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명훈은 가까스로 칼을 피했지만, 피하는 도중에 칼날이 그의 어깨를 베었다.순간 안명훈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오더니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안명훈은 제 상처를 부여잡고 버럭 소리쳤다.“예들아. 당장 와서 저 자식 족쳐!”모태진은 단칼에 안명훈을 해결하려 했지만, 그가 피해버리자 순간 당황했다. 심지어 전투 경험도 없는지라 손에 들고 있던 칼도 어디 갔는지 없어졌다.그러다가 술집 안 사람들이 저를 향해 달려오자 그대로 도망쳤다.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한은솔은 마음이 타들어 갈 것 같아 얼른 울면서 나한테 전화했다.“모 선생님 지금 레드 오션에 있어. 방금 안명훈을 칼로 찌르려 하다가 실패해서 지금 도망 중이야. 안명훈이 모 선생님을 죽이려 하고 있어.”모태진의 위치를 들은 나는 곧장 한의관에서 뛰쳐나왔다.그때 마침 민우가 아침을 사 들고 돌아오는 게 눈에 띄어, 나는 얼른 그를 끌고 차로 올라탔다.“태진 선배가 레드 오션에서 그 자식을 찌르려 했대. 우리가 가서 도아야 해.”“헐. 이게 무슨 상황이래?”민우는 어리둥절해 벙찐 얼굴을 하고 있었다.내가 가면서 대충 상황을 설명해 주자, 민우는 그제야 놀란 듯 입을 쩍 벌렸다.“평소에 그렇게 점잖던 사람이 그런 일을 저지르다니, 놀랍네. 이따가 싸우려면 얼른 배불리 먹어야겠어.”민우는 말하면서 찐빵 하나를 입에 베어 물었다.그러더니 눈 깜짝할 새로 3개를 먹어 치웠다.한편 나는 모태진이 위험할까 봐 차 속을 높였다.다행히 화인당이 레드 오션과 그리 멀지 않아, 우리는 10몇 분 내로 도착할 수 있었다.그 시각 술집 안에 있던 사람들은 끊임없이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걸 봐서는 상황이 아직 종료되지 않은 모양이었다.민우는 밖에서 벽돌과 몽둥이를 찾아 쥐더니 나에게 몽둥이를 건넸다.“넌 경험이 부족하니까 이따 내 뒤에 붙어 있어. 누가 달려오면 그 몽둥이로 때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우선 때리고 봐.”민우는 싸움에 경험이 많다. 특히 이렇게 상대가 수적으로 많
그때 민우가 불쑥 물었다.“어떡해? 가서 말릴까?”나는 이를 악물었다.“아니! 저 개자식이 태진 씨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나라도 저놈 거시기 잘라버렸을 거야.”우리가 대화하는 사이, 시커먼 그림자들이 안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그 모리는 다름 아닌 주해진 패거리였다.주해진은 모태진을 보더니 표정을 일그러뜨렸다.“감히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워? 죽고 싶어 환장했나?”“가자!”나는 때를 봐서 얼른 미우와 함께 앞으로 돌진해 모태진 앞에 막아섰다.“해진 형님, 살려줘요...”안면훈은 주해진을 보자마자 큰 소리로 구원 요청을 해댔다.나는 두말없이 그 자식을 퍽, 걷어찼다.“닥쳐. 오늘 천지신명이 와도 널 구하지 못할 거야.”“지금 뭘 하려는지 알아요. 하고 싶은 대로 해요.”“수호야, 너 미쳤어? 이거 불법이야.”민우는 나를 보며 놀란 눈으로 말했다.이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민우야, 입장 바꿔서 그런 일을 당한 게 너였다면, 나더러 그냥 참으라고 할 수 있어?”민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나는 모태진을 흘긋거리며 말했다.“태진 선배는 우리 화인당 식구야. 우리 식구를 괴롭히는 건 우리 화인당을 괴롭히는 거나 다름없어. 당하고 온 게 태진 선배든, 너든, 아니면 다른 사람이든, 난 똑같이 할 거야.”민우는 결국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그래. 나도 같이해. 무슨 일 생기면 나도 같이 책임질게.”모태진은 이미 안명훈의 바지를 벗겨 그놈 거시기를 꽉 잡고 있었다.안명훈은 너무 놀라 벌벌 떨었고, 주해진은 그 장면에 눈살을 찌푸렸다.“젠장. 감히 나를 무시해? 저 자식 족쳐!”주해진의 명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똘마니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나와 민우는 온 힘을 다해 그들을 막았다. 나는 심지어 거추장스러울까 봐 팔에 감고 있던 깁스까지 벗어던졌다.그러고는 민우가 하던 대로 요리조리 피하며 피하지 못할 것 같을 때는 상대를 습격했다.물론 몇 군데 맞았지만, 나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내가 휘두른 방망이는 한 번도 비껴
