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윤지은이 흥분해서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까 봐, 그녀의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해명했다.“입 다물어. 해명 듣고 싶지 않아. 옷 벗어!”그때 윤지은이 갑자기 명령했다.그 순간 이게 무슨 상황인지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갑지기 왜 옷은 벗으라고 하는 거지?’“안 벗어?”윤지은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더니 나에게 명령했다.그게 너무 무서운 나머지 나는 얼른 옷을 벗었다.그러자 윤지은이 또 말했다.“바지도 벗어!”“대체 왜 그래요?”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한편으로 윤지은이 정말 내 거시기를 잘라버릴까 봐 두려웠다.때문에 바지는 끝까지 잡고 내리지 않았다.윤지은이 씩씩거리며 내 가슴을 꼬집었다.“감히 내 명령을 거역해? 아직도 내가 안중에 없구나?”“아니에요, 윤지은 씨 같은 아가씨 명령을 내가 어떻게 거역하겠어요? 그런데 대체 뭐 하려는 거예요?”나는 상황을 모르기에 너무 무서웠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또 노려봤다.“벗으라면 벗어. 뭔 말이 그렇게 많아?”“싫어요.”나는 거절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더 화를 내며 아예 손을 뻗었다.“감히 내 명령을 어겨? 죽고 싶어?”우리는 엉겨 붙어 실랑이를 벌였다.하지만 싸우다가 웬일인지 갑자기 키스하기 시작했다.나는 윤지은을 아예 벽 쪽으로 몰아붙였다.“윤지은 씨, 나를 몰아붙이지 마요. 계속 이러면 이 자리에서 안아버리는 수가 있으니까.”윤지은은 나를 보며 냉소를 지었다.“그럴 배짱은 있고? 내가 그러라고 해도 그러지 못할 거면서.”“어딜 봐서 내가 그러지 못할 것 같아요? 이게 내 평생 마지막이라면 뭔들 못 하겠어요?”‘적어도 죽기 전 마지막으로 기분 한 번은 내야겠어.’그때 윤지은이 박장대소했다.“센 척은, 찌질이 주제에. 안 믿거든.”나를 도발하는 윤지은을 보자 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윤지은의 다리 한쪽을 들어 올렸다.“나 몰아붙이지 말랬죠...”윤지은은 순간 얼굴이 화끝 달아올라 가슴이 콩닥거렸다.하지만 입술을 깨물며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흥, 그러겠다
‘난 지금 여자 친구를 말하는 건데, 본인이랑 뭔 상관이래?’나는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윤지은이 질문했으니 진지하게 대답했다.“당연히 장점이야 있죠. 예쁘고, 몸매도 좋고, 재벌가 아가씨고. 이거 다 윤지은 씨 장점이잖아요.”“그거 말고는?”윤지은은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것들은 그녀가 볼 때 장점에 속하지 않았으니까. 그저 출발선이 다른 것뿐이지.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의술도 뛰어나고 환자한테 책임지잖아요, 이건 엄청 기특한 거예요.”윤지은은 그제야 내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했는지 묵묵히 옷을 입었다.윤지은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나는 그저 그녀를 바라봤다.그때 옷을 다 입은 윤지은이 뒤돌아 떠났다. 보아하니 나한테 더 이상 뭘 하지 않을 모양이었다.‘이제는 나 풀어주려는 건가?’처음에는 살짝 의아했지만, 윤지은이 완전히 시선에서 사라지자 그제야 그녀가 나를 이대로 놓아주는구나 실감이 났다.하지만 이 순간 내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왠지 이상했다.이렇게 또 엉겁결에 윤지은과 또 자버렸다니.게다가 윤지은이 나한테 아무 짓도 안 했다니.나는 침대에 앉아 아무리 생각해도 윤지은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내가 이런저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 밖에 서 있던 두 경호원이 갑자기 안으로 들어왔다.나는 너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아가씨께서 말씀하셨는데, 계속 여기 있으랍니다.”진작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이런 통보를 받으니 나는 풀이 죽었다.“혹시 이유라도 말해줬나요?”나는 상황을 알고 싶었다.그런데 두 경호원이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왜 그런지 모르겠습니까?”‘젠장...’‘내가 알면 물어봤겠냐?’‘그리고 왜 그렇게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는데?’속으로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숙인 순간, 그제야 바지 지퍼가 열려 있다는 게 눈에 들어왔다.나는 얼른 허리를 숙여 지퍼를 올리고 속으로 은근히 으쓱해했다.‘내가 방금 윤지은과 한 걸 다 들었겠지? 그래서 이상한 눈
