지 않고 귀띔했다.형이 떠난 뒤 나는 형수를 훑어보았다.형수는 하늘색 원피스를 입어 흰 피부가 더 맑아 보였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겼다.심지어 가슴도 더 풍만해 보였다.그때 형수가 젓가락으로 내 그릇을 두드리며 귀띔했다.“뭘 보는 거예요?”“형수, 오늘 입은 옷 정말 예뻐요. 그
“이거 얼마 주고 샀어요?”“4만 원밖에 안 해요. 너무 싸다고 싫어하는 건 아니죠?”“수호 씨는 질문하지 말고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해 봐요. 근무하는 동안 받은 임금은 얼마인데요?”“28만 원이요.”“그 돈은요?”“하, 말도 마요. 퇴사하던 날 윤지은이 남자 친구와 헤어지는 모습을 마침 봤었거든요. 기분이 꿀꿀한 것 같아 보여 같이 식사했었는데 식사비만 32만 원이 나오더라고요. 원래는 더치페이하려고 했는데 남자가 돼서 체면 깎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 제가 20만 원 냈어요.”“그렇다면 윤 쌤하고 식사하고 나서 8만 원밖에 안 남았다는 소리네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형수는 거울에 비친 목걸이를 보며 말을 이었다.“8만 원밖에 안 남았는데 이 목걸이가 4만 원이면 나머지 4만 원은요?”“사실 똑같은 거 두 개 구매해서 돈은 다 써버렸어요.”“그럼 남은 돈이 없다는 거예요?”나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그랬더니 형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얼굴을 꼬집으며 말했다.“수호 씨 바보예요? 애교 선물만 사면되지 내 건 뭐 하러 샀어요?”“형수니까요, 사주고 싶었어요.”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내 마음속에 애교 누나와 형수는 모두 중요하다.때문에 선물을 하고 싶고.“돈 다 써버리면 앞으로 어떻게 지내요?”“괜찮아요. 다시 일 찾으면 돼요. 먹고 자는 건 형수 집에서 하니까 돈 쓸 일도 없고,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안 마시니 돈 쓸 일이 별로 없어요. 나중에 일 찾으면 더 좋은 선물 해줄게요.”형수는 내 말에 피식 웃더니 또 한 번 내 얼굴을 꼬집었다.“대체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네요. 만약 수호 씨가 몇 살만 더 먹었다면 당장 수호 씨랑 도망갔을지도 몰라요.”형수의 말에 나는 기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러면 지금은 어려서 그만한 매력이 없다는 거예요?”“매력이 없다는 게 아니라 여자가 내 나이 되면 앞뒤 안 가리고 사랑에 목매는 일은 적어져요. 남자가 자기를 먹여 살릴 수 있는지부터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 조건에 부
“애교 누나가 오늘 밤 저한테 기회를 마련해 주겠다고 했거든요. 남주 누나를 내 여자로 만들 수 있게.”내 말에 형수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다. 마치 진작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던 사람처럼.”“그럼 수호 씨는 싫어요?”“저는...”나는 더듬거리며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그러다가 형수가 솔직하게 털어놓으라고 말하자 그제야 용기를 내어 말했다.“솔직히 처음에는 그러고 싶었는데 이제 그러고 싶지 않아요.”“왜요?”형수는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물었다.나는 곧바로 어젯밤 민규한테서 받은 문자 내용을 형수한테 털어놓으며 핸드폰을 보여주었다.그걸 본 형수는 나를 보며 물었다.“남주가 몸 함부로 굴리는 여자인 것 같아 잠자리를 갖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그때 형수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그럼 내가 남주처럼 행동하면 나도 싫어할 거예요?”“그럴 리가요! 형수는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나는 곧바로 부인했다.하지만 형수는 끝질기게 물었다.“만약에요, 정말 만약에 내가 나주랑 같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 건데요?”나는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다.그런 경우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까.‘형수가 남주 누나랑 같을 리가? 형수가 얼마나 좋은데.’내 마음속에 형수는 애교 누나랑 동급으로 사랑스러운 존재다.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나는 결국 고개를 마구 저었다.“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런 경우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형수는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하, 수호 씨는 왜 그렇게 단순해요?”‘내가 단순하다고?’‘이게 무슨 뜻이지?’나는 순간 멍해졌다.“형수,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예요?”