나는 손을 떼지 않았다. 내가 손을 놓는 순간 주해진이 번복할지도 모르니까.나는 사람들이 몰린 쪽을 쓱 훑다가 마침내 모태진을 찾았다.“태진 선배, 어때요? 복수했어요?”모태진은 몇 번 두들겨 맞아 고통을 참느라고 이를 악물었다.“거의 성공하 뻔했는데 상대가 도망쳤어요.”“젠장. 그럼 우리도 이만 돌아가고 복수는 나중에 하는 게 어때요?”내가 제안했다.모태진은 여전히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나와 민우를 생각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모태진은 원래 안명훈을 거세해 버리고 자수하려고 했는데, 나와 민우까지 연루되자 결국은 우리를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나는 모태진을 불러와 칼을 주해진의 목에 겨누게 했다.“당신 부하들은 여기 남아 있으라고 해. 당신은 우리랑 같이 나가고.”나는 주해진을 인질로 삼아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다.주해진은 내가 제 거시기를 놓아주자 그제야 편한 표정을 지었다.“그래. 네 말대로 할게. 너희들은 여기 꼼짝 말고 있어. 한 놈도 따라 나오지 마.”“내가 같이 나가면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거야. 내가 장담하지.”주해진은 이상하리만치 우리에게 협조했다. 하지만 상황이 급박해, 나는 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우리가 주해진을 인질로 삼아 술집을 나가려고 할 때, 한은솔이 달려왔다.“모 선생님, 저 좀 데리고 나가 주세요.”모태진은 싸늘한 표정으로 상대를 쏘아봤다.“저리 비켜!”그 순간 한은솔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모 선생님, 저도 협박받아 어쩔 수 없었어요. 그때 제가 그러지 않았으면 안명훈이 저를 가만두지 않았을 거예요.”모태진의 눈빛은 점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꺼지라고 했을 텐데. 손쓰게 하지 마.”“차라리 절 때려요. 때려서 화가 풀린다면 얼마든지 맞을게요.”모태진은 으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주먹을 그러쥐었지만 결국은 끝내 손을 대지 못했다.그 대신 내가 다가가 짝, 하고 한은솔의 뺨을 후려갈기며 싸늘히 충고했다.“이건 태진 선배 대신 때리는 거야. 다
“하도 우리가 제때 왔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오늘 여기서 죽어도 아무도 몰라요.”나를 보는 모태진의 표정은 굳센 의지를 담고 있는 듯했다.“그래도 후회는 안 돼요. 그냥 안명훈 거시기를 자르지 못한 게 한이 될 따름이에요.”나는 손을 뻗어 모태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복수는 급하게 할 필요 없어요. 때를 기다려야 해요. 우리한테 기회는 많아요. 어제 형수님이 가게에 찾아왔는데 엄청 걱정하는 눈치였어요. 이따 집에 바래다줄게요.”모태진은 마구 도리질했다.“안 갈래요. 난 집에 갈 수 없어요.”“왜요? 집에 안 가고 또 그 여자 귀찮게 하려고요?”민우가 퉁명스럽게 말했다.그러자 모태진이 이내 대답했다.“나 앞으로 한은솔과 다시는 엮이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집에 가기도 싫어요.”“왜죠? 이해가 안 되네요.”민우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대충 알 것만 같았다. 안명훈이 모태진을 협박해 한은솔과 그런 짓을 하게 했으니 아내한테 미안해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 걸 거다.이 상황에 나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다.“그럼 우선 화인당에 가서 몸에 난 상처부터 치료해요. 형수가 오늘도 아마 가게에 올 것 같아요. 그러니까 시간 날 때 형수를 어떻게 마주할지 고민해 봐요.”모태진은 마음이 어수선한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사이, 나는 차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20분 뒤 차는 천천히 화인당 문 앞에 섰다.화인당 직원들은 이미 제 일자리를 찾아 오픈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리가 상처투성이가 된 채 들어오자 걱정하는 듯 빙 둘러싸더니 무슨 일인지 물어댔다.특히 오민혁은 아예 내 팔짱을 끼고 물었다.“수호 형, 왜 이래요? 괜찮아요? 절대 죽지 마요. 형이 저한테 여대생 소개해주길 고대 기다리고 있단 말이에요.”나는 화가 나서 오민혁의 엉덩이를 발로 뻥 차버렸다.“소개는 무슨. 민혁 씨는 평생 희망 없어요. 저쪽으로 좀 비켜요.”“싫어요. 세 사람 시중도 들어야 하거
