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다 같이 신나게 놀지 몰라도, 내일이면 다 흩어질 텐데, 이 기회에 마음껏 즐겨야 할 거 아닌가?우리가 한창 신나게 놀고 있을 때, 누군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왔다.“어머, 다들 뭐 하는 거야?”윤지은의 어머니 이영미가 문 앞에 서서 미친 듯이 춤을 추는 우리를 보고 넋을 잃었다.윤지은은 어머니가 이곳에 갑자기 올 줄 몰랐는지 다급히 용모를 정리하고 평소의 도도한 모습으로 돌아왔다.그러고는 얼른 제 어머니한테 달려갔다.“엄마, 왜 왔어요?”“혼자 방에 있는 게 심심해서 같이 수다나 떨려고 왔지.”윤지은은 오늘 밤 너무 정신없이 놀아, 자기 어머니도 용천 호텔에 있다는 걸 까맣게 잊었다.게다가 이렇게 미친 듯이 노는 모습을 엄마한테 들키고 말았다.다들 윤지은의 어머니를 보자 다가와서 인사했다.하지만 나는 도저히 다가갈 수 없었다.상체를 아예 벗고 있던 나는 얼른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때문에 다들 이영미한테 다가갈 때, 나는 구석에서 숨어 옷을 입기 바빴다. 그 모습은 마치 바람 현장을 들킴 사람 같이 볼품없었다.나는 다들 룸 안으로 늦게 들어오길 바랐다. 적어도 그사이에 내가 얼른 옷을 입어야 했으니까.하지만 역시 걱정하는 일은 벌어진다고, 내가 옷을 채 입지도 못했는데 이영미는 누나들한테 끌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때문에 내가 황급히 옷을 입는 모습은 그대로 이영미한테 들키고 말았다.이 상황은 정말 어색했다.“다들... 뭐 하고 있었던 거야?”이영미는 뭔가 오해한 모양이었다.나 혼자서 여섯 명을 상대한 거라고 착각한 모양이었다.윤지은이 다급히 설명했다.“오해하지 마요. 춤춘 거예요. 분위기를 타서 그런 거예요.”“춤추는데 옷은 왜 벗어? 뭐 스트립쇼라도 했어?”이영미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 말에 애교 누나와 사모님이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그에 반해 백연우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우리가 한 게 아니라, 정수호 혼자 한 거예요. 우리는 구경했어요.”“하하, 잘 추든?”이영미는 나를 위아
나는 이명미가 아주 잘생긴 호스트 두 명을 불어올 줄은 몰랐다.물론 이런 자리에 나오는 게 두 사람 일인 건 알았지만, 백연우와 하정현이 두 사람 옆에 다가간 걸 보니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분명 모두 내 곁을 맴돌았는데. 이제는...“엄마, 저 사람들은 왜 불렀어요?”윤지은은 어머니 곁에 앉아 작은 소리로 물었다.두 사람은 용천 호텔에서 일하는 유명한 호스트라 이곳에서 꽤 유명했다. 윤지은은 이 사실이 아버지 귀에 들어갈까 봐 두려워했다.하지만 이영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네 아빠가 나 상관도 안 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뭐 어때서? 나만 기분 좋으면 되지.”이영미는 일부러 이랬다.집을 나온 지 이틀이나 되는데, 남편한테서 전화도 오지 않고, 문자도 오지 않는 게 너무하다고 생각했으니까.윤해철이 자기를 관심하지 않으니, 뭘 하든 상관없다고 여겼다.일부러 윤해철을 화나게 하려고.윤지은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마음대로 해요. 하지만 미리 말하는데, 뭘 하든 상관없지만, 정수호는 멀리 해요.”이영미는 나를 흘긋 보더니 의아한 듯 물었다.“왜? 혹시 네 남자 친구야?”“아니요, 저 사람 인성이 문제 있어요. 엄마를 어떻게 해보려고 할까 봐 그래요.”윤지은은 나를 모함하려고 못하는 말이 없었다.이영미는 나랑 같이 갇혀 있던 날을 떠올리더니 말했다.“사람 괜찮던데? 혹시 무슨 오해가 있는 거 아니야? 그리고 저렇게 잘생긴 데다, 한의사라며? 나 요즘 허리 아파서 마침 마사지 좀 받으려고 했는데.”윤지은은 어머니의 말을 듣자마자 뜯어말렸다.“멈춰요. 눈굴 찾든 상관없는데, 정수호는 안 돼요. 내가 나중에 의사 알아봐 줄게요. 내 연락 기다려요.”이영미는 더 물어보려 했지만 윤지은이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버렸다. 그 때문에 그녀는 오히려 마음이 더 근질근질했다.윤지은은 자기 어머니와 나 사이에 정말 뭐라도 있을까 봐 바로 한의원에 전화해 의사를 찾았다.윤지은은 애초부터 싹을 자를 생각이었다.모든 걸
나는 벌떡 일어나 공손하게 전화를 받았다.“사모님, 무슨 일이세요?”[별일 아니고, 뭐 좀 부탁드리고 싶어서요.]유미 사모님은 내가 백연우한테 당할까 봐 미리 전화해서 도와주려는 거였다.하지만 그걸 모르는 나는 사모님이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나는 얼른 침대에서 내려왔다.“그냥 시키면 되지 부탁이라니요.”[그... 물 한 병만 사다 줄래요?]방문 앞까지 나간 나는 사모님의 말에 멈칫했다.“네? 방에 혹시 물 없어요?”‘여기 방마다 물이 있을 텐데? 없더라도 프런트에 전화하면 바로 가져다줄 텐데.’이런 작은 일로 굳이 전화한다는 게 너무 이상했다.하지만 그때 사모님이 바로 말을 이었다.[나 방에 있는 물 마시고 싶지 않아요. EVIAN 브랜드만 먹거든요,]그건 유명한 생수 브랜드인데, 생수 한 병에 몇천 원이다. 하지만 이 호텔에서는 그것보다 몇 배는 되어 몇만 원 정도 한다.일반인한테는 너무 사치스러운 거지만, 유미 사모님 같은 부자한테는 아무것도 아닌 듯했다.나는 단순히 사모님이 그 브랜드 생수를 마시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다.