내가 의아해하자 형수는 갑자기 긴장한 듯 내 손을 잡았다.“사실 비밀이 하나 있는데 절대 수호 씨 형한테 말하지 마요.”‘형수한테 비밀이 있다고?’나는 그게 너무 궁금했다.‘어쩌면 부부가 모두 비밀을 갖고 있지? 부부인데 서로 모르나?’‘게다가 공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형수의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다. 만약 형수가 형을 계속 닦달하면 형은 아마 죽고 싶었을 거다.그러니까 형수는 형의 체면과 심정을 고려해서 모른척해 준 거다.하지만 그렇다면 더 이해되지 않았다.“형수, 그런데 왜 저한테 이 사실을 말하는 거예요?나는 형수의 목적이 알고 싶었다.그때 형수가 말머리를 돌리며 대뜸 말했다.“사실 수호 씨 동료가 봤다던 그 여자 나였을 거에요.”“네?”나는 순간 얼빠진 표정으로 형수를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게, 형수의 말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으니까.‘그러니까 형수의 말은 부민규가 라운지 바에서 봤다던 여자가 남주 누나가 아니라 형수였다고? 그 기생오라비와 같이 있었던 여자가?’‘왜지?’나는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그때 형수가 고개를 숙이며 허탈한 듯 말했다.“수호 씨 형이랑 내가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나는 정말 아이를 갖고 싶었거든요. 만약 아이가 없다면 어떻게 이 관계를 유지할지도 막막했고. 그래서 이혼하고 새 가정 꾸릴 생각도 했어요.”“하지만 아이 문제만 아니면 수호 씨 형은 다 좋거든요. 나한테 잘해주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 이혼하기는 싫고 아이는 가지고 싶고 해서...”형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하지만 나는 모두 이해했다.“그래서 다른 사람의 아이라도 가지려고 한 거예요?”내가 놀란 표정으로 묻자 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예상을 벗어난 상황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심지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저 귓가에서 자꾸만 이명이 들리고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그렇게 한참 동안 마음을 가라앉힌 뒤 나는 정신을 차렸다.“그래서 남주 누나한테 부탁해서 사람을 찾았던 거예요?”내가 크게 숨을 들이켜며 묻자 형수는 다시 고래를 끄덕였다.“남주는 아는 사람도 많고 신분과 배경도 있으니까, 남자들의 배경을 조사하는 것도 식은 죽 먹기거든요. 그래서 사실대로 말하고 괜찮은 사람 소개해달라고 부탁했어요.”형수의 해명을 듣자 나는 순간
“남주 누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어요? 앞으로 남주 누나 말은 귓등으로 들어요.”형수는 내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눈살을 찌푸렸다.“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평생 이렇게 살라고요? 생리적 욕구는 내가 직접 해결한다 쳐도 수호 씨 형이 안 되면 내가 아이를 가질 수가 없잖아요. 이건 나 혼자 어떻게 할 수도 없다고요.”나는 형수가 얼마나 불만이 많은지 보아낼 수 있었다.게다가 형수가 얼마나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나는 이때다 싶어 형수의 손을 덥석 잡았다.“그럼 나는 어때요? 낯선 남자보다 차라리 나를 선택해요.”“나도 수호 씨를 선택하고 싶어요. 하지만 수호 씨와는 관계가 관계인지라...”“만약 형도 그걸 원한다면요?”나는 이참에 형의 계획을 사실대로 말할 생각이었다.툭 까놓고 말해 버리는 게 가장 좋은 선택지일 수도 있다.모두 솔직히 말해버리면 서로 속일 필요도 없고.하지만 형수가 대뜸 말했다.“그럴 리 없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머리가 잘못된 게 아니면 모를까?”“왜 안 돼요? 형도 본인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걸 알잖아요. 만약 형도 형수처럼 이혼하고 싶지 않고 또 형수의 소원을 이뤄주고 싶어 한다면요?”나는 은근슬쩍 형수한테 귀띔했지만 형수는 여전히 단호하게 말했다.“그럴 리 없어요. 수호 씨는 아직 동성 씨를 모르네요.”나는 형수의 말에 멍해졌다.형에 대한 인식이 아직 예전에 멈춰 있는 건 사실이다. 사회의 시련을 겪으면서 그동안 형이 많이 변했는데 그걸 내가 아직 모르고 있으니.때문에 나는 입을 다물고 형수가 하는 말에 귀 기울였다.“그러면 형이 왜 무조건 반대할 거라고 생각해요?”형수는 내 물음에 확신하는 듯 대답했다.“수호 씨가 본인 동생이니까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다면서요. 툭 까놓고 동성 씨가 없으면 지금의 수호 씨도 없었을 거잖아요.”나는 형수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내 인생에서 형이 참으로 많이 도움이 된 건 사실이다.내 정신적 기둥이 되어주었고 물질적으로