“어,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내가 서지예 씨를 기분 나쁘게한 적 있나요? 좀 내가 잘되기를 바라주면 안 돼요?”나는 너무 어이없어 반박했다.그러자 서지예가 콧방귀를 뀌었다.“날 기분 나쁘게 한 적 없다고요? 지난번에 그딴 것도 아이디어랍시고 내는 바람에 내가 동준 씨랑 한동안 말도 못했잖아요.”나는 뻘쭘해서 양동준의 눈치를 살폈다. 양동준의 눈빛은 시종일관 차가웠는데 마치 왜 서지예한테 그런 방법을 가르쳐줬냐고 따져 묻는 것 같았다. 때문에 눈을 마주칠 엄두가 안 났다.“저기, 혹시 물 마실래요? 민혁 씨, 얼른 가서 물 따르지 않고 뭐 해요?”서지예는 손을 들어 내 말을 잘랐다.“물은 됐어요. 아가씨 부탁으로 도와주러 온 거예요.”‘윤지은?’보아하니 윤지은이 병원에서 사모님으로부터 화인당의 상황을 전해 듣고, 서지예와 양동준을 보내 우리를 도와주라고 한 모양이었다.순간 나는 윤지은한테 너무 감사했다.윤지은은 비록 자주 독설을 퍼붓지만 내가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항상 도와준다. 때문에 나는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개기지 않겠다고 속으로 맹세했다.어쨌든 양동준이 여기 있읜 우리도 뱃심이 두둑해졌다. 심지어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두 분 안으로 들어오세요.”나는 너무 감격스러워 얼른 다른 직원더러 두 사람을 위해 차를 내오라고 부탁했다.양동준은 앞에서 걸어가고 서지예는 그 뒤를 따랐다. 그러다가 서지예는 갑자기 절음을 멈추고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봤다.“은밀한 방 하나 찾아줘요.”“왜요?”나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그러자 서지예가 나를 노려봤다.“뭐긴 뭐겠어요? 당연히 저 뻣뻣한 인간이랑 단둘이 있으려고 그러죠.”‘그건...’나는 서지예의 말대로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어쨌든 나는 양동준의 제자가 되는 게 목적인데 그의 심기를 거스르면 제자가 될 수 없을 게 뻔했다.하지만 양동준은 너무 차갑고 말이 적어 친하게 지내기가 힘들다. 그에 반해 서지예는 털털하고 친해지기 쉽다.서지예가 도와주면 일이 쉬워질 테지만
“무슨 일이 그렇게 많아요? 나를 돕지 않으면 내 도움도 바라지 마요.”서지예는 화가 난 듯 말했다.이 타이밍에 나도 서지예의 화를 돋울 수 없어 마지못해 양보했다. “그래요. 알았어요. 하지만 이번 한 번뿐이에요. 기회 잘 잡아요. 이번 기회를 놓치면 나를 탓하지 마요.”“오케이.”서지예는 이내 기분 좋은 좋아진 듯했다, 이윽고 말을 마친 뒤 신이 나서 양동준을 찾아갔다.나는 어이없어 한숨을 푹 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사장님, 저를 탓하지 마세요. 저도 다 화인당을 위해서 이러는 거예요.”나는 차에 몰래 약초를 섞어 넣고 오민혁더러 차를 내가게 했다. 그렇게 하면 양동준이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할 테니까.양동준이 여기서 지켜주고 있으니 왠지 든든하고 안심이 됐다.다만 서지예와 양동준 쪽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이건 두 커플 사이의 일이니 나와 상관없다.다만 우리가 한창 바삐 보내고 있을 때 서지예가 갑자기 다급하게 뛰쳐나왔다. 심지어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수호 씨, 이리 와요!”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다가갔다.“왜 그래요?”서지예는 화가 난 듯 말했다.“나한테 대체 뭘 했어요? 솔직히 말해요.”“뭐 안 했는데요? 지예 씨 요구대로 했잖아요.”“그럼 왜 양동준은 마시고도 아무 문제 없는데 나만 이렇게 됐어요?”서지예는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그럴 리 없어요. 내가 쓴 약초는 소한테 쓰는 거라 사람은 절대 참을 수 없어요.”“양동준은 정말 괜찮다니까요. 아까 내가 그 인간 몸에 기댔는데 나를 밀어 냈어요. 지금 나만 괴로워 죽겠는데 이거 어떡해요?”우리가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 양동준이 어두운 얼굴로 내려왔다.그 순간 나는 너무 놀라 수명이 줄어든 느낌이었다.하지만 양동준은 우리를 무시한 채 곧장 화인당을 떠났다.내가 발견한 바로는 양동준은 괜찮은 게 아니라 참고 있는 거였다.양동준의 얼굴도 살짝 발그스름한 걸 봐서 그도 분명 느낌이 왔다는 걸 설명한다. 다만 양동준의 의지력이 너무 강해 그걸 억제한 거다.