“나 정말 구제 불능이네.”윤지은은 씩씩거리며 떠났다.“지은아, 너 왜 여기 있어?”그러다 가던 길에 어머니 이영미를 만났다.평소 시끌벅적한 곳이라면 질색하던 딸이 왜 노래방에서 나오는 건지 이영미는 못내 의아했다.윤지은은 건성으로 대답했다.“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닌 거예요. 엄마, 나 피곤해서 그러는데, 돌아가 휴식할래요.”말을 마친 윤지은은 바로 뒤돌아 떠났다.이영미는 신경 쓰지 않고 주위를 돌았다.앞쪽이 바로 노래방이었다.이영미도 젊을 때 노래 부르는 걸 매우 좋아했다.하지만 결혼한 이후로는 거의 끊다시피 했다.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노래할 때 너무 자신을 놓아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해철 앞에서 항상 여성스럽고 점잖은 이미지를 유지해야 했기에, 자연스레 노래를 하며 자기 이미지를 깎을 일은 없었다.다만 지금 남편이 곁에 없으니 더 이상 이미지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이영미는 곧장 노래방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큰 룸 하나를 예약해 혼자 마음껏 노래할 생각이었다.“응? 여기서 뭐 해?”이영미는 호텔 경비원을 발견하고 의아한 듯 물었다.두 경비원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말지 각을 재고 있었다.“묻잖아, 말 못 해?”이영미는 두 경비원 뒤를 바라봤다. 두 사람 뒤는 바로 큰 룸이었다.하지만 두 사람은 아무리 봐도 이곳을 지키는 모양새였다.이영미는 의아한 듯 물었다.“여기 사람 가뒀어?”“사모님, 묻지 마세요.”“어디서 감히! 내가 사모님인 걸 알면서 묻지 말라고?”이영미는 버럭 소리쳤다.두 경비원은 흠칫 놀라며 숨소리도 내지 못했다.그 순간, 이영미는 반항심이 생겨 문을 가리키며 소리쳤다.“문 열어. 들어갈 거니까!”“그건...”“그건 뭐? 나 사모님이야. 여기 내 구역이라고. 그런데 내가 못 들어가?”“아니, 아닙니다. 사모님, 아가씨께서 여기를 지키라고 하셨습니다.”“그렇다면 더 들어가고 싶은데. 내 딸이 이틀 동안 정신을 못 차쳤는데, 왜 그런지 알아야겠어.”계속 몰아붙
이영미는 안으로 들어온 뒤 주위를 빙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이상하네? 어디 사람이 있다는 거야?”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이영미가 돌아가려던 그때, 커튼이 살짝 흔들렸다.그 순간 이영미는 커튼 뒤에 누군가 숨어 있다고 확신했다.‘누구지?’‘지은이 이제야 사랑에 눈뜨고 남자를 숨겼나?’이영미는 호기심에 조심스럽게 다가가 기습 공격을 하려고 했다.그렇게 살금살금 커튼 앞에 도착해 허리를 숙이니 남자 다리가 보였다.이영미는 자기 딸이 수긴 남자가 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이영미는 커튼을 확 걷었다.하지만 그 시각, 나는 밖의 상황을 몰랐다.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자 윤지은이 떠난 거라고 생각한 그때, 갑자기 커튼이 걷혀 지자 혼이라도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나는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하지 못했기에 당연히 윤지은이라고 생각했다.그와 동시에 윤지은이 나를 놀렸으니, 나도 상대를 놀려야겠다고 생각해 ‘윤지은’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고는 그녀의 몸에 내 몸을 마구 비벼댔다.“뭐 하는 거예요? 놀랐잖아요. 나 겁쟁이라서 이러면 놀란다고요. 내 심장에 문제라도 생기면, 책임질 거예요?”하지만 상대를 안는 순간 나는 이상하다고 느꼈다.그동안 윤지은과 몇 번이나 몸을 섞었기에 윤지은의 몸매를 나는 잘 알고 있다.윤지은은 아주 마른 체형인데, 커야 할 곳만 큰 여자다. 하지만 내 품에 있는 이 여자는 왜 살집이 있지?이영미도 낯선 남자의 품에 안겨 무의식적으로 놀랐다.“아아, 누구야? 이거 놔!”상대의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걸 듣고 난 뒤에야 나는 사람을 착각했다는 걸 알아챘다.나는 얼른 상대를 놓아주며 거리를 두었다.이영미도 너무 놀라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눈앞에 선 낯선 여자를 본 순간 나는 너무 난감하고 당황했다.‘젠장, 윤지은인 줄 알았는데 왜 다른 사람이야?’“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친구인 줄 알았어요.”나는 말하다가 이상함을 눈치챘다.‘원래대로라면 내가 이 방에 갇힌 건 윤지은만 알 텐데,
나는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앉아 상대를 동정하는 말투로 말했다.“그럼 그쪽도 이젠 끝이네요. 여기 갇히면 나갈 생각 마세요.”“왜요? 저 사라들이 왜 그쪽을 여기 가뒀죠? 누구예요? 이름은 뭐고?”“정수호라고 해요. 여기 호텔 주인 아가씨의 미움을 사서, 그 여자가 저를 여기 가뒀거든요.”나는 낯선 여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나랑 같은 처지라는 생각에 숨김없이 내 사정을 말했다.그 말을 들은 이영미는 내가 자기 딸과 아는 사이라는 걸 알고 더 궁금해졌다.“아하, 여기 주인 아가씨한테 미움받았군요. 무슨 짓을 했는데요?”이영미는 가십거리에 관심 있는 사람처럼 질문했다.물론 나랑 같은 처지인 상대가 안쓰러웠지만, 뭐든 말할 정도는 아니었다.때문에 나는 일부러 얼렁뚱땅 넘겼다.“사실 잘못이라고 할 것도 없어요. 그냥 부잣집 아가씨라 성격이 까다로워 내가 하는 짓이 눈에 거슬린다고 가둔 거예요.”다만 이영미는 대충 얼버무리는 내 대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때문에 아예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아 말했다.“제대로 좀 말해 봐요. 왜 거슬렸다는 건데요? 이 호텔 주인 아가씨 성이 윤 씨거든요. 겉보기에는 쌀쌀맞지만 마음씨는 착한 사람이에요.”자기 딸이 못났다고 생각하는 어머니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이영미 눈에도 딸은 뭐든 훌륭했다. 