“그래요, 바로 사다 드릴게요.”나는 방을 나와 일부러 그 브랜드 생수를 파는 곳에 가 생수 두 병을 구매했다. 고작 두 병에 4만 원이었다.내가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백연우가 마침 내 방으로 갔다. 하지만 방에 사람이 없었다.백연우는 의아한 나머지 얼른 감시 카메라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내가 전화를 받고 어디론가 나갔다는 걸 발견하고 얼른 나에게 전화했다.하지만 나는 서둘러 물 배달하느라 진동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게 백연우의 심기를 단단히 건드려 버렸다.“흥! 정수호, 네가 나를 만족시켜 줄 수 없다면, 나 다른 사람 찾을 거야.”백연우는 화가 난 듯 뒤돌아 떠나갔다.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생수를 사서 사모님께 배달했다.똑똑똑.유미 사모님의 방을 노크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모님이 문을 열었다.방을 흘긋 들여다봤더니 백연우가 보이지 않았다.“사모님, 백 쌤은요?”“일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사모님도 눈치챘는지 바로 사과했다.사모님의 그런 태도에 내가 오히려 어색해졌다.“별거 아닌데, 사과할 필요 없어요.”별일 아닌 거로 크게 반응하는 사모님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살짝 터치한 것뿐인데, 이렇게 긴장하며 사과할 필요가 있나?’그때 사모님이 아주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내가 수호 씨를 일부러 꼬신 거라고 오해할까 봐 그래요. 이렇게 입고 수호 씨 만나는 게 어색해서요. 당황하다 보니 손도 내 말을 안 듣네요.”“사모님은 그런 분 아니라는 거 알아요. 그렇지 않으면 그때 옷 살 때, 지퍼 올려달라는 부탁도 안 했을 거잖아요.”유미 사모님 얼굴은 더 붉어졌다.“그만 말해요. 그때 일은 내 아이디어가 아니에요.”“네?”“솔직히 말하면, 그때 여정이 수호 씨를 시험한 거예요. 그때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수호 씨는 모를걸요. 한 번도 다른 남자와 그런 스킨십을 한 적 없는데, 그때 부끄러워 죽는 줄 알았어요.”나는 문뜩 그날이 떠오르면서 소름이 돋았다. 그때 내가 엉큼한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틀림없이 끝장났을 거다.”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다른 시키실 일 없으면 얼른 쉬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래요, 가 봐요.”808호실을 나온 나는 내 방인 819호실로 향했다.하지만 801호실을 지날 때 안에서 익숙한 여자의 신음이 들려왔다.그 목소리는 백연우 목소리 같았다.마침 방문이 꽉 닫히지 않아, 나는 몰래 문틈 사이로 안을 훔쳐봤다.그런데 안을 확인한 순간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백연우는 아까 이영미가 불러왔던 호스트 중 한 명을 불러 한창 즐기고 있었다.백연우는 침대 옆에 서 있었고, 그 남자는 백연우 위에서 열심히 힘쓰고 있었다.황홀한 표정의 백연우를 본 순간 나는 넋을 잃었다.백연우가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정말 필요하다면 나를 찾아오면 되지, 왜 몸 파는 사람을 찾는지.순간 기분이 썩 좋지 않아, 나는 씩
나는 백연우의 손을 뿌리쳤다.“새 애인 생겼으면서 왜 찾아왔어요?”백연우는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아까 808호실 갔었어? 뭘 봤는데?”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침묵은 모든 걸 묵인했다.백연우는 매혹적인 표정을 지으며 싱긋 웃더니 내 셔츠를 정리해 주었다.“나 사실 너 찾으러 왔었어. 그런데 전화 받고 나가더라고.”“내가 전화 받고 나간 건 어떻게 알았어요?”나는 문뜩 궁금했다.백연우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나한테 천리 밖까지 보는 초능력이 있거든.”“귀신을 속여요.”“정수호. 우리 서로 즐기기로 한 거 아니야? 설마 진심이었어?”나는 갑자기 마음이 찔려 버럭 소리쳤다.“누가 진심이라는 거예요? 아니거든요.”“아니면 다행이고. 난 연아거나 결혼은 질색이야. 나랑 재미 보는 건 괜찮지만, 날 묶어둘 생각이라면 버려.”순간 백연우가 남주 누나와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두 사람은 조금 달랐다.남주 누나는 노는 걸 좋아하지만 자기를 잘 숨기고, 다른 남자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하지만 백연우는 아니다. 그녀는 절대 무엇으로도 자신을 구속하지 않는다.“나 훔쳐볼 때, 흥분했어?”백연우가 갑자기 나에게 바싹 다가와 윙크하며 물었다.방금 전 장면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나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우리가 사귀는 게 불가능해도, 대놓고 그런 질문하는 건 아니죠.”“얼씨구, 소유욕이 넘치네. 그럼 화 좀 가라앉혀줄까?”“그래요.”나는 백연우를 거칠게 밀어 버렸다.내가 이렇게 난폭하게 나올 줄 몰랐는지, 백연우는 준비도 없이 그대로 침대에 주저앉아 버렸다.하지만 곧바로 눈빛이 야릇하게 변했다.“이런 모습도 있었네? 마음에 들어. 이리 와서 누나 마음껏 다뤄줘...”나는 바로 백연우를 덮쳐 거칠게 밀어붙였다.밤새도록 하다 보니 지쳐버린 나는 그대로 백연우를 안고 잠이 들었다.피곤한 나머지 너무 깊게 잠든 나는 날이 밝은 뒤에야 백연우의 핸드폰 소리에 잠