나는 양동준이 강물에 휩쓸려 갈까 봐 얼른 강가 옆으로 달려갔다.하지만 곧바로 내가 양동준을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걸 알아챘다.양동준은 물살이 센 강물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아예 수영을 하고 있었다.그 모습은 너무 충격이었다.대단한 사람은 능력이 일반 사람을 훨씬 뛰어넘어 하다 하다 대자연에 도전장을 내밀 정도다.나는 눈이 휘둥그레서 양동준이 수영하는 모습을 구경했다.나도 나중에 양동준 정도 능력을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다.강가에서 약 20분 정도 구경했더니 양동준은 그제야 강가로 나왔다.그 사이, 양동준의 안색은 이미 정상으로 돌아왔다.하지만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는 양동준과 마주한 순간, 나는 심장이 철렁했다.“동, 동준 형님, 괜찮아요?”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면서 눈길은 자꾸만 양동준의 튼튼한 몸을 훑었다.양동준은 몸매가 아주 좋다. 여자라면 모두 좋아할 역삼각형 모양에 잘 잡힌 근육, 그리고 햇빛에 그을러 살짝 가무잡잡한 피부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남자인 내가 봐도 사랑에 빠질 정도였다.양동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내 엉덩이를 발로 뻥 찼다.그 순간 나는 무게 중심이 흔들리면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하지만 양동준이 발 빠르게 다가와 나를 다시 잡았다.코 앞에 펼쳐진 급한 물살의 강을 보니 순간 심장이 목구멍을 튀어나올 뻔했다.“동준 형님, 얼른 저 잡아당겨 줘요.”나는 깜짝 놀라 고래고래 소리쳤다.하지만 양동준은 나를 끌어당기지 않고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차에 약 탄 거 수호 씨예요?”그 말에 나는 너무 놀라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양동준이 사실을 알고 나한테 손찌검할까 봐 두려웠다.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거짓말하면 인간도 아니었다. 때문에 나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저, 저도 동준 형님과 서지예 씨를 도와주고 싶어서 그런 것뿐이에요. 다른 마음은 절대 없어요.”내 말을 들은 양동준은 내 옷을 잡고 있던 손을 천천히 풀었다. 그 순간 나는
밧줄을 끄는 사람은 다름 아닌 양동준이었다. 강가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은 너무 멋있었다.물론 양동준이 나를 강물로 차버리고 밧줄을 내 목에 걸고 잡아끌었지만, 나는 하나도 화가 나지 않았다.그도 그럴 게, 양동준이 너무 멋있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정확히 나를 딱 맞춰 밧줄을 걸다니 역시 내 우상 다웠다.“동준 형님, 고마워요.”나는 강가에서 기어 나와 헤실거리며 웃었다.그러자 양동준은 싸늘한 눈빛을 쏘아 댔다.“고맙다고요? 수호 씨를 강으로 차버린 것도 난데, 그래도 살려줘서 고마워요?”“네. 아까 동준 형님이 저를 걷어차는 바람에 저와 형님의 실력차가 얼마나 큰지 알았어요. 그래서 동준 형님이 더 존경스러워요.”이건 내가 양동준한테 잘 보이려고 아부하는 게 아니라 진심이었다.내 말을 들은 양동준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 제자가 되려고 정신 나간 말도 하네요.”“틀렸어요. 제가 이런 말을 한 건 진심이에요. 다른 목적이 없어요.”“귀신을 속여요.”양동준은 밧줄을 정리하고는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나는 얼른 그 뒤를 쫓아갔다.“동준 형님, 저 좀 데려다줘요. 제 차가 저쪽애 있거든요.”“나한테 가르쳐 달라면서요? 고작 이 거리도 정복 못 하겠어요?”그 말에 나는 너무 감격스러웠다.“무슨 뜻이에요? 저 가르쳐 주는 거예요?”“흥.”양동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장 시동을 걸고 떠나버렸다.그 뒤에서 나는 몸이 축축한 것도 신경 쓸 겨를이 없이 서둘러 뛰기 시작했다.양동준의 속도는 빠르다면 빠르고 느리다면 느렸는데, 보아하니 나를 단련시키려고 일부러 나를 운동시키려는 것 같았다.하지만 나는 오히려 기뻤다.나를 운동시킨다는 건 나를 가르칠 마음이 있다는 뜻이었으니까.이건 내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일이었다.나는 양동준의 속도에 맞추려고 힘을 냈다. 하지만 온몸이 젖은 데다 전에 다친 상처가 채 낫지 않아 속도가 나지 않았다.결국 나는 얼마 가지 못해 숨을 헐떡거렸다. 그렇다고 멈추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를 악물고
“서 사장님, 괜찮습니까?”“서 사장님...”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서윤기를 부축했다.서윤기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지만 코에서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젠장. 누군데 서 사장님을 때려?”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서윤기가 손을 뻗자 사람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서윤기는 휴지로 피를 닦더니 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정수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렇게 큰 Y시에서 다 만나고.”나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사장님이 여기로 인도해 주셨어. 네놈이 여기 있는 줄 알고 너 처리하라고 여기로 이끌어 주셨어.”서윤기는 그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호섭 말이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호섭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신통하다면 왜 자기 죽음도 못 막았겠어?”