물론 표정이 항상 뚱하고 쌀쌀맞게 구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나도 심심하던 참에 상대와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나는 윤지은을 헐뜯으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돼요. 가끔 겉모습이 화려하고 빛나는 사람일수록 속이 아주 시커멀 수 있고, 겉보기에 나쁜 사람도 실제로 좋은 사람일 수 있어요. 다만 윤지은 씨는 대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요.”이영미는 더욱 의아해서 되물었다.“그럼 한 번 얘기해 봐요. 뭘 모르겠다는 거예요?”이렇게 상대와 잡담을 나누다 보니 지루하던 시간도 금방 지나갔다.그 시각, 윤지은이 내 핸드폰을 가져간 탓에 나는 아무하고도 연락할 수 없었다.전에 애
하지만 질투가 나고 화가 나면서도 윤지은은 계속 해서 앨범을 확인했다. 보면 볼수록 기분이 언짢았지만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내가 이 사진들을 모든 건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가끔씩 감상하기 위해서 기념으로 남긴 거다.때문에 사진마다 제목도 달아두었다.윤지은은 자기 사진 몇 장을 클릭했다. 내가 그 사진에 적어둔 이릉은 ‘내 처음’이다.윤지은과 한 게 내 처음이었으니까.그때는 정말 황홀하고 기분 좋았다.윤지은은 자기를 묘사하는 꽤 좋은 단어들을 보고 기분이 조금 풀렸다.“내 사진은 언제 또 이렇게 많이 찍었대? 뭐, 예쁘네.”윤지은은 자기 사진을 감상하다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되는 사진 두 장을 자기 폰에 전송했다.그런데 한창 감상하고 있을 때, 내 핸드폰이 울렸다.이번에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형수였다.윤지은은 나와 형수의 사이를 알 리 없었기에 형수라는 이름을 보자 자연스럽게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집에 돌아가지 않은 탓에 가족이 걱정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몹시 당황하고 폰을 돌려줘야 할지 망설여졌다.하지만 결국 이대로 돌려주는 건 너무 후한 처사라는 결론을 내렸다.윤지은은 내가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이었다. 이에 결국 전화를 대신 받고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형수님 되시죠? 수호 씨 찾으세요?”전화 건너편의 형수는 낯선 여자의 목소리에 적잖이 당황했다.심지어 멍한 표정으로 옆에 있는 애교 누나를 바라봤다.하지만 애교 누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이었다.형수는 다급히 전화 건너편에 대고 물었다.[누구시죠? 수호 씨는요?]“지금 샤워 중이에요. 저더러 대신 전화 받으라고 했거든요.”윤지은은 일부러 이렇게 대답했다.내가 여자 친구가 있든 말든 윤지은과 상관없었다. 게다가 내 식구가 내 여자 친구 존재를 알든 말든 자신을 내 가족 앞에서 여자 친구라고 소개하고 싶었으니까.그렇게 되면 내가 진짜 여자 친구를 집에 데려갔을 때 아주 난감한 상황에 놓일 테니까.윤지은은 그저 내가 괴로운 걸 보
“우리도 심심한데 용천 호텔이나 갈까?”형수가 제안했다.하지만 애교 누나는 고개를 저었다.“됐어. 수호 씨가 알면 우리가 자기 감시하러 온 줄 알 거야.”형수는 화가 나 헛웃음을 쳤다.“뭐든 수호 씨만 생각하지 마. 너부터 생각해. 요즘 네 상태 이상한 것 같던데, 왕정민과 이혼한 거 가족한테 말 못 했지?”애교 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이것 때문에 애교 누나는 요즘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혼한 것도 모자라 나이도 훨씬 어린 남자와 사귀고 있으니, 어떻게 가족한테 얘기해야 할지 막막했다. 때문에 요즘 계속 머리가 복잡했던 거고.그동안 애교 누나가 나를 풀어준 것도, 나에게 자유를 준 것도 모두 나와의 미래가 확실하기 않아서였다.확신할 수 없는 관계인데, 이것저것 강요할 수 없었으니까. 그저 본인이 나를 필요로 할 때, 내가 나타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형수는 애교 누나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그러니까 더 기분 전환해야 하는 거야. 기분 다 풀어야 제대로 된 결정도 내릴 거 아니야. 나도 마침 골치 아팠었는데, 이참에 여행이나 가자.”형수의 설득 끝에 애교 누나는 끝내 동의했다.외부 상황을 모르는 나는 형수와 애교 누나도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그저 이영미와 세상모르고 수다를 떨었다.나는 지금껏 여러 스타일의 여자를 만나 봤지만 이영미처럼 이렇게 귀엽고 발랄한 스타일은 또 처음이다.무엇보다 이영미의 발랄함과 귀여움은 일부러 꾸며낸 게 아니라 안에서부터 뿜어나온 거다.이런 여자와 대화하니 몸과 기분이 모두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그렇게 한창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이영미가 갑자기 말했다.“시간도 늦었으니 이만 가봐야겠네요. 나중에 찾아올게요.”“네? 어떻게 나가려고요?”“내가... 일부러 쳐들어온 것도 아니니까 이 정도는 봐주겠죠.”이영미는 계속 연기했다.하지만 상황을 모르는 나는 그녀가 걱정되기만 했다.이영미는 당당하게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밖으로 나오자 두 경호원은 다급히 허리 굽혀 인사했다.하지