나는 전화를 바로 끊고 방 안을 샅샅이 뒤졌다.한번 빙 둘러보고 나니 침대 맞은편 벽화가 조금 이상하다는 걸 발견했다.그리고 벽화를 뜯어 봤더니 역시나 여자아이의 눈에 아주 작은 소형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이건 너무 충격이었다.호텔 방은 개인 공간인데, 그런 사적인 공간에 카메라가 숨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나는 얼른 침대 쪽으로 달려가 백연우를 흔들어 깨웠다.“얼른 일어나요!”“뭐야? 나 피곤하다고.”백연우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나를 째려봤다.“이거 설명해요. 이 카메라, 백 쌤이 단 거예요?”나는 카메라를 뜯어내 백연우 앞에 떡하니 내밀었다.눈을 비비던 백연우는 소형 카메라를 보고도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싱긋 웃었다.“어머, 들켰네.”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화가 치밀었다.“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이러면 난 사생활이 하나도 없잖아요.”“우리 그런 짓도 한 사이인데, 서로 사생활을 따져서 뭐 해?”“너무 하네요!”나는 화가 나서 카메라를 바닥에 내팽개쳤다.그러자 백연우가 아예 침대에 번듯하게 누워 말했다.“지금 나한테 짜증 낸 거야?”“이러는 게 정상 아니에요? 제 동의도 없이 방에 카메라를 설치했는데, 화도 못 내요?”“그래,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백연우는 나에게 사과했다.하지만 그걸 받아줄 마음은 없었다.“사과해도 소용없다면, 뭘 원하는데? 한 번 더 화풀이할래?”백연우는 침대에서 일어나 두 손을 내 목에 감으며 내 얼굴에 입 맞췄다.“사실 나 나쁜 의도로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네가 방에서 매일 뭐 하나 보고 싶어서 그랬어.”“그럼 왜 소여정 씨한테 보냈어요?”내가 퉁명스럽게 묻자 백연우는 한참 생각하더니 대답했다.“우리 지은이 너랑 그런 사이라는 게 너무 충격이라 친구랑 공유하려고 그랬지.”“사모님은 알아요?”“유미한테는 아직 말 안 했어. 계는 애가 너무 올곧고 착해서 내가 그랬다는 걸 알면 바로 뜯어말렸을 거야.”“본인이 잘못했다는 걸 알기나 해요? 대학 학과장이라는 사람이
“그럼 임천호는요?”“하, 그 남자는 매일 바빠서 소여정과 같이 있어 줄 시간이 어디 있어?”“그럼 왜 불러갔는데요?”“소유욕이지 뭐. 소여정이 밖에서 마음대로 하다가 도망치거나, 딴 놈과 눈 맞아 바람날까 봐 그러지. 그래서 옆에 묶어두고 카나리아처럼 기르고 있어.”백연우는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난 뒤 소여정한테 영상 통화를 걸고는 아예 카메라를 내 쪽으로 돌렸다.나는 얼른 얼굴을 가렸다.“왜 나를 비춰요?”“무서워할 거 뭐 있어? 우리 잤잖아. 소여정이 남도 아니고.”‘그래도 내가 어색하다고요.’게다가 소여정이 이걸 알면 이것저것 캐물을 게 뻔하다.아니나 다를까, 나를 본 소여정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무슨 상황이야? 두 사람 붙어먹었어? 너무하네. 백연우, 나 부러워하라고 일부러 이러는 거지?”백연우는 카메라를 자기 쪽으로 돌리더니 싱긋 웃었다.“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숨기기 싫어서 그랬어. 난 한 건 인정하는 사람이잖아. 숨길 거 뭐 있어?”“너 지금 윤지은이 한 일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까는 거지?”소여정은 입을 막으며 피식 웃었다.백연우는 이내 웃으며 대답했다.“난 그런 말 한 적 없어. 그건 네가 한 말이야. 여정아, 너 수호 씨 그곳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연우는 일부러 소여정을 놀려댔다.이에 화가 난 소여정은 끊임없이 영상에 대고 주먹질했다.“입 다물어. 그만 말해. 안 그래도 부러운데, 이젠 배 아파. 너희들을 봐, 얼마나 자유로워. 나만 혼자 자유를 잃은 새잖아. 참, 수호 씨 좀 바꿔 봐. 할 말 있으니까.”백연우는 나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나는 얼른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영상 속에 비친 소여정을 보니 문뜩 그녀가 보고 싶어졌다.“정수호, 요즘 조심해.”“왜요?”나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임천호의 경호원 중에 정태곤이라는 사람이 없어졌어. 아마 강북으로 간 것 같아.”“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나는 아직도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정태곤은 임천호 개인 경호원이거든. 중요한 일 아니면