형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왠지 불안해졌다. 어쩌면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그래도 사실을 알고 싶었다.너무 궁금했으니까. 그러니 끝까지 파고들기 전에 절대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그때 형수가 내 손을 잡아당기며 자기 옆에 앉혔다.“수호 씨 형이 회사를 크게 키우고 싶어 한다는 거 알고 있어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알아요. 형이 동네에 돌아올 때마다 동네 사람들한테 말했었거든요. 본인이 나중에 잘나가는 사장이 되면 동네 사람들도 같이 부자가 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말이 쉽지 큰 회사 사장이 되는 게 어디 쉬워요? 수호 씨 형을 봐요, 도시에서 5년을 열심히 일했는데 직원이 고작 10명뿐이잖아요. 정말 좋은 기회를 만나 사업을 키우려면 대가가 필요해요.”“수호 씨 형이 항상 그랬거든요, 자기한테 동생이 있는데 잘생긴 데다 엄청 착실하다고. 자기가 앞으로 발전하는 데 분명 도움 될 거라고. 그러니까 동성 씨가 수호 씨한테 잘해주는 건 수호 씨한테 마음의 빚을 심어주려는 거예요. 본인이 수호 씨 도움 필요할 때 수호 씨가 거절하지 못하게.”형수의 말을 들을수록 나는 얼떨떨했다.“형수, 앞으로의 발전에 제가 큰 도움이 될 거라니, 그건 무슨 뜻이에요? 왜 알아듣지 못하겠죠?”형수는 안타까운 듯 나를 보며 말했다.“수호 씨 정말 바보네요. 수호 씨 형은 수호 씨를 돈 많은 유부녀의 애인으로 팔아버리려고 계속 도와준 거예요.”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한참 동안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게다가 머릿속에는 자꾸만 형수가 했던 말이 맴돌았다.‘형이 나한테 잘해준 게 마음의 빚을 얹어주고 본인이 필요할 때 내가 무조건적으로 도와주게 하기 위해서라고?’‘나를 친동생처럼 대한 게 아니라 이용하기 위해서라고?’하지만 나는 계속 형을 친형처럼 생각했었다.그러면서 언젠가 성공하면 무조건 보답할 거라고 수없이 되뇌었다.그런데 형이 지금껏 나한테 잘해준 게 다 목적이 있어서
‘이제 다시는 바보처럼 굴지 말아야지. 안 그러면 어디 팔려 가면서 돈이나 세어주고 있을지도 모르니.’나는 이제야 형이 절대 그런 말을 할 리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던 형수가 이해되었다.큰 성과를 거두고, 대기업 사장이 되고 싶어 하고, 꼭대기로 올라가고 싶어 하는 남자가 자기 아내와 동생이 붙어먹는 걸 받아들일 수가 없다.하지만 형은 확실히 그렇게 말했다.때문에 나로서는 더 두렵고 불안했다.그동안은 형수와의 결혼 관계를 유지하려고 나한테 그런 부탁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아마 다른 목적이 있을지도.‘그런데 그 목적이 뭐지?’‘내가 형한테는 항상 그저 도구에 불과했나?’이걸 생각하니 순간 소름이 끼치고 온몸의 솜털이 쭈뼛 곤두섰다.때문에 형수에게 말하려던 말을 도로 삼켰다.내 안색이 안 좋았는지 형수는 다시 내 손을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너무 놀라지 마요. 사회는 원래 이런 거예요. 동성 씨처럼 수호 씨한테 잘해주는 사람도 사실 드물어요. 어떤 사람은 이용만 하고 입 싹 닫고 버리기도 하거든요. 그런 사람을 만나면 울고 싶어도 눈물이 안 날 걸요.”“어찌 됐든 이제 수호 씨도 사회의 일원이니 항상 조심하고 아무나 쉽게 믿지 마요.”나는 형수가 너무 고마웠다.이렇게 나한테 귀띔해 주고 깊은 가르침을 준 데다 사회와 현실이 어떤지 알게 해 주었으니까.오늘 형수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형이 한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순진하게 믿고 있었을 거다.그러다가 바보처럼 형이 시킨 일을 할 테지.그 결과가 어떨지 아무도 모른다.나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진심으로 말했다.“네, 알았어요.”“마음 추스르고 예쁜 옷으로 갈아입어요. 이따가 애교가 같이 쇼핑하자고 했으니까 잘 좀 해봐요. 남주 마음만 얻으면 수호 씨한테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형수도 이런 말을 하다니.’전에 애교 누나도 똑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애교 누나와 형수 모두 남주 누나의 마음을 얻으면 내 앞날
그저 어떻게 자기 남자가 다른 여자와 자도록 부추기는 여자가 있는지 이해되지 않을 뿐이다.‘내 마인드가 너무 올드한가?’‘아니면 내가 아직 어려서 너무 단순한 건가? 애교 누나 나이가 되면 다들 이런 마인드를 갖게 되나?’‘됐어, 그만 생각하자.’물론 이해가 되지 않지만 기꺼이 시키는 대로 할 수 있었다.애교 누나와 형수는 절대 나를 속일 리 없다는 확신이 들었으니까.“알았어요. 이따가 누나가 떠나면 그때 갈게요.”나는 마지못해 대답했다.[그래요.]애교 누나와 한참 대화하다가 전화를 끊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애교 누나가 벌써 형수를 찾아온 것이었다.모두가 이제 곧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지만 연기를 하고 있었다.“태연아, 오늘 바빠? 안 바쁘면 나랑 쇼핑하자. 기분도 풀 겸.”애교 누나가 기분이 꿀꿀한 것처럼 제안하자 형수는 자연스럽게 받아쳤다.“남주도 있는데 왜 나를 찾아왔대?”