윤지은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게다가 지금 이랬다가 다음 순간 바로 돌변해서 나를 죽이겠다고 달려들거나 쌀쌀맞게 굴지도 몰랐으니까.윤지은은 조용할 때는 분명 아름다운 요정 같은데, 미치면 정신병자나 다름없다.그런 미친 텐션을 나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윤지은은 나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팜므파탈’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이 단어로 윤지은을 형용하기에는 다소 합당하지 않았지만, 이 순간 내가 본 윤지은은 팜므파탈 그 자체였다.미소가 무서울 정도로 섬뜩했으니까.“대, 대체 뭘 하려는 거예요?”나는 너무 긴장해서 말까지 더듬었다.물론 얼마 전에 윤지은과 잤지만, 또 그게 후회돼서 내 거시기를 잘라버리겠다고, 혹은 내 껍질을 벗겨버리겠다고 달려온 것일까 봐 무서웠다.그런데 그때 윤지은이 나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그 핸드폰은 다름 아닌 내 것이었다.갑자기 핸드폰을 돌려주는 윤지은의 뜬금없는 행동에 나는 어안이벙벙했다.‘이 여자가 이렇게 착하다고? 분명 목적이 있을 거야. 절대 착한 마음으로 나한테 잘해줄 사람이 아니야.’때문에 나는 핸드폰을 받지 않고 조심스럽게 물었다.“무슨 뜻이에요? 이제 나 풀어주는 거예요?”나는 윤지은의 생각을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그러자 윤지은이 씩 웃으며 말했다.“폰은 돌려줄게. 받아. 싫다면 내가 이 자리에서 망가뜨려 줄 수도 있고.”나는 얼른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내 핸드폰인데, 당연히 가져야지.나는 핸드폰을 받은 순간 통화 내역부터 확인했다. 그리고 애교 누나가 나한테 전화를 십몇 통 걸고, 문자도 수두룩하게 보냈다는 걸 발견했다.애교 누나는 분명 나를 걱정했을 거다. 때문에 나는 얼른 누나한테 전화했다.연결음이 몇 번 울리지도 않고 연결이 됐다.“여보세요? 애교 누나, 저 괜찮아요. 걱정할 필요 없어요. 실수로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방금 찾았어요.”나는 애교 누나한테 거짓말했다. 애교 누나가 나를 걱정하는 게 싫었으니까.
“서 사장님, 괜찮습니까?”“서 사장님...”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서윤기를 부축했다.서윤기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지만 코에서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젠장. 누군데 서 사장님을 때려?”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서윤기가 손을 뻗자 사람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서윤기는 휴지로 피를 닦더니 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정수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렇게 큰 Y시에서 다 만나고.”나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사장님이 여기로 인도해 주셨어. 네놈이 여기 있는 줄 알고 너 처리하라고 여기로 이끌어 주셨어.”서윤기는 그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호섭 말이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호섭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신통하다면 왜 자기 죽음도 못 막았겠어?”정 사장님이 불상사를 당한 뒤 모든 사람이 비통했는데, 서윤기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울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그때 이동민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젠장. 감히 내 앞에서 서 사장님께 폭력을 써?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이동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듣기로 이동민은 예전에 백정이라서 아주 포악했었다는 말도 있다.나 역시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도살업자는 설령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피부와 핏속까지 스며든 피비린내를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동민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나와 이동민의 표정은 동시에 일그러졌다.이동민은 내 주먹이 그렇게 단단할 걸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 주먹을 받아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나 역시 꽤 센 이동민의 주먹에 흠칫 놀랐다.싸움을 배운 뒤로 나는 이 정도 상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주먹끼리 부딪힌 뒤 한동안 팔이 저리더니 잠