나는 더 이상 소여정과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한테 계속 접근해 온 건 본인이면서, 일이 생겼는데 이런 말을 한다니.백연우는 소여정과 한참 통화하다가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나는 여전히 방금 전 들은 사실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백연우는 어느새 옷을 입고 싱긋 웃으며 내 뒤로 걸어왔다.“왜? 무서워?”“아니요!”나는 자존심에 끝까지 부인했다.그러자 백연우가 웃으며 내 팔을 꼬집었다.“아니긴, 몸이 뻣뻣하게 굳었으면서.”사실 나는 속으로 무척 긴장하고 있었다. 불안하기도 했고. 하지만 백연우 앞에서 인정하기는 싫었다.그러면 너무 찌질하고 멍청해 보일 것 같아서.하지만 내가 아무리 뻔뻔하게 아닌 척 우겨봤자, 백연우의 눈은 속일 수 없었다.백연우는 팔짱을 낀 채 웃으며 말했다.“정말 무서워한다고 해도 정상이야. 이런 상황에 안 무서울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런데 걱정하지 마. 우리가 지켜줄 테니까. 소여정도 지켜줄 거고.”“정말요? 아까 임천호가 자기 말은 안 믿는다고 했는데.”백연우는 웃으며 말했다.“그건 소여정이 일부러 겁주려고 한 말이고. 임천호가 소여정 말 안 믿어도 소여정은 너 지켜줄 거야. 나도 그렇고, 지은도 있고, 네 사장 사모님도 있고. 우리가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거야.”백연우의 말을 들으니 나는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이런 상황에 나는 무서워하기만 하고, 남다답게 책임질 줄도 모르고.전에 윤지은의 경호원 양동준처럼 될 거라고 했으면서, 결국 또 이렇게 되었다.나는 깊은숨을 들이켜고는 진지하게 말했다.“아니에요. 제가 알아서 해결할게요.”“오호? 갑자기 왜 남자다워졌대?”“저 항상 남자다웠거든요. 그걸 몰랐어요?”나는 야릇한 농담으로 내 남성미를 어필했다.하지만 나도 알고 있었다. 이런 생각이 얼마나 유치한지.한 사람이 정말 남자다운지는 잠자리 기술이 아니라 책임감이 있는지 없는지에 달렸다.지금의 나는 그저 책임감을 질 마음만 있을 뿐 그럴 능력은 없다.물론 입으로는 내가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서 사장님, 괜찮습니까?”“서 사장님...”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서윤기를 부축했다.서윤기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지만 코에서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젠장. 누군데 서 사장님을 때려?”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서윤기가 손을 뻗자 사람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서윤기는 휴지로 피를 닦더니 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정수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렇게 큰 Y시에서 다 만나고.”나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사장님이 여기로 인도해 주셨어. 네놈이 여기 있는 줄 알고 너 처리하라고 여기로 이끌어 주셨어.”서윤기는 그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호섭 말이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호섭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신통하다면 왜 자기 죽음도 못 막았겠어?”정 사장님이 불상사를 당한 뒤 모든 사람이 비통했는데, 서윤기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울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그때 이동민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젠장. 감히 내 앞에서 서 사장님께 폭력을 써?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이동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듣기로 이동민은 예전에 백정이라서 아주 포악했었다는 말도 있다.나 역시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도살업자는 설령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피부와 핏속까지 스며든 피비린내를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동민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나와 이동민의 표정은 동시에 일그러졌다.이동민은 내 주먹이 그렇게 단단할 걸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 주먹을 받아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나 역시 꽤 센 이동민의 주먹에 흠칫 놀랐다.싸움을 배운 뒤로 나는 이 정도 상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주먹끼리 부딪힌 뒤 한동안 팔이 저리더니 잠