그 말에 애교 누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말도 마,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 아무 데도 가기 싫다며 계속 자겠대. 나도 할 수 없이 너 찾아온 거야.”“내가 두 번째 선택지였다는 거네? 그러면 더 가기 싫어. 다른 사람 알아봐.”‘형수 연기 참 잘하네, 미리 알고 있었던 게 아니면 나도 깜빡 속았겠어. 애교 누나도 뒤지지 않고.’그때 애교 누나가 형수의 팔짱을 끼며 애교 부렸다.“너무 매몰찬 거 아니야? 내가 안 좋은 일 겪었는데 좀 봐줄 수 없어?”애교 누나는 연기할 필요도 없이 가련한 표정 하나만으로 사람 마음을 움직였다.형수 역시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곧바로 대답했다.“그래, 알았어. 농담 좀 한 거 가지고. 옷 갈아입고 올게. 오늘 하루 종일 같이 있어 줄게.”“역시 너밖에 없어!”애교 누나는 형수를 와락 끌어안았다.이윽고 두 사람은 앞뒤로 나란히 서서 안방으로 들어갔다.두 사람의 모습에 나는 감탄이 나왔다.‘대단하네. 두 사람에 비하면 난 아무것도 아니구나.’얼마 지나지 않아 형수는
“서 사장님, 괜찮습니까?”“서 사장님...”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서윤기를 부축했다.서윤기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지만 코에서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젠장. 누군데 서 사장님을 때려?”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서윤기가 손을 뻗자 사람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서윤기는 휴지로 피를 닦더니 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정수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렇게 큰 Y시에서 다 만나고.”나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사장님이 여기로 인도해 주셨어. 네놈이 여기 있는 줄 알고 너 처리하라고 여기로 이끌어 주셨어.”서윤기는 그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호섭 말이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호섭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신통하다면 왜 자기 죽음도 못 막았겠어?”정 사장님이 불상사를 당한 뒤 모든 사람이 비통했는데, 서윤기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울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그때 이동민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젠장. 감히 내 앞에서 서 사장님께 폭력을 써?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이동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듣기로 이동민은 예전에 백정이라서 아주 포악했었다는 말도 있다.나 역시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도살업자는 설령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피부와 핏속까지 스며든 피비린내를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동민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나와 이동민의 표정은 동시에 일그러졌다.이동민은 내 주먹이 그렇게 단단할 걸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 주먹을 받아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나 역시 꽤 센 이동민의 주먹에 흠칫 놀랐다.싸움을 배운 뒤로 나는 이 정도 상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주먹끼리 부딪힌 뒤 한동안 팔이 저리더니 잠
버섯전골은 Y시 명물이라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다. 어느새 냄비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방안 전체에 퍼져 버섯 냄새가 가득했다.윤지은은 사모님한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유미야, 너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많이 먹어.”“그만 집어 줘. 내가 직접 먹을 수 있어. 두 사람도 먹어.”우리는 묵묵히 전골을 먹었다.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분위기는 다소 조용했다.나는 몇 번이나 분위기를 띄워주려고 했지만 사모님이 별 반응이 없고, 윤지은도 협조하지 않아 혼자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차 마시고 싶어...”사모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제가 물어볼게요.”