정 사장님이 불상사를 당한 뒤 모든 사람이 비통했는데, 서윤기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울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그때 이동민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젠장. 감히 내 앞에서 서 사장님께 폭력을 써?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이동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듣기로 이동민은 예전에 백정이라서 아주 포악했었다는 말도 있다.나 역시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도살업자는 설령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피부와 핏속까지 스며든 피비린내를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동민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나와 이동민의 표정은 동시에 일그러졌다.이동민은 내 주먹이 그렇게 단단할 걸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 주먹을 받아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나 역시 꽤 센 이동민의 주먹에 흠칫 놀랐다.싸움을 배운 뒤로 나는 이 정도 상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주먹끼리 부딪힌 뒤 한동안 팔이 저리더니 잠
버섯전골은 Y시 명물이라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다. 어느새 냄비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방안 전체에 퍼져 버섯 냄새가 가득했다.윤지은은 사모님한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유미야, 너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많이 먹어.”“그만 집어 줘. 내가 직접 먹을 수 있어. 두 사람도 먹어.”우리는 묵묵히 전골을 먹었다.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분위기는 다소 조용했다.나는 몇 번이나 분위기를 띄워주려고 했지만 사모님이 별 반응이 없고, 윤지은도 협조하지 않아 혼자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차 마시고 싶어...”사모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제가 물어볼게요.”무엇보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낸 사모님의 요구를 얼른 만족시켜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큰 방을 지나다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안을 들여다봤다.그랬더니 내 눈에 익숙한 실루엣, 서윤기가 들어왔다.‘서윤기가 Y시에 왔다고?’나는 얼른 몸을 숨긴 채 안대성에게 전화했다.“서윤기를 감사하라고 했잖아. Y시에 온 건 왜 말 안 했어?”[네? 서윤기가 Y시에 갔다고요? 몰랐는데요? 형님, 제가 부하들한테 서윤기 잘 감시하라고 시켰는데...]안대성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인지하고 얼른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놈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룸 안을 훔쳐봤다.룸 안에는 서윤기 외에 Y시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은 왠지 낯이 익었다.나는 몰래 중년 남자의 사진을 찍어 판자촌 노랑머리에게 보냈다.[이 사람 알아요?]노랑머리는 곧바로 답장했다.[그 사람은 이연화의 아버지 판자촌 터줏대감 이동민이에요.]‘젠장.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이연화와 닮았잖아.’‘이동민이 여기 나타난 데다 서윤기와 웃고 떠드는 걸 보니 설마 정 사장님 교통사고가 서윤기 짓인가?’나는 그럴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서윤기가 강북 시장
“한 번에 천만 원? 여기가 뭔 금은방인 줄 알아요?”나도 이제는 돈 좀 있지만 한 번에 음식점에 천만 원을 충전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에서 최고급 호텔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도 고작 몇백만 원인데, 길가에 널리고 널린 버섯전골 집이 멤버십 카드만 천만 원이라니?매니저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돈 없으면 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나가요.”“잠깐!”나는 언성을 높였다.그러자 매니저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왜요? 또 무슨 일이죠?”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난 이 가게가 악의적으로 손님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고 의심되거든. 그래서 지금 신고할 생각이야.”내가 신고하겠다는 말에 매니저는 얼굴색이 싹 바뀌더니 나를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당신 미쳤어? 본인이 밥 먹을 돈 없으면서 왜 남의 가게를 신고해?”“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더니, 왜? 내가 신고할까 봐 두려워? 불법 경영한 거 걸릴까 봐 걱정돼? 그렇다면 더 신고해야겠네. 이렇게 부도덕한 가게는 문 닫아야 하니까.”윤지은은 네 행동을 지지했다. 심지어 사모님 역시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나는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매니저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이분을 풀 생각이었다.내가 정말 전화하자 매니저는 이내 태도를 누그러뜨렸다.“알았어요. 오늘 일은 저희 측 책임이니 사과드리죠. 지금 당장 자리 내어드릴게요. 됐죠?”“어디? 홀? 아니면 구석?”내가 따져 물었다.그러자 매니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당연히 룸을 내드려야죠. 하지만 큰 룸은 이미 손님이 꽉 차 작은 룸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용은 사과하는 의미에서 받지 않겠습니다.”나는 손을 뻗어 매니저의 말을 잘랐다.“됐어. 값은 원래대로 받아요. 안 그러면 음식에 또 뭔 짓 할지도 모르니까.”매니저는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매니저가 비열한 소인배라고 공개 처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나는 윤지은과