버섯전골은 Y시 명물이라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다. 어느새 냄비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방안 전체에 퍼져 버섯 냄새가 가득했다.윤지은은 사모님한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유미야, 너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많이 먹어.”“그만 집어 줘. 내가 직접 먹을 수 있어. 두 사람도 먹어.”우리는 묵묵히 전골을 먹었다.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분위기는 다소 조용했다.나는 몇 번이나 분위기를 띄워주려고 했지만 사모님이 별 반응이 없고, 윤지은도 협조하지 않아 혼자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차 마시고 싶어...”사모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제가 물어볼게요.”무엇보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낸 사모님의 요구를 얼른 만족시켜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큰 방을 지나다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안을 들여다봤다.그랬더니 내 눈에 익숙한 실루엣, 서윤기가 들어왔다.‘서윤기가 Y시에 왔다고?’나는 얼른 몸을 숨긴 채 안대성에게 전화했다.“서윤기를 감사하라고 했잖아. Y시에 온 건 왜 말 안 했어?”[네? 서윤기가 Y시에 갔다고요? 몰랐는데요? 형님, 제가 부하들한테 서윤기 잘 감시하라고 시켰는데...]안대성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인지하고 얼른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놈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룸 안을 훔쳐봤다.룸 안에는 서윤기 외에 Y시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은 왠지 낯이 익었다.나는 몰래 중년 남자의 사진을 찍어 판자촌 노랑머리에게 보냈다.[이 사람 알아요?]노랑머리는 곧바로 답장했다.[그 사람은 이연화의 아버지 판자촌 터줏대감 이동민이에요.]‘젠장.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이연화와 닮았잖아.’‘이동민이 여기 나타난 데다 서윤기와 웃고 떠드는 걸 보니 설마 정 사장님 교통사고가 서윤기 짓인가?’나는 그럴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서윤기가 강북 시장
“한 번에 천만 원? 여기가 뭔 금은방인 줄 알아요?”나도 이제는 돈 좀 있지만 한 번에 음식점에 천만 원을 충전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에서 최고급 호텔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도 고작 몇백만 원인데, 길가에 널리고 널린 버섯전골 집이 멤버십 카드만 천만 원이라니?매니저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돈 없으면 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나가요.”“잠깐!”나는 언성을 높였다.그러자 매니저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왜요? 또 무슨 일이죠?”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난 이 가게가 악의적으로 손님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고 의심되거든. 그래서 지금 신고할 생각이야.”내가 신고하겠다는 말에 매니저는 얼굴색이 싹 바뀌더니 나를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당신 미쳤어? 본인이 밥 먹을 돈 없으면서 왜 남의 가게를 신고해?”“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더니, 왜? 내가 신고할까 봐 두려워? 불법 경영한 거 걸릴까 봐 걱정돼? 그렇다면 더 신고해야겠네. 이렇게 부도덕한 가게는 문 닫아야 하니까.”윤지은은 네 행동을 지지했다. 심지어 사모님 역시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나는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매니저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이분을 풀 생각이었다.내가 정말 전화하자 매니저는 이내 태도를 누그러뜨렸다.“알았어요. 오늘 일은 저희 측 책임이니 사과드리죠. 지금 당장 자리 내어드릴게요. 됐죠?”“어디? 홀? 아니면 구석?”내가 따져 물었다.그러자 매니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당연히 룸을 내드려야죠. 하지만 큰 룸은 이미 손님이 꽉 차 작은 룸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용은 사과하는 의미에서 받지 않겠습니다.”나는 손을 뻗어 매니저의 말을 잘랐다.“됐어. 값은 원래대로 받아요. 안 그러면 음식에 또 뭔 짓 할지도 모르니까.”매니저는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매니저가 비열한 소인배라고 공개 처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나는 윤지은과