무엇보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낸 사모님의 요구를 얼른 만족시켜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큰 방을 지나다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안을 들여다봤다.그랬더니 내 눈에 익숙한 실루엣, 서윤기가 들어왔다.‘서윤기가 Y시에 왔다고?’나는 얼른 몸을 숨긴 채 안대성에게 전화했다.“서윤기를 감사하라고 했잖아. Y시에 온 건 왜 말 안 했어?”[네? 서윤기가 Y시에 갔다고요? 몰랐는데요? 형님, 제가 부하들한테 서윤기 잘 감시하라고 시켰는데...]안대성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인지하고 얼른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놈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룸 안을 훔쳐봤다.룸 안에는 서윤기 외에 Y시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은 왠지 낯이 익었다.나는 몰래 중년 남자의 사진을 찍어 판자촌 노랑머리에게 보냈다.[이 사람 알아요?]노랑머리는 곧바로 답장했다.[그 사람은 이연화의 아버지 판자촌 터줏대감 이동민이에요.]‘젠장.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이연화와 닮았잖아.’‘이동민이 여기 나타난 데다 서윤기와 웃고 떠드는 걸 보니 설마 정 사장님 교통사고가 서윤기 짓인가?’나는 그럴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서윤기가 강북 시장
“한 번에 천만 원? 여기가 뭔 금은방인 줄 알아요?”나도 이제는 돈 좀 있지만 한 번에 음식점에 천만 원을 충전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에서 최고급 호텔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도 고작 몇백만 원인데, 길가에 널리고 널린 버섯전골 집이 멤버십 카드만 천만 원이라니?매니저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돈 없으면 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나가요.”“잠깐!”나는 언성을 높였다.그러자 매니저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왜요? 또 무슨 일이죠?”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난 이 가게가 악의적으로 손님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고 의심되거든. 그래서 지금 신고할 생각이야.”내가 신고하겠다는 말에 매니저는 얼굴색이 싹 바뀌더니 나를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당신 미쳤어? 본인이 밥 먹을 돈 없으면서 왜 남의 가게를 신고해?”“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더니, 왜? 내가 신고할까 봐 두려워? 불법 경영한 거 걸릴까 봐 걱정돼? 그렇다면 더 신고해야겠네. 이렇게 부도덕한 가게는 문 닫아야 하니까.”윤지은은 네 행동을 지지했다. 심지어 사모님 역시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나는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매니저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이분을 풀 생각이었다.내가 정말 전화하자 매니저는 이내 태도를 누그러뜨렸다.“알았어요. 오늘 일은 저희 측 책임이니 사과드리죠. 지금 당장 자리 내어드릴게요. 됐죠?”“어디? 홀? 아니면 구석?”내가 따져 물었다.그러자 매니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당연히 룸을 내드려야죠. 하지만 큰 룸은 이미 손님이 꽉 차 작은 룸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용은 사과하는 의미에서 받지 않겠습니다.”나는 손을 뻗어 매니저의 말을 잘랐다.“됐어. 값은 원래대로 받아요. 안 그러면 음식에 또 뭔 짓 할지도 모르니까.”매니저는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매니저가 비열한 소인배라고 공개 처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나는 윤지은과
결국 어쩔 수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내려가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Y시에 버섯전골 맛집은 꽤 많았다. 하지만 사모님 기분이 안 좋은 지금 작은 가게를 가면 보는 눈이 많고 시끄러워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나는 한적한 가게를 찾으려고 한참을 더 걸었다. 다행히 그런 가게를 찾는데 겨우 성공했다.“안녕하세요. 프라이빗룸 하나 예약하게요.”이 가게는 환경도 좋고 손님도 많은 걸 보니 맛도 괜찮은 듯 시었다.“큰 룸 하나가 남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큰 룸은 얼마인데요?”“큰 룸은 기본 소비가 60만 원 이상입니다.”“좋아요. 그걸로 주세요.”60만 원이면 괜찮았다.룸을 예약한 뒤 나는 또 운전해서 윤지은과 사모님을 픽업하러 호텔로 돌아갔다.