버섯전골은 Y시 명물이라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다. 어느새 냄비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방안 전체에 퍼져 버섯 냄새가 가득했다.윤지은은 사모님한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유미야, 너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많이 먹어.”“그만 집어 줘. 내가 직접 먹을 수 있어. 두 사람도 먹어.”우리는 묵묵히 전골을 먹었다.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분위기는 다소 조용했다.나는 몇 번이나 분위기를 띄워주려고 했지만 사모님이 별 반응이 없고, 윤지은도 협조하지 않아 혼자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차 마시고 싶어...”사모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제가 물어볼게요.”무엇보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낸 사모님의 요구를 얼른 만족시켜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큰 방을 지나다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안을 들여다봤다.그랬더니 내 눈에 익숙한 실루엣, 서윤기가 들어왔다.‘서윤기가 Y시에 왔다고?’나는 얼른 몸을 숨긴 채 안대성에게 전화했다.“서윤기를 감사하라고 했잖아. Y시에 온 건 왜 말 안 했어?”[네? 서윤기가 Y시에 갔다고요? 몰랐는데요? 형님, 제가 부하들한테 서윤기 잘 감시하라고 시켰는데...]안대성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인지하고 얼른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놈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룸 안을 훔쳐봤다.룸 안에는 서윤기 외에 Y시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은 왠지 낯이 익었다.나는 몰래 중년 남자의 사진을 찍어 판자촌 노랑머리에게 보냈다.[이 사람 알아요?]노랑머리는 곧바로 답장했다.[그 사람은 이연화의 아버지 판자촌 터줏대감 이동민이에요.]‘젠장.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이연화와 닮았잖아.’‘이동민이 여기 나타난 데다 서윤기와 웃고 떠드는 걸 보니 설마 정 사장님 교통사고가 서윤기 짓인가?’나는 그럴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서윤기가 강북 시장
“한 번에 천만 원? 여기가 뭔 금은방인 줄 알아요?”나도 이제는 돈 좀 있지만 한 번에 음식점에 천만 원을 충전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에서 최고급 호텔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도 고작 몇백만 원인데, 길가에 널리고 널린 버섯전골 집이 멤버십 카드만 천만 원이라니?매니저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돈 없으면 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나가요.”“잠깐!”나는 언성을 높였다.그러자 매니저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왜요? 또 무슨 일이죠?”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난 이 가게가 악의적으로 손님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고 의심되거든. 그래서 지금 신고할 생각이야.”내가 신고하겠다는 말에 매니저는 얼굴색이 싹 바뀌더니 나를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당신 미쳤어? 본인이 밥 먹을 돈 없으면서 왜 남의 가게를 신고해?”“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더니, 왜? 내가 신고할까 봐 두려워? 불법 경영한 거 걸릴까 봐 걱정돼? 그렇다면 더 신고해야겠네. 이렇게 부도덕한 가게는 문 닫아야 하니까.”윤지은은 네 행동을 지지했다. 심지어 사모님 역시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나는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매니저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이분을 풀 생각이었다.내가 정말 전화하자 매니저는 이내 태도를 누그러뜨렸다.“알았어요. 오늘 일은 저희 측 책임이니 사과드리죠. 지금 당장 자리 내어드릴게요. 됐죠?”“어디? 홀? 아니면 구석?”내가 따져 물었다.그러자 매니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당연히 룸을 내드려야죠. 하지만 큰 룸은 이미 손님이 꽉 차 작은 룸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용은 사과하는 의미에서 받지 않겠습니다.”나는 손을 뻗어 매니저의 말을 잘랐다.“됐어. 값은 원래대로 받아요. 안 그러면 음식에 또 뭔 짓 할지도 모르니까.”매니저는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매니저가 비열한 소인배라고 공개 처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나는 윤지은과