결국 어쩔 수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내려가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Y시에 버섯전골 맛집은 꽤 많았다. 하지만 사모님 기분이 안 좋은 지금 작은 가게를 가면 보는 눈이 많고 시끄러워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나는 한적한 가게를 찾으려고 한참을 더 걸었다. 다행히 그런 가게를 찾는데 겨우 성공했다.“안녕하세요. 프라이빗룸 하나 예약하게요.”이 가게는 환경도 좋고 손님도 많은 걸 보니 맛도 괜찮은 듯 시었다.“큰 룸 하나가 남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큰 룸은 얼마인데요?”“큰 룸은 기본 소비가 60만 원 이상입니다.”“좋아요. 그걸로 주세요.”60만 원이면 괜찮았다.룸을 예약한 뒤 나는 또 운전해서 윤지은과 사모님을 픽업하러 호텔로 돌아갔다.두 사람은 어느새 현지 특색이 담겨 있는 꽃무늬 옷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절세 미녀들이라 그런지 뭘 입어도 예뻤다.물론 나는 칭찬의 말을 아꼈다. 지금 장소와 분위기에 그런 칭찬은 맞지 않았으니까.잘못했다가 또 윤지은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나는 일부러 맞을 짓을 골라 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우리는 버섯전골 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하테 큰 룸 예약을 도와줬던 종업원이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손님, 죄송하지만 큰 룸은 이미 다른 분이 예약하셨습니다.”“방금 분명 내가 먼저 예약했잖아요. 왜 남의 방을 함부로 다른 손님한테 내줘요?”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종업원은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인터넷 오류가 났는지 그 방은 이미 예약한 분이 있어요.”이미 이곳에 왔는데 그대로 갈 수 없었기에 나는 차선책을 제시했다.“그럼 작은 방이라도 줘요.”“죄송하지만 오늘 가게에 있는 모든 룸은 이미 예약돼서 남은 룸이 없어요. 괜찮으시면 홀에 있는 자리를 내어줄게요. 동남쪽에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요.”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당신들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예약한 자리가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
우리는 희망을 이연화에게 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때문에 그 백수들이 소식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만 했다.하지만 윤지은은 호텔에 갇혀만 있으면 사모님이 답답해할까 봐 한가할 때면 사모님과 함께 산책하곤 했다.사모님이 자기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동력과 희망이 없는 탓에 사모님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Y시에 온 지 사흘 만에 강한나는 다시 강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 우리와 함께 시사 자리를 가졌다.“정말 여기 남아서 조사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한나가 말했다.“알았어. 나도 도와줄 건 없으니 성공하길 빌게.”나와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이 화장실 간 틈에 강한나는 얼른 우리에게 말했다.“호섭 씨 시신 어느 때 화장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몰라. 유미가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그 말에 강한나가 말했다.“시체를 화장하지 않아도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난 고인 편히 쉬게 해주는 게 좋다고 봐.”“하. 그런데 문제는 유미가...”사모님이 아쉬워하는 게 문제다.화장하지 않으면 그래도 보러 갈 수 있지만 화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사실 나도 강한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그 말 이해해요. 사모님은 저희가 설득해 볼게요.”식사를 마친 뒤 강한나는 그 길로 떠났다.나와 윤지은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두 사람 먼저 돌아가. 난 장례식장에 가볼 거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사모님이 또 사장님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도 규정이 있는데, 아무 때나 들여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그건 다른 것도 아닌 시신이니까.그때 윤지은이 입을 열었다.“유미야, 이번에 보고 난 뒤 호섭 씨 편히 자게 해주자.”“안 돼!”사모