두 사람은 어느새 현지 특색이 담겨 있는 꽃무늬 옷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절세 미녀들이라 그런지 뭘 입어도 예뻤다.물론 나는 칭찬의 말을 아꼈다. 지금 장소와 분위기에 그런 칭찬은 맞지 않았으니까.잘못했다가 또 윤지은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나는 일부러 맞을 짓을 골라 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우리는 버섯전골 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하테 큰 룸 예약을 도와줬던 종업원이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손님, 죄송하지만 큰 룸은 이미 다른 분이 예약하셨습니다.”“방금 분명 내가 먼저 예약했잖아요. 왜 남의 방을 함부로 다른 손님한테 내줘요?”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종업원은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인터넷 오류가 났는지 그 방은 이미 예약한 분이 있어요.”이미 이곳에 왔는데 그대로 갈 수 없었기에 나는 차선책을 제시했다.“그럼 작은 방이라도 줘요.”“죄송하지만 오늘 가게에 있는 모든 룸은 이미 예약돼서 남은 룸이 없어요. 괜찮으시면 홀에 있는 자리를 내어줄게요. 동남쪽에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요.”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당신들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예약한 자리가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
우리는 희망을 이연화에게 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때문에 그 백수들이 소식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만 했다.하지만 윤지은은 호텔에 갇혀만 있으면 사모님이 답답해할까 봐 한가할 때면 사모님과 함께 산책하곤 했다.사모님이 자기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동력과 희망이 없는 탓에 사모님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Y시에 온 지 사흘 만에 강한나는 다시 강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 우리와 함께 시사 자리를 가졌다.“정말 여기 남아서 조사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한나가 말했다.“알았어. 나도 도와줄 건 없으니 성공하길 빌게.”나와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이 화장실 간 틈에 강한나는 얼른 우리에게 말했다.“호섭 씨 시신 어느 때 화장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몰라. 유미가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그 말에 강한나가 말했다.“시체를 화장하지 않아도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난 고인 편히 쉬게 해주는 게 좋다고 봐.”“하. 그런데 문제는 유미가...”사모님이 아쉬워하는 게 문제다.화장하지 않으면 그래도 보러 갈 수 있지만 화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사실 나도 강한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그 말 이해해요. 사모님은 저희가 설득해 볼게요.”식사를 마친 뒤 강한나는 그 길로 떠났다.나와 윤지은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두 사람 먼저 돌아가. 난 장례식장에 가볼 거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사모님이 또 사장님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도 규정이 있는데, 아무 때나 들여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그건 다른 것도 아닌 시신이니까.그때 윤지은이 입을 열었다.“유미야, 이번에 보고 난 뒤 호섭 씨 편히 자게 해주자.”“안 돼!”사모
“왕정민 이 파렴치한 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분명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애교 누나한테 집착하다니.“애교 누나는 그럼 어떻게 처리했어요? 신고는 했어요?”[애교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더라고요. 그걸 다시 왕정민한테 보냈어요. 심지어 안에 뭔갈 더 추가해서.]“네? 하하. 애교 누나가 정말 변했네요.”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것도 다 왕정민 때문에 할 수 없이 변한 거긴 하지만요. 애교가 만만한 줄 알고 애교만 괴롭히다니. 그렇게 대단하면 그 여자를 그렇게 괴롭히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걸요.][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여자들은 뭐 드세고 화를 자주 내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겠어요? 