결국 어쩔 수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내려가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Y시에 버섯전골 맛집은 꽤 많았다. 하지만 사모님 기분이 안 좋은 지금 작은 가게를 가면 보는 눈이 많고 시끄러워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나는 한적한 가게를 찾으려고 한참을 더 걸었다. 다행히 그런 가게를 찾는데 겨우 성공했다.“안녕하세요. 프라이빗룸 하나 예약하게요.”이 가게는 환경도 좋고 손님도 많은 걸 보니 맛도 괜찮은 듯 시었다.“큰 룸 하나가 남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큰 룸은 얼마인데요?”“큰 룸은 기본 소비가 60만 원 이상입니다.”“좋아요. 그걸로 주세요.”60만 원이면 괜찮았다.룸을 예약한 뒤 나는 또 운전해서 윤지은과 사모님을 픽업하러 호텔로 돌아갔다.두 사람은 어느새 현지 특색이 담겨 있는 꽃무늬 옷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절세 미녀들이라 그런지 뭘 입어도 예뻤다.물론 나는 칭찬의 말을 아꼈다. 지금 장소와 분위기에 그런 칭찬은 맞지 않았으니까.잘못했다가 또 윤지은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나는 일부러 맞을 짓을 골라 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우리는 버섯전골 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하테 큰 룸 예약을 도와줬던 종업원이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손님, 죄송하지만 큰 룸은 이미 다른 분이 예약하셨습니다.”“방금 분명 내가 먼저 예약했잖아요. 왜 남의 방을 함부로 다른 손님한테 내줘요?”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종업원은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인터넷 오류가 났는지 그 방은 이미 예약한 분이 있어요.”이미 이곳에 왔는데 그대로 갈 수 없었기에 나는 차선책을 제시했다.“그럼 작은 방이라도 줘요.”“죄송하지만 오늘 가게에 있는 모든 룸은 이미 예약돼서 남은 룸이 없어요. 괜찮으시면 홀에 있는 자리를 내어줄게요. 동남쪽에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요.”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당신들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예약한 자리가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
우리는 희망을 이연화에게 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때문에 그 백수들이 소식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만 했다.하지만 윤지은은 호텔에 갇혀만 있으면 사모님이 답답해할까 봐 한가할 때면 사모님과 함께 산책하곤 했다.사모님이 자기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동력과 희망이 없는 탓에 사모님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Y시에 온 지 사흘 만에 강한나는 다시 강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 우리와 함께 시사 자리를 가졌다.“정말 여기 남아서 조사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한나가 말했다.“알았어. 나도 도와줄 건 없으니 성공하길 빌게.”나와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이 화장실 간 틈에 강한나는 얼른 우리에게 말했다.“호섭 씨 시신 어느 때 화장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몰라. 유미가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그 말에 강한나가 말했다.“시체를 화장하지 않아도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난 고인 편히 쉬게 해주는 게 좋다고 봐.”“하. 그런데 문제는 유미가...”사모님이 아쉬워하는 게 문제다.화장하지 않으면 그래도 보러 갈 수 있지만 화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사실 나도 강한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그 말 이해해요. 사모님은 저희가 설득해 볼게요.”식사를 마친 뒤 강한나는 그 길로 떠났다.나와 윤지은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두 사람 먼저 돌아가. 난 장례식장에 가볼 거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사모님이 또 사장님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도 규정이 있는데, 아무 때나 들여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그건 다른 것도 아닌 시신이니까.그때 윤지은이 입을 열었다.“유미야, 이번에 보고 난 뒤 호섭 씨 편히 자게 해주자.”“안 돼!”사모