결국 어쩔 수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내려가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Y시에 버섯전골 맛집은 꽤 많았다. 하지만 사모님 기분이 안 좋은 지금 작은 가게를 가면 보는 눈이 많고 시끄러워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나는 한적한 가게를 찾으려고 한참을 더 걸었다. 다행히 그런 가게를 찾는데 겨우 성공했다.“안녕하세요. 프라이빗룸 하나 예약하게요.”이 가게는 환경도 좋고 손님도 많은 걸 보니 맛도 괜찮은 듯 시었다.“큰 룸 하나가 남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큰 룸은 얼마인데요?”“큰 룸은 기본 소비가 60만 원 이상입니다.”“좋아요. 그걸로 주세요.”60만 원이면 괜찮았다.룸을 예약한 뒤 나는 또 운전해서 윤지은과 사모님을 픽업하러 호텔로 돌아갔다.두 사람은 어느새 현지 특색이 담겨 있는 꽃무늬 옷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절세 미녀들이라 그런지 뭘 입어도 예뻤다.물론 나는 칭찬의 말을 아꼈다. 지금 장소와 분위기에 그런 칭찬은 맞지 않았으니까.잘못했다가 또 윤지은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나는 일부러 맞을 짓을 골라 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우리는 버섯전골 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하테 큰 룸 예약을 도와줬던 종업원이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손님, 죄송하지만 큰 룸은 이미 다른 분이 예약하셨습니다.”“방금 분명 내가 먼저 예약했잖아요. 왜 남의 방을 함부로 다른 손님한테 내줘요?”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종업원은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인터넷 오류가 났는지 그 방은 이미 예약한 분이 있어요.”이미 이곳에 왔는데 그대로 갈 수 없었기에 나는 차선책을 제시했다.“그럼 작은 방이라도 줘요.”“죄송하지만 오늘 가게에 있는 모든 룸은 이미 예약돼서 남은 룸이 없어요. 괜찮으시면 홀에 있는 자리를 내어줄게요. 동남쪽에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요.”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당신들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예약한 자리가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
우리는 희망을 이연화에게 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때문에 그 백수들이 소식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만 했다.하지만 윤지은은 호텔에 갇혀만 있으면 사모님이 답답해할까 봐 한가할 때면 사모님과 함께 산책하곤 했다.사모님이 자기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동력과 희망이 없는 탓에 사모님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Y시에 온 지 사흘 만에 강한나는 다시 강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 우리와 함께 시사 자리를 가졌다.“정말 여기 남아서 조사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한나가 말했다.“알았어. 나도 도와줄 건 없으니 성공하길 빌게.”나와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이 화장실 간 틈에 강한나는 얼른 우리에게 말했다.“호섭 씨 시신 어느 때 화장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몰라. 유미가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그 말에 강한나가 말했다.“시체를 화장하지 않아도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난 고인 편히 쉬게 해주는 게 좋다고 봐.”“하. 그런데 문제는 유미가...”사모님이 아쉬워하는 게 문제다.화장하지 않으면 그래도 보러 갈 수 있지만 화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사실 나도 강한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그 말 이해해요. 사모님은 저희가 설득해 볼게요.”식사를 마친 뒤 강한나는 그 길로 떠났다.나와 윤지은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두 사람 먼저 돌아가. 난 장례식장에 가볼 거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사모님이 또 사장님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도 규정이 있는데, 아무 때나 들여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그건 다른 것도 아닌 시신이니까.그때 윤지은이 입을 열었다.“유미야, 이번에 보고 난 뒤 호섭 씨 편히 자게 해주자.”“안 돼!”사모