다 남자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 거죠.][특히 우리 여자들은 가끔 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독하지 않으면 남들이 괴롭혀도 되는 줄 알아요...]나는 형수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애교 누나가 이토록 강해졌다니 나는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형수도 마찬가지고.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다.형수와 한참 얘기한 뒤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에게 전화했다.“누나, 왕정민 일은 왜 말 안 했어요?”애교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리고 듣기 좋았다.[수호 씨가 Y시에 있는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수호 씨 가 나 때문에 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의 보호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그동안 아빠한테 반항하면서 독립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껏 한 번도 그렇게 산 적이 없어요.][예전에 결혼에 묶여 나를 잃었고,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여자는 자기 마음이 강해져야 진짜 강한 거예요.]애교 누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누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이 아직도 내가 알던 나약하기만 하고, 무
“내가 방 하나 더 잡을게요.”나는 말하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사모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먼저 내 침대에서 눈 붙여요.”고개를 돌아보니 사모님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누울 공간을 내주었다.나는 속으로 거절했다.비록 사모님이 다른 마음 없이 그저 나를 휴식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는 걸 알지만, 사장님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사모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말도 안 됐다.게다가 윤지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내가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결국 거절했다.“아니에요. 가서 다른 방 구하면 돼요.”나는 다급히 방을 나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처음 온 날 우리는 사실 싱글룸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모님 상태가 걱정되어 나와 윤지은이 사모님 방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나머지 싱글룸 두 개를 취소했다.확인 결과 더블룸 하나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얼른 그 방을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과 윤지은이 더블룸에서 함께 지내고 내가 싱글룸에서 지내면 되니까.나는 카드키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조용한 데다 환경도 좋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침대에 눕기 바쁘게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요즘 사장님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달려 다니느라 형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마침 조용한 틈을 타 나는 형수와 얘기하려고 여상 통화를 받았다.형수는 사모님 상태를 걱정하며 일의 진전을 물어봤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쉽지 않아요. 조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수호 씨 사장님 내외가 수호 씨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 기회에 유미 씨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형수가 말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저도 알아요. 형수는 요즘 어때요?”[좋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요.]“진짜예요? 사진 찍어 보내 봐요.”나는 너무 기뻐 흥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