“왕정민 이 파렴치한 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분명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애교 누나한테 집착하다니.“애교 누나는 그럼 어떻게 처리했어요? 신고는 했어요?”[애교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더라고요. 그걸 다시 왕정민한테 보냈어요. 심지어 안에 뭔갈 더 추가해서.]“네? 하하. 애교 누나가 정말 변했네요.”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것도 다 왕정민 때문에 할 수 없이 변한 거긴 하지만요. 애교가 만만한 줄 알고 애교만 괴롭히다니. 그렇게 대단하면 그 여자를 그렇게 괴롭히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걸요.][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여자들은 뭐 드세고 화를 자주 내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겠어요? 다 남자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 거죠.][특히 우리 여자들은 가끔 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독하지 않으면 남들이 괴롭혀도 되는 줄 알아요...]나는 형수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애교 누나가 이토록 강해졌다니 나는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형수도 마찬가지고.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다.형수와 한참 얘기한 뒤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에게 전화했다.“누나, 왕정민 일은 왜 말 안 했어요?”애교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리고 듣기 좋았다.[수호 씨가 Y시에 있는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수호 씨 가 나 때문에 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의 보호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그동안 아빠한테 반항하면서 독립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껏 한 번도 그렇게 산 적이 없어요.][예전에 결혼에 묶여 나를 잃었고,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여자는 자기 마음이 강해져야 진짜 강한 거예요.]애교 누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누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이 아직도 내가 알던 나약하기만 하고, 무
“내가 방 하나 더 잡을게요.”나는 말하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사모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먼저 내 침대에서 눈 붙여요.”고개를 돌아보니 사모님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누울 공간을 내주었다.나는 속으로 거절했다.비록 사모님이 다른 마음 없이 그저 나를 휴식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는 걸 알지만, 사장님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사모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말도 안 됐다.게다가 윤지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내가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결국 거절했다.“아니에요. 가서 다른 방 구하면 돼요.”나는 다급히 방을 나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처음 온 날 우리는 사실 싱글룸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모님 상태가 걱정되어 나와 윤지은이 사모님 방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나머지 싱글룸 두 개를 취소했다.확인 결과 더블룸 하나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얼른 그 방을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과 윤지은이 더블룸에서 함께 지내고 내가 싱글룸에서 지내면 되니까.나는 카드키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조용한 데다 환경도 좋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침대에 눕기 바쁘게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요즘 사장님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달려 다니느라 형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마침 조용한 틈을 타 나는 형수와 얘기하려고 여상 통화를 받았다.형수는 사모님 상태를 걱정하며 일의 진전을 물어봤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쉽지 않아요. 조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수호 씨 사장님 내외가 수호 씨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 기회에 유미 씨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형수가 말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저도 알아요. 형수는 요즘 어때요?”[좋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요.]“진짜예요? 사진 찍어 보내 봐요.”나는 너무 기뻐 흥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