“왕정민 이 파렴치한 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분명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애교 누나한테 집착하다니.“애교 누나는 그럼 어떻게 처리했어요? 신고는 했어요?”[애교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더라고요. 그걸 다시 왕정민한테 보냈어요. 심지어 안에 뭔갈 더 추가해서.]“네? 하하. 애교 누나가 정말 변했네요.”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것도 다 왕정민 때문에 할 수 없이 변한 거긴 하지만요. 애교가 만만한 줄 알고 애교만 괴롭히다니. 그렇게 대단하면 그 여자를 그렇게 괴롭히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걸요.][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여자들은 뭐 드세고 화를 자주 내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겠어요? 다 남자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 거죠.][특히 우리 여자들은 가끔 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독하지 않으면 남들이 괴롭혀도 되는 줄 알아요...]나는 형수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애교 누나가 이토록 강해졌다니 나는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형수도 마찬가지고.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다.형수와 한참 얘기한 뒤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에게 전화했다.“누나, 왕정민 일은 왜 말 안 했어요?”애교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리고 듣기 좋았다.[수호 씨가 Y시에 있는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수호 씨 가 나 때문에 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의 보호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그동안 아빠한테 반항하면서 독립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껏 한 번도 그렇게 산 적이 없어요.][예전에 결혼에 묶여 나를 잃었고,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여자는 자기 마음이 강해져야 진짜 강한 거예요.]애교 누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누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이 아직도 내가 알던 나약하기만 하고, 무
“내가 방 하나 더 잡을게요.”나는 말하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사모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먼저 내 침대에서 눈 붙여요.”고개를 돌아보니 사모님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누울 공간을 내주었다.나는 속으로 거절했다.비록 사모님이 다른 마음 없이 그저 나를 휴식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는 걸 알지만, 사장님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사모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말도 안 됐다.게다가 윤지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내가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결국 거절했다.“아니에요. 가서 다른 방 구하면 돼요.”나는 다급히 방을 나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처음 온 날 우리는 사실 싱글룸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모님 상태가 걱정되어 나와 윤지은이 사모님 방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나머지 싱글룸 두 개를 취소했다.확인 결과 더블룸 하나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얼른 그 방을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과 윤지은이 더블룸에서 함께 지내고 내가 싱글룸에서 지내면 되니까.나는 카드키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조용한 데다 환경도 좋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침대에 눕기 바쁘게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요즘 사장님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달려 다니느라 형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마침 조용한 틈을 타 나는 형수와 얘기하려고 여상 통화를 받았다.형수는 사모님 상태를 걱정하며 일의 진전을 물어봤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쉽지 않아요. 조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수호 씨 사장님 내외가 수호 씨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 기회에 유미 씨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형수가 말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저도 알아요. 형수는 요즘 어때요?”[좋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요.]“진짜예요? 사진 찍어 보내 봐요.”나는 너무 기뻐 흥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