“왕정민 이 파렴치한 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분명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애교 누나한테 집착하다니.“애교 누나는 그럼 어떻게 처리했어요? 신고는 했어요?”[애교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더라고요. 그걸 다시 왕정민한테 보냈어요. 심지어 안에 뭔갈 더 추가해서.]“네? 하하. 애교 누나가 정말 변했네요.”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것도 다 왕정민 때문에 할 수 없이 변한 거긴 하지만요. 애교가 만만한 줄 알고 애교만 괴롭히다니. 그렇게 대단하면 그 여자를 그렇게 괴롭히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걸요.][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여자들은 뭐 드세고 화를 자주 내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겠어요? 다 남자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 거죠.][특히 우리 여자들은 가끔 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독하지 않으면 남들이 괴롭혀도 되는 줄 알아요...]나는 형수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애교 누나가 이토록 강해졌다니 나는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형수도 마찬가지고.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다.형수와 한참 얘기한 뒤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에게 전화했다.“누나, 왕정민 일은 왜 말 안 했어요?”애교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리고 듣기 좋았다.[수호 씨가 Y시에 있는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수호 씨 가 나 때문에 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의 보호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그동안 아빠한테 반항하면서 독립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껏 한 번도 그렇게 산 적이 없어요.][예전에 결혼에 묶여 나를 잃었고,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여자는 자기 마음이 강해져야 진짜 강한 거예요.]애교 누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누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이 아직도 내가 알던 나약하기만 하고, 무
“내가 방 하나 더 잡을게요.”나는 말하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사모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먼저 내 침대에서 눈 붙여요.”고개를 돌아보니 사모님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누울 공간을 내주었다.나는 속으로 거절했다.비록 사모님이 다른 마음 없이 그저 나를 휴식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는 걸 알지만, 사장님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사모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말도 안 됐다.게다가 윤지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내가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결국 거절했다.“아니에요. 가서 다른 방 구하면 돼요.”나는 다급히 방을 나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처음 온 날 우리는 사실 싱글룸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모님 상태가 걱정되어 나와 윤지은이 사모님 방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나머지 싱글룸 두 개를 취소했다.확인 결과 더블룸 하나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얼른 그 방을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과 윤지은이 더블룸에서 함께 지내고 내가 싱글룸에서 지내면 되니까.나는 카드키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조용한 데다 환경도 좋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침대에 눕기 바쁘게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요즘 사장님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달려 다니느라 형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마침 조용한 틈을 타 나는 형수와 얘기하려고 여상 통화를 받았다.형수는 사모님 상태를 걱정하며 일의 진전을 물어봤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쉽지 않아요. 조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수호 씨 사장님 내외가 수호 씨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 기회에 유미 씨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형수가 말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저도 알아요. 형수는 요즘 어때요?”[좋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요.]“진짜예요? 사진 찍어 보내 봐요.”나는 너무 기뻐 흥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